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일본인론' 혹은 '일본문화론'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라캉의 '일본론'--서구의 일본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도 읽힐 수 있는--을 바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으로 분석한다. 일본인의 정신의 원형으로 간주되는 "야마토타마시이"(大和魂)가 18세기에 출현한 근대적 정신문화현상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역시 연구자는 동일한 논제를 다루더라도 자신만의 사유체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는 "야마토타마시이"를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으로 풀이한 반면(『사산되는 일본어 일본인』이득재 역, 문화과학사, 2003 참조), 가라타니 고진은 그것을 그것의 허구성과 회귀성이라는 비평의 자리로 올려놓으며 다음의 문제의식을 예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글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2002년 이후 일본의 근대문학에 대한 비평을 그만두고 왜 [세계사의 구조], [제국의 구조]로 연구주제를 옮겨왔는지 그 고민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원문은 http://www.kojinkaratani.com/jp/essay/post-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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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신분석 재고 (강연) 2008년 12월 7일

오늘 제가 <일본라캉협회>에 초대된 것은 예전에 「일본정신분석」이라는 논문에서 라캉을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논문에서 저는 라캉이 일본에 대해, 특히 한자의 훈독 문제에 대해 말한 것을 인용했습니다. 오늘 저는 그 문제를 말할 것인데, 이에 앞서 약간의 경위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일본정신분석」이라는 논문은 1991년에 쓴 것으로, 『가라타니 고진 전집 제4권』(이와나미 서점)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정신분석』(코단샤 학술문고)이라는 제목의 책과 다릅니다. 후자는 2002년에 쓴 것으로, 여기서 저는 앞서 쓴 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일본정신분석」을 쓸 당시에 저는 일본인론과 일본 문화론을 부정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그 안에 포섭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 후 저는 ‘일본론’에 대해 어떠한 글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재 기분으로는 저의 그 논문을 다시 읽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와카모리 요시키(若森栄樹, 1946~ 프랑스철학자, 라캉학회 이사) 씨를 비롯한 라캉파 사람들에게 저의 논문이 평가받아 강연을 의뢰받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재고라 해도 별도로 새로운 견해를 제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 제가 이야기함으로써 여러분들이 다시금 고민할 기회를 갖는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온 것입니다.

「일본정신분석」이라는 논문의 주제는 제가 1980년대 후반에 생각했던 문제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마루야마 마사오가 『일본의 사상』에 쓴 논점을 재검토하는 것입니다. 마루야마는 서양의 사상사를 기준으로 일본의 사상사를 고찰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일본 사상사에는 다양한 개별 사상의 좌표축이 될 만한 원리도 없고 어떤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할 전통도 없으며, 모든 외래 사상이 수용되어 공간적으로 잡거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원리적인 대결이 없기 때문에 발전도 축적도 없다(『일본의 사상』이와나미 신서 1961 년). 다시 말해, 외부에서 도입된 사상은 결코 ‘억압’되는 법 없고 단지 공간적으로 ‘잡거’할 뿐이다. 새로운 사상은 자신과의 본질적인 대결이 없는 상태로 저장되며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면 돌연 호출된다. 그리하여 일본은 어떤 무엇이라도 다 있다. 그는 그것을 ‘신도’라고 부릅니다. “‘신도’는 이른바 수직으로 휑하게 늘어진 물주머니처럼 당대의 유력한 종교와 ‘습합’하여 그 교의내용으로 채워왔다. 이 신도의 ‘무한포옹’과 사상적 잡거성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상적 ‘전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같은 책).

마루야마 마사오는 서양과 비교하여 일본을 고찰한 사람인데, 다른 한 사람, 중국과 비교하여 일본을 고찰한 사람이 있습니다. 중국 문학자,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 1910~1977)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근대 서양과의 접촉에서 아시아 국가, 특히 중국은 그에 대한 반동적인 ‘저항’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그것이 없이 원활하게 ‘근대화’를 이루었다. 이는 일본에는 사상의 좌표축이 없다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의견과 같습니다. 즉, 원리적인 좌표축의 존재는 ‘발전’보다 오히려 ‘정체’를 이끌어 낸다. 일본의 ‘발전’의 비밀은 자기도 원리도 없는 것에 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시적인 침체를 수반하더라도 중국과 같은 ‘저항’을 통한 근대화가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편이 오히려 서양 가깝다고.

