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신문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말하다: 현대 지성들의 시선이라는 기획으로 진행되는 코너에서 마르쿠스 가브리엘과 글렌 웨일의 인터뷰 기사를 번역해 둔다. 코로나 팬데믹은 뜻밖의 사태라기보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따름이다. 그래서 코로나는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활발히 논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가브리엘은 도덕 없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인류가 보편적인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웨일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혁을 이야기한다. 글렌 웨일의 논의는 경쾌할 정도로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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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체주의에 정신의 백신을: 마르쿠스 가브리엘 인터뷰

진행자: 다카쿠 준(高久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우리를 새로운 전체주의로 이끌지도 모른다.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코로나 사태의 세계를 그렇게 독해한다. 디지털화가 전체주의와 연결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밝은 미래를 찾아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다카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확대가 일어나기 전에는 AI 기술의 발전이 인간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논의가 유행했습니다.

 

가브리엘: 우리는 최근까지 엄청난 잘못을 믿어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테크놀로지의 진보 그 자체에 의해 세계가 더 좋은 곳으로 바뀐다거나 우리 사회가 해방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새로운 전체주의라고도 부를만한 상황입니다. 디지털 권위주의 체제라고 말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국가가 전체주의적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감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닙니다.

 

다카쿠: 국가가 아니라면, 무엇이 전체주의화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디지털화가 전체주의와 연결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가브리엘: 저는 전체주의의 특징 중 하나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별 상실로 보고 있습니다. 20세기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도 과거에 그랬지만 전체주의화하면 국가가 사적인 영역을 파괴합니다. 사적 영역이란 좀 더 알기 쉽게 말하면 개인의 속마음입니다. 국가는 감시를 통해 그것을 찾아서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현대는 그와 다릅니다. 감시와 통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고 구글이나 트위터 등으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 기업입니다.

우리는 지금 SNS 등을 통해 사적인 정보를 스스로 온라인에 올리고 테크놀로지 기업은 그 정보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를 지배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자발적으로 정보를 기업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이러한 기업을 규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수방관합니다. 바꿔 말하면, 테크놀로지 발전이 도덕적 진보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적으로도 정당화(legitimate)되지 않는 일부 테크놀로지 기업이 사회와 경제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합니다. 게다가 시민 스스로가 그에 대한 자발적인 종속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바로 이러한 상황입니다.

 

디스토피아 소설이 현실로

 

다카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인 감염 확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가브리엘: 몇 가지 짚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미증유의 바이러스 위기로 인해, 감염이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반년 전만 해도 시민들이 상당히 반발했을 정책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감염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앱의 개발과 도입이 그러합니다. 이 자체의 옳고 그름은 일단 접어두면, 그것은 테크놀로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별을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는 기술적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사태에서 경제 전체는 수축하는 경향을 띱니다. 일이나 커뮤니케이션의 온라인화가 진행됨에 따라 테크놀로지 기업은 수익을 올리고 영향력을 확대해갑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제기된 문제이지만, 그러한 상황이 지금 더욱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다카쿠: 감염 억제를 위해 일정 기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구별되지 않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가브리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는 이동의 자유와 내면과 관련된 자유를 제약받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권위주의 체제라는 말을 사용하면, 러시아의 푸틴 체제나 중국의 시진핑 체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확실히 저 자신 또한 이 두 나라와 같은 권위주의 체제를 전체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수차례 언급되었다시피 중국은 기술과 자본주의 발전을 결합한 디지털 감시체제를 만들어왔습니다. 20세기에 쓰인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인 조지 오웰의 1984의 세계가 그대로 실현되는 듯합니다. 물론 조지 오웰이 이 책을 쓸 당시에는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 따위를 염두에 두었을 테지만, 오히려 기술이 발전한 21세기의 오늘날에 이르러 저 세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전체주의는 국가만으로 실현되지 않고 기술 발전의 악한 측면이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카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요.

 

가브리엘: 현실은 확실히 반민주주의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행동 데이터의 집적을 통해 행동 패턴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의식주에 강한 영향을 줍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가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이러한 기술 발전은 우리가 존중해야 할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지정학적인 리스크를 만들어냅니다. 미국의 테크놀로지 기업이 그것을 바라든 바라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비민주적인 힘에 의해 트럼프 정권이라는 정치적 악몽이 생겨난 것이지요. 미국 사회가 존중해 온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도전과 공격인 것입니다.

 

다카쿠: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네요. 다만 기술 발전이 불러온 경제발전은 세계적으로 보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왔습니다. 기술적 발전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사회를 좋게 만들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가브리엘: 저는 무슨 비관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도 지난 200년간 발전해왔습니다. 확실히 역사적으로 대량 학살이나 폭력의 응수도 있었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기술 자체보다 우리는 지금 현대에서의 도덕적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카쿠: 도덕이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을까요?

 

가브리엘: 저는 장기적으로 보면 낙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의료 물자 등을 둘러싸고 국가 간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문제가 보편적이고 국경을 넘은 문제라고 하는, 말하자면 인류 공통의 과제라는 의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각국 정부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정치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식이 생겼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도덕적 의식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문제에 그치지 말고 대재앙을 초래하는 기후변동 등 더 큰 문제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다카쿠: 올가을 <아사히 지구회의 2020>(2020.10.11~15)에서 가브리엘 선생이 문제 삼는 새로운 전체주의의 행방을 논의합니다.

 

가브리엘: 지금 요구되는 것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더 높은 수준에서의 연대와 협력입니다. 그것은 물론 서구만으로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국제질서에 참여하여 매우 인상적인 적응을 했습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그 후의 전쟁에서 비참한 결과를 얻었지만,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 한층 더 독자성을 발전시켰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유럽과 일본이 협력해서 지속 가능하며 윤리적으로 깊이 있는 미래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일본 사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타자의 마음을 읽는 것에 능숙하고, 게다가 이러한 경향을 독자적인 비즈니스에 접목해서 무수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타인과의 강한 정신적 유대는 보편주의적 도덕철학과 접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합의 아이디어는 국경 너머의 보편을 생각하는 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보편주의적 가치에 기반합니다. 국민, 계급, 혹은 세대 등 다양한 분단을 넘어설 수 있는 보편적인 정신의 백신을 만드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의해봅시다.

