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재산도 11표도 폐지: 34세의 미국 학자가 그리는 변혁_글렌 웨일 인터뷰

진행자: 에부치 다카시(江渕崇)

 

 

사유재산도 11표도 폐지하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나라미국에서 34세의 학자가 그 전제와 상식에 의문을 던지며 세계적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성장이 둔화하고 빈부격차만이 날로 커지는 자본주의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래디컬한’(근본적·급진적인) 처방전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글렌 웨일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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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부치: ‘래디컬한변혁이 필요할 정도로 세계는 병들었습니까?

 

웨일: 지난 30~40년간 세계 속에 파고들어 사람들을 갈라놓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사람들은 깊은 불만과 위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낮다 해도 사람들은 장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를 사회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제도로 혁신해야 합니다.

 

에부치: 당신은 이러한 현상을 스테그인이퀄러티(stagnequality)’라고 부르며 문제 삼습니다. 저성장(스태그네이션)과 격차확대(inequality)가 동거하는 상태라고요.

 

웨일: 추악한 조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 추악합니다. 한 줌만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미국은 과거 널리 생산거점이 흩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실리콘밸리와 뉴욕 등 몇몇 도시에 경제가 집중하고 부동산 급등으로 그런 대도시로의 이주 또한 어렵습니다. 토지 소유자와 기업가가 이익을 독점하고 인프라 투자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방에서는 아마존 창고나 월마트가 압도적인 고용주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 외 직장이 없기 때문에 경쟁 상대가 없어서 급료가 억제되고 있습니다. ‘매수자 독식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값싼 임금으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의 능력이 헛되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에부치: 시장에 맡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인가요?

 

웨일: 학생 때 월가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습니다. 파생금융상품으로 돈을 벌었는데, 실제로 한 일은 유해한 금융상품을 뿌렸을 뿐입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금융 위기가 터졌습니다. 시장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소수의 전횡을 허용하는 지금의 구조가 문제입니다.

 

에부치: 독점이 극에 달해 사회 불안이 고조됐던 19세기 후반 황금시대혹은 대공황 이후의 1930년대 등 과거의 전환기와 맞먹습니까?

 

웨일: 역사는 되풀이되지는 않지만 운()을 맞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유 방임의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그 시대들과 비슷합니다. 그때에도 새로운 비전을 마련해야 했고 뉴딜정책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비전이 실현되었습니다.

대외적인 긴장도 그때와 비슷합니다. 1930년대 당시 미국은 독일이나 일본과 대립했고, 지금은 중국이나 인공지능(AI)과의 장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내거는 사회는 지금 안팎으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에부치: 트럼프 정권은 사람들의 불만을 에너지로 삼고 있습니다.

 

웨일: 다른 나라와 긴장 관계를 만들고, 기업에 이익을 유도하여 고용을 늘리도록 하겠다.이 정책은 전쟁 전의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시행한 정책의 온건한 재탕입니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트럼프 당선은 미국과 세계에 좋은 일이었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상 유지와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줬기 때문입니다.

 

에부치: 그렇다면 좌파는 어떻습니까?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자 지명을 목표로 하는 샌더스 상원의원 등 부유층에 대한 증세와 전국민 보험을 내거는 후보들이 젊은이들에게 인기입니다. (*이 인터뷰는 샌더스의 민주당 후보자 지명 운동이 한창인 20201월에 진행되었음.)

 

웨일: 문제 해결을 국가에 맡기는 부분이 근본적으로 취약합니다. 좌파가 기피하는 독점기업만큼이나 국가도 문제투성이입니다. 애당초 국가는 다수파를 따릅니다. 그 다수파가 트럼프를 선택한 겁니다. 좌파가 주창하는 바를 따져보면, 그들이 지금보다 더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야 합니다. 지난해 유행한 현대화폐이론(MMT)은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좌파의 좋은 사례로서 정부가 신이 아닌 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에부치: ‘3의 길을 주창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권 등 과거 서구의 중도좌파 정권이 국가와 시장 사이의 물꼬를 트려고 시도했습니다.

 

웨일: 현실은 두 시스템[국가와 시장]나쁜 점만 취하기였습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그 전형입니다. 증세로 경제를 왜곡하고 금융의 규제 완화로 경제위기의 씨앗을 뿌렸고, 민주주의의 열화를 초래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찾아내야 할 것은 어정쩡한 반반이 아닙니다.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보다 시장의 이점을 추구하는 동시에 칼 맑스의 사회주의보다 평등과 협동을 지향하는 사회입니다.

