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의 형이상학』(2014 영어판, 일본어판은 2015년 10월 출간)의 일부를 번역했다. 이 책은 번역출간이 예정되어 있어서 번역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번역본이 (빨라야) 내년 말이나 되어야 나온다고 하고, 세미나 텍스트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다른 논문을 삼기에는 그 내용이 이 책만 못하다. 그래서 책의 일부를 번역하기로 했다. 내가 번역의 원텍스트로 삼은 것은 일본어번역본이다. 어차피 (저자가 정본으로 인정한) 불어본도 포루투칼어 논문과 영어 논문의 편집번역본이기 때문에 '중역'은 매한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방심하기로 했다. 오역에 관해서는 한국어번역정본이 나오면 비교참조할 생각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와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를 교차독해하는 이 책의 일부를 굳이 번역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야생의 사고』의 독해가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의 사고』는 이제까지 서너번은 읽은 것 같다. 그런데도 책의 논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지치긴 하는데 하다보면 논파되겠지.. 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식인의 형이상학』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식인의 형이상학』 또한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적 사유방식의 전제를 완전히 뒤엎기 때문이다. 그래도 『야생의 사고』보다는 친절한 것 같다. 이 책은 총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사상(事)의 놀라운 회귀

2장 퍼스펙티브주의

3장 다자연주의

4장 야생의 사고의 이마주

5장 기묘한 상호교차

6장 다양체의 반-사회학

7장 모든 것은 생산이다

8장 포식의 형이상학

9장 횡단하는 샤머니즘

10장 생산이 모든 것은 아니다

11장 시스템의 강도적 조건

12장 개념 속의 적(敵)

13장 구조주의의 생성

 

이 중에서 먼저 3장을 번역해서 올려둔다. 앞으로 4장, 8장, 12장, 13장을 순차적으로 (시간 나는대로) 번역해서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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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연주의

 

 

 

 

“분명 우리 근대인은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내재평면(內在平面 Plane of Immanence)을 잃고 말았다…(들뢰즈&가타리 1991: 100).”

 

[내가 이 책에서] 지금까지 기술한 것은 모두 선주민의 이론적 실천에 따른, 대륙의 신화학의 창시자적인 직관에 이끌린 일종의 연역적 전개에 다름 아니다. 즉 그것을 채우고 구성하고 분할하고 현실적인 실재로 넓혀가는, 모든 ‘순간’의 존재론적인 상호침투에 의해 규정되는 고유하게 역사적인 환경—어떤 유명한 절대적 과거, 결코 한 번도 현재가 되지 못하였기에 지나가버린 것도 아닌 과거, 그리하여 현재가 그저 흘러간다는 그러한 전(前)역사적인 환경—의 직관에 의한 전개에 다름 아니다.

 

『신화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듯이, 선주민의 내재평면을 서사화하는 것은 그곳에서 나타나는 인물 혹은 행위자의 종(種) 형성의 이유와 결과—특징적인 신체성의 상정—를 특권적인 방식으로 해명한다. 이 속에서 모든 것은 인간적 측면과 비인간적 측면이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뒤섞인 불안정한 일반적 조건을 나누어가진다.

 

[나는 당신에게 단순한 질문을 하겠다. 신화란 무엇인가?] 그 질문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누군가에게 물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는 바로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 아직 구별되지 않았을 시대의 이야기=역사라고. 이 신화의 정의는 내개 꽤 흥미로운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Lévi-Strauss & Éribon 1988: 193).

 

이 정의는 실제로 매우 깊다. 그런데 레비-스트로스가 염두에 둔 것은 [지금 내가 논하고자 하는 것과] 조금 다른 방향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겠다. 신화적 담론이란 완전한 투명성을 갖춘, 잠재적이며 전(前)우주론적인 조건에 기초하여 사물의 현재 상태를 현실화시키는 운동의 영역에 있다. 그것은 ‘카오스모스’이며, 그곳에서는 존재들의 신체적인 차원과 정신적인 차원이 각각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 전(前)우주는 보통 서술되는 것처럼 인간과 비인간 간의 원초적인 동일화를 보이기는커녕, 무한의 차이에 의해 관통될 뿐만 아니라, 차이가 각각의 인물 혹은 행위주에 내재할 때조차도(혹은 그러한 탓에) 그러하다. 이 무한의 차이는 현실적 세계의 종(種)과 질(質)을 구성하는, 무한하고 외재적인 차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에 따라 신화에 고유한 질적 다양성의 영역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신화에서 샤먼이 재규어의 모습을 한 인간의 정동 덩어리인지 인간의 모습을 한 고양이과 동물의 정동 덩어리인지는 엄밀하게 결정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신화적인 ‘변신(metamorphose)’은 하나의 사건, 즉 현장에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등질적 상태의 외연적인 위치변동이라기보다 오히려 이질적인 상태의 내포적인 중첩이다. 신화는 역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변신은 과정이 아니며, ‘아직껏’ 과정이 ‘아니’며, ‘결코’ 과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변신은 과정의 과정에 앞서 그 너머에 있다. 그것은 생성의 형상(혹은 형상화)인 것이다.

