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그머티즘 사상사에 관한 책의 서문을 번역했다. 프래그머티즘이 어째서 21세기의 '미래의 철학'과 다시금 접합되면서 활력을 얻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뒤로 갈수록 아주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은데, 어디까지 번역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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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머티즘이란 무엇인가?

이토우 쿠니타케(伊藤邦武)

 

 

1. 복수의 탄생과 재생

 

세 번의 탄생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사상은 대체 언제 탄생했는가?

기묘하게도 프래그머티즘은 복수—적어도 두 번, 경우에 따라서는 세 번—에 걸쳐 탄생한다.

첫 번째 탄생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187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두 번째 탄생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사유방식이 하나의 유력한 철학사상으로서 미국 안팎의 철학계에서 선언된 것으로, 최초의 탄생에서 20년 이상이 지난 1898년에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사상은 이 무렵부터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여 미국철학에서 주류적 입장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탄생은 20세기 중반,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어떤 의미에서는 사상계의 배경으로 물러나있던 프래그머티즘이 다시금 미국 철학계의 중심으로 도약한 사실을 가리킨다. 프래그머티즘의 탄생의 해라기보다는 재생의 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사이 미국의 사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유래의 논리실증주의 철학이 석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을 전후해서 미국철학은 다시 프래그머티즘으로 회귀하기 시작했고, 그 확대운동이 20세기말까지 세계전체로 파급됨으로써 결국 20세기의 중심적 사상이라는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첫 번째의 탄생시기인 1870년을 전후하여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이 사상의 ‘창시자’는 철학자 찰스 퍼스이다. 퍼스는 과학자ㆍ논리학자로서 평생을 보낸 사상가인데, 1870년을 전후한 당시 신진기예(新進氣銳)의 연구자로서 미국동부해안의 하버드대학 철학과의 주변에서 몇몇 친구들과 ‘형이상학 클럽(Metaphysical Club)’이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조직했다. 그는 클럽의 중심적 인물로서 이 클럽의 토론석상에서 이 사상의 이름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두 번째의 탄생시기인 1898년에 이 사상의 의의를 세계로 설파한 이는 퍼스의 사상적 동반자이며 형이상학 클럽의 멤버이기도 했던 윌리엄 제임스였다. 그는 이 무렵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였다. 그런 그가 19세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미국서부해안의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철학의 개념들과 실제적 효과(Philosophical Conceptions and Practical Results)’라는 제목의 강연을 행하고 그 속에서 이 철학사상이 하나의 독립된 체계적 세계관, 인간관, 인간의 지적능력과 본성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임을 강하게 설파했다. 제임스의 이 강연 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각국에서 이 사상에 공명하는 철학자, 사상가들이 생겨났고, 이 사상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양의 유력한 사조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세 번째의 탄생시기인 1951년에 이 사상의 재생을 부추긴 것은 당시 하버드대학의 가장 유력한 철학교수이자 논리학자인 윌러드 밴 오먼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이다. 그는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로 대표되는 영어권의 분석철학을 계승한 미국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가 이 해에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라는 중요한 논문을 발표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당시 유력한 논리실증주의라는 사상의 근본적 문제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의 대안적 사상의 원리로서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발상의 의의를 주창했다.

콰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세계의 철학계 전체를 이끈 중심적 사상가였기 때문에 그의 이 주장에 의해 프래그머티즘은 논리실증주의의 세례에서 벗어나 보다 세련된 철학사상으로 재생할 수 있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콰인 자신은 자신의 사상을 오로지 프래그머티즘으로만 특징짓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하간 그 후에 이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이 콰인의 프래그머티즘적 측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 사상을 전개해왔고, 이 전개운동은 ‘네오 프래그머티즘’으로 불리게 되었다.

 

첫 번째ㆍ두 번째 탄생의 반향

그런데 퍼스가 처음으로 이 사상을 형성하고 제기했을 때, 그의 주변에는 제임스뿐만 아니라 올리버 웬들 홈스 주니어(Oliver Wendell Holmes Jr.)와 천시 라이트가 있었다. 그들은 법률, 철학, 의학, 신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도유망한 전문가ㆍ연구자로서 활약 중이었다. 이 시기는 미국 최대(최악의) 내전인 남북전쟁이 종결된 후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만 60만 명이 넘었다.

그들은 이 비참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청년세대의 날 선 의식을 철학이라는 이름하에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 사적모임의 명칭으로 ‘형이상학 클럽’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다시금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의 기반을 본격적으로 재구축하려는 의기투합이라기보다는 청년세대 특유의 굴절된 자의식 혹은 유머감각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하버드에 모인 퍼스의 동료들은 일부러 ‘형이상학’이라는 고루한 이름을 표명함으로써 그 반대로 새로운 별종의 사상을 만들어내자는 역설의 열기를 내보이고자 했다.

이 퍼스의 사적연구클럽 내의 사상의 선언은 그 후 『월간 파퓰러 사이언스』라는 과학잡지에서 논문시리즈로서 공표되기도 했는데, 그 반향은 극히 한정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후 제임스가 이 사상의 내실과 의식을 세계에 설파했을 때에는 그에 동조하거나 반발하는 철학자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

제임스는 버클리 강연 후 1906년과 1907년에 두 연구기관에서 일반청중을 상대로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연속강연을 행하였고 그것을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에두아르 르 루아(Édouard Le Roy), 가스통 밀로(Gaston Milhaud) 등의 사상가들로부터 상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실러(Ferdinand Canning Scott Schiller)와 미국의 존 듀이 등 많은 찬동자를 얻어내었다.

그러나 당시 정통의 철학세계에서는 이 사상을 기묘하고도 유치하며 풋내 나는 철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 사상을 경시한 철학자들은 전통주의적인 사람들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프래그머티즘과 마찬가지로 구래의 신칸트주의와 헤겔주의에 반기를 들면서 분석철학이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상을 구상해온, 그들보다도 한세대 젊은 철학자인 영국의 무어와 러셀조차도 이 사상이 극단적인 주관주의와 상대주의라고 하면서 강하게 비판한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하면, 일본에서 제임스의 『프래그머티즘』이 출판된 때는 메이지40년[1907년]인데, 이후 일본에서도 이 사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다나카 오도(田中王堂 1868~1932,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수, 존 듀이의 제자이며 일본에서 프래그머티즘에 기초하여 평론활동을 전개했다.) 일파 등의 열렬한 신봉자가 나오는 한편 메이지45년[1912년]에 출간된 『영ㆍ독ㆍ불ㆍ일 철학어휘』에도 ‘실용주의’라는 용어로 소개되었다. 니시다 키타로(西田幾多郎 1870~1945, 교토대 철학교수, 교토학파 창시자) 또한 당시 미국에 있던 친구 스즈키 타이세츠(鈴木大拙)를 통해 제임스의 사상을 접했으며 다이쇼 기간 동안 교토대학의 <철학개론>에서 이 사상을 ‘실용주의’라고 번역하여 ‘진리란 인생에서 유용(useful)한 것을 뜻한다. 그 외에 다른 영속 불변한 것 자체에 진리와 같은 것은 없다’고 소개했다.

 

세 번째 탄생과 논리실증주의 비판

제임스가 활약한 이후 20세기 전반의 미국에서 프래그머티즘은 세상의 이러저러한 평판에 노출되었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으로부터 이입된 논리실증주의의 엄격한 논증스타일에 압도되어 일시적으로 사상적인 패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윽고 콰인이 이 사상의 재생을 선언함과 동시에 루돌프 카르납(Rudolph Carnap)으로 대표되는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해 강력한 내재적 비판을 전개한 결과 러셀류의 분석철학의 일 분파라고 할 수 있는 카르납의 사상은 크게 방향전환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콰인을 계승한 철학자로서 도널드 데이비슨(Donald Davidson),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 리차드 로티 등 많은 사람들이 프래그머티즘을 기초로 삼아 사상을 전개하며 20세기 후반의 철학계에서 활약했다. 그들은 광의의 의미에서 분석철학의 유파에 속하는 철학자들이지만, 논리실증주의로 대표되는 실증주의 특유의 ‘사실과 가치의 변별’이라는 대원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확실하게 프래그머티즘 진영에 서있다.

카르납의 실증주의에서는 외적인 세계에 관한 과학적 진리로서의 사실적 진리 이외에는 도덕이나 미적인 가치에 관한 진리일 뿐이다. 그 외의 진리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주관적인 감정이나 신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래그머티즘은 진리에 관한 이러한 과학일변도의 태도를 비판한다. 그리고 콰인 이후의 분석철학은 논리실증주의의 색채가 남아있는 입장뿐만 아니라 프래그머티즘적인 경향을 강조하는 입장도 포함한다. 20세기 후반의 분석철학의 주류는 당연히 후자라 말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경향이 크게 우세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패거리 세대의 구세주와 배반자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사상의 형성에는 이와 같이 복수의 탄생이 관계하고, 그 발전의 역사 또한 장기간에 걸쳐있다. 게다가 이 형성과 발전의 궤적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 즉 다양한 입장의 철학자들이 존재한다. 앞서 ‘들어가며’에서 서술한 것처럼 현대사상으로서 이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사조의 교대 속에서 긴 호흡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이 긴 호흡은 여기서 보는 것처럼 이 사상이 복수의 탄생을 거쳐 몇 번이나 재생해왔다는 그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사상이 이렇게 복잡한 역사적 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한편으로 우리가 가령 ‘프래그머티즘이란 어떤 사상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한 답변 또한 복수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적어도 누군가가 ‘이 사상은 본래 어떤 사상이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많은 프래그머티스트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프래그머티즘의 정의와 이미지를 제기할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장기간에 걸친 사상운동에서 그만큼 다양한 철학자가 관련된 이상, ‘프래그머티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 여기저기 흩어질 수밖에 없음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분명한 하나의 사상체계 혹은 세계관이 아니라 다수의 사상이 모여든 일종의 모호하고 어렴풋한 철학적 신념의 패거리 세대가 아닐까—? 우리는 경우에 따라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재밌게도 이 상념은 실은 이 사상의 (두 번째) 탄생기에 이미 공적으로 표명되었던 의문이기도 하다.

