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에 빠져 들었다. 아니, 이렇게 느긋하게 책을 읽은 게 얼마만인가 싶다. 대학원 과정을 밟은 이후로 책은 늘 내 논문을 위한 인용문 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논문을 많이 쓴 것도 아니다. 석박사 학위논문과 소논문 두어편, 잡다한 보고서들이 내가 공식적으로 써낸 글들의 전부이다.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오히려 그때 책이 즐거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느낀 독서의 즐거움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독서가 주는 흡족함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Don't sleep, there abe snakes)는 어느 인류학자가 아마존의 '피다한'이라는 부족의 언어세계를 30년 넘게 관찰한 민족지(ethnography)이다. 아마존의 '원시부족'(primitive society)은 인류학의 오랜 단골손님이다. 그것은 유럽의 근대적 인간관의 반증으로서 20세기 인류학의 가장 훌륭한 보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자도 없고 국가도 없으며 수렵채집의 소집단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문명인'보다 행복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1977년 피다한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한' 그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내가 석사논문을 위해 고비사막에 갔을 때 유목민의 첫인상도 그랬다. 그들은 정말 웃음이 많았다. 피다한 사람들처럼 아무 때나 웃었다. 내가 자라온 사회에서는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그들은 웃었다. 반면에 말은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다. '고맙다' '미안하다' '안녕' 등의 친교적인 소통어 없이 바로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저자가 그 맥락을 궁금해했던 것처럼, 나도 궁금했다. 

피다한 마을, 아마존의 깊은 숲속에 '고립된' 이곳에서 저자는 '근대인'과 완전히 다른 삶을 본다. 우선 피다한 마을에는 밤낮이 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 자지 않는다. 그들은 낮이든 밤이든 쪽잠을 자고, 그 쪽잠은 두시간을 넘지 않는다. 늘 밤새 이야기하고 새벽 3시에도 물고기를 잡으로 강가로 나간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아마존의 자연을 누리는 대가로 외부의 적들을 경계해야 하는 그들의 자구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들의 밤인사는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이다.

3세대의 친족관계를 기본으로 집단을 구성하는 피다한 사람들에게 '리더'는 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공동체는 평화롭다. 물론 이 '평화'는 '근대인'의 '박애정신'을 뜻하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 질서의 냉혹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과 함께 피다한 마을에 들어간 아내와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맨 경험을 예로 든다. 아내와 아이가 설사와 구토와 환각에 시달릴 때 저자는 처음에 그것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피다한 사람들은 그 병이 말라리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수수방관한다. 저자는 후에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한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날 저자는 병에 걸려 거의 죽기 직전의 엄마 없는 피다한의 아이를 보살핀다. 그런데 잠깐 저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친부와 와서 그 아이에게 술을 먹여 안락사시킨다. 어차피 죽을 아이는 죽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삶의 원칙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죽음의 어떠한 의례도 없다. 그들에게 사후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있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들의 세계관은 언어에 그대로 반영된다. 저자가 '경험의 직접성 원칙'(the Immediacy of Experience principle)으로 설명한 그들의 언어에서 복문이나 중문과 같은 간접구문은 존재하지 않으며 완료시제 또한 없다. 그들은 직접 경험한 것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 "피다한 문화에서는 원칙적으로 직접 보고 설명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432쪽).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외부로부터 폐쇄적으로 살아온 탓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웃'간 남다른 친밀감을 갖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친밀감은 거의 모든 이웃과 섹스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녀간의 결혼 혹은 이혼의 의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혼의 남녀가 섹스를 하고 서로 마음에 들면 2~3일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함께 살 뿐이다. 기혼의 남녀가 섹스를 하고 서로 마음에 들면 마찬가지로 2~3일 마을을 떠났다가 기존의 '배우자'와 살던 집을 버리고 다시 집을 지으면 된다. 물론 섹스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래의 '배우자'와 살던 집으로 돌아오면 그뿐이다. 연령도 중요하지 않다. 초경 혹은 첫몽정 이후면 된다. 실질적으로 파다한 마을에서 젖을 뗀 3살 이후로는 공동체의 동등한 성원이다. '아이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는 귀기울일 대상일 뿐이지 돌볼 대상이 아니다.  피다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가족'이다. 친족용어는 다섯 개뿐인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를 구분하지 않고 '마이히'로 부르며 때로 '마이히'는 윗사람을 부를 때도 사용된다. 그 외에 형제자매를 부르는 '하하이기'와 아들을 가리키는 '호아기/호이아시', 딸을 가리키는 '까이', 한부모 아이나 고아를 가리키는 '삐이히'가 있다. 이러한 '가족'-집단 속에서 추상적인 언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말로 무엇을 설명할 상황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추상적인 언어가 부재한, 이를테면 숫자 개념이 없는 피다한 사람들에게서 언어는 의사소통의 기능에 충실하다. 3개의 모음과 8개의 자음뿐인 그들의 음성언어는 복잡한 담화구조를 기피하는 대신에 다양한 채널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담화채널'이라고 명명한 속에는 콧노래, 휘파람, 외침, 노래 등이 있다. 아마존 밀림에서 사냥을 할 때, 비가 쏟아지는 우기일 때, 일반적인 음성언어보다 그외의 '담화채널'이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피다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임무를 띠고 피다한 마을에 들어왔다가 숫자, 색깔 등의 추상적 언어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8개월간 피다한 사람들에게 숫자를 가르쳐보지만 어떠한 진전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언어문법의 구조가 촘스키로 대표되는 '보편문법'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촘스키의 '보편문법'은 간단하게 말해 인간의 언어는 인간이 말을 습득하기 전에 이미 추상적인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문법구조는 세계의 어떤 언어에든지 동일하게 적용되며 다만 각각의 사회적, 문화적, 자연적 환경에 따라서 '변형'될 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피다한의 언어에서 추상적 구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또 피다한 사람들은 사진이나 그림처럼 이차원적 대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추상적인 인식을 발전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낚는 즉시 많든 적든 저장하지 않으며 모두 먹어버리고 먹을 거리가 없으면 굶는다. 배고픔은 그들에게 인간의 존재조건 중 하나이다. 그들에게 앎이란 삶의 조건에 다름 아니다. 아마존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야생동물들의 종속과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길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 선교를 하기 위해 아마존에 들어갔다가 결국은 피단한 사람들의 삶에 흔들리어 기독교 신자이기를 그만둔다. 종교와 진리가 망상임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신이 없는 유쾌한 세상'에 눈을 뜬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기억이 있다. 고비사막에서 현지연구를 끝내갈 즈음에 '진리 또한 문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얻은 듯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고비사막에 더 머물렀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3개월간 묵으면서 사막의 일교차와 밤마다 설치는 쥐들과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벌레들을 못견뎌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때에 혹한의 날씨의 실외에서 대소변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만 스케치를 하고 돌아간 후에 더 자료조사로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역사인류학'으로 관심을 돌린 것인데.. '현장에서 연구를 행한다'라는 기본적인 자세와 인식을 갖추지 못했고, 그래서 하다 만 연구가 되어버렸다.

인류학자에게 연구실은 현장인데, 지금의 나는 연구실을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다.  

 

다니엘 에버렛 저(윤영삼 번역),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2009년[2008년], 꾸리에.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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