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올 수밖에 없는 인류학> 시리즈로 출간된 다섯 권 중 4권인 『人と動物の人類学』[사람과 동물의 인류학](2012년, 靑風社)의 서문을 번역해 올려둔다. 이 책에 담긴 총 열편의 논문 중 서너 개를 골라 번역할 생각이다. 인류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학문으로서 인류학이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주요테마로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동물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방식이 완전히 파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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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지구적 차원에서 묻다

 

오쿠노 카츠미(奥野克巳)

1. 분절된 사람과 동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사람과 동물은 별개의 존재이다. 우리 사람이야말로 사회를 영위하고 세계를 만드는 주인공이며, 그 주변에 개와 고양이, 보통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식용을 위해 사육되는 소와 돼지가 있고, 나아가 멀리 떨어진 자연 속에 기린이나 코끼리나 사자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이 이렇게 배치된 데에는 그 나름의 인류사적인 이유가 있다. 서양에서 비롯된 합리성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그러한 사람과 동물의 배치가 고착되어왔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기독교의 사고방식에서 영향을 받아 동물로부터 사람을 떼어내고 사람을 사고와 감정과 정신을 가진 존재로 다뤄왔다. 그 의미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명료한 분할선이 그어져있다. 동물은 서양의 형이상학을 토대로 구축된 과학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적인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우리의 생활과 제도에서도 사람과는 다른 존재이다.

한편 사람과 동물 사이에 그어진 분할선은 서양사고의 내측에서 천천히 붕괴되어왔다. 동물들은 적자생존의 개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지구탄생이후 유구한 세월을 거쳐 이뤄져온 그러한 영위의 결과 동물로부터 사람이 탄생해왔다는 학설이 19세기 중반 제창되었다. 생명과학과 영장류학 등 사람과 동물의 공통적인 평면을 다루는 현대과학의 현저한 진전에 따라, 오늘날 적어도 학문상으로 사람과 동물은 그렇게 확실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사람과 동물이 별개라는 사고방식이 깊게 침투해있다. 동물에게는 정신도 감정도 없다는 생각이 근현대의 주류적인 사고방식이 되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으며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대항적인 사고방식이 출현하고 있다. ‘사람 동물’이라는 표현이야말로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동물로부터, 동물로부터 사람을 구분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말이다.

 

2. ‘와/과’를 생각하기 위한 수사실험

『사람과 동물의 인류학』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사람과 동물’이라는 저 흔한 표현에 담긴 ‘와/과’에 주목해보자. 우리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와/과’를 끼우고 사람‘과’ 동물이라고 말함으로써 의식하는 못하는 사이에 사람과 동물을 분리한다. 혹은 사람‘과’ 동물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람과 동물을 병렬로 놓는다. 여하간 ‘와/과’를 끼어둠으로써 사람과 동물은 다른 존재가 된다.

사람과 동물을 분리하고 별개의 존재로 만드는 언변은 ‘와/과’뿐만 아니다. 예를 들어 ‘와/과’ 자리에 ‘에게’를 삽입해보자. 사람에게 동물, 동물에게 사람이라고 말할 때, 사람과 동물은 병렬에 놓인다. 혹은 사람에게는 동물이, 동물에게는 사람이 나뉘어 적용되는 상황이 나타난다. ‘에게’에 의해 사람과 동물 사이는 멀어진다.

나아가 이번에는 ‘의’를 삽입해보자. 사람의 동물이란 사람의 소유물로서의 동물이며, 동물이 사람에 종속되게 된다. 그때 사람은 동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동물은 관리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동물의 사람이라고 하면, 동물 속에 있는 인격이나 인간성과 같은 것이 읽힐 것이다.

조금 더 이러한 수사실험을 이어보자. 이것은 사람과 동물을 분리해서, 구분하는 것과는 다른,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상상해보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이다.

‘와/과’ 대신에 ‘은/는’을 삽입해보자. 사람은 동물, 동물은 사람이라고 바꿔 말하면 어떤 사태가 나타날까? 사람은 동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그러한 사실을 잊고 있다. 보통 사람은 동물인가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생물학 교과서에는 사람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놓고 있다. 반대로 동물은 사람이라고 바꿔 말하면 어떠할까? 동화나 민요에서 동물은 말을 하거나 울거나 우는 등 사람처럼 행동한다.

