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政事の構造:政治意識の執拗低音」[정사의 구조: 정치의식의 집요저음]

이 논문은 『현대사상』마루야마 특집호 맨 마지막에 실린 것으로 1984년 11월에 행한 마루야마의 강연록이다. 이 강연은 강연에 앞서 출간한 『日本文化のかくれた形』[일본의 숨은 형](1995년 국역본 출간)이라는 책의 보론이라고 한다.

이 논문은 일본의 정치구조와 정치사상사의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블로그에는 논문의 번역본 전체를 올리지는 않겠고 논문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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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사(政事)는 일본어로 “마츠리고토”라 읽는다. 일본어의 한자에는 음독과 훈독이 있다. 음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한자음에서 차용한 것이고, 훈독은 한자로 표기하되 그 일본어를 그대로 놓아둔 것이다. 가령 “形”이라는 한자를 한국어에서는 “형”이라 읽는데, 그것은 “모양”을 뜻한다. 그런데 “모양”은 “形”의 기의가 아니라 한국어의 기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자의 훈’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 말해 한자의 한국어 기표인 것이다. 즉 일본어에서는 “形”으로 표기하되 “かた”[카타]로 읽는 반면, 한국어에서는 “形”으로 표기하고 중국어의 한자발음을 차용한 “형”이라 읽는다. 이와 같은 일본의 한자어 훈독은 ‘중화문화’의 유래와 일본문화와의 습합과정을 밝히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아니,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유발해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시기 서구의 근대를 받아들이면서 ‘번역’에 집착했던 것도 이러한 정황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에도시대 중기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중국의 한자어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일본주의 혹은 일본정신을 강조하며 “漢心”(카라고코로: 중국식 사고방식)을 배격하려했던 것도 일본의 한자어 훈독이 일본에 유입된 ‘외래사상’을 끊임없기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루야마는 모토오리 노리나가뿐만 아니라 일본주의 혹은 일본사상을 견지하고자 했던 일본의 사상가들은 모두 그러한 프로젝트에 실패했으며, 결과적으로 일본의 사상은 ‘진짜는 밖에 있다’는 ‘밖’을 전제하는 사상으로 일본의 사상사는 외래사상의 왜곡의 역사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마루야마는 일본정치사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구조, 즉 일본정치사상의 ‘집요저음’(*)으로 밝혀내고자 했다. (*‘집요저음’은 음악학의 용어로 집요하게 반복되는 저음의 음형을 가리키는 basso ostinato의 번역어이다.)

2.

먼저 마루야마는 일본에서 천황제 국가, 곧 야마토 국가(大和国家)가 확립된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대규모로 율령체제를 받아들이고 당제의 법과 정치의 용어를 유입하면서도 몇몇 용어는 ‘훈독’으로 남겨두었다. 그중의 하나인 “마츠리고토”는 메이지유신까지 “정치(政治)”보다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마츠리고토”(政事)는 발음이 “祭事”와 같다는 것으로 일본고대의 제정일치의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간주되어왔으며 일본의 “국체”가 예부터 존재해왔다는 준거로 제시되어왔다. 그런데 제정일치설 또한 역사적 산물이다. 게다가 政事=祭事라면 일찍부터 일본의 고문헌에 “祭事”가 등장했을 터인데 “祭事”가 일본역사에 등장한 것은 헤이안시대 이후이다. 마루야마는 政事를 “마츠리고토”로 훈독한 유래는 “奉仕事”에 있다고 주장한다. 천하의 신하는 천황의 명을 받아 각자의 직무를 다하는 것, 이것은 천하의 “마츠리고토”였다는 것이다. 즉 “마츠리고토”(政事)를 할 때의 주어는 군주가 아니라 군에게 소임을 다하는 신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정치구조에서는 정통성의 소재와 정책결정의 소재가 분리되어 이원화된다. “마츠리고토”는 이와 같은 이원화를 보여준다. 정통성은 천신으로부터 이어져온에서 천황에서 주어지되, 결정은 신하의 직무에서 행해진다. 당의 율령제부터 서구의 절대군주제에 이르기까지 최고정치기구는 황제로 표상되어왔다. 여기서 황제를 넘어서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는 행정기구를 직접적으로 예속하며, 예속된 행정기구는 관료제로서의 신하를 말한다. 반면 일본의 천황은 정통성의 층위에는 존재하지만 결정의 층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본정치구조에서 신하는 관료제가 아니라 결정권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에 위치한다. 당의 율령제와 서구의 절대군주제에서 ‘신’은 ‘民’과 구별되며 ‘君’에 엮여 ‘군신’으로 말해지는 반면, 일본에서는 ‘황국신민’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 ‘신’은 ‘민’과 엮인다.

