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권의 책으로 2014년을 마감했다. 한권은 지난해 12월 20일 오사카대학에서 열린 <グローバル冷戦と1950年代日本の文化/運動>[글로벌냉전과 1950년대 일본의 문화/운동]이라는 심포지엄에서 받아온 『時代に抗する―ある「活動者」の戦後期』[시대에 저항하다: 어느 "활동가"의 전후]라는 책이고, 또 한권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와의 대담집인 『作家自身を語る』[작가 자신을 말하다]라는 책이다. 두권 모두 별도의 집필자가 인터뷰를 정리, 재구성했다.

  한국에서 인터뷰록의 출판은 일본에서만큼 활발하지 않다. 한국의 출판시장의 다양성이 일본에 비해 협소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한 시대적 성찰의 가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되어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리타 류우이치의 용어를 빌어 말하면, 역사에 대한 "카타리카타"(語り方: 말하는 방식) 그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는 존재양식에 그 뿌리를 둔다는 점에서 정치영역으로 환원되지 않을 뿐더러 존재양식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저 역사가 주어진 것이라고, 그 "주어진 역사"를 학습할 뿐이다.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에 앞서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말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어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시대와 시대의 대화를 유도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시대적 성찰을 통해 인류가 더 나은 인류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먼저 『時代に抗する―ある「活動者」の戦後期』[시대에 저항하다: 어느 "활동가"의 전후]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이 책은 스기모토 아키노리(杉本昭典)라는 인물의 전후 일본공산당 활동을 풀어놓은 것이다. 그는 1928년생으로 1946년 일본공산당에 입당한다. 효고현(兵庫県)의 어느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금속제조회사에서 근무한 그는 일본공산당의 "경영공작자"로서 노동운동을 이끈다. 그가 공산당원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패전 후 비로소 자신이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져왔음을 자각하고,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1946년 6월 치러진 총선거에서 18년간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어느 공산당 후보의 연설만으로 공산당이 스스로의 역사를 열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정신이 비참한 결과로 이어졌을 때 우리는 응당 그 시대정신에 저항했던 사람들에게서 다음의 시대를 말한다. 지금은 과거에서 미래를 말하지 못하는 시대, 더 정확하게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시대이지만, 당시 일본은 저항하는 삶에게서 역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시대였나보다. 

  일본공산당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본공산당은 패전 직후 진주한 미군을 "해방군"이라 칭했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赤旗』복간제1호(1945년 10월)에는 미점령군을 "해방군"으로 평가하고 감사와 협력의 희망을 표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일본점령 초기정책은 '비군사화'(육군의 해체, 산업의 비군사화 등)와 '민주화'(정치적 민주화, 재벌해체, "이에"(家) 제도의 폐지, 노동제도의 개혁 등)였다. 그런데 1946년 6월 포츠담 칙령 이후 미국의 태도가 돌변하여 '점령목적에 유해한 행위'는 모두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에 일본공산당은 합법과 비합법이라는 이중적 구조로 조직을 운영했다. 한편 1947년 3월 트루만 독트린 연설, 6월 마샬플랜 공표, 10월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의 연합인 코민포름의 설치 등 냉전기가 개시되면서, 일본공산당은 국제사회주의 연대를 표방하는 '국제파'와 일본 국내의 사회주의 운동에 매진하자는 '소감파'로 갈리게 된다. 이 의견의 대립은 다수파인 '소감파'가 소수파인 '국제파'를 '분파활동"을 이유로 제명하기 시작하면서 일본공산당의 분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일본공산당의 다수파는 군사노선을 취하면서 당내에 '군사위원회'--"Y"라는 별칭의 중핵자위대: 이것이 1960년대 학생운동의 폭력투쟁을 선도했던 "중핵파"로 이어진다--를 설치하여 폭력투쟁을 이끈다. 이것이 일본공산당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1960년대 학생운동 내의 만연한 "린치문화"의 배경이 되었다.  

