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전 나의 페친이 본 블로그에 올린 김항 논문의 번역글을 읽고 페북에 감상문을 적어올렸다. 김항의 마루야마 독해에 대한 정리글이었는데, 거기서 나의 페친은 슈미트의 '결단주의'와 관련하여 김항이 논하는 마루야마의 '결단'과 그 한계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 또한 그 부분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던 터라 학기가 끝난 후 읽으려고 미뤄두었던 김항의 『帝国日本の閾』[제국일본의 문턱]을 서둘러 읽었다. 본 글은 『帝国日本の閾』[제국일본의 문턱]에서 김항의 마루야마의 '결단'과 그 한계에 대한 부분만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2.

김항의 『帝国日本の閾』[제국일본의 문턱]은 2008년 동경대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을 2010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 본인이 밝히듯이 일본의 근대국가론의 모순과 한계를 규명하고자 한 것이며 이 모순과 한계가 (전전과) 전후의 일본정치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등에게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혹은 주조되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모순과 한계를 제국의 타자에 대한 그들의 사유로 집약하고자 했다. 여기서 제국일본의 타자는 식민지 조선(인)이다.

그런데 본 발제를 전개하기에 앞서 책의 전체적인 감상을 간단하게 추려 말하면, 본론의 패기만만한 전개에 비해 결론은 참으로 소박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위대한 사상가"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과 자신의 독자적인 사유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각기 다른 차원의 재능과 노력을 요한다는 것이다. 전자에 있어서 김항은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칼 만하임과 칼 슈미트, 칸트와 마루야마 마사오 사상의 연관성,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일본 평론가 및 사상가들의 시대성을 러일전쟁 이후의 역사적 사건들과 유기적으로 엮어가는 그의 탁월한 구성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할말이 없다. 그러나 후자에 있어서 특히 제국일본의 타자로서 식민지의 문제에 이르러 그는 그저 주저앉고 만다는 인상이다. 이것은 그가 이 책의 후기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지적받은 것에 대한 변론으로서 "국가라는 구성물의 <동일화불가능한 문턱>을 억압하는" 동일의 근원인 식민지를 문턱으로 열어놓은 것에 논문의 의의를 구하며 공동체의 차원에서(더 정확하게 말하면 국가와 공동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열려진 문턱'을 향후 과제로 삼겠다고 말했음에도, 그 이후 아직까지 전작을 넘어서는 뚜렷한 연구물이 나오지 않는 것과 관련지을 수 있겠다. 

또 하나는 일본의 연구지형에서 그에게 요구되는 과제와 한국의 학계가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제국일본의 식민지적 타자에 관심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러한 주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계에서는, 그가 이룩한 탁월한 연구성과임은 분명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사유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양분이었을 따름인 근대일본의 정치사상의 형성과 궤적에 대한 비판적 사유 그 자체를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 이후에 더 밀고나갔어야 할 그의 사유가 정체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종주국'에서는 '식민지'에 대해, '종주국'과의 특수한 관계로서 '식민지'에 대해 말할 것을 요청받는 반면, '식민지'인 '모국'에서는 그 관계를 거세한 채 보편성으로서 '종주국'을 말할 것을 요청받는 '식민지적 연구자'의 학문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김항을 응원하고 싶고, 더 기다려보련다.

 

3.

우선 마루야마의 내셔널리즘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한편으로는 와츠지 테츠로우(和辻哲郎)로 대표되는 '문화사'를 비판하며, 또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며 내셔널리즘을 구축하려했던 마루야마는 독일의 프랑크프루트 학파의 칼 만하임에게서 인식론적 토대를 마련한다.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에서 개인은 일정의 사회구조 속에 존재하며 구속되고, 개인의 사회구조에 대한 지는 사회에 의해 규정되고, 그 사회는 개인이 획득한 시야에 의해 구성된다. 이와 같은 개인과 사회의 상호 독자성은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픽션성'에 의해 그 주체를 존립시킨다. 마루야마는 소라이론(徂徠論)을 통해 일절의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개인을 홉스-슈미트의 주권자와 중첩시키고, 개인의 사적인 영역, 다시말해 법적인 영역에 주권자로 들어온 개인의 소여를 정치화한다. 이때 개인의 정치화는 위기의식에서 발로된 결단을 말한다. 마루야마는 이렇게 개인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창출하는 것이 정치이며 그 정치적인 것을 위기의 사상에서 추출한다. 