 

부동산, 공장, 통신에 필요한 주파수 등을 사회에서 공유하다

 

에부치: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웨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책을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사유재산의 폐지입니다. 어휘의 본원적인 의미에서 사유재산은 독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이라도 소유자가 높은 가격을 매겨 그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도쿄에서 고층 빌딩들 사이에 단독주택이 있다고 했을 때, 이에 대한 제 의견을 말하자면 소유자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한 나머지 토지가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동산과 공장, 통신에 필요한 주파수 등 자산의 대부분을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하는 겁니다.

 

에부치: 공산주의 말입니까?

 

웨일: 공산주의 아닙니다. 기업이나 개인은 그 자산의 이용권을 시장에서 사고팝니다. 그런 제도를 통해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대립을 넘어선 새로운 경제가 가능해집니다. 이미 싱가폴에서는 부동산이 그렇게 취급되고 있어요. 앱 등의 기술을 활용해서 대상이 되는 자산을 널리 확산시키는 겁니다.

 

에부치: 어떻게 사고팝니까?

 

웨일: 내가 내 자신에게 이용권이 있는 자산의 가격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공유자산이기 때문에 이용료로서 가격을 기준으로 매년 정률의 세금을 부과합니다. 그러면 가격 인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 가격에 사고 싶은 사람이 나올 수 있으므로 반드시 매도 규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너무 낮은 가격으로 매매할 수 없고 자산에 대한 평가가 가격에 적절하게 반영되어야 합니다.

 

에부치: 그렇게 해서 격차를 줄이고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웨일: 예를 들어 세율을 7%로 설정하면 앞으로 전망할 수 있는 수익이 그만큼 계속 줄어듭니다. 그래서 계산상 자산의 현재가치는 3분의 1로 줄어듭니다. 재산의 대부분이 사라지므로 격차는 줄어듭니다. 공유자산의 이용료로서 모은 세금을 기본소득 등의 형태로 전원에게 환원함으로써 한층 더 평등해질 수 있습니다. 토지와 자산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유연하게 이동하고 성장도 가속화됩니다. 세율만 고안하면 투자 의욕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시장경제입니다.

 

에부치: 시장경제의 높은 불확실성 또한 사람들이 국가에 보호를 요구하는 요인입니다. 시장 기능의 강화는 사회를 더욱 불안정하게 하지 않을까요?

 

웨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부동산 소유자 등 가진 자만이 매우 안정되어 있고 그 반면에 노동자와 세입자 등 못 가진 자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불안정합니다. 새로운 구조에서는 누구나 사회의 전 자산에 대해 부분적인 소유자가 되어 그 이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안정될 것입니다.

정말로 소중하고 양도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만큼 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많은 세금을 지불하면 됩니다. 보험과 똑같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분단하고 고독으로 몰아넣었던 시장 시스템을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으로 다시 디자인하자는 겁니다.

 

에부치: 이제는 독점이라면 디지털 공간입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을 분할해야 합니까?

 

웨일: 정치 권력으로서의 왕을 용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과 판매에서도 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독점 금지의 원칙입니다. 다만 왕을 죽여 버리지 않고 민주주의 안에서 설명가능하게 놓아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거대 플랫폼을 분할하면 편리함이 손상되는 등 불이익도 큽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부치: 어떻게 말입니까?

 

웨일: 지금의 디지털 경제는 봉건제와 같습니다. 이용자는 소작인입니다. 플랫폼이라는 영주의 토지에 살면서 꾸준히 경작합니다. 데이터라고 하는 수확은 영주가 삼켜버립니다. 문제는 소작인에게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자유도 없고 구조를 개선시킬 동기도 없다는 것입니다.

데이터 제공을 노동으로 위치짓고 플랫폼이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봉건제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이용자는 가격 등의 협상력이 없으므로 노동조합을 참고로 하는 데이터 조합과 같은 조직으로 대항합니다. 생산한 데이터에 대한 컨트롤을 되찾자는 겁니다.

 

에부치: 근무처인 마이크로소프트(MS)로서도 심상치 않은 이야기 아닌가요?

 

웨일: 만약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내 제안의 상당 부분은 MS에도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MS는 테크놀로지를 구사해서 미래를 개척하는 것을 선호하는 회사입니다. 저는 자유롭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관심과 절실함에 따르는 복수의 표

 

에부치: 당신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으로 생각되는 11표도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웨일: 민주주의의 원리는 정부가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11표의 다수결에서는 소수파의 이해가 반영되지 않습니다. 동성결혼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재판관이라는 제한된 사람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에부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웨일: 여기서도 시장의 힘을 이용합니다. 유권자에게 일정한 포인트를 나누어 주고, 그것을 밑천으로 표를 사는구조입니다. 관심과 절실함에 따라 특정 의제에 복수의 표를 던질 수 있도록 합니다. 동성결혼 의제에 무관심한 다수파는 적게 투표하는 반면 절실한 당사자는 최대한 많은 표를 던지려고 할 겁니다.

