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만 조금 건드렸다가 추석연휴에 읽자고 미뤄두었던 『집중과 영혼』을 완독했다. 좋은 책이 그러하듯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는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눈물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 선사하곤 하는 어떤 경이로운 경지를 맛보았을 때의 감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천하고 지질하고 악다구니로 남을 속여 제 잇속을 챙기는 범속한 인간들의 삶을 헤집은 후에 비로소 나타나는 야트막한 나무 등걸에 앉아 숨을 고르는 것이야말로 공부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에서 오는 오만가지의 감정에서 나온 눈물이었다.
안그래도 요즘의 나는 내 공부의 전환을 맞이하고 싶었고 맞이해야 할 것 같았다. 요 몇 년간 내 공부는 내 글을 생산할 정도의 힘을 갖지 못했고 다만 남의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작업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나태한 생활방식이 결국 나약한 몸으로 증상화된 탓도 있지만, 갖가지 갈래의 공부가 제도권의 논리로 귀착되는 세태 속에서 그러나 그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없었던 내 공부가 길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는 어렵고 힘들다. 돌이켜보니 한국의 저명한 학자들의 글이 외국 학자들의 글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겠다. 한국 학자들의 글은 내 삶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알짤 없이 건드려서 그 글을 이해하는 것은 내 삶을 이해하는 것과 같게 만든다. 그들의 글은 구성적인 관념에 머무를 수가 없다. 이제는 거꾸로 생각이 된다. 한국어로 쓰였는데도 아프지 않은 글은 상도를 모르는 장사치들의 상술에 불과하다고.
『집중과 영혼』을 읽으면서 내 삶을 자꾸 되돌아보게 되어서 괴로웠다. 그 중에서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흐지부지 끝나버리거나 내게 남는 것을 따지면서 서로를 아카데미즘(참으로 볼품없는 한국의 아카데미즘이라도)으로의 진입 혹은 활개의 발판으로 수단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동료들을 의심하고 그만큼 나를 의심하는 중에 공부가 번민이 되어버린 이런 저런 ‘공부모임들’이 떠올라 마음이 부대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영민 선생에 비하면 나는 줄 것도 없고 그러한 경험도 미천한데도 말이다.
하지만 내 공부의 길을 찾는 것은, 얼마나 지리멸렬한지 스스로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꽤나 되는 줄 알 정도로 지리멸렬한 한국 아카데미즘을 바로 잡아야할 우리의 ‘공부론’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마치 일본의 (정치)사상사가 ‘외래’사상과 “국학”의 때로는 맞대결 속에서 또 때로는 상부상조 속에서 생성되는 지(知)의 연대기이듯이, 우리의 ‘공부론’은 한국 학자들에게서 젖줄을 댈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서경덕, 정약용, 이능화, 이덕무 등의 ‘공부론’을 논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내 공부가 정말 얕다’(‘아는 것이 없구나’)는 자각에 더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구잡이로 공부해서는 승산이 없다. 내 공부를 선학들의 공부에 비추어 벼리고 벼려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과하게 느꼈던 부분, ‘학인’(學人)으로서의 정체성을 누누이 강조하는 부분은 한국 아카데미즘 체제에서 포지션을 찾을 수 없는 저자 자신의 자기단속으로 비춰지면서도 그렇게 과하게 읽어 들이는 나 자신의 비틀린 자의식의 투영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또 책 말미에 언급한 ‘장소성’, 즉 장소의 의미화는 ‘사람의 무늬’로서의 ‘인문’(人紋)을 논하면서도 그것을 인간에게서 안주시킬 수 없는 저자 자신의 인문학의 보루 같았지만, 나 또한 그러한 마무리에 안도할 수 있었다. 어차피 사물의 존재론(이를테면 그레이엄 하만(Graham Harman)의 객체-지향적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과 같은)이란 인간이 스스로를 단념한다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위의 것들은 이 책의 흠으로 잡힌다 해도 이 책의 깊이는 그 흠마저 아우른다. 그 깊이는 하루하루를 번민으로 힘겨워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김영민, 『집중과 영혼 - 영도零度의 인문학과 공부의 미래』, 글항아리,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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