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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16 하시모토 겐지의 『계급도시: 격차가 거리를 잠식한다』를 읽고

강남의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제집이 없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대한민국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며 그 위선을 깨우치는 요즈음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그와 더불어 내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어느 블로그에서 이 책을 마르크스주의와 고현학의 만남으로 소개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현학이 마르크스주의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또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이 책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에서 시도한 도시공간에 대한 계급적 분석은 매우 흥미로웠고 참신했다. 그러나 이 책 어디에서도 고현학은 찾을 수 없었다. 3장에서 고현학을 표면적으로 정의하고 고현학의 창시자인 곤 와지로의 도쿄 채집조사 내용을 소개한 것과 5장에서 저자 자신이 도쿄 거리 곳곳을 스케치하듯 기술한 것을 고현학이라고 한다면 고현학이겠지만, 그렇다면 왜 곤 와지로가 고현학이라는 독자적인 방법론과 이론을 구축하려 했으며 지금까지도 생활학, 현대풍속학, 노상관찰학 등으로 발전해왔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여하간 이 책은 고현학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현대 사회의 계급적 분화양상을 도시사회학의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이다. 20세기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고임금 노동자의 소비능력을 향상시켰고, 이러한 노동자의 향상된 소비능력은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건축업과 부동산산업을 견인했다. 그 결과 도시는 소비능력에 의한 생활방식에 따라 거주지 분화가 일어나고, 계급 구조는 도시공간을 구획한다. 저자가 계급 사회에 천착한 사회학자이기도 해서, “자본주의의 동학과 계급 간 대립이 도시를 만든다”(74)는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론, 소비의 물적 환경(‘건조환경’)으로서 건설업과 부동산에 대한 자본주의적 이해를 논한 데이비드 하비의 도시분화론, 도시사회학자들의 도시 생태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까지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를 계급도시론 안에 잘 녹여내었다.

 

또 하나는 일본 도시, 특히 도쿄의 공간 구성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다. 에도시대에 옛 도쿄를 가로지르는 스미다가와(隅田川)를 경계로 야마노테()와 시타마치(下町) 각각의 공간 구성의 특색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야마노테 지역에는 사무라이들이 주로 살았고, 시타마치에는 조닌(町人 도시에 거주한 상공계급)이 주로 살았으며, 이러한 신분에 따른 도쿄의 거주지 분리는 지금까지도 도쿄의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에도시대에 다이묘(大名)가 고지대에 살았고 조닌은 저지대에 살았던 패턴이 도쿄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미다가와보다는 고도 20m를 기준으로 도쿄 도시공간의 계급적 분리가 서북과 동남으로 분리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양상을 이중도시라고 명명했는데, 과연 야마노테와 시타마치 각각의 생활문화가 그럴 정도로 이질적인지는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이중도시란 내가 알기로 식민지 도시분석에서 나온 용어다. 예를 들어 일제식민지기 옛 서울(경성)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의 조선인과 남쪽의 일본인으로 거주지가 분리되었다. 일본인이 서울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 한성에 일본공사관이 들어서고 남산(진고개) 일대가 일본인 거류지로 지정된 이후다.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에 이미 서울의 일본인 인구수는 서울 전체 인구수의 약 30%에 달했고, 청계천을 경계로 각각의 이질적인 생활문화가 식민지 서울의 경관을 만들어내었다. 명동과 충무로 일대(식민지기에는 혼마치(本町)”라고 불렸다)는 주로 일본인들이 드나드는 상업지역이었으며, 조선인들이 드나드는 상업지역은 종로 일대였다. 언어, 의복, 주거, 음식 등등에서 혼종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식민지기 언어의 혼종화를 잘 보여준다), 식민지 서울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은 각각의 생활세계를 구축했다. 덧붙이면,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때는 1941년으로, 그때 '강남(江南)'은 상도동 일대를 가리켰다. 1930년대 중반 용산과 이태원 일대에 일본회사의 사택이 들어서면서 신중간층(회사원, 상인, 총독부 중간관료 등)의 일본인들이 그곳에 살기 시작했고, 1940년을 전후해서 여의도 건너편의 한강 이남에서 일본인을 위한 단독주택이 하나둘 지어지면서 “코우난(江南)이라는 지역 명칭이 일본인들 사이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신분에 따른 거주지 분리는 20세기에 이르러 계급에 따른 거주지 분리로 이어진다. 20세기 자본주의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각각에서 내적인 분화를 가속화 한다. 노동자 계급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는 자본가 계급 내에서의 분화만큼이나 격차사회를 만들어낸다. 또 가내경영의 구중간계급에서 나아가 조직의 운영이나 사업 기획을 전담하는 신중간계급이 출현”(12)한다. 소위 엘리트계층은 자신들만의 생활환경을 조성하고 그 속에서 자녀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급을 재생산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그들만의 거주 공간을 구획한다. 도쿄에서 다양한 계급적 분화의 공간적 구획은 기존의 공간적 분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부자 동네는 야마노테 쪽에 많고, 가난한 동네는 시타마치 쪽에 많다. 그렇다고 생활세계가 분리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하나는 저자가 도시를 산책하며 기술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우선 번역자들이 세세한 지명을 번역하느라 고생했을 것이라 짐작될 만큼 도쿄의 구석구석이 소개된다. 그리고 번역자들이 독자들을 위해 직접 현지를 탐방하고 촬영해서 사진을 책에 실어 놓았다. 그런데 이 부분이 책의 앞선 논의의 분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이 책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이중도시의 도시 공간적 분리를 드러내기보다는 명소의 흔적을 찾는다거나 지명의 유래를 설명한다거나 거리의 인상을 스케치한다. 역시 학자는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를 잘 아는 분야에 물타기 하려 해서는 안된다. 학자는 연구취미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결론 부분이 황당하다. ‘혼종도시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여러 계급의 주거지를 섞어놓는 것으로 혼종도시를 설명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결론은 마르크르주의적이지도 않고 고현학적이지도 않다. 곤 와지로가 시타마치(혼죠후카가와)의 채집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의 생활풍습이 훨씬 더 다양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생활이 묻은 물건들은 자본주의의 상품보다 다양하다. 이 다양성을 곤 와지로는 과거 혹은 전통에서 찾으려는 인류학이나 민속학과는 달리 현재의 삶 속에서 찾아내고자 했다. 만약에 곤 와지로가 지금 시타마치에서 삶의 다양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곳에 누가 살았으며 그 흔적이 어떤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지가 아니라 지금 사는 사람들의 집과 물건을 하나하나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곤 와지로의 채집조사는 산책자의 스케치로 환원할 수 없다.