표를 많이 던질수록 한 표당 가격이 비싸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표에 1포인트가 필요하다면 2표에는 4포인트, 3표는 9포인트. 표 수의 제곱의 값을 매기면, 가령 10표를 사려면 100포인트나 필요합니다. ‘2차 투표라면 강한 선호를 가진 소수자에 의한 극단적인 매점을 막으면서 그 이익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의회는 예산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의원들의 신경전을 반영하기 위해 이 시스템을 실천했습니다.

 

에부치: 그렇지만 역으로 업계 단체의 압력 등 목소리 큰 소수자도 문제 아닙니까?

 

웨일: 사회는 순수한 다수결의 원리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의회에서의 대표제, 로비, 단체 교섭을 통해서도 소수자의 목소리가 전달됩니다. 그러나 ‘2차 투표는 훨씬 투명한 형태로 소수자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고 이익 유도와 부패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래디컬한 구상으로 사람들을 촉발하다

 

에부치: 당신은 일반 시민이 이민자의 신원을 가져와서 이익을 얻는 구조 혹은 기관투자가의 지배력을 무너뜨리는 기업통치개혁 등 폭넓고 참신한 제언을 하고 있습니다.

 

웨일: 그렇듯 다양한 제언의 기저에 공통으로 흐르는 것은 사회제도를 개량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로서 다뤄야 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전보에서 전화를 거쳐 텔레비전으로 진화한 것처럼 제도도 발명이나 비약적인 개량이 가능합니다. 또 민주주의와 시장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도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기업과 시장을 민주화하는 것과 더불어 투표를 시장화해야 합니다.

 

에부치: 독점금지법, 노조 강화, 세제 개편 등 기존 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너무 급진적인 제안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해서 반대로 현상 유지에 가담하지 않나요?

 

웨일: 폭넓은 변혁의 일환이라면 그러한 정책에 찬성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위기에 당면해서는 급진적인 구상을 통해 사회가 목표로 해야 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사람들을 촉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씨를 보세요. 전 산업을 변혁하는 지극히 급진적인 비전이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 이르는 구체적인 방안을 착실히 밀고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에부치: 독점이 일꾼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경제학자가 주목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또 좌우 양 정파 모두 경제학자의 대세는 급진적인 제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웨일: 경제학자들은 기업합병 컨설팅이나 정부 업무를 맡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세밀하고 세련된 분석 모델을 만드는 데에 몰두합니다.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와 격투하려 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가 기술 관료의 일부가 돼 버렸습니다.

 

에부치: 당신은 세계 지도자들이 모이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 회의)에 등판합니다.

 

웨일: 그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재고하기 시작했지만, 충분히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나의 역할은 그들의 사고를 멀리까지 보내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압력이 충분히 높아질 때에 실제로 변혁을 일으키는 것은 종종 엘리트이니까요.

 

私有財産11廃止 34米学者変革〉 《朝日新聞2020121.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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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말하다: 현대 지성들의 시선이라는 기획으로 진행되는 코너에서 마르쿠스 가브리엘과 글렌 웨일의 인터뷰 기사를 번역해 둔다. 코로나 팬데믹은 뜻밖의 사태라기보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따름이다. 그래서 코로나는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활발히 논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가브리엘은 도덕 없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인류가 보편적인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웨일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혁을 이야기한다. 글렌 웨일의 논의는 경쾌할 정도로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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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체주의에 정신의 백신을: 마르쿠스 가브리엘 인터뷰

진행자: 다카쿠 준(高久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우리를 새로운 전체주의로 이끌지도 모른다.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코로나 사태의 세계를 그렇게 독해한다. 디지털화가 전체주의와 연결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밝은 미래를 찾아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다카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확대가 일어나기 전에는 AI 기술의 발전이 인간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논의가 유행했습니다.

 

가브리엘: 우리는 최근까지 엄청난 잘못을 믿어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테크놀로지의 진보 그 자체에 의해 세계가 더 좋은 곳으로 바뀐다거나 우리 사회가 해방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새로운 전체주의라고도 부를만한 상황입니다. 디지털 권위주의 체제라고 말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국가가 전체주의적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감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닙니다.

 

다카쿠: 국가가 아니라면, 무엇이 전체주의화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디지털화가 전체주의와 연결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가브리엘: 저는 전체주의의 특징 중 하나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별 상실로 보고 있습니다. 20세기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도 과거에 그랬지만 전체주의화하면 국가가 사적인 영역을 파괴합니다. 사적 영역이란 좀 더 알기 쉽게 말하면 개인의 속마음입니다. 국가는 감시를 통해 그것을 찾아서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현대는 그와 다릅니다. 감시와 통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고 구글이나 트위터 등으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 기업입니다.