그런데 “마츠리고토”는 상급자에 대한 직무의 헌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 직무를 마친 후의 보고로 행해진다. “마츠리고토”는 야마토로 돌아와 무사평정을 대군에게 보고하는 것이며 그러한 순환의 일단의 완결을 가리킨다. 이때 천황은 “마츠리고토”의 결과를 다만 수리하는 지위에 있는 수동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마츠리고토”는 천황과 신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신과 민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치자와 피치자는 →←라는 대립과 지배의 관계로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위’를 향해 동방향적으로 직무하는 관계에 놓인다.

3.

율령제의 변질과정에서 주목된 바와 같이 정통성의 층위와 결정권의 층위가 분리되는 패턴은 그 후에도 반복적으로 출현하는데, ‘천황친정’의 외형은 섭정(攝政)과 관백(關白: 天皇를 보좌하여 정무를 총리하던 太政大臣의 중직)이라는 섭관제(攝關制)를 등장시킨다. 섭관제는 ‘후견’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마츠리고토”의 정통성을 지닌 최고통치자의 배후에는 늘 ‘후견’이 있었다. 이처럼 비공식화 혹은 ‘身内’(“미우치”)화(**)는 결정과정의 복잡한 사태로 이어진다. ‘후견’에게도 ‘후견’이 있다. 이러한 ‘후견’의 존재로 인해 공적지위라 해도 내실은 사적인 가정(家政)기관인 것이다. (**“미우치”(身内)는 일본어에서 자신과 가까운 쪽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측근’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러한 패턴은 무가(武家) 정치에서도 완전히 재생산되어왔다. 막부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정치형태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전부 중국을 모델로 하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인데, 일본에서만 공가(公家)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한 무가정권이 발생했다. 물론 일본국 통치의 정통성의 소재는 쇼군이라는 칭호가 조정에서 수여되는 것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공가에 있다. 그러나 통치의 실권은 막부에게 있으며 게다가 그 실권은 점점 확대되어 그 반대급부의 효과로 율령제는 명목화된다. 그럼에도 그 막부는 겉으로는 조정에 대해 ‘후견’할 뿐이라고 말한다. 막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쇼군의 ‘후견’이 존재하며 ‘후견’이 현실의 결정권을 갖는다. 이처럼 결정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집권의 지위 자체는 형식적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후견’ 자체가 사화(私化)(***)되는 과정과 같다. (*** 사화(私化)는 결사형성적/비결사형성적의 횡축과 정치적 권위에 대한 구심적/원심적의 종축의 좌표에서 비결사형성적이며 정치적 권위에 대해 원심적인 좌표에 위치하는 개인의 출현패턴을 가리킨다.)

율령제의 변질과정에서 정통성과 결정권의 이원화 경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편으로는 실권의 하강화 경향과, 또 한편으로는 실권의 “미우치”화 경향이 또 다른 파생적 패턴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사에서 ‘혁명’이 부재한 것을 설명한다. 역설적으로 말해, 혁명의 대역을 맡아온 것은 실질적 결정자의 부단한 하강하 경향이며 이러한 권력이 자연적 경향성을 띠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통성의 소재와 결정권이라는 의식적 분리 및 그것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권력의 하강경향과 “미우치”화경향이라는 일본정치의 ‘집요저음’은 병리현상으로서 결정의 무책임체제로 이어져왔다. 아래에서 위로 규정되는 “마츠리고토”는 결정이 신하에게로, 또 그 신하의 신하에게로 하강해가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불특정의 상급자에게로 무한히 역급(逆及)되는 곳에서 ‘궁극적인 것’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마츠리고토”의 완료란 존재할 수 없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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