 

그리하여 기술된 신화 담론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이어짐(線)이란 식별 불가능한 전(前)과정적 흐름이 우주론적인 과정 속에서 흘러갈 때의 순간적인 박편(薄片)이다. 이후 재규어의 (혹은 인간의) 고양이과 동물적 및 인간적인 차원은 각각 잠세적인 지도와 지면으로서 서로 교대해가며 기능하게 된다. 이에 기초하여 원초적인 투명성 혹은 무한한 착종은 세계의 모든 내적인 존재자들의 구성을 특징짓는 (인간의 혼의, 동물의 정신의) 비가시성과 (인간의 신체와, 동물의 신체적인 ‘의복’의) 불투명함 속에서 분기되며 전개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가시성과 불투명성은, 잠재적인 기저가 파괴 불가능한 것이거나 닿을 수 없는 것이라면, 상대적으로 반전 가능하다(선주민의 세계의 재창조라는 거대한 의례는 바로 이러한 파괴 불가능한 기저의 반(反)-실현 장치이다).

 

우리는 앞서 신화에서 유효하게 움직이는 차이란 무한하고 내적이며, 그것은 종(種) 간의 외적으로 유한한 차이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신화적인 사건에서 행위자와 피행위자를 규정하는 것은 실제로 그것들이 다른 존재일 수 있는 능력을 내재적으로 갖춘다는 것에 있다. 이 의미에서 각각의 인물은 무한히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라진다. 그러한 인물은 신화적 담론에 의해 단숨에 설정되고 치환되고 변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차이화’는 ‘정신’ 개념의 특징적인 성질이다. 따라서 모든 신화적 존재는 정신으로서(혹은 샤먼으로서) 파악된다. 그리하여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든 유한적인 양태 혹은 현실적인 존재자는 그 존재이유가 신화 속에서 말해지며 정신으로서(정신이었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다. 정신적 주체 간에 상정되는 미분화는 유적(類的)이든 종적(種的)이든 개별적이든 본질적이고 고정된 동일성, 즉 구성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과 관련된다.

 

결국 신화는 유동적이고 내포적인 차이에 의해 명받은 존재론적 영역—그것은 이질적인 연속성 위의 각각의 점에 우발적인 일로 갖춰진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영역에서 변용은 형식에 앞서고 관계는 항에 우선하며 사이는 존재에 내재한다. 각각의 신화적 주체는 순수한 잠재성이기 때문에 ‘다시금 이미’ 그것이 ‘뒤이은 곳의 것’이기도 하며, 따라서 그것은 현실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포스트신화적인 (광의의) 특징화에 의해 도입된 외연적인 차이는 구조인류학의 거대한 테마(신화소)를 구성하는 연속성에서 이산성(離散性)으로 이행하는데, 무한의 내적인 자기동일성을 가진 몰(mole)적인 덩어리로 결정화되고 만다(각각의 종은 내재적으로 등질적이며 각각의 분지항(分肢項)은 그와 마찬가지로 무차이적으로 종을 그 자체로 표상할 수 있다). 이 덩어리들은 외재적인 틈새에서 분리되고 양화되어 측정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종(種) 간의 차이는 상관성의, 비율의, 성격의 교대의, 동일한 영역의, 동일한 성질의, 유한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전(前)우주론적 세계의 이질적인 연속성은 그리하여 그 장소를 등질적인 이산(離散)에 물려준다. 그곳에서 각각의 존재는 그 자신뿐인데, 이것은 그 자신이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신이 증명하는 것은, 모든 잠재성은 결코 현실화되지 않으며 신화의 유동적인 소용돌이는 소리를 지어내지 않고 타입과 종(種) 간의 명백한 비연속성 하에서 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메리카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는, 관점의 차이가 동시에 사라지면서도 증대하는 신화 속에 그 지리적 장소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 절대적 담론에서 각각의 존재는 다른 존재 속에서 마치 자기 자신에게—인간으로서—나타나는 것처럼 나타난다. 각각의 존재는 이미 명백하게 그렇게 구분되어 결정된 동물의, 식물의, 정신의 본성을 제시하면서 행동한다 해도 그러하다. 퍼스펙티브주의의 보편적인 도주점인 신화는 신체와 이름이, 혼과 행위가, 자기와 타자가 상호 침투하며 전(前)주체적 혹은 전(前)대상적인 환경 속에 내쳐진 존재의 상태를 말해준다.

