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이라는 사고 그 자체에 대하여

 

 

요시카와 히로미츠(吉川浩満, 문필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나 관심을 갖는 질문들이다. 그만큼 이 토픽—생물종으로서의 인류의 역사—은 바람직하지 않은 여러 도그마(편견이나 선입견)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 최근 인류학, 고고학, 집단유전학, 진화생물학 등에서 이뤄진 몇몇 획기적인 발견은 이 도그마를 돌파할 힘을 갖는 것 같다.

 

본고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둘러싼 두 개의 도그마를 다루고, 그것이 최신연구를 통해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그 현황에 대해 간단하게 검토하겠다.

 

덧붙이면 현재 인류연구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도그마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TV프로그램, SNS, 각종 광고, 블로그 등을 통해 원치 않아도 그 도그마를 접하지 않을 수 없다. 본고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류연구를 일부 포함하는 우리 사회 전체에 침투하고 있는 그러한 통념이다.

 

 

첫째, 인류는 기원을 가져야 한다는 특권성의 도그마다. 간단히 말해 인류는 기원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왜 기원이라는 말이 즐겨 사용되는 것일까?

 

생명의 탄생 이래 생물진화는 언제나 이미 “중간부터 스타트”(Daniel Clement Dennett)하고 있다. 인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경우, 기원이라는 말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처럼 영어의 origin에 담긴 유래ㆍ출자(出自)라는 함의를 살려낸 진화적 용법보다는 창세기류의 일회적ㆍ특권적인 시점을 말하는 서사적 용법에 더 힘이 실리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원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특권적인 역사적 서사, 즉 신화에 버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란 “세계의 처음 시대에 일어난 일회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는 서사”이다. 그에 따라 신화는 “존재하는 것을 단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이유를 기초 짓는” 것이 된다.

 

이 의미에서 기원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신화적인 개념이다. 만약 ‘인류’가 침팬지와 공통된 선조에서 분기한 것이 문제라면, ‘분기’ 혹은 ‘(종)분화’로 말하는 것이 정확하며, 또 오해도 적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분기나 분화에 그 역할을 맡길 수는 없다. 분기나 분화의 개념은 “처음 시대에 일어난 일회적인 사건”으로서 그 특권성을 결정적으로 결여하기 때문이다. 서사적인 호소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으로는 분기나 분화에 대해 서술한 문헌 혹은 기록이 기원신화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당도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서사적인 호소력에 설득당한 만큼 기원신화를 믿고 있다.

 

 

둘째, 인류의 진화는 이미 완료했다는 동일성의 도그마다. 이에 대해서도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거의 인류든 현대의 인류든 미래의 인류든 모두 각각의 완성품인 것처럼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통상의 생물진화의 스케일에 비해 개별의 인간의 생애주기는 압도적으로 짧다는, 어느 정도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언제나 이미 진행 중인 인류 진화에 대한 관심은 ‘원시인’이나 ‘미래인’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다. 실상 사람들은 진화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두 번째 도그마는 첫 번째 도그마와 연관된다. “처음 시대에 일어난 일회적인 사건”인 기원의 개념은 인류가 그 동일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기원 신화가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당대의 인류가 변화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바뀌어버리면 신화는 서사적인 호소력을 잃기 때문이다.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존재로 자주 이야기되는 기업체와 유비를 시도해보자. 통상 기업의 서사에 ‘기원’이 거론되는 아니다. 기껏해야 ‘탄생’이다. 왜일까? 그것은 대부분의 기업이 신화적 존재로서 갖춰야 할 충분한 특권성과 동일성을 보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기업은 범속하기 마련이다. 만약 기업이 ‘기원’과 함께 말해질 수 있으려면, 그것은 GM, 애플사, 구글 등과 같이 특권성과 동일성을 그 나름의 제국적 기업으로서 갖춘 경우에 한할 것이다. 이때 인류는 거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주에 더 가깝다.

 

그 정도로 인류의 역사는 특권성과 동일성의 도그마에 의존하는 기원신화를 필요로 한다.

