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민족지(multispecies ethnography)

 

오쿠노 가츠미(奥野克巳)

 

키워드: 복수종, 함께 살다, 반려종, 종들간의 관계성, 뒤엉킴

 

인류학은 새로운 세기에 진입한 이래 문화표상을 둘러싼 논의로부터 동식물과 사물 등을 포함한 자연과 인간이 뒤엉켜서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학문으로 그 연구 방향을 전환시키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작금의 인류학은 인간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너머에서 인간을 말하는 학문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이종들 간의 창발적인 만남을 다루면서 인류학을 인간 너머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려는 다종민족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동물을 사고하기에 적당하다고 파악한 것에 대해, 마빈 해리스는 먹기에 적당하다고 파악했다. 그러나 동물을 포함한 그 밖의 생물종은 인간에게 단지 상징적 혹은 물질주의적인 관심대상만이 아니다. 타종(他種)은 인간 및 다른 생물종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뒤엉켜 살아왔다. 도나 해러웨이가 착목했듯이 동물을 비롯한 다른 생물종들은 인간에게 함께 살아가는존재이기도 하다. 이 아이디어는 해러웨이의 반려종에 유래한다.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의미 있는 타자성을 새롭게 파악하면서 다른 생물종들과의 공생과 협동의 윤리의 존재방식을 탐구했다. 다종민족지는 복수종의 만남을 다룸으로써, 인간만을 주체로 인정하고 아프리오리에 인간존재를 설정하는 기존 인류학의 개념적 틀을 재검토하며 인류학에 내포된 인간중심주의적인 경향에 도전하고자 한다.

로라 오그던(Laura Ogden 2013) 등에 따르면, “다종민족지란 행위주체인 존재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내부에서 생명의 창발을 통한 민족지 조사 및 기술이다. 그것은 서구중심주의적인 특유의 인간상을 탈중심화로 향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흐름에 위치하는 새로운 학문적 장르이다. 톰 반 두렝(Thom Van Dooren 2010)에 의하면 다종인류학은 타종을 단순한 상징, 자원, 인간 생활의 배경으로 간주하는 것을 넘어서서 종들 간 및 복수종들 간에 구성되는 경험세계, 존재양식, 그 외의 생물종의 생물문화적 조건에 관한 두터운 기술을 목표로 한다.

이 글에서는 다종민족지의 몇 가지 사례를 다뤄보겠다. 우선 절멸의 위기에 놓인 독수리의 고통에 관한 톰 반 두레의 연구를 소개한다. 인도에서는 연간 수백만 마리의 소가 죽는다. 그 소들은 신성시되기 때문에 사람이 먹지 않는다. 소가 죽으면 유체처리장으로 운반된다. 그것을 30분만에 깨끗이 먹어치우는 것이 독수리다. 그러나 오늘날 독수리는 소를 먹으면 죽게 된다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빈곤층이 소와 일을 하기 위해 우족의 질병, 유선증, 출산곤란 등에 대한 처치로 비 스테로이드계의 값싼 항생제인 디클로페낙(diclofenac)을 소에게 투여한다. 그 약이 독수리에게 신장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소를 먹은 독수리는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현재 소를 먹는 독수리가 감소하는 대신 소를 먹는 개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개는 독수리처럼 짧은 시간에 남김없이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우지 못한다. 또 그 부작용으로 개가 사람을 습격하고 광견병에 걸리는 일이 잦다. 독수리가 없으면 인간과 동물의 건강에 심각한 해가 올 수 있다. 개체란 관계론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을 포함한 복수종의 맥락에서 타자인 독수리가 느끼는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어떤 종이 멸종하면 많은 유기체가 의존하는 상호작용 또한 사라지게 되므로 복수종의 뒤엉킴은 중요하다. 반 두렝에 의하면 독수리의 고통은 모든 생명이 얽혀있는 뒤엉킴 속에서 증폭된다.

