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2015년 1월 증간호 <総特集=柄谷行人の思想>[총특집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에 실린 두 개의 대담록을 요약정리했다. 하나는 일본의 사회평론가인 사토우 마사루(佐藤優)와 가라타니 고진이 제국의 구조국가론과 칼 바르트의 신학을 중심으로 코뮌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논한 것이고, 또 하나는 동아시아의 문명론을 주제로 가라타니 고진과 김우창이 한국과 일본 각각의 문명소에 관한 의견을 나눈 것이다. 특히 전자의 대담은 『트랜스크리틱』과 『제국의 구조』에서 제기된 몇 가지의 논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두 대담록은 최근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지적 토양을 신학적 실천론과 동아시아의 문명론의 관점에서 검토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의 사상의 행적이 『트랜스크리틱』(2003)을 전후로 구분된다고 명확히 말한다. 『현대사상』의 이번 특집호는 그 이후의 사상에 관해서만 집중 조명했다. 가라타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대상에 대해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태도를 가집니다. 하나는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 또 하나는 그것을 선악으로 보는 도덕적인 태도, 마지막 하나는 그것을 미적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흔히들 '진선미'라고 하지요. 이 세 가지 태도가 진선미에 대응한다는 것이지요. 지적, 윤리적, 감정적 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됩니다. 누구라도 이 세 가지의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 세 가지는 동격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적인 것, 윤리적인 것과 비교해서 '미' 즉 대상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낮게 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마찬가지입니다. 서양도 그러했고 중국이나 인도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헤이안문학 등을 보면 미적 태도가 처음부터 상위에 위치합니다. 거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식적, 윤리적인 것을 낮게 보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 감정이나 상상력을 중시하게 된 것은 낭만주의 이후입니다. 낭만주의 바로 전에 칸트가 있습니다. 칸트는 진과 선에 대해 미를 동격으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바꿔말하면, 그때까지 하등한 능력으로 간주되었던 상상력을 오히려 진과 선을 매개하는 것으로 다루고자 했던 것이지요. 칸트의 『비판은 세 능력을 음미하고자 했습니다. 그 후에 낭만파가 나타난 것입니다. 낭만파는 오히려 감정이나 상상력을 우위에 놓고자 했습니다. 그 후, 인식적인 요소가 강조되면 리얼리즘문학이 되고, 도덕적인 요소가 강조되면 사회주의적인 문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세 요소는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고 서로 대항하며 보족해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역사적으로 문학의 지위가 서양과는 달리 낮았지만, 19세기 말부터는 서양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들과 같은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이례로 근대문학은 인식적 및 도덕적인 것이 우위에 있는 시대에 대항해왔습니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19세기 이전에는 종교적인 것으로 다뤄졌으며 오늘날에는 정치적인 것으로 다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것이 강할 때 그에 비판적으로 대항하는 것이 문학이었습니다. 이 의미에서 문학은 매우 중요하며 힘을 가집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이 사라지면 문학은 단지 오락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나는 일본에서 문학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문학이 끝났다라기보다 오히려 정치적인 것, 도덕적인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정치화가 진행된 결과 문학의 의미도 그 지위가 저하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문학이 정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학이 정치로부터 해방되면 오히려 문학은 무력해집니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러했습니다. 일본의 문학에서는 본래부터 지적, 윤리적인 요소를 낮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이상 그러한 것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39쪽)

  문학비평가로서 자신의 시대적 소임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지적이고 윤리적(정치적) 인 것을 지향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새롭게 모색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행보는 사토우 마사루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을 중도포기하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을 웅변한다. 사토우 마사루는 일본의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년에 '일본'으로 회귀하여 천황주의에 포섭되거나 미래를 선취하는 목적론으로서 공산주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고 말한다. 