부분적인 연결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마지막 섹션을 번역했다. 이 섹션에서는 30여년전 그녀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석인류학에서 방향을 틀고자 한 '새로운 인류학'의 근저의 문제의식을 이해해볼 수 있다. 우리는 왜 부분적일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왜 부분적이어야 하는가? 인류학은 왜 그러한 질문에 착목할 수밖에 없는가? 그래서 인류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그 힌트를 주지만, 물론 답은 각자의 몫이다.  

 

   

부분 2 인공기관적 확장

 

부분 1 부가(additive)

 

부분 1 부분적인 설명 

키징은 남성 입사식이라는 나름대로 잘 구획된 현상조차도 파푸아뉴기니의 다양한 사회들을 관통해서 기술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다차원적인 이해에 대해, 또 그가 베이트슨의 문제로 명명한 것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다(Keesing 1982). 이아트물(Iatmul)네이븐(naven)에 관한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해설에서 제기된 문제는 이아트물 사회의 다양한 부분들을 어떻게 끼워 맞출 것인지에 있지 않았고 그 자신의 기술 속에 인류학적 설명의 다양한 출처들을 어떻게 끼워 맞출 것인지에 있었다. 어떤 패러다임도 세계를 포괄할 것 같지 않았다. 키징은 부분적인 설명들을 가교하는 데에 수반되는 도전과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트슨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뉴기니의 남성결사와 입사식 의례에 관한 생태학적, 경제적, 사회학적, 정치적, 상징적, 심리학적 및 그 밖의 부분적인 설명들이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 상호 보강적이며 보완적이라면, 그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어떤 틀이 요구된다는 것이다.”(Keesing 1982: 32).

뉴기니의 경제생활과 사회정치적 구조의 변환 그리고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오늘날의 다양한 변이에 대해 키징이 제시한 여러 설명들 중 하나는 뿌리곡물 생산의 집약화였다(Keesing 1982: 35). [그런데] 집약화 과정을 면밀히 검토한 페일은 그 요인들을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페일 자신은 환경의 악화, 이웃과의 경쟁, 양질의 단백질에 대한 욕구 등을 참조하면서 이 문제의 복잡성을 소묘한 후 이것들 모두가 유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부분적인 해석’(Feil 1987: 58)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피에르 르모니에(Pierre Lemonnier)는 앙가(Anga) 지역의 밀접하게 관련된 집단들의 원예체제를 검토하면서 밭 태우기/심기/울타리 치기라는 단순 과정에 대해 적어도 세 가지의 다른 조합을 찾아내어 기술적 특성들의 내적인 패턴화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Lemonnier 1989: 160). 그러나 설명에 의해 무엇이 의미하게 되는지를 잠시 생각해보면, 설명에는 여러 유형이 있고 인과론적인 연결은 그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각기 다른 논리형식들 간에 어떤 정합성도 부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 책의 출발점인 입장들 중 하나, 즉 표상이 설명을 포섭하는 데에서 표상은 충분한 것인가는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한편 역사, 문화 그리고 비교방법(History, Culture and the Comparative Method)이라는 제목의 존 필(John Peel)1987년 논문에서는 설명이 비교를 포섭하고 있다(각주 5 참조).

이 이론적 입장들 사이에서 우리는 비교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어떤 설명이든 그것이 함의하는 비교를 찾아내는 것으로 이행한다. 그러나 [비교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개념의 확장과 수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보다시피 필은 [설명에 비교를 내재시킨 다음] 다섯 타입의 각기 다른 비교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그가 말한 대로 우리는 그것들을 구별해야하기 때문에(Peel 1987: 90), 보통은 통약불가능한 방법들로 뒤죽박죽인 채로 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그것들로 [비교] 작업이 진행된다는 것을 그는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 일종의 반복복제의 과정이 있는데, 이 속에서 개념들의 각각의 배치가 잔여(reminder)를 만들어내고 이 잔여는 또 새로운 차원을 생성시킨다. 결과는 퍼스펙티브라는 수사가 끝끝내 충분히 묘사할 수 없게 만드는 일련의 전략이다. 현상에 대해수많은 퍼스펙티브와 관점이 있다는 사고는 이념적으로는 가능한 모든 관점의 총합과 같은 것, 혹은 최소한 퍼스펙티브 자체의 생산에 관한 틀이나 생성 모델과 같은 것을 정식화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퍼스펙티브를 전환할 때 느끼는 이동 혹은 여행의 감각을 설명하지 못할 뿐더러 가능한 퍼스펙티브의 수가 실제로는 무한하다는 암묵의 지식을 설명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그 수란 세계를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사물의 수 혹은 보고자 하는 그 목적들의 수 더하기 일과 같기 때문이다. 즉 퍼스펙티브를 통해 세계를 본다는 것 자체에서 생겨나는 퍼스펙티브가 고정적으로 그 퍼스펙티브에 더해진다. 얼마나 많은 퍼스펙티브가 모아진다 해도 그것들 모두는 [잔여인 또 하나의] 퍼스펙티브를 창출한다. 이것의 형식적 산물은 무한성이다(참조 Mimica 1988: 122).

내가 이 책에서 취한 다양한 입장들은 마치 일련의 퍼스펙티브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입장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노력해왔다. 즉 요소들의 성좌로서 각각의 입장은 이전 입장의 성좌들을 확대시키거나 축소시키는 효과와 함께 더 한층의 정교함을 생성시킨다는 것을 해명하고자 했다.

나는 내러티브 전략에 초점을 맞춘 인류학 내부의 논의를 끌어오면서 그와 더불어 인류학적 탐구를 북돋아주는 어떤 정보로부터 이 책의 내러티브를 만들어왔다. 비교에 대한 주의집중은 비교 방법에 참신한 처방전을 제공하기보다 인류학자들이 스스로 복잡성을 창출하는 방식 중 하나를 드러내며 그에 따라 사물들 간에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감각을 드러낸다. 이와 동시에 나는 이에 대한 논평으로서 또 다른 복잡성의 여러 질서들에 대한 통찰을 선사하는 멜라네시아의 다양한 자료를 병치했다. 따라서 이렇게 제공되는 자료는 불가피하게 이미 인류학적 데이터의 일부가 된다. 비교에 관해 우리는 숙고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두 주요 부분[‘인류학을 쓴다부분적인 연결’]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점은 서양과 멜라네시아(각주 1 참조)의 병행성에 상응함과 동시에 그러한 비교가 작위적인 구축물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나는 의도적으로 학문적인 경험의 유비물(analog)을 멜라네시아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 찾아내려 했다. 그것은 곧 우리의 몇몇 모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과는 정반대로 복잡성은 그 자신의 스케일을 유지한다는 경험이다. 우리 자료의 맥락과 수준을 꼼꼼히 추려보면, 여기저기 문제군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정보의 복잡성 그 자체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모든 정보의 각기 다른 파편들이나 일련의 복잡성들이 서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어떤 종류의 상대성에 매달린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일, [인류학적 기술의] 아킬레스건의 극히 일부를 드러내려고 시도해보았다. 요컨대 작위적으로 통제하려는 극단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기술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내가 강구한 잔여의 현상 또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려 했다. 멜라네시아 자료는 이것을 깨닫는 데 필요했다.

 

 

부분 2 절편(cut-outs)과 전체(wholes) 

사물들을 끼워 맞춰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그것들이 다른 무언가로부터 떼어낸 것이라는 전제에 있을 수 있다. 로버트 손턴(Robert Thornton)은 이 전제를 민족지를 쓰는 것 자체에서 오는 효과로 보고 있다. 그는 사회구조의 서술과 내러티브의 플롯을 아날로지로 연결하면서 그것들이 모두 쓰기가 창출하는 일관성과 질서의 이미지를 체현하고 있다고 말한다(Thornton 1988a: 286; cf. Clifford 1988: Ch.3). 민족지의 폐쇄는 주제를 완결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수사적 장치이지만, 그는 이와 동일한 관점이 다른 인류학적 글쓰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전체론적인 이미지에 의하지 않고서는 사회를 개념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Thornton 1988a: 289)고 그는 말한다. 다만 그는 이 논점을 곧바로 각주에서 다시 다루는데, 거기서는 사회학적 기술의 대상으로서의 사회가 사회적인 것(the social), 다른 사람들의 경험 및 우리와 그들 간의 관계”(1988a: 301)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고 서술한다.

민족지에서 핵심적인 픽션은 사회적인 전체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손턴은 주장한다. 많은 이론적인 논증에서 그 안의 부분들은 인격이든 제도든 상징이든 그 밖의 무엇이든지간에 부분-전체의 관계들의 어휘로 표현된다. 여기에 그는 복잡성을 더한다. 즉 전체에는 두 타입이 있다. 하나는 적절한 의미에서 메레올로지적인(mereological) 것이다. 마치 가지가 나무의 일부이듯이 동일한 관계성이 부분부분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에 대해서도 성립된다. 다른 하나는 집합포함(class-inclusion)의 법칙이다. 이것을 통해 분석적 범주가 집합의 요소들을 구성하게 된다. 그가 시사한 바로는 이 둘은 수사적 일관성을 위해 그리고 이에 따라서 전체성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Thornton 1988a: 292) 종종 융합된다. 신체와 나무와 같은 이미지는 이 융합을 돕는다. 이것들은 집합포함의 법칙에 사실상 의거하는 분석적 구조에 자연스러움과 전체성(wholeness) 둘 다를 전달하는 괜찮은 메레올로지적 은유다. 텍스트의 부분들이 사회의 부분들과 혼동되는 것이다.

그래서 손턴은 한편으로 씨족, 연령단계(age-grades), 민족과 같이 사회적 총체의 영역들로 간주되는 것들 사이의, 다른 한편으로는 장(), 표제, 단락과 같은 텍스트의 분절 사이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해 논한다. 후자의 경우 부분들은 전체를 메레올로지적으로 구성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요소들 혹은 절편들 사이에 일관된 관계가 없고따라서 합산되지 못한다, 텍스트의 아날로지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회적 전체를 형성하지 못한다(Thornton 1988a: 291). 그러나 이 둘의 어떠한 경우에도 부분은 상상된 하나의 포괄적인 전체로부터 요소들을 떼어 낸다는 바로 이 관념에 의해 창출된다. 첨언하면, 떼어냄의 이미지는 개별의 부분들이 독립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한에서 그 개별의 부분들에 통일성(unity) 혹은 전체성이라는 상호관련의 감각을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모든 텍스트가 합산하기를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합산하지 않는 텍스트는 통약불가능한 내러티브를 의도적으로 병치하는 포스트모던 장르에서 볼 수 있다고들 한다. 전체성이 수사학 자체라는 인식은 콜라주에서 혹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모으는 것이 아닌 그 처치 곤란함을 전시하는 컬렉션에서 적나라하게 예시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물들이 합산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러한 서술은 종종 덜 잘리는 것이 아니라 더 잘게 잘리는, 이를테면 지각된 사건들, 순간들, 인상들로 과하게 잘리는 것들을 담아낸다. 그리고 요소들이 그렇게나 많은 조각들로 제시될 때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전체를 이루는 다른 옷, 더 큰 조각 등의 어딘가에서 오는 부분들로 제시된다. 세계시민주의자가 뿌리 없는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절단이다.

절단이라는 현대적인 은유는 파멸(disruption)이라는 더 깊은 암시에서 힘을 얻고 있다. 사실 파열(rupture)은 그 자체로 해체적, 인습 타파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비유는 클리포드의 문화의 곤경(Predicament of Culture)을 관통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라판자노(Crapanzano)와 드위어(Dwyer)는 타자라는 텍스트화된 직물을 찢어발기고 그에 따라서 해석하는 자기 또한 헤집는 식으로 조사경험을 표상하려고 애쓴다. (여기서는 어원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즉 텍스트라는 단어는 잘 알려진 대로 직물 짜기와 연관되고, 취약성(vulnerability)은 찢기거나 상처 입는 것과 연관되며 여기서는 닫힌 권위를 여는 것을 뜻한다.) (Clifford 1988: 43; 강조는 원문)

 

그는 어떤 이음새 없는 비전을 추구하는 대신에 민족지적 글쓰기의 자료를 잘려나가 구제된 유의미한 인공물로서, 그러면서도 재집합화와 창조적인 재조합”(1988: 12)에 언제나 순응하기를 바라는 태도를 명시한다. 따라서 이 시야에서 창조성이란 쓸 만하게 만드는 일, 다시 말해 원래의 처소에서 비정하게 잘려나간 부분들을 재조합하는 일이다. 그가 마르셀 그리올레(Marcel Griaule)에 대해 서술한 장은 민족지적 현지조사 자체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고 침입자적인 추출행위로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올레는 말하자면 인공물을 수집하는 모든 자들의 공격성을 시연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클리포드는 박물관 수집품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여 우선 (문화적, 역사적, 혹은 간주관적인) 특정 맥락에서 오브제를 떼어내어 그것들로 추상적인 전체를 대리하게함으로써전시가 세계를 적절히 표상한다는 환상을 어떻게 창출하는지”(Clifford 1988: 220)를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콜라주는,

 

작품(여기서는 민족지적 텍스트) 속에 나타난 맥락에 대해 지속적으로 그들 자신의 외래성(foreigness)을 주장하는 요소들을 작품에 들여온다. 이 요소들스크랩한 신문지면이나 깃털처럼은 예술가-작가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닌 수집된 것인 만큼 실재를 표시한다. (a) 절단 및 (b) 조립 절차는 물론 어떤 기호적인 메시지에서 기초를 이루는데, 여기서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메시지인 것이다. 조사과정의 잘라냄과 이어붙임은 가시적으로 남는다. 작품의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데이터를 균일한 표상 속으로 수습하거나 뒤섞지 않는다. 콜라주를 모델로 하여 민족지를 쓰는 것은 문화의 초상을 유기적인 전체로 그려내지 않으려는 것이다. (Clifford 1988: 146; 강조는 원문)

 

그는 참으로 적절하게 베이트슨의 네이븐을 예로 든다.