아서 러브조이(Arthur Oncken Lovejoy 1873∼1962)라는 철학자는 하버드대학의 제임스의 제자였는데, 그는 오늘날 철학사의 대작인 『존재의 대연쇄』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러브조이는 1908년에 『Journal of Philosophy』라는 잡지에 「13인의 프래그머티스트」라는 논문을 발표했다(이 잡지는 당시 제임스를 중심으로 하는 프래그머티즘의 아성이며 지금도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 잡지의 지위를 갖고 있다. 러브조이의 이 논문을 수록한 논문집은 『13인의 프래그머티스트』라는 제목으로 1965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프래그머티스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서로 매우 다른 철학을 품고 있으며, 나아가 그 속에는 분명히 모순된 입장이 포함되어 있음을 상세하게 해명한다. 이때 ‘13’이라는 숫자는 의심할 나위 없이 ‘예수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배신자 유다 또한 포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족일지 모르나, ‘이 운동의 구세주가 누구이며 배신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이 사상운동의 처음부터 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온 이 운동의 역사에서도 언제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보여주는 프래그머티즘의 역사의 통람 또한 하나의 수수께끼를 해명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구세주도 배신자도 한사람으로 한정되지는 않겠지만.)

 

프래그머티즘은 초점 없는 사상?

여하간 스승으로서 제임스 자신이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책을 발표한 그 이듬해, 프래그머티즘의 거점이 되는 잡지에 러브조이의 논문이 실렸다는 사실을 보아도 이 사상의 주변에 흐르는 혈기와 함께 여러 의미에서 사상의 혼란이라든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 형성, 발전, 장래를 생각해본다는 이 사상은 탄생의 시점부터 이미 혼란스러웠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합적인 사상의 기라성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 의미에서 ‘프래그머티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프래그머티스트의 수만큼 답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사상은 일반적으로 말의 ‘정의’라는 것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음에서 상세하게 논하듯이 우리의 지성이 산출하는 사상의 레테르, ‘~이즘’이나 ‘~주의’라는 입장이 사상 그 자체로서 확실하게 고정된 정의를 가질 수 없고 경계와 윤곽이 희미하며 다양한 사상의 ‘내용’, ‘의미’, ‘의의’라는 것은 그 사상의 명칭에 있기보다도 그것이 응용되고 활용되는 장면에서 구체적인 이용의 맥락 하에서만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이 주장하는 주요의제 중 하나이다.

나아가 프래그머티스트들 간에는 각각의 주장의 방향과 중점의 위치가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고 해도 그 핵심에 있는 사유방식, 즉 많은 프래그머티스트들을 이어주는 발상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입장의 이합집산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서로의 주장이 중첩되면서 부상하는, 이 사상의 공통점은 확실히 있다. 그리고 그 초점은 흐릿하지도 모호하지도 않다.

 

 

2. 제임스가 생각한 ‘프래그머티즘의 의미’

 

방법론에서 진리론으로

여기서는 앞으로 좇아갈 프래그머티즘의 사상내용의 전개의 그 첫걸음으로서 이 사상을 정면에서 특징지었으며 그와 더불어 그 보급에 가장 공헌한 제임스의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책을 우선 다루고, 그 속에서 프래그머티즘에 대한 성격규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제임스의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버클리에서 강연을 한지 8년이 지난 후인 1906년과 그 이듬해에 보스턴의 로웰협회와 뉴욕의 콜롬비아대학에서 일반청중을 상대로 행했던 연속강연, ‘프래그머티즘’이라는 표제의 강연시리즈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8회에 걸쳐 행해진 강연시리즈는 ‘프래그머티즘과 상식’, ‘프래그머티즘과 휴머니즘’, ‘프래그머티즘과 종교’ 등의 제목의 회차를 포함하고, 특히 2회차의 강연인 ‘프래그머티즘의 의미’에서 그는 이 사상의 골격을 분명하게 그려내었다.

‘프래그머티즘의 의미’란 무엇인가?—이 강연의 설명에 따르면, 프래그머티즘이란 본래는 ‘방법’이며 이제는 ‘진리’의 이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이 사상은 두 얼굴을 가진 사상이라는 것이다.

이때 프래그머티즘이 ‘본래는’ 방법이라는 것은, 이 사상의 시초의 발안자인 퍼스에게 이 사상은 무엇보다 우리의 지적탐구의 ‘방법’에 관한 기본이론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진리의 이론이기도 하다는 것은 퍼스의 사상을 계승하고 확장하는 제임스 본인이 이 사상을 ‘진리론’으로 정식화함으로써 철학상의 더욱 폭넓은 영역에서 활용의 가능성을 넓혀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임스는 퍼스가 생각한 ‘프래그머틱한 방법’에 대해 퍼스의 표현을 다소간 그 자신의 용법으로 바꾸어 소개한다. 그리고 이 퍼스의 사상을 나름의 진리론으로 변경한 결과를 자신이 이해하는 프래그머티즘으로서 표명한다. 이와 같이 그가 전개한 논의는 퍼스가 주장하는 방법론을 진리와 가치라는 철학의 근본원리에까지 적용하고 반성한 것이며 이로써 이 사상의 혁명적 성격은 더욱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에 의한 프래그머티즘 해설

프래그머티즘의 중핵적 사상을 논하는 제임스의 설명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그 문장도 읽으면 바로 이해될 수 있을 만큼 단순 소박하지 않다. 이것은 그의 강연이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했다 해도 그 청중의 대다수가 지식계급이었고 강연자체가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도 그 이유가 있다. 이 때문에 제임스의 해설을 읽는 자는 누구라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와 닿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설은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상가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선 염두에 두고 논하는 글이다. 그 문체는 19세기 후반에 고전적인 프래그머티즘을 다룬 것이기에 돌려서 말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그것은 이 사상이 어떤 고풍의 분위기와 만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우선 여기에 그 글의 일부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애초 프래그머틱한 방법은 이것 없이는 언제 끝날지도 모를 형이상학상의 논쟁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이 말이 처음으로 철학에 도입된 것은 1876년 찰스 퍼스에 의해서였다. … 퍼스는 우리의 신념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을 지적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하나의 사상의 의의를 밝히는 것은 그 사상이 어떤 행동을 산출해내는 데에 적합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행동이야말로 우리에게는 그 사상의 유일한 의의이다. 우리의 모든 사상의 차이는 가령 얼마나 미묘한 것이라 해도 근저에는 실제상의 차이로 표현되지 않을 만큼 미묘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관한 우리의 사상을 완전하고 명석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얼마나 실제적인 결과를 일으키는가?—그 대상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감동을 기대할 수 있는가?—어떤 반동을 우리는 각오해야 하는가? 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말은 이제는 더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진리론의 의미로 활용될 수 있다. … 즉 진리란 그들에 의하면, 관념(그 자체가 우리의 경험의 일부에 불가하다)이 참되기 위해서는 이 관념이 우리의 경험의 다른 부분을 만족시키는 관계에 있어야하며 경험의 다른 부분들을 총괄할 수 있어야 하며 또 무한히 잇따라 생기는 특수한 현상을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아도 관념적 지름길을 통해 경험부분의 사이사이를 교묘하게 헤집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소위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관념, 물(物)과 물(物) 사이를 잘 연결해서 어떤 불안함도 없이 돌아다니며 사태를 간략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우리의 경험의 한 부분에서 다른 한 부분으로 순조롭게 우리를 운반해가는 관념, 이것이 바로 그만큼의 의미에서 참됨이며 그만큼의 범위에서 참됨이며 도구라는 의미에서 참됨이다.

위의 문장은 하나의 사상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개한 것으로 꽤 길지만 인용해두었다.

 

반데카르트주의와 다원주의

프래그머티즘을 설명한 제임스의 이 문장들을 우리의 스타일대로 정리하면 두 논의로 요약된다.

① 프래그머티즘은 제1의 의미에서는 우리의 지적인 논의의 소재가 되는 개념과 사상의 ‘의의’에 대해 분명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며, 자신의 개념과 사상을 명석하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상이다. 그러나 개념의 의의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개념명석화의 방법을 설파하는 이 사상은 그와 동시에 인간의 지적활동으로서 탐구방법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퍼스의 이 이론, 즉 방법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우리의 탐구가 항상 탄력적이며 계속해서 오해를 개정하는 가류적(可謬的)인[과오를 거듭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것은 탐구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확실한 지식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17세기 서양근대 이후의 데카르트적인 지식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방법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그 의미에서 무엇보다 ‘반데카르트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② 한편, 이 사상은 더 넓은 의미에서 관념과 경험의 진리를 무엇에 대한 이론으로 삼는다. 이 진리관에서는 어떤 관념이 참되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이며 ‘물(物)과 물(物) 사이를 잘 연결해서 … 우리의 경험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순조롭게 우리를 운반해가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 행동에서 유용한 도구로 진리를 보는 것인데, 그것이 ‘진리’라는 관념의 단순한 정의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서 살펴보듯이 진리를 도구로 삼는 이 사상은 존재론적 ‘다원주의’ 혹은 사실과 가치의 구별의 부정으로 이어지는, 세계에 대한 고전적인 이해를 근저에서부터 전복하는 혁명적인 견해를 이끌어낸다.

 

다각적인 타원구조

철학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이처럼 반데카르트주의와 다원주의라는 매우 대범한 주장을 전개한다. 말할 것도 없이 반데카르트주의라는 것은 서양근대의 선조격인 데카르트적 발상을 근본에서부터 비판하고 철학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다원주의적인 진리론을 제창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진리의 일원론을 구가해왔던 뉴튼적 서양근대의 과학관에 강력한 이견을 제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의미에서 철학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의 근본적인 지향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 이 두 주장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프래그머티즘의 이러한 근본적인 특징이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적으로 혁명적인 사상인가 혹은 그러한 발상은 철학사적으로 볼 때 어떠한 임펙트를 주는 발상인가에 대해서는 근대 및 현대철학의 다양한 전제를 하나씩 밝혀내야 비로소 답할 수 있는 문제이며 철학적으로도 이러저러한 검토가 필요한 문제이다. 이 책의 앞으로의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 관심을 두고 근 100년간의 프래그머티즘의 역사 속에서 반데카르트주의와 다원적 진리관이 어떠한 모습으로 제안되었으며 또 어떠한 방향으로 돌진해왔는지를 사상가들의 사유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여하간 이 책이 보고자 하는 것은 프래그머티즘 100년의 역사가 방법과 진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철학사상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퍼스와 제임스라는 두 사상가에 의해 만들어진, 그들이 고안한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던가?—이 속에는 분명 완전하게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지지 않는 논의의 흔들림이나 주장의 어긋남이 있다. 그러나 이 흔들림과 어긋남은 이 사상이 지금까지 그 활력을 잃지 않고 발전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며 결코 사상의 모호함과 빈약함을 가리키지 않는다.