세상을 '뜻'에 따라 변혁하기 위해서는 그 '뜻'을 옮길만한 힘에 대한 주도면밀한 고찰이 요구됨에도, 이제까지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에 대한 재검토와 재이론화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국가를 넘어서는 '코뮌'의 가능성을 논하고자 한다면 '국가'를 정면에서 다뤄야 하고, 18세기 이후 유럽의 내셔널리즘이 전 세계를 재편하기 전에는 '제국'이 '국가'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그리고 가라타니는 이러한 '제국'에서 코뮌의 가능성을 추출하고자 했다. 여기서 가라타니는 '제국'과 제국주의를 구별할 것을 주장한다. 인류역사상 '제국'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 몽골제국 등이고, 로마제국이 제국일 수 있었더 것은 그리스(닫힌 도시국가)를 계승해서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제도들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중심주의의 사고(마르크스주의자도 벗어나지 못하는)가 로마제국을 그리스와 합치해버렸다. 또 이슬람제국은 몽골제국 내에서 중동지역의 이슬람 엘리트계층의 제국적 훈육의 결과 성립가능했으면서도, 그 종교적 편향(혹은 불관용)으로 인해 몽골제국의 보편성을 담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라타니의 '제국'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보편성을 지향하는 세계공동체를 핵으로 하는 개념이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제국들은 이러한 보편성을 담지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제국을 표방한 국가들은 제국주의적 내셔널리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신 19세기 이후 '제국'은 세계의 보편종교 운동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이어나갔다. 이를테면 중국에서 일어난 '천년왕국운동'과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종교사회주의운동이 그것이다. 19세기의 일군의 공산주의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사회주의운동에 종교성을 제거하려했지만, 인류의 코뮌적 공동체 운동은 언제나 종교성을 띠었으며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사제'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면 다음으로 이러한 세계보편을 지향하는 운동이 왜 일어나며, 그것이 어떻게 인류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가라타니는 '교환양식론'을 통해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가라타니가 『세계사의 구조』와 『제국의 구조』에서 정초했다시피, 그의 '교환양식론'은 호수성[씨족사회 내의 의무로 강제된 상호호혜성]의 교환양식 A, 국가에 의한 폭력적 재분배라는 교환양식 B,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교환양식 C, 그리고 교환양식 A의 강박적 회귀로 도래하는 교환양식 D로 요약된다. 교환양식 D는 더 자세히 말하면, 정주민(유목민은 역사적으로 정주민과 동반출현한다는 점에서 유목민은 정주민의 파트너이다)이 출현하기 이전 인류의 原유동성의 강박적 회귀로 도래하는 것이다. 이 각각의 교환양식은 인류의 문명사를 시대적으로 분절하면서 사회의 주요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아마도 『트랜스크리틱』 이후, 더 가깝게는 『세계사의 구조』 이후, 문학비평가로서의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력과 통찰력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그의 교환양식론에 적잖이 실망했을 것도 같다. 이제까지 원시공산제로는 구분되지 못한 씨족사회의 호수제와 인류의 原유동성 밴드의 자유로운 상태를 구분하기 위해서 가라타니는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을 분석적 도구로 개념화했고, '제국'의 문명사를 통해 보편성의 공동체가 이미 인류의 문명사에 존재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교환양식론과 제국론은 곳곳에 지뢰같은 난제가 존재한다. 태곳적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의 전체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은 현 인류의 지적 능력으로는 아직 이루기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한 것과 같이, 인류의 미래사회는 현실을 지양하는 운동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것은 인류의 흔적을 남김없이 개어낸다. 우리가 그것을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해도 그 이념이 현실의 운동 속에서 발생되는 것이라면, 미래로의 지향은 인류사의 총체적인 조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문명론을 주제로 한 가라타니 고진과 김우창의 대담은 주로 한일간 문화 및 정치구조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조선)의 경우 중국으로부터 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중앙관료제에 기반한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민의(민심: 天命)라는 관념을 통해 정치권력을 통제했다면, 일본의 경우 '중국화'는 표층적이었으며 지방분권의 무사도에 의한 공론 없는 정치체제를 구축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공개적인 논의를 꺼려하고 "네마와시"(

  『현대사상』 가라타니 특집호에는 그 외 외국의 학자들로부터 가라타니의 이론에 대한 각가지 논점을 다룬 글들이 다수 실려 있다. 강한 시차를 두고 늘 나타나는 초월적 타자 X에 대한 논의도 지젝을 비롯해서 몇몇 학자가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내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아 나중에 여유가 되면 정리하겠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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