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 2016년 1월호에 실린 아즈마 히로키의 2쪽짜리 글을 번역해올려둔다. 한때 일본의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는 비평가이자 인문학자였더랬는데.. 포스트모던의 기운이 다한 것처럼 그도 그렇게 보인다.   

 

 

인문학과 반복불가능성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인문학의 현재적 의의에 대한 주제로 원고 의뢰를 받았다. 평소 관심이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집필을 수락했지만, 필자의 문제의식이 본지의 독자들과 겹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연구자가 아니고 어느 대학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2015년에는 ‘문학부의 위기’가 어느 때보다 부각되었던 해였는데, 필자로서는 사태의 본질이 대학교원의 고용문제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인문학은 반드시 대학에 소속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본래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필자는 그것을 반복불가능한 역사를 파악하는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자연과학은 반복가능한 사상을 다루는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반복불가능하게 보이는 현상을 반복 가능한 틀로 포착하는 그것이야말로 자연과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다윈주의는 역사를 파악하지 않았는가 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데, 요시가와 히로마(吉川浩満)의 『理不尽な進化: 遺伝子と運のあいだ』[불합리한 진화: 유전자와 운 사이](朝日出版社, 2014/10/25)에서 지적한 대로, 진화론이야말로 그 반복가능성과 반복불가능성의 모순을 양쪽으로 가르는 학문이며, 그에 따라 자연과학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었다.

인문학자는 ‘이 역사’를 단 한 번의 기적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인문학자는 우연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역사의 세세한 부분까지 중시해야 하고, 전통을 계승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에 비해 자연과학자는 ‘이 역사’를 무한의 반복 속에서 하나의 사례, 통계 속에서 하나의 샘플로 해석한다. 그들에게 본질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계산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우연의 사건은 ‘노이즈’로 배제될 수밖에 없고, 교과서는 새로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제도와 관습의 차이는 기본적으로는 이 차이로 귀결된다.

이와 같이 정리하면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어느 쪽이 올바른가,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가 라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보편을 인식할 수 있지만, 실존으로서는 단지 한번밖에 살 수 없다. 인류는 보편적인 인식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인식은 하나의 역사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립’은 이와 같은 인간의 실존 구조 그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학제적으로’ 운위된다고 해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인문학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과학만으로 살 수 없다. 본래 자연과학은 본질적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다. 반복 가능한 사상(事象)을 다루는 자연과학과, 그것 자체가 반복 불가능한 ‘유럽 근대’의 산물이라는 모순 앞에서 일찍이 후설은 『유럽의 제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고, 또 데리다도 그 책의 부록해설논문에서 『기하학의 기원 서설』로 주제화했다.

그렇다면, 다시금 의뢰받은 주제로 되돌아와서,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인문학이 단 한번 ‘이 역사’ 속에서 문화를 구축하는 한에서, 자연과학이 발달하여 세계의 물리적 제도력을 증강시킨다 해도 인문학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니게 되고 의식이 정보가 되고 기억이 복제가능하게 되고 ‘나’의 수가 무한히 증식가능해진다 해도, 그 속에서 ‘이 나’가 있는 한, 문학과 철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점에서 인문학의 미래는 보증된다.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인간은 반드시 존재한다. 다만 그 종사자가 앞으로 지금과 같은 노동환경을 향유할 수 있을까, 20세기와 같은 사회적 영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라는 것에 대해서는 보증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뒤집어보면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인문학은 거의 가치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거의 모든 인간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다.

 

(東浩紀「人文学と反復不可能性」『現代思想』2016年1月号)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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