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상의 출처를 밝히는 것, 그것은 이론에 관한 지식이 결코 시대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지식과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실천적으로 해명한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생성의 인류학'―차이를 통한 타자로의 열림―이 우리에게 감흥을 주는 것은 그것이 시대와 공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의 글은 그것을 잘 서술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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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의 변덕스런 혼』 일본어판 역자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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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Eduardo Viveiros de Castro, “O mármore e a murta: sobre a inconstância da alma selvagan”(2002 In A inconstância da alma selvagem. São Paulo: Cosac Naify, pp. 183-264)의 번역본이다. 이 책의 초안이 된 논문에는 몇 가지 버전이 있다. 맨 처음 버전은 1992년에 발표된 포르투갈어 논문이다. 그것을 기초로 하여 1993년 불어판이 나왔고, 2011년에 영어판이 나왔다. 이 영어판은 1992년의 포르투갈어판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2010년 수정한 미발간 포르투갈어 원고에 기초한다. 1992년의 포루투칼어 논문집에 수록된 다른 논문들도 향후 수세이샤(水声社)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의 번역과정은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당초 번역자들은 새롭게 재작성된 영어판에 기초하여 번역작업을 진행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콘도 히로시(近藤宏), 후반부는 사토미 류주(里見龍樹)가 담당했다.) 그런데 진행 중에 저자인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재작성한 원고에서 각주 등이 대폭 생략된 영어판을 번역의 원본으로 삼는 것은 저자의 희망을 따르지 않는 부적절한 조치로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자들은 일단 작성한 번역문을 2002년의 포르투갈어판과 대조하여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이 작업은 주로 콘도 히로시가 맡아 진행했다). 이때 포르투갈어판과 영어판에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전자에 따르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본문의 상이한 부분, 특히 영어판에 더 추가된 포르투갈어판의 부분은 〔 〕표시를 해두는 방침을 세웠다. 포르투갈어판의 각주를 모두 담아내어 영어판보다 더 원저에 충실하고자 했다. 다만 이 책에서 혹시 있을 부정확한 번역어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은 영어판 제목에서 따왔다. 이 책의 초안이 된 포르투갈어판의 제목은 “대리석과 은매화—야생의 혼의 변덕스러움에 대하여”인데,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제목이 책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의 제목을 달게 되었다. 다만 제목이 길지 않도록 영어판의 부제는 생략했다. 나아가 저자인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이름을 포함하여 인명 표기는 기본적으로 기존 관례에 따랐고 또 책 전반의 일관성에 유의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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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를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그는 1951년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고, 폰띠피시아 카톨릭 대학 리오데자네이루 사회과학부에서 사회학을 배운 후 1974년 브라질국립박물관 대학원 과정에 진학했다. 1974년 야와라피티(Yawalapíti)에서 조사를 시작하여 1977년에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 파라주에 있는 투피계 인디오인 아라우에테에 대한 조사를 행했다. 이 조사를 기초로 1984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간행된 박사논문 『아라우에테—식인의 신들』(1986년) 외에 1990년대에는 「아마존의 트라비타형의 측면들」(1993년)이라는 논문을 통해 아메리카니스트로서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나아가 「우주론적 직시와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비즘」(1996; 1998)이라는 논문을 계기로 지역을 불문하고 인류학 분야에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현재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라 불리는 새로운 이론적 동향을 이끌고 있다. 이제까지 일본에 번역 출간된 그의 논문ㆍ저작은 다음과 같다.

2011년 「강도적 출자와 악마적 결연」 『현대사상』

2013년 「구조주의와 생성변화」 『사상』

2013년 「내재와 공포」 『현대사상』

2015년 『식인의 형이상학』

2016년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비즘과 다자연주의」 『현대사상』

이중 2013년 『사상』지에 실린 논문에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자신의 지적인 영향 관계 등이 담긴 인터뷰에 기초한 역자 해제가 덧붙여져 있다. 또 이 논문을 포함한 『식인의 형이상학』에는 ‘다자연주의’,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비즘’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들뢰즈 철학과의 관계 등 최근 인류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논의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은 세계적인 인류학자로서 입지를 다진 저자가 그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책이다. 2002년의 저작집 전체 제목에 이 책의 초안인 논문의 부제가 쓰인 것을 보아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자신에게도 이 책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생성론적 인류학을 확립했고 지금까지 그 개념적 논의를 전개하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사고에 근접해가는 브라질 출신의 민족지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해두어야겠다. 그가 현지조사를 시작한 1970년대에 아라우에테와 그 종족이 속한 투피-구아라니계의 사회들은, 인류학의 영역에서 마이너한 아마존 지역 선주민 사회들 속에서도 그 복합적인 사회조직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메이저한 제어족(Gê語族)과도 다른 연구대상이었다. 인류학에서 극히 마이너한 집단 특유의 사회성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 그의 논의는 그 출발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점차 확장해갔다. 이것은 이 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속에서 아라우에테와 투피-구아라니 연구는 역사적인 맥락에 위치하면서도 인류학 및 정치학의 사상사적 질문을 포섭한다. 이와 동시에 이 책은 기이하게도 같은 시기 레비-스트로스가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사고와 존재의 원리로서 제기한 ‘타자로의 열림’을 처음으로 고찰한 저작이기도 한다. 이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레비-스트로스의 『살쾡이 이야기』(1991년)와 ‘타자로의 열림’에 관한 논의를 긍정적으로 참조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이 논의야말로 레비-스트로스의 사고와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사고를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살쾡이 이야기』는 아마존 사회들의 사회성을 개념화하기 위한 중요한 착상의 원천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인류학적 사고의 출발점을 밝히는 초기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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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의 논의는 1992년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1992년은 브라질 리오에서 지구서밋(서방선진국 정상회담)이 개최된 해이며, 또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정확히 500년이 되는 해이다. 식민지 개척에 의한 대륙 발견을 축하함과 동시에 구대륙과 신대륙의 만남을 새롭게 조명한 이 해에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그러한 만남을 다시금 문제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 논문이 다룬 주제는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인디오 혼의 ‘변덕스러움’이다. 그러나 유럽인과 선주민의 만남을 다시금 되묻는 주제로서 이 논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이 책에도 등장하는 질베르토 프레이레(Gilberto Freyre)는 브라질의 국민 형성을 논한 저서—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비판적으로 언급한 저작이기도 하다—에서 이 책의 자료와 동일한 사료를 가지고 선주민 여성이 성과 생식에 의해 (피)식민자로 통합되는 과정을 브라질 국민형성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논증한다(Freyre 2005). 존 헤밍은 16세기 브라질 아마존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유럽인의 도래 이후 점차 선주민을 휘감은 전쟁의 격화를 다룬다(헤밍 2010). 몬티이루는 16세기 중반 이후 인디오 지배를 확립한 두 가지 대응, 즉 멘데사의 투피족과의 전쟁과 예수회 신부의 교화촌 건설에 주목한다(Monteiro 1999).

이처럼 남미의 동해안에서 유럽인과 선주민의 만남은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손에 남겨진 영역에 추가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이 책 23쪽)고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선택한 ‘변덕스러움’이라는 논점은 이제까지의 질문들을 되묻는 것이라는 저자 자신의 판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입장을 단서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사고의 기저를 이루는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을 마주할 때 사고해야 하는 것’에 접근하면서 이 책의 의의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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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책의 최초 판본이 레비-스트로스의 『살쾡이 이야기』(1991년)에 동시대적으로 응답한 것이라는 점이다. 『살쾡이 이야기』는 이 책과 유사한 관점에서 쓰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 점을 확인해두어야 한다.

1991년에 간행된 레비-스트로스 신화론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저작인 『살쾡이 이야기』에서는 북아메리카 북서 해안부의 안개 신화와 바람 신화 등의 신화군이 분석되는데, 책 전반에서 이 지역의 신화군에 차용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민요가 언급된다. 이야기의 차원이 아니라 유럽인과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만남이라는 유사한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이 만남의 주제화는 서론의 다음 구절—이 책에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참조한 구절이기도 하다—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이원론을, 그 철학적ㆍ윤리적 원천까지 파헤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 이원론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백인이 [인디오와] 정반대의 자질로 인해 인디오와 맞부딪혔다고 하지만 백인과의 최초 접촉에서 인디오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타자에게 열려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바로 여기서부터 하나의 사건을, 즉 신세계—발견이라기보다—침략을, 그 사람들과 그 가치의 파괴라고 나는 부르고자 하는데, [인디오와 백인의 만남을] 축복으로 삼을 때에 이것[타자로의 열림]이 상기되는 것은 회한이며 기도이기도 하다. (레비-스트로스 2008: 1270)

‘타자로의 열림’의 순간에 펼쳐지는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이원론에 대해서는 몇몇 연구가 진행되었는데(山口 2011; 渡辺 2009 등),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사고에 자신이 ‘이항성의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한 것을 찾아내고 또 확인한다. 이 이항성의 이데올로기적 특징은 영속적인 시소 게임 속에서 잡히지 않는 균형 위에 수립된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쌍생아와 연결된다. 쌍생아는 […] 듀메질(Georges Dumézil)이 고찰한 인도유럽 문명의 사고와 같은 동일성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신화론에서 나타나는 절대적인 차이를 상징한다. […] 불균형한 두 극의 부단한 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이원론은 우주를 뒤흔들며 그 균형을 확보한다. (Mauzé 2008: 1875)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논의가 레비-스트로스의 발견에 전면적으로 의거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최초 저작인 아라우에테 민족지는 그 집단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그 외 투피-구아라니계의 민족들과의 비교 속에서 기술된다. 그 목적은 ‘투피-구아라니의 우주론의 포괄적 모델의 구축’(Viveiros de Castro 1992:ⅹⅴ)이다. 동일성을 원리로 삼지 않고 우주론적으로 포섭된 사회의 양상을 기술하는 속에서 투피남바 족에 관한 민족지적 보고도 등장한다. 양자(『살쾡이 이야기』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논문)는 각각의 독자적인 길로 나아가면서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 공통의 사고로 근접해간다고 말할 수 있다.

『살쾡이 이야기』와 이 책 사이에는 확실히 공통의 저류가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인디오혼의 변덕스러움을 논하는 것이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사고를 특징짓는 ‘타자로의 열림’을 묘사하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논증 절차는 매우 번잡스럽다.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철학을 논하기 위해 선교사의 눈에 비친 인디오의 모습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레비-스트로스의 대응과 대조된다. 레비-스트로스는 투피남바 족을 논할 때에도 새로운 인물이 탄생됨에 따라 차이가 더욱 확대되도록 이야기가 전개되는, 백인 신(神)인 마이루가 등장하는 신화 텍스트를 직접 언급함으로써 타자로의 열림을 표상하는 인물, 즉 신대륙에서의 쌍생아의 형상—동일하면서도 불가능한 대상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간다.

이와 비교하면 ‘변덕스러움’을 가이드로 삼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방식은 기억하는 자가 보다 전경(前景)에 나타난다. 분개하는 비에이라, 낙관시하는 노브레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안시에타…. 변덕스러움은 선교사들의 시선에 비친 투피남바 사회의 양식에 관한 것으로서 그 시선의 소유자를 불러내지 않고서는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 투피남바와 같은 시대를 산 유럽인이 이 논의에 반드시 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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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논의 전개에서 16세기 유럽인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살쾡이 이야기』의 또 다른 특징, 즉 16세기 유럽인인 몽테뉴가 소환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살쾡이 이야기』에는 「몽테뉴 다시 읽기」라는 제목의 장이 개개의 신화분석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마지막 장 직전에 돌연 배치되어 있다.

