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 2019년 7월 고현학 특집호에 실린 대담글을 번역해서 올린다. 곤 와지로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고현학을 시작했는지, 또 민속학과 건축학 사이에서 고현학의 방법론적 의의는 무엇인지, 21세기 현재 고현학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대략적으로 이야기해준다. 특히 사물의 문제에서 신의 문제로 옮겨가는 고현학의 학문적 지형이 매우 흥미롭다. 

 


 

마치 수천 년 후의 시선처럼

: 고현학(考現學)과 사물에 대한 물음

 

 

오늘은 고현학 특집으로서, 오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 1937~2014 소설가 및 미술가), 아라마타 히로시(荒俣宏, 1947~ 박물학자 및 소설가)와 함께 노상관찰학(路上觀察學) 활동을 주도해왔고 또 곤 와지로(今和次郎)의 저작 해설 등에도 관여하고 있는 후지모리 데루노부(藤森照信) 씨 그리고 곤 와지로가 방문한 일본의 민가를 재방문하는 프로젝트 등을 이끌어온 나카타니 노리히토(中谷礼仁) 씨 이렇게 두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곤 와지로와 야나기타 구니오

 

후지모리: 나카타니 씨의 최근 저서인 『未来のコミューン[미래의 코뮌]』(2019년)을 읽고 예리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민가 혹은 모노[각주:1] 일반에 대한 곤 와지로와 야나기타 구니오 간의 관점의 차이를 논한 부분 때문입니다. 원래 민가라는 것은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기본적으로 건축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로지 민속학이 민가를 다뤄왔습니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즉 민가 속에 스며든 생활의 무의식이라고 할까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상념을 모노에서 탐구하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였으며 야나기타는 그것을 일본에서 행한 것이지요. 그때 야나기타는 당연히 카메라맨과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당시 카메라기술로는 실내를 잘 담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곤 와지로를 비롯한 건축가들이 스케치를 하거나 집의 도면도 수집을 담당했습니다. 거기까지는 두 사람의 관심사가 일치했는데, 이내 야나기타가 민가에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곤 와지로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민가를 탐구했고 1922년에 『日本の民家[일본의 민가]』를 출간하기까지 약 5년간 거의 혼자서 조사했습니다. 야나기타 구니오가 어째서 민가연구에 흥미를 잃었는지, 곤 와지로는 왜 민가연구를 계속했는지 궁금했지만, 저는 그 의문을 깊이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카타니 씨는 바로 야나기타와 와지로가 각각 적어두었던 죽음의 한 에피소드를 통해 그 점을 논했습니다. 즉 곤 와지로가 『일본의 민가』에서 석유통 위에 놓인 죽은 여자아이의 나막신과 위패로부터, 누구라도 인상에 남을 에피소드(“내가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집안에서 속사정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한 광경을 목격한 바 있다. 집 한구석에 석유통이 있었고 여자아이의 깨끗한 나막신이 그 위에 놓여있었으며 바로 뒤에는 만든 지 얼마 안 된 위폐가 있었다.”[『日本の民家[일본의 민가]』岩波書店, 1989년, 53쪽])를 썼습니다. 야나기타 구니오는 메이지 37년(1904년)에 발생한 실제 사건을 토대로 아이가 현관 문턱에 머리를 갖다 대어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山の人生』)를 썼습니다. 나카타니 씨는 이 사건에 대한 두 버전의 이야기를 함께 논함으로써, 야나기타 구니오와 곤 와지로의 관계에 대해 내가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무릎을 ‘탁’ 치면서 나카타니 씨에게 바로 제 감상을 전했던 것입니다.

 

나카타니: 저야말로 후지모리 씨로부터 감상의 글을 받고 감격했습니다. 모노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야나기타 구니오와 곤 와지로 간의 차이와 상호 영향 관계를 생각해보고자 그것을 제 책의 프롤로그에 썼습니다. 저 사건에 대한 야나기타의 서술에는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우치다 류조(內田隆三) 씨의 작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야나기타가 처음으로 이 사건을 소개한 『山の人生』은 사건이 일어나고 20년 이상 흐른 후인 1926년에 나온 책입니다. 거기서는 사건이 일어난 계절이 발생 당시 취조한 조서의 내용과 다릅니다. 야나기타는 사건이 발생한 계절을 봄의 이른 아침에서 가을의 저녁 무렵으로 바꿉니다. 즉 무대를 가을 해질녘으로 옮깁니다. 또 야나기타는 1959년에 출간한 책인 『故郷七十年[고향70년]』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갖다 댄 곳이 허물어가는 집의 문턱이었다는, 참으로 인상 깊은 그 장소를 꼭 집어 말해줍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사건 발생 당시의 기록에는 불분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상 깊은 이 사건이 야나기타의 마음에 계속 남아서 이야기로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흘러 이 사건은 야나기타를 거쳐 가을 해질녘에 아이들이 문턱에 머리를 갖다 댄다는 인상적인 이야기 구성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사실이 의식적으로 날조되었다기보다 야나기타의 마음속에 이 사건이 계속해서 살아남아 선명한 광경으로 되살아난 것이지요.

 

후지모리: 문턱이라는 것은 요컨대 이승과 저승의 경계입니다. 거기에 머리를 갖다 대었다는 이야기는 야나기타의 머릿속에서 50년을 삭힌 후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죠.

 

나카타니: 확실히 집의 부자재와의 구체적인 관련 속에서 이야기가 구성되기까지 야나기타 씨의 경우는 매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에 비해 곤 와지로는 모노의 구성을 통해 소녀의 죽음을 독자들이 선명하게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능력은 그만의 후각적인 기민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차이는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노를 통해 집을 쓰는 곤 와지로의 방식은 시간상의 변화를 품은 야나기타의 집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의 기초를 제공한 것이라고까지 생각됩니다.

 

후지모리: 그렇군요. 실은 내 안에서 저 두 버전의 이야기는 어느새 하나가 되었고, 현관 문턱에서 머리가 잘린 아이의 나막신과 위폐가 석유통 위에 놓인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의 전후 관계를 살펴보면 오히려 와지로의 묘사가 야나기타의 머릿속에서 이미지의 결정화를 촉진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야나기타 구니오는 역시나 시인입니다. 그래서 말로써 마지막을 말끔하게 정리합니다. 그에 반해 와지로의 문장은 절대로 말로 끝나지 않고, 그렇다고 단순히 모노 자체의 기록에 다다르지도 않습니다. 그 점이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야나기타 씨가 기술한 저 사건의 이야기로는 현장에 가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지 않습니다. 사건이 글로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현장에 가봤자 글에서와 달리 현장이 볼품없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와지로의 문장은 그곳에 가고 싶게 만듭니다. 현장에 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석유통 위에 나막신 이야기도 그러하며, 판잣집의 함석판에 뚫린 구멍을 페인트칠로 가려놓은 이미지를 묘사한 문장 또한 여전히 생동감이 넘칩니다.

또 하나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곤 와지로의 문장은 창작 의욕을 부채질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타인의 문장에서 창작 의욕을 느낀 것은 단 한 번인데, 그것은 곤 와지로가 아니라 그의 애제자인 요시자카 타카마사(吉阪隆正 1917~1980 일본의 건축가)가 중국 동북부의 진흙집에 관해 쓴 문장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건축 설계를 맡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그의 감동적인 글을 읽고 마음을 다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와지로 씨와 요시자카 씨가 모노를 보고 무언가를 쓸 때 그 글에는 어딘가 모르게 “여유”라고 할까요,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독자를 자극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야나기타 씨의 글은 문학작품으로서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의 글은 한 구절 한 구절에 정성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 1924~2012 일본의 평론가)가 말했듯이 그의 글에는 방법론이 없습니다. 그렇게 완결되어 있으므로, 말하자면 “종자”가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나기타 씨에게는 제자가 없습니다. 아니, 제자가 없다기보다, 야나기타 씨 본인이 절정을 맞이한 후로 점차 쇠퇴해버렸지요. 하지만 곤 와지로는 파종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언젠가 곤 와지로의 영향을 받은 세 개의 학회가 한자리에 모여서 심포지엄을 연 적이 있습니다. 학회 하나는 가와조에(川添) 씨를 비롯한 와세다 사람들 중심의 생활학회. 이 학회는 말하자면 곤 와지로 학문의 적통입니다. 또 하나는 타다 미치타로우(多田道太郎 1924~2007, 일본의 프랑스 문학자이자 평론가) 씨를 중심으로 하는 교토의 현대풍속연구회. 두 학회만으로 충분할 텐데 두 학회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노상관찰학회를 불렀습니다(웃음). 그때 놀랐던 점은 노상관찰학회가 반드시 혼쭐날 것이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는데, 오히려 그쪽―아마도 생활학회였던 것 같습니다―에서 감사를 표명한 것입니다. 노상관찰학회 덕분에 곤 와지로가 우리 시대에 살아 돌아왔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곤 와지로를 되살리거나 계승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다만 곤 와지로의 씨앗이 우리를 자극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나아간 것뿐입니다. 그저 한 톨의 보리 씨앗이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야나기타 씨의 경우에는 물론 개별적으로 쓰인 책들이 많지만, 그렇게까지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나카타니: 분명 야나기타 씨에게서 ‘교조(敎祖)’의 인상을 완전히 씻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가라타니 고진의 『世界史の実験[세계사의 실험]』(岩波新書, 2019년)은 그로부터 약간 멀어진 느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야나기타의 ‘교전(敎典)’이 있고 후학들은 그에 대해 어떤 태도―반발이든 찬성이든―를 표명해야 한다는 의무가 매우 강하다는 인상입니다. 그에 비해 곤 와지로는 교조 되기를 의식적으로 거부합니다. 문장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모노의 묘사라는 단편적인 힌트만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렇게 해서 “관념은 모노와의 관계 안에서 나온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전달합니다. 그것이 곤 와지로의 작업 세계가 가진 보기 드문 독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노의 안정성과 이방성(異邦性)

 

나카타니: 그런데 이것은 제가 후지모리 씨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후지모리 씨는 그러한 모노라는 존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모노가 없다면 인간은 관념만을 무한정 부풀려서 결국은 해파리와 같은 이상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러한 예들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후지모리: 확실히 현재 많은 사람이 모노나 건축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언어에 의한 사상을 믿을 수 없게 된 탓도 있겠지요.

 

나카타니: 가령 모노에서 받는 인상이나 관념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해도 그 모노와 직접 대면하는 경험은 그 사람에게 유의미한 한계를 설정합니다. 그 한계가 자신의 관념과 어긋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사고회로는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지모리: 모노가 가진 안전성에 대한 감성은 확실히 곤 와지로에게 주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카타니: 곤 와지로의 작업이 매력적인 것은 그러면서도 사물이 자신과 기본적으로는 소원하다고 생각한 부분도 동시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는 모노를 직접 파악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더불어 통감합니다. 그러한 절망이, 그런데도 모노와 대면하는 안정감과 교차하는 감각이 고현학에 심대한 깊이를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곤 와지로는 「고현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의 서두에서 고현학과 고고학을 대비시키는데, 다만 다루는 사물의 신구(新舊)의 차이만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종종 단순하게 해석되기 쉬워서 제대로 말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입니다. 곤 와지로의 고현학에서 문제의식은 요컨대 현재를 사고하는 학문에서 고고학적인 수법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와지로는 사물과 대면하는 고고학의 사고법을 직시하고 그것을 가져다 현재를 사고하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를 고고학적으로 본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져보면, 예를 들어 여기에 캔커피가 있습니다. 이것이 수천 년 후에 출토된다면, 미래의 존재들은 이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둘러싸고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세계 여기저기서 같은 것이 같은 시대에 대량으로 발견된다면 말이죠. 구리방울(동탁銅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중등역사 교과서에 동탁에 대한 서술이 있다면, 아마도 ‘어떤 종교적 의례’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쓰여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모른다’는 말입니다(웃음). 고고학이라는 것은 모노로부터 출발해서 그 의미를 묻는 것인데, 출토물에는 ‘이것은 접시입니다’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문헌학이란 요컨대 꼬리표학입니다.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다면 역으로 모노의 용도는 절대로 확신할 수 없으므로, 몇몇 가능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릇일지도 모르고, 모자일지도 모르며, 슬리퍼일지도 모르는 복수의 관점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유사한 모노들의 계열을 밝혀내고 거기에 집의 부엌 부근에서 나왔다는 출토상황을 겹쳐 놓음으로써 이것은 ‘대개 접시’일 것이라는 카테고리를 점차 구축해가는 것이 고고학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고현학은 유사 고고학처럼 항간의 모노로부터 꼬리표를 굳이 떼어내어 평소의 의미를 잘라냄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재미있게 드러냅니다. 이것이 고현학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을 예로 들어보면, 먼 후대에는 ‘어떤 종교적 의례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휴대폰이라는 통신수단을 조금 멀리 떨어져 냉정하게 바라보면 ‘필연성을 초월한 비기(祕技)’라고도 말할 수 있는 독특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휴대폰에 접근하면, 전철 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는 독특한 자세가 정말로 종교적이라는 것을 통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꼬리표(의미)가 떼어진 모노를 수천 년 후에 누군가 발굴했을 때 그 누구는 모노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아낼까를 생각해봄으로써 사물의 한계치를 어느 정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고현학의 기본사고입니다. 고현학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바로 이 점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후지모리: 저와 오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 씨가 노상관찰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하야시 죠우지(林丈二, 1947~ 삽화가 및 메이지 문화 연구가) 씨를 만난 것인데, 모노에 대한 그의 관점은 확실히 우리와 다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얼마나 사물을 보지 않는가? 우리는 이해한 것 외에는 보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않는 사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야시 씨는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맨홀 뚜껑이던가 벽 블록의 구멍이던가 누구도 제대로 보지 않는 것에 대해 어느 한 사람이 ‘이렇게 보면 재밌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듣는 쪽이 부하가 치밀지요(웃음). 어쨌든 예술계에 걸쳐 있는, 나름 사물을 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분합니다. 그래서 ‘그러면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서 있을 때는 어떻게 해요?’라고 묻습니다. 걷지 않을 때는 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하야시 씨는 ‘괜찮습니다. 길을 지나는 차 번호판의 숫자로 구구단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즉 네 개의 숫자로 구구단을 만들면서 ‘아직 이 구구단이 나오지 않았네’라고 말합니다(웃음).