그가 [네이븐] 변호하기를 문화적 창조성을 상상하는 방법은 유기체론만 있지 않다. 아니면 여기서 차라리 그가 접붙인 이미지에 착목해보면 재생산(reproduction)보다도 재생(regeneration)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세계시민주의자가 어디에도 단 한 뿌리라도 내리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크레올화 되고 변질된 세계 문화들의 이종성(異種性 heterogeneity)은 뿌리내리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생성되어야 한다. 문화와 정체성은 조상의 땅에 반드시 뿌리내릴 필요는 없지만 수분(受粉)과 이식(移植)을 통해 살아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클리포드는 불가역적인 균질화(entropy)의 비통한 분위기는 아닐지라도 일종의 향수어린 비대화(hypertrophy)의 분위기로 이야기한다거두어야할 과거가 너무 많다. 그의 서술 속에서 거두는 것과 매어두는 것은 여전히 창조적인 행위인 것 같다. 멜라네시아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그들의 열린 차용과 전유를 염두에 두면서 다음의 문장을 음미해보자.

 

전통의 뿌리는 절단되고 다시 붙여지며, 집합적 상징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여 이뤄진다. (1988: 13)

 

물론 내가 멜라네시아 사람들을 염두에 두는 것은 길리손과 와이너의 저작이 증명하듯이 잘라냄의 이미지를 완전히 다른 비유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Gillison 1980, 1991: J. Weiner 1987, 1988). 관계는 인격들을 상호 분리함으로써 창출된다. 절단 그 자체가 창조성이라는 함의를 띠는 멜라네시아에서는 파편들을 이어붙임으로써 만들어지는 일종의 전체성도, 재조직되는 생명도 상상할 필요가 없다.

간주관적인 체험이기도 한 [민족지적 현지조사와 같은] 비교문화체험을 모델화하기 위한 매체로서 대화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최근의 논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멜라네시아의 관점은 클리포드의 지당한 비평에 덧붙여질 수 있다. 클리포드는 해석의 권위가 대화의 배제에 기초한다면 순수하게 대화가 갖는 권위는 텍스트화라는 불가피한 사실을 억압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1988: 43). 그렇다면 교환파트너들 간의 호혜적 관계는 어떠한가? 멜라네시아 사람이라면 민족지학자가 관점의 공유를 고집하는 한 민족지학자와 제보자들 사이에서 퍼스펙티브의 교환은 행해질 수 없다고 평할 것이다. 사회적인 인격으로서 그들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상호 절단되어야 한다. 교환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 각각의 퍼스펙티브 간의 아날로지가 창조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전에, 단지 그들이 점한 입장들에 의해 차이화 되는 동종의 인격들로 보이기 전에 그들은 정말로 관계를 끊어야 한다.

 

 

부분 2 사이보그

 

부분 1 칸토어의 먼지 

챔브리(Chambri) 입사식의 시퀀스를 목격한 후 혼란스럽고 불쾌한 기분으로 빠져나온 관광객들(tourists), 아마도 거칠게 다뤄짐으로써 이전에 받았던 상처가 예기치 않게 열린 소년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는 느꼈을 것이다. 입사식의 실천은 서양인이라면 개인의 경계로 간주되어야할 것을 의도적으로 침범한다. 가입자의 신체를 오두막이나 페니스케이스에 집어넣고 조이든지 피를 흘리게 하든지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하든지 등등 서양인들에게 이 모든 것은 그렇다. 멜라네시아 사람은 은유적으로 전통에 균열을 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살의 표면을 자른다. 또 그들은 은유적으로 개인을 전도시켜 문화의 뿌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대신에 문자 그대로 나무뿌리를 뽑아 물구나무 세워 나무줄기가 항상 뿌리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리터럴리즘(直解主義 literalism)을 오독하지 말아야 한다. 절단해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은 이미지 그 자체다. 남자들과 나무와 정령과 피리와 여자들과 카누 이 모두가 서로의 유비물(analog)로 간주될 때, 그리고 완토아트에서와 같이 나무를 쓰러뜨려 광장 중앙에 끌고 올 때, 사람들은 나무를 한 남자의 이미지로서 숲에서 떼어낸 것이다. 머리위에 조형물을 얹고 춤추는 남자는 나무와 숲의 결합된 이미지가 자신과 자신이 짊어진 구축물 사이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뉴아일랜드의 우센 바로크(Usen Barok) 사람들이 숲의 나무들에게 무엇을 행하는지를 살펴보자.

바로크 사람들은 남자들의 오두막을 포함한 석단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의식을 치룬다(Wagner 1986b, 1987). 이 공간 전체는 수평으로 뉘인 나무의 이미지를 따라서 배치된다. 입구에는 나무 정상부에 비견되는 여러 갈래의 나무줄기 모양의 문틀이 있다. 집 뒤편에는 선조들의 매장지가 있는데, 이 장소는 씨족의 뿌리 혹은 지선들’(branches)의 뿌리인 지방의 모계를 비유한 것이다. 묘지에 매장된 유체가 완전히 부패해서 분해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연회가 개최되고 남자들의 오두막에 갖가지 규제가 부과되던 기간도 끝이 난다. 돼지들이 출입구를 향해 전시되며 이는 [연회를 주최하는] 씨족이 수많은 성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씨족의 성장점은 나무들’[=씨족의 유비물]의 상부 줄기의 끝에 위치하며 거기에는 (그들 말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열매[=돼지의 유비물]가 달려 있다. 그런데 일정기간에 발생한 죽음의 한 집합체를 완결시키는 연회의 절정에 이르러 전체 수평구조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들어 올려진다. 이 구조 또한 축을 [수평에서 수직으로] 전환함으로써 역전된다.

이 전환은 석단 밖에서 일어난다. [이 연회의 경우에는] 숲에서 베어낸 커다란 나무가 물구나무 세워진다. 그 뿌리는 하늘로 뻗어가고 나무기둥은 땅에 의해 잘려서그 밑에는 보이지 않는 가지가 상상 속에서 뻗어간다. 마치 이 가지들이 땅 아래로 파고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회를 주최하는] 혈족에 속하는 기혼의 나이든 여성들이 거꾸로 세워진 열매처럼 땅에 앉는다. 이는 [모계사회에서] 다른 씨족의 계보에 혼입하여 그 혈족을 번창시킨다는 통상적으로 남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그녀들이 맡고 있음을 뜻한다. 한편 그 전까지 씨족의 모계 조상과 동일시되었던 원뿌리 위에는 연회를 위해 도살된 돼지들이 얹히고 그 위로 이제 막 빅맨이 된 젊은 남성을 세운다. 1987년 논문에서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역전이 아니라, 바로크 생활에 있어서 유의미한 이미지에 대한 [] 조직적이고 일관된 지도와 지면의 반전(figure-ground reversal)이다. 이것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다. 역전은 그 자체로 역전시키는 질서만큼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또한 입증함으로써 그 부인을 완결시킨다. [] 남성은 모계 혈족의 원뿌리일 수 있고 혈족을 구성하는 젊은 여성들 또한 다른 혈족에서 양육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Wagner 1987: 61)

 

와그너 이론의 핵심은 뿌리와 가지, 여자 조상들과 빅맨들이 단지 서로의 또 다른 버전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한축에서 또 다른 축[수평에서 수직]으로의 이동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이미지를 창출하는 자신의 인지적 능력을 깨닫는다는 것에 있다. 사람들은 지도와 지면의 반전을 지각한다. 바로크는 이 반전을 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이미지의 힘이다. 이 반전은 이미지의 변환에 의해 형성된 변환의 이미지”(Wagner 1987: 62)를 구성한다. 이에 따라 그 효과는 마치 움직이는 것은 이미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즉 여자 조상들과 빅맨들은 이미 그곳에 있다.

이러한 실천이 이끌어낸 지각은 이미지가 다중적인 해석에 열려있으며 다양한 비유를 유발한다는 인류학의 관습적 이해를 뛰어넘는다. 지각은 오히려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포함한다는 것에 있다.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나무는 뿌리가 하늘로 뻗은 역전된 나무를 예측한다. 각각의 이미지는 요소들의 매우 특수한 배치를 제시하지만, 각각은 그 효과에서 다른 요소들을 확장한다. 장례식에서 물구나무선 나무는 숲의 똑바로 선 나무 혹은 예의 그 석단에 둘러싸인 공간에 뉘인 수평의 나무라는 관념에서 파생-성장한 것이다. 이 반환(返還 turn)은 문자 그대로 비유적이다. 성장, 반전, 절단은 모두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대체하는 방식의 멜라네시아적 은유다. 결과적으로 다른 이미지에서 끌려 나온 한 이미지는 앞선 이미지를 대체하는데, 이 방식은 한 신체가 자신 속에 포함된 다른 신체들을 드러내기 위해 열려지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대나무는 터져서 그 안에 있는 인격을 드러내고, 소년은 성장해서 어른이 된다. 끊는 행위는 분리된 것을 연결한다. 교환파트너들 간의 관계를 절개함으로써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를 가치재가 움직이게 만든다. 절단이 드러내는 것은 관계성이며, 여기에는 사람들이 등에 지고 나르는 [인척관계 혹은 파트너관계 등의] 관계들도 포함된다.

지도와 지면의 반전이 지면을 잠재적인 지도-형상으로 제시하는 한에서 이 반전의 움직임은 지면으로부터 떼어낸지도가 지면에 덧붙여진 지도가 아니라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나 물론 그 지도는 파편이 아닐뿐더러 거기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성도 없다. 오히려 지도와 지면은 두 차원으로 작동한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스스로의 스케일로 삼는다. 말하자면 두 개의 퍼스펙티브가 아니라, 지면이 또 하나의 지도이고 지도가 또 하나의 지면이듯이 두 번 본 하나의 퍼스펙티브다. 각각은 서로와의 관계에서 불변하는 것으로 처신하기 때문에 이것들의 차원은 전체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수량과 생명이 한 차원에서 증대하지 않고서도 다른 차원에서 증대할 수 있다는 지각은 여기서 유래한다. 관계성의 정교화에서 증대하는 것은 정교화이지 관계성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바로크의 나무의 역전된 모습은 동형적이다. 가지들과 뿌리들은 같은 비율로 서로를 복제한다. 그와 동시에 한쪽은 다른 쪽에서 자라나는 것으로 보이고, 나무기둥이 땅에 박힐 때 문자 그대로 가지가 쳐지면서 한쪽은 다른 쪽으로부터 잘려져야 한다. 물론 우리 눈에 바로크는 뿌리의 은유를 잘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선택한 배경은 신참 빅맨과 조상들의 비호를 받는 씨족의 번창을 기념할 필요성 속에 이미 존재한다. 있다. 지면에 접지된 이 사회성이야말로 연행이 전체로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뿌리를 거꾸로 세우고 가지를 자름으로써 이 남자나 저 소녀들을 등장하게 만드는 개별적인 행위보다도 포괄적이다. 그러나 이 사회성이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반면, 행위의 양은 사회성의 이 차원에 전혀 추가되지 못한다. 행위의 지면으로서 사회성은 더해질 수 있는 양인 것처럼 증가할 수 없다. 행위만이 증가한다. 칸토어의 먼지에서 부스러기들처럼 행위들은 부서지고 또 부서진다.

부분들과 절편들로 넘쳐나는 세계에 절망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모으고’ ‘묶고하는데, 그 노고에는 어떤 서구적인 불안이 뒤따를 것이다. 아마도 이 불안은 절단이 파괴적인 행위라는 전제 하에 가상의 사회적인 전체가 그로 인해 틀림없이 다중화되고 파편화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신체가 수족을 잃어가듯이 느낀다. 그러나 멜라네시아의 일부 사례들에서처럼 절단이 관계성을 출현시키고, 응답을 이끌어내고, 또 증여자의 선물을 수중에 넣으려는 의도와 함께 행해지는 곳에서, 요컨대 절단이 창조적인 행위인 곳에서, 절단은 인격의 내적인 역량과 관계의 외적인 힘을 진열한다.

칸토어의 먼지는 멜라네시아 인들이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 그리고 인류학자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고 상정하는 연결들의 부분적인 출현(manifestation)을 다루는 방식 사이의 알레고리를 암시한다.

박타만의 장로들은 지금 있는 것으로 일할 뿐이다. 그들은 지금 있는 것을 활용해서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고 타자들에게 남겨두기를 바라는 차이들의 새로운 저장고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복원될 수 없는 잃어버린 인공물[의례장비]의 과거 전문가들의 추정된 기술을 배경에서 볼 수 있다. 텔레폴의 여자들은 뜨개질하면서 뜨개가방의 수령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가방은 수령자의 인격을 떠올리게 할뿐만 아니라 (바타글리아를 좇아) 가방이 감싼 빈 공간 또한 떠올리게 한다. 왜냐하면 여자는 가방을 뜨개질하면서 받을 남자가 그 안에 넣게 될 개인 물건들을 예기하기 때문이며, 뜨개코들이 얽어매고 있는 것은 코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는 슈미츠를 당혹케 한 완토아트의 장신구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는 앞서 모래시계형의 북 디자인을 간략히 언급했다(그림 1 참조). 그것이 북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슈미츠는 그것이 일렬로 나란히 세워진 북들의 형상이라는 것을 자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묘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가 맨 처음 본 것은 북들 사이에 희게 칠해진 여백이었다(Schumitz 1963: 94). 실제로 이 여백에도 명칭이 있는데, 그것은 복부 혹은 신체의 내부를 뜻한다. 그러나 찌그러진 마름모꼴로 보이는 바람에 이 여백은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북이라는 명칭은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복부라는 명칭은 중요치 않은 충전물 정도로 다루었다. 그 바로 밑에 척추와 같은 세로줄이 묘사된 띠가 있다는 사실도 그의 우선순위를 바꾸진 못했다. 사실상 그는 단지 공간을 메우는 역할 뿐인 한 줄의 장식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선순위에서 벗어나면, 우리 눈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는 소리 나는 북과 텅 빈 몸체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북이 사람들의 신체의 연장이 아니고서는 그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북의 연주는 사람들의 신체적 연행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완토아트 사람들은 피규어의 이동성(mobility)을 정교화 한다. 이 이동성이 피규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완토아트에서 이 모든 이동식 장신구들을 모양이 어떻든 간에 -에프(kong-ep)로 불렸다. (kong)은 정령의 총칭이며, -에프(-ep)는 실제로 장소를 나타내는 접사다. 따라서 -에프정령 속에혹은 정령 위에로 번역되어야 한다. [] 춤출 때 장신구들은 특정한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이동 가능하므로, 이 가능성은 모든 정령의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얼굴 디자인을 담은 둥근 모양과 타원 모양의 수피판(樹皮板) 또한 대나무 기둥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Schmitz 1963: 120)

 

이 이동성은 지지 구조물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움직이는 이미지가 저 멀리 공간적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러한 이미지들은 그것들을 지탱해주는 발판이나 그 소재가 잘려나간 숲을 확장하지 않는다.