프래그머티즘은 그 처음의 형성과정부터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논제를 가지고 있었고, 다각적이고 타원적인 사상의 역동적인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다각적이고 타원적인 사상의 수다한 궤적이 현대철학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골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서문에서 말한 것을 본론의 1부 「원류의 프래그머티즘」에서 더 상세한 실제의 논의내용을 통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독자들은 또한 2부 「지난 프래그머티즘」과 3부 「앞으로의 프래그머티즘」의 논의에 다다르면 이 사상의 다각적이고 타원적인 구조가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바로 그 이후의 20세기와 21세기의 철학운동 속에서 더욱 강도를 더해가며 보존되고 진폭을 넓혀 전개되어 그로부터 오늘날의 우리시대의 새로운 프래그머티즘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도정을 염두에 두면서 방법론과 진리론으로서 그 실제의 다양함과 그 활용의 가능성에 대해 지금부터 순차적으로 검토해보겠다.

 

伊藤邦武、「プラグマティズムとは何か」『プラグマティズム入門』、ちくま新書、2016年。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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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논문을 번역해 올려둔다. 개념도 어렵고 문장도 어려워서 시간이 꽤 걸리더라. 그래서 일단 글의 전반부만을 먼저 올리고 후반부는 기일을 두고 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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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와 다자연주의

 

 

 

에두아르도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Eduardo Viveiros de Castro)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은 관찰자의 선택에 의존하도록 구축되어왔다. 여기서 관찰자가 증인으로 소환되는 것이 정당한 이유는 그가 설명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구되는 것은 관찰자의 신체이지 그의 정신이 아니다. — A. N. 화이트헤드

 

내가 신화적 사고의 고유한 특징으로 간주해온 퍼스펙티브의 상호성(la réciprocité de perspectives)은 더욱 폭넓은 적용범위를 요구할 것이다. — C. 레비-스트로스

 

 

본고의 주제는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의 사고의 하나의 틀인 ‘퍼스펙티브의 성질’(Århem 1993)과 ‘퍼스펙티브의 상대성’(Gray 1996)이다. 이 대륙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관념은, 인간적인 것도 있고 비-인간적인 것도 있는 다른 부류의 주체가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 주체들은 특징적인 퍼스펙티브로부터 현실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사고의 전제와 귀결은—리마(Lima 1995: 435-48)가 보여준 것처럼—우리 사이에 흔해빠진 상대주의에 대한 관념, 즉 무엇보다도 정신에 호소하는 것 같은 사고방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실은 그 전제와 귀결은 이른바 상대주의와 보편주의의 대립과 직교하도록 위치지어진다. 우리의 인식론적인 논쟁의 어휘에 대해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의 퍼스펙티브즘이 보여주는 저항력은, 그 논쟁을 조장하는 존재론적인 분할이 확고하며 어디에도 적용된다는 주장에 의문을 던진다. 특히 많은 인류학자가 (이유를 불문하고) 이미 결론내린 것처럼, 비-서양적인 우주론의 내적인 영역들에 대한 서술에 <자연>과 <문화>라는 고전적인 구분을 사용해버리면 민족지적으로 엄격한 비판을 받아들여야 함을 피할 수 없다.

 

우선 이 비판이 요구하는 것은 <자연>과 <문화>라는 항목 하에 대치되어왔던 두 개의 범례를 포섭하는 술부(述部)를 분리하고 재배치하는 것이다. 즉 보편과 특수, 주관과 객관, 물리와 도덕, 사실과 가치, 여건과 구축물, 필요성과 자연발생성, 내재와 초월, 신체와 정신, 동물성과 인간성 등을 포함하는 수많은 이항대립이 그것이다. 개념의 카드를 잘라 다시 붙이는 나의 사유는 아마도 근대적인 ‘다문화주의자’의 우주론과 대조를 이루는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의 사고의 특징의 하나인 다자연주의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다문화주의 개념은 자연의 단일성과 문화의 다원성이라는 상보적인 함의—자연의 단일성은 신체와 물질의 객관적인 보편성에, 문화의 다원성은 정신과 의미에 관한 주관적인 특수성에 의해 보증된다—에 기초한다. 이와 반대로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개념은 정신의 단일성과 신체의 다원성을 조정하는 것 같다. 문화, 즉 주관적인 것은 보편성의 형상을 띤다. 자연, 즉 객관적인 것은 특수성의 형상을 띤다.

 

사변 이상의 것이기에는 너무나도 대칭적일 수 있지만 이 반전이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우주론적인 개념의 현상학적인 해석으로부터 전개하는 것 속에는 틀림없이 ‘자연’과 ‘문화’로 부를 수 있는 맥락의 구성적인 조건을 상정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과 문화라는 개념을 그 즉시 탈-실체화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재구성해야한다. 왜냐하면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사고에서 <자연>과 <문화>의 범주는 그 내용이 서양의 유사물과 다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지위를 구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것들의 범주는 존재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적인 배치, 가능성의 퍼스펙티브주의, 즉 관점을 보여준다.

 

자연/문화라는 구분은 확실하게 비판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 비판은 이러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레비-스트로스가 그 구분에 부여한 ‘무엇보다도 방법론적인 가치’(Lévi-Strauss 1962b: 327)는 특히 비교에 관한 가치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원론에 서양적인 특징이 있다고 비판하는 화려한 산업은 이항성의 지적인 재산을 방기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문제는 매우 현실적인데, 민족지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대안은 현재로서는 포스트이항대립을 갈망하는 것으로 축소되는, 엄밀하게는 개념적인 것이라기보다 표현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기다리기보다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우주론에서 실제로 작동되고 있는 구분과 우리가 사용하는 구분을 대조하고 그것을 퍼스펙티브주의로 전화시켜보고자 한다.

 

 

퍼스펙티브주의

 

이 고안을 도입하도록 자극한 것은 아마존의 민족지에 자주 등장하는 선주민의 이론에 대한 언급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주에 거하는 동물 및 다른 주체—신들, 정령, 죽은 자, 우주의 다른 위계에 거하는 자, 식물, 천문학적 현상, 지리학적 기복, 물체와 인공물—를 보는 양태는 이 존재들이 인간이나 서로를 보는 양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예를 들어보자. 평상시의 상태에서 인간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동물을 동물로서 본다. 정령에 관해서는, 평소 볼 수 없는 이러한 존재[정령]를 보는 것은 ‘상태’가 평상시와 다르다는 것을 확증한다. 한편 포식동물과 정령이 인간을 사냥감의 동물로서 보는 것처럼 사냥감의 동물은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정령과 포식동물로서 본다. 아마존의 마치겡가족(Machiguenga族)에 대해 기록한 바엘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그와 같은 것으로서 본다. 그러나 달, 뱀, 재규어, 천연두의 마마는 자신이 죽이고자 하는 인간을 맥(獏ㆍ貘: 포유동물로 모양은 물소를 닮고 흑갈색이며, 남태평양ㆍ남미 등지의 밀림의 물가에 산다) 혹은 멧돼지로 본다’. 동물과 정령은 우리를 비-인간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에 그 자신을 인간으로서 본다. 이 존재들은 자신들의 집과 마을에 있을 때는 자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파악한다. 나아가 자신의 습관과 특징을 어떤 종류의 문화적인 것으로 경험한다. 즉 식량을 인간의 음식으로서 (예를 들어 재규어는 피를 마니옥 술로, 죽은 자는 귀뚜라미를 물고기로, 검은 독수리는 부패한 고기에 들끓는 구더기를 구운 물고기로) 보며, 자신의 신체적인 특성(가죽, 날개, 발톱, 주둥이)을 문화적인 장식품이나 도구로서 보며, 자신의 사회체계를 인간적인 제도(추장, 샤먼, 의례, 혼인규칙 등)처럼 조직된 것으로 본다. 여기서 ‘~로 본다’는 표현은 지각대상에 대해 문자 그대로 언급하는 것이며, 아날로지에 의한 개념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현상의 감각적인 틀이라기보다 범주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여하간 우주론적인 도식론의 주(主)이며(Taussing 1987: 462-63), 교차하는 퍼스펙티브와 의사소통하며 그것들을 제약하는 것에 바쳐진 자, 즉 샤먼은 항상 개념을 감지가능하게 하고 직관을 이해가능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즉 동물은 사람이다. 혹은 자신을 인격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념은 ‘각각의 종(種)의 가시적인 형태는 포장된 것(의복)이며 그 속에 인간적인 형상을 은폐한다’라는 사고와 연결된다. 그 인간적인 형상은 통상, 동일한 종(種) 혹은 샤먼 등의 어떤 종-횡단적인 존재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이 내적인 형상은 동물의 정신이다. 즉 인간적인 의식과 형식적으로 동일한 지향성과 주체성이며, 이른바 동물적인 가면 밑에 숨겨진 인간적인 신체도식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표면적으로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공통하는, 정신의 일 부류인 의인화된 본질 그리고 각각의 종에 특징적인, 가시적이고 신체적인 외견 간의 구분이 존재한다. 특히 후자의 외견은 고정된 속성이라기보다 가변적으로 탈착 가능한 의복이다. 실제로 ‘의복’이라는 관념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변신(Metamorphose)—동물의 모습을 하는 정령, 죽은 자, 샤먼, 다른 동물을 보는 동물, 의도치 않게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을 특권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아마존의 문화들이 노정하는 ‘변태에 넘치는 세계(highly transformational world)’로 편재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생각은 남미 선주민에 관한 몇몇 민족지에 기록되어왔는데, 대체로 간략하게 언급되었을 뿐인데도 ‘그것이 정말로 균형 잡힌 시각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기서 다뤄지는 우주론에서는 참으로 고상하다. 또 그것들은 북미의 북극권과 아시아의 문화권에서의 그것보다 한층 창의에 넘치는 가치를 수반한 것으로 보이며 더 진귀하고, 다른 대륙의 열대지역의 수렵채집민의 원조이기도 하다. 남미 중에서도 북서아마존 지역의 사회들이 더 완결적으로 전해오고 있다(Århem 1993, 1996을 참조). 그렇지만 지금 과제에 더 직접적으로 공헌하는 것은 와리족의 카니발리즘에 관한 민족지(Vilaça 1995)와 주르나족의 인식론에 관한 민족지(Lima 1995)이다. 이것들은 비-인간적인 관점과 우주론적인 범주에서 관계론적인 자연이라는 논점을 타성의 일반경제의 출현이라는 더 넓은 틀과 연결 짓는다(Viveiros de Castro 1993a, 1996b).