 

나카타니: 하하하(웃음)!

 

후지모리: 하야시 씨의 그 말에 오카세가와 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물을 봐온 눈에는 눈꺼풀이 덮여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바로 노상관찰학회를 시작했습니다. 곤 와지로는 말하자면 하야시 씨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제대로 본 사람입니다. 곤 와지로는 히로사키(弘前, 에도 시대 아오모리현의 지방 번주) 명가 출신으로 어려서는 낙제생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근처 마치야(町家)[각주:2]의 격자(格子)를 계속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사물을 보는 눈이 처음부터 있었던 셈이지요. 그가 그린 민가 그림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구체적인 세계상을 표현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무언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을 전달해주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앞서 저는 수천 년 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고 종교적인 의례 도구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우주인이 지금의 지구를 보아도 아마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우주인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는, 그러한 관점을 제기한 이가 곤 와지로입니다.

 

 

나카타니: 곤 와지로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고방식에는 어떤 중심축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서, 당시 그의 주변에서 유행한 사상 등을 조사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그의 관점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 후설의 현상학이었습니다. 특히 ‘현상학적 판단중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즉 의미를 일절 부여하지 않고―보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말입니다. 일본어 번역은 너무 거창합니다(그 나름대로 재미가 없지 않지만). 원어를 따져보면 에포케(ἐποχή epoché)라는 그리스어인데, 이 발음이 먼저 신경 쓰인다면 바로 앞서 이야기한 하야시 죠우지 씨처럼 시치미를 떼고[각주:3] 사물을 보면 됩니다. 이것은 위대한 의성어(onomatopoeia)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의 그리스어를 예로 들면, 귀신이나 혼에 관한 것을 누스(νου󰐠 nous)라고 하는데, 그처럼 귀신은 누-하고 오지요. 모노로부터 현재 유통되고 있는 의미를 일단 벗겨내면, 이렇듯 재밌는 복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물에 다 맡기고 세상을 “폿토미루(ぽっと見る)[딱 본다]”는 사고법이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그것을 곤 와지로 씨와 하야시 죠우지 씨, 그리고 후지모리 씨가 각각의 방식으로 각자의 시대에서 전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후지모리: 물리학에서 관측의 문제와도 통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그것에 빛을 비춰야 하는데, 극미한 세계에서는 빛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나카타니: 실제로 「고현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곤 와지로라는 사람은 고고학 외에도 민속학과 사회학 등 당시 최첨단 학문과 사상을 속속들이 살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학문을 모두 집결시켜서 모노를 보는 방법으로 전개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확신범이라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후지모리: 한편으로 분명 극히 냉정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이쇼기에 주류였던 분리파 건축협회라는 그룹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을 때 곤 와지로는 “부디 모두 건전한 길을 걸어가 주세요, 나는 귀퉁이에 달팽이처럼 땅을 기어가면서 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응대했습니다(웃음). 저 냉정함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여하간 멋집니다!

 

나카타니: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데에도 전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분리파의 건축전이 니혼바시(日本橋)의 시로키야(白木屋)에서 열린 반면, 와지로가 고현학 최초의 전람회를 신주쿠의 키노쿠니야(紀伊國屋)에서 연 것부터 고현학 활동을 당시의 신진 모던 건축의 대립항으로서 전개하려 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日本の民家[일본의 민가]』초판(鈴木書店, 1922년)에는 그 후 사라진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전원생활자의 주택’이라는 부제인데, 이것은 도시인의 이상적인 교외 생활을 목표로 하는 분리파 모던 전원주택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했습니다.

 

후지모리: 그 전람회를 몇 년이나 계속했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을 즐겼다는 거고요.

 

 

요시다 켄키치(吉田謙吉 1897~1982)의 “현학(現學)”, 그리고 영화예술로의 계승

 

나카타니: 오늘은 요시다 켄키치에 대해 후지모리 씨와 꼭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즉 최초의 『モデルノロジオ[모델의 골목길]』(1930년)은 곤 와지로와 요시다 켄키치의 공동작업이었는데, 그 후의 역사적인 흐름을 보면 곤 와지로만이 남고 요시다 켄키치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보면 요시다 켄키치 쪽이 더 많이 썼으며 오히려 작업의 성과를 보면 곤 와지로 쪽보다 흥미롭습니다.

 

후지모리: 고현학적인 관찰을 시작한 것은 실은 요시다 씨 쪽이 빨랐습니다. 요시다 씨가 욧가이치(四日市 미에현 북부의 항만도시) 어딘가의 길거리 장식을 스케치한 것을 곤 와지로에게 보여준 것이 고현학의 시초인데, 요시다 씨는 곤 와지로에 비해 무의미하게 접근한 부분이 있습니다. 앞선 이야기와도 연결되는데요, 곤 와지로는 세상의 짜임새(얼개)를 기본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분리파 일당도 곤 와지로가 무언가 말하면 그것을 비판해주는 상대로 나섰던 것이고요. 그런데 요시다 씨에게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전에 요시다 씨의 아내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요시다 씨가 만년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주구장창 여성의 꽁무니만을 찍었습니다. 그것도 성적인 의도는 전혀 없고 단지 찍기만 했습니다. 매우 독특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하야시 죠우지에 가깝네요.

 

나카타니: 예를 들어 「本所深川貧民窟附近風俗採集[혼죠후카가와[각주:4] 빈민굴 부근 풍속채집]」 등에서도 이 책의 전반부를 곤 와지로 씨가 맡았고 후반부를 요시다 씨가 담당했는데, 곤 와지로는 ‘채집’ ‘조사’ ‘통계’ ‘고찰’ 중에서 ‘통계’와 ‘고찰’을 그때까지만 해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표와 그래프를 통해 풍속 연구를 더 잘해보고자 했습니다.

 

 

후지모리: 생활학회 등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나카타니: 맞습니다. 그런데 요시다 켄키치의 경우는 더욱 모노 자체로 접근해갑니다. 오로지 모노를 그리기만 할 뿐이고, 글로 소개는 하지만 고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묘사된 모노의 변이형태를 관찰함으로써 그것이 가진 가능성의 범위를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즉 모노가 자기 모습 그대로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日本の民家[일본의 민가]』의 도회판(都會版)은 실은 요시다 씨가 했습니다. 그 책에 명작이 아닌 것이 없지만, 알기 쉬운 예로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얇고 잘 부서지는 당시의 ‘유리가 깨지는 방식’(그림 1)과 고가이기 때문에 갈아 끼우지 않고 고쳐서 사용한 당시의 ‘유리 수선법’(그림 2) 세트는 실로 대단합니다. 처음부터 예측되지 않는 유리의 이런저런 깨지는 방식과 깨진 유리를 수선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이 양쪽으로 채집되었습니다. 형태의 변화가 중복되면서 나타나는 다양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띠는 곤 와지로의 작품은 ‘깨진 밥그릇 다수’(그림 3)가 아닐까요? 이것은 식기를 함부로 다루는 손님과 밥그릇을 밥그릇이 아니게 되기까지 잔금이 나도 사용하는 식당 측의 의도가 겹쳐져서 밥그릇의 한계, 밥그릇이 조건이 모노에 멋지게 나타납니다.

그림 1. 유리가 깨지는 방식
그림 2. 유리 수선법
그림 3. 깨진 밥그릇 다수

후지모리: 말하자면 “고(考)”를 뺀 “현학(現學)”이지요(웃음). 곤 와지로의 통계적인 부분을 저는 그렇게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이 하는 일을 학문 세계에 들여오려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요시다 씨는 순도가 더 높지요.

 

나카타니: 요시다 켄키치에게는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습니다.

 

후지모리: 요시다 씨는 결국 무대의 사람입니다. 그는 도쿄미술학교를 나온 후 츠키지(築地) 소극장 등에서 줄곧 무대미술을 담당했습니다. 무대에 펼쳐진 그의 순수한 고현학적 사고는 무대에서만 사회와의 접점을 가졌습니다. 무대는 ‘리얼’에 관한 다양한 지식이 있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무대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고요.

 

나카타니: 고현학과 무대미술의 관계는 확실히 중요합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도데스카덴>(1970년)입니다. 그것은 전후(戰後) 빈민굴을 묘사한 작품인데요, 판자 세트가 매우 정교합니다. 정말로 곤 와지로가 스케치한 것 같은 판잣집들입니다. 예를 들어 집 입구의 함석 문에 열쇠가 걸린 쇠 장식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잘 보면 그 밑에 또 하나 별도의 열쇠가 달린 쇠 장식의 흔적이 있습니다. 요컨대 별도로 걸린 쇠 장식의 존재는 이 문이 재이용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보통은 그렇게 세세하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디자인의 인위적인 경지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집니다. 어떻게 이런 디자인이 가능한지 궁금하던 차에 구로사와 영화의 미술감독과의 인터뷰집인 『무라키 요시로(村木与四郎)의 영화미술―「듣고 쓰기」구로사와 영화의 디자인』(1998)이라는 책에서 매립지의 진짜 쓰레기장을 촬영지로 해서 그곳에 있는 거칠고 엉성한 쓰레기로 세트장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쓰레기장에서 주운 건축자재에 새롭게 열쇠를 만들어 달았던 것이지요. 그것은 곤 와지로가 감동한 것과 같은, 관동대지진 후에 사람들이 깨진 기와 조각들 틈에서 바로 그 장소에 있는 모노를 사용해서 다시 한번 생활공간을 만들고자 한 정진정명(正眞正銘)의 재실험이었습니다. 이 미술 주담당은 그의 아내인 무라키 시노부(村木忍)였는데, 무라키 요시로 씨가 맡은 전쟁 직후의 밥집이나 빠의 스케치도 특히 멋집니다. 완전히 고현학이지요.

 

후지모리: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곤 와지로의 아들 또한 도에이(東映 일본의 영화제작배급회사)에서 영화 세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더럽힘’의 명인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즉 영화 세트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세월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곤 와지로의 아들의 손을 거치면 완전히 인위를 넘어서 마치 우연히 쌓이고 쌓인 더러움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나카타니: 멋지네요. 역시 무대든 영화든 사물의 단편을 사용해서 현실의 생활 전체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곤 와지로와 요시다는 ‘생활의 구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추상 작업을 통해 오히려 생활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조에서 중력을 제거한 것이 구성. 그러한 의미에서 고현학을 직통으로 전개하는 것이 실은 무대와 영화미술이지 않나 싶습니다.

 

후지모리: 일반적으로 모노를 만든다는 것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손을 움직인다는 것인데, 역시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의도한 것만으로는 표현에 진정한 깊이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계획도시의 거리가 재미없는 것도 그렇게 거대한 것을 모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만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브라질리아에 갔을 때입니다. 브라질리아는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1907~2012, 브라질의 건축가)와 루초 코스타(Lúcio Costa 1902~ 1998, 브라질의 건축가)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스위스의 건축가)의 사고에 기초해서 만든 도시인데, 첫날은 엄청나게 감격했거든요. 그런데 다음 날 다시 한번 갔을 때는 정말로 어처구니없이 보지도 않고 돌아왔습니다(웃음). 즉 그곳은 한 사람의 머리로만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의도에서 벗어난 것들이 겹치고 겹치는 현장이고, 곤 와지로 등은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통 사람이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을 스케치한 것이고요. 아마도 영화나 무대장치에서도 설계한 사람의 의도를 어떻게 숨길 수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그들은 스케치 등을 통해 그러한 노력을 하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모노의 문제에서 신의 문제로

 

나카타니: 그런데 후지모리 씨에게서 받은 감상의 글은 그다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신’의 문제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후지모리: 인간은 성교하고 태어나고 죽고 또 이것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윤회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인데요, 이것은 기독교나 불교가 성립하기 이전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세계관이자 인생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삶과 죽음의 순환은 땅과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中沢新一) 식으로 말하면 수평적인 순환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곤 와지로의 민가연구에서 방 배치의 문제와도 관련되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네 개의 방 배치에서 객실 뒤의 침실 혹은 숨은 공간과 관련됩니다. 그곳은 곤 와지로도 썼듯이 창도 없고 캄캄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거기에 이불이나 돗자리 같은 것을 깔고 그 안에 기어들어 가서 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민가의 경우는 아주 최근까지도 이렇게 살았고, 오래전에는 천황도 “누리고메(塗籠)”라고 불리는 작은 창고 같은 방에서 잤습니다. 게다가 나카타니 씨가 재밌는 부분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그곳에서 출산도 했으며 또 그곳을 죽음의 장소로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는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소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던 곳은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집으로 그 집의 불단 뒤편, 붙박이장 옆에 “오헤야(お部屋[방])”이라고 불리는―어째서인지 “오”를 붙여 말했습니다.―어두운 작은 방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그 방에서 출산이 이뤄지고 제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윽고 출산과 죽음은 현대 주택에서 제외되고 성교만이 남게 되었는데, 한때는 삶과 성교와 죽음이 모두 그 수수께끼의 캄캄한 방 안에서 행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조몬(縄文) 시대[각주:5]의 주택이 왜 마루를 깊이 팠을까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보통은 추위에 대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깊게 파인 곳이 있습니다. 물론 시베리아 등지에서는 영구동토 밑까지 파 들어가지 않으면 살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예를 들어 가고시마현과 같이 비교적 온난한 장소에서도 미묘하게 파 들어갑니다. 어쩌면 숨은 공간과 마찬가지로 그것 또한 동굴과 같은 어두운 장소의 이미지를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삶과 죽음의 순환적 세계가 땅속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구멍을 판 것이 아닌가, 나카타니 씨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윽고 그 순환에서 벗어난 사상이 출현합니다. 수평적 순환 세계를 벗어나 하늘이라는 발상이 나타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나카타니 씨는 인도네시아의 주거를 예로 들어 ‘새’라는 모티브의 문제와 함께 논합니다. 저는 거기에 태양의 문제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일부 사람들은 태양의 문제를 확실히 인식했습니다. 아마도 신석기 시대 이후 농업을 시작한 것과 관련되어 있을 겁니다. 즉 자연의 혜택 속에서 수렵이나 채집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태양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지만, 농업을 시작하면 뿌린 씨앗이 자라는 것은 전적으로 태양 덕분이고 반대로 무언가 조금이라도 태양에 이변이 있으면 큰일이 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태양이야말로 지상의 다양한 자연의 수평 순환을 관할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편 아시아와 같은 습윤 지대에 사는 사람들보다 태양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면 역시 유럽과 같은 건조지대의 사람들이겠죠. 그들은 흙과 물의 지상적・수평적 순환 세계와는 다른 절대적인 세계의 것으로서 태양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태양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습니다. 태양이 존재하는 것은 알지만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절대신입니다.