 

롤랑 바르트는 『현대사회의 신화』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신화란 역사가 자연으로 변환된 것이라고 논했다. 신화는 역사를 소재로 사용하면서 그 구체성을 개발하여 일정불변의 자연의 섭리로 변형시킨다. 요컨대 오늘날의 신화란 자연스러움을 갖춰가는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그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라는 토픽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임과 동시에 현대의 신화를 구성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의 언어활동이나 사회현상에 흥미를 가진 이들에게 전혀 무관한 토픽이 아니다. 그 신화작용을 독해하고 개발시킨 구체적인 역사를 복원해야 하는 임무가 제기된다.

 

다행히도 현대의 인류연구는 그 재료로 적격이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인류의 기원신화를 일정정도 탈신화화하는 지식체계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의 선조가 침팬지와 공통된 선조로부터 분기한 것은 약 700만 년 전의 일로 추정되고 있다. 분기직후의 시점에서는 도저히 우리의 일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들은 언제 우리의 동류가 되었을까?

 

최근 연구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상식인데, 인류는 일거에 인류가 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인류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성질들—직립이족보행, 큰 뇌용량, 언어의 사용, 인간적인 사회성 등등—은 말하자면 모자이크모양의 점차적인 획득과정을 거쳐 왔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처음 시대에 일어난 일회적인 사건”을 상정하는 기원의 개념이 얼마나 유지되기 어려운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특징들의 기원을 묻는 것에는 충분한 의의가 있다. 또 그러한 특징들 중 하나둘을 주요소재로 삼아 서사를 직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아가 인류는 직선적으로 한길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몇 번의 갈라짐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몇 종류의 ‘인류’가 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신종의 설정에 신중한 통합주의자로 불리는 연구자들조차 10종류를 말하고, 신종의 설정을 좋아하는 분리주의자들은 20종류로 추정하고 있다. 인류는 그만큼 수많은 ‘기원’을 거쳐 왔다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일어난 몇 번의 갈라짐의 과정에서 한 가지의 끝에 매달려 있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에 다양한 인류가 등장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복수의 인류가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수만년전)에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인류’라고 말하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를 가리키지만, 인류의 역사에서는 ‘우리 이외의 인류’(우치무라 나오유키内村直之)들이 공존한 시대가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보다 훨씬 길었으며, 그들이 모습을 감추고 우리만이 남은 최근의 수만 년이 예외적인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의 인류 진화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인류가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캐나다의 영장류 학자인 메리 파벨카(Mary Pavelka)가 제기한 “모든 사람이 같은 수의 자식을 갖는가?”라는 수사학적 질문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인류 진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유에 포함된 락토스(유당)을 소화하는 능력의 획득을 들 수 있다. 젖을 뗀 후에도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포유류는 통상 젖을 뗀 이후에는 락토스를 분해할 능력을 잃는다. 그러나 인류는 목축문화에 의해 락토스를 분해하는 유전자의 변이를 가진 자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으로 진화해왔다. 이것은 우리의 게놈이 문화적 습관에 의해 일순간(수천 년 안에)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례만으로도 인류의 기원설화와 그것을 지지하는 두 가지의 도그마를 돌파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 지식체계의 보급에 의해 우리의 도그마는 머지 않아 사라지게 될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생각을 간단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 도그마는 일찍이 최전선에 있었던(하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쳐진) 지식체계가 사회통념으로서 침전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 두 도그마는 100년 전만 해도 학계의 공식적인 교의였다. 확실히 그러한 측면이 있었다. 이 도그마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해도, 현재 최전선의 지식체계는 점차 사회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야기를 끝낼 생각은 아니다. 실증적인 증거도 없고 또 어떻게 실증할 수도 알 수 없는 채로 인간에게 특권성과 동일성에 도달하는 기원신화는 매우 뿌리 깊은 휴먼 유니버설의 하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특권성과 동일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신화 혹은 신화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사회라는 것을 나는 과문한 탓인지 알지 못한다.

 

목축문화를 통해 인류가 락토스의 내성을 얻게 된 것처럼, 과학문화를 통해 인류가 신화로부터 해방되어 예지적 존재로 되어가는 도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오귀스트 콩트나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hard de Chardin, 1881~1955, 예수회사제, 고생물학자)이 꿈꾸었던 발전적 진화관이며 그 자체가 초-신화적 서사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여기서 18세기 독일에서 일었던 헤르더와 칸트의 논쟁을 떠올려보자.