 

더 밀고 나가는 어떤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첫째 퍼스펙티브주의가 (다른 존재도 포섭하는) 모든 동물에 미치는 것은 아니다. 퍼스펙티브주의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종(種)의 동물에서이다. 뛰어난 포식자나 육식성의 동물, 예를 들어 재규어, 아나콘다, 검은 독수리, 독수리, 혹은 인간의 전형적인 먹이인 멧돼지, 원숭이, 물고기, 사슴, 맥 등의 동물이다. 그러나 퍼스펙티비주의가 전치(轉置)될 때의 기초적인 차원이자 구성적인 차원은 포식자와 먹이라는 상대적으로 관계적인 상태와 관련된다. 아마존에서 포식의 존재론은 퍼스펙티브주의에 상당히 적합한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맥락에 있다.

 

둘째, ‘인격성’과 ‘퍼스펙티브성’—특정한 관점에 서는 능력—은 이러저러한 종(種)에 고유한 변별적 특성이라기보다 정도와 태도의 문제이다. 이 잠재성의 양태를 어떤 동물보다도 완전하게 현세(現勢)적으로 등장시키는 동물이 있다. 그 동물 안에는 자신의 종에 대해 더 우세한 강도를 가지고 나타나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보다도 ‘더 인격적’인 존재가 된다(Hallowell 1960: 69). 또 다른 논점은 사후(事後)에 본질이 되는 성질에 관한 것이다. 이전에는 보잘 것 없던 존재가 (꿈과 샤먼의 담론에서) 인간사에 해를 끼치는 능력 있는 의인화된 행위자로서 나타날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 자신의 일이든 타자의 일이든 인격의 경험은 우주론을 둘러싼 명문화된 어떤 의무보다도 결정적이다.

 

나아가 혼과 주관성이, 살아남은 종(種)의 개체의 표상으로 회귀하는 사례가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신화 이후에 살아가는 모든 동물은 의식의 능력 등의 정신적인 속성의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우주론의 사례 또한 발견된다. 한편 동물의 영적인 ‘주(主)’의 관념(‘사냥감의 어머니들’이나 ‘멧돼지의 주재자들’)은 주지하다시피 아메리카대륙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 영적인 ‘주’는 모두 인간적인 지향성과 유사한 것을 갖추고 있으며 그와 관계된 동물성의 위격(位格)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개별 동물에게는 정신이 없을 것이라며 인간-동물 관계를 위한 간주관적인 영역을 창출한다. 덧붙여, 영적인 형체로 보였던 동물과 종의 영적인 주재자 간의 구분이 항상 명확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항상 관계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Alexiades 1999: 194)을 말해둔다. 분명한 것은 숲에서 동물을 만났을 때, 단지 동물일 뿐이라 여겼던 것들 모두가 다른 본성을 가진 정령의 변장인 경우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특히 기억해 두어야하는 것은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사고에 보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념이 있다면, 그것은 신화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과 동물 간의 비-차이화(non-differentiation)라는 원초적인 상태라는 점이다.

 

[신화란 무엇일까?] — 만약 당신이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누군가에게 물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는 바로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 아직 구별되지 않았을 무렵의 이야기이다, 라고. 이 신화의 정의는 우리에게 꽤 흥미로운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Levi-Strauss & Eribon 1988: 193).

 

신화의 이야기 속에는 그 모습, 이름, 행동이 인간적인 속성과 비-인간적인 속성이 농밀하게 섞여있는 존재들로 넘쳐나며, 그것들은 현세(現勢)하는 인간-간의 세계를 규정하는 것과 동일한 상호교신가능성에 의해 공유된 맥락에서 나타난다. 이렇게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는 신화 속에서 관점 간의 차이가 무효화되거나 강화되거나 하는 잠세적인 초점을 찾아낸다. 신화라는 이 절대적인 담론에서 각각의 종(種)은 스스로에 대해—인간으로서—다른 종의 눈에 나타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별적으로 규정된 동물과 식물, 정령의 본성이 이미 노정된 것처럼 행동한다. 신화 속에 살고 있는 인물은 무언가의 방식으로서 샤먼이며 아마존의 문화에서 그것은 확실하다(Guss 1989: 52).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것처럼, 신화는 주체 없는 담론이다(Lévi-Strauss 1964: 19). 혹은 ‘주체만’으로 가능한 담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담론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도 담론에 의해 말해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인데, 퍼스펙티브주의의 보편적인 소실점에서 한 신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전(前)-주체적 및 전(前)-객체적이라고도 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신체와 이름이 혼과 행동에 침투해서 섞여가는 존재의 상태이다. 바로 신화가 그 종언을 이야기하려는 경우(境遇)이다. 왜냐하면 모든 기원이란 끝(end)이기 때문에.

 

이 끝—또 귀결이라는 의미에서도—은 주지하다시피 레비-스트로스의 기념비적인 사부작(Lévi-Strauss 1964, 1966, 1967, 1971)에서 분석한 자연과 문화의 차이화이다. 그러나 그 과정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지점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우리 근대적인 진화론자의 신화에 흐르는 동물로부터 차이화된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과 동물에 공통하는 원초적인 조건이란 동물성이 아니라 인간성이다. 신화적인 거대한 분할이 보여주는 것은 문화가 자연에서 갈라져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문화에서 갈라져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는 인간들에게 이어지고 유지되는 속성들을 동물들이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를 이야기한다(Lévi-Strauss 1985: 14, 190; Brightman 1993: 40, 160). 인간이란 자신과 동일한 그대로 이어지는 자이다. 동물이 원-인간이지, 인간이 원-동물은 아니다.

 

아마존의 민족지에서 ‘인간성은 원초적인 플래넘(plenum)[일종의 확산장치]의 요소’라는 생각은 확실하게 정식화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동물에 한정되지 않으며 잠재적으로 모든 것의 원초에서 나타난다는 형상이다.

 

칸바족의 신화론의 대부분은 어떻게 해서 처음의 칸바족 사람들이 점차 동물 및 식물종의 최초의 대표자로 불가역적으로 변신했으며 또 천체와 지형의 기복으로 변태했는지에 관한 역사이다. (중략) 즉 우주의 전개란 그 무엇보다도 다양화의 과정이며, 인간성이란 원초적인 실체이며, 그로부터 우주의 (모든 것이 아닐지라도) 다수의 존재와 사물의 범주가 생겨났다. 오늘날의 칸바족은 변화를 피해간 선-칸바족의 후예이다(Weiss 1972: 169-70).

 

우리에게 익숙한 인류학=인간학에서는 언제나 문화에 의해 은폐된 동물성이라는 토대 위에 인간성을 구축하는데—우리는 예전에는 ‘완전히’ 동물이었으며, 지금도 우리 안의 ‘밑바닥에’ 동물인 채로 남아있다—, 이와 반대로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사고에서는 우주에 거하는 동물과 그 외의 존재는 예전에는 인간이었으며, 그 분명한 양태는 알 수 없지만, 여하간 인간이기를 계속해왔다고 결론짓는다.

 

즉 ‘자연의 모든 존재의 공통적인 참조항은 종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조건으로서의 인간성이다’(Descola 1986: 120). 사람이라는 종과 인간적인 조건의 구분은 강조되어야 한다. 이 구분의 강조는, 분명 이 구분을 공유하는 인간적-정신적인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사고로서 동물적인 의복, 그리고 퍼스펙티브주의의 일반적인 의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샤머니즘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는 아마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두 개의 특징을 연결한다. 즉 수렵의 상징적 가치화와 샤머니즘의 중요성이다. 수렵에 관해서는 생태학적 의존이 아니라 상징적인 공명이 질문시 된다는 점을 강조해두겠다. (수렵이든 어로이든) 동물적인 포식에 부여하는 우주론적인 가중치, 동물의 영적 주체화, 고유한 퍼스펙트비즘이 인정되는 인간-외의 지향성으로 우주가 넘쳐나고 있다는 이론에 관해서는, 츠카노족과 주르나족이라 불리는 부지런한 화전경작민—경작 외에는 주로 어로로 살아간다—과 캐나다와 알래스카의 우수한 수렵민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이 의미에서 식물, 천체현상, 인공물의 정령화는 동물의 정령화 혹은 그 파생물로 간주될 수 있다. 동물은 인간-외의 <타자>의 원형이며, 인척이라는 타성 외의 원초적인 형상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서 나타난다.

 

널리 보급된 수렵민의 이 이데올로기는 샤먼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비-인간은 비가시적인 의인(擬人)의 형태적인 면을 갖추고 있다는 사고방식은 선주민의 실천적 위상에서 근본적인 전제에 놓인다. 다만 이 사고는 어떤 특수한 맥락에서 전경(前景)으로 등장하는 샤머니즘이다. 아마존의 샤머니즘을 정의하자면, 어떤 개인이 의도적으로 신체의 경계를 넘어서 다른 종의 주체성의 퍼스펙티브주의에 서기 위한—이 존재들과 인류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양태의—분명한 소질이다. 비-인간적인 존재가 자신을 보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존재를 (인간으로) 봄으로써 샤먼은 종-횡단적인 대화에서 활약하는 방언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들은 그 다음에 이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귀환할 수 있다. 그것은 보통의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퍼스펙티브의 해후와 교환은 위험한 과정이며 일종의 정치적 기법—외교—이다. 서양의 ‘다문화주의’가 공공정책으로서의 상대주의라면, 아메리카대륙의 샤먼의 퍼스펙스티비즘은 우주적 정치활동으로서의 다자연주의이다.