칸토어의 먼지가 나의 상상력을 붙잡은 것은 그것이 그 자체로 증가하지 않는 배경에 대한 지각을 증가시킴으로써 사건들 사이의 공백을 창출하는 일련의 지침을 내려준 탓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볼품없는 사이보그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멜라네시아에 발 딛고 묘사하려는 것의 완전한 아날로지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거기서 묘사하려는 것은 인류학적 쓰기 그 자체의 적절한 비율의 문제에 의해 환기될 수 있다. 칸토어의 먼지는 비수학적인 현상에 적용되면 우리의 은유가 어떻게 뒤섞이는지를 드러내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사고의 사이보그다. 내가 사회들 간의 연결을 일련의 파생-성장(outgrowths)으로 상상하면서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인류학자는 항상 우리그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은유를 뒤섞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혼합이 이질적인 차원들을 순환하는 회로를 창출한다고 상정해보면 어떨까? 그때 우리는 [앞서 서술한] 파생-성장을 그 자체로는 성장하지 않는 한쪽의 차원에 반하는 운동으로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공백은 우리에게 확장할 수 있는 어딘가, 즉 우리의 보철기기를 위한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잃어버린 전문지식, 먼 친척의 용모, 잠시잠깐 내비치는 정령은 상상력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모든 이미지는 차용된 이미지라는 지각을 이끌어낸다. 이때 과잉이나 부족의 감각, 균형이 깨졌다거나 연결은 부분적이라는 감각은 우리가 그러한 지각 자체를 확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부분 2 인류학을 쓴다 

우센 바로크(Usen Barok) 사람들은 어떤 연회를 열려고 할 때 엄격한 의례작법에 따른다. 그러나 연회의 형식은 규칙이나 계획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연회를 묘사할 때 남자들은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서사화 한다. 자신이 이야기한 대로 연회가 진행된 것으로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사건이 일어날 때 바로 그 순서와 시퀀스는 상기된 다른 연회의 일부와 이어 붙여진다(Wagner n.d). 역으로 그 형식의 회상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데, 이 의미의 중요성은 사람들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다. 그러나 이 의사소통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말에 의한) 해석은 필요치 않다. 사실 뉴아일랜드의 회의론자들의 시선에는 개인에 의한 해석은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1960년대의 에섹스주(Essex)의 엘름던(Elmdon) 사람들은 모두 엘름던이 마을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또 그곳에 머무르거나 그곳을 떠나는 가치에 대해서조차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공통의 해석을 공유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cf. Cohen 1986; Rappaport 1986). 반대로 마을 사람들의 절반은 엘름던을 공동체라고 생각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만큼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명백했다. 누구나 진짜 마을사람신참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 반면에 [개개인이 말하는] 이 판별들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고, 이 이미지의 효력 또한 판별의 일치에 기초하지 않았다. 나는 또한 페미니즘의 다원주의로 되돌아갈 수 있다. 페미니즘적 고찰에 공통하는 몇몇 주제를 특정하면서 리즈베스 스탠리(Lizbeth Stanley)와 수 와이즈(Sue Wis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주제들이 중요하다는 신념은 모든 페미니즘이 공유한다. [이에 반해] 우리가 논쟁하는 것은 이론, 연구, 일상생활에서 그 주제들이 바로 어떤 의미와 함의를 갖는지에 대한 것이다”(Stanley&Wise 1987: 77). ‘기본적 이해의 다른 한편에는 페미니스트들 간에 공통하고 이해되며 공유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 우리는 이 주제들의 의미를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이해에 조응하여 해석하고 있다.” 그녀들이 말했듯이 진행 중인 논의는 바로 이러한 주제가 무엇을 의미하며 행동을 취할 때에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Stanley&Wise 1987: 82)와 관련된다. 개개인에 의해 해석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이 논의자체의 배경적인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연회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관심, 어떤 사람이 진짜 마을사람인지에 대한 합의, 혹은 페미니즘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주어진 소여로 느껴지는 것에 의해 유발된 상호작용으로 이어진다. 배경은 이미 존재한다. 이러한 관심사들을 다시 다루는 것이 단지 일련의 버전이나 변이를 생산하는 것만은 아니다. 도구가 사용자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구의 재사용은 또한 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에 대한 참신한 실현이다. 우리가 문화를 영원히 발명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격에게 이 상상력은 인공기관에 의한 확장과 같은 실행 장치다. 인격은 다른 세계의 관객과 소비자를 또 다른 맥락에 끌고 들어올 뿐만 아니라 행동할 수 있게 만든다. 적어도 이것은 바스가 입사식의 특정한 시퀀스를 계획하려는 박타만 장로의 노력에 대해 묘사할 때 그가 말하려던 것이다. 우선 의례의 앞선 연행은 장로의 머릿속에 재구성되어야 한다. 장로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일이 생각해내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바스에 따르면) 그들은 이웃 공동체의 의례를 따라해야 하는지 아니면 특정 부분에 새로운 절차를 도입해야 하는지를 두고 부차적인 문제를 풀어야 했다(Barth 1987: 26). (기존) 형식은 그들은 행동할 수 있도록 현전시켜야 했다. 예의 의례는 재생산되지 않고 재생되었다.

 

* * * * * *

이 사례들로부터 차이를 만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진짜 엘름던 사람인지 아닌지를 두고 누구는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 한 곳의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를 보고 판별한다. 이 잉글랜드적인 견해에서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장소로부터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에 의해 변형된다. 장소는 머물러 있고 사람들은 이동한다. 나아가 지리적인 위치로부터 계급적인 위치로 문화적인 미끄러짐이 발생한다. 계급은 고정되어 있고 개개인은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의 대화자들은 은유적으로 각기 다른 장소를 점하고 있다. 이론적인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적 혹은 학문적인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장소들 사이를 이동하는 것은 방향감각을 잃게 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서양의 지리학은 개인의 이동에 대한 지각과 결부시킴으로써 장소의 감각에 경계를 새겨 넣었다. “20세기에는 이동이 놀라울 정도로 확대했다. 그 속에는 투어리즘, 계절노동자, 이민, 도시의 확대 등도 포함된다고 클리포드는 썼다(Clifford 1988: 13). 이 결과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격과 문화의 파편화다. 이웃한 곳에서 이국적인 것을 만나고 세계의 반대편에서 친숙함을 느낀다. 현대 서양에서 파편화된 정체성의 감각은 각기 다른 장소들 사이를 여행하면서 일어나는 이중의 방향상실의 효과 그리고 여행이 장소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의 발견 이 둘을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그러나 내가 언급한 멜라네시아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말하면 이미 그곳에 머무르면서 장소를 여행하게 만든다.

한 인격의 정체성이 조개껍질의 가치재 속에 있다거나 가방 속에 둘러싸여 있다거나 또 나무의 최상부의 성장점에 위치해있다고 한다면, 시야 밖으로 여행해가는 것, 몸에 착용되거나 탈의되는 것, 위아래가 뒤바뀌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치재, 가방, 나무다. 말하자면 진주조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왕래하는 하나의 장소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들 사이를 왕래하며 사람들을 꾸며주고 지탱한다. 다른 사람들의 중심이 그 자신에 의해 중심이 된다. 이러저러한 장소가 어느 때에는 이 사람에게 다른 때에는 저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장소 쪽이다. 적어도 멜라네시아 사람들은 이 사실 그 자체를 출현시키기 위해 그러한 장소장치(locational devices)를 활용한다. 가버린 것은 돌아오는 것이며, 내측은 외측이 되며, 상단은 하단이 된다.

엘름던 마을민이라면 외부에 위치함으로써 사람들에 대해 각기 다른 퍼스펙티브를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하겠지만, 그러한 위치는 여기서는 인격 자체에 갖춰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에 다른 위치나 입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수중에 무엇이 있는지 혹은 어디서 온 음식물을 먹고 있는지 등에 따라서 다른 정체성을 띨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사물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하고 사람들에게서 여행을 떠난다.

다른 곳에서 나는 멜라네시아에서 증여의 관념에 대해 논했고, 증여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거래의 예기된 결과인 것으로 서술했다. 증여는 과거의 거래를 환기시킴과 동시에 미래에서 거래가 일어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증여 그 자체는 조개껍질의 가치재와 돼지 등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형식을 취하며 그것들을 운반하는 인격을 운반한다. 아날로지는 다른 생산 활동 혹은 아이임과 동시에 아이를 낳는 피리, 하나하나의 신체적 형식 내에 있음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정령 등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멜라네시아 사람들은 자신을 확장하는 것을 스스로에 대해 현전하는 문화적인 민첩함(facility)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여행하지 않고 이동하는 것의 민첩함이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간직한) 그 내부에 이동이 기입된 가치재, 대나무 기둥의 위아래를 흐르며 움직이는 정령의 얼굴은 멜라네시아의 사이보그, 즉 각기 다른 피규어들 혹은 요소들로 이뤄지는 하나의 회로다. 이 요소들은 그것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인격으로 중심화해가는 그 무엇과 결코 동등하지 않다. 중심화는 지각의 은유로서 상상할 수 있다. ‘의미에 지면을 부여하고, 그를 통해 이질적인 요소들 간의 의사소통 회로를 형상화하는 것은 사람들의 지각능력이다. 피규어들은 배경과는 무관하게 성장하고 감축한다. 그것들은 배경과 동등한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것들 자신과 동등하다.

멜라네시아의 사이보그와 해러웨이에서 반인간/반기계 간의 차이는 멜라네시아의 사이보그의 요소들이 같은 소재에서 개념적으로 잘라지고있다는 점에 있다. 이어져 있는 조개껍질과 모계 사이, 남자와 대나무 기둥 사이, 얌과 정령 사이에 차이는 없다. 양자가 관계의 지각을 동등하게 환기하는 한에서 한쪽은 다른 쪽이다’. 각기 다른 요소들 혹은 피규어들은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서로 연결되어 머무는 복수의 인격 혹은 관계들의 부분이다. 한 인격이나 관계는 다른 인격이나 관계로부터 잘라진 것으로서 혹은 그 확장으로서 존재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러한 확장이런저런 관계와 연결은 통합적으로 인격의 부분이 된다. 그것들은 인격의 회로다. ‘같은 소재라는 것은 그 효과로서 모든 움직임과 활동에 공통의 배경이 있다는 지각을 만들어낸다. 절단이라는 창조적인 행위의 더한 중요성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정보의 균열은 한 인격을 다른 인격의 확장된 부분으로서 가치화하고 모친의 형제들에게 자신들이 누이의 아들들과 부분적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느끼게 하며, 또 개인의 정체성이 갖는 복수의 위치를 차이화 한다. 절단/확장은 이와 마찬가지로 효과적이며, 피규어들은 실체상 서로 동등하다. 그 산물이 균형을 유지하든 무시하든, 그 결과가 반족구조의 이원론이든 빅맨의 확대된 영향력이든 그러하다.

이처럼 인격을 확장하는 것은 인격이다. 그러한 인격은 살펴본 것처럼 같은 소재 혹은 실체에서 생겨나므로 이 멜라네시아의 피규어와 그 확장은 아마도 이 책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수학적인 잔여의 관념과 가까워질 것이다. ‘잔여는 더한 공백의 가능성을, 따라서 실제로 알려지는 것의 배경에 대한 지각을 영원히 계속해서 창출한다. 멜라네시아의 문화적 상상력과 관련에서 말하자면, 이 끊임없는 잔존성은 기초적인 사회성을 재생산하도록 작동한다. 작금의 관들은 이 사회성의 사례 혹은 파편에 불과하며 작금의 연행은 입자와 같은 계기들에 불과하다. 야드란 미미카(Yadran Mimica)의 말을 빌면, 전체는 무한한 것으로 상정된다(Mimica 1988).

서구의 수많은 학문적 담론의 설명-탐구의 틀은 여기서 멀찌감치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한 영역에 병행성이 존재하며, 인류학자는 그 영역에서 매번 동일한 소재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현재의 정식화가 순간적 개념화에 불과하고 현재의 대처가 부분적인 연구일 뿐이라는 확고한 지식에서 가늠해볼 수 있다. 나는 인류학의 글쓰기를 복잡성에서 무한한 복잡성을 만들어내는 필수적이고 활력적인 방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공백을 창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활동은 잠재적인 의미의 배경을 영원히 확대해가고, 우리는 그 배경 하에서 어떤 스케일이든지간에 이미지의 까다로운 재구상을 실현해가며, 중요한 모든 것들을 숙고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할 것이다.