‘와/과’ 대신에 ‘도’를 넣어보면, ‘은/는’을 사용할 때와는 의미내용이 다르다. 사람도 동물이라는 표현은 사람 또한 동물의 범주에 포함됨을 의미한다. 반면 동물도 사람이라고 바꿔 말하면 듣는 이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동물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저 표현에는 동물도 사람의 범주에 포함됨을 뜻한다. 지구상에는 북미선주민들과 같이 전통적으로 동물도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으로 ‘(으)로부터’를 넣어보자. 사람으로부터 동물, 동물로부터 사람. 사람으로부터 동물로, 혹은 그 반대로 동물로부터 사람으로는 무언가가 부여되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사람으로부터 ‘사육’ 동물에게는 먹이가, 동물로부터 사람에게는 고기 등이 얻어지는 것처럼. ‘(으)로부터’는 증여의 방향을 나타낸다. 나아가 그렇게 바꿔 말하는 속에는 ‘와/과’에서 구별되는 것처럼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설정된 경계선을 초월하여 사람으로부터 동물로, 혹은 그 반대로 동물로부터 사람으로 영역을 침범하는 초경의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과 동물의 ‘와/과’를 대신에서 그 자리에 다른 단어들을 넣어보면,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양한 관계양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동물 또한 사람이라는 사태이거나(행위주체성), 사람과 동물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섞이는 모습이거나(분리불가능성), 사람과 동물 사이에 분할선이 가정되거나(경계성), 그러한 분할선을 넘어 동물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초경성).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의 양태가 가능하다.

 

3. 문학이라는 본보기

그런데 문학은 이제까지 사람과 동물의 관계의 다양한 존재방식에 관해 실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예를 들어,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는 알래스카 여행에서 만난 동물들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과 대조하면서 동물도 사람도 함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일한 행위주체임을 상기시킨다. 프란츠 카프카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고뇌를 그렸다. 그레고르에게는 사람의 내면성과 벌레의 신체성이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결합되어 있었다. 코맥 매카시는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서 말(馬)의 혼 속에 영원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16살의 존 그래디의 심정과 성장을 그렸다(『모두 다 예쁜 말들』). 1915년 북해도의 천염개척촌에 어느 큰곰이 나타나 이틀간 6명을 살해한 일본 동물피해의 역사상 가장 큰 참사를 다룬 요시무라 아키라(吉村昭)는 경계를 넘어온 맹수와 그 공포와 사람들의 격투를 그렸다.

문학에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사람과 동물의 다양한 관계성으로 넘쳐난다. 이에 대해 『인간과 동물의 인류학』에서 시도하는 것은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양한 관계의 존재방식을 지구차원에서 민족지로 기술 검토하는 것이다.

 

4. 네 가지 관계성

‘행위주체성’, ‘분할불가능성’, ‘경계성’, ‘초경성’이라는 네 가지 양태를 설정한 속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탐구해보자.

제1부 ‘행위주체성’에서는 동물이 가진 ‘행위주체성’이 상정되는 민족지적 상황이 다뤄진다. 동물의 사람 혹은 동물은 사람 혹은 동물도 사람이라는 관계성이 다뤄진다.

「동물과 말하는 사람들」(1장)에서 야마구치 미카코(山口未花子)는 주체를 가진 동물과 관계를 맺는 캐나다 수렵민인 카스카족을 통해 ‘동물과 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카스카에게 동물은 사람과 같은 존재이다. ‘동물과의 대화’는 단순한 해석이나 믿음의 산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카스카족의 생활 속에서 재검토해보면 그것은 동물과의 신체적ㆍ초자연적인 교섭을 통해 획득된 기술이나 지식임을 할 수 있다. 카스카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면서 동물과 교섭함으로써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왔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는 더욱 농밀한 사회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