프레데릭 켁은 레비-스트로스의 후기 저작에서 보이는 몽테뉴에 대한 참조를 루소에 대한 언급과 연결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참조하는 인물의 변화는 “자연주의에서 회의론으로 이어지는 인식론적인 패러다임”일뿐만 아니라 “18세기—인류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진화론에 의한 해결을 눈앞에 두고서 루소, 칸트와 함께 초월론적인 심리학이 응답한 때라고 레비-스트로스가 재발견한 시기—에서 16세기—인류학이 인문학=인간성의 나머지 반(半)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아야했던 정복의 시기이며 몽테뉴는 이 시기를 최초로 자각한 증인이다—로 거슬러가는 역사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로도 이해될 수 있다(Keck 2008: 1878). 구대륙과 신대륙의 만남 이후 500년,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사고를 이끌어가기 위해 몽테뉴를 동시대인으로서 호출했다. 그러나 그 몽테뉴론은 다소 기이하게 전개된다. 여기서 조금 우회해서 그 큰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자.

『수상록』의 여러 장에는 신세계 발견의 영향이 나타난다. 그 충격에 대한 몽테뉴의 반응은 신세계 관습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었다. 반면 투피남바 족을 논할 때에는 “이성에의 호소가 후렴구처럼 되살아난다”(레비-스트로스 2008: 1446-47).

이러한 몽테뉴의 태도에는 계몽의 철학—‘이성에 기반한 사회라는 유토피아’—과 문화상대주의—‘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의 부인’—의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사변적이지 않다면 실천적인 이성의 지령에 응하는 움직임”, 즉 “모든 습관에는 동일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양식에 부응할 수 있도록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사회의 관습에 순응하게”(레비-스트로스 2008: 1447) 된다.

한편 몽테뉴 나름의 문화상대주의를 『수상록』의 “다른 장보다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민족지적인 테마로 다루는”(레비-스트로스 2008: 1447) 「레이몽 스봉의 변호」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그 속에서 다양한 관습의 관점에서 이성 그 자체가 판단된다. 새롭게 발견된 신대륙 관습은 유럽의 그것과 이질적이면서도 유사하다. 결국 그것은 관습조차도 확실한 기반이 없는 것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철학전반에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회의론의 정식화—우리는 존재와의 사이에 어떤 교류도 가질 수 없다—에 이른다. 존재론적이라기보다 지(知)에 대한 이 회의는 “지(知) 자체를 규정하는 지(知)는 지(知)인 것일까?”라고 의심된다(레비-스트로스 2008: 1450).

그러나 지(知)의 회의론은 철저하지 않다. “만약 이 근원적인 회의론에 우리의 사고와 활동의 모든 것을 바친다면 삶은 불가능해진다. 경험적인 확인사항과 대립하지 않는다면 일관된 회의론은 자살 등의 가장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레비-스트로스 2008: 1451). 결국 “회의론은 종교적인 신앙고백을 의례작법으로 환원한다. 그 대신 (다름 아닌) 이 의례작법의 존중은, 실제 생활의 활동전체를 고려한다면 회의론의 표명이 기질의 문제일 뿐인 세계를 보는 것을 허용한다”(레비-스트로스 2008: 1452). 이와 같이 회의론은 특정한 ‘보수주의적인 색체를 띠게 된다’.

이렇게 독해된 몽테뉴는 16~17세기의 선교사와 모험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라고 레비-스트로스는 평가한다. (다만 켁이 지적하듯이 『살쾡이 이야기』 이후 레비-스트로스는 더욱 인상적인 방식으로 몽테뉴를 종종 언급한다.) 몽테뉴의 모습과 부분적으로 중첩되는 선교사나 모험가는 신대륙 선주민의 관습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의 그것과 연결지음으로써 그 발견이 주는 충격을 흡수해간다. 즉 신세계는 유럽의 과거와 동화되었다.

몽테뉴 개인의 모습까지 파묻어버리는 이 기묘한 몽테뉴론에는 일정한 절차가 있다. 오레곤과 브리티시콜롬비아의 선주민 신화에 차용되는 캐나다-프랑스계의 민요의 재창조는 타자와의 만남에서 보이는 ‘유럽인의 반응’과는 매우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아메리카 선주민 측에서 발견되는 것은 앞서 보았던 타자로의 열림인데,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확증하기 위해 오레곤과 브리티시콜롬비아의 선주민이나 투피남바 족이 아닌 또 다른 선주민 사회인 아스텍과 잉카를 가져온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아스텍과 잉카의 붕괴, 즉 유효한 저항으로써 정복자들과 싸울 수 없었던 그들의 모습은, 성스러운 전승(傳承)이 그 귀환을 예언하고 나아가 현지 민중을 기다리게 한 행방불명의 신들을 현지인이 정복자들 가운데서 느꼈다는 사실에 의해 많은 것들이 설명된다. (레비-스트로스 2008: 1445)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아스텍과 잉카는 사회의 파국을 더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여기서 완전히 이질적인 세계와의 만남에서 몽테뉴의 회의론이기도 한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던 ‘유럽인의 반응’과 스스로 파국을 불러들였던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반응이 병치된다. 그런데 이 병치는 그 어떤 다른 물음으로 옮겨가지 못한다. 아스텍과 잉카에서 보이는 ‘불가능한 쌍생아’의 형상을 확인하면서 「몽테뉴 다시 읽기」의 장은 마무리된다. 몽테뉴의 사색을 살펴보려는 이 시도는 또 다른 유럽적인 반응과 또 다른 신세계에 대한 태도를 찾아내는 것 혹은 1992년 이전에 다시금 발견되어야 하는 윤리와 도덕의 편린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몽테뉴의 사색을 단순히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주의와 이성이 충돌한다는 점 등에서 자신의 사고를 몽테뉴의 사고에 근접시키고 있다.)

어느 쪽에도 치중하지 않으면서도 불편할 정도로 대조적인 반응의 이 단순한 병치는 그 차이에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회피함으로써 신대륙의 선주민을 상상하는 ‘회한과 기도’의 장을 열어놓고 그 속에 남아있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몽테뉴론은, 1991년 출판이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레비-스트로스 2013a: 103)고 저자 자신이 회고한 『살쾡이 이야기』—레비-스트로스 자신 안에 축적된 연구과제인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사회철학인 이원론의 고찰—에서 동시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적인 대응이라는 성격이 부여될 수도 있다. 『살쾡이 이야기』가 출간된 직후인 1992년에 이탈리아 일간지인 ‘레프브리카’에 게재된 「몽테뉴와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상징적인 우연의 일치라고 지적했다. 신세계 발견으로부터 정확히 백년 후인 1592년이 몽테뉴가 서거한 해라는 것, 즉 백년 주기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몽테뉴가 중첩된다. “현대의 사고의 기초를 이룬” 몽테뉴는 적어도 그 사색을 신세계에 빚지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서양세계 또한 자신의 발전의 상당 부분을 신세계에 빚지고 있다. 이 우연의 일치는 사물의 가치의 측면뿐만 아니라 현재의 서구가 신세계 없이는 성립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레비-스트로스 2013b). 레비-스트로스에게 아메리카 대륙의 ‘타자로의 열림’의 발견은 신대륙에 대한 서구의 위치를 역사 속에 재위치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에게 백년 주기가 만들어낸 역사적인 우연의 일치가 상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해소되지 않는 부채이며,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파괴된 것 혹은 파괴되고 있는 것에 대해 ‘기도하는 것’ 혹은 존재가 위협당하고 있음을 사고하는 것이다. (『살쾡이 이야기』를 유럽인과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 간 만남의 재고로 위치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에 캐나다에서 일어난 모호크 인디언 봉기 때문이라고 레비-스트로스는 회고하였다.) 기억을 회복하거나 기도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동시대 사회에 타자의 모습을 불러내고 비판의 계기를 열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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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에게 『살쾡이 이야기』는 서구의 역사가 그려낸 동시대 세계에 대한 비판과 연결되며 몽테뉴가 그 안내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논의와 얼핏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살쾡이 이야기』의 몽테뉴론을 살펴본 것은 레비-스트로스의 몽테뉴처럼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게 노브레가와 안시에타 등이 그 나름의 비판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시대로 불러낸 인물상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디오에 관한 것만이 아닌 ‘변덕스러움’이라는 주제의 설정은 자신과 닮지도 않았고 동화시킬 수도 없었던 16세기 유럽인을 논의 속에 필연적으로 호출한다. 그리고 이 인물을 통해 사고하는 것은 인디오에 관해 말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산출하게 된다. 이렇게 설정함으로써 이 책의 행간에 감춰진 동시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나 신대륙에 살고 있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비판은 서구 세계에 살고 있는 레비-스트로스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형태를 취한다. 이것은 이 책의 형식적인 특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는 서두에서 말미까지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주된 논의가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으로 완결되는데, 논문의 주석이 아닌 보족적인 코멘트가 종종 삽입되어 있다. 이 코멘트에는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로베르트 다마츠타와 피터 가우 등의 남미 저지대 선주민의 민족지학자, 파가손과 샤농, 자크 리조 등 야노마미 연구자, 질베르트 프레이레와 브아르키 데 오란다 등의 브라질 역사가, 진보파 교회에 속하는 현대 선교사들, 인디헤니스모[각주:1]의 추진자들이다.

이 모든 이들은 20세기 브라질과 아마존 인디오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이들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논의가 16세기 선교사들의 모습을 환기하는 논의와 병렬로 놓인다. 이 형식에서 분명한 것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게 투피남바 족을 논하는 것은 동시대 사회를 겨냥한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합중국의 인류학자인 나폴레옹 샤농이 등장하는 부분이 있다(이 책 108-110쪽). 이 야노마미 연구자는 지금도 인류학의 윤리를 둘러싼 광범위한 논의에서 핵심적인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렇게 된 계기는 2000년에 영어권에서 출간된 『황금향의 그늘』이라는 제목의 어느 저널리스트의 책(Tierney 2000)에 있다. 이 저작의 일부는 거의 근거 없이 기술되었음이 확인되었는데, 샤농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사실로서 확인되는 부분이 많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그때까지 아카데미즘 내에서 이뤄져왔던 비판을 다시금 정리해서 기술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Borofsky 2005) 이 코멘트도 이 책의 최초 판본(1992년)에 이미 언급되었으며, 『황금향의 그늘』 이전에 샤농의 어떤 논문을 계기로 일어난 논쟁을 문제로 삼고 있다.