 

 

新全体主義精神のワクチンを〉 《朝日新聞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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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는 장래를 비추는 시연’: 글렌 웨일(Glen Weyl) 인터뷰

진행자: 에부치 다카시(江渕崇)

 

정치도 경제도 극소수가 지배하는 이 세계는 래디컬한(급진적·근본적) 변혁을 필요로 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소속 정치경제학자 글렌 웨일 씨(35)는 디지털 기술과 시장의 힘을 활용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람들의 손에 되찾아오기 위한 아이디어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팬데믹으로 권력의 집중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에부치: 부와 권력의 집중을 벗어나고자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유로 하여 그 이용권을 경매에 부친다는 참신한 제안을 거듭 제기해왔습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래디컬하게 시장을 디자인한다는 사고 태도는 어디까지 유효할까요?

 

웨일: 코로나 대책에 성공한 곳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세계에서 가장 깊이 실천해온 국가나 지역이었습니다. 그중 한 곳이 대만입니다. 마스크를 나눠주거나 감염자를 추적하는 앱 개발 등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희생자도 경제 타격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책을 이끈 디지털 담당 각료인 오드리 탕(唐鳳) 씨는 제가 창설한 단체인 <래디컬 익스체인지>의 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가형의 디지털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사람들의 에토스(기풍, 습성)입니다. 그것이 시민사회에서 보텀업(bottom-up)으로 만들어진 기술에 대한 신뢰로 이어져 대책에 정통성을 부여했습니다.

 

에부치: 또 다른 성공 사례가 있을까요?

 

웨일: (전자정부를 일찍부터 확립했다고 알려진) 에스토니아입니다. 대만이나 일본과 달리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경험이 없어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사태가 악화일로였습니다. 하지만 대만을 본뜬 대책을 하나하나 공유해서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잘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문제가 아니다

 

에부치: 감염자와 사망자가 세계 최다이고 경제 침체도 심한 미국은 분명히 실패한 사례입니다. 트럼프 정권은 무엇을 근본적으로 잘못한 걸까요?

 

웨일: 저는 트럼프와 그의 정권이 무조건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권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잘못은 관료조직, 굳이 트럼프의 말을 빌리면 딥 스테이트”(그림자 정부; 정부 내 정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관되게 공중을 오도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의사결정을 어지럽혔습니다.

민주당이 자주 칭찬하는 CDC(질병대책센터)에서도 처음에는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검사가 필요한지도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검사와 감염자 추적, 격리 태세를 확충하지 않으면 록다운을 몇 번이나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에부치: 그렇다고 해도 팬데믹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자세는 끔찍합니다.

 

웨일: 물론 트럼프도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정치화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늘 그렇듯 분단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차이를 넘어 서로 정직하게 대화하는 것을 막고 있는 깊은 분단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CDC의 불성실함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 지도자도 공중도 신뢰하지 않고, 급기야 스스로에게 불신을 강요했습니다. 양쪽 다 잘못을 인정해야 비로소 우리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가는 최고치를 경신하고, 고용악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에부치: 선진국에서는 예전부터 저성장(스태그네이션)과 격차확대(inequality)가 동시에 진행되는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당신이 스테그인이퀄러티(stagnequality)’라고 부르는 문제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것이 더욱 노골화되었습니다.

 

웨일: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일찍이 파산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대개는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다고요. 글로벌화한 자본주의에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서구식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특히 젊은 세대의 신뢰는 계속해서 하락해왔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는 지금 형태의 자본주의가 보통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에부치: 미국에서는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한편, 제한된 플레이어의 시장 독점이 더욱더 진행됐습니다.

 

웨일: 세계 공황 이후 고용 위기가 닥치는 와중에도 주가는 계속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그사이 인종이나 지역 분단을 둘러싼 사회 불안이 고조되고 때로 폭동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을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사태는 악화될 뿐입니다.

가장 있을 수 있는 대안은 중국 공산당 같은 기술주의적 권위주의 체제입니다. 서구에 맞는 방식으로는 실리콘밸리식의 알고리즘(컴퓨터 프로그램의 계산 순서)에 의한 지배로 형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이고 다원적인 선택지를 가질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합니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키고 싶다면 말입니다.

 

부족한 전문가들의 상호 이해

 

에부치: 팬데믹의 타격을 완화하고자 미국 정부가 전대미문의 엄청난 규모의 재정지출을 단행했습니다. 실업보험 대폭 확충 등 좌파가 주장해온 정책도 속속 실시했습니다.

 

웨일: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제위기 대처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괄목할 만하고 신속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좌파가 선호하는 것을 포함한 전통적인 정책 수단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도 그 어느 때보다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대대적인 부양책은 팬데믹의 핵심 문제에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검사, 추적, 격리 그리고 마스크 착용. 감염을 막기 위한 공공 공간 재조합. 이러한 대책을 통해 감염병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에부치: 원래 경제대책 그 자체는 감염 방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붕괴하지 않도록 전통적인 수단을 동원하면서 그와 동시에 착실히 방역대책을 진행하는 것이 상식적인 길 아닌가요?

 

웨일: 미국의 경우 경제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심대한 타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한편으로 공중위생 보건 관계자들은 정권이나 재정 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범위의 방역책에 집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전제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감염병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경제자원을 푸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양측 전문가들은 서로 의사소통하고 조정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에부치: 그 점은 나라마다 차이가 큽니다.

 

웨일: 감염병 대책을 착실히 실행한 곳은 대규모 부양책 없이 경제를 회복시키고 많은 생명을 지켰습니다. 실패한 국가는 전염병 대응에 필요한 금액을 훨씬 웃도는 현격한 지출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도 생명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대신 주식시세를 끌어올려 부자들에게 부를 재분배 해버렸습니다.

 

기계가 사람을 무가치하게 만드는가?

 

에부치: 많은 국가에서 가계에 직접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모두에게 일정한 돈을 주는 기본소득(BI)이 극히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웨일: 코로나 사태는 디지털 경제의 미래상을 비추는 시연과 같은 것입니다. 기본소득 도입이 사회에 무엇을 가져오는지를 이번 자극책의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면 어떨까요? 기본소득 등 테크놀로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소리높여 제창하는 미래상은 매우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공재를 더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에부치: 인공지능(AI)이나 자동화의 진전과 기본소득은 강하게 관련되어왔습니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목소리는 코로나 사태로 오히려 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웨일: 정책 수단의 하나로서 지금처럼 이따금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 전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혼란스럽습니다.

 

에부치: 무슨 말인가요?