  스기모토 아키노리는 당내 소수파인 '국제파'의 일원으로 1950년 한반도의 반전운동을 주도했고, 재일조선인의 민족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러나 그 역시 1961년 공산당원에서 제명되었고, 그후 "사회주의혁신운동"의 전국위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지금까지 의료생협협동조합과 시민운동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일본공산당은 1922년 창립된 후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내가 만난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공산당의 노선에 찬성하지 않다 하더라고 그 역사의 유구함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일본공산당은 갖가지 선거에서 후보를 내며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으로 자리하고 있다. 1946년 공산당원으로 입당한 후 1961년 제명되기까지의 어느 공산당원이자 노동운동가의 회고담을 정리한 이 책은 사실상 이념지향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앞으로의 역사를 기획하고 다양한 지층의 삶을 발굴하여 미래의 인류의 자산으로 삼고자 할 때에, 살아있는 역사로서 그의 공산당 활동의 이력을 담은 이책의 의미와 가치는 충분하다.

 

  다음으로 오에 겐자부로의  『作家自身を語る』[작가 자신을 말하다]를 소개하겠다. 이 책은 2012년 한국에 번역되었다. 그런데 내가 읽은 것은 2013년 12월에 발간한 것이고, 한국에 번역된 것은 2007년 5월에 출간한 것이다. 오에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2011년 3.11 이후 그의 삶은 크게 변화한다. 오에는 2005년 인터뷰 이후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앞으로 소설은 쓰지 않고 삶을 정리해나가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3.11 이후 일본의 "애매함"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결심한다. 실제로 오에는 반핵, 반전, 반우경화의 각종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머지 과로로 쓰러지기까지 한다. 내가 읽은 2013년 12월본은 3.11 이후의 인터뷰를 더해서 출간한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나는 <만연원년의 풋볼>까지만 읽었는데,  『作家自身を語る』을 읽고나서 그 후의 책도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가장 최근작인 『晩年様式集』은 꼭 읽어보고 싶다. 그의 후기작은 초기작과 중기작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힘으로 계속 성장하여 그들 간의 새로운 인연으로 엮이며 또 다른 삶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시대의 어느 국면의 집점을 연결하는 역할을 전신으로 받아들였던"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이 『晩年様式集』에 이르러 그 삶들을 성찰하여 "신화와 토착"의 어떠한 양식을 만들어내었다고 하니, 8,90년대의 "낡은" 시대의 감각을 버리지 못해 오는 시대와 협의할 수밖에 없는 나와 같은 "중년"의 삶에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한다. 

  그 외 이 책은 감동적인 교훈을 던져주는 말들로 빼곡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샤르트르와의 교류,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우정, 스승인 와타나베 카즈오(渡辺一夫)에 대한 평생에 걸친 존경과 신뢰는 내가 스스로 신뢰를 저버린 관계들과 인연들을 아프게 되돌아보게 한다. 오에가 말한 "자유검토의 정신"은 관계들을 비판적으로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신뢰를 이어가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것인데, 나는 불신함으로써 내가 자유로와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또 소설가로서 오에의 근면함은 단지 맹목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실존주의자들을 인용하며 근면함이란 세상의 변혁에 투신하되 자신의 일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집회에 참여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는 평소와 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쓴 것처럼. 자동차를 타지 않고 전철을 이용하는 이유를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근면함을 배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질로 말해지는 것들이 결코 관념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에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장남인 "히카리"와의 50년이 넘는 삶은 매우 구체적이다. 오에는 50년을 매일밤 자정무렵 손을 씻기 위해 자다가 일어나는 "히카리"를 살펴주고 스스로 이불을 덮지 못하는 "히카리"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고 한다. 오에는 어느날 '이것이 나의 "영원"인가'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우리가 구체적인 삶의 정황들 속에서 '인간'을 묻는 것처럼.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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