1988년 샤농은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야노마미 사회에서 나타나는 복수 등 살해를 수반하는 폭력이 생식상의 성공을 위한 활동이라는 것을 통계 데이터를 통해 논증하고자 했다(Chagnon 1988). 그는 사망자 수에서 차지하는 살해 비율이나 다툼의 경험자 비율 등의 통계 데이터를 사용해서 야노마미의 폭력성을 평가하고 그 폭력을 야노마미 사회의 본질적인 활동으로 보았다. 이 논문에 대해 브루스 알베르와 자크 리조 등의 다른 야노마미 연구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야노마미에 관한 인구와 살해자 통계 데이터를 수집한 장소의 정보가 모호하다는 의구심이 제기되었고 현지 개념의 의미를 혼동해서 통계 데이터가 작성되었음이 지적되었으며 여성을 둘러싼 다툼으로 전쟁을 위치짓는 논의 자체가 일부다처의 낮은 비율을 생각하면 통계적으로도 지지받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리조는 그 자신이 야노마미에서 행한 조사결과에 기초한 연구를 샤농이 불명료한 형태로 참조했으며 야노마미의 폭력은 인상적일만큼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비판도 표명하였다(Albert 1989; Lizot 1989).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또한 그와 같은 관점에서 그들을 지지하였다. 또한 리조는 샤농의 서술이 미디어에 확산됨으로써 야노마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유포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비판이 함의하듯이 샤농 논문의 문제는 과학적 데이터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그 기술이 발생시키는 집단의 이미지와도 결부되었다. 

1987년부터 브라질의 야노마미가 살아가는 일대에는 불법적인 금 채굴이 성행하였으며 야노마미와 금광채굴업자의 충돌도 빈번하게 발생한 탓에 의료 팀 등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이 이 지역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게다가 지하자원 개발과 더불어 야노마미의 권리가 인정된 토지의 경계를 재검토하는 논의가 브라질 국내에서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샤농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야노마미를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사람들로 규정하는 내용의 기사가 영어권에서 유포되었으며 이어서 브라질 국내의 몇몇 신문에 게재되었다. 이 일 직후 브라질 군부의 요직에 있는 인물이 야노마미의 토지를 세분화하는 정책안을 채택한다. 그들이 하나의 토지에 함께 살면 더욱 폭력적으로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상황에서 브라질 인류학회—당시 회장은 마뉴엘라 카르네이로 다 쿠냐—가 인류학자의 학술적 성과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자각을 촉구하는 항의문을 북미 인류학계에 전달하기도 했다(Albert 1992; Borofsky 2005). 즉 인디오의 폭력을 말하는 것이 사회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이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직접적으로 이 일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자신의 논의가 사실로서의 폭력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있을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폭력과 관련된 측면에서 타자를 대상화할 때의 배려가 엿보인다.

그런데 샤농을 언급하는 부분은 다른 인류학자인 파가손에 대한 코멘트에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샤농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입장을 읽어낼 수 있다. 파가손의 논의는 샤농을 비판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샤농의 논문이 일으킨 논쟁이 보여준 문제를 중시하면서도 그것이 만들어낸 대립적인 틀—샤농파/반샤농파—에 자신을 위치짓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논쟁을 소화 흡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 논쟁이 일으킨 몇몇 논의가 폭력과 관련된 측면에서 타자를 대상화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의 대처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영어판에서 부활한 한 구절—1992년의 논문에 적혀있던 한 구절—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이 책 106-107쪽). 폭력의 발생을 역사적 조건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사회생물학적인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둘은 모두 그 사람들을 고유한 방식으로 ‘사회를 생각할 능력이 없는 자’로 위치짓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선주민 고유의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고방식과 같은 이유로 인지과학적인 상징표현론이 비판된다(Viveiros de Castro 2013: 493).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게 인디오의 폭력을 문제시하는 논의에 대한 응답은 폭력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어떻게 폭력의 현상을 통해 타자를 파악할 것인가를 되묻는 것이다. 즉 폭력적인 관점에 기초한 대상화는 실제의 폭력적 행위를 타자의 본질로 삼는 것과 같지 않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취하는 자세이다. 이러한 관점은 사상/사고 없는 자로서 인디오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타자를 사고하는 것이다. 여기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나름의 작업에 의한 대칭성—“현지인이 말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Vibeiros de Castro 2003)—에 기초한 타자이해의 모랄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의 대상화의 모색은 동시대의 다른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1980년대 말 건설안이 제기된 싱구 강 댐 개발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논문(루시아 멘도사 모라토 데 안드라데와 공저)에서는 그 계획의 담론에 묻힌 인디오의 대상화 양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문제제기 한다.

계획을 입안할 때 환경에 대한 영향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이때의 환경이란 물리적 환경, 생물적 환경, 사회-경제적 환경을 그 하위개념으로 갖는 개념이다. 이 환경개념에 의해 인간 또한 댐이나 보전구역이라는 환경의 구성요소가 된다. 반대로 그 환경 혹은 ‘복합이 주체’가 된다. 그 결과 “인구는 자연화되고 자연종으로 동화되어 <부정적인 영향>이나 일시적 혹은 <창조적>인 정비에 복속된다”(인용문 중 <>는 저자 자신이 댐 개발 계획서에서 인용했음을 나타낸다)(Vibeiros de Castro & Morato de Andrade 1990: 66).

이러한 계획의 담론은 인디오 사회를 광의의 환경으로 포괄하고 또 그 사람들을 ‘자연인’에 가깝게 만든다. 이 이미지는 자연의 수호자로서 자연환경과 일체가 되는 인디오의 이미지에도 가깝다. 그런데,

인디오 사회를 사회적인 주체로서 생각할 수 없다는 이 손해는 그 대상(代償)으로서 국가의 공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한 부정적인 자연화를 일으킨다. 이것은 진화론의 도식에 기초하여 확립된, 뒤처진 것으로서, 또 충분히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으로서 인디오 사회를 표상한다. 인디오 사회를 관념적인 대문자 인간의 불완전한 샘플—그리고 통계상 무의미한 것—로 이해함으로써 이 이데올로기는 이 사람들이 충분한 사회 상태에 있다고는 인정할 수 없고 객체화된 비대칭적이고 자연화된 형식 하에서가 아니라면 문화적인 차이를 사고할 수 없다(Vibeiros de Castro & Morato de Andrade 1990: 67).

이렇듯 국가차원에서 인디오는 국가에 통제된다. 브라질의 경우 그 통제는 양의성으로 가득한 ‘보호’의 형식을 취한다. 이 ‘보호’란 신체적으로 보호되면서도 통합에 의해 고유의 사회성을 파괴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이 보호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 ‘인디오의 영토를 자본의 투자에 대해 개방하는’ 것이다(Vibeiros de Castro & Morato de Andrade 1993).

인디오 고유의 사회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은 인디오의 자연화(그것과 동질의 역사화)에 항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것은 동시대의 사회 속에 인디오를 위한 다른 장소를 만들어내는 대응과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는 과제이기도 하다. “왕 없는, 법 없는, 신앙 없는” 암묵의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부재에 의해 사회를 특징짓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성 그 자체 속에서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인디오를 둘러싼 구체적인 상황에 직면한 커다란 과제이기도 한다. ‘변덕스러움’을 논하는 것은 이를 해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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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디오의 변덕스러움이 현실적인 문제임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변덕스러움은] 브라질 인디오에 대한 현대의 규율 훈련가들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지금도 울려 퍼지고 있다.” 또 20세기 브라질을 살아온 인물이 16세기 선교사들의 모습과 중첩되는 형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질베르토 프레이레와 부아르키 데 오란다 등 브라질의 국민성 논의와 관련된 역사가, 그리고 인디헤니스모의 추진자, 진보교회파, 인류학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후자의 그룹은 동시대 사회 속에서 인도적인 모습으로 인디오와 결부된다. 그들은 모두 경험적으로 인디오에게서 변덕스러운 종자의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16세기 선교사의 모습과 중첩된다. 인디오의 변덕스러움을 성가시게 생각한 선교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현실적인 인물상이다. 반면, 질베르토 프레이레 등에게 성가시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인디오의 모습은 어떤 인종주의적인 인식과 일체가 된다. 부아르키 데 오란다 등의 인용문이 보여주듯이 인디오의 변덕스러움은 생산성을 높이는 활동 혹은 ‘시민사회’적인 모랄과의 불화의 증거이다.

시민사회와의 관계에서 어떤 무능력을 노정하는 인디오의 모습은 브라질에서는 인디오의 법적 신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였다. 1916년의 민법 이후 인디오에게는 특별한 법적신분—‘한정적 무능력’—이 할당되었다. 인디오의 법적인 능력이 통상의 시민보다 제한하는 상태에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공적기관이 인디오에 대해 후견권을 가지는 것이 정당화되어왔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차별적인 규정으로 보이지만, 아마존 개발 과정에서 인디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인디오에 대한 국가의 후견권을 구체적으로 담당하는 행정기관인 인디오 보호국(Serviço de Proteção aos Índios)이 설립 당초 “필요하다면 내 자신이 죽어도 결코 죽이지 않겠다”를 모토로 삼은 것처럼, 후견 제도는 분명 인디오 보호에 공헌해왔다. 이 제도는 “속기 쉽기 때문에 <한정적 무능력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상용거래에서 특별히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선주민에 대한 후견이라는 관념은 경멸적인 시대착오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매우 유익한 법적 영향력을 그들에게 끼치고자 하는 것이다”(Carneiro da Cunha & Almeida 2000: 318). 이후 몇몇 법과 개정헌법을 통해 인디오에게 법적인 특권, 세금 우대나 토지에 대한 영속적인 점유 등이 승인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통합이라는 틀을 전제로 하는 신분이기도 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 특수한 법적 신분으로부터 탈각하여 통상의 시민이 되는 절차는 1973년에 제정된 법률에 의했다. 이에 따라 필요한 것은 ‘이탈(Emancipação)’의 절차였다. 이것은 후견 제도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며 언어능력과 양복을 입는 습관 등을 몸에 익힌 인디오가 청구하여 민사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가리켰다. 그러나 이탈은 그와 동시에 인디오의 신분을 지켜왔던 특권을 잃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토지에 대한 권한상실을 의미했다. 정부가 인정하는 집단의 영속적인 점유권 대신 개인의 특권으로서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보호를 통해 인디오 이외의 경제활동이 금지된 토지가 매매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Ramos 1998: 243-248; Carneiro da Cunha & Almeida 2000). 인디오가 통상의 시민이 되는 것과 토지가 매매 가능하게 되는 것이 일체가 되는 이 신분의 변화에 대해서는 1978년 당시 내무장관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Ramos 1998: 243).

1988년에 새로운 헌법이 발포된다. 신헌법에서 인디오의 권리로서 토지에 대한 집합적인 권리가 인정되는 대신에 특별한 법적 신분은 폐기된다. 그러나 이 헌법의 초안이 논의된 1987년에는 ‘문화변용한 인디오’, ‘문화변용하지 않은 인디오’의 구분이 정해짐으로써 ‘토지에 대한 권리의 법적 승인에 의해 다른 법적인 철자를 확립하기’ 위한 법령이 발포된다. 그 결과 투카노와 야노마미는 토지에 대한 배타적인 점유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지하자원 채굴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Carneiro da Cunha 1993: 14). 나아가 그보다 앞선 1981년에도 최종적으로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국립인디오재단(인디오 학살과 권리를 둘러싸고 부당하게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1967년에 해체된 인디오 보호국의 후견조직)은 ‘인디오성(性)의 기준’을 확정하는 60가지 이상의 항목을 만들고자 했다(Ramos 1998: 249-252). 카르네이로 다 쿠냐는 새로운 헌법을 논한 1990년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그것[행정부]이 인디오의 권리들을 오로지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미개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의 이미지에 더 이상 인디오가 일치하지 않을 때 그 권리들이 소멸하는 것은 분명하다”(Carneiro da Cunha 1993: 15).