 

웨일: 우선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논의에 대한 것입니다. 경제와 사회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공헌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방향으로 디지털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무가치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논의는 이를 보강할 뿐입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담론은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처가 아니라 (근거 없는 예언이라도 사람들이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예언이 실현되는) ‘예언의 자기 성취에 빠져 있을 따름입니다.

 

에부치: 사람들이 힘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웨일: ‘완벽한 시장경제라는 판타지에 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기본소득은 독점기업이 사람들을 착취하고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기본소득이 독점기업에 대한 과세에 의존한다면 사람들의 효율성을 더 떨어뜨려 사태는 점점 악화될 것입니다.

 

에부치: 10월로 예정된 <아사히 지구회의 2020>에 온라인으로 등단합니다. 포스트코로나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청중에게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웨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 개별적으로 행동하면 그만이고 통상적인 시장 프로세스에 의해서만 조정된다.지금까지 자본주의는 그것을 전제로 삼아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고도의 자본주의가 기능하려면 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집합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만약 열린 사회와 시장을 계속 원한다면 독점기업이 아닌 민주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합니다.

수십 년 혹은 몇 세기 동안 국경 혹은 선거민이 바뀌지 않는 국민국가의 틀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에는 대단히 경직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서의 무역과 여행의 붕괴를 보십시오. 국민국가에서 민주주의와 국제시장의 유연성을 통합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까운 장래에 우리의 미래를 중앙에서 계획하려는 세력에게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コロナ将来像映試写」〉 《朝日新聞202091.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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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제집이 없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대한민국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며 그 위선을 깨우치는 요즈음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그와 더불어 내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어느 블로그에서 이 책을 마르크스주의와 고현학의 만남으로 소개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현학이 마르크스주의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또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이 책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에서 시도한 도시공간에 대한 계급적 분석은 매우 흥미로웠고 참신했다. 그러나 이 책 어디에서도 고현학은 찾을 수 없었다. 3장에서 고현학을 표면적으로 정의하고 고현학의 창시자인 곤 와지로의 도쿄 채집조사 내용을 소개한 것과 5장에서 저자 자신이 도쿄 거리 곳곳을 스케치하듯 기술한 것을 고현학이라고 한다면 고현학이겠지만, 그렇다면 왜 곤 와지로가 고현학이라는 독자적인 방법론과 이론을 구축하려 했으며 지금까지도 생활학, 현대풍속학, 노상관찰학 등으로 발전해왔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여하간 이 책은 고현학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현대 사회의 계급적 분화양상을 도시사회학의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이다. 20세기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고임금 노동자의 소비능력을 향상시켰고, 이러한 노동자의 향상된 소비능력은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건축업과 부동산산업을 견인했다. 그 결과 도시는 소비능력에 의한 생활방식에 따라 거주지 분화가 일어나고, 계급 구조는 도시공간을 구획한다. 저자가 계급 사회에 천착한 사회학자이기도 해서, “자본주의의 동학과 계급 간 대립이 도시를 만든다”(74)는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론, 소비의 물적 환경(‘건조환경’)으로서 건설업과 부동산에 대한 자본주의적 이해를 논한 데이비드 하비의 도시분화론, 도시사회학자들의 도시 생태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까지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를 계급도시론 안에 잘 녹여내었다.

 

또 하나는 일본 도시, 특히 도쿄의 공간 구성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다. 에도시대에 옛 도쿄를 가로지르는 스미다가와(隅田川)를 경계로 야마노테()와 시타마치(下町) 각각의 공간 구성의 특색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야마노테 지역에는 사무라이들이 주로 살았고, 시타마치에는 조닌(町人 도시에 거주한 상공계급)이 주로 살았으며, 이러한 신분에 따른 도쿄의 거주지 분리는 지금까지도 도쿄의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에도시대에 다이묘(大名)가 고지대에 살았고 조닌은 저지대에 살았던 패턴이 도쿄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미다가와보다는 고도 20m를 기준으로 도쿄 도시공간의 계급적 분리가 서북과 동남으로 분리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양상을 이중도시라고 명명했는데, 과연 야마노테와 시타마치 각각의 생활문화가 그럴 정도로 이질적인지는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이중도시란 내가 알기로 식민지 도시분석에서 나온 용어다. 예를 들어 일제식민지기 옛 서울(경성)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의 조선인과 남쪽의 일본인으로 거주지가 분리되었다. 일본인이 서울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 한성에 일본공사관이 들어서고 남산(진고개) 일대가 일본인 거류지로 지정된 이후다.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에 이미 서울의 일본인 인구수는 서울 전체 인구수의 약 30%에 달했고, 청계천을 경계로 각각의 이질적인 생활문화가 식민지 서울의 경관을 만들어내었다. 명동과 충무로 일대(식민지기에는 혼마치(本町)”라고 불렸다)는 주로 일본인들이 드나드는 상업지역이었으며, 조선인들이 드나드는 상업지역은 종로 일대였다. 언어, 의복, 주거, 음식 등등에서 혼종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식민지기 언어의 혼종화를 잘 보여준다), 식민지 서울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은 각각의 생활세계를 구축했다. 덧붙이면,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때는 1941년으로, 그때 '강남(江南)'은 상도동 일대를 가리켰다. 1930년대 중반 용산과 이태원 일대에 일본회사의 사택이 들어서면서 신중간층(회사원, 상인, 총독부 중간관료 등)의 일본인들이 그곳에 살기 시작했고, 1940년을 전후해서 여의도 건너편의 한강 이남에서 일본인을 위한 단독주택이 하나둘 지어지면서 “코우난(江南)이라는 지역 명칭이 일본인들 사이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신분에 따른 거주지 분리는 20세기에 이르러 계급에 따른 거주지 분리로 이어진다. 20세기 자본주의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각각에서 내적인 분화를 가속화 한다. 노동자 계급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는 자본가 계급 내에서의 분화만큼이나 격차사회를 만들어낸다. 또 가내경영의 구중간계급에서 나아가 조직의 운영이나 사업 기획을 전담하는 신중간계급이 출현”(12)한다. 소위 엘리트계층은 자신들만의 생활환경을 조성하고 그 속에서 자녀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급을 재생산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그들만의 거주 공간을 구획한다. 도쿄에서 다양한 계급적 분화의 공간적 구획은 기존의 공간적 분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부자 동네는 야마노테 쪽에 많고, 가난한 동네는 시타마치 쪽에 많다. 그렇다고 생활세계가 분리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하나는 저자가 도시를 산책하며 기술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우선 번역자들이 세세한 지명을 번역하느라 고생했을 것이라 짐작될 만큼 도쿄의 구석구석이 소개된다. 그리고 번역자들이 독자들을 위해 직접 현지를 탐방하고 촬영해서 사진을 책에 실어 놓았다. 그런데 이 부분이 책의 앞선 논의의 분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이 책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이중도시의 도시 공간적 분리를 드러내기보다는 명소의 흔적을 찾는다거나 지명의 유래를 설명한다거나 거리의 인상을 스케치한다. 역시 학자는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를 잘 아는 분야에 물타기 하려 해서는 안된다. 학자는 연구취미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결론 부분이 황당하다. ‘혼종도시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여러 계급의 주거지를 섞어놓는 것으로 혼종도시를 설명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결론은 마르크르주의적이지도 않고 고현학적이지도 않다. 곤 와지로가 시타마치(혼죠후카가와)의 채집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의 생활풍습이 훨씬 더 다양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생활이 묻은 물건들은 자본주의의 상품보다 다양하다. 이 다양성을 곤 와지로는 과거 혹은 전통에서 찾으려는 인류학이나 민속학과는 달리 현재의 삶 속에서 찾아내고자 했다. 만약에 곤 와지로가 지금 시타마치에서 삶의 다양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곳에 누가 살았으며 그 흔적이 어떤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지가 아니라 지금 사는 사람들의 집과 물건을 하나하나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곤 와지로의 채집조사는 산책자의 스케치로 환원할 수 없다.