 

 

 

 

Posted by Sarantoya

부분 1 문화

 

부분 2 중심과 주변

 

부분 1 예기-제거(obviation)

 

부분 1 예시(豫示 prefigurement)

총체적인 형상화는 이미 우리 손 안에 있는 내레이션의 전략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아마도 로이 와그너가 예기-제거라고 부른 자기 회귀적 형식을 해명한 후 예기-제거 분석(obviational analysis)으로 알려진 것이 가장 포괄적인 것이 될 것이다(e.g. Wagner 1986a, 1986b). 예기-제거는 차례차례 치환되는 은유가 신화(또는 의례형식)의 플롯을 만들어내고 다시 최초의 은유로 회귀함으로써 닫히는 변증법적 운동”(1986: )으로 나타난다. 물론 신화와 의례뿐만 아니라 사회과정 일반이 이런 식으로 지각되어왔다. 제임스 와이너(James Weiner)는 쿠투부호(Kutubu) 지역의 포이(Foi)에 대한 모노그라프에서 이 점에 관해 인류학자가 사회과정으로 파악하는 사건의 흐름은 비유를 다른 비유로 치환함으로써 가장 적절하게 묘사될 수 있다”(Weiner 1988: 9)고 했다. 예기-제거 분석은 관찰자가 보기에 시간적공간적 시퀀스를 반복 복제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관계를 인식하고 재인식함으로써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한다. 결국 명백한(obvious)’ 것은 그들의 지각의 지반이 관계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명의 형식은 인간의 의도의 배경에 사회성(sociality)이 있음을 당연시하는 사회의 관계적 상징주의(symbolism)에서 그 명확한 대응물을 찾을 수 있다. 관계가 사물과 인격에 내재적인 것으로 인식되면, 사람들은 사물과 인격이 드러내는 아날로지를 통해 관계를 알리려고 애쓴다. 그에 따라 인격과 사물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분해된다. 이 노고는 인류학자에게 역설(paradox)을 창출할 수 있다. [관계가 사물과 인격에 이미 내재한다고] 예시하는(prefigure) 것은 사회문화가 이미 있다고 상정하는 것, 즉 모든 새로운 인격이 그/녀 자체로 재구성인 배치(configuration)를 상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배치는 북부 메케오(Mekeo)의 생식을 에워싼 공간 이미지 속에 암시적으로 존재한다. 그곳에서는 그 어느 것도 다른 것의 내부이면서 외부이기도 하다(cf. Mosko 1985; Strathern 1989). 그것은 단독의 오리지널한 존재가 그 자체로 감싸여 있다는 이쿠와예(Iqwaye)의 개념 속에도, 그리고 이로부터 산출되는 수학 속에도 있다. 이쿠와예는 사람이 셀 수 있는 것은 일()의 일부일 뿐임을 알고 있다(cf. Mimica 1988; Gillion 1987). 우리는 이미 연결과 관계성에 관한 이러한 상정에 접근하기 위한 이론적인 도구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한발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미 확립한 인류학적 이해의 전체 영역을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에 앞 섹션에서 제기한 문제가 그렇게 보일 뿐이다. 마치 지난 수십년간 인류학자들이 상징의 다양성을 다루기 위해 사용한 해석의 개입방식이 나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누락된 것처럼. 이것은 예기-제거 분석뿐만 아니라 그 조상격인 구조주의적 분석에서도 한발 후퇴한 것이기도 하다. 예기-제거 분석이 사회적문화적 총체성의 예시(豫示)를 해명할 수 있다면, 구조주의적 분석은 정신의 작동을 표면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들의 예시에 의존한다. 이 가능성들을 간과해온 것은 돌이켜보건대 어리석다. 아마도 나의 논증에서 이 공백은 사례들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의 효과에 의해 창출된다.

 

부분 2 형식을 끌어내기

실제로 앞 섹션에서 다뤘던 사례들은 인류학이 수년 전에 남긴 일부 목록화된 먼지투성이 책장에서 골라낼 수 있었다. 문제는 사례의 대응물이 무의미하거나 잘못되었다기보다 사례가 위치지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문화적 행위자로서의) 파푸아뉴기니와 그 외 멜라네시아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을 다루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례들을 위치지을 필요가 있다.

물론 멜라네시아인이 지각하는 움직임이나 행위자로서 행하는 여행에는 특이성이 있다. 그들은 세계 속의 다양한 문화에 도취되어 여기저기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시도하는 세계시민주의자들(cosmopolitans)이 아니다. 멜라네시아 사람들은 명성 있는 조개껍질로 만든 재화를 구하기 위해 특정한 섬이나 교환파트너에게로 항해하는 쿨라 교역자들처럼 문화적인 의도를 가진 여행을 한다. 마찬가지로 댄서가 거대한 대나무 조형물을 머리 위에 이고 있어도 목이 꺾이지 않는 것은 그 남자가 이미지를 통해 현전시키는 특정한 정령의 힘 덕분이며, 보는 자들이 남자와 피규어가 한몸을 이루어 보여주는 움직임에서 그 정령을 발견하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것들은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 느긋한 여행이나 행동이 아니다. 그것들은 바로 관계들을 알려주는 특정한 효과를 지향한다. 어떤 상황에서 존재하고 제시되는 것은 파트너로부터의 특정한 응답을, 그리고 관중으로부터의 특정한 인식을 끌어내려는 의도다.

이 응답은 예기된, 사실상 때로는 미리 정해진 사람들의 반응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한 무대 위의 연기일 수 있다. 하나의 이미지가 창출한 효과는 더 앞서 나간 이미지로 나타날 수 있고, 하나의 피규어는 그에 반하는 피규어를 생산한다고 보인다. 우리가 통상 퍼포먼스나 의례의 사회적 맥락으로 파악하는 것 또한 일련의 피규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리라. 비유나 환유의 연쇄와 같이 한 피규어는 바로 직전의 피규어가 그랬던 것처럼 선행하는 피규어에서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끌어내기를 예시된 환기(prefigured evocation)로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예기된 목적지가 있는 여행이다.

앞 섹션에서 보여준 막다른 골목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기치 않은 환기를 다룬 것에서 비롯된다. 거기서는 너무나 일반적이면서 그와 동시에 너무나 고유한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쫓았던 탓에 분석의 초점을 정할 수 없게 되었고 균형 감각이 모두 상실된 것 같았다. 나무와 피리의 유사함을 이야기하는 내레이션이 암시한 것은 그저 각각의 대응관계를 차례로 발동시켰을 뿐이다. 즉 파내어질 수 있는 것과 조각될 수 있는 것 사이에, 잘려나가는 것과 성장하거나 성장을 상징하거나 파인 구멍과 함께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사이에, 외부를 두드려서 소음을 방출하는 것과 내부에서 소음을 방출하는 것 사이에 등등. 내러티브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유사함은 인위적으로 보인다. 이것은 다시 말해 멜라네시아인이 유사성이나 유사함사물들 간의 관계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하는 일을 내러티브는 당연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유사함을 배경으로 그들로서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인간 행위의 도덕적 기반이 된다(J. Weiner 1988: 9). 이 변환과 차이화의 시퀀스를 모방함으로써 형식이 특정한 연쇄를 이뤄 나가는 모습을 전경화(前景化) 할 수 있다면, 여기서 살펴본 대응관계의 자의적인 성질은 해소될 것이다.

내가 환기시킨 완토아트와 파숨의 피규어는 가려지면서도 형상화되는 수많은 형식들 가운데 두 사례에 불과하다. 수목 자체이면서 수목 아래에 있는 남자를 제외하면 남자들은 화식조의 가장자리 밑으로 몸을 구부리거나 머리 위에 거대한 원형의 둥지를 이거나 달 모양 문장의 틀에 끼인 피규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들은 무작위적인 비유-형상화(figurations)가 아니고 서부 세픽의 우메다와 야파르(Yafar)의 성장의례에서 나타나는 형식의 연쇄(Gell 1975; Juillerat 1992)와 같이 식별 가능한 시퀀스 속에서 차별화된 효과로 나타난다.

이때 인류학자의 과업은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구체적인 환기가 되어야 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명시화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특정한 계기나 형식은 다른 계기나 형식을 불러일으키거나 대체한다. 일종의 가면 쓴 댄서가 다른 댄서에게 길을 내주는 방식의 효과 속에서, 혹은 대나무 피리가 용기로 다뤄질 때와 뜨개가방에 싸여 운반되는 것이 중요해질 때를 구별하는 퍼스펙티브 속에서. 말하자면 이미지가 어떻게 이미지를 창출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 모든 관념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의 확장으로서 이용한다. 의미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이미지가 그것들 모두를 내포하거나 끌어내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지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다”(Wagner 1986b: xv, 강조는 원저자에 의함). 만약 내포된 것이 끌려 나오거나 환기된 것을 통해 알려지게 된다면, 의미의 해명은 그 이미지의 사용법에 위치하게 된다. 

행위자들의 퍼포먼스 혹은 그 시간의 시퀀스는 이미지 그 자체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아날로지적인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약혼 선물에서 신부대(bridewealth), 나아가 아기 출산을 위한 지불에 이르기까지 생식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 혹은 의례적 교환에서 파트너들이 돌아가며 기증자가 되는 상호 왕복을 들 수 있다. 성장과 이행의 감각은 한 세트의 가치가 다른 한 세트의 가치를 생산하는’(출현시키는) 것과 동시에 그것으로 치환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Munn)이 가와(Gawa)에서 관찰한 사례를 통해 지적하기를, 여성의 생식력은 조개팔찌와 조개목걸이처럼 개인적으로 기억되는 인공물로 전환되며(Munn 1986: 145), 댄서의 신체를 물질적으로 확장하는 깃털의 머리장식은 남자의 명성을 확장하는 쿨라 목걸이의 은유로 간주된다(1986: 145). 아날로지, 곧 유사성과 차이 간의 내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앞선 위치, 곧 치환된 피규어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러한 경로를 따라가면 인류학자는 실천의 시퀀스 속에서 발생하는 주도면밀한 치환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다시피 당대의 멜라네시아 연구는 몇 가지 세련된 분석들을 이미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충족적인 차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마치 멜라네시아인이 출발점으로 삼는 세계를 단지 완성시키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멜라네시아인은 인격들 간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그들의 세계를 분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목적 중 하나는 인류학자들의 활동이 그들 스스로 나머지’(remainders)를 끊임없이 창출하며 겉보기에는 새롭지만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은 차원을 향한 출발점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는 실제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헤이즈의 위치에서 그의 비교연구가 그러했듯이 단일문화에 대한 일종의 배타적인 초점을 피하면서도 그러한 통찰을 어떻게 전개할 수 있을지를 묻고자 한다.

 

 

부분 2 의사소통

 

부분 1 복합적인 지식

시퀀스 관념은 분석자에 의한 발견의 여행에서 적절한 이미지다. 또한 멜라네시아의 신화, 의례 그리고 특히 교환관계에 계기적 연쇄와 계시가 나타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사건은 사람들을 이월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웨브너는 서부 세픽의 자료를 재분석할 때에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Werbner 1989).

그는 알프레드 젤(Gell 1975)이 묘사한 우메다의 이다(ida) 축제에서 사건의 시퀀스에 대해 재론하는데, 그러나 그때 젤이 부수적으로만 다뤘던 피규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 여기서 우리는 완토아트의 조형물(effigies)과 닮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 형식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거대한 구조물에 둘러싸여 있고 날개와 함께 길게 뻗어있으며 다른 피규어들에 의해 확장되는 피규어다. 젤 자신의 분석은 한 디자인이 다른 디자인에 연이어 나타나는 변증법적 병렬배치의 중요성을 확립했으며, 그것은 많은 의례적 피규어가 있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변환 과정에 그러한 단 하나의 피규어가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당도한다”(Gell 1975: 296)는 견해를 이끌어내었다. 이것은 웨브너가 그 뒤로 이어지는 다양한 행위의 귀결을 선취하여 재현하는, 겉으로는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예비적 행위(탄생의 상연)를 전경화 하고 있다는 것과도 합치한다(Werbner 1989: 150). 그리하여 시간은 그 계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며, 개막을 알리는 행동은 [이다 축제] 전체의 피규어가 된다는 것이다.

프레임, 덮개, 술 장식과 깃털이 달린 가면은 목제 트럼펫의 반주에 맞춰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무와 식물과 관련된 소재로 만들어진다(Gell 1975: 158). 우메다 사람들은 남성과 그 가면으로 구성된 피규어의 전체를 해석할 때 나무의 구조와 신체의 구조 사이에 명확한 병행관계를 그려낸다. 예를 들어 화식조 가면의 상부에 띠로 달린 과일들은 남자들이 혼인할 때에 인도받은 딸들에 대응한다(Gell 1975: 237, 241). 어느 한 마을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모든 마을들은 딸을 교환하는 마을과 가면을 교환하는 마을로 양분된다.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딸과 결혼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다른 공동체들의 다른 남자들의 가면을 착용할 수 있다(Gell 1975: 52).

웨브너는 이 교환행위를 그의 공간분석의 중심적인 사례로서 검토해간다. 우리가 발견했다시피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 또한 진동하는 중심-주변 관계에 그 자체로 접혀 들어간다. 숲속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은 축제 기간에 마을에 집합했다가 또 뿔뿔이 흩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창출한 중심은 그들에게서 사회의 주변으로 멀리 떨어진 다른 사람들의 중심의 유사물(analog)로 간주된다. 데이터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의 논의의 일부를 축어적으로 제시하겠다. (원저자에 의한 문단 구성은 무시했다.)

 

가면을 씀으로써 남자는 공간을 통해 상징적으로 시간의 이행을 달성한다. 가면의 내측에서 그는 시간의 시작에 있어서 생명을 만들어낸 안쪽 공간으로 스며든다. 그 공간은 태초의 존재에 조응하여 어느 나무였다가 또 다른 나무였다가 한다. 그 자신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역전시키고 스스로 가령 화식조와 같은 태초의 존재가 된다.

서로의 땅에서 외부자(outsider)인 남자들은 가면을 교환한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을 내부자(insider)로 변용시키고 서로의 안쪽 공간에 침입한다. 일년[]의 대부분을 그들은 실질적으로 인근의 자투리땅에 내포되어 지낸다[]. 그러나 축제 기간에 그들은 자신의 경계를 확대한다[]. 거기서 남자들은 여자와 가면을 통해 복수(複數)의 마을들 사이에서 영속적인 관계를 수립한다[]. 여자들은 가면과 마찬가지로 내부자인 남자들의 용기(容器)인데, 각각의 용기[를 이용하는 것][용기=마을의] 내부자로 제한되어 있다. 가면은 남성적인 자궁이며 여자들은 여성적인 자궁이다. (Werbner 1989: 156 각주 생략) 

사회적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땅과 여자는 생명-공간의 제공자임과 동시에 그 용기로서 다뤄진다. 그런데 땅이 비가동적인 것에 비해 여자들은 가동적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생명-공간의 용기를 둘러싼 호혜나 교환은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접촉을 일으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동적인 생명-공간의 용기의 선택에 의해 자신을 에워싼 물리적 상황, 즉 비가동적인 환경을 재구성할 수 있다[]. 가면은 한편으로 여자처럼 가동적이며, 다른 한편으로 땅처럼 영원성과 관련된다. 가면의 안쪽 공간에 대한 접근을 공유함으로써 [남자들은] 여자들을 교환하지 않는 땅과의 사이에서 더 고차원적인 상징적 접촉을 확립하는 것이다. (Werbner 1989: 195-6)

 

상세하게 파고 들면 불균형이 되어버리지만, 웨브너가 우메다와 그 외 가까운 공동체(마을이나 부락)의 지리적인 배치를 그리는 것은 그들 간의 교환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러한 관계성이 두 가지 원리의 작용을 밝혀준다고 논한다. 첫째, 사회가 반족 혹은 여기서 다뤄지지 않는 다른 이자관계로 보이는 단순한 이항적 단위로서 표상된다는 점이다. 둘째, 각각의 공동체가 자신을 복수의 공동체로부터 성립되는 우주의 중심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Werbner 1989: 218). 남자는 단순히 자신의 네트워크의 중심에 자신을 놓아두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의 중심과 마주하는 곳에 놓인다. 이에 따라 예를 들어 푼다(Punda) 마을은 우메다의 퍼스펙티브에서 보면 우메다의 일종의 거울버전이며, 이 한 쌍의 마을을 가로지르는 영속적인 대외교환이 인접하지 않는 마을들 간의 접촉규칙에 따라서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한다(Werbner 1989: 213). 각각은 상대에게 또 다른 남자의 중심이다.