시민사회와의 관계에서 누가 인디오인가, 그리고 인디오란 어떤 자인가? 이러한 질문이 1980년대 브라질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나아가 행정부는 어떤 진화론적인 관점을 인디오가 무능력하다거나 문화 적응했다거나 하는 판단의 기반으로 삼았다. ‘한정적 무능력’이라는 신분 탓에 인디오는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시민으로의 통합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그 신분을 제거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 설정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틀에서 차이는 통합의 도식과 그에 기초한 능력의 진단 속에서 위치지어진다. 인디오를 시민으로 삼는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해도 이러한 처분이 가능했던 차이의 사고방식이 [브라질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다 큐냐는 지적한다.

이 시기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도 앞서 다룬 싱구 댐에 관한 것 외에도 인디오의 신분에 관해 짧게 언급해두었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정책 차원에서 인디오의 ‘자기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후견 제도에 대해(Vibeiros de Castro 1983), ‘인디오성의 기준’ 등의 유사과학적인 판단이 후견 제도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Vibeiros de Castro 1982), 마땅한 토지승인의 양상에 대해(Seeger & Vibeiros de Castro 1979) 등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 직면하여 그 나름의 견해를 표명해왔다.

‘인디오성의 기준’을 비판할 때에는 ‘인디오성’은 어떤 인류학자도 규정할 수 없는 ‘유사과학적’ 개념이라고 비판한다(Vibeiros de Castro 1982: 32). 민족적인 특징이란 맥락에 따라 변용하는 것이며, “어떤 집단의 민족적인 동일성은 유전적, 사회적(사회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초월적인 실체가 아니다. 모든 통일성은 언제나 상황적이며 맥락에 의존하며 구축되는 것이다[…]”(Vibeiros de Castro 1982: 34). 확실히 여기서는 통합을 전제로 타자를 배치하는 ‘인디오성의 기준’이라는 개념적인 장치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비판을 행하고 있다. 앞서 댐에 관한 논의도 살펴보면, 인디오 정책을 비판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브라질 인디오의 운명을 좌우해왔던 인디오라는 차이의 통치에 의한 대상화를 되묻고 있다.

이와 같이 ‘변덕스러움’을 논하는 것은 인디오의 대상화를 되묻는 시도이다. ‘변덕스러움’은 확실히 16세기 선교사들의 시선에 비친 인디오의 모습인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 선교사들과 같은 시선을 20세기의 다양한 사람들 또한 공유하고 있다. 선교사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무능력을 인디오에게서 찾아낸 것처럼, 부아르키 데 오란다는 시민사회적인 행동에 대한 무능력을 찾아내고 있다. 통합을 전제로 하는 정책을 생산한 관료적인 관점이 인디오에게서 찾아낸 것은 ‘능력’의 유무이다. 그렇다면,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변덕스러움의 모습을 재고하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미개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정도에 따라 타자에 장소를 부여하거나 빼앗는 사고, 백인의 것을 사용하는 것을 ‘문화적응’으로 진단하는 사고에 항의하면서 20세기 말 브라질이라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백인 유래의 물품을 인디오가 이용한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문화적응’이라고 평가하는 것 사이를 단절시키는 사고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게는 이미 확립된 사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라우에테를 자신의 조사지로 선택한 경위를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내가 인류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 투피족은 과거의 절멸했거나 ‘문화적응’한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재구성과 ‘민족변용’의 사회학 이회에는 민족학적인 조사를 통해 해명되는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70년대에 아마존 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파라주에 사는 ‘고립된’ 투피-구아라니계의 인디오와 막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리니, 아라우에테, 파라카냐 등이 그들입니다. 아시다시피 투피-구아라니계의 고전적인 자료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유명한 투피남바 족의 전쟁에 의한 식인입니다. 그런데 아라우에테에게서 무언가 그와 비슷한 것이 발견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라우에테로 조사를 간 것은 이제까지 연구되지 않은 집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그들이 투피계였던 것이지요. 아라우에테에서 조사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그들이 외부와 접촉한지 5년 정도 경과된 후였고, 5년은 매우 짧은 기간이기 때문이지요. (Viveiros de Castro 2002: 479)

아라우에테는 그 외의 투피계와는 다르게 문화 적응한 상태가 아니었고 오히려 막 접촉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문화적응의 상태에 있다고 상정하기 어려운 집단을 선택해서 조사를 행한 것인데, 그런데도 그들에게서 백인 유래의 물품이 흔하게 보였다.

전통적인 치료방법을 구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인디오 포스트[인디오와 접촉하기 위해 국립인디오재단이 설치한 출장소. 다양한 교역품이 여기서 인디오 마을로 유입된다.]가 존재하는 한에서) 서양의 의료와 치료의 방법에 대한 아라우에테의 의존도는 매우 높다. […] 의료와 헬스워커(health worker) 서비스를 요청하는 목소리는 매우 높았고, 현실적이든 상상속이든 인디오의 필요성을 한층 증폭하고 정치-의례적인 영역까지 그것이 미치고 있었다. […] 모든 점에서 내린 결론은 아라우에테가 틀림없이 백인의 수중에 있으며, 민족의 모습이 급속하게 그리고 통렬하게 변형되는 길을 가게 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점이다. (Viveiros de Castro 1992: 20)

그러나 백인이 인도한 길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에서 종족의 모습이 상처 입거나 변형하는 것, 즉 문화적응의 표지는 없었다. 위의 인용문을 뒤이어 다음의 문장이 이어진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지적인 대응이며 아라우에테는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스타일에 의해 그들과 우리 사이의 개념적인 차이를 상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Viveiros de Castro 1992: 20)

요컨대 백인의 물품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문화적응 혹은 종족변용으로 진단하지 않는 것은 그 자신의 판단을 바꾼 것이다. 동화의 증거가 읽힐 수도 있는 곳에서 아라우에테의 차이에 대한 사고를 차이로서 읽어 들인 것이다. 즉 동화의 징후의 해독에서 새롭게 대체된 사고가 작동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차이의 장을 여는 사고이다.

‘변덕스러움’이라는 주제를 논하는 것은 이것과 동형의 사고의 실천일 것이다. “야생의 변덕스러움은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 사회에서 함께 생활할 때에 경험하는 어떤 것에 확실히 대응한다”라면,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본인 또한 변덕스러움을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며, 선교사들에게는 자신과 동화되지 않는 상대 그 자체이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때때로 ‘변덕스러움’에 대한 선교사의 비판의식이 자유간접화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기술된 이 텍스트는 그렇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혹은 적어도 저자인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텍스트를 그렇게 구성하고 있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선교사와 부분적으로 중첩된 위치에 있는 만큼, ‘변덕스러움’을 재고하는 것이 단지 16세기의 몰이해에 대한 비판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대응은 그 자신조차 거꾸로 새로운 사고를 탐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변덕스러움에 초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혐오하는 감성에, 그로부터 파생하는 차별의식에, 그 의식에 의해 용인된 불평등한 대우에 결코 일치하지 않는 사고과정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곧 인디오 사회를 해체할 수 있는 사회정책을 지지하는 사고의 조건에 항의하는 것이며, 동시대 사회에서 실현되는 차이를 사고하는 조건을 바꾸려는 도전이기도 하다. 이 사고의 이미지는 후에 현대적인 인류학적 사고로서 결실을 맺는다. “인류학의 역할은 타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를 다원적으로 만드는 것이다”(Viveiros de Castro 2014).

여기서 구대륙에서 신대륙을 사고하는 레비-스트로스와 달리 인디오 사회의 일원으로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차이를 생각해내기 위해 불가결한, 자신을 변화시켜나가는 지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태도와 일체화가 되었을 때 차이에 대한 사고는 사회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수백 년간 이어져온 차이에 대한 사고의 조건을 되묻기 위해서는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차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혐오와 차별로 전화되지 않는 사고방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20세기말 브라질 사회, 앞으로 더욱 인디오와 관계가 밀접해질 사회, 16세기 선교사가 자신으로 동화시켜야 하는 누군가가 있는 사회에서 다른 방식으로 차이를 사고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대응은 단지 타자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완수할 수는 없다. 문화개념, 나아가 권위와 복종을 둘러싼 사상사적인 사정범위를 더욱 깊게 파고들어 ‘우리’의 사고에 근본적인 도전을 해야 했다.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차이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 차이를 혐오와 차별과 불평등으로 전화시키지 않는 사고를 탐구하는 것은 다만 20세기 말의 브라질 사회에 한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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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역자들이 처음 만난 곳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를 게스트로 맞은 2010년 12월의 국제심포지엄의 회장이었다. 당시 지금처럼 그의 연구를 맞아들일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그때의 우연이 지금의 기회로 이어졌다. 그것은 하나의 타자를 생각하는 것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맛본 둘도 없는 기회였다.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포르투갈어 번역과 가타카나 표기에 관해서는 다카하시 케이스케(高橋慶介)에게, 16세기 선교사의 텍스트 해석에 대해서는 파울라 오죠스 한토리(Paula Hoyos Hattori) 씨에게 조언을 구했다. 물론 이 책의 모든 책임은 역자 2인에게 있다. 또 저자인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씨와 연락을 도운 야다우치 타다수(箭内匡) 에게 감사하다.

또 수세이샤(水声社)의 고토 토오마(後藤亨真)에게, 부분적으로 이 책의 돌발적인 제작 과정을 잘 이끌어왔던 것에 감사하며, 또 번역의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

 

 

  1. 인디헤니스모(indigenismo) 라틴아메리카 선주민의 복권운동. 16세기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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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의 형이상학』에 관한 짧은 소회를 적어놓는다. 이 책은 최근 인류학에서 거대한 폭풍처럼 일고 있는 ‘존재론적 전회’라는 이론적 흐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래서 소회라는 것은 이 책에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깊이 파고들어서 논리적으로 정리해내기에는 내가 아직 이 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작업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그 작업에 단초가 될 만한 피상적인 생각의 편린들을 생각나는 대로 간략하게 언급해두고자 한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 매료되었던 것은 이 책의 저자인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독특한 글쓰기 양식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내가 받은 학문적 훈련의 정신은 한마디로 말하면 ‘상식에 준하기’이다. 즉 학문을 상식화하는 것, 상식을 학문화하는 것이다. 상식은 상식적으로 대다수가(혹은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가리킨다. 어떤 대상에 관한 상식들의 관계형식을 설정하고 그 설정된 관계형식으로 그 대상에 관한 상식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려서 결국에 그 대상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것,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이해하고 실행한 학문이 그랬다. 그러나 나는 한편 이러한 ‘상식 쌓아올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지루했고 너무나도 고루했기 때문이다. 다만 ‘상식 쌓아올리기’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겠다. 그것은 달리 말해 돌이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학문의 실행방식이 나만의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학회지 논문들을 읽지 않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돌이 어떻게 재미를 주겠는가? (돌이 재미를 준다면 그것은 돌을 형상화하는 사고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학회지 논문들, 그 논문들이 논하는 무엇들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표현을 빌면 이미 ‘응고된 행위’로서 사물화된 것들에 불과하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오게 된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지식의 주변부에서 중심부의 지식을 ‘진리’로 수입해오던 한국 학계의 관행, 그에 안주하고 이권을 챙겨온 유학파 출신의 기득권 교수집단, 그에 편승하고 굴복한 무수한 석박사과정생들, 그리고 나처럼 그러한 기득권집단과 대학 언저리의 떡고물로 연명하는 준-학자집단, 이들의 살아가는 방식의 총합, 즉 ‘정신의 식민화’가 작금의 이 사태를 불러들였다. 