 

빼앗긴 것을 되찾아온다는 계급적 투쟁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다양성을 찾아야 하는지, 찾는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요즘 나의 이러한 고민을 풀어갈 단서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하시모토 겐지 저자의 현대 자본주의 계급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주목할만하고, 그런 의미에서 2018년에 출간된 언더클래스: 새로운 하층계급의 출현(アンダークラスたな下層階級出現)을 읽어보고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빈곤율이 38.7%에 이르고 풀타임의 판매직과 서비스직에 종사하면서도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것이 어렵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이 많은, 소위 일본 사회의 언더클래스에 대해 그가 어떻게 분석했는지가 궁금하다.

 

이 책은 오탈자가 조금 있다. 눈에 띄는 오탈자를 정리해 놓았다.

 

100쪽 야마토네 야마노테

121쪽 센가와千川 센카와千川

123쪽 다키 렌타로滝廉太郎 다키 렌타로瀧廉太郎 : 인명의 한자표기는 약자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약자를 쓰지 않는다.

132환상의 마을幻景》 → 《환영의 거리幻景: 덧붙이면, 이 책의 부제가 文学都市[문학의 도시를 거닐다]’이다.

132쪽 각주 43 진나이 히데노부가 도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년도는 1990년이 아니라 1983.

133쪽 모리 오가이森鴎外 모리 오가이森鷗外 : 이 경우에는 정자 표기가 원칙이나 약자 표기가 통용되기도 한다.

163쪽 토요타 데쓰야豊田哲也 토요다 데쓰야豊田哲也 : 아마도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의 창업주의 성이 豊田이기에 인명에 쓰이는 豊田의 독음을 토요타로 잘못 알 수 있다. ‘토요타회사 또한 처음에는 토요다였다가 토요타로 바꾼 것이다.

180쪽 오나오치大縄地 오나와치大縄地

181쪽 이쿠라카타마치飯倉片町 이구라카타마치飯倉片町 : “이이구라(飯倉)”라는 지명은 관동지방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바칠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였다는 것에서 유래하는데, 점차 발음의 편의상 이이구라보다는 이이쿠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이구라카타마치(飯倉片町)는 옛 지명의 발음 그대로 통용된다.

184쪽 지도 미타오마야초 미타오야마초

189쪽 히오로 히로오

190쪽 구와하라자카桑原坂 구와하라사카桑原坂

200, 201, 203쪽 도미자카富阪 도미사카富阪

203쪽 세쓰쇼노미야摂政宮 셋쇼노미야摂政宮

204쪽 마쓰하라松平 마쓰다이라松平

206쪽 하쿠산고덴초白山御殿町 하쿠산고텐마치白山御殿町

히카와시타초氷川下町 히카와시타마치氷川下町

207쪽 고마고메니시카타초駒込西片町 고마고메니시카타마치駒込西片町

210쪽 이쿠토쿠엔신지育徳園心字池 이쿠토쿠엔신지이케育徳園心字池

213쪽 각주 19 우치다 핫켄의 출신은 후쿠오카가 아니라 오카야마.

214쪽 네즈초根津町 네즈마치根津町

215쪽 게이힌도호쿠선 게이힌토호쿠선 : 전철이나 기차의 노선명을 고유명사로 보고 현지의 발음대로 표기한다면 ()’까지도 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신간선이라고 하든지 신칸센이라고 하든지. “신칸선이 적절한 표기인지는 모르겠다. 이와 마찬가지로 게이힌토호쿠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16쪽 다바다田端 다바타田端

221쪽 가타구치 야스키치片口安吉 가타구치 야스요시片口安吉 : 보통 인명에서 安吉야스요시로 발음된다.

222쪽 지은이 주 이케노하다池之端 이케노하타池之端

226쪽 신 가시가와 신가시가와 : 지명이므로 붙여서 쓴다. 신주쿠新宿에서 주쿠를 띄어 쓰지 않듯이.

243쪽 슈큐바宿場 슈쿠바宿場

252쪽 하야시 후미코林芙美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 탈자

263쪽 각주 45 오카사카 마리 아카사카 마리

바이브레이타バイブレーター》 → 《바이브레이타ヴァイブレータ

284-285쪽 우지코초카이氏子町会 우지코마치회氏子町会

 

 

 

하시모토 겐지, 계급사회: 격차가 거리를 침식한다(김영진, 정예지 번역), 킹콩북, 2019.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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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시대와 공명해야 그 의의를 갖는다. 이 글은 오늘날 고현학이 다시금 환기되는 것은 21세기 인간-비인간-사물 세계와 공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해준다.

이 글은 다수성(multiplicity) 혹은 다중심성(multi-centrism)은 주변성에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성의 생활적(신체적) 감각에 의해 지지되며 그것과 병렬적으로 놓인다는 것을 주장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고현학 연구자의 과제로 남는다.