우리는 지금 SNS 등을 통해 사적인 정보를 스스로 온라인에 올리고 테크놀로지 기업은 그 정보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를 지배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자발적으로 정보를 기업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이러한 기업을 규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수방관합니다. 바꿔 말하면, 테크놀로지 발전이 도덕적 진보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적으로도 정당화(legitimate)되지 않는 일부 테크놀로지 기업이 사회와 경제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합니다. 게다가 시민 스스로가 그에 대한 자발적인 종속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바로 이러한 상황입니다.

 

디스토피아 소설이 현실로

 

다카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인 감염 확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가브리엘: 몇 가지 짚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미증유의 바이러스 위기로 인해, 감염이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반년 전만 해도 시민들이 상당히 반발했을 정책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감염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앱의 개발과 도입이 그러합니다. 이 자체의 옳고 그름은 일단 접어두면, 그것은 테크놀로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별을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는 기술적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사태에서 경제 전체는 수축하는 경향을 띱니다. 일이나 커뮤니케이션의 온라인화가 진행됨에 따라 테크놀로지 기업은 수익을 올리고 영향력을 확대해갑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제기된 문제이지만, 그러한 상황이 지금 더욱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다카쿠: 감염 억제를 위해 일정 기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구별되지 않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가브리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는 이동의 자유와 내면과 관련된 자유를 제약받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권위주의 체제라는 말을 사용하면, 러시아의 푸틴 체제나 중국의 시진핑 체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확실히 저 자신 또한 이 두 나라와 같은 권위주의 체제를 전체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수차례 언급되었다시피 중국은 기술과 자본주의 발전을 결합한 디지털 감시체제를 만들어왔습니다. 20세기에 쓰인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인 조지 오웰의 1984의 세계가 그대로 실현되는 듯합니다. 물론 조지 오웰이 이 책을 쓸 당시에는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 따위를 염두에 두었을 테지만, 오히려 기술이 발전한 21세기의 오늘날에 이르러 저 세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전체주의는 국가만으로 실현되지 않고 기술 발전의 악한 측면이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카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요.

 

가브리엘: 현실은 확실히 반민주주의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행동 데이터의 집적을 통해 행동 패턴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의식주에 강한 영향을 줍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가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이러한 기술 발전은 우리가 존중해야 할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지정학적인 리스크를 만들어냅니다. 미국의 테크놀로지 기업이 그것을 바라든 바라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비민주적인 힘에 의해 트럼프 정권이라는 정치적 악몽이 생겨난 것이지요. 미국 사회가 존중해 온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도전과 공격인 것입니다.

 

다카쿠: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네요. 다만 기술 발전이 불러온 경제발전은 세계적으로 보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왔습니다. 기술적 발전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사회를 좋게 만들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가브리엘: 저는 무슨 비관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도 지난 200년간 발전해왔습니다. 확실히 역사적으로 대량 학살이나 폭력의 응수도 있었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기술 자체보다 우리는 지금 현대에서의 도덕적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카쿠: 도덕이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을까요?

 

가브리엘: 저는 장기적으로 보면 낙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의료 물자 등을 둘러싸고 국가 간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문제가 보편적이고 국경을 넘은 문제라고 하는, 말하자면 인류 공통의 과제라는 의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각국 정부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정치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식이 생겼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도덕적 의식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문제에 그치지 말고 대재앙을 초래하는 기후변동 등 더 큰 문제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다카쿠: 올가을 <아사히 지구회의 2020>(2020.10.11~15)에서 가브리엘 선생이 문제 삼는 새로운 전체주의의 행방을 논의합니다.

 

가브리엘: 지금 요구되는 것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더 높은 수준에서의 연대와 협력입니다. 그것은 물론 서구만으로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국제질서에 참여하여 매우 인상적인 적응을 했습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그 후의 전쟁에서 비참한 결과를 얻었지만,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 한층 더 독자성을 발전시켰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유럽과 일본이 협력해서 지속 가능하며 윤리적으로 깊이 있는 미래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일본 사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타자의 마음을 읽는 것에 능숙하고, 게다가 이러한 경향을 독자적인 비즈니스에 접목해서 무수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타인과의 강한 정신적 유대는 보편주의적 도덕철학과 접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합의 아이디어는 국경 너머의 보편을 생각하는 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보편주의적 가치에 기반합니다. 국민, 계급, 혹은 세대 등 다양한 분단을 넘어설 수 있는 보편적인 정신의 백신을 만드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의해봅시다.

