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성

 

콘도 히로시(近藤宏)

 

키워드: 통약불가능성, 이방인적 개념, 민족지 이론, 비교, 다문화주의

 

 

인류학이라는 학지(學知)는 궁지에 몰렸다. 무엇보다 주요한 분석 개념을 철학에 기대는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진단 하에 2011민족지적 이론을 위한 학술지로서 하우(HAU)가 창간되었다. 이 잡지를 발기한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지오바니 다 콜(Giovani da Col)에 따르면 현재 인류학은 초창기 인류학과 역전의 관계에 있다. 즉 토템, 포틀래치, 터부 등 현지의 여러 개념들이 타 분야에 영향을 준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인류학이 놓인 상황을 만들어낸 요인 중 하나는 다음의 딜레마에 있다.

초창기와 비교하면 서구의 권위가 추락한 한편으로 서구 외의 세계를 둘러싼 지()가 더욱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 전개된 1980년대 인류학의 자기비판은 기존의 모든 인류학이 서구중심적인 것임을 자각조차 못했다는 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인 논의 틀이 철학으로 옮겨갔다. 이 속에서 서구의 개념사를 거슬러 검토하는 비판 작업이 전개되었고 서구 외의 개념들이 비판의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현대의 민족지가 [기존 인류학을 포함한 서구사상 전반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민족지적 사상(事象)[기존 인류학의] 기술분석 개념에 의거하면 의거할수록 그 개념적 의의가 인정되지 않는 대상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역설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타개를 염두에 두면서 하우에서는 모든 민족지적 통찰의 이론적 잠세력(潛勢力)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하였다. 그들이 제창하는 민족지 이론에서 이방인적 개념’(stranger-concept)은 이형동의어(異型同義語)를 스스로 민족지에서 찾아내는 방식으로 이해되며 그렇게 찾아낸 이형동의어가 각기 다른 세계들 간에 조화를 이루기보다 동형이의어(同型異義語)처럼 이해되는 것에 무게를 둔다. 같은 용어들 사이에서 틈이 생기도록 사고를 놓아두어야 기존의 개념과 이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판의 여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타자성을 비판적 사고와 연결시키는 사고의 전개를 호소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학술지가 조직 가능했던 현실이 보여주듯이, 타자성을 비판적 사고와 연결시키려는 사고가 인류학에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하우의 창간 이전부터 현대 인류학에서 타자성이라는 논점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부각되어왔다. 실제로 그레이버 등은 민족지 이론의 재구축을 목표로 하는 움직임이 단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개별적으로 있어왔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가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착오의 논의를 들 수 있다. 인류학이라는 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타자성에 다시금 주목한다는 점은 잡지명 및 그 특유의 논조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하우는 마오리족의 개념으로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하우에서는 인류학/민족지의 고전적 논고가 재록되고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민족지란 쓰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읽히는 것이라는 이해일 것이다. 물론 독해는 기술에 의해 대상을 표상하는 저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사고를 촉발시키는 이방인적 개념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영위에 달려있다.