 


 

 

다양성으로부터의 비판 정신: 곤 와지로의 도시 관찰에 관한 고찰

 

 

오노데라 켄타(小野寺研太)

 

 

서론

 

10여 년 전 장마철에 가마쿠라(鎌倉)의 수국[紫陽花]를 보러 갔을 때, 처음으로 쿠사리토이(鎖樋)”라는 것을 알았다. “쿠사리토이란 지붕의 배수홈통을 따라 흐른 빗물을 지면에 흘러내리게 하는 빗물통의 일종이다. 빗물은 꽃잎이나 바퀴 등의 다양한 모티브를 연상시키는 쇠사슬 모양의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내리는 비와는 다른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혹은 무작위적으로 지면에 떨어진다. 태어나서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는 이런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선했다.

쿠사리토이를 알게 된 것은 민가를 개축한 과자가게[甘味処]의 현관이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쿠사리토이가 있는 몇몇 집을 찾을 수 있다. 곤 와지로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면, 집집마다 앞에 서서 지붕에 매달린 쿠사리토이를 상세하게 스케치했을까? 그라면 채집의 시작은 쿠사리토이가 아니라 보통의 빗물통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빗물통만 채집한 기록을 남겼다. ‘멋진 빗물통따위가 아니라 실용적이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물건에 대해 그 사소한 차이나 틈, 결손까지도 흘려버리지 않고 모았다. 그렇게 해서 당연한형용이 의미를 이룰 만큼의 다양한 현실을 기록했다. 이것이 곤 와지로의 고현학이 가진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곤 와지로의 고현학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사상적(思想的) 의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문제를 다루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것이 그렇게 명시적으로 쓰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곤 와지로는 단편 채집은 결론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를 분명히 드러내고 발전의 레일을 깔기 위한 침목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그것으로도 충분한다고 말한다. 곤 와지로 본인의 글에서 고현학의 의의를 미루어 생각해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생활의 단편 단편을 중시한다는 곤 와지로의 자세에 주목하고 그 자세를 공유하는 논고의 취지 하에서 곤 와지로의 사상적 측면을 간접적으로 추출하고자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생활을 학문의 대상으로 하는 것의 가능성을 고찰하고 싶기 때문이다. 곤 와지로의 고현학은 학문으로서는 발육 불량의 상태에 멈췄다고 말해도 무방하다라고들 말한다. 그 의미에서 고현학이란 미완의 학문’, 이른바 하나의 가능성이다. 어떤 가능성일까? 나는 고현학이 생활에 대한 비판 정신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논의를 위해 필요한 논점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는 고현학의 방법적 특징의 검토, 둘째는 1925년에 실시된 대조적인 도시풍속관찰의 비교, 셋째는 도시(에도/도쿄)의 주변부에 주목한 이치무라 히로마사(巿村弘正, 1945~ 사상사)의 논고와의 사상적인 관계성이다.

 

1. 고현학의 방법적 특징

 

곤 와지로 자신이 고현학의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는 고현학이란 무엇인가(1928)고현학 총론(1931) 등의 글에서 찾아낼 수 있다. 정리하면 다음의 세 지점을 들 수 있다.

첫째로 곤 와지로는 고현학의 객관성을 중시했다. 고현학은 그 대상의 신변잡기성으로 인해 학문이라기보다는 저널리즘에 가까우며 독특한 취향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그 자신 또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과 대비되는 그 이름이 시사하듯이, 고고학이 고대의 유물을 관찰하듯이 고현학은 객관적으로 현대인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세간에 대한 선망도 동정도 이른바 보통의 형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며, “동물학자나 식물학자가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와, 우리가 우리의 대상인 문화인을 향해있는 것과는 차이가 없다고 곤 와지로는 말한다.

둘째로 관찰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현학은 물질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가령 관찰자가 달라져도 공통으로 관찰 가능한 생활의 표층적 측면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걷는 모양이나 거리의 사람들, 일하는 모습, 습관 등의 사람의 행동’, 주거에 관한 것, 의복에 관한 것이다. 고현학은 그러한 대상물을 관찰하거나 스케치하면서 현대생활의 물질적인 표현을 채집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곤 와지로는 생산된 재화를 단순히 가치(교환가치) 대상물로 취급하는상품학과 고현학을 비교하면서 고현학은 재화를 사용대상물로서 다루며 그 물건의 사용가치에 주목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고현학은 원칙적으로 사물이 사용되는 장소에서 조사하고, 그렇게 해서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며그에 따라 재화 자체에 포함된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셋째로 그렇게 채집된 결과를 고현학에서는 통계로 표현하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통계 결과를 비교해서 표층적인 관찰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상(事象)의 모습을 부각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도쿄ㆍ긴자에서는 여성의 쪽진머리 양식이 일본머리 3, 서양머리 4’인 것에 반해 오사카ㆍ신사이바이(心斎橋)에서는 비율이 반대가 된다. 이 결과는 도쿄에 사는 아녀자들은 그 숫자가 보여주는 만큼 전통적인 생활과 떨어져 있다고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는 가설로 이어진다. 혹은 와세다 대학 주변에 최근 수년간 찻집이 1.5배 가까이 증가한 현상으로부터 도쿄의 다른 장소는 어떨까, 지방 도시는 어떨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왜 증가할까등등의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고현학이 모으는 관찰은 아직 단편적이고 계속해서 데이터의 충실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곤 와지로 또한 자각했다. 그러나 경험 가능한 관찰 기록의 통계를 근거로 해서 그로부터 숨겨진 사상(事象)의 측면을 밝히려는 방법적 태도는 분명 과학적이다.

이처럼 곤 와지로가 고현학의 학문적 성격을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일종의 과학으로 위치 지은 배경에는 연관 학문, 특히 민속학이나 인류학과의 긴장 관계가 놓여 있다. 잘 알려진 바, 곤 와지로는 야나기타 구니오로부터 사사받았고 민속학적 연구에서 학문 활동을 시작했다.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도시에까지 관심사가 확대되었다. 직접 현장에 가서 생활의 실상을 파악해간다는 점에서 민속학과 고현학은 중첩된다. 즉 관찰대상인 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민속학(혹은 인류학)과 고현학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은 고현학의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불가결한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고현학과 민속학의 학문적 차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생활 관찰에 의해 추출하고자 하는 시대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곤 와지로는 사회의 역사적 도정을 미신적인 생활상태, 바꿔 말하면 관습적[]인 생활상태로부터 지식적인 생활상태, 바꿔 말하면 과학에 기초한 생활상태로 점차 이행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 도정을 세 단계로 나누고, 한쪽 극을 가상의 원시사회에서의 미신 100%에서 지식적 요소는 제로”(이것을 단계 로 가정한다)인 것으로 하고, 또 한쪽 극을 가상의 성장사회에서의 지식 100%에서 미신적 요소는 제로”(이것을 단계 로 가정한다)인 것으로 하며, 그 사이의 사회()전자와 후자의 혼합시대, 한쪽은 점차 점차 줄어들고 다른 한쪽은 점차 늘어나는 시대로 나아가는것으로 가정한다. 곤 와지로에 의하면, 현대는 의 시대이며, 고현학은 이 혼합시대의 특징을 추출하는 학문이다. 이에 반해 민속학이나 인류학은 이전의 시대(곤 와지로의 말을 빌리면 봉건시대와 원시시대)를 대상으로 한다.