 

신화학의 의도는 바로 이 ‘환경’의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이행을 기술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비-스트로스가 아메리카 선주민의 신화이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주제이다. 그런데 다른 학자들이 시사하는 것과는 반대로 다음과 같이 서술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즉 이러한 이행의 중심성은 정반대로 그 깊은 아마존을—그 선주민의 사고에 대한 (다양한 의미에서) 이중의 의미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신화학』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점차 명백해진다고. 마찬가지로 이 이행에서 지나간 생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이것이 중요한다. 이 이행이란 서양의 통속적인 진화론에서 논하듯이 동물에서 출발하는 인간의 분화 과정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 간의 공통의 조건은 동물성이 아니라 인간성이다. 신화적인 거대한 분할은 문화가 자연으로부터 구분되는 것이라기보다 자연이 문화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화는 어떻게 동물들이 상속되고 보유된 속성을 인간에 의해 잃게 되는지를 말해준다. 비인간은 오래된 인간이다. 인간이 오래된 비인간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유행하는 인류학이 보통 인간성을 문화에 의해 숨겨진 동물적 기반에 옷을 입힌 것—예전에는 ‘완벽하게’ 동물적이었으며 여전히 우리의 ‘근저에는’ 동물적인 것이 남아있다—이라 간주하는 반면, 선주민의 사고는 예전에는 인간이었던 동물과 그 외의 우주론적인 존재자들이 계속해서 존재하며, 우리에게는 명석하지 않다 해도 그러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제기되는 더 일반적인 질문은 왜 존재하는 각각의 종(種)의 인간성이 주체적으로는 명확하고 (그리고 동시에 극히 문제적이고) 또 객체적으로는 명확하지 않은지 (동시에 집요하게 확인되어야 하는 것인지)라는 것이다. 왜 동물들 (혹은 다른 것들)은 자신을 인간으로 볼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우리를 인간으로 보면서 그것들을 동물로 보기 때문이다. 멧돼지는 자신을 멧돼지로 볼 수 없다(그리고 인간과 그 외의 존재자가 특수한 옷을 입은 멧돼지라는 사실로 사고한다라고 누구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에게 그것들이 보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자신을 인간으로 보고, 비인간으로부터 비인간으로—동물이나 정신으로—보인다면, 그 때 동물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퍼스펙티브주의가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은 동물이란 ‘근본적으로’ 인간과 유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동물은 결국 어떤 ‘근저’를, 어떤 다른 ‘측면’을 갖추고 있다. 그것들은 스스로가 차이화하는 것이다. 퍼스펙티브주의는 애니미즘도 아니며 토테미즘도 아니다. 애니미즘은 동물과 인간 간의 실질적 혹은 아날로지적인 유사를 주장하고, 토테미즘은 인간내부에서의 차이와 동물들 간의 차이 사이에서 형식적이고 상동적인 유사를 주장한다. 퍼스펙티브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각각의 존재 내부에서의 인간/비인간의 차이와 관련된 내포적인 차이이다. 그리하여 각각의 존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오로지 차감적인 이중의 조건 하에서 다른 존재와 유사하다. 차감적인 이중의 조건이란 공통의 자기분리성이며 엄밀한 상보성이다. 왜냐하면 만약 모든 존재자의 존재양태가 자신에게 인간이며 다른 어떤 것에서도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성이란 상호 반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재규어는 재규어에게 인간이다. 멧돼지는 멧돼지에게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성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다(재규어가 인간일 때 멧돼지는 인간이 아니며 또 그 반대도 그러하다). 최종적으로 이것들은 ‘혼’을 의미한다. 만약 모두가 혼을 가졌다면 누구도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모두가 인간일 수 있다면 명석 판명한 방식으로 인간인 것도 아니다. 인간성은 근본적으로 형식으로서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만약 비인간이 인간이라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인간으로 본다면, 왜 그것들은 모든 우주적 인물을 자기 자신을 보는 것처럼 보지 않는 것일까? 만약 우주가 인간성으로 넘쳐난다면, 어째서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에테르(ether)는 불투명할까? 혹은 최적의 경우에도 어째서 그것들은 인간의 이미지를 한 방향으로만 반사하는 뒷면 없는 거울과 같은 것일까? 이 질문들은 우리가 이미 앤틸리스(Antilles) 제도[카리브 해의 서인도 제도의 섬 중 루케이언 제도를 제외한 섬들]의 사례에 대한 논평에서 예기되었듯이 아메리카 선주민의 ‘신체’라는 개념과 결부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통해 퍼스펙티브주의의 준인식론적인 개념에서 다자연주의의 참된 존재론적 개념으로 이행한다.