수평적인 세계가 건축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또 신석기 시대 이후 수직적인 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건축―구체적으로는 신이 사는 곳인 신단―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나카타니 씨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나카타니: 그렇군요. 저는 숨은 수납공간에 놓인 모노의 상태, 즉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상태로 변모하는 인간을 “케모노(化モノ[귀신])”[각주:6]라는 관념으로 논한 적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생각한 것이 영(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인격이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사체는 “마른 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산 자가 인간 세계로부터 이탈해갈 때는 모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그자를 공유하고 존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령과 영의 차이입니다.

 

 

후지모리: 대표적인 마른 자는 뼈이지요.

 

나카타니: 맞습니다. 따라서 영이라는 추상이 확실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유품이 뼈와 같이 뻣뻣하고 딱딱하며 구체적인 모노로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케모노”의 끝판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후지모리 씨가 이야기한 것은 거기서 더 나아가 마른 자가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곳이 하늘이라는 것이지요.

 

후지모리: 말라가며 빠져나가는 자가 있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하늘로 되돌아가는 자로서 ‘혼(魂)’과 땅으로 되돌아가는 자로서 ‘백(魄)’을 구별하는데, 수평적 세계에서는 마른 후에 빠져나간 영은 여전히 지상 부근에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다락에 있다고 하고, 일본의 신도(神道)에서는 산에 있다고 하며, 그보다 위로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신이 사는 집의 문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무언가가 쏙 빠져나간 순간을 건축이나 모노를 통해 좇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카타니: 지모(地母) 신앙의 세계에서는 음침한 움 속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하지요. 그러다 병도 생기고 싫증이 나면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루가 확장됩니다. 사체는 높은 마루의 “모가리야(殯屋)”에서 말라가고 뼈만 남게 되어 객체(object)로서 영이 되는데, 그때 ‘혼’의 부분―즉 어떤 씨앗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하늘입니다. 새가 영(靈)을 운반하고, 그 너머에는 태양이 있으며, 태양은 모노를 마르게 하는 매우 직접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기 쉽게 정리하면 이와 같습니다. 그다음의 문제는 향후 과제로 꼭 고민해보겠습니다.

 

후지모리: 신의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未来のコミューン[미래의 코뮌]』을 읽고 다시 한번 감탄한 것은 아돌프 로오스(Adolf Loos 1870~1933,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의 「Ornament und Verbrechen(장식과 범죄)」(1908년) 논문을 떠올리게 한 때문입니다. 건축에서 장식을 제거하자는 20세기 주장의 시발점이 된 이론을 제공한 이 논문에 대해, 저 책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저 어떻게 ‘장식을 하지 말 것인가’뿐만 아니라 왜 ‘범죄’ 따위의 강한 단어를 사용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과격한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원죄’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나카타니 씨는 로오스의 장식론을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아담과 이브가 지혜의 사과를 나눠 먹고―요컨대 그것은 성교를 했다는 것이지요.―자신들이 나체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잎사귀로 중요 부위를 가린다고 하는, 수치심의 문제를 가져와 로오스의 ‘장식과 범죄’를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해석을 처음 접해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카타니: 기독교의 원죄라는 것은 요컨대 자유의지와 부끄러움입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여하간 위험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그것과 대비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부끄러움이 오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유럽의 논의를 보면 부끄러움은 말하자면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접촉)에 의해 태어난다는 것에서 생기는 감정으로서 문화 일반을 형태 짓는 원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모든 문화는 인류가 어떻게 서로 만나고 또 거리를 두는지에 대한 것이며, 그것을 위한 가장 비근한 수단이 복장이고 그것의 상징적 기능이 장식이라고 로오스는 말합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저도 모르게 무화과 잎사귀로 제 몸은 가립니다. 그것이 바로 장식의 시원입니다. 장식은 기능적으로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귀족이나 성직자의 복장도, 여자들의 드레스도 모두 부끄러움=무화과 잎사귀를 과잉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건축 장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에 진정 그만두어야 하지만, 그러나 원죄인 한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후지모리: 그렇게 생각하면 로오스를 통해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과 근대건축의 성립을 연결할 수 있겠네요.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유럽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근대건축의 성립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된 것이 없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철과 유리와 콘크리트가 일반화되고 시민사회가 생겨났습니다. 산업혁명은 기능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사상이라는 이론으로 설명될 뿐, 신과 관련해서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때까지 건축은―서두에 말했듯이 민가는 유럽에서 원래 건축가의 대상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오로지 공공건축을 말합니다.―신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공공건축은 기본적으로 신단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무엇을 원리로 삼아야 하는지의 문제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아마도 과학기술을 신으로 삼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그것을 유럽에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카타니: 확실히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고 끝내버리면 건축을 추구하는 소실점이 사라지는 인상을 받습니다. 근대에서 신에 대항하는 것, 반기를 드는 것은 건축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처음부터 어떤 신적인 것을 상정하지 않는 건축은 뭔가 건축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로오스의 원죄로서의 장식론과 유사한 구조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지모리: 로오스의 「장식과 범죄」가 신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 속에서 건축의 사상과 근대사상사 일반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것을 차라투스트라, 즉 조로아스터교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합니다. 하필 조로아스터교인가 생각해보면 재밌습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조장(鳥葬)[각주:7]을 합니다. 즉 새에게 사체를 먹임으로써 대지를 오염시키지 않고 혼을 하늘로 떠나보냅니다.―앞서 말했듯이 혼을 하늘로 ‘빼내는’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나카타니: 그렇군요.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제가 플레이트 경계 지역의 주거문화를 고찰하는 여행 중에 이란에 갔을 때(『動く大地、住まいのかたち―プレート境界を旅する[움직이는 대지, 살아가는 모습―플레이트 경계를 여행하다]』岩波書店, 2017년), 조로아스터교의 매장장소로 유명한 야즈드[각주:8]에 있는 침묵의 탑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 탑은 완전히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산 정상부를 개조한 것으로, 말하자면 화산암첨(火山岩尖, volcanic spine)[각주:9]의 꼭대기였습니다(그림 4). 다른 마을에 남아있는 풍장 장소의 흔적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재 이란 당국은 표면상으로는 조장이나 풍장을 금지하고 있지만, 어쩌면 아직 행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배화교(拜火敎)[각주:10]의 원래 매장장소가 대지로부터 분출한 용암 덩어리의 정상부라는 것을 보고 다시금 놀랐습니다. 그 위에서 영혼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는 것을 그들은 강렬하게 느꼈을 겁니다.

그림 4. 조장 장소인 '침묵의 탑' 산 정상 입지(야즈드, 이란)

 

* * *

 

곤 와지로의 고현학에 대해 고찰하면서 드디어 본래 의미의 고고학적인 영역을 다루었고 마지막에는 신의 문제까지 거론하는, 매우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고현학적 사유의 놀라운 광활함을 맛보았습니다.

 

나카타니: 고현학의 광범위함에 대해서는 부족하나마 논할 수 있었습니다. 이 논의에 기반해서 수직적인 구조에서 모노의 위상이라는 부분까지 논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후지모리: 곤 와지로가 어디까지 명확하게 생각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수직의 문제에 접근하는 단서는 확실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모노, 곧 “상품”입니다. 조형이나 장식의 문제에 가장 민감한 이들도 상품―특히 패션―에 몸담은 사람들입니다. 건축가는 이에 대해 둔감해지고 있지요(웃음). 이것은 로오스의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곤 와지로가 지금을 생각해본다면, 패션을 비롯한 상품 혹은 그것을 파는 상점 등을 주목했겠지요. 그것들을 둘러싼 사고를 곤 와지로의 고현학이 계속해서 자극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카타니: 지금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떠오른 것인데요, 곤 와지로와 요시다 켄키치가 지금 살아있다면 아마도 타투를 조사하지 않았을까요? 로오스는 타투를 가장 야만적인 장식으로서 치부했지만, 타투가 이렇게까지 대중화되리라 생각 못 했겠죠. 게다가 지금 타투는 추상적인 문양보다 매우 키치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부끄러움의 각인을 자신의 몸에 그려 넣는 것이 왜 지금까지 대중화되고 있는지, 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고현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후지모리 데루노부 건축사/건축가

나카타니 노리히토 건축사/생환경구축사

 

2019년 5월 13일, 에도도쿄박물관에서

 

 

 

あたかも数千年後のまなざして」 『現代思想47(9): 8-20, 201971.

 

 

 

 

 

 

  1. 모노(モノ)의 일본어 훈독 표기로서, 이 글에서는 사물 일반이라기보다 특히 인공물(artifact)을 가리킨다. 모노에는 또한 일본문화의 광범위한 용례가 함축되어 있으므로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음차표기하기로 한다. [본문으로]
  2. 마치야(町家)’는 민가의 일종으로 상점이 딸린 도시형 주택을 가리킨다. 큰길 양쪽으로 집들이 일렬로 늘어선 점이 특징이다. 에도 시대에 형성되었고, 메이지 시대 이후 상인들이 자본을 축적하면서 건물이 크고 화려해졌고, 그에 따라 특유의 마치야 거리 풍경이 조성되었다. [본문으로]
  3. 시치미를 떼다라는 뜻의 일본어가 포켓토호우케루(ポケーっとける)”라고 해서 에포케와 발음이 비슷하다. [본문으로]
  4. 혼죠후카카와(本所深川)는 도쿄도 스미다구(東京都墨田区)의 남쪽 절반을 가리키는 지역명으로 에도 및 도쿄의 변두리 지역 중 하나였다. [본문으로]
  5. 조몬 시대는 일본의 신석기 시대를 가리킨다. 보통 기원전 13000년부터 300년까지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벼농사를 시작했으며 각지에 쿠니’()가 생겨난 것이다. [본문으로]
  6. 일본어로 귀신을 뜻하는 오바케()’ 혹은 바케모노()’를 변형하여 만들어낸 조어다. [본문으로]
  7. 사체를 산꼭대기 등에 가져다 놓고 매 따위의 새가 사체를 파먹게 하는 장례 유형을 말한다. [본문으로]
  8. 이란 중부에 위치한 야즈드 주의 주요 도시이다. [본문으로]
  9. 화산활동의 마지막 단계에서 솟은 용암이 그 자리에 굳어버린 상태로 만들어진 용암 기둥을 말한다. [본문으로]
  10. 조로아스터교처럼 불을 숭상하는 종교 일반을 통칭하는 용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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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태생의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2013년, 한국어번역본은 2017년)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신실존주의』(2018년)는 가브리엘이 ‘마음의 철학’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고, 그에 대해 조슬랭 마크뤼르,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1931~, 영미 철학자), 조슬랭 브누아(Jocelyn Benoist 1968~, 프랑스 철학자), 안드레아 케른(Andrea Kern 1968~, 독일 철학자) 등 4인의 철학자가 각각의 입장에서 응답한 책이다(그들의 논의가 꼭 들어맞지는 않는 듯싶다─가브리엘의 두 편의 논문과 서두의 도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크게 두 가지를 집어보겠다.

 

1. 가브리엘은 원래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신실재론’을 내세우면서 이름을 알렸다. 구성주의란 극히 단순화해서 말하면, 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다양한 해석이나 표상이 현실을 이리저리 다루도록 하는 사회적 작용(앎, 미디어, 역사 등등)이 있을 뿐이라는 사고방식이며, 어찌어찌해서 반세기 가까이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예를 들어 개 짖는 소리라는 불변의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은 단지 “왈왈”이나 “멍멍”이라는 다양한 해석을 현실로 착각할 뿐이다─이 입장에 선 인문학 연구자들은 소위 ‘언어론적 전회’라는 이름으로 언어적으로 구축된 괄호 쳐진 ‘현실’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갔다. 현실 자체는 실재하지 않고 다만 임의의 퍼스펙티브에서 이뤄지는 해석의 연쇄밖에 없으므로 현실처럼 행세하는 언어에 대해 사고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가짜뉴스나 미디어 포퓰리즘 혹은 역사 수정주의가 판을 치는 것을 보더라도, 구성주의는 “목소리 가장 큰 놈이 그때마다 괄호 쳐진 ‘현실’을 구축해서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을 추인하는 꼴이 아닐까? 애당초 언어 너머의 현실이란 정말로 ‘실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구성주의에 반한다 해도 실재성에 접근하기 위한 철학을 다시 조직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을 좇아 최근 십수 년간 실재론[신실재론]과 유물론[신유물론]이 급속히 각광 받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이 조류의 유력한 선두주자이며, 복수의 ‘의미의 장’의 객관적인 실재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 『신실존주의』에서는 구성주의와는 또 다른 비판 대상을 새롭게 조준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자연주의다.