저는 그들의 주장에 별로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러모로 생각했을 때 확실히 그렇습니다. 근대 일본의 다양한 문제가 여기세 집약됩니다. 단지 제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렇다면 왜 그러한가 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아무래도 집단으로서의 일본인의 심리를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넓은 의미로 ‘정신분석’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루야마는 『일본의 사상』 이후 1972년에 「역사의식의 古層」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사상』에서 지금 언급한 문제, 즉 신도라든가 사상의 좌표축이 없다든가 하는 것들을 고대로 역행해서 풀어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古史記』의 분석을 통해 수행했습니다. 그 때 그가 ‘古層’에서 찾아낸 것은 의식적인 조작ㆍ제작에 대해 자연적인 생성을 우위에 두는 사고였습니다. 고층(古層)은 일종의 공동 의식입니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식의 古層’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편, 당시 가와이 하야오(河合隼雄)의 일본문화론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모성사회 일본의 병리』라는 책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은 융 학파였기 때문에, 당연히 집합무의식 같은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다룹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양인의 경우는 의식의 중심에 자아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정합성을 갖는다. 그리고 자아는 심층[무의식]에 존재하는 자기와 연결된다. 이에 반해 일본인의 경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도 확실하지 않고 의식의 구조도 오히려 무의식 내에 존재하는 자기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중심을 가지는지의 여부도 의심스럽다”(『모성사회 일본의 병리』).