 

헤르더는 『인류사의 철학고』에서 풍부한 상상력에 기초하여 당시의 과학적ㆍ인문적ㆍ종교적 지식체계를 집대성했다. 그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도 신의 현현(顯現)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연과 역사의 발전을 통일적으로 다루는 스피노자주의적인 역사철학을 제창했다. 헤르더는 헤겔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1937~)까지 근대의 인류사를 다루는 작가 모두의 선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이가 비판철학의 선조인 칸트다. 칸트는 헤르더의 인류사의 구상을 독단적 형이상학이라고 비판했다. 칸트가 문제 삼은 것은 헤르더의 스피노자주의 그 자체는 아니었다. 문제는 자연과 역사의 통합에 스피노자주의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가였다.

 

칸트가 내린 진단은 우리 인간은 항상 통합이 결여되어 있든지(통합론), 과잉되어 있든지(합리론), 둘 중 하나에 있다는 것이다. (그 해결방안으로서 『비판력 비판』이 쓰인 것인데, 이를 제대로 다루려면 문제가 배증되므로 여기서는 더 들어가지 않겠다.)

 

그래서 칸트에게 전략은 인류사가 기원을 필요로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원의 개념을 (구성적으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규제적으로(regulatively) 사용하는 것, 바로 이것이었다. 기원을 구성적으로 사용하는, 즉 그것을 그 자체로 경험적 대상으로 확장하는 것은 인류사를 신화로 전화시키는 결과에 이른다. 그 대신 경험적 영역에서 지성의 움직임의 방향을 잡아내는 것으로만 기원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적용사례의 하나가 「인류의 역사의 억측적 기원」이라는 소품이다. 이 에세이에서 칸트는 기원신화는 구성적인 억측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시하면서, 그 다음으로 자유롭게 ‘억측’을 구사하여 성서를 지도로서 역사의 유람여행을 펼쳐 보인다. 그것은 헤르더의 구성적인 인류사 서사에 대한 멋진 탈구축적 비평이며, 행간에는 자크 데리다의 “유한책임사회 abc...”를 떠올리게 하는 잔혹한 유머마저 부유하고 있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현대사회의 신화를 자연의 역사로 전환, 자연스러움을 갖춘 역사로 간주하는 바르트의 신화분석은 그러한 칸트의 분석철학의 계승이자 발전이다. 역사와 자연의 분리를 고심한 칸트를 계승하면서 신화작용에 의해 일단은 자연으로 전화된 역사를 끊임없이 그 구체성으로 되돌리는 것, 그것이 바르트의 신화분석이기 때문이다. 18세기의 비판철학자는 20세기에 신화학자로서 변신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는, 천년만년 단위의 인류사라는 서사에 대한 비평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여하간 폭우로 형용하기에 적절할 정도로 다수의 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죽순이 쑥쑥 자라는 것은 필연이며, 신화학자가 해야 할 작업은 날로 쌓여간다. 일찍이 질 들뢰즈와 하시미 시게히코(蓮實重彥)가 가르쳐주었듯이 그것은 차이와 반복(개체발생과 계통발생)의 운동을 기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기획으로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전략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근년의 획기적인 몇몇 과학적 지식체계는 어쩌면 헤겔의 꿈을 실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스피노자주의의 관철이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그 여명은 비판철학=신화학은 “사라져가는 매개자”(프레드릭 제임스)로서 그 역할을 끝낸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간에 떠도는 포스트 휴먼의 시대의 도래와 궤를 같이 한다.

 

그 까닭에 지금 인류는 시대에 뒤쳐진 도그마와 프리휴먼에 관한 실증적 지식체계와 포스트 휴먼으로의 개막의 예감 간에 노출된 붕괴감각을 맞이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나의 시대진단이다. 그러나 이 불편한 심정이 반드시 불쾌한 것만은 아니다. 매일 수신되는 과학뉴스를 체크하면서 그것이 일으키는 붕괴감각을 은밀히 즐기고 있으므로.

 

 

 

 

吉川浩満 「人類の起源という考えそのものについて」 『現代思想』 2016年5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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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적 전회란 무엇인가?

 

마음을 소거할 수 있을까?

 

‘신실재론’의 가브리엘은 현대의 자연주의적인 철학의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렇지만 과학에 기초한 자연주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또 하나의 포스트 ‘언어론적 전회’인 인지과학적인 ‘자연주의적 전회’를 다뤄보겠습니다.