 

샤머니즘은 앎의 양태를 암시하는 행동의 양태, 혹은 지식에 관한 어떤 이념이다. 이 이념은 몇몇 측면에서 서양적 근대에서 우대받아왔던 객관주의적인 인식론과 대극을 이룬다. 후자[서양의 객관주의적 인식론]에서 객체(=대상)이라는 범주는 텔로스(telos)를 산출한다. 즉 앎은 객체화(=대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식주체에 속한 것으로부터 혹은 원치 않는 모습으로부터 혹은/그리고 불가피하게 대상에 투사되는 것으로부터 객체 자체의 본래적인 것을 구분해낼 수 있다. 나아가 앎은 탈주체화하는 것, 현전하는 주체의 일부를 이념적으로 최소량까지 줄여나가서 대상으로서 해명하는 것이다. 객체와 마찬가지로 주체는 객체화 과정의 귀결로 간주된다. 주체는 주체가 산출하는 객체와 함께 구성되고 인식되며, 하나의 ‘저것’으로서 ‘외부에서’ 보이게 될 때에 객관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우리의 인식론적 게임은 객체화로 부를 수 있다. 객체화되지 않는 것은 비실재적인 추상인 채로 남는다. <타자>의 형식이란 물(物)이다.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샤머니즘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이념에 의해 이끌리는 것 같다. 앎은 인격화하는 것이며 알아야만 하는 저기—저편이라기보다 저 자(者)—의 시점(視點)에 서는 것이다. 즉 샤먼의 지(知)는 ‘누군가’ 즉 다른 주체나 다른 행위자인 ‘무언가’를 조준한다. ‘타자’의 형식이란 인격이다.

 

유행하는 용어를 사용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샤먼적인 인격화ㆍ주체화는 데네트(Dennett 1978)를 필두로 하는 정신에 관한 근대적인 철학자들(혹은 근대정신에 대한 철학자들)이 조망해온 ‘지향자세’의 보편화 경향을 반영한다. 더욱 정확성을 기하자면—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은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자세를 취하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고려하자면—, 세계의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세계의 표상에 이르기 위해 ‘환경적인 지향성’을 제로까지 줄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반대의 결단을 내리는 이념적인 인식론에 직면한다. 진정한 지(知)는 지향성의 최대한의 개방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행위주체성의 가설형성적 추론(abduction)’의 과정을 취한다(Gell 1998). 나는 앞서 샤머니즘을 정치적 기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것을 정치적 예술이라고 말한다. 즉 샤먼의 탁월한 해석이란 하나하나의 사건을 실제로는 하나의 행동, 즉 어떤 행위자의 내적인 상태와 지향적 속성의 표현으로 본다는 결과에 이른다(앞의 책: 16-18). 성공적인 해석은 대상 혹은 노에마(Noema: 의식의 대상이 되는 측면)로 회귀하는 지향성의 서열에 정비례한다. 주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물이나 물(物)의 상태, 바꿔 말하면 알고자 하는 상대방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관계를 결정할 수 없는 자는 샤머니즘적으로 무의미하다—즉 그것은 정밀하고 정확한 지(知)에 대해 저항하는 ‘비인칭적인 요인’이자 인식론적인 잔재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의 객관주의적인 인식론은 그 반대쪽으로 선회한다. 우리는 상식이라는 지향자세를 편의적인 의제로만, 즉 목표-대상의 행동이 매우 복잡하고 원초적인 물리적 과정으로 분해할 수 없을 때에 우리가 채용하는 무언가로만 간주한다. 망라적ㆍ과학적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모든 행동을 인과론적인 사건의 연쇄로, 그리고 그러한 연쇄를 (원격작용 등이 아닌) 물질적으로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요컨대 근대의 자연주의자의 세계에서 주체는 충분히 분석되지 않는 객체이고, 그렇다면 그 근본적인 반전을 포함하는 것이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해석상의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객체란 불완전하게 해석된 주체이다. 여기[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샤머니즘]서는 인격화하는 것 자체가 앎이다. 알기 위해서 인격화하기 때문이다. 해석의 대상이란 객체의 반(反)-해석이다. 즉 객체는 충분한 지향성의 형상—인간을 모습을 하는 동물로서, 정신으로서—에 이르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혹은 적어도 표출하는 주체와 대자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자에게 ‘접근하여’(Gell 앞의 책) 존재하는 무언가로서 규정되어야 한다. 이 제2의 선택지에 관해서는 비-인간적인 행위자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동료를 인간적인 문화의 형상 하에서 지각한다는 사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인간-외의 존재의 주체성의 세계로 향하는 ‘문화’의 번역은 ‘자연적’인 몇몇 사건과 대상을 사회적 행위능력의 가설형성적 추론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재정의하는 색채를 띠게 된다. 가장 많이 보이는 사례로서, 인간에게는 삶의 사실뿐 인 것이 다른 종의 시점에서 보면 고도로 문명화된 인공물과 장비품으로 변태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가 ‘피’라고 부르는 것은 재규어의 ‘발효주’이며, 우리가 진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맥에게는 의례용의 큰 건물이다. 인공물에는 이 흥미진진한 양의적(兩義的)인 존재론이 있다. 그것[인공물]은 대상이지만 필연적으로 어떤 주체를 지시하며, 그 때문에 동결된 행동, 즉 비-물질적인 지향성의 물질적인 구현화처럼 보인다(Gell 1988: 16-18, 67). 요컨대 ‘자연’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은 타자에게 ‘문화’일 수도 있다. 여기에 바로 인류학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이 담겨있다.

 

 

애니미즘

 

내가 말하는 ‘퍼스펙티브주의’는 최근 데스콜라의 논의(Descola 1992: 1996)가 복권시킨, 토테미즘과 대칭적 혹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자연의 계열과 사회의 계열을 분절시키는 양태로서의 ‘애니미즘’의 관념을 상기시킨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데스콜라는 ‘자연의 대상화’의 세 가지 양태를 구분할 때, 비-인간에 대한 모든 개념화는 항상 사회의 영역을 참조한다고 단정한다. 토테미즘이란 사회의 내적인 질서를 논리적으로 조직화하기 위해 자연종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의 자연과 문화의 관계는 은유적이며 계열-내, 계열-간의 불연속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애니미즘에서는 ‘사회생활의 기본 범주’가 인간과 자연종 간의 관계를 조직화하며, ‘자연의 존재에 인간적인 성향과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것에 기초해서 자연과 문화 간의 사회형태적인 연속성이 규정된다(Descola 1996: 87-88). 자연주의란 서양의 우주론에 전형적이며 환유적인 불연속성에 의해 분리된 영역인 자연—필연성의 영역—과 문화—자연발생성의 영역—간에 존재론적인 이원론을 조정한다. ‘애니미즘적 양태’는 아메리카대륙 선주민 사회처럼 ‘자연과 자신의 사회화를 대상화하는 핵심적 전략’(Descola 1992: 115)으로서 동물이 되려는 사회의 특징으로서, 세련된 내적인 구분을 결여한 사회형태학 하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 또한 토테미즘과 공존하는 조합의 방식에서 생겨나기도 하며, 거기서는 사회가 내적으로 분할된다. 예를 들어 보로로족과 그들의 의한 아로에/보페의 이원론처럼(Crocker 1985).

 

데스콜라의 논의는 야생의 사고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적인 상상력을 특징짓는 토테미즘과 분류의 논리에서 은유의 일방적인 과정에 대해서 폭넓게 나타나는 불만의 한 사례이다. 이러한 불만에서 생겨난 것이 구조주의라는 이름의 달의 뒷면을 탐사하고자 하는 근래의 시도이며, 이 시도는 레비-스트로스의 지성주의가 떠나보낸 감정을 ‘상호융합’과 ‘애니미즘’ 등의 관념에 의해 되돌려놓으려 한다. 그러나 데스콜라가 해놓은 많은 정리(定理)는 (정리를 시도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저작에 이미 있는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조직화하는 ‘사회생활의 구조화의 기본적인 범주’는 본질적으로 데스콜라가 논한 애니미즘의 사례에서는 친족범주이며, 특히 혈족과 인척이라는 범주이다. 그런데 『야생의 사고』에서 다음과 같은 소견을 볼 수 있다.

 

토템 분류나 직능 분화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하는 민족에서 혼인교환이 어떤 식으로든 자연과 문화를 중개하며 또 직접 응용하는 모델이 되기 때문임을 이와 같은 신화는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Lévi-Strauss 1962b: 170[레비-스트로스 1999: 203 일부수정]).

 

여기서는 그 후 많은 민족지학자가 주장한 아마존의 우주론적 조작자로서의 인척의 역할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레비-스트로스는 자연과 문화 간의 교환모델과 토템적인 체계모델의 상보적인 분포를 시사하면서 여기서 논하고 있는 애니미즘적인 모델과 아주 유사한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다른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의] 수렴(收斂)의 사례를 들어보자. 데스콜라는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의 공존의 사례로서 보로로족을 참조했다. 그러나 토템과 마니도(Manido)[오지브와족의 홍수신화에 등장하는 창조주] 각각의 체계가 조합되어 있는 오지브와족(Ojibwa, 북미인디언)의 사례도 인용할 수 있다(Lévi-Strauss 1962a: 25-33). 그것은 토테미즘과 공희(供犧) 간의 일반적인 대립을 나타내는 매트릭스로 기능했기 때문에(Lévi-Strauss 1962a: 295-302), 토테미즘/애니미즘의 구분의 틀에서 직접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음으로 애니미즘과 자연주의를 대비해보자. 이는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의 특징적인 차이를 이해하기에 적절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존의 것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의 대비를 다루면서, 근대적인 자연주의를 오로지 ‘존재론적인 이원론’이라는 말로 기술하는 것은 어딘가 불충분해보인다. 토테미즘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혼성의 현상으로서 존재론적이라기보다 분류적인 것 같다. 즉 다른 두 개의 양태처럼 자연과 문화 간의 관계들의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순수하게 이론적이고 시차적인 상관관계이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부터 애니미즘과 자연주의를 논하겠다.