「고자질 하는 돼지꼬리원숭이」(2장)에서 오쿠노 카츠미(奥野克巳)는 보르네오섬의 수렵민인 푸난 사회에서 천계의 신에게 사람의 조야한 행동을 고자질 하는 동물의 사례를 들고 있다. 동물은 사람과 같이 행동한다. 오쿠노는 사람과 동물,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항을 상정하고 그것들을 관계 짓는 구래의 동물 애니미즘을 비판하고 사상(事象)과 환경을 좇아 살아가는 그들의 행동 속에서 행위주체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하여 동물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제2부 ‘분리불가능성’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섞여있다는 ‘분리불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 속에서 사람도 동물이며 동물 또한 사람이라는 사태를 다룬다.

「서구에 나타나는 혼종성으로서 괴물」(3장)에서 마츠다이라 토시히사(松平俊久)는 중세에서 근세까지 나타난 유럽의 괴물을 다룬다. 괴물은 사람과 동물을 융합한다. 본래는 대립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동물을 하나의 신체의 구성요소로 만드는 괴물 그 자체는 무질서에 지배되지만, 그 한편으로 괴물은 사회적ㆍ집합적인 이해 혹은 합의라는 이름의 질서가 부여된 창조물이라는 적극적인 의미 또한 갖고 있다.

「‘인간고릴라’와 ‘고릴라인간’의 민족지」(4장)에서 오오이시 타카노리(大石高典)는 중부아프리카의 수렵채집민인 바카족과 농경민인 바쿠베레족을 다루고 인간과 고릴라가 표상 속에서 어떻게 섞이는지를 민족지적으로 그려낸다. 바카족은 바쿠베레족을, 죽으면 고릴라로 다시 태어나는 ‘고릴라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바쿠베레족은 바카족을 작은 동물로 변신하여 밭작물을 훔쳐가는 등 나쁜 짓을 한다고 여기며, 또 고릴라 안에는 고릴라이면서도 혼은 인간인 ‘인간고릴라’가 뒤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오오이시는 이 두 사회의 상호관계의 지평에서 사람도 동물이며 동물도 사람이라는 착종적ㆍ혼동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살아있는 만다라」(5장)의 서두에서 이시쿠치 토시아키(石倉敏昭)는 인간과 그 외 동물들에 공통하는 구강(口腔) 공간을 다루면서 사람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카트만두분지에 위치한 네와르 지방도시 산쿠에서 만다라 모양의 도시공간구성의 경계를 이루는 네 개의 ‘문’과 그 외부의 ‘숲의 사원’을 둘러싼 바슐라 요기니 여신의 신화를 검토하고, ‘인간성’, ‘동물성’, ‘여성성’이라는 각각의 원리가 어떻게 상호 결합하여 사람과 사람 이외의 존재로 이루어지는 집합적인 세계상을 직조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제3부 ‘경계성’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포함하여 존재자들 사이에 그어진 ‘경계성’의 존재양식을 검토한다. 사람과 동물, 사람에게 동물이라는 표현 속에 보이는 분절을 둘러싼 문제를 다룬다.

「오키노시마(隠岐島)의 둔갑하는 뱀」(6장)에서 콘도 시아키(近藤祉秋)는 오키노시마의 노인에게서 들은 사람으로 변신하는 뱀 이야기와 체험담을 회상한다. 이 속에서 동물은 동물로 고정되지 않는다. 자연과학적인 종 분류법은 현실세계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다양한 종 분류법의 하나이지 않을까? 콘도는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의 정체를 꿰뚫어본다거나 지벌[각주:1]의 원인을 찾는다거나 하는 주제에 관한 오키노시마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니미즘’론의 지평에서 검토하면서 동물 분류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고찰한다.

「야생동물과 사귀는 법」(7장)에서 이케다 미츠호(池田光穂)는 생물다양성 보존을 둘러싼 논의에 등장하는 반달곰과 듀공과 현대일본인 사이에 상상되는 ‘사귀는 법’을 다룬다. 동물에 대한 사람의 ‘믿음’의 인지과정을 단서로 반달곰의 ‘항의활동’과 듀공의 법적인 ‘당사자적격’을 기술 검토한 하에서 동물에 대한 사람의 일방적인 ‘섀도복싱’ 상황을 그려낸다.