  가브리엘에 따르면, 자연주의란 마음을 물리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하려는 선택을 말한다. 즉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을 파고들면 결국 마음은 낱낱이 해명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는 이러한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 가브리엘은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John Chalmers 1966~, 언어철학자)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마음이든 의식이든 정신이라는 것은 뇌의 메커니즘으로 결코 환원할 수 없다고 본다. 물론 뇌에 기반하지 않고서도 마음이 어디선가 기적적으로 나타난다는 신비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뇌가 없다면 마음도 생기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뇌의 반응을 완벽하게 기술한다고 해서 마음이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뇌로부터 마음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질적인 도약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분의 총화는 반드시 전체와 같지 않다는 흔한 논법을 상기시킨다. (잘 알려진 것으로는 루소의 ‘일반 의지’가 있다─인민의 특수 의지를 모두 합친다 해도 일반 의지에 도달하지 않는다.) 가브리엘은 그것을 ‘자전거와 사이클링’ 간의 관계에 비유한다. 자전거=뇌는 사이클링=마음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하지만, 자전거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사이클링에 충분하지 않다. 자전거로부터 사이클링에 도달하려면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이 도약을 무시하고 자전거에 대해 아무리 해석한다 해도 사이클링을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가브리엘은 마음을 뉴런(뇌)의 반응으로 환원하려는 자연주의를 인간 정신에 대한 몰이해의 발로로서 철저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2. 그 연장선상에서 가브리엘은 두 차원을 병치시킨다. 하나는 자연종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이다. 예를 들어 가브리엘이 생각하기에, 인간은 동물의 일종(자연종)이며 그만큼 동물과 마찬가지로 과학이나 의학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 차원에만 환원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또 다른 차원, 즉 “우리라는 신체가 모습을 보이는 차원, 인간이라는 ‘의미의 장’의 차원”과 이어지는 ‘정신’(Geist)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신의 차원에서 인간은 인간 이외의 것과 구별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종이면서도 그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여기서도 또한 인간이기 위해서는 동물적 신체=자전거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정신=사이클링에 이를 수 없다는 논법이 관통된다.

  나아가 가브리엘은 “심적인 것의 존재론”도 언급한다. 즉 작가의 정신이 만들어낸 가공의 등장인물(예를 들면 맥베스)에 대해서도 실재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혹은 마음속에 떠오른 허망도 설령 분명히 헛된 것이라 해도 그것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가브리엘은 강조한다. “보스 입자(boson)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가 틀렸다고 해서 그 입자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허망은 자기 자신을 바꿔버린다. 게다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는 경우도 많다.” 자연종이 아닌 정신(허구/허망)이 현실을 바꾸는 사례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세상은 온통 코로나바이러스로 난리다.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 1914~1997, 미국 소설가. 자신의 마약중독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마약 환자의 환각과 공포를 소설과 시로 다루었다.)의 “언어바이러스설”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지금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더해 마치 바이러스인 것처럼 숙주=미디어에 잠입해서 증식하는 바이러스 관련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모방하듯이 바이러스에 대해 “열광적으로” 말하며, 그 이야기에 타자를 ‘감염’시키고 있다. 가브리엘의 용어로 말하면, 바이러스에는 자연종으로서의 바이러스와 정신(이 만들어낸 허구/허망)으로서의 바이러스가 있으며 이 모두가 사회에 영향을 끼칠 만큼 실재성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바이러스가 퍼진 크루즈선의 내부사정에 대해 객관적인 보도도 하지 않고 해외전송의 정확한 정보 발신에도 기여하지 않은 채로 날로 증가하는 확진자 수를 선정적으로 보고하는 일본의 매스미디어는 확실히 나쁜 바이러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승객의 트위터를 인용할 뿐이라면 저널리즘은 필요치 않다.)

 

*

 

그런데 자연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신의 고유성을 강조할 때, 신실존주의는 “신실재론”이라는 가브리엘의 간판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가브리엘은 구성주의(=현실은 해석으로 환원될 수 있다)에 대해서는 실재론(=해석 너머에 ‘의미의 장’이 있다)를 내걸고, 자연주의(=마음은 뇌로 환원될 수 있다)에 대해서는 관념론(=뇌 너머에 마음이 있다)를 내거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이렇게 설명하는 데에는 약간의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설명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덧붙이면 가브리엘의 지적 출발점은 독일 관념론[특히 피히테의 관념론을 내재적으로 비판한 셸링 철학]에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의 철학은 정체가 불분명하고 그다지 칭찬받을 만하지 않다.

 한 가지 말해둘 것은 자연주의에 대한 이 책의 비판 자체는 결코 이상한 논의가 아니다. 사실 마음이나 의식에 관한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다 기술할 수 없으며, 지금의 뉴런 중심주의는 사악한 이데올로기로 전화될 위험성 또한 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논문에는 다양한 논점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하다. 다만 철학에 대해서는 구경꾼의 입장인 나로서는 이 책의 논의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전체적으로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간단히 적어둔다.

 

1. 팬데믹을 포함한 여러 문제에 간단하게 적용되는 이론은 이론으로서 별거 아닐 수 있다. 이 책을 포함해서 가브리엘의 저작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위험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온건하고 상식적이다(이 점은 약 10년 전에 한창 붐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와 비슷하다). 적어도 가브리엘은 과거 공저(『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독일 관념론의 주체성』, 2011년, 인간사랑)를 함께 낸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악마적 재주를 파는 타입은 아니다. 철학 스타가 출현하기를 고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브리엘의 사상이 과대평가된 면도 부정할 수 없다. 그야말로 일부 출판인과 언론인의 ‘마음’속에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이 팽창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2. 자연주의가 인간을 뉴런(신경)으로 환원한다면, 신실존주의는 인간의 인간다운 이유를 푸쉬케(심적인 것)로 환원한다. 하지만 이 중요한 마음(정신)의 움직임에 대해서 가브리엘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다양한 능력”을 꼽을 정도여서 분명하게 말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다. 자연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하찮은 인간주의로 돌아서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후퇴일 수 있다. 게다가 ‘정신’의 유무를 통해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신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태아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태아는 인간이 아닌가? 혹은 반대로 동물에게는 마음은 없는가? 의문은 끝이 없다. 이 책은 부분부분 “인간 이외”라고 간주되는 것들을 부당하게 경시하는 것 같다.

 

3. 제2차 세계대전 후, 하이데거라는 거성을 만들어내면서도 나치즘에 이른 독일을 대신해서 프랑스가 오랫동안 철학의 거점이 되어 왔다. 전후 독일의 사상은 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학문을 잇는 사회학이나 정치사상에 의해 명성을 유지해왔다. 그 가운데 가브리엘은 독일에서 오랜만에 나온 철학의 신예임에 틀림없고, ‘신실존주의’라고 명명한 것에서도 그 야심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은 신실존주의가 샤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서두에서 가브리엘이 약간 언급하는 정도). 생각해보면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신실존주의가 실존주의보다 진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대작 『사르트르의 세기』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말한 사르트르에게서 굳이 ‘실존주의는 반휴머니즘이다’라는 또 다른 급진적인 측면을 읽어내려 한다. 메를로-퐁티 또한 유아의 세계에 관한 뛰어난 통찰을 남겨주었다. 이런 깊이를 솔직히 인간주의에 바탕을 둔 신실존주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여하간 최근의 유물론[신유물론]이나 실재론, 또는 인지과학이나 유전자공학은 철학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로 인해 유통기한이 끝날 뻔한 ‘인간’에 대해 가브리엘은 자연주의를 적으로 삼으면서 다시 한번 새로운 위치를 설정해주려고 한다. 이 신실존주의의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 하지만 그 싸우는 방식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지금은 과도기일 것이다.

 

 

(※) 이 점에 대해서는 『현대사상』 2018년 10월 임시증간호에 실린 마우리치오 페라리스(Maurizio Ferraris 1956~, 이탈리아 철학자)의 논고인 「새로운 실재론」에서 자세하게 언급된다. 덧붙여 이 호의 좌담회에서 미야자키 유스케(宮崎裕助)가 지적하듯이, 가브리엘이 포스트모던 사상을 ‘구성주의’의 이름으로 한데 묶는 것은 이상하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러한 현실의 구성작업이 모순을 내포하며, 이른바 내재적인 오류에 직면하는 데에서 유물론적인 계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포스트모던 비평에도 해당한다.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가라타니 고진, 나카자와 신이치, 아사다 아키라(浅田彰), 아즈마 히로키 등은 각각 다루는 대상도 이론도 크게 다르지만, 대체로 유물론을 자신의 사상에 수용해 왔다. 예를 들어 아즈마 히로키의 『존재론적, 우편적』은 주체의 균열(=존재론적/지젝적/독일 관념론적)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실패(=우편적/데리다적/유물론적)로부터 ‘불가능한 것’을 사고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더구나 그들은 실재론(유물론)이 관념론보다 낫다고 하지도 않는다. 가라타니는 1984년 예리한 평론 「비평과 포스트모던」에서 알튀세르를 끌어와 “관념론이 혁명적인 ‘의미’를 갖는 시기와 장소가 있고, 유물론이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 시기와 장소가 있다”고 서술하고, 니체를 참조하면서 “주관에 물어야 하며 주관에 물어서는 안된다”는 패러독스를 이끌어낸다. 우리는 결국 이런 패러독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아가 가라타니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판적 사상의 목적은 과거 주관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버려진 왕좌에 객관을 앉히려는 것이 아니고─왕좌에 모셔진 객관 또한 하나의 우상일 뿐이다─, 이러한 계층 질서를 폐기하려는 것이다”(『부정변증법』). 실재론이냐 관념론이냐, 객관이냐 주관이냐, 둘 중 하나를 ‘왕좌’에 앉히려는 것이 잘못이다.

 

 

출처: https://realsound.jp/book/2020/02/post-510064.html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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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의 글은 마르쿠스 가브리엘 욕망의 시대를 철학한다』(2018년 12월 출간)라는 책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지난 20186월 일본을 일주일 방문한 중에 NHK에서 방송한 그의 강연 및 일본의 인공지능연구자인 이시구로 히로시(石黒浩)와의 대담의 기록, 그에 더해 일본 철학자인 마루야마 슌이치(丸山俊一)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일본방문의 행적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다음의 영상을 보면 일본 내에서 그의 인기는 엄청난 것 같다(https://www.youtube.com/watch?v=H9J19m4ey8g). 다음의 강연 또한 대단한 호평을 받은 모양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에게서 책을 어렵게도 쓰고 쉽게도 쓰며 대중강연도 능수능란한 21세기 철학자의 또 하나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다음의 글은 쉬우면서도 깊다. 그리고 20세기의 근 100년간의 철학사를 일목요연하게 논하면서 자신의 관점과 이론으로 끌고 오는 힘은 정말로 대단하다. '신실재론'의 의의와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는 이 글은 '신실재론'의 입문으로 읽힌대도 좋겠다 싶다. 

 

 

 

 

철학은 현대와의 격투다가브리엘의 전후철학사강좌

 

 

유럽의 새로운 세대의 지성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의 역사를 개관한다. 과연 얼마나 광대한 관점이 만들어질까? 실존주의,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그다음은? 스테레오타입의 역사라는 서사를 일단 접어놓으면, 피상적으로 끝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철학사가 시작된다.

 

 

  1. 모든 것은 철학에서 시작되었다

 

  인식론을 빼고서 철학을 말할 수 없다

 

  지금 왜 철학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일까? 왜 갑자기 많은 사람이 철학을 요청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많은 일반인도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분명하다.

 

  철학이란 결국 대체 무엇일까? 지금부터 설명할 매우 단순한 문제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당신 눈에 물방울이 들어갔다고 하자. 그때 눈동자를 살짝 누르면, 내가 둘로 보이지 않을까? 누구라도 경험했을 것이다. 내가 이중으로 보일 텐데, 어째서 보통 눈으로 믿고 있는 현실이 왜곡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짜 현상의 복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렇게 판단해버리는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은 정보사회 전체를 괴롭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숙고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는 사실과 그 표현, 즉 그러한 사실과 이미지와의 격차와 얽혀 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지금 나는 주사위를 손에 들고 있다. (카메라를 향해) 보입니까? 지금 내가 몇 개의 물체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에게 물어보겠다.

  세상의 극히 일반적으로 세는 방법을 적용하면, 내 손에는 주사위 두 개가 있다. 나는 지금 두 개의 주사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물체가 몇 개냐를 묻는 질문에 모두가 일제히 이라고 답할까?

  모서리를 세어도 된다. 주사위의 면에 있는 숫자를 세어도 된다. 혹은 주사위를 구성하는 소립자를 세어도 된다.어째서 소립자나 면, 주사위의 이미지가 아니라, 주사위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아가 내 손안에 정말로 실제로 주사위가 두 개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강연은 방송프로그램이고 내가 단지 당신 모두를 속이기 위해 이 프로그램 제작팀이 만든 홀로그램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어째서 모두가 두 개라고 답할까? 정말로 자신의 머리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이것은 가장 철학적인 물음 중 하나다. 아니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인 물음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철학적인 문제는 인식론이라고 불리는, 앎의 논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는 철학 자체가 현실과 유리되고 말 것이다.

 

  컴퓨터도 철학자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일단 철학의 중요성은 알았다.