 

 

新全体主義精神のワクチンを〉 《朝日新聞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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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는 장래를 비추는 시연’: 글렌 웨일(Glen Weyl) 인터뷰

진행자: 에부치 다카시(江渕崇)

 

정치도 경제도 극소수가 지배하는 이 세계는 래디컬한(급진적·근본적) 변혁을 필요로 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소속 정치경제학자 글렌 웨일 씨(35)는 디지털 기술과 시장의 힘을 활용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람들의 손에 되찾아오기 위한 아이디어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팬데믹으로 권력의 집중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에부치: 부와 권력의 집중을 벗어나고자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유로 하여 그 이용권을 경매에 부친다는 참신한 제안을 거듭 제기해왔습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래디컬하게 시장을 디자인한다는 사고 태도는 어디까지 유효할까요?

 

웨일: 코로나 대책에 성공한 곳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세계에서 가장 깊이 실천해온 국가나 지역이었습니다. 그중 한 곳이 대만입니다. 마스크를 나눠주거나 감염자를 추적하는 앱 개발 등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희생자도 경제 타격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책을 이끈 디지털 담당 각료인 오드리 탕(唐鳳) 씨는 제가 창설한 단체인 <래디컬 익스체인지>의 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가형의 디지털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사람들의 에토스(기풍, 습성)입니다. 그것이 시민사회에서 보텀업(bottom-up)으로 만들어진 기술에 대한 신뢰로 이어져 대책에 정통성을 부여했습니다.

 

에부치: 또 다른 성공 사례가 있을까요?

 

웨일: (전자정부를 일찍부터 확립했다고 알려진) 에스토니아입니다. 대만이나 일본과 달리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경험이 없어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사태가 악화일로였습니다. 하지만 대만을 본뜬 대책을 하나하나 공유해서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잘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문제가 아니다

 

에부치: 감염자와 사망자가 세계 최다이고 경제 침체도 심한 미국은 분명히 실패한 사례입니다. 트럼프 정권은 무엇을 근본적으로 잘못한 걸까요?

 

웨일: 저는 트럼프와 그의 정권이 무조건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권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잘못은 관료조직, 굳이 트럼프의 말을 빌리면 딥 스테이트”(그림자 정부; 정부 내 정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관되게 공중을 오도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의사결정을 어지럽혔습니다.

민주당이 자주 칭찬하는 CDC(질병대책센터)에서도 처음에는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검사가 필요한지도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검사와 감염자 추적, 격리 태세를 확충하지 않으면 록다운을 몇 번이나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에부치: 그렇다고 해도 팬데믹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자세는 끔찍합니다.

 

웨일: 물론 트럼프도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정치화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늘 그렇듯 분단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차이를 넘어 서로 정직하게 대화하는 것을 막고 있는 깊은 분단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CDC의 불성실함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 지도자도 공중도 신뢰하지 않고, 급기야 스스로에게 불신을 강요했습니다. 양쪽 다 잘못을 인정해야 비로소 우리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가는 최고치를 경신하고, 고용악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에부치: 선진국에서는 예전부터 저성장(스태그네이션)과 격차확대(inequality)가 동시에 진행되는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당신이 스테그인이퀄러티(stagnequality)’라고 부르는 문제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것이 더욱 노골화되었습니다.

 

웨일: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일찍이 파산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대개는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다고요. 글로벌화한 자본주의에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서구식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특히 젊은 세대의 신뢰는 계속해서 하락해왔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는 지금 형태의 자본주의가 보통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에부치: 미국에서는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한편, 제한된 플레이어의 시장 독점이 더욱더 진행됐습니다.

 

웨일: 세계 공황 이후 고용 위기가 닥치는 와중에도 주가는 계속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그사이 인종이나 지역 분단을 둘러싼 사회 불안이 고조되고 때로 폭동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을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사태는 악화될 뿐입니다.

가장 있을 수 있는 대안은 중국 공산당 같은 기술주의적 권위주의 체제입니다. 서구에 맞는 방식으로는 실리콘밸리식의 알고리즘(컴퓨터 프로그램의 계산 순서)에 의한 지배로 형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이고 다원적인 선택지를 가질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합니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키고 싶다면 말입니다.

 

부족한 전문가들의 상호 이해

 

에부치: 팬데믹의 타격을 완화하고자 미국 정부가 전대미문의 엄청난 규모의 재정지출을 단행했습니다. 실업보험 대폭 확충 등 좌파가 주장해온 정책도 속속 실시했습니다.

 

웨일: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제위기 대처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괄목할 만하고 신속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좌파가 선호하는 것을 포함한 전통적인 정책 수단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도 그 어느 때보다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대대적인 부양책은 팬데믹의 핵심 문제에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검사, 추적, 격리 그리고 마스크 착용. 감염을 막기 위한 공공 공간 재조합. 이러한 대책을 통해 감염병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에부치: 원래 경제대책 그 자체는 감염 방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붕괴하지 않도록 전통적인 수단을 동원하면서 그와 동시에 착실히 방역대책을 진행하는 것이 상식적인 길 아닌가요?