하지만 저는 이와 같은 집합적 무의식을 무엇인가 실재하는 것처럼 다루는 데에 의심을 품습니다. 어느 일본인 개인을 정신 분석할 수 있겠으나, ‘일본인의 정신분석’이란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자, 프로이트는 어떻습니까? 그는 집단심리학과 개인심리학의 관계에 대해 매우 신중했습니다. 그는 개인 심리라는 것이 없으며 그것은 이미 어떤 의미에서 집단 심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개인 심리와 별개로 상정되는 집단 심리(귀스타브 르봉)를 부정합니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집단적인 것이 어떻게 전해질까요? 이에 관해 프로이트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학설을 가지고 온다거나 인류의 과거 경험이 제식(祭式) 등을 통해 전승된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를 말하지만, 명확히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라캉은 이 문제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무의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언어에서 생각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집단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언어의 습득을 통해 집단적인 경험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즉, 언어의 경험에서 출발한다면, 집단 심리학과 개인 심리학의 관계라는 성가신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라캉은 사람들의 언어습득을 어떤 결정적인 도약으로서, 즉 ‘상징계’로 진입하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이때 언어가 집단적인 경험으로서 과거로부터 면면히 계승되는 것이라고 하면, 개인에게 집단적인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일본인 또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볼 때 그것을 의식 또는 관념의 수준이 아닌 언어적인 수준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물론 언어라고해도 다음에 주의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인ㆍ일본 문화의 특징을 일본어의 문법적 성격에서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어는 주어가 없다, 그래서 일본인에게는 주체가 없다는 등과 같은. 그러나 그렇다면 같은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주변 국가인 한국은 어떻습니까? 기이하게도 일본 문화를 언어로부터 고찰하는 어느 연구자도 이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일본 문화의 특성을 제대로 보려면, 서양이나 중국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한국과 비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메리카인ㆍ아메리카 문화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메리카(합중국)를 유럽, 라틴아메리카 혹은 동양과 비교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캐나다와 비교해야 합니다. 즉, 아메리카 문화의 특성은 같은 영국의 옛 속국이며, 같은 이민 국가인 캐나다와 비교했을 때 보이기 시작합니다. 캐나다에서 이러한데, 미국은 왜 이럴까. 그러나 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외라고 하면, 총에 의한 대량 사살 사건을 다룬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Bowling for Columbine입니다. 그는 캐나다는 미국보다 오히려 총 소지 비율이 높은데 총을 사용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폭력 사건을 통한 문화론이며, 게다가 정신분석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캐나다와 미국의 차이는 영국과의 관계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을 생각할 때, 서양이나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분명히 마루야마 마사오와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론은 일본을 서양이나 중국과 비교하여 고찰한 것입니다. 그래서는 틀에 박힌 인식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제가 말하는 ‘일본정신분석’의 특질은 언어로부터 살펴보는 것, 한국과의 비교에서 살펴보는 것, 이 두 지점에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중국에 대한 관계의 차이에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자에 대한 태도의 차이입니다. 한국이나 베트남 등 중국의 주변 국가들은 모두 한자를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전부 방기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어가 독립어라면 주변의 언어는 교착어이다) 한자의 사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한자가 남아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에서 유래한 두 종류의 표음적 문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3종의 문자로 단어의 출처를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 기원의 단어는 한자 또는 카타카나로 표기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천년 이상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무시한다면, 문학은 물론 일본의 모든 제반 제도와 사고는 이해 불가합니다. 왜냐하면 제반 제도와 사고는 그러한 에크리튀르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에서는 어떤 외래 사상도 수용될 수 있지만 단지 그것들은 잡거하고 있을 뿐 내적인 핵심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은 문자사용의 행태에서입니다. 한자나 카타카나로 수용되는 것은 결국 외래적인 것이며, 그래서 무엇을 받아들인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외래적인 관념은 어떤 것이든 먼저 일본어로 내면화되므로 거의 저항 없이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표기상 어차피 한자나 카타카나로 구별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내면화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에 대한 투쟁도 없으며 단순히 외래적인 것으로 정리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외래적인 것은 모두 저장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하는 ‘일본의 사상’의 문제는 문자의 문제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역사의식의 古層’이라고 하는 것 혹은 집합무의식과 같은 것은 보지 않다고 됩니다. 한자, 카나, 카타카나의 3종 에쿠리튀르가 병용되어 온 사실에 주목하면 됩니다. 이것들은 현재 일본에서도 존재하고 기능합니다. 일본적인 것을 고찰하는 데에 이것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기이하게도 제가 생각한 이것을 누구도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영역에서도 무엇인가를 하려면 누군가 이미 손대고 있는 선행 연구자가 있기 마련인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은 한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라캉입니다. 사실상 저는 와카모리(若森) 씨가 번역한 라캉의 짧은 논문을 읽고 라캉이 일본의 문자, 특히 한자의 훈독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는 ‘에크리’의 일본어판 서문에서 ‘일본어와 같은 문자의 사용방식을 쓰는 사람은 정신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의 독자는 이 서문을 읽는 즉시 나의 책을 덮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쓰인 책이다’ 라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라캉이 주목한 것은 일본에서 한자를 훈독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하게도 발화하는 인간을 위해서 음독은 훈독을 주석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서로[음독과 훈독]를 연결시키는 펜치는, 그것들[음독과 훈독]이 구워낸 와플처럼 생생한 것을 보면, 실은 그것들이[음독과 훈독이]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행복입니다.

[일본을 제외하고] 어느 나라에도 국어에서 시나어[중국어]를 구사하는 행운을 갖지 못하고, 무엇보다도—더욱 강조해야 할 점인데—, 끊임없이 사고(思考)로부터, 즉 무의식으로부터 어휘(파롤)와의 거리를 감지 가능하게 할 정도로 미지의 국어에서 문자를 차용하지 않습니다. 정신 분석을 위해 가끔 국제적인 여러 언어 가운데 적당할 것 같은 언어를 꺼내 보일 때에 성가신 일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해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말하면, 일본어를 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매개로 한다는 것은 거짓말쟁이임을 막론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임이 일상다반사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1972년 1월 27일) (*번역자 덧붙임: 아는 만큼 번역했음. 오역이 있을 수 있음. 원문 참조 바람.)