 

애니미즘은 인간적인 계열과 비-인간적인 계열과의 관계들에 사회적인 특징을 조정하는 존재론으로 규정될 수 있다. 자연과 사회 사이의 틈이 바로 사회 그 자체이다. 자연주의는 반전된 공리에 기초한다. 사회와 자연의 관계들은 바로 자연 그 자체이다. 실제로 애니미즘적인 양태에서 자연과 문화의 구분은 사회적인 세계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은 동일한 사회우주적인 환경에 놓이게 되는데(그리고 이 의미에서 자연은 포괄적인 사회의 일부이다), 자연주의에 있는 존재들에게 이와 동일한 구분은 자연의 내부에 있다(그리고 이 의미에서 인간적인 사회는 다른 어떤 곳에도 없는 자연현상이다). 애니미즘은 사회를, 자연주의는 자연을 무표(無標)의 극으로서 아우른다. 이 극은 제각기 대조적으로 세계의 보편적 차원으로서 기능한다. 그 때문에 애니미즘과 자연주의는 비대칭적이고 환유적인 구조이다(그것들은 은유적이고 등가적인 구조인 토테미즘과 구별된다).

 

우리가 아는 자연주의의 존재론에서 사회/자연의 경계면은 자연이다. 즉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동일한 유기체이며, 다른 신체와 힘과의 ‘생태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신체-대상으로서 모든 것을 생물학 및 물리적인 필요성의 법칙에 의해 규제받는다. ‘생산력’은 ‘자연의 힘’을 이용한다. 사회적인 관계, 이것은 주체 간의 계약적 관계 내지는 제도화된 관계이며, 인간적인 사회 내부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자연주의의 문제이다—이것들의 관계들 속에 어떤 것이 ‘비-자연적’인 것일까? 자연의 보편성에 기초하는 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세계의 자리매김은 불안정하며, 우리의 전통이 보여준 것처럼,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이 오늘날 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자연의 일원론과 (문화연구와 상징인류학이 현대적인 표현형의 하나가 되고 있는) 자연/문화의 존재론적인 이원론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이원론과 (신체/정신, 순수이성/현실이성 등의) 그 상관물을 확립하는 것은 <자연>의 관념이 궁극적인 참조항이라는 성질을 강요할 뿐이다. <자연>의 관념과 <초자연>의 관념의 신학적인 대립, 그 투명한 인식론의 직접적인 계보의 후예로서 <자연>의 관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는 <정신>의 현대적인 이름이다. 적어도—자연과학(Naturwissenshaften)과 정신과학(인문과학 Geistewsissenchaften) 간의 구분을 떠올려보라—<자연>과 <은총> 간의 불확실한 계약의 이름이다. 애니미즘에 관해서는 불안정함이 대극(對極)에 위치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질문은 동물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와 자연의 혼성을 인식한다 해도, 우리 사이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것이 인간을 구성하는 인간성과 동물성의 종합을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자연을 보편적인 사회적 형식으로부터 차이화하는 것이며, 또 ‘특히’ 인간적인 신체를 ‘공적(公的)’으로 종-횡단적인 정신으로부터 차이화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인간적인 세계 속에 있는 차이와 성질을 비-인간적인 세계에 투영하는 것으로서 애니미즘을 정의하는 것과, 즉 인간-내의 범주와 관계성이 모든 사물의 배치도를 그려내기 위해 사용되는 ‘사회중심’적인 모델로서 애니미즘을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해도 그것이 과연 의의 있는 일일까(Descola 1996)? 이러한 투영론적인 해석은 이론에 대한 몇몇 주석에 분명하다. ‘토템적 체계가 자연에 따르는 사회를 모델로 한다면, 애니미즘적 체계는 사회에 따르는 자연을 모델로 한다’(Århem 1996: 185). 여기에서 분명해지는데, 문제는 애니미즘이라는 용어의 전통적인 의미와 ‘미개의 분류’를 사회형태학으로 환원하는 것과의 사이에 원치 않는 유사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문제가 래드클리프-브라운—토테미즘에 대해 서술한 그의 최초의 논문—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사회/자연의 관계에 부여된 고전적인 특징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잉골드(Ingold 1991, 1996)는 아날로지칼한 투영 혹은 자연의 사회적인 모델화라는 도식이 자연주의의 환원론을 피해가지만 [결국] 자연/문화의 이원론에 빠질 뿐이라고 말한다. ‘진짜 자연적’인 자연과 ‘문화적으로 구축된’ 자연을 구분함으로써 무한후퇴에 직면하는 우주론에 관한 전형적인 이율배반으로서 나타날 뿐이라는 것이다. 모델 혹은 아날로지라는 관념은, 사회관계가 구성된 것이라는 자의적인 영역과 그러한 관계가 표상된 것이라는 비유적인 영역 간의 구분을 먼저 묘사하도록 상정된다. 달리 말하면, 공통적인 사회성에 의해 인간과 동물이 관련된다는 사고는 모순적이지만 제1의 존재론적인 불연속성에 의존한다. 비-인간적 세계에 대한 인간적인 사회의 투영으로 해석되는 한, 애니미즘은 ‘토템적’ 내지는 분류적인 독해에 현혹된 채의 환유의 은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것은 비-인간적인 영역과 그것과 인간적인 사회와의 관계성을 관념화하기 위해 인간적인 사회의 영역의 범주를 비유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서 애니미즘을 기술할 수 있을까의 문제이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질문은 데스콜라가 말한 ‘애니미즘’과 어딘가 닮아있는 것도 같은 퍼스펙티브주의가 실제로 어떤 점에서 인간중심주의를 표명하는 것일까 라는 것이다. 즉 ‘동물은 인격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 하나 의문이 있다. 만약 애니미즘이 인간적인 인지와 지각의 능력, 즉 동일한 주체성의 형식을 동물에 부여하는 것에 의거하는 것이라면, 이를테면 동물이 ‘본질적’으로 인간이라면 동물과 인간 간의 차이란 대체 무엇일까? 만약 동물이 사람이라면 왜 그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일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왜 퍼스펙티비즘이 생겨나는 것일까? 우연찮은 신체적인 형상(의복)을 정말로 외견과 본질 간의 대비의 관계로 기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Descola 1986:120; Århem 1993: 122; Riviére 1994; S. Hugh-Jones 1996a). 마지막으로 애니미즘이 자연/문화의 이원론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대상화의 기능이라면 남미의 우주론에서 이 대립이 담당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암시하는 그 수많은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의 서양적인 이원론에 대한 선주민의 투영이 아니라고 한다면, 또 다른 ‘토템적 환상’을 다룰 수 있을까? <자연>과 <문화>라는 개념을 단지 개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면, 이 개념들은 아메리카대륙의 다수의 신화의 의미론적인 대조성, 단일하고 근본적인 이분법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이 대조성을 조직하기 위해 『신화학』에서 사용하는 ‘백지의 라벨’(Descola 1996: 84)에 불과한 것일까?

 

(계속 이어집니다)

 

 

Perspectivism and Multinaturalism in Indigenous America in THE LAND WITHIN-Indigenous territory and perception of environment, 2005, pp. 36-74.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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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현실>을 그리다:

‘조용한 혁명’ 이후 인류학과 과학ㆍ자연ㆍ인간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와 철학자이자 『식인의 형이상학』을 번역(공역)한 히가키 타츠야(檜垣立哉)의 대담을 간추려 요약 정리한다. 한국인류학의 수준은 일본인류학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치지만, 80년대 이후의 한국인류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모색하는 데에 참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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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조용한 혁명

 

 

(히가키) 1980년대만 해도 일본에서 인류학은 철학이나 사상과 하나였다. 당시에는 사상연구자가 인류학문헌을 읽는다거나 반대로 인류학자가 철학문헌을 읽는 일이 일상사였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인류학과 철학은 급속도로 단절된다. 브루노 라투르의 인류학이 부분적으로 들어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프랑스의 특수한 과학론의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철학의 측면에서도, 이론으로서도 인류학은 종말을 고했다. 그런데 최근 인류학에 새로운 흐름이 다발적으로 생성되고 있다.

 

(카스가) 인류학은 80년대 후반 사상적으로는 표상주의[한국에서는 상징인류학이라는 타이틀로 유입되었다]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인류학자들은 조사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을 강하게 표명함과 동시에, 기존의 민족지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그것이 어떤 단절을 낳았다. 그리고 그것은 제임스 클리포드의 『문화를 쓴다』로 대표되는 표상주의에 갇히고 만다. 인류학이 이전의 민족지적 전통에 과도하게 반응한 것은 표상이 대리/대변(representation)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From the Native’s Point of View”(현지인의 관점에서)는 지금까지도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 새로운 흐름이 80년대 후반에 생겨난다. 그 대표주자로 로이 와그너와 메를린 스트래슨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리/대변의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한다.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거칠게 말하면 그들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가능세계를 표출시키는 것이다. 즉 문화의 ‘발명’ 혹은 ‘인공물’의 측면을 강조한다. 조사대상인 사람들 자신이 문화를 ‘인공물’로 ‘발명’하듯이, 인류학자 또한 그들의 문화를 ‘인공물’로 ‘발명’해나간다. 이를 통해 선주민의 사고는 우리의 사고의 잠재태가 되며, 양자는 서로에게 반향한다—수평적 반향(lateral reflection). 이 수평적 반향은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과 공명한다.

 

 

세 번의 전회

 

(히가키) 인류학에서는 지금까지 세 번의 전회가 있었다. 그 첫 번째 전회는 19세기 후반 인류학이 성립한 사실 그 자체를 가리킨다. ‘인류학자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 그 세계의 미세하고 희귀한 문물을 기술한다’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인류학의 출현을 말한다. 두 번째 전회는 국민국가의 존재방식을 성찰하면서 그 비판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성찰의 인류학(Self-reflexive Anthropology)이다.

 

(카스가) 성찰인류학은 어떤 의미에서 포스트모던인류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히가키) 포스트콜로니얼의 담론은 자기성찰 속에 표상의 문제를 포괄한다[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가 딱 그렇다].