  다음으로 우선 현실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현실이 나타나는 방식과는 별도로 현실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단계를 밟지 않으면, ‘글로벌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지구는 무엇인가?’ 등의 물음에 절대로 답할 수 없다. 애초부터 근본적인 인식에 관한 물음은 현대 사회, 오늘날의 삶에 관한 모든 물음과 근본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철학은 특히 우리 시대에 이르러 더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물음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컴퓨터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이 방송도 컴퓨터 기술이 탑재된 TV에서 보고 있고, 스마트폰도 늘 곁에 두고 있다. 컴퓨터는 당신이 살고 있는 상황 속에 항상 있는 매체 중 하나다.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현실의 하나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란 무엇일까? 놀랍게도 누가 벌써 답해놓았다. 만약 그 인물이 그에 대해 생각해놓지 않았더라면 컴퓨터 같은 것은 없었을지 모른다.

  1950년대 이전 컴퓨터라는 말은 계산한다(compute)라는 어원에서 비롯된 계산하는 사람(computer)을 가리켰다. 인간이 간단한 산수 문제를 푸는 느낌, 그것이 컴퓨터였다. 그랬던 것이 현재의 컴퓨터가 된 데에는 천재 컴퓨터 과학자인 앨런 튜링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가 천재성을 발휘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암호를 해독한 덕에 영국이 독일에 승리할 수 있었다. 앨런 튜링은 컴퓨터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컴퓨터가 무엇인지를 해명했다. 그 후 컴퓨터는 과학이 되었다. 그 근본에 있는 주요 사고방식을 확인해보자. 컴퓨터란 논리적인 시스템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논리란 무엇인가? 복잡한 것 같지만 실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보겠다.

  지금 내 손안에 물체 두 개가 있다. 주사위 두 개가 있다. 이 물체를 왼손에 놓으면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고서도, 나는 왼손에 두 개의 물체가 있으며 오른손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양손에 하나씩 물체를 가지고 있다가 가지고 있는 물체를 왼손에 옮기면 왼손에는 물체가 두 개 있게 된다. 그것은 계산 가능하다. 그렇게 간단하게 인식할 수 있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계산순서)은 대략 이러한 느낌이다. ‘1 더하기 12’. 아니면 일반적으로 말해서 ‘A 더하기 BC’. 모두가 알고 있다, 이 구조를. 이것이 하나의 알고리즘이다. 컴퓨터는 일종의 하드웨어에 내장된 논리와 다름없다. 전자기의 정보 변환에 의해 나타나는 논리 말이다. 그것이 컴퓨터다. 컴퓨터는, 그 근본적인 논리의 구조를 밝힌 튜링이라는 철학자에 의해 발명되고 구상되었다.

 

  모든 이데아는 철학에서 시작되어 연결된다

 

  플라톤의 동굴의 은유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나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 그리고 내 뒤에 이미지의 이미지가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직 그 무엇도 복사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것이미지의 이미지을 현실이라고 알까? 플라톤은 바로 이 상황을 고찰했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다. “동굴 속 사람들이 벽을 보고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 뒤에는 불이라는 투영장치가 있다. 누군가가 사각형의 주사위나 손 등의 다양한 모양을 불에 비춘다. 그러면 동굴 벽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들이 벽만 볼 수 있다면, 그림자가 진실의 세계가 된다. 그러나 진실의 세계=이데아의 세계는 동굴 밖에 있다. 이것은 저 유명한 플라톤의 철학인데, 시네마의, 영상에 대한 최초의 이론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시네마라는 개념을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까지 발명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플라톤은 사람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이데아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러분은 내가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내가 말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화면 자막의 일본어를 읽을 수 있다. 자막은 당신에게 보이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것[당신의 이데아]을 알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이데아에 대해 내 나름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또한 나의 이데아에 대한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대략 해온 일은 이데아에 대한 이데아를 가지는 일이다. 이처럼 모든 이데아는 연결되어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이 방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주사위가 있는 곳에서 스튜디오의 저편에 있는 바비인형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고, 그리고 앞으로 이야기할 과일이 있는 곳으로도 갈 수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 방을 둘러보면서 방에 있는 것들을 연결할 수 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일종의 정보구조에 의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그것을 이데아라고 했다. 이것이 인터넷의 유래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플라톤은 이데아는 연결되어 있다라는 이데아를 알려주었다. 이데아의 이데아, 플라톤의 유명한 말이다. 그는 이데아라는 용어까지 만들었다.

  정보화 시대, 컴퓨터 시대,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질문의 상당수는 실은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면 철학의 문제에 이른다. 이를테면 정치민주주의와 같은 용어 또한 처음에는 철학적인 표현이었다. 현실에서 실행된 철학적인 사고였다. 마르크스주의나 자본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철학적 사고다. 즉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인류 세계에서 기본적인 구조의 상당수는 철학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사고에 부착된 많은 문제들, 그에 대한 답들 중 상당수는 실은 종종 틀리기도 했다. 세상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현실에 대한 철학적인 개념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지금 이 스튜디오에서 시작해보자.

  더 기본적인 철학의 물음에서 시작해보자. 그것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가장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이다.

 

  ‘시간의 경과는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시간을 이야기하기 전에 다른 문제를 이야기했다. 현실과 그 표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것을 이야기한 후 지금 시간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전 순간이 어떻게 지금 이 순간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제 당신은 무엇인가를 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어제의 장면에 있는 동안 무언가가 일어났을 것이다. 당신의 머릿속에도, 다른 어딘가에도. 그리고 당신은 이 둘을 연결했다. 어제 일어난 장면은 어떻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것, 즉 당신이 이것을 보고 있는 순간과 연결될까? 그 커넥션, 관계성이란 무엇일까? 커넥션을 성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떠올려서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비교하고 있는 이 지금, 세 번째 장면이 생겨났다. 어제 일어난 것, 지금 보고 있는 것, 그리고 세 번째의 장면, 이 세 개를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제 일어난 것, 지금 보고 있는 것, 그리고 이 둘의 연상 상의 비교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 , 세 번째의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 이 셋의 장면을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제, 지금, 그리고 당신이 어제와 지금을 연결해서 상상하고 있는 그것. 그리고 이것들을 연결하는 네 번째의 장면이 곧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결국 모든 장면을 연결하는 것은 실은 어떤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란 아이가 던지는 주사위다. 시간은 뛰노는 아이다이렇게 바꿔 말해도 무방하리라. 이것이 그에 의한 시간의 정의다. 여기에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아이는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놀고 있을 뿐이다. 아이는 주사위를 던진다. 그래서 나온 무작위적인 결과, 계속해서 던진 결과그것이 시간이다.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 아이는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이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럼 이번에는 이렇게 시간을 느껴보자. 틈과 다음의 틈과 그다음의 틈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고.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통해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지금 당신은 나의 의식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의식에 대한 어떤 이미지는 항상 변한다.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나를 보고 있기에.

  눈이 움직이고, , 생체나 뇌 속에도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의식에 대한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다음의 이미지로 이행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전체적인 연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가진 의식에 대한 어떤 이미지의 배후에는 모든 것을 연결하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스냅사진의 연속이다. 시간이라는 것도 하나의 스냅복사에서 다음의 스냅복사로 보이지 않는 추이(推移).

  시간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시간을 볼 수 없다.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무언가를 볼 수 있어도 시간의 경과는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것이 매우 심오한 미스터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상황이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실은 아무것도 없다. 혹은 많은 철학자가 말했듯이 현실에는 고유의, 본래부터 있는 이미지 구조가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를 볼 수도 있다. 이미지의 층(layer) 위에는 더한 이미지의 층이 있다. 앞서 증명했듯이 그것 또한 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 다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역사에서 가장 큰 이미지를 분류해보는 것이다.

 

 

  2. 현대철학을 되돌아보다

 

  역사란 숨겨진 상상성의 통일’?

 

  역사란 무엇일까? 가장 흥미진진한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이 환상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그 이야기로 되돌아갈 테지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역사란 무엇일까? 시간과 역사는 확실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역사라는 것이 주요한 이벤트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역사의 어느 시점(時點)에서도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어제(2018612)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다. 그러나 왜 그것이 역사인 것일까? 어째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구조를 부여하는 주요한 사건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 그에 대한 적절한 설명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건을 연결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통일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특정 사건에 숨겨진 통일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건에 숨겨진 통일성이 있다는 생각은 metaphysics=‘형이상학이라고 한다. ‘넘는다는 의미의 ‘meta’‘physics’=물리학이 조합된 말이다. 물리적인 세계를 넘어서 물리적인 세계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물리학넘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형이상학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역사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 등 중요한 이벤트가 있다고 믿는 한편, 이러한 이벤트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도 왠지 모르게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가장 단순한 이해는,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데, ‘중요한 이벤트의 연쇄라는 사고다. 유럽인에게는 제1차 세계대전, 많은 사람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 냉전, 1989년의 베를린 장벽의 붕괴 등등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어떤 일들. 많은 철학자가 그것들을 믿었다. 역사가 중요한 이미지의 연쇄이며, 그것이 구조를 부여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시간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왜 역사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의 철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부터 철학 자체의 주요한 전환, 중요한 이벤트를 살펴보고, 그것들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철학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자.

 

  제2차 세계대전의 반성에서 시작된 실존주의

 

  현대철학에서 지적인 사고를 자극하는 하나의 큰 장면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들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여러 국가에서 실존주의라는 운동이 번져나갔다. 안타깝지만 오늘날에 그 사실은 거의 잊혀졌다.

  실존주의라는 것은 다음의 매우 훌륭한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결국 틀렸지만. 실존주의의 가장 큰 성과는 다음의 말로 집약될 수 있다.

  “자신의 인생 이외에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의미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사람들은 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기독교도가 믿는 일신교의 신이 인생의 의미를 밝혀주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은 20세기의 공포와 사리가 맞지 않았다. 신은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주지 못하고, 만약 신이 있다 해도 그것이 왜 공포가 아닌 의미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힘이 세고 전지전능의 누군가가 있다고 해보아도, 그것은 의미의 원천보다는 공포의 근원으로 다가왔다. 당시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목도한 수많은 사람은 신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다음의 문제가 도출된다. 인생은 애당초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실존주의자의 답은 인생에 의미를 가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에게 투기’(投企)라고 불리는 것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 좋다. ‘투기란 무엇인가? 사람은 자신이 놓인 상황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구조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의미를 찾는다. 의미를 던지고’ ‘꾀한다’, 투기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넘어서서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즉 인생에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당신 인생의 의미에 대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론 인류의 시간성(일시성)에서, 즉 인간에 의한 시간의 경험에서 역사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바로 만들어진다. 역사가 있고 중요한 이벤트가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모든 것에 투기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근대성이나 민주주의 등에 대한 전체적인 투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역사라는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작은 투기를 위한 투기이다. 이것이 실존주의에 있어서 기본적인 사고다. 실존주의는 하나의 거대한 슬로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요컨대 이 의미다. 우선 당신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생에 의미를 준다.

  자신의 존재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태어난 것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삶은 의미의 원천이 아니라, 실존주의자에 의하면 투입’(投入)에 불과하다. 현실에 던져졌을 뿐이다. 그것은 별로 인생에 의미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존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많은 국가의 많은 도시에서처럼 모든 의미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의미가 사라지게 되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생겨난 훌륭한 사고방식인 실존주의이지만 동시에 문제도 있었다. 인간적인 활동에서 철학자가 말하는 주체라는 근본적인 개념이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체라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일종의 구조를 부여하는 중심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실존주의의 경우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 부여하는 구조다.

 

  ‘실존주의에서 구조주의

 

  그러나 만약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 주는 구조가 어떤 이유에서 외부의 요소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통해 유럽을 중심으로 1960년대에 실존주의구조주의라는 사고방식으로 대체되어 간다.

  구조주의 또한 훌륭한 사고방식이다. 구조주의에 의하면 자신의 주관성’, 즉 자신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방식은 구조의 네트워크의 하나의 결절점, 교차점과 같은 것이다. 구조의 요소에는 가족, 자라난 장소, 최근이나 과거에 대한 기억, 나아가 경험한 것에 대한 담론, 문화적인 가치 등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요소로부터 생겨난 구조가 인생에 의미를 준다. 그것이 구조주의에서 기본적인 사고다.

  구조주의자는 신화학 등의 연구 성과 속에서 만들어졌다. 놀랍게도 세계 속에 유사한 구조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저 유명한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의 선조다. 그는 인간에 의한 모든 이야기의 화술에 근본적인 구조가 있다는 가설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것은 가령 일본의 연극도 고대 그리스의 연극도 비슷한 구조가 있는데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어느 국가의, 어느 문화의 연극도 그러한 구조와 맞아떨어지며, 모든 연극의 표현양상에 공통하는 기본적인 구조가 있다. 시 혹은 컴퓨터 게임에도 맞아떨어지는, 그러한 보편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요컨대 인간의 투기의 외측으로부터 다른 무엇이 인생에 구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그것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러한 구조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구조주의 또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1960년대 말에 작은 문제가 떠올랐다.

  1960년대가 끝나갈 무렵은 또 다른 파탄과 시기가 겹친다. 20세기의 공포 후에 사회의 재구축은 간단한 일이라는 사고가 파탄을 맞았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 있는 엄청난 권력을 여전히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재구축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사람들은 역사와의 더한 과격한 분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자고. 이러한 복잡한 이유가 있었고, 그것이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표출되고, 그러한 흐름이 유럽의 학생운동을 계기로 모아지게 되었다.

  또 그것은 철학의 풍조를 바꾸었다. 주목해야 할 다음의 단계로의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하여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에 의한다.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고도 멋진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언어를 떠올려보자.

