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읽기

독서일기 2015. 3. 15. 23:47

문해력이 부족해서인지 나는 책을 한번 읽어서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모른다. 책을 끝까지 읽고 저자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감을 잡은 다음, 그 문제의식으로 다시 처음부터 읽은 후에야 책이 이해된다. 어떤 책이든 처음 붙잡을 때에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따라가지 못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도 딴 생각을 하게 되어 집중력도 생기지 않는다. 두번째 읽을 때 비로소 집중력있게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첫번째 독서는 두번째 독서를 위한 것이다.  

 

앤드루 고든(Andrew Gordon)의 『현대일본의 역사』(이산, 2005[2002])는 7,8년전에 읽은 것인데, 어쩌다 책장을 한두장 넘기다 끝까지 다시 읽게 되었다. 분명히 줄이 쳐져 있고 나름 책과의 대화를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얻은 문제의식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연대기적 역사서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연대기적 역사서야말로 연대기적 사실에 밝아야 행간에 감춰진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7,8년 동안 전후 일본의 사상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일본인' 연구를 해온 덕에 이제야 나는 앤드루 고든의 문제의식을 접수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 그렇게 무지해놓고서 제국-식민지의 삶을 연구하겠다고 했으니.. 인터뷰 조사를 하면서 얻어들은 시대상황의 파편들은 어디서부터 파고들어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일례로 1927년 스즈키상사의 파산은 1929년 일본제국에서 일어난 경제공황의 신호탄이었으며 1930년 이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정치질서의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스즈키상사에 입사하여 조선으로 건너간 어느 '일본인', 그 후손의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던 것인데, 스즈키상사의 도산과 1929년의 공항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역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스즈키상사의 도산으로 인해 타이완을 비롯한 일본제국의 '외지'의 수십군데의 은행들이 연쇄파산하기에 이르렀고 일본제국은 산업부문을 재편하면서 "국가공동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의 질서를 잡아가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어려웠지" "그때는 살기 괜찮았지"라는 이야기들이 연대기적 역사서의 사건들과 맞아떨어질 때, 특정한 사건에 몰입하면서도 그 무게감을 공정하게 책정하는 '역사'에 놀라움을 느낀다.      

"도쿠가와 시대에서 2001년까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에도시대인 1800년 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각 영역의 주요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훑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현대일본의 역사는 한마디로 '일본'이 '서양'과 대립하면서 '서양'을 받아들이며 '아시아'를 구축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과 '아시아'가 교착되는 이유는 근대 바로 그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일본의 근대라는 수수께끼의 풀이과정이다. 그러나 근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풀이과정은 진행중이다. 

 

두번 읽은 또 하나의 책은 오사와 마사치(大澤真幸)의 『전후 일본의 사상공간』(어문학사, 2010[1998])이다. 어느 시민강좌에서 강연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전후 일본의 사상'에 관한 그 어떤 책보다 이해하기 쉽다. 오사와 마사치가 깊게 이해하고 쉽게 설명하는 '지식인'이기도 하고.

역자해제에서도 밝혔듯이, 오사와 마사치는 순환론적인 역사관으로 전후 일본을 다루고 있다. 즉 1945년 패전을 기점으로 이전의 60년('전전/전간')이 이후의 60년('전후')으로 반복된다는 기본적인 틀을 설정해놓고 있다. 사회시스템의 이론이 순환론적인 역사관과 친화적인 이유는 내가 보기에 시스템 그 자체가 반복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오사와 마사치는 60년을 단위로 역사적으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예시하며 '전후에 반복되는 전전론'을 전개하고 있고, 그 근저에 '자본주의'라는 사회시스템을 깔아놓고 있다. 

내가 이 책을 두번 읽은 것은, 오사와 마사치가 이 책에서 6,70년대를 '다이쇼데모크라시'에 빗대어 중심이 없으면서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결여된 상태로 분석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오사와 마사치는 이러한 자기부정이, '근대의 초극'이 일본제국을 보편성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실패한 것처럼, 기억의 억압과 배제("기억상실")라는 표현의 불가능성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신체는 이탈되고 참된 자아는 형이상학으로 회귀하는 '일본인론', 어째서 '일본인론'은 늘 이렇게 귀결되고 마는 것일까?

 

다카하시 테츠야(高橋哲哉)의 『国家と犠牲』(NHKBOOKs, 2005)과 『歴史/修正主義』(岩波書店, 2001)를 두번 읽었다. 전자가 후자보다 나중에 나온 책인데, 전자를 먼저 읽었다. 다카하시의 책들을 두번 읽은 이유는 '일본인' 연구의 나의 입장을 좀더 정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테츠야는 일본에서 '전쟁책임론'을 주창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歴史/修正主義』는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의 『패전후론』(1997년) 이후 일본에서 전개된 역사수정주의 논쟁과정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책 말미에는 역사수정주의와 전후일본의 역사관 논쟁에 관한 문헌목록과 더불어 다카하시 본인도 참여한 "일본군위안부"의 법정소송과정이 덧붙여져 있다. 『国家と犠牲』은 역사관 논쟁에서 제출된 몇가지 논점을 이론적으로 검토한 책이다. 18,19세기 유럽(특히 프랑스와 독일)에서 형성된 내셔널리즘에서 시작되어 데리다의 국가론으로 마무리짓는 이 책에서 저자는 과연 '전쟁 없는 국가'라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질문한다. 저자 자신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만큼 가능하다'고 답한 것처럼, 역사적 입장이란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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