2001년에 인류학연보(Annual Review of Anthropology)에 게재된 엘리자베스 포비넬리(Elizabeth Povineli)의 논문 주제는 근원적 타자성이다. 이 주제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통약가능성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쟁점을 다룬다. 우선 포비넬리는 각기 다른 해석이나 의견이 통양가능한 방식에 의해 어떻게 이론화되고 있는가를 묻기 위해 언어인류학의 성과를 가져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수하게 언어학으로 생각되는 문법언어적인 문제라고 해도 사회관계의 권력성을 띤다. 그 권력관계에 의해 문제 그 자체가 규정될 수 있음을 언급하면서 포비넬리는 자유주의 철학에 기초한 사회적인 통약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문법논의를 문제화한다. 이 논의에서 통약가능성은 한쪽 세계로 다른 쪽 세계가 합쳐지도록 한쪽 세계가 다른 쪽 세계를 교정하는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다문화주의에서 승인또한 그 하나로 말할 수 있다. 동시대에서 목격되는 통약가능성에는 이러한 한계가 있다. 여기서 타자성을 둘러싼 인류학적 연구인도 뭄바이의 노숙자들, 기독교원리주의자들과 이슬람원리주의자들, 퀴어 활동가들, 브라질의 선주민권리활동가 등에 관한 인류학이 참조되고 있다가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근원적 세계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교정의 가능성을 은폐시키는 통약가능성과도 비판적으로 마주할 필요성이 있다. 타자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대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휘감는 상황, 어쩌면 우리도 그 일부일 수 있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비넬리는 근원적 타자성이라는 논점을 자유주의가 확장하는 20세기 말의 동시대적 상황에서 찾아내었지만 이것은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에게도 다른 맥락에서 문제시된다. 카스트루가 논한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비즘 또한 다문화주의 비판의 성격을 갖는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비판적인 사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문화주의적인 승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타자성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약불가능성이라는 논점은 하우창간호 서문에서도 언급되었다. ‘민족지적 이론이 찾아내려는 것은 필드에서 바로 이해될 수 없는 과잉민족지적 번역이다. 그 번역은 통약불가능성과 관계가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낭만주의적으로 문화적 통약불가능성을 말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언어학적 통약불가능성을 받아들인 번역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통약불가능성을 받아들임으로써 비교불가능성이 아니라 생성중인 비교가능성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통약불가능성의 교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타자성에 대한 태도와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타자성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현대인류학의 민족지 이론에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그레이버는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등으로 대표되는 존재론적 전회를 비판하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어떤 현실에 대해 (적어도 부분적으로) 통약 불가능한 이론적 퍼스펙티브가 다양성을 풍부하게 전개시킨다는 점에서 가치를 두지만, 실재가 그것들 중 어느 것에도 포위되지는 않는다고 믿고 있다”(Graeber 2015: 31). 그레이버에게 근원적 타자성이란 완전하게 파악되지 않는 실재이며 논의의 사정 밖에 머물러 있다. 한편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논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산 하게(Ghassan Hage)는 근원적 타자성을 통해 비판적 인류학을 논하고 있다. 하게는 타자성이라는 가능성에 우리를 내놓음으로써 우리의 삶에 힘을 창출시키고 타자성을 우리 세계에 빙의시키는 것이 현대적인 인류학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교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을 타자성에 기대하고 있다.

루카스 베시레(Lucas Bessire)는 남미파라과이의 선주민이 직면한 외부사회와의 접촉상황 하에서 존재론적 타자성, 즉 통약불가능성에 주목하는 논의는 현실비판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한편으로 마리오 블라세(Mario Blaser)와 마리솔 데 라 카데나(Marisol de la Cadena) 등은 자원개발과 환경보존이라는 현대적인 상황을 문제화하기 위해서는 근원적 타자성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통약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그것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현대인류학이 직면한 이 질문에 과연 일반화할 수 있는 해답이 있을까? 인류학이 설정하는 상황은 더욱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고, 그 속에서 생기는 타자성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 진단이 요구되어야 한다. 각각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타자성을 사고한다면 그 속에는 다각적인 독해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통약불가능성으로 향해갈 것인가? 마주하는 각각의 방식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축적된 논의와 대화를 병행함으로써 인류학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Bessire, Lucas (2015) Behold the Black Caiman: A Chronicle of Ayoreo Life. The Chicago University Press.

Blaser, Mario (2010) Storytelling Globalization from the Chaco and Beyond. Duke University Press.

de la Cadena, Marisol (2015) Earth Beings: Ecologies of Practice across Andean Worlds. Duke University Press.

Greaber, David (2015) “Radical alterity is just another way of saying “reality”: A reply to Eduardo Viveiros de Castro”, HAU: Journal of Ethnographic Theory 5(2): 1-41.

Greaber, David and Giovani da Col (2011) “Foreward: The return of ethnographic theory’, HAU: Journal of Ethnographic Theory1: -XXXV.

Hage, Ghassan (2015) Alter-Politics: Critical Anthropology and the Radical Imagination. Melbourne University Press.

Povineli, Elizabeth (2011) “Radical worlds: the anthropology of incommensurability and inconceivability”,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30: 319-334.

Viveiros de Castro, Eduardo (2016) The relative native. Hau book.

 

 

 

 

Lexicon 現代人類学58-62.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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