 

웨일: 미국의 경우 경제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심대한 타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한편으로 공중위생 보건 관계자들은 정권이나 재정 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범위의 방역책에 집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전제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감염병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경제자원을 푸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양측 전문가들은 서로 의사소통하고 조정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에부치: 그 점은 나라마다 차이가 큽니다.

 

웨일: 감염병 대책을 착실히 실행한 곳은 대규모 부양책 없이 경제를 회복시키고 많은 생명을 지켰습니다. 실패한 국가는 전염병 대응에 필요한 금액을 훨씬 웃도는 현격한 지출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도 생명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대신 주식시세를 끌어올려 부자들에게 부를 재분배 해버렸습니다.

 

기계가 사람을 무가치하게 만드는가?

 

에부치: 많은 국가에서 가계에 직접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모두에게 일정한 돈을 주는 기본소득(BI)이 극히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웨일: 코로나 사태는 디지털 경제의 미래상을 비추는 시연과 같은 것입니다. 기본소득 도입이 사회에 무엇을 가져오는지를 이번 자극책의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면 어떨까요? 기본소득 등 테크놀로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소리높여 제창하는 미래상은 매우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공재를 더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에부치: 인공지능(AI)이나 자동화의 진전과 기본소득은 강하게 관련되어왔습니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목소리는 코로나 사태로 오히려 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웨일: 정책 수단의 하나로서 지금처럼 이따금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 전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혼란스럽습니다.

 

에부치: 무슨 말인가요?

 

웨일: 우선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논의에 대한 것입니다. 경제와 사회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공헌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방향으로 디지털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무가치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논의는 이를 보강할 뿐입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담론은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처가 아니라 (근거 없는 예언이라도 사람들이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예언이 실현되는) ‘예언의 자기 성취에 빠져 있을 따름입니다.

 

에부치: 사람들이 힘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웨일: ‘완벽한 시장경제라는 판타지에 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기본소득은 독점기업이 사람들을 착취하고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기본소득이 독점기업에 대한 과세에 의존한다면 사람들의 효율성을 더 떨어뜨려 사태는 점점 악화될 것입니다.

 

에부치: 10월로 예정된 <아사히 지구회의 2020>에 온라인으로 등단합니다. 포스트코로나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청중에게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웨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 개별적으로 행동하면 그만이고 통상적인 시장 프로세스에 의해서만 조정된다.지금까지 자본주의는 그것을 전제로 삼아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고도의 자본주의가 기능하려면 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집합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만약 열린 사회와 시장을 계속 원한다면 독점기업이 아닌 민주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합니다.

수십 년 혹은 몇 세기 동안 국경 혹은 선거민이 바뀌지 않는 국민국가의 틀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에는 대단히 경직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서의 무역과 여행의 붕괴를 보십시오. 국민국가에서 민주주의와 국제시장의 유연성을 통합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까운 장래에 우리의 미래를 중앙에서 계획하려는 세력에게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コロナ将来像映試写」〉 《朝日新聞202091.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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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스터 2021.01.06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강남의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제집이 없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대한민국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며 그 위선을 깨우치는 요즈음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그와 더불어 내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어느 블로그에서 이 책을 마르크스주의와 고현학의 만남으로 소개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현학이 마르크스주의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또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이 책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에서 시도한 도시공간에 대한 계급적 분석은 매우 흥미로웠고 참신했다. 그러나 이 책 어디에서도 고현학은 찾을 수 없었다. 3장에서 고현학을 표면적으로 정의하고 고현학의 창시자인 곤 와지로의 도쿄 채집조사 내용을 소개한 것과 5장에서 저자 자신이 도쿄 거리 곳곳을 스케치하듯 기술한 것을 고현학이라고 한다면 고현학이겠지만, 그렇다면 왜 곤 와지로가 고현학이라는 독자적인 방법론과 이론을 구축하려 했으며 지금까지도 생활학, 현대풍속학, 노상관찰학 등으로 발전해왔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여하간 이 책은 고현학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현대 사회의 계급적 분화양상을 도시사회학의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이다. 20세기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고임금 노동자의 소비능력을 향상시켰고, 이러한 노동자의 향상된 소비능력은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건축업과 부동산산업을 견인했다. 그 결과 도시는 소비능력에 의한 생활방식에 따라 거주지 분화가 일어나고, 계급 구조는 도시공간을 구획한다. 저자가 계급 사회에 천착한 사회학자이기도 해서, “자본주의의 동학과 계급 간 대립이 도시를 만든다”(74)는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론, 소비의 물적 환경(‘건조환경’)으로서 건설업과 부동산에 대한 자본주의적 이해를 논한 데이비드 하비의 도시분화론, 도시사회학자들의 도시 생태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까지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를 계급도시론 안에 잘 녹여내었다.