 

우선 그 특징적인 경향을 알기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캠퍼스 교수인 폴 처치랜드(Paul Churchland, 1942~)의 논문 「소거적 유물론과 명제적 태도」(1981년)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논문에서 그는 ‘소박심리학’이라고 불리는 심리에 대한 상식적인 사고를 비판하고 신경과학 등의 인지과학적인 이론으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처치랜드의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소박심리학’이 무엇인지를 확인해두겠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통 인간은 놀라우리만치 용이하게 그리고 수미일관되게 타자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한 설명이나 예측의 경우에 우리는 표준적으로 행위자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욕구, 신념, 공포, 의도, 지각 등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설명은 법칙을—적어도 대략적인 법칙을—전제로 삼는다. (중략) 이 지식의 총합체를 그 본성과 기능을 고려한다면 ‘소박심리학’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심리학이 ‘소박심리학’으로 불리는 것은 학문적으로 형성된 심리학이 아니라 인간이 유년시절부터 길들여진 타인과 자신의 마음에 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처치랜드는 이 ‘소박심리학’에 대해 그 원리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그 대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자연지(自然誌)와 동물과학의 관점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조성(組成), 발달, 행동능력에 관해 소립자물리학, 원자ㆍ분자이론, 진화론, 생물학, 생리학, 그리고 유물론적인 신경과학을 포함하는 정합적인 서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우리는 이제야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적 총합을 파악했고, 그 일부는 이미 인간의 감각입력, 신경활동, 그리고 운동제어에 관한 면밀한 기술과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처치랜드가 이 논문을 썼을 때에 신경과학은 아직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고 또 희망적 예측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뇌과학과 인공지능연구 등의 발달에 의해 더 구체적인 논의가 전개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지과학—뇌과학에서 마음의 철학으로』(1995년)에서 처치랜드는 다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뇌는 어떻게 작동되는 것일까? 어떻게 뇌는 사물을 생각하고 느끼고 꿈을 꾸는 자아를 유지하고 자기의식을 가진 사람의 지주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신경과학 혹은 최근의 인공 뉴럴 네트워크 연구에서 얻은 새로운 성과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일군의 통일적인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중략) 이 책의 집필 동기는 무엇보다도 지금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추상과 오랜 세월의 비밀에 관한 새로운 설명의 가능성을 목전에 두고 내가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다만 이것은 나 한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금 몇몇 학술분야는 고양되는 분위기로 넘쳐난다.

 

이와 같이 처치랜드에 따르면, 신경과학과 정보과학, 인공지능연구 등의 학술적인 인지과학의 융성에 의해 지금까지 비밀에 쌓여있던 ‘마음’에 대한 이해 가능성이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확장된 ‘마음’

 

처치랜드의 ‘인지과학론적 전회’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길로 향해가는 이가 있었으니 에딘버러대학 교수인 앤디 클라크(Andy Clark)입니다. 클라크는 1998년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John Chalmers)(『의식하는 마음』의 저자)와 공저로 논문 「확장한 마음」을 발표하고, 마음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합니다.

 

인간은 외적인 존재와 두 방식의 상호작용으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통일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그 시스템은 독자의 인지 시스템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시스템의 성분들은 능동적인 인과적 역할을 맡고 있으며 통상의 인지와 동일한 종류의 방식과 연동되어 행동을 지배한다. 만약 외적인 성분이 제거된다면 뇌의 일부를 제거할 때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행동적인 능력이 저하될 것이다. 우리의 테제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머릿속에 있든지 없든지 간에 이렇게 연결되고 통일된 과정은 인지과정과 완전히 똑같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서 클라크와 처치랜드가 주창하는 것은 ‘마음’을 머릿속에 가두지 않고 오히려 신체와 그 주변 환경과의 상호연관에서 이해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즉 논문의 제목에도 나와 있다시피 ‘확장된 마음’이라는 테제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그들은 능동적 외재주의라고 부릅니다. 마음의 존재방식이나 움직임을 머릿속에 가두는 ‘내재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나 주변 환경과 연결짓고 움직이는 ‘외재주의’인 것입니다.