  언어는 특히 글에 의해 구성된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이 스튜디오에서 영어로 말하고 있고, TV를 보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화면 밑에 표시된 일본어 자막을 읽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일본어를 읽는 동안, 그리고 내가 영어를 말하는 동안, 일어나는 것의 구조는 더 작은 단위로 분리될 수밖에 없다. 문장, 문학, , 어조, 표현 등등으로.

  이것들은 극히 작은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어째서 애당초 이러한 작은 요소를 포함하는 언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영어라는 언어의 존재를 믿는 어떤 적절한 이유가 있을까? 우선 언어는 변한다. 어느 시점(時點)에서도 안정적인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항상 변한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 지금 입 밖에 내고 있는 문장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지금까지 이야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생활의 많은 이야기들은 당신에 의해 처음으로 이야기된 것들이다. 즉 언어는 이미 존재하거나 연결되어 있는 일련의 표현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언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연결되어 있는 작은 구조가 아니라, 그것은 더 큰 전체의 존재를 암시한다.

  그러나 왜 그러한 더 큰 전체의 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어라는 하나가 있다고 말한 것은 누구?

  데리다의 가설에서는 하나의 언어 대신 차연’(差延)이라는 것이 항상 존재한다. ‘차연은 유명한 개념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룬다는 지연’(遲延)과 다르다는 차이. ‘이와 지’. ‘차연은 불어에서는 일종의 말놀이로 이 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어는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차연이란 아직 없지만 미래에 있을 것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 사이에서 요소 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글을 끝내고 있다. 이것으로 끝났다. 글의 시작을 입 밖에 내는 것은 글을 끝내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글을 입 밖에 내기 시작할 때 글은 아직 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의 끝을 생각하지 않고서 글을 입 밖에 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글의 끝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글의 끝은 존재하지 않지만 글에 구조를 부여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 즉 미래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에 구조를 부여한다.

  데리다 이전의 많은 철학자, 그리고 당시의 과학도 사건은 모두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이해했다. 현실은 현재에 있다고. 그러나 결국 언어의 현실에서조차 이 가정은 사리가 맞지 않는다. 언어라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를 통해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미래에서 현재를 통해 과거로 흐른다. 언어는 역 시간방향을 가진다. 자신의 생각은 언제나 말로 표현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자신의 인생 또한 역방향으로 거슬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은 사고하는 생물체로서 삶에서 죽음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삶으로 향해간다. 데리다에 의하면 역방향인 것이다.

  미래가 현재에, 그리고 현재가 과거에 구조를 부여한다. 여기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거대한 패러독스가 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선을 그을 수 있을까?

 

  그런대로 재밌을 것이므로 생각해보자. 시간에 세 부분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그럴듯하다. 어제는 무엇을 했고, 지금은 하고 있는 것을 하고 있고, 내일은 아직 무엇을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어제, 오늘, 내일이 있다고. 그러나 물론 오늘도 시간에 의해 구성된다. 오늘은 아침, 점심, 그리고 맞이하면 좋을 밤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이 그때까지 파괴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지금 순간에도 이 세 부분으로 이뤄지는 시간 구성이 있다. 1분을 살펴보자. 1분 사이도 과거, 현재, 미래에 의해 구성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현재에 도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현재에 도달한다면 어떻게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한다면, 현재가 없다면 어떻게 시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과거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라, 현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현재는 점점 더 분해된다. 그것이 포스트구조주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또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에 대응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예를 들어보자. 이것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개념의 하나라고 해보자. 당신의 모든 인생이라도 다른 무엇이라도 좋다. 앞서 말했듯이 이 시간 개념 속에는 더 작은 시간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생의 최초의 5년간이랄지, 그렇게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더 작은 개념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과거 두 달간이랄지. 시간의 최소구조, 최소단위라는 것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그것은 항상 더 작게 분해된다.

  현재라는 것은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이것이 시간의 문제를 설명한 데리다의 논점이다. 이것은 대단히 심오한 통찰이기도 하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다음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문제는 더욱 큰 사고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근대성, 계몽주의, 민주주의 등의 베이스에 있는 것은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사고다. 인류의 진보’, 과학과 기술의 진보등과 같이 진보를 믿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이 진보의 현실에서 살아간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구조, 나아가 시간이 필요하다.

  자크 데리다가 한 것처럼 구조, 시간, 역사의 개념을 무너뜨리면, 즉 이 전체구조를 무너뜨리면 어떻게 무언가의 형태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데리다의 사고방식을 밀고 나가면 때때로 일종의 현실 괴리가 일게 된다. 현실을 파악하려 들면 다른 현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현실은 항상 빠져나가고, 이 손에 쥘 수 없다.

  데리다가 말했듯이 현실은 도망친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을 빌면 시간을 파악하려 들면 시간은 도망친다.”

  마찬가지로 사실 또한 도망치고 도망치고 계속해서 도망친다우리는 영원히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해결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도 영향을 준다. 즉 사실을 일찌감치 알 수 없게 만든다. 사실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다면 사실이란 본래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확실히 존재한다라는 것

 

  이제 우리가 지금 있는 현대로 옮겨오자.

  간단한 질문을 하겠다. 여기에 과일이 몇 개 있을까? 세 보자.

  하나, , 셋, 넷, 다. 바나나가 다섯 개 있다. 그리고 딸기가 세 개 있다. 산수를 사용해서 3 더하기 58. 과일이 여덟 개. 과일바구니에 여덟 개의 물체가 있다. 좋다. 이 물체들은 어떤 사실에 짜 맞춰진 것들이다.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것이 옳지 않다면, 특별히 무엇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것이 철학자가 말하는 사실이다. 물체의 구조를 이룬다. 사실에는 물체가 있다. 즉 과일바구니 안에 무엇이 있다는 것에 더해 이 상황의 구조를 보증하는 사실도 있다.

  그러나 만약 데리다가 옳다면,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것들의 위치조차 특정할 수 없다. 결국, 여기서 일어나는 것에 당신이 접근할 수 있는 현재=이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 없이는 변동과 변화도 없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인식은 포스트구조주의라고 불리게 된다. 구조는 이미 사라졌고 잡을 수도 없다. 즉 과일바구니에 과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이 필요하다. 이것은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심호흡하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사실은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한번 더 반복하겠다. 사실은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의미인가 하면 이 과일바구니에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것은 진짜다. 그리고 이 여덟 개의 과일은 항상 붕괴하고 있다. 썩어가고 있다.

  일 년 후 혹은 10년 후에 돌아와 보면 과일은 이미 없을 것이다. 즉 거기에 있는 것은 열역학의 제2법칙에 따라 수많은 것들이 붕괴하고 있는 물질과 에너지다. 과일에 손대지 않아도 10년 후에는 없어질 것이다. 붕괴가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기에. 그러나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사실은 붕괴하지 않는다. 그것은 옳다. 특정 시점(時點)에서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것은 항상 옳다.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사실은아직 과일은 여덟 개 있다. 그 사실 자체는 붕괴하지 않는다. 즉, 지금 살아 있는 현실은 단지 붕괴하지 않는 물체만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당신을 포함해서 온갖 붕괴하는 물체로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이 붕괴하고 있는데도.

  그러나 데리다가 옳다면, 파악하기 어려운, 붕괴하는 물체라는 현실 레벨에 더해 사실이라는 레벨이 있게 된다.

  사실이라는 레벨은 시간을 완전히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강조해야 하는 것은 시간의 경과를 수반하지 않는 영원의 차원에서 특정 시점, 결정적인 시점에서 과일이 여덟 개 있다는 것이다. 해석을 통해 이것은 우리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근대물리학의 진상(眞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물리학에 의하면 물리적인 현실조차 붕괴하고 있는 물질만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시공(時空)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설명한 후에 내가 권장하려는 현대철학인 신실재론에 들어가겠다. 그리로 가기 전에 우선 공간과 시간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현실은 실제로 보이는 것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 매우 간단한 질문을 해보겠다. 지금 여기에 영상이 있다. 유니콘, 질주하는 뿔 달린 짐승의 영상이 있다. 이것이 유니콘이 아니라면 유니콘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두 유니콘이라는 생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다시 그러나 유니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유니콘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신실재론은 당신에게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유니콘은 정말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이 동영상 안에 있다, .

  자, 이 유니콘은 시부야의 교차로에서는 볼 수 없다. 이 유니콘은 절대로. 이 영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유니콘은 이 영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유니콘인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질문을 해보자. 이것이 유니콘 모습을 하고 있는, 교묘하게 변장한 망아지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가령 이것이 뿔 달린 말이라면? 그럴 리 없다, 이것은 진짜로 유니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영상 속에 유니콘이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유니콘이 있다는 것만이 사실은 아니다. 다른 수많은 기묘한 것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 유니콘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유니콘에 대한 당신의 이미지, 당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도 존재한다.

  당신은 자신의 시점에서 유니콘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시점에서 같은 유니콘을 보고 있다.

  이 유니콘에다가 유니콘에 대한 관점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유니콘뿐만 아니라 손과 손의 이미지, 카메라, 인터넷 등등도, 그 속에 존재한다. 숫자도 존재한다. 여덟 개의 과일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8이라는 숫자가 없다면 여덟 개의 과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8이라는 수는 과일이 몇 개 있는지를 드러내는 숫자이며 그것은 유니콘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이미지다.

  따라서 현실은 우리가 보는 사물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물의 이미지에서도 구성된다. 그 이미지에도, 현실 자체에도 어떤 성질이 있다.

 

 

  3. 철학에서 본 전후사

 

  세계사의 전환점이란?

 

  세계사라고 불리는 큰 흐름 속에 가장 중요한 최근 사건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종결이 있다. 그것은 확실히 20세기의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수많은 철학적 사고를 발동시켰다. 그로부터 근대사상의 큰 전환점을 이룬 것이 1968년의 학생운동이다. 그 후에도 동서 냉전의 긴장 고조가 있었으며 베트남 전쟁도 있었고 세계 속의 다양한 일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큰 전환점으로 다뤄야 하는 사건은 1989년의 일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 뒤로 이어진 독일의 재통일. 또 그것은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다. 모든 이들에게 많은 희망을 준 자유민주주의가 마침내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그리고 철학에서 보면, 나로 대표되는 운동인 신실재론이 태어났다. 그 주요 계기는 2001년과 2008년에 있다. ‘신실재론2008년의 경제위기, 그 원인인 2001년의 동시다발테러, 세계적인 테러의 시작과 연결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이 경제체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 이 둘이 담고 있는 심각한 위기의 여파 속에 있다.

  그 의미를 지금부터 하나씩 보여주겠다.

 

  ‘물질주의에서 인생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세계질서가 등장했다. 지금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세계질서다. 이 세계질서의 기반은 총체적인 세계평화를 안정화시키려는 시도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전 세계가, 즉 국제사회의 구조가 일체화를 지향한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각국, 각 사회의 시스템이 전체의 안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왜냐하면 글로벌파워가 생겨나고,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틀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로켓과 비행기가 중요한 기술이 되고, 그리고 이는 일단 전쟁이라는 사태가 발발하면 전쟁이 지상ㆍ해상을 막론하고 공중전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과학기술이 인간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틀이 되었다. 그리고 이 구조가 기본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새로운 세계질서의 시작을 결정지었다.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적어도 2자의 주요한 플레이어가 존재했기 때문에, 곧 붕괴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담긴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에는 물론 아메리카와 그 동맹국이 있다. 아메리카는 인간의 진보에 대한 완전히 물질주의적인 개념을 대표한다. 인간의 진보에 대한 이 완전히 물질주의적인 개념에 의하면, 자본주의와 과학적ㆍ기술적인 진보라 말할 수 있는 변화의 프로세스가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 따라서 인류는 드디어,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지상에서의 최종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과학적ㆍ기술적인 프로세스가 인류의 궁극적인 구제를 불러온다는 이데아 하에서 우리는 모두 단결하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역설이 숨어있다. 왜냐하면 다른 한편으로 완전히 물질주의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고즉 물품의 생산과 돈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의미 있는 해답을 약속한다. 그런데 완전히 물질주의적인 프로세스로부터 어떻게 하면 인생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냉전체제에서는 주로 소련에 의해, 그 후에는 중국이나 다른 해당국에 의해 대표되는 공산권이 존재했다. 공산주의적인 세계관은 역사적ㆍ변증법적 유물론을 제공한다. 역사적ㆍ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하면이것은 매우 철학적인 관점인데,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과학적ㆍ기술적 진보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의 진보이기도 하다. 이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의 진보는 사회적 현실에 관해 우리가 어디까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그 의미에서 결국 소련의 기초과학은 자연과학, 즉 물질세계의 틀의 과학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사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관에서는 단지 부와 돈의 분배 말고 중요한 것이 대두된다. 미소[미국과 소련]라는 이 둘의 세계관을 가진 국가가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충돌한 것은 매우 큰 사건이었다.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세계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전후 세계의 사상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 나 자신이 역사가가 아닌 데다 이것은 말하자면 세계가 아니라 철학사다.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가 있다고 믿을 턱이 없다(웃음). 이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하는 것으로 하겠다.

 

  전후의 질서는 현실에 대한 두 개의 총합적인 철학적 견해에 의해 규정되었다. 아메리카와 소련이라는 두 개의 강국이 서로 다투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것들은 개념의 레벨에서도 싸웠다.

  두 강국은 그 역사와 현실에 대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전후의, 현실의 전체적인 설명으로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보기와는 달리 실은 매우 철학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개의 이론이 있다. 현실 전반에 대한 철학적인 이론이다. 자연적 현실(natural reality)과 사회적 현실(social reality)이 특정 방법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둘의 세계관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세계관의 충돌은 많은 철학적인 이론의 성분변경을 일으킨다. 가장 현저하게는 프랑스와 독일의 철학에서 두 이론이 조합되게 된다.