 

또 하나는 일본 도시, 특히 도쿄의 공간 구성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다. 에도시대에 옛 도쿄를 가로지르는 스미다가와(隅田川)를 경계로 야마노테()와 시타마치(下町) 각각의 공간 구성의 특색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야마노테 지역에는 사무라이들이 주로 살았고, 시타마치에는 조닌(町人 도시에 거주한 상공계급)이 주로 살았으며, 이러한 신분에 따른 도쿄의 거주지 분리는 지금까지도 도쿄의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에도시대에 다이묘(大名)가 고지대에 살았고 조닌은 저지대에 살았던 패턴이 도쿄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미다가와보다는 고도 20m를 기준으로 도쿄 도시공간의 계급적 분리가 서북과 동남으로 분리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양상을 이중도시라고 명명했는데, 과연 야마노테와 시타마치 각각의 생활문화가 그럴 정도로 이질적인지는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이중도시란 내가 알기로 식민지 도시분석에서 나온 용어다. 예를 들어 일제식민지기 옛 서울(경성)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의 조선인과 남쪽의 일본인으로 거주지가 분리되었다. 일본인이 서울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 한성에 일본공사관이 들어서고 남산(진고개) 일대가 일본인 거류지로 지정된 이후다.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에 이미 서울의 일본인 인구수는 서울 전체 인구수의 약 30%에 달했고, 청계천을 경계로 각각의 이질적인 생활문화가 식민지 서울의 경관을 만들어내었다. 명동과 충무로 일대(식민지기에는 혼마치(本町)”라고 불렸다)는 주로 일본인들이 드나드는 상업지역이었으며, 조선인들이 드나드는 상업지역은 종로 일대였다. 언어, 의복, 주거, 음식 등등에서 혼종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식민지기 언어의 혼종화를 잘 보여준다), 식민지 서울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은 각각의 생활세계를 구축했다. 덧붙이면,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때는 1941년으로, 그때 '강남(江南)'은 상도동 일대를 가리켰다. 1930년대 중반 용산과 이태원 일대에 일본회사의 사택이 들어서면서 신중간층(회사원, 상인, 총독부 중간관료 등)의 일본인들이 그곳에 살기 시작했고, 1940년을 전후해서 여의도 건너편의 한강 이남에서 일본인을 위한 단독주택이 하나둘 지어지면서 “코우난(江南)이라는 지역 명칭이 일본인들 사이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신분에 따른 거주지 분리는 20세기에 이르러 계급에 따른 거주지 분리로 이어진다. 20세기 자본주의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각각에서 내적인 분화를 가속화 한다. 노동자 계급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는 자본가 계급 내에서의 분화만큼이나 격차사회를 만들어낸다. 또 가내경영의 구중간계급에서 나아가 조직의 운영이나 사업 기획을 전담하는 신중간계급이 출현”(12)한다. 소위 엘리트계층은 자신들만의 생활환경을 조성하고 그 속에서 자녀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급을 재생산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그들만의 거주 공간을 구획한다. 도쿄에서 다양한 계급적 분화의 공간적 구획은 기존의 공간적 분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부자 동네는 야마노테 쪽에 많고, 가난한 동네는 시타마치 쪽에 많다. 그렇다고 생활세계가 분리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하나는 저자가 도시를 산책하며 기술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우선 번역자들이 세세한 지명을 번역하느라 고생했을 것이라 짐작될 만큼 도쿄의 구석구석이 소개된다. 그리고 번역자들이 독자들을 위해 직접 현지를 탐방하고 촬영해서 사진을 책에 실어 놓았다. 그런데 이 부분이 책의 앞선 논의의 분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이 책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이중도시의 도시 공간적 분리를 드러내기보다는 명소의 흔적을 찾는다거나 지명의 유래를 설명한다거나 거리의 인상을 스케치한다. 역시 학자는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를 잘 아는 분야에 물타기 하려 해서는 안된다. 학자는 연구취미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결론 부분이 황당하다. ‘혼종도시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여러 계급의 주거지를 섞어놓는 것으로 혼종도시를 설명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결론은 마르크르주의적이지도 않고 고현학적이지도 않다. 곤 와지로가 시타마치(혼죠후카가와)의 채집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의 생활풍습이 훨씬 더 다양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생활이 묻은 물건들은 자본주의의 상품보다 다양하다. 이 다양성을 곤 와지로는 과거 혹은 전통에서 찾으려는 인류학이나 민속학과는 달리 현재의 삶 속에서 찾아내고자 했다. 만약에 곤 와지로가 지금 시타마치에서 삶의 다양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곳에 누가 살았으며 그 흔적이 어떤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지가 아니라 지금 사는 사람들의 집과 물건을 하나하나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곤 와지로의 채집조사는 산책자의 스케치로 환원할 수 없다.