제4부 ‘초경성’에서는 동물이 사람과 동물 사이에 가설적으로 설정된 경계를 넘어 인간의 영역으로 침투하거나 몸을 던지는, ‘경계성’을 둘러싼 문제를 고찰한다. 이 속에서 동물에서 사람으로 향하는 관계의 양태를 둘러싼 문제가 거론된다.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경계>의 재생산」(8장)에서 메구로 토시오(目黒紀夫)는 아프리카의 마사이 사회에서 오늘날 야생동물이 사람의 영역으로 경계를 넘어 침입하여 사람들의 생활기반을 파괴하는 사태를 다룬다. 마사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야생동물과 ‘경계’를 만들지 않고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일상적 및 쌍방향적인 공격과 회피를 통해 거리와 긴장감을 수반한 공존을 실현하고 있다. 메구로에 따르면, 현재 정부의 개발ㆍ보존정책에는 그러한 ‘경계를 둘러싼 전술=거리의 재생산’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간극의 초경성(超境性)의 재검토」(9장)에서 니시자키 노부코(西崎伸子)는 자연보호사상을 출발점으로 하는 사람과 동물의 경계설정이라는 지구적 차원의 전개에 관한 전망을 살펴보고, 에디오피아의 야생동물 보호의 맥락에서 야생동물이 사람의 영역으로 경계를 넘어 침입하는 사태를 로칼한 경계인식의 관점에서 다룬다. 그리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경계성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것 혹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선호되는 자연환경을 주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것 등을 제시한다.

「동물에 숨겨진 증여」(10장)는 Nadasdy, Paul(2007) "The Gift in the Animal: The Ontology of Hunting and Human-Animal Sociality" American Ethnologist 34(1), pp.25-43의 번역본이다. 지금까지 필리프 데스콜라,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팀 잉골드 등은 사람과 동물, 문화와 자연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를 이끌어왔다. 폴 나다스디는 그러한 연구의 흐름 속에 ‘동물에 숨겨진 증여’라는 북방선주민의 사고방식을 위치짓고 탐구한 인류학자이다. 그는 사람도 동물도 함께 ‘인간’이라는 관념 속에 포섭되는 존재로 여기는 북방선주민의 사고방식에 근거하여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둘러싼 북방선주민의 서사를 ‘은유’로 다루는 종전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고자 한다. 여기서 ‘인간’으로 번역한 것은 나다스디의 원문의 “person”이다. 북방선주민은 사람에게도 사슴(moose)에게도 ‘인간성’(personhood)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 의미에서 사람은 사람인간이며 사슴은 사슴인간이다.

 

5. 사람과 동물의 다양한 관계성

사람과 동물을 절단한 분할선에 의해 양자의 관계성이 정해져왔다는 지점에 동물을 둘러싼 오늘날의 과제가 숨겨져 있다. 동물은 사람을 위해 애완화되고 애완화하는 사람 손에 의해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단절된다. 동물은 육식을 위해서만 집단 속에서 사육되고 가축화된다. 사람과 달리 동물에게는 정신이나 감정이 없다고 간주되고 동물은 사람에 의해 관리ㆍ통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인데, 그러한 동물들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 책의 저류에 흐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특히 산업화 시대 이후 사람을 위해 목숨을 잃는 동물의 영을 위로하는 신앙실천이 왕성하게 이뤄져왔으며, 또 오늘날 유럽을 시작으로 동물권에 중점을 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은 동물을 사람과는 다른 단순한 물적 존재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일 수 있다. 지금 사람과 동물의 관계의 분할선을 뒤흔들고 있다. 아니 본래부터 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다양하지 않았는가!

이 책 『사람과 동물의 인류학』의 목표는 인류사회라는 큰 시야 속에서 사람과 동물의 다양한 관계양상을 그려내고 동물에 관한 현대적인 과제를 생각해가기 위한 단서를 찾아내고 그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데에 있다.

 

 

  1. 신(神)이나 부처에게 거슬리는 일을 저질러 당하는 벌. [본문으로]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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