  요컨대 한쪽은 마르크스주의이고 다른 한쪽은 정신분석학이다. 이것이 냉전이 일으킨 또 하나의 효과라는 표현도 가능하겠다.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발전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다. 역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해설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분업에 의해 특정한 사회적인 이익이 형성되고 서로가 대립하기 시작하는 상황을 뜻한다.

  정신분석학은 계급투쟁이 일으킨 정신적 질환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공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조합하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입장에 설 가능성이 생긴다.

  이 조합은 아메리카의 물질주의적인 세계이미지가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련의 세계이미지인 역사적ㆍ변증법적 유물론이 제공하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1960년대의 유망한 개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매우 문제적인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비평가에 의하면 이 개념은 세계질서 자체가 안정되고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가 그 무엇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설명하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위기를 심화한다.

 

  라캉의 거울단계

 

  냉전 시대,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연결하는,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철학자 두 사람을 꼽으라면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알렉산더 코제브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을 들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철학자라는 것에는 거의 이견이 없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철학에서 유래한, 그들을 이끈 기본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헤겔은 사회와 주관성의 관계, 사회 전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헤겔의 가장 중요한 사고방식의 하나다.

  내가 나인 이유는 내가 당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 너는 너, 어째서 이렇게 인식할 수 있을까?

  내가 나라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너가 너인 것은 어떠한 것일까? 모두 제각각의 타자와의 비교에서 자기를 인식하는 것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보고 너가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너는 나를 보고 남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너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를 생각하고, 너는 내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를, 어떤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를, 어떤 행동습관이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너는 내가 독일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나는 너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너를 보면서 나는 내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판단할 것이며, 너도 나를 보면서 너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특징들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는 너의 관점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인식할까? 나는 너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모르며, 너도 내가 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모른다.

  이러한 까닭에 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우리는 스테레오타입의 일정한 시퀀스를 고안한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도 상상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실은 그 속에 있다.

  따라서 나와 타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누구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투영하기 시작한다. 알렉산더 코제브에 의하면 이것이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헤겔에 대한 그의 유명한 해석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자크 라캉에게 이어져 누가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주제로 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론을 형성하는 자극제가 된다.

  라캉에 의하면, 특히 1960년대에 이런 식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이 교차한다. 이것은 대략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일어나는데, 우리는 모두 그가 거울단계라고 부르는 이론을 제창한 것을 알고 있다. ‘거울단계에서 유아는 생후 6개월부터 한 살 반까지의 시기에 자신을 동물로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라캉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다.’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세계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족이 보호해주기 때문에 그것은 확실하다.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울 속의 무력하고 조그마하며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아가로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자마자, 자신은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라캉에 의하면, 아가는 자신은 신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거울에서 자신을 보는 순간 자신은 신이 아니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아가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주변의 모든 이들과의 비교에서 무력하다는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돌봐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라캉에 의하면, 이것이 그들의 셀프이미지를 산산조각낸다. 거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거울은 부서진다는 것이다.

  라캉에 의하면, 그러한 까닭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타자가 확인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타자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공상을 타인에게 투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라캉에 의하면 자신이 무력하고 자그마한 아기라는 인상을 극복할 수 있도록 나는 당신에게 특정한 방법으로 나를 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정신분석학의 전형적인 설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설명은 당신이 어른으로서 가지는 정신생활의 모든 것을 유년기에 일어난 것으로 회수시키고 만다. 이것이 기본구조다.

 

  ‘물질주의유물론이 싸울 때

 

  라캉의 거울단계의 이론은 실존주의의 창시자인 장 폴 샤르트르와 실존주의를 둘러싼 이론을 계승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사회와 역사가 헤겔이 말한 바의 승인을 둘러싼 투쟁을 배경으로 하여 진화해왔다는 기본적인 개념에 찬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은 참된 셀프이미지가 없는 장소에서의 셀프이미지를 위한 투쟁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 모든 것을 꾸며내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겉으로 보기에는 기묘하게 생각되지만, 실은 매우 개방적으로도 들린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유럽에서 성 혁명을 일으킨다. 계속해서 이 투영의 메카니즘이 작동하고 있고 그 근저에는 어떤 현실도 없으며 그것이 바로 타자의 곁에 있는 거울이라는 것, 1960년대에 이러한 의문을 사람들이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해되는가?

  어떤 의미에서 인생이 집합적인 꿈이라면, 사회생활에도 그 집합적인 꿈의 구조가 있다면, 그것이 진실이라면, 왜 우리는 룰을 변경하지 않는 것일까? 1960년대의 새로운 양상의 카타스트로피, 특히 베트남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냉전(冷戰)이 열전(熱戰)이 되는 그러한 대참사를 일으킨 억압적인 사회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그리고 이제 조금 전 다루었던 두 개의 세계관, 순수한 물질주의와 역사적ㆍ변증법적 유물론이 실제로 전화(戰火)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살해되고, 핵을 이용한 제3차 세계대전과 인류전멸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모두가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기 위해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가? 이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철학의 정신, 그리고 아마도 1980년대의 철학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희망, 많은 낙관을 주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4.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

 

  네오리버럴리즘은 왜 대두했나?

 

  1960년대, 그리고 특히 1970년대 초기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지구상의 정치지도자와 사회시스템이 지금의 네오리버럴리즘(신자유주의)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류의 경제체제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두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내었다.

  네오리버럴리즘은 특히 당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에 의해 확산된 사고방식이다. 이 조류는 극단적으로 상황을 변화시켰다. 레이건과 대처가 상징하는 네오리버럴리즘은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개념이 된다.

  실존주의자, 구조주의자, 포스트구조주의자는 기본적으로는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은 사회구조라는 것은 꿈과 같은 것이고 거기에는 더 깊은 현실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행위를 통해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에 대한 더 깊은 근거는 없다. 그것은 매우 표면적인 가면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네오리버럴리즘은 이러한 철학적 이론화에 대항해서 자기 나름의 철학적 이론화의 수단을 행사하기 위해 철학자에 도전할 수 있는 괜찮은 경제적인 개념을 생각해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악한 측면이 경제적으로 실행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대략의 짜임새는 이와 같다.

  만약 정말로 사회영역이 실제로 이미지의 투영을 중심으로 조직된다면, 그 투영의 메카니즘을 자신의 것으로 해서 그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에서 셀프이미지의 구축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계급투쟁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네오리버럴리즘은 역설적으로 철학자들에 의해 해석되었듯이 초기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이론적인 가르침을 완전히 받아들여서 그것을 거대한 광고산업으로 변화시켰다. 왜냐하면 광고산업이라는 것은 이미지와 셀프이미지의 투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도쿄의 지하철을 타면 끊임없이 더 좋은 셀프이미지에 대한 제안을 받는다. 더 아름다워집시다. 먹는 것을 참아라. 더 먹어라. 더 부자가 됩시다. 대출을 합시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갑시다 등등. 이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유의 가능성으로부터 공격받고 조롱당한다. 그것들은 이미지를 투영해서 말한다. 이것은 당신이 바란다면 이뤄진다고.

  그리고 그것들은 당신의 마음에 스며든다. 광고산업은 당신의 마음에 스며들어서 당신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아이디어는 당신이 결국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들 모두 환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예시인 할리우드 등의 환상 업계 또한 당신의 마음에 스며들어 당신이 자신에 대해 가지는 셀프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느새 인간들 사이에서 구축될 뿐만 아니라 제3의 행위자(actor), 3의 주체에 의해서도 구축된다. 저 유명한 이미지의 철학자인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화산업이라고 부른 것이 그러하다. 문화산업은 광고산업과 함께 철학에 대한 통찰을 실행함으로써 그 대상을 조절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해방의 철학이 그 자신과 싸우기 시작하고, 이 싸움은 철학의 세계 자체에 심각한 충격을 주며 철학의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전체의 이론화의 수정을 재촉한다. 이것이 네오리버럴리즘의 본질이다.

 

  ‘승인을 둘러싼 투쟁헤겔의 이론

 

  이제 그 다음 단계로 가자. 지금 내가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겠다. 이는 우리 철학자에게 다음의 중요한 지혜를 선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철학의 이론화를 하면서 현실을 해석하는 방법은 사회적 현실 그 자체에 좋든 싫든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현실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개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개념을 다른 종류의 모델이나 이론으로 전환할 수 있다. 사람들을 조정하기 위해 철학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완전히 가능하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철학은 요컨대 그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내가 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하나의 사고를 입 밖에 내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내가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헤겔의 승인을 둘러싼 투쟁의 이론에서 얻은 지혜다. 즉 나는 이 글을 입 밖에 내면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는 내가 실제로 생각하는 모든 생각에 해당된다. 내가 실제로 생각하는 어떤 생각도 수많은 생각 중 하나다. 지금 이 모든 것에는 앞서 말한 대로 구조가 있다.

  철학은 사상의 구조 자체를 연구한다. 사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안다면, 물론 이 통찰은 사람들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네오리버럴리즘은 이 의미에서 어떤 깊은 철학적인 통찰을 경제 시스템에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철학이 사람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철학자들이 이를 의도하지는 않는다. 마치 철학적인 모략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희망

 

  내가 알기로 로널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는 철학자와 이야기하는 것에 열성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철학자가 왕이나 여왕이 되는 일 따위는 일어난 적이 없다. 정반대다. 그때 우리와 대립했던 사람들은 우리의 아이디어에서 권력을 얻고 바로 그 아이디어에 대항해서 사용해왔다. 이는 특히 70년대와 80년대 초에 프랑스의 위대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미셸 푸코와 관련한 철학적 이론화에 있어서 일종의 아이러니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셸 푸코의 저작에서 얻을 수 있는 지견(知見)은 어떤 의미에서 철학이 어떻게 현실에서 소외되는지에 대한 해설이다. 푸코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에 입각하여 사회의 발전을 본다. 그래서 그는 모더니티’=‘근대성’, 나아가 그가 보고 있는 역사 전체를 억압적인 전략의 결과로서 사고한다. 그 억압적인 전략은 모두 철학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푸코에 의하면, 철학의 사상, 즉 사상에 대해 사고하는 것은 사회적 현실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타인과의 교류방법을 갈고 닦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역사를 절망적이고 아이러니한 것으로 기술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저항할 수 없다, 언제나 그들이 성공한다, .

  어떤 의미에서 미셸 푸코의 저작은 극히 비관적이다. 반격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이제 우리는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셸 푸코의, 그가 당시 참가한 학생운동의 실패에 대한 리액션이다. 즉 왜 당시 학생운동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지금 나는 당시 학생운동의 실패 후에 에둘러온 1980년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는 네오리버럴리즘이라고 불리는 순수자본주의의 다크시스템(dark system)이 완전히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독일에서 평화적인 혁명이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 평화적인 혁명은 독일의 재통일로 완성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그 결과 소련도 붕괴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준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영화 스타워즈의 타이틀을 빌어 말하면, 그것은 새로운 희망의 때이기도 했다.

  이 새로운 희망은 어떻게 무엇으로 구성되었을까? 이 새로운 희망을 떠오르게 한 것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맥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보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유민주주의가 전세계의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개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새로운 이상의 현실을 펼칠 것이라고. 그 배경의 하나는 특히 중대한 변화가 없어도 역사의 방향성을 보존하게 하는 영원의 평화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글로벌한 세계질서완전히 개방적인는 그와 동시에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사인펠드(Seinfeld)가 가르쳐준 모든 것은 표층에 있다는 것

 

  80년대 후반과 90년대의 여러 지적 풍조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TV프로 하나가 있다. 사인펠드(NBC 1989~1998 방송)라는, 미국인 네 명 중 한 명이 봤다는 국민적 인기를 얻은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는 다양한 아파트에서, 특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제리 사인펠드가 사는 아파트에서 각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러 뉴요커가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완전히 자유롭다. 그들은 사회적 제약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 그들의 생활에는 어떤 억압도 없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들이 경제적인 압력이나 무언가로 고민에 빠지는 일은 결코 없다. 그들은 그저 자유롭다, 마치 극중에 있는 것처럼.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소위 완벽한 실존주의다. 모두가 해방되어서 자기 자신의 셀프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과 잘 지내지 못한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는 방법이나 좀 더 깊은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깊이라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표면적이다. 무엇도 남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인간이고, 그저 그 속에 있을 뿐이다. 이 드라마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처럼, 현실은 a show about nothing=“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 이것은 유명한 대사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

  《사인펠드의 상징적인 에피소드의 한 장면을 소개하겠다.

  등장인물들은 어느 날 TV프로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이 어느 날 TV프로가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획을 큰 방송국에 팔아넘긴다.

  방송국 관계자가 이것이 무엇에 대한 쇼인지를 묻는다. 어떤 쇼를 해보고 싶은지를 주인공들에게 묻는다.

  “이 쇼로 무엇을 할 생각이죠?”

  주인공은 답한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에요.”

  조지 코스탄자라는 등장인물이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었다. 그것은 그 무엇에 관한 것도 아닌 쇼다.

  방송국 관계자는 매우 당황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라는 게 뭐죠?”

  “, 단지 우리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쇼에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거죠. 그저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심각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이것은 단지 우리에 대한 쇼에요. 그 의미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입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현실 그리고 사회적 현실, 과학적 현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라고 알려주는 이론적인 조류다. 아무것도 될 수 없으며, 뭐든 어떤 의미도 없고 어떤 구조도 없으며 어떤 존재도 없고 현실도 진실도 없다.

  이것이 권력과 싸운다는 아이디어 후에 찾아온, 그다음 단계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파괴하면 니힐리즘이 찾아오고, 절대적인 니힐리즘을 선택하면 결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유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마음에 품고 모든 것을 파괴하면 네오리버럴리즘도 제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문화산업 모두를 일소할 수 있으며, 자신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것만 같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 배우들은 자신의 TV프로 제작을 시작한다. 그들은 미디어를 다시 한번 조절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여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쇼다. 여기에 엄청난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완전한 자유라는 희망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파괴하자.”