웨브너에 의한 광역 공동체의 이론화에서 푼다는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푼다는 독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메다의 거울이지 복제가 아니다. 푼다 마을은 아마나브어(Amanab)를 말하는 이웃 공동체와도 접촉을 갖는다. 이 지역은 줄리에라트의 민족지(Juillerat 1992)의 대상인 야파르(Yafar) 마을을 포함한다. 푼다는 우메다와 야파르 모두와 통혼한다. 푼다와 마찬가지로 야파르는 우메다로부터 풍요신 숭배의식인 이다(ida)를 차용해서 그것을 양기스(yangis)라 불렀다. 우메다는 자신의 '딸들'인 푼다와 야파르에게 어머니로 여겨진다.

서로의 숭배의식의 결사활동에 대한 지식이 얼핏 불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을 둘러싼 자극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가운데 웨브너는 우메다의 이다와 야파르의 양기스 간의 차이는 야파르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Werbner 1992). 여기서 야파르의 관점이란 우메다와의 관계에서 자신들을 보는 관점임과 동시에 자신들을 위해 실천을 재중심화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야파르는 양기스를 외부에서 차용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이국적이고, 우메다에게는 토착적이다. 그것은 그들을 키워낸 우메다 문화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동시에 야파르는 결사활동이 그들을 진정으로 키워낸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것을 재중심화 해왔다. 웨브너가 지적하듯이 양기스이다를 반복 복제할 수 없다. 두 공동체는 동일한 기대효과(풍요로움)를 위해 의례를 실연한다. 그러나 이 보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무의미한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야파르가 낳은 쪽의 관점보다 태어난 쪽의 관점을 재구축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차원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웨브너의 분석은 사람들이 서로의 의례를 해석하는 방식을 상상하기 위한 모델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세계가 다른 사람들의 중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세계를 바라보는 그들 자신의 중심을 창출한다. 그렇게 해서 저 중심들을 바라보는 이 시야는 보존된다. 공동체들은 서로 의사소통하지만 자신의 퍼스펙티브를 타자의 퍼스펙티브에 강요하지 않는다. 각각은 자체 버전을 수립한다. 따라서 이웃 공동체의 실천은 변증법적인 산물도 아니고 계보적인 파생물도 아닌 반-실천(counter-practice)을 이끌어낸다. 의사소통은 효과적이며, 회로가 작동하고 있다고 하지만 메시지는 부분적으로만 전달된다.

이 모델은 본래 동일한 언어를 말하는 지역에서 도출된 것인데, 우메다와 야파르처럼 다른 언어를 말하는 지역에도 확장될 수 있다. 웨브너의 분석은 우메다의 축제 그 자체의 고동치는 움직임으로부터 착상을 얻었다. 공동체는 확장하고 그리고 다시 흩어진다. 그때 여기저기 분산된 땅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자신의 중심성에 대해, 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다른 중심과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에 대해 즉각적으로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곧 초점의 수축과 확산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 수축과 확산은 개개 남자들이 자신들을 확대하기 위해 장식을 걸치고 그 다음에 인간의 크기로 축소하는 방식에도 반영된다. 그러나 이것을 찾아내기 위해 웨브너가 사용한 스케일은 항상 중심에서 바라보는 시야를 유지해야한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중심에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야이며, 그것은 남자들이 몰두한 의례적 집회나 대외적 교환을 통해 상호 의사소통하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버전이다. 이 시야는 이미 살펴본 것처럼 언어집단을 넘어설 수 있다. 이 서부 저지대 사람들의 관심사는 자신의 고유한 내면을 어딘가 다른 장소에서 중심화 되는 인격의 내면에 의해 만들어내는 것, 즉 문화를 빌려오는 것이 가진 더 큰 가능성이다.

공동체들 사이의 차이들을 이어주면서도 아우르지도 않고 소진하지도 않는 중심과 주변 간의 맥박은 비교적 한정된 지역에서 고동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과거 마을들 간의 의사소통이 그 후에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를 묘사하는 마을사람들의 개요설명처럼, 쿨라 교역의 참가자들이 파트너의 파트너를 생각할 때에 마음속에 그리는 일종의 파급효과와 같이 어떤 회고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웃 그리고 이웃의 이웃 등으로 이어지는 궤도에서 일단 벗어난다면, 그러한 의사소통에 필적할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부적절한 은유에 기대는 것일까? 예를 들어 인구집단에 여러 개의 언어가 혼재된 오크 산 지역은 어떠한가?

상호 관련된 여섯 개의 언어공동체에 대한 바스의 분석은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대응입장(counter-position)을 제시한다. 여기서 종교적 신념과 실천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옥의 형태와 의복은 몇몇 암시적인 세부사항을 제외하면 상당히 유사하고, 한 마을의 사진이 다른 마을의 생활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다”(Barth 1987: 2).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 자체로 맥박운동을 묘사하는 항목으로서 의복이 갖는 암시적인 미세한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부분 2 수출과 수입

이다(ida)를 둘러싼 젤의 분석에 대해 웨브너가 가한 비판 중 하나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단지 하나의 시퀀스(하나의 변환)의 전개뿐만 아니라 시작의 순간에서 갈라져 나온 복수의 시퀀스의 융합 혹은 뒤엉킴이라는 점이다. 웨브너의 지적에 따르면 젤은 퍼포먼스의 서두에 등장하는 화식조의 피규어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 그 화식조(‘어머니들의 화식조’)딸들의 물고기와 짝을 이루는 한 쌍의 피규어들 중 하나일 뿐이다(Werbner 1989: 167). 이것과 더불어 젤이 한쪽으로 밀어둔 광대의 중요성을 복원함으로써 웨브너는 이항적 조직을 이론화하기 위한 분석적 좌표를 만들어낸다.

이와 유사하게 그는 야파르의 퍼스펙티브에서 어떻게 한 쌍의 태곳적 피규어가 같은’(하나의) 남성의 형식 속에서 남성이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하는지를 보여준다(Werbner 1992). 이 점은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습적인 분리가 남녀 간의 상호관계를 비유적으로 본뜬 남성의 교차사촌들 간의 대립으로 변환한 것에 관한 J. 웨이너의 예기-제거분석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Weiner 1988: 142). 나는 이것을 또 다른 방향으로 논할 수 있다. 하나로 하던 둘로 하던 숫자에 상관없이 완전한 혹은 총체적인 피규어와 함께 출발하겠다. 즉 출발점은 단독의 피규어일 수도 있고, 이다에서 최초로 나타난 2인조의 가면처럼 둘로 분할된 것으로 인지되는 피규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혹은 은 다른 쪽의 팽창 혹은 수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두 배가 된 하나()인 둘()을 묶은 것이고, ()은 반이 된 둘()인 하나()를 분할한 것이다.) 지금 내가 불러낸 박동의 이미지는 산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 산술에서 노니는 유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이미지는 남자의 신체가 나타나는 완토아트의 조형물이나 머리와 몸통을 빨아들인 것처럼 보이는 묵직하고 목이 꺾인(Gell 1975: 240) 우메다의 가면과는 대조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면서 평범한 뜨개가방(엄밀하게는 끈으로 땋아 만든 가방)의 한 버전에 속한다. 텔레포의 뜨개가방과 오크 산 전역에서 발견되는 이와 유사한 인공물과의 관계에 관한 모린 매켄지(Maureen Mackenzie 1986)의 분석에 기초하여 고찰하겠다. 그녀는 자신의 논문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아마도 가장 인상적이고 멜라네시아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던 뜨개가방의 용도는 아기요람으로서의 사용이다. 주머니쥐의 육아낭처럼 엄마의 머리에 매달리듯이 들려 있는(Gell 975: 142-3) 느슨하게 땋인 뜨개가방은 자궁과 같은 확장가능성을 가지고 있다시각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바깥 자궁과의 유사함이 반영된 이 가방은 밭작물과 자궁의 결실을 담아 보호하기 위해 늘어나고 볼록해진다. (Mackenzie 1990: 88)

 

이러한 가방은 어느 곳이든 여자가 만들고, 그 가방이 문화적 레퍼토리 중 하나인 어디서든 여자가 몸에 두르기 때문에 그 최초의 이미지는 여성적이라는 것이 적절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남자 또한 이 가방을 몸에 두른다. 예를 들어 텔레폴과 우메다가 이에 해당한다. 매켄지가 언급한 어느 인상 깊은 대목에서 젤은 어떻게 해서 남자와 그의 개가 분리될 수 없듯이 남자와 그의 가방(“빌럼”)이 분리될 수 없는지를 묘사한다. 여기서 개와 가방은 남자의 가장 인격적인 소유물들을 담고 있는 일종의 그림자 정령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남자의 부푼 가방의 더 큰 버전인 여자의 부푼 가방은 그녀의 사회 속에서공적인 역할과 그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현전(presence)을 드러낸다.

 

그녀의 여성용 빌럼이 등 뒤에 매달려 있지 않으면[여자는] ‘옷을 입지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만약 남성용 빌럼이 주물(呪物)이라는 형식 속에서 그의 인격을 담고 있다면, 여자들의 부풀어 오른빌럼은 사회에서 그녀의 역할이 아직도 더 커지고 있음을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음식(영양공급자)/이나 후손(아이생산자)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Gell 1975: 143).

 

물론 이 뜨개가방을 다른 인공물과 별도로 다루는 것은 성스런 피리를 그렇게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산술과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예를 들어 독특한 뜨개질 방식에서 볼 수 있는 기교에 눈을 돌리면, 그것이 남성의 헤어컷을 위해서도 발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메다와 텔레폴의 남자들은 때마다 페니스 케이스를 착용하는데, 하이랜드 중부를 포함하여 이러한 방법으로 신체를 치장하지 않는 파푸아뉴기니의 다른 지역에서는 여자들이 그것과 같은 기술을 사용해서 남자들을 위한 음부용 앞치마를 떠서 만든다. 매켄지는 또한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어망, 망토, 방호복에 대해서도 언급한다(Mackenzie 1986). 나아가 이러한 가방을 용기로 간주하면 바구니 모양으로 뜨개질 한 어로장치(물고기 덫) 혹은 중부 세픽 사람들이 잠잘 때 치는 모기장과의 비교로 유인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매켄지는 텔레폴 그리고 오크 산 지역 일반에 대해 남성의 의복의 일부로서 뜨개가방과 여성의 그것 간의 특정한 내적 대비로 독자들의 주의를 끌어온다.

가방의 고동치는 이미지는 어떤 성별에도 들어맞는다. 여자들이 짊어진 뜨개가방은 작물의 열매 맺는 주기성에 조응하여 누그러지거나 부풀어 오른다. 그 윤곽은 내부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부각하고, 그 안에 담긴 것이 가방에 형태를 부여한다. 여자의 가방의 내측에서 울리는 맥박은 [곧바로 보겠다시피]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겨가는 맥박의 이동으로서 반복 복제된다. 외측에서 보면, 남자들이 머리와 어깨에 두른 가방은 정성스럽게 확장되며 깃털모양이 달리고 입사식의 단계에 조응하여 각기 다른 의장(意匠)이 입힌다. 남자들의 확대와 성장은 외측의 피부와 같은 것으로서 걸쳐진다. 이러한 가방이 이중의 사회적 기원을 나타낸다는 매켄지의 지적은 중요하다. 남자들을 위해 가방을 뜨개질해주는 여자들이 없다면, 남자들에게는 깃털모양으로 장식할 천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가방을 채우는 남자들이 없다면, 여자들에게는 가방에 넣어야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 의사소통되었어야 한다.

남자들의 가방과 여자들의 가방 사이에 형식상의 명백한 상호의존성이 있지만, 이 두 유형 중 하나는 두 유형의 요약반복(recapitulation)으로 구성된다. 남성용 가방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형식을 내포한다실제로 여성의기본형식을 넘어서는 가방의 정교화(elaboration)남성의배타적인 활동이다. 게다가 남자들의 가방은 남자들이 입사식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변환된다. 나는 여기서 매켄지의 글을 인용해보겠다.