 

(카스가) ‘자기성찰’은 근대를 특징짓는 자기성찰성에 갇힌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히가키) 자기성찰은, 예를 들어 유럽이라는 주체가 타자를 볼 때 거울을 보듯이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을 말한다. 즉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다. 타자를 봄으로써 자신을 본다는 것, 타문화를 보면서 자문화를 본다는 것. 이것이 근대의 자기포박성이다.

 

(카스가) 여기서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가 언제나 의문시된다. 이에 대해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관점[퍼스펙티브]이 사물 그 자체에 내재해있다고 논하면서 이 의문을 종결시킨다. 이것이 세 번째 전회이다. 이 세 번째 전회가 일어난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레비-스트로스를 계승한 프랑스의 인류학자들을 함께 거론할 필요가 있다.

 

(히가키) 브루노 라투르는 프랑스인류학에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점하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필리페 데스콜라와 프레드릭 켁이 이른바 프랑스인류학의 주류라 할 수 있다.

 

(카스가) 그러나 최근의 인류학 내의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를 이끄는 이들은 비서구의 인류학자들이다. 스트라샌 등과 같은 영국인은 존재론적 전회와 이론적으로 연결되지만, 그 자신은 존재론적 전회를 언급하지 않는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스트라샌의 기념강연에 초청되어 “Who is Afraid of the Ontological Turn?”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바 있는데, 이것은 존재론적 전회가 비서구의 인류학자들을 중심으로 ‘트릭스터’(trickster: 신화세계에서 선과 악, 창조와 파괴, 신과 자연의 세계를 넘나들며 장난치는 존재)처럼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작금의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트라샌 등의 영국인류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것이 현재 영국의 인류학이다. 이렇듯 인류학의 상황은 확실히 변하고 있다.

 

(히가키) 지금까지의 인류학은 역시 문화에 특히 주목해왔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도 데리다적인 정의와 레비나스적인 윤리와 연결되어 그것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스피박이 그 전형인데, 거기서는 휴머니즘/인간성이 중시된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 자연주의(naturalism)의 흐름도 존재해왔다.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이나 스트라샌의 인공물에 대한 고찰이 그것인데, 사물 그 자체에 내재된 주체성을 찾아내어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특권성—이것이 19세기적인 제국주의를 이끌어왔다—의 수정을 기도하는 것이다. 이 흐름은 정치적으로는 차별과 식민주의와 전쟁이 계속되는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인공지능이나 선진과학 등의 기술의 융성과도 관계한다. 이러한 자연주의가 20세기의 어느 시점에서 이론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카스가) 맞다. 8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산업구조가 변화됨에 따라 산업 그 자체에 대한 재고찰이 행해졌고 그 다른 한편에서 소련이 해체되었다. 또 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바이오와 정보산업이 활기를 띠어갔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사회변화가 존재한다.

 

(히가키) 스트라샌과 와그너는 레비-스트로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금의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연구는 레비-스트로스를 『천개의 고원』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카스가) 와그너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당연히 의식하고 있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인류학자인] 에드먼드 리치는 구조주의적 도식을 만들었고(물론 간단한 도식이지만), 와그너는 구조주의적이며 3차원적으로 매우 복잡한 모델을 만들었다. 그는 뉴기니의 고산지대의 사회가 갖는 신화를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다만 레비-스트로스로부터 자극을 받긴 했지만, 레비-스트로스를 직접적으로 계승했다고 말할 수 없다.

 

(히가키) 데스콜라나 켁은 자신들이 본류라고 말한다(웃음).

 

(카스가) 프랑스에서는 어떤 학문을 하든지 간에 교육과정 속에 철학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을 빼고서는 학문을 말할 수 없다.

 

(히가키) 그렇다. 프랑스 인류학에서는 모스, 바디유, 레비-스트로스라는 계보가 강조되고, 그 다른 한편으로 샤르트르와 메를로-퐁티가 공동관계 속에서 20세기 전반의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 의미에서 프랑스인류학은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프랑스인류학과 영국인류학의 병행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둘 다 식민정책에 기인한 제국주의시대의 잔존물이다.

 

(카스가) 물론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인류학 또한 영국이나 프랑스의 인류학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민족지가 매우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자신이 현지에 가서 식인에 관한 직접적인 데이터를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의 사례를 스스로의 사고와 연결 지으면서 일종의 사고실험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포로에게 성찬을 대접하고 누이의 남편으로 삼았다는 그의 기술은 그의 조사지의 과거기록에도 없으며 다만 페르난데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와 쓴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민족지적 분석은 구체적인 사실군이 아니라 이론화의 예시이다.

 

(히가키) 확실히 민족지학자라면 다양한 사례를 사용해서 도식적인 전망을 도출해내야 한다.

 

(카스가) 그렇다. 인류학에서 세부적인 사항들은 이론으로 만들어가는 데 저해가 되지만, 그 한편으로 텍스트의 외부성을 환기시키고 ‘뭔가 이상한데 재밌네’라고 할 만한 텍스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것이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재밌음이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게는 없다. 그는 인류학을 잘해나가기 위해서 철학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사고를 둘러싸고 인류학을 재구축하며 이를 통해 철학과 인류학의 두 영역을 연결한다.

 

 

인간세계를 넘어서

 

(히가키) 철학과 인류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인류학의 세 번째 전회, 즉 현재의 인류학에 대해서 질문해보겠다. 인류학의 세계적인 흐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일본에서도 작년 ‘인류학의 전회’라는 타이틀로 인류학의 최근 성과를 총서로 번역출간하고 있다. 인류학에 기대되는 역할은 지역연구와 국제공헌만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간 인류학이 문화, 이민족, 혹은 다문화공생사회라는 테마에 함몰되어왔던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테마는 중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미국의 트럼프로 대표되는 우익화 등의 다문화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지구화와 이민사회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단지 이론적으로 다문화공생을 제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기력하다. 이에, 신유물론이나 사변적실재론이라는 현대사상의 새로운 흐름과 관계하는 것이긴 한데, 인간 자신의 자연성을 고찰하면서 인간 그 자체에서 무언가를 도출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세계에 머물지 않는 관점, 즉 자연이라는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다자연주의라고 말하는 그것으로서 이 자연은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하다.

 

(카스가) 인간세계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그러나 초월적인 조감도가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현실을 새롭게 그려낼 것인가? 이 테마에는 스트라샌을 필두로 하는 현대 인류학자들의 고심의 존재론적 전회가 놓여있다. 예를 들어 조셉 존슨은 캐나다의 수렵민의 세계관은 물리학과 같은 자연의 진실을 그 자체로 다룬다는 주장을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전개하고 있다. 또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저서도 있다. 콘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영향을 받았고, 언어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숲의 환경 속에서 비인간을 포함하는 유기체들이 상징이 아닌 아이콘과 인덱스의 수준에서 어떻게 복합적인 의미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도전적인 저술인데, 이러한 ‘존재론적 전회’를 밀어붙이는 인류학자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경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학의 성과랄까 보편적인 진리가 축척되면서 불가사의한 현실을 허구에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사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존재론적 전회의 흥망은 여기에 달려있다. 나아가 존재론적 전회는 서양의 인식론적 주체를 비판하는데, 존재론적 전회의 비판론자들은 존재론적 전회가 서양적인 보편주의를 재구축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돌파해나가는가가 관건이다. 스트라샌의 영향을 받은 과학인류학자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과학을 기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기술을 빼고서는 과학을 이야기할 수 없으며 과학 특유의 사고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히가키) 인류학의 세 번째 전회의 특징은 로봇이나 유전자공학 등의 첨단과학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주의는 그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테크노그라시적인 사물을 별종의 자연으로 사고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과학 혹은 자연은 어떤 과학이며 어떤 자연인가?

 

(카스가) 수학적 언어와 자연언어는 완전히 다르므로 아날로지만으로는 상호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떻게 관계지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히가키) 과학의 언어라고 말한다면, 과학 자체도 언어인 것이다. 수식을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그것 또한 하나의 문화이다. 자연을 어떤 위상에서 다룰 것인가 혹은 자연적인 신체란 무엇인가? 즉 어떤 의미에서, 자연과학은 서양에서 발전한 일종의 신화라고 말하는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로 되돌아가고 있다. 여하간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을 문제시한다 해도 반드시 문화가 섞이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자연과 다자연주의를 생각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작금의 인류학에서 이러한 환경, 자연, 테크노그라시로 기우는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카스가) 간단치는 않다. 방법론이 어느 정도 잡히게 되면, ANT의 분석론과 같은 연구방법론으로 경도되고 만다. 문제는 어떤 접근법도 데카르트적인 심신이원론을 우선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수학적 언어와 자연언어를 누구보다도 먼저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만들어내었다. 현대의 우리는 뇌신경과학과 정보공학의 발전에 의해 바로 이 두 개의 영역을 가교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원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원론의 내부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것을 다루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이 작업 자체가 새로운 문화의 창출이며 과학의 새로운 지침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가키) 최근 일본인의 DNA 분석을 대규모로 진행한 바 있다. 이 기법은 과거에는 차별을 조장한다 하여 비판받았다. 일본열도의 인간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를 유전자를 통해서 밝혀내는 것이다. 즉 DNA를 철저하게 분석함으로써 일본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단일한 것이 아님을 자연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며, 이것은 유물론적인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

 

(카스가) DNA 결정주의로 비판받았던 것이 오늘날의 기법으로 사용되어, 문화를 붕괴시키고 있다. 인간인가 비인간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자신을 다시 보는 것이다.

 

(히가키) 물론 이러한 DNA적인 기법 이전에 일본어 화자 공동체라는 하나의 틀이 있다. 이것의 습속, 역사, 문화적인 깊이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러한 문화적인 논의와는 별도의 출발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는 이것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파헤쳐야 할까? 자연인류학과 문화인류학, 고고학과 철학과도 연결되는 이 테마를 과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써, 포스트콜로니얼니즘을 한칼에 베어버리고 전복시키는 장치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결코 반동이 아니며 사물과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에 대한 논의를 열어가는 것이다.

 

(카스가) 좌파적인 관점에서도 자연주의는 진보적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오늘날의 가능성

 

(히가키) 퍼스펙티브주의란 무엇인가?