본래 근대일본정치사상사에서 개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마루야마의 소라이론이 아니라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에서이다. 후쿠자와는 '개국'의 위기에서 개인의 내면적 자유를 주권국가에게서 구했다. 김항에 따르면, 슈미트는 <대지의 노모스>에서 15세기 유럽공법이 "신대륙 발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대륙 발견"은 유럽세계를 개방함과 동시에 지구가 닫힌 세계임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일본의 '개국'은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의 상징적 사태임과 동시에 더 큰 '닫힌 사회'로서 '국제사회'를 인식하는 계기였다. 그리고 후쿠자와는 일본의 '주권국가'로의 변모를 '개국'에 의한 역사적 과정으로 보고, '주권국가'라는 역사적 구축물과 '개인'이라는 보편적인 근대성의 담지자를 결합하고자 했다. 그런데 후쿠자와의 '개인'이 국가에 의해 매개되는 보편성의 담지자라고 한다면, 마루야마의 '개인'은 (자연화에 지지되는) 상상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상대화하고 대치한다.

마루야마가 결단하는 '개인'을 '초인'이나 '주권자'나 '단독자'가 아닌 '국민'으로 이름지은 것은 아시아에서 개인의 주체적 의식인 내셔널리즘이 수동적인 '결단'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결단'은 현재형이지만-개인에서 내셔널리즘으로-, 아시아에서 '결단'은 수동적이다. 그래서 막부말기와 메이지초기 '결단'은 공간적으로 밖과 안을,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분할하고 단절한다.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국가주의와 국제주의는 시공간을 단절하고 분할하고, 이 단절과 분할은 '결단'이라는 한 점으로 집약된다. 내외를 분할하면서 통합하고 과거와 미래를 단절하면서도 접속시키는 '결단'은 한 눈으로는 행해지고 한 눈으로는 보여진다. 마루야마의 내셔널리즘이란 이 '결단'이 무한히 반복됨을 말하며, 근대성이란 이 결단을 행하는 절대고독의 개인의 실천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마루야마의 '개인'은 역사적 산물이자 유일한 실재이면서도 소여로서 타자를 갖지 못한다. 개인의 타자는 다만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질서로서 그 질서를 구축하는 개인의 지적 작업에 의해 이해될 뿐이다. 이 속에서 에스닉이나 젠더는 범주로 성립되기 전에는, 어떠한 이성이나 지에 의해 분류되기 전에는, 완전한 타자로 성립될 수 없다. 개인은 완전한 무-관계성으로 타자를 만나고 이러한 타자는 내셔널리즘이라는 동일성에서 분류되는 존재이다. 그래서 김항은 마루야마의 타자가 안고 있는 문제가 내셔널리즘의 배제에 의한 이질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의 결단의 틈새에서 언어도 이성도 관계도 없는 다만 육체로 남아있는 자기의 문제이다.

김항에 따르면, 이것은 마루야마의 비판의 대상이면서도 마루야마의 육체에 새겨진 제국일본의 '치명적 유산'이다. 후쿠자와가 '개국'의 위기에서 관습적 윤리의 인간관계를 끊어내고 '일본인'이라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고자 했을 때 개인은 다만 '국체'에 매개될 뿐이며 '국체'의 운명공동체에 귀속될 뿐이다. 마루야마가 후쿠자와의 '개인'을 유일의 실재로 지양하며 '국체'에서 구해내고자 했지만, 그 위기의식을 '개인'의 성립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한에서 개인을 엄습하는 공포로부터 온갖 관계성을 박탈당한 육체의 자기로 잔존될 뿐이다.  

 

4. 

여기까지가 1부의 대략의 줄거리이다. 본서는 결론을 제외하고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2부는 국민국가의 본원적 축적이라는 제목으로 러일전쟁 이후의 국민국가론을, 3부는 전후의 제국의식과 일본인론을 다루고 있다. 마루야마의 '결단'은 본서의 핵심적인 모티브로 1,2,3부 각각을 이끌고 있다. 1부에서 마루야마의 '결단'의 임계점을 제시했다면, 2부와 3부는 그것의 역사성과 원리를 검토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

일전에 번역한 김항의 논문에서 마루야마가 슈미트의 '결단주의'에서 '결단'의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했을 때 누군가로부터 조금 더 면밀하게 상술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본서에서는 마루야마가 슈미트의 '결단주의'를 '개인'의 결단으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소라이론의 '결단'의 논리로 가져온 것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마루야마의 개인의 '결단'은 오규 소라이에서 모토오리 노리나가로 후쿠자와 유키치로 이어지는 '결단'의 계보를 구축한 '결단'이다.  

마루야마에게 네이션은 (낭만적인) 민족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결단에 의한 지양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마루야마의 개인의 '결단'의 성격은 루소의 일반의지와 다르다. 과거의 작위성(자연화된 작위성)의 민족공동체를 받아들이는 문제가 아니다. 마루야마의 '개인'은 유일한 실재로서 사회의 지를 창출하는 주체이며 그렇게 창출된 지를 지양하는 주체이다. 다시 말해 작위성을 창출하면서도 지양하는 존재이다. 이것을 마루야마는 '픽션성'이라고 한 것이다.

 

정리해보니 정리가 덜 되었다. 2부와 3부를 틈나는 대로 정리하면서 논의를 심화시키고 싶다. 슈미트의 <정치신학>과 관련해서도.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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