곤 와지로의 말을 빌면, 민속학을 지탱하는 것은 사라져가는 사상(事象)을 현재 속에 남기고자 하는 정열이다. 민속학은 이미 문명화된 국가 안에 남겨져 있는 과거의(봉건시대의) 평민문화를 탐구하기 위해 봉건시대적 색채가 상당 부분 잔존하고 있는 시골에서 자료 채집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산간지 혹은 섬에 그 시선을 둔다”. 곤 와지로는 민속학자를 가리켜 현존 사상(事象)을 매체로 해서 봉건사회의 생활을 연구하는 자라고 표현한다.

이에 반해 고현학이 주시하는 것은 미신과 지식 혹은 습관과 과학이 교차하는 시대의 존재 양식, 그러한 현대의 사상(事象) 전반이다. 민속학이 관찰대상의 옛 그대로의 모습을 연구한다고 한다면, 고현학은 대상의 변해가는 모습을 파악하고자 한다. 왜 고현학은 대도시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는가에 대해 곤 와지로는 고현학 총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곳[대도시]은 일반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른바 문화의 중심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인식뿐만 아니라 그곳의 정경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로서 주민의 계급 격차, 직업의 다양한 종류, 물자의 종류 및 양의 풍부함 등등 풍속상의 당연한 착종 상태를 대상으로 한다는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긴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 핵심의 결과로서 민속학이 촌락을 중심으로 하고 고현학이 도시를 중심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양자의 차이는 동시대의 농촌을 선택하거나 도시를 선택한다는 단순한 영역선택의 차이로 환원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함의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관동대지진 이후 부흥하는 도쿄의 모습을 다룬다는 관심사로부터 시작한 그의 연구 서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곤 와지로의 고현학은 사회의 동태성 파악을 목표로 하며 그 결과로서 당시 도쿄의 다양함을 기술하게 된 것이다.

 

2. 1925년의 도시관찰기록

 

그렇다면 고현학이 1920년대 도쿄를 어떻게 다루었을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료로 삼은 것은 1925년 잡지 부인공론에 발표한 도쿄 긴자 거리 풍속기록(이하 긴자 기록)혼죠후카가와 빈민굴 부근 풍속채집(이하 혼죠후카가와 기록)이라는 두 기록물이다.

긴자 기록19255월에 나흘간 행해진 노상관찰의 기록물이다. “쿄바시(京橋)에서 신바시(新橋)까지의 도보를 대상으로 하며” “조사구간을 정해진 속도로 걸으며, 전방에서 걸어오는 사람만을 조사한다는 상세한 조사규정을 설정하고 부인공론편집부와 친구들을 조사원으로 동원해서 만든 매우 두툼한 분량의 기록물이다. 시간대에 따른 인파의 동태나 신분, 성별, 직업구성의 구별을 시작으로 긴자를 걷는 사람들의 풍속(주로 의복)을 문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망라해서 채집하고 있다. 남자의 경우 일본의 전통복장과 양장의 비율, 옷의 색깔, 양복의 디테일(코트나 깃, 넥타이, 시계줄, 장갑, 구두의 색깔과 모양), 전통복장의 디테일(기모노의 무늬, 신발의 종류), 기타(수염, 안경, 모자) 등에 대한 각각의 관측된 실수(實數)를 보여준다. 여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통복장에서는 기모노나 하오리(羽織)”의 옷감과 무늬, 깃이 맞물리는 방식, 허리띠와 버클, 신발을 다루고, 양장에서는 모자의 종류와 소매 길이, 양말과 구두에 대해 기록하고, 나아가 머리 묶는 모양과 머리핀, 화장, 안경, 그 외 각종 소지품을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학생이나 노동자의 복장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한편 혼죠후카가와 기록은 같은 해 10월 일주일간 행해진 조사기록물이다. 조사지역은 현재 스미다구(黒田区)와 고토구(江東区)에 걸쳐 있는 구간(긴시초(錦糸町)~스미요시(住吉))인데, 긴자 기록과 비교하면 규모가 다분히 축소되어서 조사된 사람 수는 3명에 불과하다. 주요 통계기록 대상은 긴자 기록과 마찬가지로 복장이며, 통행인의 기모노나 신발의 종류, 여성의 머리 모양 혹은 앞치마의 유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규모적으로 망라하는 긴자 기록과 비교하면 혼죠후카가와 기록이 다루는 양과 종류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곤 와지로 또한 이 점에 대해 이러한 채집에서는 [] 거리를 걷는 사람의 풍속 내지는 복장의 각 부분을 통계 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몇몇을 다루는 정도로 마무리지었다고 인정한다. 긴자에서의 조사방식을 혼죠후카가와에서는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왜 긴자에서는 할 수 있었던 방식이 혼죠후카가와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우선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긴자와 혼죠후카가와는 생활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곤 와지로는 모든 통행인 중에 슈트를 입은 사람(‘신사’)의 수를 지표로 삼고 도내에서의 풍속 권역의 차이를 강조한다. 시부자와와 긴자를 중심으로 하는 풍속 권역에서는 신사의 수가 최다를 이루는 것에 비해 혼죠후카가와에서는 그것이 최저를 이룬다. 곤 와지로는 혼죠후카가와는 도쿄의 중심부 및 야마노테 사람들에게는 다른 풍속의 나라이며, “현대문화인 풍속의 나라는 아니고” “실로 현대 영세민 풍속의 나라라고 서술한다.