그렇다면 학문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상식을 비판하고 상식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이 상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문은 새로운 상식을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문은 사방을 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적들과 상식을 논하지는 않는다). 이 상황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유연관계‘론’을 아날로지적으로 가져와서 묘사해보겠다. 카스트로는 생산과 생성을 친족체계의 출자(出自)관계(부모-자식관계, 즉 혈연관계)와 유연(類緣)관계(인척관계)에 각각 대응시켰다. 카스트로에 의하면, 레비-스트로스의 친족의 구조주의에서 친족의 존재방식은 생산으로서의 출자관계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생성으로서의 유연관계를 구조화한다. 그러면서도 친족은 유연관계를 출자관계로 끌어당기려 한다. 이를테면 한 남성은 그의 아내의 남동생과 매형-처남관계(많은 부족사회에서 이러한 관계는 “의리의 형제”로 불린다)가 되는 한편, 그 남성의 처남은 그 남성의 자식의 삼촌이라는 출자관계의 선을 따라 설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출자관계의 선을 끊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완벽한 유연관계, 즉 처남-매형만의 순수한 인척관계로 남는 방법)은 유연관계의 매형-처남을 잠재적인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카스트로는 브라질 남단의 투피남바 족의 카니발리즘 의례를 통해 이를 설명해낸다. 투피남바 족은 전쟁의 상대편을 의도적으로 생포한 후 생포한 포로를 집단 내의 여성과 결혼시키고 일년이라는 일정 기간 매형-처남관계로 지낸다. 그리고 일년 후 포로를 죽이는 의례를 행한다. 이 의례의 절정에서 죽임 당한 포로의 신체는 집단 내의 성원들에게 음식으로 제공된다. 이때 의례의 집행자이자 포로의 대리자인 샤먼과 포로의 아내는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 샤먼과 포로의 아내를 제외한 집단성원들은 포로의 신체를 ‘의례적으로’ 먹음으로써 포로의 퍼스펙티브를 얻는다. 이처럼 생산을 끊어내고 생성을 얻는 대가는 죽음이다. 생성으로서의 학문은 유연관계로서의 적을 둘 뿐이며, 그때의 생성은 죽음의 이면에 다름 아니다.

『식인의 형이상학』의 토해내듯 정곡을 찌르는 긴장감,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독아청정의 독자성, 어떤 인과관계의 상식을 허용하지 않는 서슬 퍼런 청량감, 이것들로 한번에 독자를 저격하는 그의 글쓰기 양식은 투피남바 족의 카니발리즘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사냥과 전쟁, 음식과 카니발리즘 사이를 위태롭게 유영하면서 말이다.

에두아르도 콘이 말했듯이 막스 베버에 의한 근대성은 탈주술화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들뢰즈를 인용한 표현에 따르면, 개념을 얻는 대신 내재평면을 잃은 것이다. 신이라는 개념과 인간이라는 개념은 성스러운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을 파멸적으로 분리해내었고, 근대적 인간은 인간이라는 개념의 식민화에 지배되고 말았으며 역설적이게도 식민지(=대지)에 종속되고 말았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형이하학의 토대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형이상학은 식민지(=대지)에서 탈식민화하는 것이다. 그의 학문은 근대가 식민화한 형이상학을 죽음의 생성으로서 되살려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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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2016년 5월호에 실린 논문 한편을 번역했다. 이 논문은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이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와 만나는 여러 지점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조금 더 논의를 밀어붙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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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라는 ‘궤변’

메이야수의 ‘선조이전성’ 개념에 기초한 칸트인류학 비판

 

오오하시 칸타로우(大橋完太郎)

(사상사/표상문화론)

 

1.

경험은 일말의 분자로부터 수백 년을 단번에 앞질러서 생명의 전 역사를 거슬러 인간사회에 이르는 장대한 총합의 시도를 신용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일찍이 진화론이 지껄였던 그러한 ‘자연의 철학’은 종종 최악의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

이 발언은 1976년에 발표한 미셸 푸코의 논고 「<생물-역사학>과 <생물-정치>」의 서문의 일부이다. ‘생명의 역사’가 초래한 최악의 결과란 무엇인가? 푸코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을 중심으로 진행된 우생사상에 기초한 사회정책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파생한 우생학이 나치즘 정권 하에서 단종과 격리의 논의를 형성했고 실제로 특정한 민족을 배제하는 ‘과학적인’ 근거가 되었던 것은 오늘날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위기에 저항한 프랑스의 현대지식인으로서 레비-스트로스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의 사례는 푸코의 염려를 잘 설명해준다. 여기서는 모리스 블로흐의 논의에 기초하여 레비-스트로스가 놓인 상황과 그의 작업의 의의를 개괄한다. 블로흐에 따르면, 레비-스트로스가 독자의 인류학 이론을 구상한 이유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강력하게 대두된 우생사상에 대한 저항이었다. 즉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이라는 종의 이론, 나아가 인종의 이론을 지지하는 ‘자연주의’적인 견해와는 다른 관점을 세우고자 했다. 1943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49년에 간행한 『친족의 기본구조』는 우생학의 이름으로 알려진 사회-생물학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우생학적인 사고는 진화론적인 관점 하에서 자손을 남기려는 이전 세대의 관심을 출발점으로 하여 부모-자식의 유전학적인 연결을 강조하고 그에 의해 친족관계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타인이 자신과 혈연관계인가 아닌가라는 관점에서 모든 인간사회의 기원과 성립을 설명하는 사고이다. 그런데 레비-스트로스에게는 사회를 혈연적 유대로 환원하는 사고는 혈연적 유대를 유지하는 일종의 에고이즘을 은폐할 뿐이다. 거기서는 인간이라는 종이 자연에서 문화로 이행한 존재라거나 그 이행할 때에 인간이 의식적으로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 망각되고 만다. 근친상간 금지란 인간사회의 기반에 혈연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혈연이 아닌 것들과 유대를 맺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 구성한 복잡한 교섭체계로 [근친상간 금지가] 사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의 복잡성이 뇌를 중심으로 하는 신경계의 복잡함에 기원하지도 않으며 문화를 뇌의 구조의 직접적인 반영으로도 간주하지 않는다. 인간은 문화에 침전되면서 자신을 얽어매는 문화를 만들고 변화시킨 존재이며 그러한 변환의 주체로서 인간정신을 일종의 ‘튜링 머신’(Turing machine)[각주:1]같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푸코와 레비-스트로스 이 두 사람에게 생물학적 진화론의 기원의 사고의 총합은 위험한 귀결을 초래할 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의 분리 및 결합의 양태이다. 본론에서는 이러한 분열을 어떤 방식으로 결정적으로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한 칸트의 인류학적 사고를 검토하면서 그 문제점을 소묘해나가겠다.

 

 

2.

칸트는 1784년에 간행한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보편사의 이념』에서 자연의 경향성과 사회의 통일성을 가교하여 인간을 사회의 형성으로 향하게 한 것을 ‘인간의 비사회적 사회성’이라고 명명했다. 이 인간본성은 분명 모순된 내용을 포함한다. 칸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본성은 ‘사회 속에 들어가고자 하는 성벽(性癖)이지만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사회를 분단하는 공포의 한 일반적 저항과 연결된 성벽’이다. 전자의 사회적 경향성에서 인간은 사회 속에 자신의 자연적 소질이 발전해가는 것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에 머물지 않고 모든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혼자 있고 싶다(고립하고 싶다)’는 성질을 자신 속에서 발견한다. 흥미로운 것은 고립상태의 양의성이다. 고립상태에 놓인 인간은 자기의 경향과 타자의 경향이 상반되며 결과적으로 그 인간은 자기 안에서 타자에 대한 경향을 발견함과 동시에 타자 안에서도 자기에 대한 저항이 있음을 본다. 이 저항을 단서로 인간은 문화적 상태로 이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저항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힘을 불러일으키고, 태만으로 기우는 마음을 넘어서게 하며, 분명 함께 있는 것은 싫지만 놓아줄 수도 없는 동료들 옆에서 공명심과 지배욕과 소유욕에 뛰어들어 하나의 지위를 획득하기까지 인간을 몰아세운다. (p.8 (A21))

인용한 이 구절이 칸트에 의해 ‘문화 상태로의 진정한 첫걸음’이라 불리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인간에게 타자에 대한 적대와 질시, 자기 것을 독점하고픈 욕구는 ‘거친 자연소질’이지만 이 소절을 통해서 인간은 ‘목가적인 양치기’나 온후한 ‘방목된 양’의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고 칸트는 생각한다. 비사회성 혹은 일반적 저항은 인간이 자연에게서 받은 은혜이며 때로 재해를 일으키면서도 그것 없이는 문화적인 발전을 구동시킬 수 없는 본원적인 자연의 힘이다. “인류를 길러내는 자연과 예술 및 그보다 우월한 사회적 질서는 모두 비사회성이 맺은 결실이다. 이 비사회성은 자기훈련을 거쳐 그 강제적인 기법을 통해 자연의 맹아를 완전하게 발전시키도록 우리 신체에 강요한다”(p.11 (A22))는 언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칸트가 생각하는 문명사의 발전에서 자연 상태로부터 문화적인 상태로 이행할 때에 필요한 ‘자연의 힘’이 개체의 레벨에서 요구된다. 문화적인 상태는 자연 상태의 연장이지만 그것은 어떤 종류의 자연성을 괄호에 넣고 그와 별개의 특수한 자연성에 의해 구동됨으로써 발생한다. 루소적인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자연성을 통해(이 타입의 자연성은 홉스의 자연 상태와 유사하다) 자연과 역사를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자연의 합목적성에 따라 사회의 발전이 보증된다. 이 또 하나의 자연성의 내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티격태격 하고 사람을 시기하고 경쟁을 좋아하는 허영심, 만족을 모르는 소유욕 혹은 지배욕”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하여 평화롭고 태만을 좋아하는 자연성과 불화하는 또 하나의 자연성을 조정하는 해결책으로서 자연이 요청하는 것이 바로 시민사회의 실현이다. 칸트에게 역사의 목적성과 자연의 목적성의 일치는 이처럼 복수의 서로 다른 자연성을 화합시킴으로써 성립한다. 문제는 이 서로 다른 자연성이 실제로는 얼마만큼 질적으로 다르며 또 어느 정도로 다른가 하는 점이다.

인간의 자연적 성질의 총체와 역사적 성질의 총체의 차이는 예를 들어 유전과 민족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어휘에 의해 사고될 수 있다. 그리고 복수의 서로 다른 자연을 하나의 자연으로 사고하고자 한 칸트가 보편사의 성립, 인류사의 기원, 만물의 종언, 인종의 차이를 거의 동시에 사고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푸코와 레비-스트로스가 우려한 바는 이미 칸트의 영위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칸트에게 인류의 기원과 종말을 생각하는 것과 인종 간의 차이와 동일성을 사고하는 것 사이에는 대체 무엇이 저류로 관통하고 있는 것일까?

 

 

3.