사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다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본인은 한자를 받아들일 때, 그것을 자국의 음성으로 읽었다. 즉 훈독으로 읽은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음성을 한자를 쓰면서 표현하게 되었다. 이것은 흔한 일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으로부터의 문자의 수용은 당연한 일이었고, 세계의 여러 문명의 중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은 이를 경험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단지 [외부로부터] 알파벳을 수용했다고 해서 바로 자신의 말을 적기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중심에서 온, 문명에서 온 텍스트를 번역하는 형태로 자국의 언어를 만들어내면서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단테가 라틴어로 쓸 수 있는 것을 굳이 이탈리아 지방의 한 방언으로 번역해서 썼습니다. 그 방언이 현재의 이탈리아어가 되었습니다. 즉, 단테가 번역을 통해 만든 말로 지금의 이탈리아 사람이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메이지 일본의 언문일치 문제를 생각하면서 이를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언문일치’의 경우 그 말하는 방식이 그럭저럭 타당하다고 하면 도쿄지방에서뿐입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언문일치의 문장이란 ‘언’(구어)과는 무관한 새로운 ‘문’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러한 ‘문’으로 말하게 됩니다. 언문일치의 과정을 고찰하면서 제가 다다른 생각은 메이지에서 일어난 일이 이미 나라시대부터 헤이안시대에 걸쳐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헤이안시대에 지방 사람들이 교토의 궁정에서 이야기되는 말로 쓰인 「겐지 이야기」를 어떻게 해서 읽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교토의 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도 지방 사람들이 방언으로만 말하면 통하지가 않는데, 헤이안시대에 통할 리가 없었겠지요. 「겐지 이야기」와 같은 화문(和文)이 어디서나 통했던 것은 그것이 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한문의 번역을 통해 형성된 화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헤이안 시대의 여성작가, 시인)라는 여성은 사마천의 『사기』를 애독했던 사람으로 한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어를 의도적으로 괄호에 넣고 「겐지 이야기」를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인은 한자를 수용해서 훈독을 해서 일본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기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탈리아 사람은 이탈리아어가 애초에 라틴어 번역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일본어의 에크리튀르가 한문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자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자이기 때문에 외래적입니다. 그러나 외부성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이 한자를 외래어로서 배제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한자가 남아있으면서 그 외부성이 소거된 것입니다. 이 점이 기이합니다.

저는 이 점에 주목합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의 제도=문명이 전면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과거와 환관을 포함한 문관제도가 일찍부터 확립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국의 제도=문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거부합니다. 이 기이한 방식이 문자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라캉에서 배운 사고로부터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인은 이른바 ‘거세’가 불충분합니다. 상징계에 진입하면서도 상상계라고 할까요, 거울단계에 머물러있습니다. 이 견해는 일본의 문화ㆍ사상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즉, 마루야마 마사오 등이 다뤄 온 문제는 이러한 문자의 문제를 관통하는 ‘정신분석’을 통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라캉이 일본인에게는 ‘정신 분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는 아마도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상형문자’로 파악한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인데, 이는 음성언어화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에 있는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로는 이른바 ‘상형문자’가 그대로 의식에서도 드러난다. 거기에서는 ‘무의식에서 파롤까지의 거리를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인에게는 ‘억압’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의식(상형문자)를 항상 노출시키고 있기—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인은 항상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라캉의 일본론을 읽고 제가 떠올린 것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입니다. 노리나가(宣長)는 「겐지 이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야기는 잘 만들어내는 일이라 해도 그 속에 진실이 있어야 하며, 만들면서도 아와레(あはれ, 마음에 스미는 절절한 정취)를 이르는 말)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 ......더욱이 헛소리를 하면서도 헛소리에 없는 것을 아는 일. ......이야기에 좋고 나쁜 것은, 유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시비와 같지 않으므로 그 정취를 말하는 것.”(* 번역자 덧붙임: 옛 일본어라 오역이 있을 수 있음. 원문 참조 바람.)(「겐지 이야기 구술의 작은 빗」) 즉, 이야기에서 ‘좋고 나쁨’은 유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시비’와는 다르다. 이야기는 만드는 일, 그런 것인데, 그러므로 표현되는 ‘사물의 아와레’야말로 ‘진실’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라캉이 말한 것을 상기해주십시오. “일본어를 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매개로 한다는 것은 거짓말쟁이임을 막론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임이 일상다반사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노리나가(宣長)는 이러한 견해ㆍ사고를 “야마타고코로”(大和心)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해도 똑같은 것입니다. 제가 ‘일본정신분석’이라고 했을 때 ‘일본정신’은 이와 같은 야마토타마시이(大和魂)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군국주의 혹은 체육계의 일본정신과 다른, 어떤 모양새(여성스러움)입니다. 실제로 야마토타마시이는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겐지 이야기」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물론 그것은 한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야마토고코로(大和心)의 반대 개념이 카라고코로(漢意)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유교와 불교의 사고방식을 가리키지만, 좀 더 일반적으로 지적, 도덕적, 이론체계적 사고라고 해도 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한자로 표현되는 개념을 가리킵니다. 군국주의적인 일본 정신은 물론 漢意입니다. 반면 노리나가(宣長)는 ‘사물의 아와레’라는 감정을 견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적ㆍ이론적이지 않더라도 인식론적이며,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깊은 의미에서 윤리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야마토고코로(大和心)인 것이다, 라는 겁니다.