 

얼핏 보면 ‘마음’을 외부로 확장시킨다는 것이 낯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계산할 때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자릿수 덧셈이나 뺄셈이라면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세 자릿수나 네 자릿수가 되면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서 계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계산한다는 ‘마음’의 움직임은 종이와 연필, 그리고 쓴다는 신체의 움직임으로 운동해야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이 점을 확인해두고 앞서 인용한 문장을 읽으면 그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하여 클라크는 1997년에 『나타나는 존재』를 출간합니다. 원제는 ‘Being There’인데, 이 말은 하이데거가 1927년에 출간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표현으로 제시한 독일어(Dasein ‘현존재’)의 영역(英譯)입니다.

 

그러므로 클라크의 책은 바로 인간의 존재방식(현존재)을 재검토하는 것입니다. 부제가 말해주듯이 인간의 ‘뇌와 신체의 세계’를 연결짓는 시스템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사고의 의의를 클라크는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뇌는 신체화된 활동의 컨트롤타워라고 생각한다 해도 그 이상의 성과는 없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금의 시점의 전환은 마음의 과학을 구성해가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실은 이를 통해 지적행동에 대한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쇄신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을 버릴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 이후 일반화된) 마음의 영역과 신체의 영역의 구별. 지각/인지/행위를 정연하게 분할하는 선. 고차원적인 차원의 추론을 작동시키는 뇌의 집행중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고와 신체화된 행위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연구방법을 버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새로운 마음의 과학이다.

 

이러한 클라크의 논의는 인간이나 환경,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집습니다. 즉 그가 제기한 사고는 철학에 대한 새로운 시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도덕을 뇌과학으로 설명하다

 

철학의 ‘자연주의적 전회’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향을 살펴봅시다. 그것은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의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 대해서는 3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여기서 잠깐 그의 연구 활동을 살펴보면 철학은 드디어 심리학이나 뇌과학과 밀접하게 연계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대학ㆍ대학원 시절 그는 아마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 1933~, 인도출신의 경제학자)과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 1946~)라는 저명한 철학자 밑에서 수학했습니다. 그 후 그는 심리학자의 길에 들어섰고 뇌과학의 방법을 습득하여 뇌가 어떻게 ‘마음’이 되는가를 해명하게 됩니다.

 

그린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광차문제(trolley problem)’라고 하는 두 선택지에 관한 사례에 대해 MRI를 사용한 뇌화상법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다섯 명을 살릴 것인가, 한 명을 살릴 것인가라는 같은 문제인데도 상황이 바뀌면 판단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광차문제’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어왔습니다. 이에 대해 그린은 뇌화상법을 통해 뇌가 움직이는 장소가 어떻게 달라지는 가를 명확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린의 연구가 획기적인 것은 선함과 악함이라는 도덕적인 판단이 뇌의 어떤 구조나 움직임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실증적인 방식으로 논증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논한 도덕문제가 뇌과학에 의해 실증적으로 해명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고에 대해 철학자들은 강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그린이 출간한 『모랄 트라이브즈(Moral Tribes)』(2013년)에 대해 뉴욕대학 교수인 토마스 내겔(Thomas Nagel)이 서평을 썼는데, 그 제목이 「당신은 뇌스캔으로는 도덕에 대해 배울 수 없다—도덕심리학의 문제」로 매우 도전적입니다. 내겔은 그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린은 우리를 도덕심리학이 도덕철학보다 근본적이라고 설득하고자 한다. (중략) 그린은 어떤 낡은 문제와 격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의 심리학적 접근방법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린의 연구가 도덕철학에 준 충격은 상상 이상입니다. 왜냐하면 이 연구를 계기로 ‘뇌신경윤리학(neuroethics)’이라는 학문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호주의 철학자인 닐 레비(Neil Levi)가 2007년에 출간한 『뇌신경윤리학—21세기에의 도전』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린의 연구 이후 도덕을 신경과학으로 설명하는 연구가 명확하게 제기된 것입니다.

 

나아가 다른 연구 분야로 확장된 것도 확인해두어야겠습니다. 『모랄 트라이브즈』에서도 언급됐지만, 그린의 연구는 노벨상 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네만의 ‘행동경제학’과도 연결됩니다. 뇌화상법을 통해 인간의 경제행동이 어디까지 설명 가능한 것일까요? 이러한 ‘신경경제학’은 ‘신경윤리학’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는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확장은 경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 심적인 움직임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아직 그 맹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과학적 연구와 협동하여 크게 비약하지 않을까요?