이것이 긴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혼죠후카가와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유일까? 과학적이라고 한다면 대상이 바뀌어도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곤 와지로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풍속 내지는 복장의 각 부분의 통계가 허사라고 생각한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면, 혼죠후카가와 쪽이야말로 긴자 이상으로 심한 물질적인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곤 와지로의 다음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혼죠후카가와의 채집결과에서는 여유 있는 도시에서 볼 수 있으리라 예상되는 어떤 유형도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은 단지 편의를 위해 값싸고 또 실제적인 것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기 때문에, 실제로 세세한 변화가 너무 많지만 대략의 통계상으로는 확실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연구 성과물의 질적인 혹은 양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혼죠후카가와 기록보다도 긴자 기록이 충실한 것은 분명하다. 긴자 기록에 수록된 방대한 통계와 스케치의 면면을 살펴보면, 긴자라는 일본 유수의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양하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은 혼죠후카가와 같은 장소야말로 사물의 사용이라는 점에서 긴자보다도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기록상으로 빈약한 혼죠후카가와 기록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꿔 말하면 긴자를 걷는 사람들은 다양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유형화가 가능한 만큼의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통계적인 기록이 가능했다.) 그에 반해 혼죠후카가와의 사람들은 그러한 유형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각각의 생활에 밀착된 사물의 사용에 둘러싸여 있다. 긴자를 걷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은 다양한, 그러면서도 실은 제공된 선택지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품을 몸에 두르고 있다. 혼죠후카가와의 경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복장에는 목재, 진흙, , 흙탕물에 친숙한 것의 필연적인 형태”, “각종 작업에 잘 적응되어 있는, 전통복장의 개념 차별도 없고 일꾼의 복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다양한 형태”, 이른바 각각의 생활 환경에 적응된 무수한 사용형태가 있다. 게다가 그것들은 어딘가가 헤지거나 흐트러지거나 파손되는 등 여기저기 결손과 파괴를 동반하고 있다. 여기서 사물은 상품이상의 다양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이렇게 읽어 들이면 혼죠후카가와 기록이 긴자의 그것과 비교해서 실패로 끝난 것은 결과적으로 혼죠후카가와라는 빈곤 지역이 만들어낸 생활의 다양성을 나타낸 것이다.

즉 진재로부터 부흥해가는 도쿄를 관찰한 두 기록물의 차이는 그 내부에 내포된 압도적인 현격을 시사한다. 혼죠후카가와와 비교하면 긴자를 걷는 사람들은 미적지근한 물속 금붕어와 같은 것이라고 곤 와지로는 말한다.

 

나는 여기서 현대문화인 모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영세민 풍속 권역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의 표준에서 경솔하게 판단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요. 메트로와 일본 간의 차이 이상으로 다릅니다. 계획하기 전에, 동정하기 전에, 얽매이지 않는 연구가 더더욱 필요하다고, 여기서 잠깐 선언해두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채집한 뒤에는 어떤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까? 생활의 다양성에 주목한다는 것은 사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고현학의 정신은 무엇일까?

 

3. ‘도시의 주변의 정신

 

곤 와지로는 이미 고현학의 존재 방식을 언급했지만,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변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이상, 즉 고현학의 정신에 접근하기 위한 힌트를 다른 인물의 저작에서 찾아보겠다. 그 저작이란 이치무라 히로마사(巿村弘正)명명(命名)’의 정신사[づけ精神史](1987)이다.

반세기 정도 발표 시기가 차이나는 곤 와지로와 이치무라 히로마사의 저작 사이에는 물론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러나 사물에의 조사(弔辭)[への弔辞]라는 제목의 논고에서 다음의 문단은 곤 와지로가 관찰한 혼죠후카가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예를 들어 폐물(廢物)’, 즉 상품 세계의 폐잔물(廢殘物)이나 탈락물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바라크(baraque 가건물)가 매매주택에는 없는 재질감과 존재감을 역설적으로 획득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삶의 질펀한 경험은 매끈한 쾌적함과 반비례한다. 이 사실은 현재의 가능한 경험이 실패나 일탈을 하나의 핵으로서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과 동시에 상품 세계로부터의 소외물과의 접촉 교섭이 우리 삶의 소외 형태를 인식시키며, 게다가 잠시 잠깐 그것을 넘어서려 한다는 것 또한 드러낸다.

 

아날로지컬하게 생각하면, 이치무라가 반비례한다고 서술한 매끈한 쾌적함삶의 질펀한 경험은 곤 와지로가 조사를 행한 긴자와 혼죠후카가와의 대비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한 상품 세계로부터의 소외물과의 접촉 교섭이 우리 삶의 소외 형태를 넘어서고자하는 것이라면, 우선 소외 자체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중요한 사상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치무라는 그러한 인식을 위한 입장으로서 주변을 중시한다. 후지타 쇼조(藤田省三 19272003)정신사적 고찰(1982)에서도 극히 인상적으로 언급한 도시의 주변이라는 논고를 살펴보자. 그 논고에서 이치무라는 도쿠가와 체제에서 메이지 국가로 시대가 이행하는 와중에 에도=도쿄의 외곽, ‘주변에 위치하게 된 하층사회를 바라보는 몇몇 시선을 세밀하게 교차시킨다.

예를 들어 테라카도 세이켄(寺門静軒 1796~1868, 에도시대의 유학자)이 그린 뒷골목 셋집[裏店借]’, 나가야(長屋)”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에는 확실히 빈곤의 색채가 농후한 한편으로 그곳은 기존의 가치 질서가 전도된 공간이라고 이치무라는 말한다. 안마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고, 아녀자들은 우물가에서 술을 마시며 세도가나 부잣집 사람들을 깎아내린다. 집세도 내기 힘든 한량들은 자신의 뜻을 적은 문장을 읽어가면서 주인집을 질리게 만든다. 이러한 난잡하고 떠들썩한 공간에서는 막부의 정부도 겐교(検校 사찰을 감독하는 직책)나 나누시(名主 에도시대 막부 관할 지역의 이장)의 지위도 유학자의 권위주의도 모두 웃음거리일 뿐이다”.

한편 곤궁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연장선상에 민중봉기나 폭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의 악역(悪逆)’으로만 도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일면적이라고 이치무라는 말한다.