 

깃털모양으로 장식된 뜨개가방은 성별을 명시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성 대립을 처음으로 깨닫는 바로 그 순간, 즉 소년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하기 시작하는 입사식 서클의 첫 단계에서 도입된다. []

성인 남성이 입사식의 최종 단계를 달성하면 화식조의 깃털[뜨개가방]을 휴대하게 된다. 화식조는 수컷 새가 알의 부화를 책임지는 종들 [중 하나].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텔레폴의 신화에서 화식조는 아펙(Afek), 즉 태초의 어머니와 동일시된다. 텔레폴의 원로들이 그 자체로 이미 자궁을 상징하는 주요형식으로서 화식조의 깃털을 취할 때, 그들은 아펙의 자궁의 휴대 가능한 화신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녀의 비범하고 강력한 힘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Mackenzie 1990: 105, 102 참고문헌 및 텔레폴 용어는 생략)

 

입사식의 첫 단계의 맥락에서 가입자 소년들을 부화시킴(incubating)’으로써 남자들은 자신들을 남성적인 어머니로 변화시킨다고 매켄지는 말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숭배의식의 결사활동의 단계를 밟아갈 때마다 여자의 공헌 및 남녀의 성적인 상호의존관계의 중요성을 더 잘 인식하게 된다. 남자들이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전사의 힘을 잃어가면서 그에 따라 더욱 성 대립의 완화가 강조된다. 이것은 원로한 남성이 휴대하는 화식조 깃털로 장식된 뜨개가방에 반영된다. ‘여성의 풀잎치마라고 불리는 꼬리달린 화식조 뜨개가방의 깃털은 여성의 외모를 암시한다. (Mackenzie 1990: 105-106)

 

[소년기에서 노년기까지 이어지는] 입사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성질상 필연적으로 타자에게는 분명치 않은 성장의 내적 단계에 대응한다. 어쩔 수 없이 반족의 의례전문가만이 정해진 때에 제대로 가방을 장식할 수 있다. 매켄지는 남자들의 가방과 여자들의 가방을 대비시키면서 공개된 지식과 비밀로 감춰지는 지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자 가방의 뜨개코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성질은 가방을 쉽게 펼쳐서 그 속의 내용물을 공공연히 노출시킨다. [] 이것은 여자들이 가방을 떠서 사용할 때의 공개적이고 제한 없는 맥락을 반영한다. 이 영역에서 지식은 알기를 원하는 자에게 공개적으로 주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자들이 붙인 깃털은 여자가 실의 끊어짐 없이 뜬 편물을 매듭 짓고, 남자들의 비밀의식의 내용을 숨길 수 있는 사적인 용기를 만들어낸다. 이 사적인 용기는 남자들의 집의 감춰진 벽 뒤편에 깃털모양의 장식이 달려있는 배타적인 맥락을 반영한다. [] 그것은 의례의 지식이 은밀하게 통제되는 방식을 [미러링]한다. (Mackenzie 1990: 93)

 

그러나 남성의 성장 과정 그 자체는 비밀인 반면 그 결과는 공개되어 입사식의 어떤 단계에 왔는지는 남자들의 복장에 의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난다. 남자들은 모두 자신을 성장시킨 비밀의 내적과정의 교화를 그 외관을 통해 제시한다. 여자들과 여자들이 만든 가방을 남자들에 의해 길러지는것으로 간주한다면 개인에 대해 진실인 것은 공동체에 대해서도 진실일 수 있다.

남자들의 가방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의 가내용 가방 또한 변이를 의미화 한다. 그것은 입사식의 내적인 위계의 변이뿐만 아니라 타 집단으로 향하는 외적인 지향으로서의 변이까지도 표현한다. 적어도 당대의 텔레폴의 관점에서 보면 매켄지가 설명하듯이 여자들이 오크 산의 다른 여자들과 한 종류의가방을 만든다고 하고, 그 친연성을 인정하는 한편, “전문기술을 사용해서 독특한 스타일의 날개깃털을 고안하고 [] 그들만의 제품의 독창성을 과시한다”(1986: 143). 모든 레퍼토리를 습득해서 남자들의 의례를 위한 가방을 뜨개질할 권리는 특정의 기혼여성만 가질 수 있는데, 사람들의 의식적인 기술의 연마는 텔레폴의 뜨개가방을 민(Min)이라는 타 집단의 뜨개가방과 구별 짓는 기본적인 스타일을 창출해왔다. 전체적인 형상과 뜨개코의 질감 이 두 가지는 이 지역의 언어공동체를 차이화 한다. 매켄지는 가방 입구의 제작방식에서 적어도 두 종류의 양식이 확인되며, 여자들은 그것을 통해 민족적 차이를 표현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방이 공동체들 사이를 이동하거나 그렇지 않는 것에 대해, 그리고 가방의 이동에 대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반응에 대해 두 편의 인용문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텔레폴의 퍼스펙티브에서 볼 때와 민(Min) 혹은 오크 산의 특정 집단의 퍼스펙티브로 볼 때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최근 비행장 설립과 함께 지역이 개방되어 여자들의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빌럼(bilum) 스타일이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그것이 민족적인 차이의 모호성으로 연결되어왔다. 보통 한 집단은 타 집단의 창의를 점차적으로 취사선택해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텔레폴의 여자들은 민(Min)이라는 타 집단의 스타일을 모방해서 흡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이 가장 독창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타 집단 또한 동의하는 것 같다. 텔레폴의 스타일이야말로 주류이며 모든 방향으로 확산되어왔다. (Mackenzie 1986: 147 참고문헌 생략)

 

이와 동시에,

 

텔레포민에서 뜨개가방을 상품화하는 것에 저항이 있다. 텔레폴의 여자들은 외부지향의 시장에 빌럼을 공급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DPI 마케팅 매니저는 19843월까지 1년 넘게 옥삽민(Oksapmin)이라는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본 따서 텔레포민에서 빌럼의 상품화프로젝트의 전개를 시도해왔다. [] 옥삽민은 여자들이 파푸아뉴기니 전 지역과 해외로까지 빌럼을 수출하는 곳이다. [] 그러나 그의 모든 시도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스테판 블레이크(Stephen Blake) 사적인 대화에서). [] 블레이크가 얻은 최소한의 성공은 자신이 직접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 마을을 순회했다는 것뿐이다. 그에게 가방을 판 여자들은 그 후 그가 다시 마을을 찾았을 때 그를 돌봐주었다. 그 여자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의 얼굴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텔레폴의 여자들은 빌럼을 뜨개질할 때 받을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있지않으면, 그리고 노동에 대한 사회적 답례를 바랄 수 없다면, 빌럼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Mackenzie 1986: 164 강조는 필자에 의함)

 

텔레폴 사람들 사이에서 가방은 지방의 친족네트워크를 따라서 유통된다. 실제로 떠나보내는 가방은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 타자(아버지, 손아래 남자형제)를 위해서 의도된 것이다. 그리고 가방 선물은 받는 사람이 가방 제작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녀의 활동이 취하는 형식은 익명적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다.

 

 

 

 

Posted by Sarantoya

부분 2 사회

 

부분 1 역사비평

 

부분 1 역사

 

부분 1 교역과 전달

서양의 어떤 역사관에 기초한다 해도 광역적인 비교가 가능한 것은 파푸아뉴기니 내륙에서 볼 수 있는 사회들이 역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암묵적인 지식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사회들은 원초적인 (‘발생상의’) 소재에서 유래할 뿐만 아니라 각각이 상대적으로 독립하고 있다 해도 사람과 사물의 이동이 그것을 완화해왔다. 그 사회들은 일종의 기원, 집단들의 이동이라는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며 사람들과 함께 혹은 그들과는 별개로 여행하는 관념과 인공물을 공유해왔다. 이 의미에서 사회들은 상호 의사소통한다.

최근 들어 언어의 차이는 교역의 부분적인 장벽일 뿐이고, 또 행사를 둘러싼 정보의 확산에서도 부분적인 장벽일 뿐이다. 바스(Fredrik Barth)의 보고에 따르면, 오크(Ok) 산 지방 전역에서 대규모의 입사식과 의례가 행해질 때에 가장 연로한 의례전문가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입자까지 포함한 방문단이 원정 파견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참가자들의 네트워크가 이 지방 전역에 걸쳐 모든 중심과 모든 중요한 행사와 연결되어 있다”(Barth 1987: 8)고 한다. 선사시대의 교역 그리고 상호 역사적으로접촉해온 그들이 최근 시행하는 양식의 도입에 대해서는 쌍방이 더불어 풍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성장의례를 위해 관광객의 존재를 차용한 챔브리(Chambri)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확실히 차용에 기초한다고 보고 있다”(Errington and Gewertz 1986: 99).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한 언어집단 내지는 한 사회는 다른 집단으로부터 특유의 요소를 도입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자신들에게 특유의 요소로 바꾼다. 예를 들어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하겐의 일부 지역에서 특히 엥가(Enga)의 특색을 띠는 가발이 멀리까지 인기를 끌었다. 머리를 푹 씌우는 이 가발은 좋은 예다. 하겐에서는 일반적으로 씨족의 새로운 성장점은 시집온 아내들의 외래의 기원통상적으로 하겐의 타 씨족으로 표현된다. 필자는 필드워크 초기에 베이어(Baiyer) 협곡에서 멀리 떨어진 엥가 지방의 산들이 보이는 능선에 서서 하겐부족에 포함된 씨족 중 하나가 엥가의 사람들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에는 잠시 혼란에 빠졌었다.

물론 그들이 짊어진 이름을 빼면 이 사람들에게 엥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다릴 페일(Daryl Feil)은 엥가와 하겐, 나아가 멘디(Mendi)의 인구집단에서 중요한 의례적 교환의 제도들이 약 20만 명의 사람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주고 있다고 지적한다(Feil 1987: 265ff). 그에 따르면, 이 체계의 다양한 요소는 한 결절점에서 다른 결절점으로 건네져 왔으며, 또 그 속에는 어떤 경우에도 조개껍질과 돼지라는 재화의 흐름이 [집단 간의] 경계관계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는 엥가에서 교환의 관습은 과거 하겐의 그것에서 자라났다고 추측한다. 즉 현재 엥가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사적인 배상지불이라는 형태로 하겐 산 지역 이주자들에 의해 이행되었고그 후에는 생산기회가 증가할수록 현재와 같은 복잡한 형태로 확대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들 간의 실제 접촉에 대해 실제 역사를 상세하게 알기만 한다면, 지역을 가로지르는 관념과 인공물의 움직임을 추적하거나 그 과정에서 나타난 변이(variation)를 기록하고 또 내가 제시해온 문화적 아날로지를 사회적 연결로 환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정한 관념과 사물이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중요도를 갖고 나타나는 것에 특출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접촉해온 사회들을 우리 자신의 주제라고 생각함으로써 하나의 스케일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주의(actualism)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사실 인류학자들은 잘 알려져 있고 또 기록에 남은 역사적 변화 시기에 대해, 특히 유럽인과의 접촉의 역사에 대해 기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럽인과의 접촉이 길었던 지역에서는 역사적 기록이 더 의미심장해지는 것 같다. 그러한 착오는 그 자체로 멜라네시아 사회들이 가진 역사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판받아 왔다. (예를 들어 다음에 수록된 논문들을 참고. Gewertz and Schieffelin 1985)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이 대지를 거뜬히 횡단하였고, 가령 초기 순찰대가 도보하면서 어느 곳에서는 붉은 옷을, 또 어느 곳에서는 철제 도끼를 남겨두었다는 사실은 접촉 이전의 식민자들에 대한 그럴싸한 형상 내지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전쟁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거나 교역과 통혼에 뛰어든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접촉이전부터] 하이랜드 내륙을 횡단했을 것이다. 물론 이 횡단은 [저명한 탐험가들처럼] 동일인물이 행한 것은 아니고, 사람들은 제각기 혹은 집단을 이루어 이곳을 여행하고 저곳에 정착해왔다. 이러한 이동은 새로운 농원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찾아서 주거 장소를 옮기거나 할 때에 항상 발생하는 이동의 확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사회들 간의 연결은 논할만한 질문거리가 아니다. 그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어떤 특정한 로컬적인 적응이나 리더십이나 거래 등의 양식의 다양한 발전의 궤적을 만들어낸 원인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 놓일 때 사회적 경계를 넘어선 문화적 유사성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지금 이 역설의 감각을 다른 말로 하면 다음과 같다. “알기만 한다면사물(인공물, 관념, 문화적 생활의 형식들)이 각기 다른 집단들 사이에서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역사적 상세를 적어놓을 수 있을 텐데, 그래봤자 사회적 과정을 둘러싼 지식에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부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류학자들이 잘 알고 있듯이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란 사람들이 비교하고 차용하고 적응하고 인공물을 스스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천개의 개별사례를 수집한다면 특정한 집단들 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집단들이 역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사례에 무언가가 부가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하지만, 새롭게 제기되는 질문은 로컬한 사회 형식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했는가?’이다.

그렇지만 의사소통의 순간순간을 알아내려 할 때 정보의 부재는 탐구의 기세를 크게 꺾어놓을 수 있다. 이외에도 수수께끼 같은 현상과 만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바스는 의례의 상호방문에서 그들이 목격한 것에 충격을 받은 상태로 되돌아간 적이 있다고 기록했으며, 또 가드너는 의례의 사이클을 순환시키려는 텔레폴(Telefol)과 미안민(Mianmin)의 시도가 상호 관계를 절단하는 결과로 끝난 경위에 대해 사람들이 말한 바를 소개하였다(Gardner 1983: 357). 그것은 오크(Ok) 지방의 수많은 민족에게 중요한 입사식의 첫 단계에 관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강력한 힘을 가진 판다누스(pandanus 열대성 교목)로 만든 가발이 가입자를 위해 제작된다. 사람들이 말한 바에 의하면, 미안민은 아직 이 단계를 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텔레폴 원로들에게 의탁해야했다. 그런데 미안민들은 도착해야할 때에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은 텔레폴 원로들의 비위를 심히 상하게 했는데, 알고 보니 미안민들은 오는 도중에 야생돼지에 한눈이 팔려 그것을 요리조리 잘 잡아 죽여서 먹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방탕하고 무지한 미안민은 텔레폴에게서 입사식을 받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실은 이 이야기는 미안민 측에서 나온 것이며, 말할 것도 없이 쌍방의 우선순위의 엇갈림과 관련되어 있다. 나아가 이 일의 전말은 텔레폴이 비밀의 수단을 가지고 정성들여 추구하고 있는 것을 미안민이 이미 공공연하게 준비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사냥 기량이 확실하게 보여주는 남자다움과 생식력이 바로 그것이다. 미안민은 엄격한 의례가 가진 효과를 선취했다. 아마도 이렇게 상호 거리를 두는 것의 실천적 효과는 로컬한 관습을 강화하고 그 독자성을 증대시켜서 이를 통해 로컬한 형식에 대한 집착을 촉진하는 것이리라.

 

부분 2 정보를 잃다

또 다른 퍼스펙티브에서 보면 이러한 일들은 어느 것이나 극히 평범하게 생각된다. 자신을 타자에게서 구별하는 표지를 앞세움과 동시에 외래의 영향에 열려 있다이것저것 가져와 받아들이지만 그것들을 스스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타자의 양식을 자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민족적인 관행이다. 혹은 타 민족 집단에 대해 특정 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유래를 알지 못한 채 수입된 형식들을 공을 들여 다듬는 모습은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여기서 내적으로 동기 지어진 구별은 인류학의 민족 모델에 대한 [그 타당성을 평가하는] 스케일을 제공한다. 내적인 차이화는 예를 들어 입사식 의례의 모든 준비가 남성결사의 참가자들의 상대적인 지위를 표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차적(示差的) 표지는 범위를 만들어내는 분류기(classifier)이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평범한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로 쉽게 간주될 수 있다. 사람들이 활용하는 소재에 대해 말하자면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바] 브리콜라주 그 자체다. 사람들은 손 안에 있는 것을 활용하다. 그런데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이 손 안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일까?