여기서는 앞서 서술한 모호한 자연의 영역을 명확히 하기 위해 칸트에 의한 자연사와 자연기술의 차이에 주목해보자. 1788년에 발표한 『철학에서 목적론적 원리의 사용에 대하여』에서 칸트는 요한 게오르그 아담 포레스트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연사와 자연기술의 개념을 구별하고 있다. 자연사란 ‘인간이성의 손에 닿지 않는 자연의 사건에 대한 서사이며’ ‘식물이나 동물의 최초의 성립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서사를 말할 권리는 신이나 조물주에 속하며, 인간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없다고 칸트는 말한다. 그러나 자연의 작용법칙을 관찰에서 끌어내어 현재와 옛 시대와의 연관을 작용법칙에 따라 추적하는 권능이 인간에게 주어진다. 이 방식으로 세계의 기원을 탐구하는 ‘자연사’에 대해 칸트는 그 가능성 자체는 인정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사의 탐구는 자연기술의 정치화(精緻化)에 의해 한계지어진다.

실제로 이 두 작업은 서로 완전히 이질적이다. 한편(자연기술)에서는 학문으로서 위대한 체계의 위용으로 나타나는 데에 반해, 다른 한편(자연사)에서는 단순한 편린이나 동요하는 몇몇 가설만이 제시될 뿐이다. 이처럼 양자를 분리하여 후자를 독자적인 하나의 학문으로서, 눈앞의 (그리고 어디서라도) 작품이라기보다도 투영도(投影圖)의 모습으로만 수행 가능한 학문(여기서는 대다수의 질문에 대해 ‘해답 없음’이 제시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으로 그려낼 때에 내가 여기서 바라는 것은 한편의 학문에 대한 잘못된 통찰에 의해 본래는 다른 한편의 학문으로만 귀속하는 사태를 바라는 대로 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자연사에서 현실적인 인식의 범위(실제로 이미 약간은 소유되고 있다)와 그와 동시에 이성 그 자체만으로 자연사적 인식의 한계와 이 인식을 최선의 모습으로 확장하기 위한 원리들을 보다 명확한 방식으로 판별하는 것이다.

칸트는 자연사의 탐구를 ‘투영도’의 모습으로 수행하는 데에 대한 염려를 말하고 있다. 이성의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정밀과학(자연기술)의 성과를 확장하는 것은 이성의 자의적인 행사일 뿐이다. 기원이나 성립을 묻는 ‘자연사’의 탐구는 이성에 내재하는 인식의 한계와 그것을 ‘최선’의 방식으로 확장하는 원리에 기초하여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칸트에게 ‘인종’ 개념은 이러한 전제 하에서 전개된다. 칸트는 포레스트가 제창한 흑인과 그 외의 모든 인간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유전적 특성의 존재는 근원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 인도인, 아메리카인의 유전적 특성을 동일한 클래스 분류 속에 위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정한 인종을 특별시하지 않는 칸트의 인종이론은 그 의미에서 평등하며 반인종차별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칸트에게 인종 개념은 실은 그렇게 명확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개념 자체가 칸트에게 이념(이성개념)일 뿐이며 그 의미에서 오성에 의한 무조건적인 논증을 전제로 한 것일 뿐이다. 칸트는 자연기술에서 이해된 인류라는 보편적인 표징을 근간, 종족들(변종들), 나아가 다양한 인간품종(變樣種)으로 분류하는데, 이 분류 자체는 관찰을 거쳐 자연기술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들 모두는 종에 대한 단순한 이념이며, 생식에서 최대의 다양성과 혈통의 최대의 통일이 이성에 의해 통합된다는 정도로 상정”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이성은 생식의 다양성과 혈통의 최대의 통일을 동시에 보증하는 것으로서 그 의미에서 특별히 합목적적인 기능을 가진다. 그리하여 종족의 다양성이 근간의 합목적성에 의해 기초 지어지고 보증되는 것과 동일한 구도로 변양종의 다양체는 종족의 합목적성과 그 통일성을 한계 짓는다. 달리 말해, 교배의 무한의 가능성은 그것이 일정 정도의 통일성을 필연적으로 파괴하는 변양종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냄으로써 보증된다는 것이다. 칸트의 이 생각은 동물과의 비교에서 명백한 주장으로 귀결된다. 즉 칸트에게 이성에 의해 통일되는 인간에게는 잡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은 다양성과 그 통일이라는 이념에 의해 통제되며, 그러한 방식으로 발생한 인간은 ‘자연적인 부류’, 즉 ‘하나의 근간으로부터 맹아를 꽃피운 자연적인 종’으로서 자연사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인종이란 생식능력을 통해 유전적인 다양성을 담보하면서 통일되는 각각의 클라스 내에서 인간으로서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존재인 것이다.

칸트의 인종론에서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연이 발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자연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한 한정된 관찰대상으로부터 주어지는 자연이다. 이것은 인과연쇄를 가능하게 하는 힘(‘근본력’)의 개념을 매개로 발견되는 이른바 아프리오리한 인과성에 의해 규정된다. 또 하나는 인간의 다양성과 통일을 인간고유의 것으로 만드는 이념과 관련된 자연사적인 자연이다. 후자는 자유의 목적을 수반하는 실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칸트는 다른 곳에서 자연사적인 혈족관계 속에서 근친상간 금기로 간주되는 것에 대해 자연의 목적성과 유용성의 측면에서 해석한다. 즉 근친상간이 유전적 자질을 수렴시키고 자연적 다양성을 해친다는 것이 마치 자연 그 자체의 목적인 것처럼 조정된다. 자연의 요청과 경험에 기초한 도덕적인 요청이 이 점에서는 일치한다. 자연의 목적성을 근거로 경험적인 자유가 제한된다. 혈연관계에 기초한 이성의 명법은 인간이라는 종을 유용한 한계 내에서 다양한 것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명이다.

이러한 사고가 칸트가 생각한 종말과 얼마나 관계하는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부언해두겠다. 칸트가 말하는 ‘만물의 끝’이란 모든 것이 물리적인 레벨에서 붕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끝’이란 시간적 존재자가 영원한 모습으로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이 의미에서—다시금, 할 만한가?—‘만물의 끝’은 이념이며 그 기원은 물(物)의 ‘도덕적 경과’에 대한 사변이다. 그것은 인간 이성의 고유한 산물이다. ‘인간들의 손을 거친 만물의 그 끝은 그들이 선한 목적을 가질 때조차 어리석은 것’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참된 끝이란 ‘일체의 변화가 멈춘 어떤 시간점’에 도달하는 것이며, 그때 사고와 감정은 전혀 교대하지 않고 석화하며 항상 동일한 것에 머문다. 존재자는 그 속에서 시간의식을 빼앗기고 ‘절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실천이성의 이념이 가진 궁극목적을 달성한다.

칸트에게 자연과 기원, 그렇게 종말로 휘감기는 사고는 인간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며 인간을 넘어서고자 하는 권리를 보증하는 것으로서 이념의 목적의 위상을 동시에 명확하게 드러낸다. 자연에서 사회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보편적 자연법칙에 안주하는 인간본성(=자연)과 그로부터 일탈하는 반자연적인 인간본성의 갈등이 있다. 거기에서 소여로서의 자연성을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자연성을 구성하는 인간의 본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인간본성은 인간본성을 뛰어넘는 본성을 가지고자 하며, 그것이 시민사회를 구성한다. 유사의 구조를 가지는 논의가 생물학적인 지견을 기반으로 전개될 때, 그것은 인종에 기초한 논의가 된다. 모순된 복수의 본성은 여기서 자연기술의 대상으로서 자연과 자연사를 구성하는 자연으로 치환된다. 식민지 개척을 통해 공간적인 지평에서 발견된 인종 간의 기호적인 차이가 인간의 유전에 얽힌 자연법칙을 증명하는 표상을 구성한다. 그 표상에 대해 오성이 이념의 감독 하에서 움직이며 가능한 해석을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이 고찰도 올바른 비판철학의 구도 속에 있다. 즉 그 자체로 실체화가 불가능한 것으로서 상정되는 ‘근간’이 인간의 변양체(變樣體)를 다양하게 발생시키면서 그와 동시에 각각의 인간의 종을 통일시키는 것으로서 계층화되어간다. 이 속에서 인류는 자연의 목적과 도덕적인 요청이 결과적으로 일치하는 합목적적인 존재로서 이념에 포섭된다. 이념, 즉 이성의 목적은 인종을 <혈족관계의 다양성과 통일> 하에 종별화해가게 된다. 표현을 달리 하면, 이성의 프로그램에는 혈연의 연속성과 통일이 이미 기입되어 있다. ‘만물의 끝’에는 별개의 이념이 저장되어 있다. 그 이념의 궁극적인 달성은 인류의 정지이자 오성의 소멸이며 영원으로의 융합이다. 그러나 이 이념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존재는 신 외에는 없다. 칸트는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고자 한 인간의 영위로서 노자의 체계와 동양의 범신론, 또 스피노자주의 등을 들고 있는데, 이것들이 수단과 목적을 전도시켜 인간의 ‘절멸’을 불러오는 어리석은 시도로 생각했다. 인간의 지혜는 오히려 절멸을 피하기 위해 이성의 이념에 반하지 않는 소극적인 선(善)에서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칸트의 사고는 세 개의 요소—즉 문화의 발전에서 모순된 인간본성이 맡은 역할, 자연사적 인간에 내재하는 생물학적 집단성의 보존의 프로그램, 절멸을 숭고한 것으로 두려워하면서 그것을 피하는 소극적인 실천—의 총체로서 이해된다. 이성의 목적이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구동시킨다. 발전한 문화에서 인간의 기원의 탐구는 이성의 한계 내의 자연기술의 수법의 연장에 의해 행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 속에서 이념으로서 발견되는 종의 보존의 논리가 그와 동시에 인류를 절멸의 실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맡는다. 즉 칸트는 오성의 무한원점(無限遠占)에 있는 이성의 존재를 축으로 하여 순수이성의 자연의 영역을 실천이성의 자유의 영역과 접합시킨다. 여기서 생물학적인 생식 현상도 ‘인류’라는 특수한 종의 이념으로 전환되며, ‘반(反)-절멸’이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문화를 구성하는 특정의 순수한 종이 절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종이나 잡종을 말소한다는 ‘소극적인 선’에 기초한 생각이 도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4.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혈연관계에 얽혀있는 종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것이 곧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상황에서. 형이상학이라는 사고가 생식에 의해 연결된 신체를 부정하는 철학적 태도일 수 있다, 라는 것을 상기해보는 것은 유효하다. 『성찰』의 「제1답변」에서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추론의 기초로서 어떤 원인의 계열에도 의거하지 않으며, 어떤 무언가 이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내게 인식되는 것에 나 자신의 존재를 사용하는 것을 오히려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나에 관해서는 내가 일찍이 어떤 원인에 의해 산출되었는가보다 내가 어떤 원인에 의해 현재 시점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일찍이 모든 원인의 계기로부터 내가 자유롭게 되었는가를 나는 질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것이 반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또 조부에 의한 것임을 내가 고찰하고, 그리고 양친의 양친을 탐구하면서 나는 무한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그렇게 질문은 끝나기 때문에 어떤 제2의 원인이 있다고 내가 단정한다, 라고 하는 경우는 완전의 별개가 된다.