 

 

20세기 이후의 철학의 동향

 

 

岡本裕一朗、2016年、「自然主義的転回とは何か」『いま世界の哲学者が考えていること』、ダイアモン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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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탈종교화’의 과정이었다

 

 

약 100년 전 독일의 고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서양근대를 합리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표현으로 규정했습니다. 실제로 근대가 되면 서양에서는 종교적인 권위로부터 독립한 세속적인 국가가 형성되고 자본주의 경제가 사회적으로 침투해갑니다. 또 계몽정신에 기초하여 종교적인 편견이 탈각되고 근대과학이 발전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종교의 힘은 점차 약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받아들여 20세기에는 서양근대를 ‘세속화의 시대’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사회학자인 피터 버거(Peter Ludwig Berger, 1929~)는 ‘세속화’라는 개념을 사회와 문화의 영역들이 종교의 제도나 상징의 지배로부터 이탈되는 과정으로 정의하고, 현대사회를 이러한 세속화의 시대로 보았습니다. 확실히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이후 이러한 세속화 상황이 세계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유럽에서도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낮은 반면 반대로 이슬람교도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미국에서는 주류파 프로테스탄트는 감소하고 있지만 원리주의적인 복음파 신도는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에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이러한 상황을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명합니다.

 

21세기 초두에 나타난 종교의 회귀현상은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200년 이상 지속되어온 사회통념〔세속화 이론〕을 깨고 있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했습니다. 근대세계(글로벌 금융자본)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근대건축을 궁극에까지 구현했던 세계무역센타 건물에 이슬람교 원리주의의 테러리스트들이 공격을 가한 것입니다. 그 직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부주의하게도 ‘십자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기독교 대 이슬람교라는 대립구도를 내세웠습니다. 그 후 이러한 이슬람교 신자에 의한 대규모적인 테러리즘이 전세계적으로 빈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는 오히려 ‘포스트세속화의 시대’라 불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요? 종교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기존의 세속화 이론은 유럽의 기독교에 대해서 타당하다 할지라도, 세계전체를 생각하면 종교로의 회귀현상이 현저해지고 있습니다. 베버가 근대를 규정할 때에 ‘세계의 탈주술화’를 제창했다고 한다면, 현대에서는 오히려 ‘세계의 재주술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의 ‘탈주술화’인가 아니면 ‘재주술화’인가—현대사회는 바로 이 분기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현대사회의 어려움은 이 양자가 명확하게 분할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얽어매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그에 담긴 문제를 생각하고 미래를 전망해보겠습니다.

 

 

이성적으로 종교를 생각하다

 

1985년 독일의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포스트모던 사상을 비판하기 위해 근대(모던)의 의의를 재검토하며 『근대의 철학적 딜레마』를 출간합니다. 그 책의 서두에서 그는 막스 베버의 ‘합리화’ 개념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막스 베버에게는 그가 서양적 합리주의라고 이름붙인 것과 근대 사이에 어떤 내재적 관계, 즉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관계는 여전히 자명한 것이었다. 그가 <합리적>이라는 개념 하에서 기술한 것은 유럽에서 종교적 세계상이 붕괴하고 그 강력한 세속문화가 발생하는 탈주술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근대의 경험과학들, 자율을 획득한 예술, 또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도덕 및 법의 이론들과 함께 이 문화적 가치영역들이 형성되어 왔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러한 서양근대의 합리화 과정은 지금까지도 미완성이므로 ‘커뮤니케이션적인 합리성(이성)’의 관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 때문에 일반적으로 하버마스는 ‘근대’파 철학자로 분류되고 있으며 그 철학에는 종교적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하버마스 철학이 크게 방향전환을 합니다. 지금까지 근대적인 세속화론자라고 간주되었던 그가 놀랍게도 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왜 하버마스는 이러한 사상적 전환을 꾀한 것일까요?

 

아마도 그 원인 중 하나는 20세기 말에 생명과학이나 뇌과학 등이 ‘자연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우며 인간의 인격이나 정신의 이해를 오도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일 것입니다. 근대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원이며 그 인격과 정신을 자연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연주의’적 이해를 하버마스는 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가 기독교와 만나게 되는 근거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포스트세속화론적 전회’라 부르겠습니다.