함께 살아가는것의 기초는 해러웨이가 강조하는 사랑만이 아니다. 다종민족지는 나방이나 진드기 등을 포함한 혐오스러운 것들’(해충이나 유해동물)까지 시야에 넣는다. 데보라 버드 로즈(Debora Bird Rose 2011)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과수원 경영자에게 큰박쥐는 유해동물이다. 역으로 큰박쥐의 식재료였던 원시림을 인간이 벌채해서 큰박쥐가 먹을 것이 없어지자 큰박쥐는 어쩔 수 없이 과수원을 습격하게 되었다. 과수원에서는 전기울타리를 설치해서 큰박쥐 무리가 식재료를 구하러 과수원으로 날아올 때 전기울타리에 감전시켜 큰박쥐의 목숨을 끊어놓는다. 큰박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굶어죽던지 전기충격이라는 죽음의 블랙홀에 빠지던지 둘 중 하나다. 큰박쥐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복수종의 네트워크에서 그것은 더욱 나쁜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로즈는 말한다.

다종민족지의 리더격인 아나 칭에 의하면, 소나무, 송이버섯, 균근균, 농가는 서로 얽히면서 생존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메마른 땅에서 소나무와 송이버섯이 공존하며, 그 속에서 균근균이 키워낸 것이 송이버섯이다. 인간은 땔감이나 비료를 구하기 위해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이로 인해 소나무 숲은 유지될 수 있고 소나무로서는 적당히 교란된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 소나무, 균근균, 농가 사람들이라는 우연한 만남에 의해 송이버섯이 자라난다. 칭은 여기서 인간과 자연이 복수로 얽혀 있으며 의존하는 다종적인 관계를 고찰한다. 칭은 인간의 자연은 종들 간의 관계성에 있다.”라고 말한다. 이 아이디어는 앞서 말한 해러웨이의 반려종 개념과 함께 다종민족지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다종민족지의 기본은 민족지 기술 및 조사이지만, 그 조사는 특정 장소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문화인류학의 장기조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복수의 장소에서 행해지는 다종민족지인 경우도 많다. 또 다종민족지는 바이오아트나 예술실천 등과도 관계가 깊다. 2008년의 아메리카인류학회의 연례대회의 하나로 개체된 다종 살롱이 그것을 웅변한다. ‘바이러스와 사이 좋아지려는 시도라는 제목 하에서 C형간염에 감염된 예술가의 혈액을 그것에서 아무 해를 입지 않는 민들레에게 주고 예술가는 민들레 뿌리를 약으로 섭취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이 점에서 다종민족지를 주창하는 에덴 커크시(Eden Kirksey 2014)의 논고가 문화연구의 거점인 학술잡지에 게재된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다종민족지는 또한 최근 발흥하고 있는 환경인문학내에도 자리하고 있다. 환경인문학은 1970년대에 등장한 환경철학, 1980년대의 환경사, 1990년대의 에코크리티시즘 등의 학문을 토대로 발전해온, 환경을 둘러싼 새로운 학제적 영역이다. 우르술라 하이즈(Ursula K. Heise)는 최근 환경인문학의 인류세를 둘러싼 논의에서 다종민족지는 생산적인 장르이며 탈인간중심주의를 시야에 넣은 분야라고 평가하였다. “인류학자들은 인류학에서 이제까지 연구대상으로 삼아온 인간사회를 복수종에 의해 구성되는 코뮤니티로서 다루고자 한다. 복수종에는 예를 들어 인간의 위장에 사는 미생물, 감염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식용으로 재배되는 식물, 식용동물이나 애완용 동물 등이 포함된다.”

 

Kerksey, Eden (2014) The Multispecies Salon. Duke University Press.

Ogeden, L., Hall, B., & Tanita, K (2013) "Animals, Plants, People, and Things: A Review of Multispecies Ethnography", Environment and Society: Advances in Research 40(1): 5-14.

Rose, Deborah Bird (2011) "Flying Fox: Kin, Keystone, Kontaminant", Australian Humanities Review 50: 119-136.

Tsing, A. (2015) 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ng of Life in Capitalist Ruins. Prinstone University Press.

Van Dooren Thom (2010) "Pain of Extinction: The Death of a Vulture", Cultural Studies Review 16(2): 271-289. 

 

Lexicon 現代人類学54-57.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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