데카르트의 이 문장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정신은 신체의 생식적인 연결과 단절되는 곳에서 나타난다. 이 의미에서 형이상학은 원칙적으로 신체의 발생론적 질서에 믿음을 주지 않고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도 삼지 않는다.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의 철학은 이런 류의 형이상학의 현대적 복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유한성 이후』에서 메이야수가 칸트의 철학으로 대표되는 태도를 ‘상관주의’로 명명하고 그 불철저성을 비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원과 역사라는 문제계를 재고하기 위해 메이야스가 제시한 논의는 앞서 전개한 비판철학의 체계에 기초한 견해에 어떤 개선점을 제시할 수 있을까? 메이야수의 핵심 개념인 ‘선조이전성’을 단서로 생각해보자.

첫째, 메이야수는 ‘인간의 역사’를 선조나 인류에 얽매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조이전적’ 개념이란 ‘세계에 대한 온갖 형태로 인간적 관계에 앞서 제기된’ 것이며, ‘인간이라는 종의 출발에 앞서는’ ‘알 수 있는 한 지구상의 온갖 생명의 형태에 앞서는’ 것이다.

반면 상관주의자는 선조이전적 심급을 생각할 때에 필연적으로 ‘후방투사’를 행한다고 메이야수는 지적한다. (이것은 바로 칸트가 자연사 개념을 전개할 때에 목격한 사태이다.) 즉 상관주의자는 ‘현재를 기점으로서 과거를 후방투사’한다. 현재 존재하는 인간의 주관성을 통해 모든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때 후방투사된 언명 속에 나타나는 선조이전적 언명의 대상은 상관주의자에게 극히 모호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즉 간주관적인 방식으로 검증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언명에 의해 올바로 기술되는 측면에서 그 대상은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서 기술된 사상(事象) 그 자체가 의식과 무관계하게 출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사상은 올바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비판의 괴리가 일어난 이유에 대해 메이야수는 선조이전적 사건이 의식의 발전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의식에 앞서는, 바꿔 말하면 시간의식이 증여로서 주어지기 이전의 사건은 초경험적이며 존재론적인 레벨에서 상관주의에 의해 파악되는 범위를 넘어선다.

상관주의에 부수하는 이러한 곤란에 대해 메이야수는 ‘원화석’(原化石)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과학적 수법을 통해 드러나는 선조이전의 연대에 논의를 한정함으로써 대처한다. 그 속에서 비교적 최근 탄생한 인류라는 종의 발생과 사멸은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즉 메이야수는 과학이 보여주는 시간성에 대해 그것이 의식의 시간성과 관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학적 사고의 독립적인 의미를 문제로 삼는다. 그러나 메이야수는 ‘인류’라는 문제와 완전히 단절한 것은 아니다. 메이야수는 자신의 책의 본문에 달아놓은 긴 주석에서 의식을 가진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다루는 것에 대한 경계를 서술하고 있다.

선조이전성의 논의가 본질적으로 ‘목격자 없음’의 반론과 구별된다면, 선조이전성에 대한 논의는 반대로 의식의 단독의 탄생과 죽음이 그 자체로, 의식적인 것일 수 없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론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때 상관주의는 간주관성에 의해 직조되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개별적으로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을 주장하며 자신을 지켜낸다. 간주관성에 의해 직조된 시간이란 여러 의식의 공동체의 시간이며 그 속에서 탄생과 죽음은 다른 의식에게도 탄생과 죽음이며, 다시금 에고의 집합성에게 소여로 환원되면서 전개된다. 우리는 상관주의자의 이러한 대응을 절망적인 궤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발생과 사멸을 그에 대한 타자의 인식으로 환원한다. 우리는 이 도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논의를 선조이전의 것으로 제한한다. 선조이전의 것은 모든 공동체를 일소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어떤 상관성도 이미 다룰 수 없게 된 시간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과학에 의한 것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이점을 갖는다.

인간의 의식의 발생과 기원을 묻지 않는 명백한 이유가 위의 인용문으로부터 분명해진다. 첫 번째 이유는 상관주의에 의한 시간의식은 간주관적이며 공동체에 속한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이 공동적인 의식에서 모든 삶과 죽음은 거기에 속한 다른 주체에 대한 삶과 죽음 외에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요컨대 상관주의적인 시간의식에서 다뤄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이야수의 비판은 간주관적인 의식 속에서는 어떠한 의식에도 고유한 삶과 죽음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고유한 삶과 죽음이라는 표현이 엄밀한 의미에서 타당한지는 차치해둔다. 메이야수가 문제로 삼는 것은 의식의 간주관성의 구조 속에서 어떤 삶과 죽음이 항상 간주관성의 작업을 통해 여러 의식(에고)에게 소유로 환원되고 만다는 것이다. 메이야수가 이것을 ‘절망적인 궤변’이라고 한 것은 어떤 의식에서도 삶과 죽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의 삶과 죽음이 다른 존재에게 집합성을 보존하기 위한 소여로밖에 인지되지 않는다면, 삶과 죽음은 태어나고 죽는 그 어떤 존재에게도 속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메이야수의 시도는 모든 사상(事象)의 고유한 생성과 소멸을 묻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선조이전의 것’이란 삶과 죽음, 발생과 사멸을 ‘공동성으로부터 일소’하기 위해 던져지는 사변적 도구(tool)가 아닐까?

칸트의 인류학적 사고는 이성의 합목적성의 이름 하에서 인간의 발생을 ‘인류사’(혹은 인간의 ‘자연사’)라는 지평에서 사고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자연개념의 모순과 다양성 혹은 이념으로서의 외부성은 담보로 제공되고 자연의 제일성(齊一性 uniformity)은 자유의 조건으로, 즉 도덕적인 요청으로 대체된다. 표면적으로는 생물의 역사처럼 다만 확고한 인간의 역사가 확립된다. 이러한 칸트의 인류사의 구조를 메이야수의 ‘선조이전성’의 관점에서 보면, 칸트가 ‘인류’의 이름으로 제시하고자 한 ‘공동성’의 의식도 분명해진다. ‘인류’란 칸트에게 불사의 공동체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인류가 직조한 인간의 ‘자연사’는 분기하면서 순환된 복수의 인종의 병립구조를 보존하며 ‘인류’가 통일체로서 연장해갈 수 있는 수단과 목적을 제공한다. 우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됨으로써’ 계속해서 살아간다. 이 구조 속에 종과 다른 것 혹은 종으로서 다른 이성을 가지지 않는 존재는 ‘불순’하고 ‘잡종’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통일을 견지하는 다양성으로부터 일탈하는(그렇게 간주되는) 자들은 휴먼적인 인간에 의한 순화의 폭력에 짓밟힐 수 있다. 역사에 총합되지 않는 삶과 죽음을 영위하는 잡종적인 존재방식이 바로 그러한 폭력에 저항한다. 

 

 

 

  1. 1936년 영국의 튜링(Turing, Alan M 1912-54)이 고안한 상상의 계산 기계. 현재의 디지털 컴퓨터의 기본 원리가 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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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올 수밖에 없는 인류학> 시리즈로 출간된 다섯 권 중 4권인 『人と動物の人類学』[사람과 동물의 인류학](2012년, 靑風社)의 서문을 번역해 올려둔다. 이 책에 담긴 총 열편의 논문 중 서너 개를 골라 번역할 생각이다. 인류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학문으로서 인류학이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주요테마로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동물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방식이 완전히 파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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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지구적 차원에서 묻다

 

오쿠노 카츠미(奥野克巳)

1. 분절된 사람과 동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사람과 동물은 별개의 존재이다. 우리 사람이야말로 사회를 영위하고 세계를 만드는 주인공이며, 그 주변에 개와 고양이, 보통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식용을 위해 사육되는 소와 돼지가 있고, 나아가 멀리 떨어진 자연 속에 기린이나 코끼리나 사자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이 이렇게 배치된 데에는 그 나름의 인류사적인 이유가 있다. 서양에서 비롯된 합리성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그러한 사람과 동물의 배치가 고착되어왔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기독교의 사고방식에서 영향을 받아 동물로부터 사람을 떼어내고 사람을 사고와 감정과 정신을 가진 존재로 다뤄왔다. 그 의미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명료한 분할선이 그어져있다. 동물은 서양의 형이상학을 토대로 구축된 과학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적인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우리의 생활과 제도에서도 사람과는 다른 존재이다.

한편 사람과 동물 사이에 그어진 분할선은 서양사고의 내측에서 천천히 붕괴되어왔다. 동물들은 적자생존의 개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지구탄생이후 유구한 세월을 거쳐 이뤄져온 그러한 영위의 결과 동물로부터 사람이 탄생해왔다는 학설이 19세기 중반 제창되었다. 생명과학과 영장류학 등 사람과 동물의 공통적인 평면을 다루는 현대과학의 현저한 진전에 따라, 오늘날 적어도 학문상으로 사람과 동물은 그렇게 확실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사람과 동물이 별개라는 사고방식이 깊게 침투해있다. 동물에게는 정신도 감정도 없다는 생각이 근현대의 주류적인 사고방식이 되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으며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대항적인 사고방식이 출현하고 있다. ‘사람 동물’이라는 표현이야말로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동물로부터, 동물로부터 사람을 구분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말이다.

 

2. ‘와/과’를 생각하기 위한 수사실험

『사람과 동물의 인류학』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사람과 동물’이라는 저 흔한 표현에 담긴 ‘와/과’에 주목해보자. 우리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와/과’를 끼우고 사람‘과’ 동물이라고 말함으로써 의식하는 못하는 사이에 사람과 동물을 분리한다. 혹은 사람‘과’ 동물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람과 동물을 병렬로 놓는다. 여하간 ‘와/과’를 끼어둠으로써 사람과 동물은 다른 존재가 된다.

사람과 동물을 분리하고 별개의 존재로 만드는 언변은 ‘와/과’뿐만 아니다. 예를 들어 ‘와/과’ 자리에 ‘에게’를 삽입해보자. 사람에게 동물, 동물에게 사람이라고 말할 때, 사람과 동물은 병렬에 놓인다. 혹은 사람에게는 동물이, 동물에게는 사람이 나뉘어 적용되는 상황이 나타난다. ‘에게’에 의해 사람과 동물 사이는 멀어진다.

나아가 이번에는 ‘의’를 삽입해보자. 사람의 동물이란 사람의 소유물로서의 동물이며, 동물이 사람에 종속되게 된다. 그때 사람은 동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동물은 관리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동물의 사람이라고 하면, 동물 속에 있는 인격이나 인간성과 같은 것이 읽힐 것이다.

조금 더 이러한 수사실험을 이어보자. 이것은 사람과 동물을 분리해서, 구분하는 것과는 다른,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상상해보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이다.

‘와/과’ 대신에 ‘은/는’을 삽입해보자. 사람은 동물, 동물은 사람이라고 바꿔 말하면 어떤 사태가 나타날까? 사람은 동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그러한 사실을 잊고 있다. 보통 사람은 동물인가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생물학 교과서에는 사람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놓고 있다. 반대로 동물은 사람이라고 바꿔 말하면 어떠할까? 동화나 민요에서 동물은 말을 하거나 울거나 우는 등 사람처럼 행동한다.