만약 알기만 한다면이라는 것은, 우리가 바스를 신뢰한다면 박타만(Baktaman)의 원로들, 그리고 오크 산 일대의 이웃 사람들의 아우성이기도 하다. 그들은 항상 상실의 감각과 싸우고 있으며, 그 속에는 미래에 닥쳐올 지식의 상실에 대한 감각도 있다. 바스에 의하면, 조르겐센(Dan Jorgensen)이 텔레포민(Telefomin)에 관해 통렬하게 그려낸 불가역적인 퇴행-균질화의 경험(e.g. Jorgensen 1985)은 박타만에까지 일반화할 수는 없다(바스는 텔레폴, 박타만, 비민-쿠스쿠스민(Bimin-Kuskusmin)이 과거를 그들 스스로에게 되돌리는 방식에서 실존적 계기의 세 가지 유형분류체계(typology)를 이끌어내었다(Barth 1987: 49-50)).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타만은 다른 파이월어(Faiwol) 화자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결정적인 지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이해에서는 입사식을 받지 않은 자들을 속여야 하고 어떤 사항은 비밀에 부쳐짐으로써 성스러운 것이 되기 때문에 [] 연장자로부터 연소자에게로 [지식의] 전달은 항상 상실의 위험을 안고 있다. “선조들이 가르쳐준 것은 이것뿐이다라고 말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인식될 때 이웃 집단들의 전통이 운만 따라준다면 자집단의 전통의 상실된 부분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이용될 수 있다. (Barth 1987: 27 강조는 인용자, 참조문헌 생략)

 

현대의 의례 전문가가 예전부터 자신이 행해왔고 또 다시금 행해야하는 입사식의 한 과정을 마음속에서 재-형성(re-form)하고자 분투하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바스는 지식의 산출 그 자체를 되짚어본다. 타자에 지식을 전달하려는 자는 이러한 조건들 하에서는 우선 그 지식을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 바스는 이 통찰을 오크 산 지방의 우주론(cosmology)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변이(variation)를 해명하는 데에 투입한다.

가령 변이에 관한 질문이 출자집단의 구조에 관한 것이거나 하물며 정치조직에 관한 것이라 해도 바스는 집단에 관한 어떤 기본적인 사회적 사실을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그는 또한 이 지방 사람들이 [의례에 대해] 보여주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해석이나 [의례(도구)] 활용법이 공-변이(co-variation)의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체계의 비교로는 거의 통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로 사회의 작동방식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은 의례의 시퀀스를 재구축하려는 현지 전문가들에게 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또한 바스는 개념이 대립이나 도치와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상정하는 공-변이에 대한 보편 가능한 견해에서도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히려 오크 산 지방의 집단들이 일을 진행할 때에 축으로 보이는 스케일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택했고, 의미의 또 다른 수준을 모델화해서 해결책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날로지의 형식으로 묘사된 박타만의 우주론을 둘러싼 그 자신의 초기 분석을 활용한다. 의미론적인 변환은 특정한 은유들을 정교화해서 사람들의 해석을 다양한 방향으로 이끈 결과이다. 단일한 오크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지식체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혹은 몇몇 소규모의 로컬한 중심만이 존재할 뿐이다.

바스는 지식을 분절화 하는 사회적인 메카니즘을 이해한다면 각기 다른 세대들 간에 그리고 로컬한 중심들 간에 어떻게 지식이 변화하며 다양성이 발생하기에 이르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식의 재생산은 주관화(subjectification)와 외재화(externalization)라는 이중의 과정을 통한 부단한 재정식화를 시행한다. 전달되는 것은 서구 연구자들이 자신의 작업의 총괄로 간주하는 추상적인 체계론이 아니라 개별의 전문가에 대해 특정한 이미지가 갖는 특정한 의미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스는 ([그의 저서의] 머리말에서) ‘말해지지 않는 지식은 잃어버린 지식’(silent knowledge is lost knowledge)이라고 한 잭 구디의 지적, 그리고 그 지적이 함의하는 잃어버린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 지식’(lost knowledge is no knowledge)이라는 귀결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리하여 바스의 설명을 근저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전달하는 것이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며 의례장비를 잃어버리거나 노인이 죽었을 때에 자신들의 행위능력이 빼앗기게 된다고 항상 의식되는 세계에서 오크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만전의 감각을 획득하는가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스가 해명한 것은 의례 전문가들이 사고의 운송수단(vehicle)과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주는 운송수단(vehicle)을 제공하고자 하면서 재생(regeneration)의 과정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바로 그 전통을 스스로를 위해 끊임없이 발생시킨다는(generating)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물론 사건, 이미지, 의미 사이의 연결에서 틈새장식으로서 전혀 손상되지 않는 한에서 '전통'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는 끈질기게 남아있는 어떤 인류학의 사고방식을 파기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가 강조했듯이 우리자신의 존재론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작업은 당연히 지식의 상실을 데이터의 상실이 아닌 데이터의 일부로 포함시켜야 한다. [의례상의] 어떤 구별에 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이 (가입자의 가발에 판다누스 나뭇잎을 붙여서 길게 늘이는 것이 가발을 씌우는 것이기도 할 때 젠더에 관해 그러하듯이)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결론을 끌어내게 하는 것이라면 조상들의 결론을 잃는다는 것은 아마도 의례전문가들이 가진 더욱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

나는 바스의 발생론적인(generative) 모델을 오크 사람들이 자신의 실천에 대해 사고할 때 밝혀지는, 부재와 상실이 갖는 생산성을 재조명하는 것으로서 생각해보고 싶다. 유산이란 각각의 세대가 자신에 앞선 세대들로부터 잃어버린 것에서 창출해온 지식이다. 이것을 다음과 같은 상상 속의 각본으로 표현해보자.

어떤 레퍼토리에서 몇몇 아이템들이 탈락한 경우, 다른 아이템들이 그곳을 메운다고 가정해보자. 그러한 공백을 메운 아이템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어야 한다. ‘곳 대신에 남아있는 곳이 그 의의를 배가시킨다(혹은 그 반대일 수 있다). 그리고 이중이 된 각각의 부분에 새로운 변이의 특질이 새겨진다. 이것의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 우리 손 안에 있다. 박타민의 이웃에 사는 볼로빕(Bolovip) 사람들은 선조들의 두개골 다수를 대대로 이어받으며 소중하게 여기는데, 그것들 가운데 한쪽은 붉은색, 따른 한쪽은 흰색으로 칠하여 두 개 조로 확실하게 가른다. 어떤 두개골도 양쪽 모두의 색으로 칠해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박타만에서는 두 개의 사당이 선조의 수많은 유골을 모시면서도 두개골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경우에 따라 붉은색, 흰색, 혹은 두 가지 색깔 모두로 칠해져 있다(Barth 1987: 3). 볼로빕과 박타만 그 어느 쪽의 퍼스펙티브로 보아도 붉은색과 흰색의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아마도 미리 주어진 것은 전체적인 형상화이며 그것은 선조의 두개골을 붉은색 혹은 흰색으로 보게 될 가능성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러한 특성의 균형 잡힌(proportional) 배분은 특정한 형식에 바람직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필요에서 기인한다. 이 필요성을 과거에 투영해본다면 우리는 바스의 지적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의례전문가들이 임무로 여기는 것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달하고 가입자들을 알고 있으며 보고 있는 남자들로 변용시키는 이미지를 되가지고 오는 것이다.

바스 자신의 설명에 따라 지금까지 지식의 상실이라는 표현을 써왔는데, 실제로는 정보의 상실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이용 가능한 신호, 상징, 메시지, 패턴 가운데 전달되어야 하는 것을 선택하는 [] (기호학적인) 자유의 정도”(Wilden 1972: 233)의 상실이다. 감축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선택의 자유이며, 그것은 형식의 특수성의 감축이다. 잃은 것은 일찍이 존재한 의사소통의 운송수단(vehicle) 혹은 매체(media)라고 상상된다. 그러나 나는 그 매체를 잃어버렸다는 지식이 이른바 지식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부재에 대한 지식, 망각과 회복 불가능한 배경에 대한 지식임을 시사해왔다. 입사식을 배푸는 입장의 박타만들은 그러한 상실의 감각에 촉진되어 현재 이미지를 작동시키는 것 같다. 그들은 공백을 메운다는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무엇에 그것이 해야 하는 차이화의 작업을 모두 맡기고 그러함으로써 자신을 위한 정보를 창출하고자 한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손 안에 있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이웃에 사는 사람들의 지식을 가져와서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된다. 그것은 또한 현재 있는 인공물 속에서 회복 불가능한 배경을 알아내는 것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오직 인공물만이 이 배경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넘겨주는 것은 새로운정보다.

[박타만의] 의례전문가들은 자신들에게 남아있다고 감지되는 것에서 충분한 정보를 읽어내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잃어버린 복잡성의 표지를 실어 나르게 해야 한다.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사고에서 한때 분리된 의례의 두 단계 대신 내적인 차이화를 창출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활동을 무지라는 거대한 배경에 마치 여기저기 박힌 먼지입자처럼 바라봄으로써 그들 자신의 노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이 무지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무지가 아니다. 그것은 레퍼토리에서 탈락한 것, 곧 지금 남아 있는 공백을 한때 메웠던 입자에 대한 무지다. 다중성(multiplicity)과 균형 잡힌 확장성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남아 있는 작은단위를 더 작은단위로 쪼개야 한다. 그와 동시에 각기 다른 커뮤니티에 속하는 연장의 전문가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그들이 항상 자신의 레퍼토리를 다른 곳에서 가져와 보충하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격차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놓친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이 아는 것을 다시 만들고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 마치 그들은 그러한 부재를 주장함으로써 그들만의 창의력을 창조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선취(prefiguration)의 개념에 각주를 추가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사회성, 가치, 관계은 제자리에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만들고 개조해야 하고 또 새롭게 발명되어야 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기 위한 형식들이다. 사회적 인격이 어떤 집단의 성원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능력(potency)은 신생아, 미어터지는 얌 창고, 성공적인 사냥, 영적인 조형물을 짊어질 수 있는 강인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기원서사를 가지고 있는 멜라네시아 사람들은 서사 영웅들이 도구, 음식, 성적 특성, 이름 있는 집단 등이 취해야 하는 올바른 형식을 땅에 흩뿌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와(Gawa)의 선조들이 한 일도 바로 이것이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카누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남자들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적절한 재료를 남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카누가 취해야 하는 적절한 형식을 알려주었다.

오크 산 지방의 일부 사람들을 괴롭히는 잃어버린 형식에 대한 감각은 그들이 실제로 자신들이 보유하는 형식에서 사회의 전체성이 나오게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중의’(multiple) 추가 가능성이 부재할 때 하나의형식은 그것이 입사식의 한 시퀀스이든 그 무엇이든 다중의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부분 2 진화 

 

부분 1 미래로의 리더들

바스가 문화적 레퍼토리를 변환하는 데에 그들이 맡은 부분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 것은 박타만 원로들의 탁월한 통역자 역할이었다. 지식의 통제와 특정한 형식을 재창조하는 인격적인 책임을 통해 몇몇 개인들은 전달되는 것에 불균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바스의 저작과 같은 해에 발표된 비교 연구, 다릴 페일(Daryl Feil)의 하이랜드 사회들의 진화에 관한 고찰에서도 다소 비슷한 인물상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기에 미래를 짊어진 남자들이 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에 사회적 형식의 다양화를 장려한 돼지사육과 원예기술의 발전에 관한 페일의 복잡한 설명에 힘을 북돋는 것은 부의 교환을 통해 영향력을 강화하거나 영역을 확대하려는 이 남자들의 에너지다. 이 인물상은 빅맨과 그 원형이며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면서 사회의 발전상을 윤곽 짓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기업가적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통적인 형식들이 어떻게 전달되는지의 질문에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일종의 선취(prefiguring)가 페일의 분석에 배경을 제공한다. 즉 진화를 위한 사회적 메커니즘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는 가정이다. 실제로 문화에 대한 사고에서 사회에 대한 사고로 분석의 퍼스펙티브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배경이 마련된다. 다음의 두 메카니즘은 사회조직이라는 개념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내적인 차이화의 메카니즘이다. 이 관점에서는 사회 내에서 권력의 분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들은 균질한 [것으로서 상정되는] 문화와는 다르다. 이와 반대로, 모든 사회는 뚜렷한 이익집단으로 구성되고, 사회 분석은 문화를 통제하는 자가 사실상 누구인지를 말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관찰자는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관계에 대해 이중적인 관심을 견지한다. 이익집단에 대한 상정은 인류학자에게 사회적 관계의 수행과 생산 및 분배에 대한 통제의 구조를 이데올로기의 연막으로부터 분리하라고 등 떠민다(Josephides 1988). 또 하나는 이러한 관점과 관련하여 전유(appropriation)에 대한 기대이다. 여기서 사회적 복잡화의 동인은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속하거나 독특한 것을 전유하는 데에 있다. 멘디(Mendi) 사람들은 씨족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인 돼지축제가 최근에 도입된 것으로 보는 것 같다(Lederman 1986: 21). 내부적으로 전유는 특정한 타자들의 행동을 연출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인류학자들은 가장 전형적으로 남성이 여성의 노동을 착취하는 방식에 주목해왔다. 이 전유는 남성들 간에 그리고 남성과 여성 간에 생산과 불평등의 특수한 관계를 구성한다. 멜라네시아인이 다른 사람들의 성장점을 증가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창조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은 결국 사회조직의 다양한 형식들에 관한 인류학자 측의 인과론적인 설명으로 뒤바뀔 수 있다.