 

(카스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강조하듯이 그것은 ‘타자의 타자는 타자이다’라는 테마로 향하며 차이의 (내재적인) 제한 없는 생성을 이끌어내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스트라샌과 와그너를 읽어왔다면, 그들이 이미 아날로지의 연쇄라는 형태로 이 논의를 전개해왔고 다만 어떤 주의로 주장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히가키) 『식인의 형이상학』의 원제가 『안티 나르시스』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식인의 형이상학』은 『안티 오이디푸스』에 대한 저항이다. 결국 『안티 오이디푸스』도 나르시시즘이 아닌가 라는. 나르시시즘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타자를 말할 수 없다고.

 

(카스가) “From Native’s Point of View”가 인류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테제라는 것을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이 관점에서 반성은 확실히 나르시시즘적이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이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의 타자는 타자이다’로 향하는 첫걸음으로서 그는 ‘타자’를 자기의 포식자와 같은 적(敵)의 이미지로 제기한다.

 

(히가키) ‘적’(敵)은 플라톤적인 우애와 같은 그리스 철학에 대한 어떤 안티테제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리스적인 ‘친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것도 결국은 지중해문화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한 종교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라는 비판이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문화적 배경은 유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아마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때문에 전세계를 지배하는 일신교적 체계와는 다른 문화기반을 가지는 아메리카대륙의 선주민 인디오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류학을 구축할 수 있었다.

 

(카스가) 서양화(西洋化)란 동시에 근대과학의 보급과 발전이기도 하다. 아무리 서양이 싫다 해도 서양에서 생겨난 과학적 사고방식은 제도적으로 세계각지로 확산되며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의 입장은 이것을 더 넓은 사고방식의 관점에서 다시 다뤄보자는 것이다. 앞에서 조금 언급했다시피 스트라샌의 아날로지적인 연대가 매우 중요한데, 이 연대가 대칭적인 표현으로서 프랙탈적인 구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과 대비한다면 대칭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날로지적인 유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비대칭적이며 그것은 결정적으로 과학적인 유대와 다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레비-스트로스의 실타래가 나타난다. 『신화학』에서 전개된 신화 간의 유대는 원칙적으로는 대칭성의 파괴로서 제기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패턴의 실뭉치라고 한다면, 그가 통찰한 패턴에서 패턴으로의 변화는 과학을 포함해서 우리의 생활을 분석하기 위한 지침이 될 수 있다.

 

(히가키) 프랑스철학에서 푸코는 의학사를 발굴해내었지만 과학전체에 대해 주목하지는 않았다. 들뢰즈&가타리는 스트라샌과 같이 프랙탈과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과학 그 자체를 그 정도로 탐구한 것은 아니다. 데리다에 대해서는 좋든 싫든 ‘언어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레비-스트로스의 이질성이 더욱 현저하게 드러난다. 그는 ‘야생의 사고’라는 테마로 서양적인 과학을 대칭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표적은 역시 ‘과학’이 아닌가?

 

(카스가) 레비-스트로스는 서양철학에 대해서는 대상화했지만 과학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히가키) 그러므로 레비-스트로스를 어떻게 읽어야하는가는 큰 과제로 남아있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들뢰즈&가타리의 다양체와 잠재성의 논의를 연결짓는 수법으로 레비-스트로스를 다루고 있으며 이것은 매우 흥미롭고 독창적인 독해라고 생각한다. 또 레비-스트로스에게는 패턴의 문제가 있다. 그는 생물학적인 모델 패턴의 변형과 확장을 원용하면서 문화의 구조를 보고자 했다.

 

(카스가) 그의 표현대로, ‘구체적인 것의 과학’을 가지고 과학을 넘어서고자 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히가키)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은 철학자에게 가시와 같다. 데리다, 들뢰즈, 푸코의 사상은 다루기 쉽다. 그들은 철학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의 작업에 대해서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도 세부적이기 때문에 읽어나가기가 어렵다. 레비-스트로스가 60년대에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다루기 어려운 존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통합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그것 자체가 반동적으로 흐르게 되고, 그 어렵다는 라캉적인 정신분석과 비교해서도 레비-스트로스의 작업은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카스가) 타자의 철학ㆍ사상과의 유대 하에서 그 자체의 실용성을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웃음). 고유명사가 많은 까닭에 읽기가 귀찮기도 하고.

 

(히가키) 그러나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든 데스콜라든 라투르든 들뢰즈&가타리든 어떤 의미에서는 레비-스트로스의 자식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스가) 나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레비-스트로스의 저작이 아니었다면 인류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인류학은 영미계가 강했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그의 업적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내가 삼은 그의 지침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야생의 사고』의 마지막 문장인 ‘인류학의 목적은 인간을 용해시키는 것이다’에 있다. 또 하나는 『신화학』을 지지하는 ‘감각적인 것은 이론적인 것이다’에 있다. 전자는 이미 현대인류학의 테마의 하나가 되었다. 내게 ‘용해’는 ‘구체적인 것의 과학’의 구축이 근대과학과 함께 전개해온 과정에서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후자의 연구를 통해 열려진다. 근대과학은 ‘구체적인 것’의 과학과 마찬가지로 감각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도 수학자도 좌변과 우변에 완전히 다른 것을 놓음으로써 방정식을 만들어낸다. 양변은 단지 약속에 따라 증명과 물리량의 측정에 따라 등치된다. 새로운 대칭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들뢰즈도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타리와의 마지막 공저인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도래할 수밖에 없는 민중’을 위한 과학을 예술ㆍ철학과 나란히 놓은 것이다.

 

(히가키) 들뢰즈도 『감각의 이론』이라는 책을 썼다. 프란시스 베이건의 그림을 사용하면서 감각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을 접합시키고자 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감성의 논리이다.

 

(카스가) 레비-스트로스의 추상성은 매우 높다.

 

(히가키) 그렇다. 그 추상도는 들뢰즈와 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레비-스트로스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카스가) 영미계의 인류학에서도 『친족의 기본구조』는 비판해도 『신화학』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못한다. 레비-스트로스에서 남은 것은 바로 이 작업이다.

 

 

인류학과 근대

 

(히가키) 인류학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철학이나 사회과학(사회학)과의 관계성은 예전부터 논해져온 바이고 최근에는 선사고고학이라는 분야에서 착종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외에도 예를 들면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과학인류학자로 소개된 브루노 라투르의 ANT도 그 교착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낸다.

 

(카스가) 개인적인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회과학에 거의 기대하는 바가 없다. 지금 나의 대학소속은 ‘사회과학연구과’인데, 예를 들어 ‘사회학이론’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다. 지금의 사회과학은 새로운 토픽으로 옮겨갔는데, 현장은 그와 동떨어져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히가키) 즉 문화적 표상을 좇을 뿐이다. 난민, SNS, 혹은 빈곤문제 등의 ‘유행’에 빠져있다.

 

(카스가) 일종의 사고의 태만이다. 철학과 인류학은 각각의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러한 유행에 빠지지 않는 제약을 스스로에게 부과한다고 생각한다. 그 한편으로 개념에 의거해서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강한 집념이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 구체의 세부에 대한 집착이라는 엄격함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학자가 해설자가 되려는 학계의 풍토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카스가) 매우 소박한 의미에서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며, 나아가 국가와 법을 가진 이상 동물 집단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사실을 인류학도 사회과학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히가키)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은 어떻게 넘어설까, 혹은 어떻게 그것이 연결되는가로 논의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ㆍ자연ㆍ인간

 

(히가키) 이제 우리의 대담도 끝을 향하고 있다. 다시 과학의 문제로 되돌아오면, 과학이 신체에 침투되는 가운데 인간이 점차 사이버화되는 것인가? 윤리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데, 기술적으로는 이미 그것을 넘어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근대가 갖고 있는 이념을 어떻게 사고해야 할까? 나 자신은 이러한 이념이 이미 소멸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물과 비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는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혹은 말년의 데리다가 물은 것처럼, 동물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카스가) 우리는 지금 전체적인 조망이 부재한 단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 개인의 전망을 말하면, 50년 후에도 인류학이 존재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단지 테크노그라시의 발전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양자생물학에서 비결정성을 생각할 때, 현 단계에서는 고전역학적인 이론과 양자역학의 논의는 완전히 정합성을 갖고 있지 않다. 양자의 수준에서 정합화될 수 없기 때문에 분자와 세포, 혹은 인간사회의 레벨에서 전체를 통일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의 생물과학처럼 세부적으로 쪼개어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열역학과 진화론처럼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인류학 또한 자신의 전망을 갖기 어렵다.

 

(히가키) 20세기의 사회과학은—통계과학은 별도로 하고—일반적으로 그러한 물리현상과 사회현상의 접합을 회피해왔다. 그러나 19세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2020년에는 어떤 기술이 등장할 것이며 어떤 사회적 문제가 나타날 것인지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감지하는 것은 사회라는 것의 이미지와 형태가 기술에 의해 완전히 변해가고 있는데 이 원리를 누구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학과 일본

 

(카스가) 안타깝게도 지금의 일본에서 인류학과 민속학은 거리를 두고 있다. ‘일본적인 인류학’에 대해 말하면, 일본을 연구하는 인류학보다 일본의 인류학자에 의한 해외연구가 훨씬 더 ‘일본적’이며, 이른바 보편으로 통하는 고유성을 띠고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앞으로의 인류학은 민속학과 관계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히가키) 반대로 말하면, 앞으로 과제로 남겨진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일본연구에 민속학을 편재하는 것이다. 일본철학의 역사에서 민속학적 사고가 가진 임팩트는 결코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다. 또 그러한 민속학적 사고의 흐름은 세계적인 다자연주의에 대해 또 다른 방향의 접근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스가) 공감한다. 그러나 나 자신은 일본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을 경계한다. 국제적으로 발언하는 경우에도 “From the Native’s Point of View”를 역이용할 생각이 없다. 자기 속에 타자를 끌어낸다는 것은 나르시시즘의 올가미일 뿐이다. 오히려 타자의 타자로서, 또 다른 타자가 되는 전망을 세워야 한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식인의 형이상학』은 레비-스트로스의 자식으로서 그 작업을 보여준 것이다. 

 

 

 

春日直樹+檜垣立哉、「新な<現実>を描く」『現代思想』3月臨時増刊号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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