‘와/과’ 대신에 ‘도’를 넣어보면, ‘은/는’을 사용할 때와는 의미내용이 다르다. 사람도 동물이라는 표현은 사람 또한 동물의 범주에 포함됨을 의미한다. 반면 동물도 사람이라고 바꿔 말하면 듣는 이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동물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저 표현에는 동물도 사람의 범주에 포함됨을 뜻한다. 지구상에는 북미선주민들과 같이 전통적으로 동물도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으로 ‘(으)로부터’를 넣어보자. 사람으로부터 동물, 동물로부터 사람. 사람으로부터 동물로, 혹은 그 반대로 동물로부터 사람으로는 무언가가 부여되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사람으로부터 ‘사육’ 동물에게는 먹이가, 동물로부터 사람에게는 고기 등이 얻어지는 것처럼. ‘(으)로부터’는 증여의 방향을 나타낸다. 나아가 그렇게 바꿔 말하는 속에는 ‘와/과’에서 구별되는 것처럼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설정된 경계선을 초월하여 사람으로부터 동물로, 혹은 그 반대로 동물로부터 사람으로 영역을 침범하는 초경의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과 동물의 ‘와/과’를 대신에서 그 자리에 다른 단어들을 넣어보면,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양한 관계양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동물 또한 사람이라는 사태이거나(행위주체성), 사람과 동물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섞이는 모습이거나(분리불가능성), 사람과 동물 사이에 분할선이 가정되거나(경계성), 그러한 분할선을 넘어 동물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초경성).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의 양태가 가능하다.

 

3. 문학이라는 본보기

그런데 문학은 이제까지 사람과 동물의 관계의 다양한 존재방식에 관해 실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예를 들어,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는 알래스카 여행에서 만난 동물들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과 대조하면서 동물도 사람도 함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일한 행위주체임을 상기시킨다. 프란츠 카프카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고뇌를 그렸다. 그레고르에게는 사람의 내면성과 벌레의 신체성이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결합되어 있었다. 코맥 매카시는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서 말(馬)의 혼 속에 영원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16살의 존 그래디의 심정과 성장을 그렸다(『모두 다 예쁜 말들』). 1915년 북해도의 천염개척촌에 어느 큰곰이 나타나 이틀간 6명을 살해한 일본 동물피해의 역사상 가장 큰 참사를 다룬 요시무라 아키라(吉村昭)는 경계를 넘어온 맹수와 그 공포와 사람들의 격투를 그렸다.

문학에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사람과 동물의 다양한 관계성으로 넘쳐난다. 이에 대해 『인간과 동물의 인류학』에서 시도하는 것은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양한 관계의 존재방식을 지구차원에서 민족지로 기술 검토하는 것이다.

 

4. 네 가지 관계성

‘행위주체성’, ‘분할불가능성’, ‘경계성’, ‘초경성’이라는 네 가지 양태를 설정한 속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탐구해보자.

제1부 ‘행위주체성’에서는 동물이 가진 ‘행위주체성’이 상정되는 민족지적 상황이 다뤄진다. 동물의 사람 혹은 동물은 사람 혹은 동물도 사람이라는 관계성이 다뤄진다.

「동물과 말하는 사람들」(1장)에서 야마구치 미카코(山口未花子)는 주체를 가진 동물과 관계를 맺는 캐나다 수렵민인 카스카족을 통해 ‘동물과 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카스카에게 동물은 사람과 같은 존재이다. ‘동물과의 대화’는 단순한 해석이나 믿음의 산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카스카족의 생활 속에서 재검토해보면 그것은 동물과의 신체적ㆍ초자연적인 교섭을 통해 획득된 기술이나 지식임을 할 수 있다. 카스카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면서 동물과 교섭함으로써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왔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는 더욱 농밀한 사회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

「고자질 하는 돼지꼬리원숭이」(2장)에서 오쿠노 카츠미(奥野克巳)는 보르네오섬의 수렵민인 푸난 사회에서 천계의 신에게 사람의 조야한 행동을 고자질 하는 동물의 사례를 들고 있다. 동물은 사람과 같이 행동한다. 오쿠노는 사람과 동물,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항을 상정하고 그것들을 관계 짓는 구래의 동물 애니미즘을 비판하고 사상(事象)과 환경을 좇아 살아가는 그들의 행동 속에서 행위주체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하여 동물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제2부 ‘분리불가능성’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섞여있다는 ‘분리불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 속에서 사람도 동물이며 동물 또한 사람이라는 사태를 다룬다.

「서구에 나타나는 혼종성으로서 괴물」(3장)에서 마츠다이라 토시히사(松平俊久)는 중세에서 근세까지 나타난 유럽의 괴물을 다룬다. 괴물은 사람과 동물을 융합한다. 본래는 대립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동물을 하나의 신체의 구성요소로 만드는 괴물 그 자체는 무질서에 지배되지만, 그 한편으로 괴물은 사회적ㆍ집합적인 이해 혹은 합의라는 이름의 질서가 부여된 창조물이라는 적극적인 의미 또한 갖고 있다.

「‘인간고릴라’와 ‘고릴라인간’의 민족지」(4장)에서 오오이시 타카노리(大石高典)는 중부아프리카의 수렵채집민인 바카족과 농경민인 바쿠베레족을 다루고 인간과 고릴라가 표상 속에서 어떻게 섞이는지를 민족지적으로 그려낸다. 바카족은 바쿠베레족을, 죽으면 고릴라로 다시 태어나는 ‘고릴라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바쿠베레족은 바카족을 작은 동물로 변신하여 밭작물을 훔쳐가는 등 나쁜 짓을 한다고 여기며, 또 고릴라 안에는 고릴라이면서도 혼은 인간인 ‘인간고릴라’가 뒤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오오이시는 이 두 사회의 상호관계의 지평에서 사람도 동물이며 동물도 사람이라는 착종적ㆍ혼동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살아있는 만다라」(5장)의 서두에서 이시쿠치 토시아키(石倉敏昭)는 인간과 그 외 동물들에 공통하는 구강(口腔) 공간을 다루면서 사람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카트만두분지에 위치한 네와르 지방도시 산쿠에서 만다라 모양의 도시공간구성의 경계를 이루는 네 개의 ‘문’과 그 외부의 ‘숲의 사원’을 둘러싼 바슐라 요기니 여신의 신화를 검토하고, ‘인간성’, ‘동물성’, ‘여성성’이라는 각각의 원리가 어떻게 상호 결합하여 사람과 사람 이외의 존재로 이루어지는 집합적인 세계상을 직조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제3부 ‘경계성’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포함하여 존재자들 사이에 그어진 ‘경계성’의 존재양식을 검토한다. 사람과 동물, 사람에게 동물이라는 표현 속에 보이는 분절을 둘러싼 문제를 다룬다.

「오키노시마(隠岐島)의 둔갑하는 뱀」(6장)에서 콘도 시아키(近藤祉秋)는 오키노시마의 노인에게서 들은 사람으로 변신하는 뱀 이야기와 체험담을 회상한다. 이 속에서 동물은 동물로 고정되지 않는다. 자연과학적인 종 분류법은 현실세계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다양한 종 분류법의 하나이지 않을까? 콘도는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의 정체를 꿰뚫어본다거나 지벌[각주:1]의 원인을 찾는다거나 하는 주제에 관한 오키노시마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니미즘’론의 지평에서 검토하면서 동물 분류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고찰한다.

「야생동물과 사귀는 법」(7장)에서 이케다 미츠호(池田光穂)는 생물다양성 보존을 둘러싼 논의에 등장하는 반달곰과 듀공과 현대일본인 사이에 상상되는 ‘사귀는 법’을 다룬다. 동물에 대한 사람의 ‘믿음’의 인지과정을 단서로 반달곰의 ‘항의활동’과 듀공의 법적인 ‘당사자적격’을 기술 검토한 하에서 동물에 대한 사람의 일방적인 ‘섀도복싱’ 상황을 그려낸다.

제4부 ‘초경성’에서는 동물이 사람과 동물 사이에 가설적으로 설정된 경계를 넘어 인간의 영역으로 침투하거나 몸을 던지는, ‘경계성’을 둘러싼 문제를 고찰한다. 이 속에서 동물에서 사람으로 향하는 관계의 양태를 둘러싼 문제가 거론된다.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경계>의 재생산」(8장)에서 메구로 토시오(目黒紀夫)는 아프리카의 마사이 사회에서 오늘날 야생동물이 사람의 영역으로 경계를 넘어 침입하여 사람들의 생활기반을 파괴하는 사태를 다룬다. 마사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야생동물과 ‘경계’를 만들지 않고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일상적 및 쌍방향적인 공격과 회피를 통해 거리와 긴장감을 수반한 공존을 실현하고 있다. 메구로에 따르면, 현재 정부의 개발ㆍ보존정책에는 그러한 ‘경계를 둘러싼 전술=거리의 재생산’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간극의 초경성(超境性)의 재검토」(9장)에서 니시자키 노부코(西崎伸子)는 자연보호사상을 출발점으로 하는 사람과 동물의 경계설정이라는 지구적 차원의 전개에 관한 전망을 살펴보고, 에디오피아의 야생동물 보호의 맥락에서 야생동물이 사람의 영역으로 경계를 넘어 침입하는 사태를 로칼한 경계인식의 관점에서 다룬다. 그리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경계성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것 혹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선호되는 자연환경을 주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것 등을 제시한다.

「동물에 숨겨진 증여」(10장)는 Nadasdy, Paul(2007) "The Gift in the Animal: The Ontology of Hunting and Human-Animal Sociality" American Ethnologist 34(1), pp.25-43의 번역본이다. 지금까지 필리프 데스콜라,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팀 잉골드 등은 사람과 동물, 문화와 자연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를 이끌어왔다. 폴 나다스디는 그러한 연구의 흐름 속에 ‘동물에 숨겨진 증여’라는 북방선주민의 사고방식을 위치짓고 탐구한 인류학자이다. 그는 사람도 동물도 함께 ‘인간’이라는 관념 속에 포섭되는 존재로 여기는 북방선주민의 사고방식에 근거하여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둘러싼 북방선주민의 서사를 ‘은유’로 다루는 종전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고자 한다. 여기서 ‘인간’으로 번역한 것은 나다스디의 원문의 “person”이다. 북방선주민은 사람에게도 사슴(moose)에게도 ‘인간성’(personhood)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 의미에서 사람은 사람인간이며 사슴은 사슴인간이다.

 

5. 사람과 동물의 다양한 관계성

사람과 동물을 절단한 분할선에 의해 양자의 관계성이 정해져왔다는 지점에 동물을 둘러싼 오늘날의 과제가 숨겨져 있다. 동물은 사람을 위해 애완화되고 애완화하는 사람 손에 의해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단절된다. 동물은 육식을 위해서만 집단 속에서 사육되고 가축화된다. 사람과 달리 동물에게는 정신이나 감정이 없다고 간주되고 동물은 사람에 의해 관리ㆍ통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인데, 그러한 동물들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 책의 저류에 흐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특히 산업화 시대 이후 사람을 위해 목숨을 잃는 동물의 영을 위로하는 신앙실천이 왕성하게 이뤄져왔으며, 또 오늘날 유럽을 시작으로 동물권에 중점을 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은 동물을 사람과는 다른 단순한 물적 존재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일 수 있다. 지금 사람과 동물의 관계의 분할선을 뒤흔들고 있다. 아니 본래부터 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다양하지 않았는가!

이 책 『사람과 동물의 인류학』의 목표는 인류사회라는 큰 시야 속에서 사람과 동물의 다양한 관계양상을 그려내고 동물에 관한 현대적인 과제를 생각해가기 위한 단서를 찾아내고 그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데에 있다.

 

 

  1. 신(神)이나 부처에게 거슬리는 일을 저질러 당하는 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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