또한 노리나가(宣長)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면 죽어도 좋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비록 극락에 간다고 정해져도 죽는 것은 슬프다, 라는 것입니다. 신에 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신뿐만 아니라 나쁜 신도 있다, 나쁜 일을 해도 행복한 경우도 있으며, 선한 일을 해도 불운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신을 진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라고. 이것을 보면, “일본인은 항상 진실을 말하고 있다”라는 라캉의 말이 납득됩니다.

노리나가(宣長)의 언설은 유교를 비판한 노장 사상과 유사하다고 하지만, 그는 정작 노장도 漢意도 비판합니다. 노장이 설파한 자연은 인공적인 유교 사상에 대해 인공적으로 사유된 자연에 불과하다, 라고. 야마토고코로(大和心)라고 하면 배외주의적으로 들리는데, 노리나가(宣長)는 일본의 신도 또한 漢意이라고 합니다. 신도라는 것은 불교와 유교에 대항하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체계이다, 라고. 반면 노리나가(宣長)가 말하는 자연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것은 ‘~의 길’이며,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 ‘고학’(古學)입니다.

노리나가(宣長)는 자신의 학문을 ‘고학’이라고 부르며 한번도 ‘국학’(國學)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고의 길’(古の道)을 현세에 실현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취한 것은 오히려 온건한 점진적 개혁의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정토종의 문인이었으며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국학’을 만든 것은 노리나가(宣長) 사후에 등장한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입니다. 그것은 이념으로 상정되는 고대사회를 지금 세상에 실현하려는 정치사상입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왕정복고 사상으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나 노리나가(宣長)가 살아 있다면 틀림없이 아츠타네(篤胤)와 같은 생각을 漢意로 비판할 것입니다.

노리나가(宣長)가 말한 야마토타마시이(大和魂)라는 것은 작위성이나 억압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야마토타마시이(大和魂)는 꽤 괜찮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정신분석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고대 일본인에게 실제로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일본인이라는 것도 밝혀질 수 없습니다. ‘고의 길’은 노리나가(宣長)가 일종의 분석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념으로 세우면 필연적으로 히라타 아츠타네가 말한 신도적 이념이 됩니다. 야마토타마시이(大和魂)는 이내 일본 정신이 됩니다. 즉, 야마토고코로(大和心)라는 것은 실제로 얻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얻고 유지하는 것에는 대단한 지성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노리나가(宣長)는 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고학’입니다. 그러나 고학이라도 해도 『古事記』를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겐지 이야기」를 읽을 것을 권장합니다. 이를 통해 漢意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정신분석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정신 분석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라캉에 대해, 저는 야마토고코로(大和心)를 갖기 위해서는 역시 정신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저는 2002년 ‘일본정신분석’을 쓴 이후 이러한 문자의 문제 혹은 일본의 문제, 문학의 문제에 대해 쓰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동안 계속 생각해 온 것은 ‘세계사의 구조’입니다. 그 중에 일본을 특별히 다룬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의 사유는 근본적으로 일본인으로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것을 일본의 문제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한 것은 이곳이 ‘일본라캉협회’라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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