 

빼앗긴 것을 되찾아온다는 계급적 투쟁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다양성을 찾아야 하는지, 찾는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요즘 나의 이러한 고민을 풀어갈 단서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하시모토 겐지 저자의 현대 자본주의 계급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주목할만하고, 그런 의미에서 2018년에 출간된 언더클래스: 새로운 하층계급의 출현(アンダークラスたな下層階級出現)을 읽어보고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빈곤율이 38.7%에 이르고 풀타임의 판매직과 서비스직에 종사하면서도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것이 어렵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이 많은, 소위 일본 사회의 언더클래스에 대해 그가 어떻게 분석했는지가 궁금하다.

 

이 책은 오탈자가 조금 있다. 눈에 띄는 오탈자를 정리해 놓았다.

 

100쪽 야마토네 야마노테

121쪽 센가와千川 센카와千川

123쪽 다키 렌타로滝廉太郎 다키 렌타로瀧廉太郎 : 인명의 한자표기는 약자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약자를 쓰지 않는다.

132환상의 마을幻景》 → 《환영의 거리幻景: 덧붙이면, 이 책의 부제가 文学都市[문학의 도시를 거닐다]’이다.

132쪽 각주 43 진나이 히데노부가 도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년도는 1990년이 아니라 1983.

133쪽 모리 오가이森鴎外 모리 오가이森鷗外 : 이 경우에는 정자 표기가 원칙이나 약자 표기가 통용되기도 한다.

163쪽 토요타 데쓰야豊田哲也 토요다 데쓰야豊田哲也 : 아마도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의 창업주의 성이 豊田이기에 인명에 쓰이는 豊田의 독음을 토요타로 잘못 알 수 있다. ‘토요타회사 또한 처음에는 토요다였다가 토요타로 바꾼 것이다.

180쪽 오나오치大縄地 오나와치大縄地

181쪽 이쿠라카타마치飯倉片町 이구라카타마치飯倉片町 : “이이구라(飯倉)”라는 지명은 관동지방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바칠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였다는 것에서 유래하는데, 점차 발음의 편의상 이이구라보다는 이이쿠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이구라카타마치(飯倉片町)는 옛 지명의 발음 그대로 통용된다.

184쪽 지도 미타오마야초 미타오야마초

189쪽 히오로 히로오

190쪽 구와하라자카桑原坂 구와하라사카桑原坂

200, 201, 203쪽 도미자카富阪 도미사카富阪

203쪽 세쓰쇼노미야摂政宮 셋쇼노미야摂政宮

204쪽 마쓰하라松平 마쓰다이라松平

206쪽 하쿠산고덴초白山御殿町 하쿠산고텐마치白山御殿町

히카와시타초氷川下町 히카와시타마치氷川下町

207쪽 고마고메니시카타초駒込西片町 고마고메니시카타마치駒込西片町

210쪽 이쿠토쿠엔신지育徳園心字池 이쿠토쿠엔신지이케育徳園心字池

213쪽 각주 19 우치다 핫켄의 출신은 후쿠오카가 아니라 오카야마.

214쪽 네즈초根津町 네즈마치根津町

215쪽 게이힌도호쿠선 게이힌토호쿠선 : 전철이나 기차의 노선명을 고유명사로 보고 현지의 발음대로 표기한다면 ()’까지도 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신간선이라고 하든지 신칸센이라고 하든지. “신칸선이 적절한 표기인지는 모르겠다. 이와 마찬가지로 게이힌토호쿠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16쪽 다바다田端 다바타田端

221쪽 가타구치 야스키치片口安吉 가타구치 야스요시片口安吉 : 보통 인명에서 安吉야스요시로 발음된다.

222쪽 지은이 주 이케노하다池之端 이케노하타池之端

226쪽 신 가시가와 신가시가와 : 지명이므로 붙여서 쓴다. 신주쿠新宿에서 주쿠를 띄어 쓰지 않듯이.

243쪽 슈큐바宿場 슈쿠바宿場

252쪽 하야시 후미코林芙美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 탈자

263쪽 각주 45 오카사카 마리 아카사카 마리

바이브레이타バイブレーター》 → 《바이브레이타ヴァイブレータ

284-285쪽 우지코초카이氏子町会 우지코마치회氏子町会

 

 

 

하시모토 겐지, 계급사회: 격차가 거리를 침식한다(김영진, 정예지 번역), 킹콩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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