 

  ‘포스트모던을 이용한 트럼프

 

  안타깝게도 포스트모더니즘은 당시 생각한 만큼 해방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디어 공간의 새로운 관념을 불러일으켰다고는 말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리얼리티 프로의 풍조 가운데 나타나는 창조의 일부다. 그리고 여기에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매우 단순한 질문이 있다. 최근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 리얼리티 프로를 가지고 있었을까?

  도널드 트럼프가 분명하게 답했다. 트럼프는 포스트모던 이론을 정치에 완벽하게 집어넣은 예다. 여기에 우리의 새로운 철학적인 적이 존재한다. 트럼프는 신자유주의의 다음 라운드일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현명하다. 실제로 그는그 자신이 즐겨 강조하는 바정말로 천재다. 그는 포스트모던적인 천재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통찰을 경제적인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초적인 개념은, 앞서 말한 것을 기억하겠지만, 이 모든 것을 추동한 것은 우리가 현실을 볼 수 없고 사회적 현실 따위도 없고 영상 밖의 현실도 없고 다만 하나의 거울만이 또 하나의 거울 옆에 있다는 개념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좀더 확실히 거울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단계를 시작할 때다.

 

  ‘시뮬레이션 속에 산다는 환상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의 회담이 행해졌다. 사람들은 이 회담을 SF영상처럼 볼 것이라고 앞서 지적했다. 그리고 회담 영상을 실제로 보면 확실히 매우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냥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고 묻는다면 바로 현실의 계층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답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포스트진실의 포스트모던 레벨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이 거대한 세계의 포스트진실을 볼 수 있는지 설명해보겠다. 인터넷 시대에는 정말이지 뉴스를 믿지 못하겠다. 많은 가짜뉴스, 혐오 발언, 그리고 현실의 부당한 허위 사진들이 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는 이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완전히 알고 있다. 그는 인터넷 시대의 개념을 통해 만들어진 공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전혀 다른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 그리고 경제적인 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용한다.

  그것이 그가 트위터를 사용하는 이유다. 그가 우리에 대해 소셜미디어의 구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소셜미디어란 완벽한 포스트모던 플랫품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테면 누군가가 비디오 게임 속에서 죽임을 당한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에 불과하니까. 무슨 일로 당신이 인터넷상에서 누군가에 대해 혐오 발언을 했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로 생각되지 않으므로.

  따라서 우리는 이미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혹은 SF영화 속에 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김정은을 보고 사람들이 이것은 SF영화다.’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지적할 수 있는 이유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이 둘은 SF영화의 대본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모두 디지털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속단의 사실을 우리에 대해 이용한다.

 

 

  5. 신실재론

 

  ‘상대주의에서 신실재론으로

 

  여기에 우리에 반응해서 행사되는 포스트모던 이론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무대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무대 위에는 완전히 새로운 생산물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이제 필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혐오나 폭력은 유료가 된다. 우리는 실제의혐오나 폭력을 위해 돈을 지불한다. 호러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트럼프가 취하는 행동은 호러영화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당신은 혐오나 폭력을 보기 위해 돈을 낸다. 혐오나 폭력은 사고파는 물건이 되었다. 그것은 공포와 무지의 정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산다, 결과적으로. 왜냐하면 우리는 그에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바로 여기서 신실재론이 등장한다.

 

  ‘신실재론이 몇몇 이론화와 함께 실제로 시작된 것은 약 10년 전이다. 내가 신실재론이라고 부른 데에는 유명한 제창자 둘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퀑탱 메이야수와 미국의 철학자 폴 보고시안(Paul Boghossian)이다. 같은 해에 그들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와 우리가 어떻게 시대의 개념적 공간을 새롭게 창조할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두 권의 매우 중요한 철학서를 출간했다. 메이야수와 보고시안은 상대주의와 사회구성주의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해보겠다.

  여기서 상대주의의 정의는 모든 의견은 다른 의견과 마찬가지로 좋다.’는 개념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항상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의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의견의 차이가 있다면 통상 우리 중 누군가는 항상 틀림없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내 손가락의 수로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면, ‘누가 제대로 말해주는지를 분명히 하면 된다.

  사물의 사실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상대주의는 사물의 사실 따위는 없다고 논한다. 이때 도덕적 상대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겠다. 많은 사람은 안타깝게도 도덕적 상대주의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덕적 상대주의란 다양한 도덕관이 있다는 관념이다. 일본의 도덕관이 있고 러시아의 도덕관이 있고 서양의 도덕관이 있고 당신이 가르쳐준 도덕관이 있다.

 

  ‘서양’ ‘동양을 넘어서서 보편성을 추구하라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당신은 서양의 도덕관이 종교를 넘어 과학, 계몽, 발전에 기반하여 완벽히 비종교적인 사회를 가져야 한다.’는 개념으로부터 성립되었다고 배웠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각각의 인생과 각각의 권리를 가지기를 바라고 이를 실현하려고 한다.’는 사회적 개인주의와 연결된다. 이 설명에 따르면, 서양의 도덕관은 보편적인 인권을 믿는다.

  그런데 도덕적 상대주의에 의하면 실제로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특정 인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서양의 인간들뿐이기 때문이다. 가령 인권, 예를 들어보면 공격받지 않는 인권, 아파트에 홀로 생활할 수 있는 인권 등이다. 상대주의는 러시아인, 일본인, 혹은 인도인의 사고방식이 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개인주의적이지 않다.’고 믿는다. 요컨대 러시아인은 가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반면 서양 사람들은 가정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으며 어쩌면 돈을 더 중시할 모른다. 그리고 상대주의자는 이러한 도덕관의 선악을 결정짓는 기반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단지 이다지도 다른 도덕관이 존재할 뿐이라고.

  확실히 사람들은 매우 다르며 각기 다른 문화가 있다. 일본인은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서양인은 포크와 나이프로 밥을 먹는다. 그러나 그뿐이다. 단지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다. 포크와 나이프 혹은 젓가락으로 먹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선택일 뿐이며, 기호에 불과하다. 그리고 만약 도덕관이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면, 하우스 오브 카드(넷플릭스 2013~방송)에서 프랭크 언더우드를 연기한 저명한 배우가 말하듯이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정의 따위는 없고 있는 것은 정복뿐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모든 정치적 상황은 각기 다른 도덕관이 있으며 서로 맞부딪힐 뿐이다. 이를테면 서양의 도덕관에 대해 러시아의 도덕관이 그저 맞부딪힐 뿐이다. 따라서 사회적 현실에서진실이 없다면순수한 다툼이 생긴다. 그것이 도널드 트럼프의 세계관이다. 결국 정의는 없고 있는 것은 정복뿐이다. 그것이 그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에서 확고한 신념의 상대주의가 이 상황을 추동한다.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사태를 믿고 있다. 당신은 이슬람 국가들은 예를 들어 코란에 기초한 완전히 다른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기독교 국가들은 성서에 기초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옳은지를 결정하는 방법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입장이 도덕적 상대주의다. ‘신실재론은 이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이를 고문해도 될 이유는 없다

 

  한가지 여기서 유념해야 하는 것은 상대주의가 항상 일반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이 내 손이 다섯 개 있다고 믿고 있고 나는 내 손이 두 개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둘 다 옳다. 내게 손이 두 개 있거나 다섯 개 있거나 둘 중 하나니까.

  설명해보겠다. 두 개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이 두 개 있다고 믿고 있다면 내가 옳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금 내게 두 개보다 많거나 적은 손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단지 다를 뿐이다!

  상대주의는 일반적으로 진실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상대주의가 일반적으로 진실이라고 한다면, 잘 알다시피 그것은 그 자신에 적용된다.

  즉 만약 상대주의가 진실이며 당신이 상대주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단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즉 당신은 상대주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상대주의가 진실이라면 그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알겠는가? 만약 상대주의 자신이 상대주의에 대해 상대적이라면 그것을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따라서 그것은 무작위적이고 자의적인 선택이며,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옳다.

  그렇다면 도덕의 게임을 살펴보자. 다양한 도덕관은 정말로 존재할까? 요리에는 다양한 양상이 있다. 다양한 먹는 방식이 있다. 의문의 여지는 없다. 그런데 다양한 도덕관은 존재할까? 다음의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나는 절대적으로 대다수 인간이 러시아인이든 일본인이든 인도인이든 독일인이든 아이를 고문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아니요!”라고 답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나? “아이를 고문해도 될까요?”

  답은 “NO”! 아이를 고문해도 될 이유는 없다.

  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아이를 고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지 절대적인 공포다. 아이를 고문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도덕관은 없다. 그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것은 도덕관의 결여다.

  그것은 아이를 고문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절대적인 도덕적 사실이 있다는 것을 바로 증명한다. 그런데 만약 하나의 도덕적 사실이 있다고 한다면지금 제시한 대로, 절대적인 도덕적 사실(moral fact)이 존재한다는 것, 도덕적 상대주의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도덕적 사상(事象)에 선택지를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다.

 

  ‘과학도덕의 사이에서

 

  그렇다면 더 파고들어서 이 개념을 일반화해보자.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해 좀더 과격해 보자.

  우리는 이미 절대적인 도덕적 사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를 고문하지 마라. 최악의 부모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한다. 싫은 자가 아니라면, 이웃과도 잘 지낼 것이다. 많은 사실이 있다, 분명한 도덕적 사실이. 지금 제시한 매우 단순한 것들이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이러한 도덕적 사실들이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 사실이란 무엇일까? 이것이 내 대답이다. ‘신실재론에 의한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물음에 대한 전반적인 답이다.

  도덕적 사실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 때에 알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이 경우의 도덕적 의문은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받고 싶어할까?’라는 것이다.

  나는 종종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그것을 내게 해주기를 원치 않는다. 당신이 지금 매우 화가 나서 누군가를 때려눕히고 싶다고 상상해보라. 어쩌면 정당한 이유에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자신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신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와 동시에 상대방이 되는 것을 상상해보라. 당신은 상대방을 때려눕히고 싶을까? 대답은 NO. 상대방은당신이 이 상대방의 입장에 되어 그러한 대우를 받고 싶지 않다는 사실은당신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당신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도덕적 사실의 의미를 이해한다. 그런데 당신이 상대방의 입장에 있는 것만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이 관점에서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도덕적 사실에 의해서 판단한다.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모든 사실을 데스크에 의제로 올리면 당신에게 다름을 제기하지 않는다. 당신이 상황을 완전히 설명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지식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지식과 과학은 도덕관을 형성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지식과 과학을 공격하면, 그에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혹은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권위주의적 인물이 과학을 공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와 같이 기후변동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실제의 지식을 의심하기 위해 과학적 전문가를 공격한다. 이것은 다음의 구조로 정리할 수 있다.

 

  스스로의 아는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포스트모던의 독재자우리 시대의 많은 유감스러운 반민주주의자, 포스트모던의 악한 이용을 꾀하는 반계몽활동가에게는 다음의 계획이 있다.

  그들은 당신을, 당신이 아는 것을 정말로 알지 못한다고 믿게 만든다. 그것은 새로운 레벨의 난감한 계획이다.

  당신은 실제로 무엇인가를 알고 있지만, 정치의 짜임새가 당신에게 현실을 모른다고 믿게 만든다. 그들은 당신에게 두 개의 손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기후변동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시리아의 내전도 기본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그 속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신은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당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요컨대 당신은 당신 스스로 아는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 만약 당신이 아는 능력을 스스로 공격하게 된다면, 그에 따라서 당신은 당신 자신의 도덕관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도덕관은 우리의 아는 능력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따라서 당신은 바로 도덕관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도덕적 잘못을 범할 가능성을 높인다.

 

  ‘위기의 시대에 당신이 알았으면 하는 것

 

  우리는 지금 심각한 위기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 기후변동, 중동의 파멸의 가능성 등등의 위기다. 위기의 시대다. 위기의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관념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 쪽으로 향해가는 것들조차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파괴되고 말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공공의 철학적인 내적 성찰을 해야 할 때다.

  방금 들은 것에 입각해서 당신은 지금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당신에게 이해를 시키고 싶은 철학적 결론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금 당장 진짜 사실을 찾아내기 위해 인류 전체로서 힘을 모아야 한다. 경제적 사실, 우주에 관한 사실, 그리고 도덕적 사실. 만약 우리가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분명한 사실인지를 알 수조차 없다면, 민주주의가 나설 차례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거칠게 요약하면, 내가 명백한 사실의 정치라고 부르는 것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지켜야 할 가치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을 모아서,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점과 점을 연결하여, 현실의 계통적 해석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현실의 계통적 해석에 발 딛어야만, 현실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다.’라는 환상을 뛰어넘는 해석에 기초해야만 비로소 우리 시대의 커다란 의문에 답해나갈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동물,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진실의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의 답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간과한다. 만약 포스트진실의 위기에 직면했다면, 진실을 다시 한번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 진실은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도덕적 사실을 포함해서 사실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보편적이다. 그것들은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다. 우리가 같은 종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 심대한 차이는 없다. 지역적인 문화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그것은 그렇게 심대하지 않다.

  나와 당신은 근본적으로 같다. 현실과 도덕적 사실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자 동물이다. 인간이며 동물이라는 것의 합리성에 관한 이 통찰을 우리 교육 시스템에 편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끊임없이 직면하는 거짓이나 가짜뉴스를 의심하기 시작할 수 있다.

  철학은 이를 도울 수 있다. 왜냐하면 철학의 의무는 임마누엘 칸트가 이미 18세기에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Sapere Aude, 용기를 내어 알고자 하라!

 

 

 

哲学時代との格闘」、『マルクス・ガブリエル 欲望時代哲学する』、201812NHK出版親書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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