페일 자신의 비교 관심사는 동부와 서부의 하이랜드 사회들 간에 명백한 생태학적 및 경제적 대비에 있다. 그는 이 대비를 별개의 두 경제구성체의 각기 다른 발전의 결과로 본다(Feil 1987: 9). 그가 조립하는 물질적 사실들은 인상적이다. 조금 수수께끼 같은데, 통사회적인 그의 극적인 대비 중 하나, 즉 대규모 인구집단의 분산과 집중은 수백 명의 우메다가 덤불밭에 살다가 주요한 축제를 위해 능선 마을에 집결하는 작은 움직임과 거의 거울상을 이룬다. 리처드 웨브너(Richard Werbner)는 우메다에서 이 연간주기의 두 국면이 사회조직의 서로 다른 형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Werbner 1989: 189). 그러나 페일의 연구는 상대적인 관점이 아니기에 주요한 지향점은 따로 있다. 그보다 그는 뉴기니의 하이랜드에서 사회적인 발전의 정점을 보여주는 제도, 즉 엥가와 하겐의 복잡한교환체계로부터 고유의 퍼스펙티브를 제시한다.

그는 하겐 산 주변지역이 하이랜드의 집약적 농경의 태생지일 가능성이 있는 곳이며, “엥가와 하겐의 두 교환체계의 발전은 최초시기의 집약적 농경체제 및 그에 의존한 돼지생산의 직접적인 산물이다”(Feil 1987: 263)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하겐은 원초의 성장점이다. 그것은 농작물과 돼지의 잉여가 인구집단의 확대를 초래했다. 한편 엥가 버전의 교환체계는 조직상의 복잡성의 정점에 위치한다. 그가 서술한 대로(Feil 1987: 268), 하이랜드 사회들 전반의 스펙트럼에서 이 정도 규모로 교환제도를 발전시킨 사회는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편협한 지역주의 이슈들 때문에 분열된 채로 소규모의 삶을 살고 있다. 농경의 집약화는 다름 아닌 빅맨들의 야심 속에 자리한 경제적 합리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그는 논한다. 하겐과 엥가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할수록 소년들의 입사식이 돼지축제의 고취에 비해 이차적이며 그것이 돼지 축제의 중요도 증대의 전조가 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설명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이 전환을 그는 다른 전환과 상호 연관시킨다. 하이랜드 동부에서는 전설에 따르면 여자들에게서 훔쳐간 피리가 여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사용된 반면, 서부에서는 피리가 있는 경우 남자들의 발명품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가 주장하기로는 남성 헤게모니의 상징으로서 피리복합이 붕괴되고 남성의 우위성을 신비화 하는 남성들의 입사식이 끝나는 것은 [] 하이랜드 사회들의 연속체 위에 있는 정확히 이 지점에서다”(Feil 1987: 213). 왜냐하면 이 지점에서 여자들이 그들 사회에게 불가결한 교환체계의 결정적인 참여자로서공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여성 참가자들을 다소 낙관적으로 그리는 것에 대해 상정될 수 있는 반론에 대해 그는 가장 적대적이고 착취적인 남성-여성 관계는 집약적인 돼지사육과 원예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사회들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러한 집약적 생산이 훨씬 더 오래된 서부 하이랜드의 성숙한 사회들에서 여자들은 돼지생산과 친족네트워크의 이중적 역할로부터 높은 지위를 구축해왔다. 교환관계는 일관된 관심의 초점이 되었고, 이로 인해 생산의 방향 자체가 변환되었다(Feil 1987: 231-2).

이에 따라 페일은 (수많은 요소들 가운데) /여 간의 헤게모니적인 이분법으로부터 하겐의 위계적이고 복잡한체계그는 계급이라는 더 오래된 어휘를 부활시키고 있다까지의 경사도를 포함하여 점차 증대하는 사회적 복합성의 경사도를 예상한다. 그의 주장은 하이랜드 전역을 관통하는 현저한 생태학적 및 문화적 차이들이 무엇보다 이 사회들이 각기 다른 역사를 거쳐 왔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결과는 그 사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배치(configuration)에서 확인된다(e.g. Feil 1987: 5). 수많은 세부사항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라면, 해결책은 이러한 배치가 역사적인 자리매김(증대하는 복잡성의 측면에서)과 지리적인 자리매김(동부에서부터 서부에 이어지는 연속체 위에서) 양쪽 모두에게서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페일의 공간적-시간적 퍼스펙티브는 진화의 궤적을 결정적인 좌표축으로 제공하고 그에 따라 서열을 산출하여 당대의 사회들 간의 변이를 이해하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부분 2 관계의 정교화

또 다른 퍼스펙티브를 가지고 간과된 복잡성을 도입함으로써 페일의 저작과 같은 광역연구를 비판하기는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에는 한층 더 도발적인 나머지’(remainder)가 있다. 그것은 그의 기획에서 중대한 차원 중 하나임과 동시에 그가 스스로 설정한 과제를 초과한다. 이것은 복잡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수반된다.

페일은 농경의 집약화와 교환관계의 정교화와 관련하여 이 개념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나는 과장해서 나의 논점을 만들어보겠다. 전체 사회들과 체계들을 어떤 특정한 차원, 이를테면 노동 분업과 기술적인 전문화에 따라 어느 정도 복잡하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회관계를 서구인들이 추상화하는 사회 개념의 요소들로 생각한다면, 퇴화(involution), 피드백, 내부 조직의 수준, 복합적 구조 등의 무슨 기준으로 하이랜드의 한 사회 내 관계들이 다른 사회 내 그것들보다 더 복잡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사회관계는 외부자가 토착적 정식화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기술할 수 없는 현상이다. 레더만은 인류학자 등이 파푸아뉴기니 사회들에 도입한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서구 역사가들이 말하는 사건의 토착적 유사물(analog)은 사회관계의 인식된 결절점(nod)에 있다고 주장한다(Lederman 1986: 20). “관계성의 수립이야말로 우연한 사건을 경험이라는 유의미한 범주로 형상화 한다”. 따라서 멘디가 때마다 상기하는 사람들의 이름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은 과거 개인 및 집단 간의 사회적 제휴의 기억이 되고, 미래가 갖는 의의, 곧 관계의 실현 혹은 그 예기된 출현이 된다. 따라서 현재는 과거를 반복한다기보다 과거를 출현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며 과거를 나타나게 한다. 이때 현재는 이미 과거의 버전으로서 자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잡성이 사회성의 재귀적 이미지 속에 이미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하이랜드 중앙부 너머에 있는 (페일의 기준으로는 낮은 생산성 사회인) 텔레폴의 소박한 뜨개가방으로 되돌아가 보자. 퍼스펙티브에 따라 남성에 의해 전유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텔레폴의 뜨개가방은 교환의 목적으로만 가치를 가진 거의 익명의 생산물이 아니다. 뜨개가방은 자신을 만든 관계들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관계들을 위한 여자의 생산물 혹은 남자의 개인적인 장구를 담는다. 실은 뜨개가방 제작은 이미 알려진 다른 것들에 의해 도출된다. 특정한 형식이 다종다양한 가면을 쓴 피규어들의 병렬배치를 통해 나타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특정한 인물의 행위는 타자들의 사회적 행위에 의해 도출된다. 가방이 순환되는 내적인 맥락에서 관계는 항상 고유하고, 인격은 말하자면 항상 알려져 있으므로 타자들에 의해 운반된다’(Wagner in press).

아마도 나는 하겐에서 선물교환의 지배적인 형식, 즉 되돌려줄 때 더 많이’(more) 주는 모카(Moka) 관습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끌어내기(elicitation) 자체가 정교화(elaboration) 혹은 과장(exaggeration)의 행위라고 이해한다. 이것은 호들갑 떠는 제스처만큼이나 극히 일상적이고 미세한 행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행위가 취하는 형식소년들을 성장시키는 것, 모친의 형제(외가 삼촌)를 만족시키는 것, 형제동기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그것이 나타나는 가운데 특수한 실체와 물질성을 획득한다. 이 현전(presence)은 처음에 그것을 요구한 의무와 의전, 즉 사회적 규범 그 이상’(more)이다. 그의 누이에게 가방을 구걸하는 남자는 또한 그 자신이 그녀의 용모의 영구적인 기념비를 등에 지고 나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유리한 인구학적 혹은 경제적인 조건 하에서 스스로의 영향권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개인뿐만 아니라 그러한 관계의 정교화에 광범위한 관심과 조우하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관계의 실연 또는 실현은 그 존재를 정교화 하는 것이다. 연결을 가시화하면서 사람들은 그에 권한을 가진 항상 존재하는 능력을 내세운다. 적어도 이것은 파푸아뉴기니 전역의 12개 사회에 관한 파울라 루벨(Paula Rubel)과 아브라함 로즈만(Abraham Rosman)의 보설(1978)을 독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들은 결사조직, 친족유대, 반족간의 대립, 의례 후원, 정치적 공격, 전쟁, 의례적 교환, 통혼 등등에 기초한 관계성을 고찰하고 있다. 노래 부르기를 통해서든 돼지죽이기 혹은 성적관계 저지하기든 관계는 도처에서 고도로 정교한 형식으로 드러난다.

루벨과 로즈만은 고유한 관계성의 명백한 진화라는 측면에서 사회전반에 걸친 변환의 시퀀스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에서는 인척간의 관계가 입사식에 관한 의무의 부담 혹은 의례적 교환의 구조를 수반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그 중요성이 줄어들고 의례전문가나 전문적인 교환파트너의 그들에 가려 인척간 유대가 빛을 잃는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중요한 관계가 다른 사회에서는 축소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변이들을 변환으로서 분석하면서 그들은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뻗어가는 갈래들과 함께 발전의 공통규모를 제시한다. 인척관계와 교환파트너십의 상대적인 발전정도가 진단의 근거가 된다(e.g. Rubel and Rosman 1978: 333). 변환은 사회 내부와 사회들 사이에서 쌍방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상호 변환관계에 있는 두 개의 각기 다른 교환구조가 한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다양한 사회들의 교환구조를 비교함으로써 원형을 설정하고 당대 사회들 가운데 특정 사회를 이 원형에 더 가까운 것으로, 또 다른 사회를 더 멀리 있는 것으로(‘독립적인 변환으로) 특징지울 수 있었다. 하겐과 엥가는 또 다시 계열의 한 끝에 위치지어진다. 그러나 정교화의 상대적인 정도라는 개념은 실제로 어떤 관계를 보고 있는지에 대한 선험적인(a priori) 판단에 달려있다.

사실상 우리는 어떤 선험 지식을 통해 이 경우에는 인척들의 행위를 보고 저 경우에는 교환파트너들의 행위를 본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만약 교환파트너의 원형이 인척이라면 우리는 왜 모든 교환파트너를 인척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일까? 일부는 그들끼리 여성을 거래한 적이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그들끼리 가면 혹은 조개껍질을 거래한 적이 있는 인척일 것이다. 만약 서구의 체제론이 결합된 비유사성/유사성을 표명하는 중차대한 용어를 주장한다면, 우리는 두 개조의 사람들을 인척과 동맹상대로 분할된 교환파트너’(우메다의 경우)로서 아니면 인척과 교환파트너로 분할된 동맹상대’(하겐의 경우)로서 분류할 수 있다.

실은 우리는 앞서 인공물을 고찰할 때 다다른 것과 동일한 난관에 봉착했다. 어느 정도 해결책은 이미 정해져 있다. 즉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관계들 사이에서 유추하는 아날로지다. 인류학적 유형화는 이미 토착의 아날로지에 의거하고 있지만, 토착의 스케일링이 무시되기에 부분적으로만 그렇다. 아마도 난관을 넘어서는 전개는 다음과 같이 완료될 것이다.

인척은 하겐에서 교환파트너가 나타날 수 있는 형식 중 하나이며, 그와 마찬가지로 교환파트너는 인척이 나타날 수 있는 형식 중 하나이다. 인척과 교환파트너는 동형적이지 않으며 또 서로의 하위유형도 아니다. 오히려 각각은 서로의 한 버전이다. 그러나 서로의 퍼스펙티브에서 보이는 각각의 관계는, 인척이 교환파트너로서 모카 시퀀스를 개시한다고 상상할 수 있듯이 관계의 정교화 또는 증대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의적으로 정교화가 추가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정교화는 의전(protocol)에 따르게 된다. 인척이 교환파트너가 되지 않으면, 그는 처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교환파트너가 된다면 그는 그와 인척들 간의 친화성을 단지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로서의 행동을 통해 친화성을 부가한다. 이것은 잠재적인 교환파트너가 통혼을 통해 그들 간의 거래관계를 견고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그 반대로도 작동한다. 그들은 관계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 이 새로운 차원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존재한 관계를 실현함과 더불어 그에 특수한 (물질적, 실체적)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예전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감싸 안는다. 관계성은 예전 관계들을 끊임없이 반복-재현(recapitulation)함으로써 성립된다(Gillison 1991).

신부대 증여가 약혼에 수반되는 지불의 치환이자 교환인 것처럼, 또는 아이가 부모됨을 내포함과 동시에 그에 참여하는 것처럼, 이 의미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관계는 그 외 관계들의 발달 혹은 버전으로 나타난다. 인척과 교환파트너 간의 차이는 소년과 성인남자 간의 차이, 꽉 찬 뜨개가방을 짊어진 여자와 텅 빈 뜨개가방을 짊어진 여자 간의 차이와 같다. 그러나 만약 모든 것에 정교화 되는 원형이 존재한다면, 이 뜨개가방의 이미지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와 반대로 텅 빈 가방은 작물로 꽉 찬 가방과 같은 의미에서 가득하다. 관계는 항상 확대에 의한 의미생성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관계는 사람들의 의도와 의무의 실연에서 특수한 형식과 현전을 취함으로써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들에서 중심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옮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퍼스펙티브를 이리저리 전환하면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별하는 것은 어렵다. 이는 당연하다. 관계를 통해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인류학자들이 하이랜드 사회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때에는 이것이, 다른 때에는 저것이 강조되는 것에 당혹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때로는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도 당연하다(Barth 1987: 20). 사회관계는 본래 복잡한 법이다. 관계들은 서로에게서 파생물로 존재한다. 아마도 사회 자체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좋은 생각이다. 다만 끌어내기(elicitation)의 메카니즘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은 빼고 말이다. 더구나 문제의 파푸아뉴기니인 그리고 그 외 멜라네시아인까지 성장과 파생의 개념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들은 서구의 고유한 의미에서 사회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앞서 제시한 인류학적 지위의 일부를 특징짓는 다양한 은유들의 동일한 혼합으로 되돌아온다.

 

 

 

 

Posted by Saranto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