 

2004년에 하버마스는 기독교 신학자인 요제프 라칭거(Joseph Aloisius Ratzinger)와 대화를 시도하고, 그 이듬해에 공저로 책을 출간합니다. 라칭거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로마 교황 베네딕트 16세를 지냈기 때문에 이 대화는 매우 역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기독교도와 근대와의 만남). 그 책에서 하버마스는 클라우스 에더(Klaus Eder, 1946~, 독일의 사회학자)의 ‘포스트세속화의 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점차 세속화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종교가 계속해서 자기주장을 전개하며 앞으로도 당분간 사회가 종교적 공동체의 존속을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포스트세속화’라는 표현은 종교적 공동체가 자신이 원하는 동기와 태도의 재생산을 행하는 기능에 공적인 감사를 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포스트세속화의 사회에서는 신앙을 가지지 않은 시민들이 신앙을 가진 시민들과 정치적으로 접촉하는 그 교류의 방식에서 중요한 규범적인 사고가 공공의 의식에도 반영되고 있다. (중략) 종교 측에서도, 세속 측에서도, 이 양자가 사회의 세속화를 상호보완적인 학습과정으로 이해한다면 공공의 장에서 논쟁되는 다양한 테마에 대해 상대로부터의 기여를 인식상의 이유에서 서로 진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같이 ‘세속화의 변증법’의 결과로서 하버마스는 현대를 ‘포스트세속화 사회’로 다루고 이성과 종교와의 화해를 기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입장은 이전의 하버마스 철학으로 말한다면, 참으로 보수적인 해결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버마스의 이 전회를 어떻게 평가한다 해도 ‘세속화—포스트세속화’ 문제가 현대의 긴급한 테마라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문화주의에서 종교적 전회로

 

하버마스는 현대사회를 이해할 때에 ‘포스트세속화’라는 개념을 제창하고 근대적인 세속주의가 간과한 문제를 경고합니다. 그러나 본래 세속화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요? 세속화를 다르게 이해하게 되면 ‘포스트세속화’에 대한 이해도 달라지겠죠. 그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 캐나다의 철학자인 찰스 테일러(Charles Margrave Taylor, 1931~)가 2007년에 출간한 대작 『세속의 시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테일러에 대해 말하면, 1970년대부터 시작된 리버럴리즘 논쟁 시 코뮤니타리얼리즘(공동체주의)의 입장에서 리버럴리즘ㆍ리버타리아니즘을 함께 비판했습니다. 그 후 90년대에 이르러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대표적 논자로서 활발한 논의를 전개해왔습니다.

 

그런데 21세기가 되어 테일러는 ‘종교적 전회’를 꾀합니다. 본래 가톨릭 신자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지금까지 거의 거론하지 않았던 종교의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힌 것입니다.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아마도 시대 상황이 테일러에게 ‘종교적 전회’를 재촉한 것이 아닐까요?

 