 

빼앗긴 것을 되찾아온다는 계급적 투쟁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다양성을 찾아야 하는지, 찾는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요즘 나의 이러한 고민을 풀어갈 단서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하시모토 겐지 저자의 현대 자본주의 계급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주목할만하고, 그런 의미에서 2018년에 출간된 언더클래스: 새로운 하층계급의 출현(アンダークラスたな下層階級出現)을 읽어보고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빈곤율이 38.7%에 이르고 풀타임의 판매직과 서비스직에 종사하면서도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것이 어렵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이 많은, 소위 일본 사회의 언더클래스에 대해 그가 어떻게 분석했는지가 궁금하다.

 

이 책은 오탈자가 조금 있다. 눈에 띄는 오탈자를 정리해 놓았다.

 

100쪽 야마토네 야마노테

121쪽 센가와千川 센카와千川

123쪽 다키 렌타로滝廉太郎 다키 렌타로瀧廉太郎 : 인명의 한자표기는 약자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약자를 쓰지 않는다.

132환상의 마을幻景》 → 《환영의 거리幻景: 덧붙이면, 이 책의 부제가 文学都市[문학의 도시를 거닐다]’이다.

132쪽 각주 43 진나이 히데노부가 도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년도는 1990년이 아니라 1983.

133쪽 모리 오가이森鴎外 모리 오가이森鷗外 : 이 경우에는 정자 표기가 원칙이나 약자 표기가 통용되기도 한다.

163쪽 토요타 데쓰야豊田哲也 토요다 데쓰야豊田哲也 : 아마도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의 창업주의 성이 豊田이기에 인명에 쓰이는 豊田의 독음을 토요타로 잘못 알 수 있다. ‘토요타회사 또한 처음에는 토요다였다가 토요타로 바꾼 것이다.

180쪽 오나오치大縄地 오나와치大縄地

181쪽 이쿠라카타마치飯倉片町 이구라카타마치飯倉片町 : “이이구라(飯倉)”라는 지명은 관동지방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바칠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였다는 것에서 유래하는데, 점차 발음의 편의상 이이구라보다는 이이쿠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이구라카타마치(飯倉片町)는 옛 지명의 발음 그대로 통용된다.

184쪽 지도 미타오마야초 미타오야마초

189쪽 히오로 히로오

190쪽 구와하라자카桑原坂 구와하라사카桑原坂

200, 201, 203쪽 도미자카富阪 도미사카富阪

203쪽 세쓰쇼노미야摂政宮 셋쇼노미야摂政宮

204쪽 마쓰하라松平 마쓰다이라松平

206쪽 하쿠산고덴초白山御殿町 하쿠산고텐마치白山御殿町

히카와시타초氷川下町 히카와시타마치氷川下町

207쪽 고마고메니시카타초駒込西片町 고마고메니시카타마치駒込西片町

210쪽 이쿠토쿠엔신지育徳園心字池 이쿠토쿠엔신지이케育徳園心字池

213쪽 각주 19 우치다 핫켄의 출신은 후쿠오카가 아니라 오카야마.

214쪽 네즈초根津町 네즈마치根津町

215쪽 게이힌도호쿠선 게이힌토호쿠선 : 전철이나 기차의 노선명을 고유명사로 보고 현지의 발음대로 표기한다면 ()’까지도 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신간선이라고 하든지 신칸센이라고 하든지. “신칸선이 적절한 표기인지는 모르겠다. 이와 마찬가지로 게이힌토호쿠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16쪽 다바다田端 다바타田端

221쪽 가타구치 야스키치片口安吉 가타구치 야스요시片口安吉 : 보통 인명에서 安吉야스요시로 발음된다.

222쪽 지은이 주 이케노하다池之端 이케노하타池之端

226쪽 신 가시가와 신가시가와 : 지명이므로 붙여서 쓴다. 신주쿠新宿에서 주쿠를 띄어 쓰지 않듯이.

243쪽 슈큐바宿場 슈쿠바宿場

252쪽 하야시 후미코林芙美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 탈자

263쪽 각주 45 오카사카 마리 아카사카 마리

바이브레이타バイブレーター》 → 《바이브레이타ヴァイブレータ

284-285쪽 우지코초카이氏子町会 우지코마치회氏子町会

 

 

 

하시모토 겐지, 계급사회: 격차가 거리를 침식한다(김영진, 정예지 번역), 킹콩북, 2019.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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