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은 『문예』 2010년 봄호부터 2012년 여름호까지 연재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카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라는 출판사에서 2012년 7월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2014년 7월 문고판으로 재출간했다. 

1964년생인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소설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戰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역사화할 수 있는가를 과거와 현재의 소통의 장으로서 신화의 세계를 빌어 풀어보고자 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1980년의 16세의 마리와 2009년의 45세의 마리가 전화로 연결된다. 16세의 마리는 영문도 모른채 미국 북동부로 보내져 고등학교 9학년에 재학중이며 이방인으로서 힘겹게 살고 있다. 45세의 마리는 자식도 없고 세금 내는 법도 몇년째 잊을 정도로 수입도 변변찮은 그저 그런 소설을 쓰며 지낸다. 16세의 마리는 45세의 마리가 엄마인 줄 알고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45세의 마리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여전히 모른다. 45세의 마리는 '엄마'라고 부르는 16세의 마리를 도와주고 싶다. 자신을 돕기 위해. 

이렇게 45세의 마리는 16세의 마리를 "말하기" 시작한다. 

1980년, 미국의 고등학교로 보내져 한 학년이 유급된 마리에게 학교측은 본래의 나이에 맞는 11학년으로 올려주는 대신 '공개모의토론'을 제의한다. 그것은 1946년 1월 도쿄에서 치뤄진 극동국제군사재판, 이른바 A,B,C급 전범을 국제사법처리한 '도쿄재판'을 재현하는 것이다. 마리는 도쿄의 자신의 집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도쿄재판'에 대해 물어보는 중에 자신의 엄마가 도쿄재판에서 통역을 맡았음을 할머니로부터 알게 된다. 그러나 마리의 엄마는 '아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것은 마리에게 '부인'이 아니라 '거절'로 받아들여진다. 즉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전쟁에 대한 '침묵'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완고한 '거절'과 같다. "우리집에는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침묵이라는 거절. 그 대가로 16세의 마리는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선생과 학생들이 '미국과의 전쟁으로 다수가 희생한 일본인들이 미국을 증오할 것이다'라는 말의 역사적 감각을 느낄 수 없다.   

45세의 마리는 패전 이후 30년동안 일본은 전쟁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급속한 경제발전은 '군국주의'라는 간판을 내리고 평화의 미명 하에 경제전쟁에 집중했던 "시대극"에 다름 아니다. '괜찮다, 괜찮다'라는 거짓투성이의 "시대극"은 버블경제로 막을 내린다. 그래서 45세의 마리가 보기에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버블경제 후의 10년이 아니라 그 이전이다. "시대극"이 걷힌 후에 비로소 말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16세의 마리는 "천황의 전쟁책임'을 주제로 '공개모의토론'을 준비하면서, 전후 일본에서의 천황의 논리를 간파해간다. 일본 정치의 정통성과 결정권의 분리 구조, 그래서 어떤 결정권도 가지지 않았다는 '상징으로서의 천황'이라는 '면죄부'로 천황은 전범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천황이 모든 통수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정(GHQ)과의 공모로 천황에 내려진 면죄부는 전후일본사회를 은폐의 나라로 내몰리게 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전후 일본의 '상징천황'과 도쿄재판의 논리만을 따져들었다면 그 반대의 논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저 소설을 가장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도쿄재판에서 재판 자체를 무효로 선언한 판사가 있었다고 한다. 인도인인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제정된 법으로 전쟁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법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오히려 소설에서는 '상징천황이므로 도쿄재판에서 제외되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천황은 "평화에 대한 죄"를 범한 A급 전범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평화에 대한 죄"는 16세의 마리가 미국의 친구들과 '사슴사냥'을 하면서 비유적으로 설명된다. 어린 사슴을 포획한 친구들은 포획이 금지된 어린 사슴을 사냥에 참가한 사람수만큼 나누어 각자의 집에 묻기로 한다. 사냥이 끝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리는 17세의 미국인 남자에게 성교를 '당한다'. 16세의 마리는 배를 위로 향하고 사지를 사방으로 벌려 죽은 어린 사슴과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는 자신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비로소 어린 사슴에 대한 자신의 "죄"를 묻는다. 

또 '상징천황'이기에 천황은 이미 개인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인민의 상징으로서 천황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인민이 일본이라는 바람과 땅과 하늘의 소산인 것처럼 일본이라는 나라와 인민의 소산이다. 따라서 일본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전쟁의 참상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죄"이며 일본을 상징하는 천황의 "죄"이며 일본이라는 인민의 "죄"이다. 16세의 마리는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I"의 천황을 재현하면서, "전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역사는 물론 과거의 사실이 아니다. 아니,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사실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역사라고 부를 이유도 없거니와 역사를 논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역사라고 한다면, 우리가 우리에게서 전달되는 생물학적 유전자로 환원되지 않는 삶과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죽은 자에게서 삶을 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죽은 자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죽은 자가 살고 있는 신화의 세계에 역사는 빚을 지고 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내가 먹은 것을 감추면서 남에게 먹히는 것을 가려낼 수 있을까. 45세의 마리는 번역불가능한 "천황"의 신화로부터 전후 일본의 '상징천황'이라는 은폐와 기만의 역사를 들추어낸다. 그것은 신[천황]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먹고 먹히는 인간의 연약함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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