 

곤궁인은 결코 봉기주의의 담당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 속에서만 혁신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세이켄이 본 골목길을 지나가야 한다. “유생, , 기술자, 상인이 어수선하게 뒤섞여서 세 들어 사는[儒釈工商, 紛雑賃居]” 뒷골목 셋집은 도쿠가와의 계층질서에도 곤궁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교제가 가능한 장으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 거기에는 막번 질서가 요청하는 세계상과는 다른, 허실을 뒤섞어놓은 중층적인 구성 공간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악역(悪逆)’이었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의 성립과 더불어 에도에서 도쿄로의 변화는 사회 전체를 일종의 상승운동으로 이끌었다. 이치무라는 그러한 상승운동으로부터 거리를 둔 자들의 사고로부터, 세이켄이 묘사한 뒷골목 셋집의 골목길을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과열하는 정치 지향으로부터 자각적으로 거리를 둔 나루시마 류호쿠(成島柳北 1837~1884, 에도시대 말기의 유학자 및 문학자)소우시(壮士)”라 불리는 행동파 청년들의 모습을 이념형으로 묘사함으로써 상승 지향에 휩쓸리는 현황을 비판한 나카에 쵸민(中江兆民 1847~1901, 일본의 사상가 및 저널리스트)의 저작과 상통한다.

나아가 시대를 거슬러 내려오면 이번에는 저널리즘과 사회개혁가들이 도시의 주변부로 향하는 시선과 만난다. 메이지 20년대 이후 빈민굴의 존재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몇몇 채방 기사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치무라에 의하면 그것은 탐험기였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불리는, 이러한 문제 관심의 양상은 이른바 문제로서의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색출력을 요청하기에는 미흡했다”. 그러한 경향은 일본의 하층사회(1899)을 쓴 요코야마 겐노스케(横山源之助 1871~1915, 저널리스트) 역시 대체로 마찬가지라고 이치무라는 평가한다.

 

전통적인 주변 존재자들의 대부분이 모이는 키친야도(木賃宿)”는 그러나 요코야마의 하층사회론 속에서 어떤 변혁성을 갖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은 실정에 압도되어 오로지 동정을 구하고 여인숙 개조론을 주창하는 방향으로 나갈 뿐이었다. [] 거기에는 낙오자라는 열위성(劣位性)이 존재하는데,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패하면서도 개척해가는 세계는 완전히 상상 밖 세계였다. [] 그것은 문명사회에 어울리는 박애의 단조로운 색채에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동정과 박애에서 시작된 주변부에의 대응은 국가에 의한 사회정책이 짊어지게 되었고, 하층사회는 격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과 병렬적으로 메이지 사회에 범람한 것이 안전확실하게 입신출세를 수행하기 위한 몇몇 처세술이었다. 여기서는 현실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주어진 현실의 조건을 어떻게 잘 이용해서 편승할 것인가가 과제이며 사회공간은 통제되고 균질화된다. 도시의 주변부가 에도의 뒷골목 셋집에 존재하는 난잡하고 고유한 공간을 외부(중심)로부터의 개입을 통해 잃어가는 과정과 사람들의 사고 양식이 획일적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병렬에 놓인다.

이 논고에서 이치무라가 누차 강조한 것은 실제 역사에서는 점차 사라지는 가능성으로서의 주변성이 열어가는 사고의 존재 방식이다.

 

주변부는 오직 성공을 목표로 해서 중심부로 향해가는 장도 아니며, 애모(愛慕)’의 땅으로 탈락하는 장도 아니다. 주변부는 중심과의 거리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는 저항감각과, 그 감각이 지지하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위치로서 생각해야 한다. 그 위치가 결실을 맺게 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주변성은 그러한 정신 태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위치한다.

 

여기서 이치무라가 말하는 주변성은 구체적인 무엇이라기보다는 균질화되고 통제된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필요한 사고의 촉매로 파악된다. 그것이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기에, ‘도시의 주변자체가 에도부터 도쿄로 변모하는 도중에 사라진다 해도, ‘주변성은 사고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치무라가 사물에의 조사(弔辭)[への弔辞], 즉 사물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경험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려 한다는 정신 태도는 주변성으로부터의 사고 방식이 보여주듯이 미래지향의 합리주의도 아닐뿐더러 낭만주의도 아니다.

 

결론생활에의 비판 정신

 

곤 와지로의 고현학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혼죠후카가와 기록에서 곤 와지로가 만난 생활의 다양성, 즉 긴자의 미적지근한상품 세계를 능가하기 때문에 관찰과 채집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혼죠후카가와의 카오틱한 생활세계는 이치무라가 중시한 주변성과 겹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겹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본래 혼죠후카가와 기록은 생활세계의 다양함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간신히 채집한 기록도 테라카도 세이켄이 묘사한 떠들썩함이나 난잡함을 동반한 저항감각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혼죠후카가와 기록이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천착이 결과적으로 유형화상식에 대한 위화감과 연결될 수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긴자 조사에서와 같은 방식과 발상으로는 혼죠후카가와의 현실을 다룰 수 없었다. 곤 와지로가 영세민 풍속 권역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의 표준에서 경솔하게 판단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쓴 것은 건축학자로서 그가 다룬 민가 연구의 성과와도 호응하면서 유형화나 일반화를 거절하는, 생활세계의 다양성과 중층성의 의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후년, 가정학 비판을 염두에 둔 생활학을 제창한 곤 와지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멋대로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생활학의 초심자와 숙련자 간의 차이는 현실 생활을 운영하는 소비행위 또는 소비물건으로서 사교(社交), 의식주 등에 대한 분석적인 사고 능력의 유무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생활학 초심자는 사교, 의식주 등의 작금의 형태를 결국 긍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듯한 느낌이다. 숙련자라고 한다면 그것들의 작금의 형태, 즉 오늘날의 관습으로 간주되는 것들에 의구심을 가지고 생활 형태, 즉 양식 자체를 연구하려는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곤 와지로가 지적하듯이, 사람들의 일상성이나 생활에 대한 천착은 상식을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것을 의심하고 우리의 인식을 흔들어보는 그 안목에 있다. 때로는 너무나 사소한 물건의 사용에까지 인식의 망을 확장함으로써, 우리는 거기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삶의 다양성을 접촉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접촉한 구체적인 다양성을 어떻게 사고로 살려내는가이다.

이치무라의 주변성에 관한 인식을 참조한다면, 상세한 생활의 기록으로부터 얻어지는 다양성 인식의 의의는 결국 비판에 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인간들에게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식이나 유형화의 경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의 다양함에 구체적으로 접촉하면서 상상력의 폭을 넓혀야 한다. 고현학이라는 미완의 학문은 그러한 비판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출처 표기의 원주 생략

 

 

오노데라 켄타 일본사회사상사

 

「「多様性からの批判精神今和次郎都市観察する考察」 『現代思想』』 47(9): 166-175, 201971.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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