테일러에 따르면, ‘세속성’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와 종교 간의 분리, 즉 정치와 종교 간의 분리입니다. 이에 따라 종교는 ‘사사화(私事化)’됩니다. 또 하나는 신앙의 쇠퇴, 즉 사적 영역으로 종교가 쇠퇴해갑니다. 그에 대해 테일러가 착목한 ‘세속성’은 제3의 의미를 갖는데, 이것은 신앙의 조건의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이 제3의 의미의 ‘세속성’과 관련하여 테일러는 『세속의 시대』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시도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이 제3의 의미에서의 세속적인 사회로 검토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여기서 내가 그 특징을 명확하게 하고 검토하려는 것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던 사회로부터, 단호하게 신앙을 갖는 신자에게도 단순한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게 된 사회로의 변화이다. (중략)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이미 자명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마도 이 속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환경에 따라 신앙을 이어가는 것이 곤란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속성’의 변화를 생각하기 위해 테일러는 서양근대의 500년을 대상으로 분석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기 1500년 무렵에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에 비해 2000년에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가피하기조차 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테일러가 이 질문을 제기할 때에 염두에 두었던 것은 표현주의 혹은 표현혁명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상황입니다. 테일러에 따르면, 이것은 ‘자기 자신의 본래적인 삶의 방식, 표현의 방식’을 원리로 삼고 있으며, 패션으로 대표되는 소비중심사회와도 연결됩니다. 이 입장에서 말하면, 신앙은 자신의 본래의 삶의 방식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입니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테일러가 현대의 ‘세속성’을 설명할 때에 신앙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확실히 표현주의의 입장에서는 제도적 종교는 쇠퇴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내면과 연결된 종교는 삶의 방식의 하나의 선택지로서 새롭게 모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대사회에서 ‘신종교’가 적극적으로 추구되는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일러는 『오늘날의 종교의 모습들』(2002년)에서 구체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방향을 따라가면 비기독교적인 종교, 특히 동양에 기원을 두는 종교의 부흥이 있으며, 뉴에이지형의 다양한 활동양태 그리고 인간주의적 환경과 영적인 것 간의 경계를 가교하고자 하는 견해들, 혹은 영적인 치료와도 연결되는 실천 등의 폭발적인 증대가 있다. 나아가 점차 많은 사람들이 예전이라면 채용하기 어려운 입장으로 간주된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신을 가톨릭이라고 자인하면서 그 교의의 중핵적인 많은 부분들을 거부한다. 혹은 기독교와 불교를 조합한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의 유무를 확신하지 못한 채 기도를 올린다.

 

이렇게 보면 ‘세속의 시대’라고 해도 테일러가 단순히 종교의 쇠퇴설을 주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간파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테일러의 ‘세속화’ 논의는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서양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속화’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세계전체를 시야에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최근 이슬람교 원리주의의 돌출적인 행동을 주시하면 서양에 한정된 논의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속화론에서 탈세속화론으로

 

글로벌한 시점에서 세속화와 ‘포스트세속화’의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피터 버거의 논의를 검토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세계를 이해할 때에 버거 자신이 세속화론으로부터 탈세속화론으로 입장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버거는 왜 그랬을까요?

 

우선 1967년에 발표한 『성스러운 덮개—신성세계의 사회학』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세속화를 ‘사회와 문화의 영역들이 종교의 제도와 상징의 지배로부터 이탈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하고 베버와 마찬가지로 서양근대를 세속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버거는 그 세속화론을 후년에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세속화’론이라는 용어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후의 저작과 관련되는데, 그 개념의 열쇠를 생각하면 실제로 계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생각은 단순하지 않다. 즉 근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와 개인의 마음에서 종교의 쇠퇴를 이끌어낸다.

 

그런데 20세기 말이 되면 버거는 이러한 ‘세속화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1999년에 논집 『세계의 탈세속화—부활하는 종교와 세계정치』를 편집하는데, 그 책의 권두논문에서 이전의 ‘세속화론’이 잘못되었음을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버거는 미국이나 유럽만이 아니라 세계전체의 글로벌한 시점에서 보면 종교적 원리주의와 같은 탈세속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의 논점은 우리가 세속화된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예외가 있다 해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광폭하리만치 종교적이다. 이것은 역사가들과 사회과학자들이 ‘세속화론’이라고 딱지 붙인 연구 문헌의 상당 부분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 나의 초기 저작은 그러한 연구들에 기여한 바가 있다.

 

버거는 세속화를 생각할 때에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인 의식의 차원의 두 차원을 구별하는데, 이 두 차원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조직이 쇠퇴한다 해도 개인의 신앙은 여전히 강한 경우가 있으며, 그 반대로 개개인이 종교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 해도 종교적인 조직이 사회적ㆍ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하간 ‘종교와 근대 간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현대세계를 살펴볼 때에 매우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모든 주류파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쇠퇴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복음주의는 융성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 가톨릭은 비서양지역에서 열광적인 신자들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이후 러시아정교회가 부활했고 민중들 틈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유대교, 힌두교, 불교 등도 소멸하기는커녕 더욱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 이슬람교의 원리주의 운동이겠지요.

 

확실히 유럽에 한정해서 말하면 세속화가 진행되어 기독교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세속화는커녕 오히려 탈세속화의 거센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세계는 어디로 향해가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岡本裕一朗、2016年、「近代は「脱宗教化」の過程だった」『いま世界の哲学者が考えていること』、ダイアモンド社。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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