 

주체적인 위치의 다양체를 포괄하는 세계라는 발상이 직접적으로 상대주의를 이끈다. 이 관념의 직접적ㆍ비직접적인 기술은 아메리카 선주민의 우주론의 기술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아마존의 마쿠나(makuna)를 현지 조사한 아르엠 카즈(Århem Kaj)의 결론을 들어보자. 아르엠은 이 북서 아마존의 사람들의 퍼스펙티브주의적인 우주를 자세히 기술한 후에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마쿠나에서 존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관념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퍼스펙티브는 동등하고 유효하며 진정한 것’이며 ‘진정으로 정확한 세계의 표상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993: 124).

 

이 필자는 확실히 옳다. 그러나 어느 한 의미에서만 옳다. 즉 그와 정반대로 마쿠나가 인간에 관해서는 세계에 대해 진정으로 정확한 표상은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대체로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사체에 몰려든 구더기를 구운 생선처럼 보는 독수리들처럼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결론지어야 한다. 인간의 혼이 독수리에게 빼앗긴 것이며 그것들의 어떤 것으로 변용된 것이며 그 혈육이 되기 위해 인간이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그것은 상호적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때 인간은 중대한 병에 걸렸으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혹은 실천적으로 그와 마찬가지의 일이 재규어에게도 일어난다. 각각이 구분되는 퍼스펙티브를 보유하기 위해—왜냐하면 그것은 양립불가능하기 때문에—온갖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러나 샤먼만이 종에 관한 이중의 시민성(산 자와 죽은 자라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그들은 특정의, 제약된 조건 하에서 그것들을 전달시킨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다. 아메리카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의 이론은 실제로 세계에 대한 표상의 복수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닐까? 다만 민족지의 서술을 고찰함으로써 그와 정반대의 사태의 발생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 즉 모든 존재자는 세계를 같은 방식으로 본다(‘표상한다’). 변화하는 것은, 그것이 보고 있는 세계이다. 동물들은 인간들과 동일한 ‘범주’와 ‘가치’를 이용한다. 그들의 세계는 수렵과 어로, 요리와 발효음식, 교차와 전쟁, 통과의례와 샤먼과 추장과 정령과 … 등등의 주변을 순회하지 않는가? 만약 달이, 뱀이, 재규어가 인간을 맥(貘)이나 멧돼지처럼 본다면, 그것은 달과 뱀이 우리처럼 맥이나 멧돼지를 먹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인간의 음식물을 먹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각각의 영역에서 인간인 비인간은, 인간이 사물을 보듯이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즉 우리처럼 [비인간은] 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이 그것들을 보듯이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보고 있는 사상(事象)은, 우리(인간)가 그것을 보듯이 그것들이 볼 때에는 다른 것이 된다. 우리에게 피인 것이 재규어에게는 술이다. 죽은 자의 혼에게 썩은 사체인 것은 우리에게 발효된 카사바(casaba)[라틴아메리카 원산의 열대관목, 덩이뿌리식물]이다. 우리가 진흙으로 보는 것이 맥에게는 멋진 의식의 공간이다.

 

이러한 발상은 처음에는 직관에 반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물리학의 다안정적인 대상의 사례와 같이 그것들은 반대로 끊임없이 변용된다. 예를 들어 제럴드 바이스는 페루의 아마존에 사는 아샤닌카족(Ashaninka族)의 세계를 “상대적으로 출현하는 세계이며, 그곳에서는 다양한 타입의 존재가 같은 사상(事象)을 다른 방식으로 본다”(1972: 170)고 기술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옳다. 그러나 바이스가 ‘보지 않은’ 것은 바로 다른 타입의 존재자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사상(事象)을 본다는 사실은 단지 다른 타입의 존재자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상(事象)을 보다는 사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즉 무엇을 ‘같은 사상(事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위의 귀결의 논리에는 없다.] 바로 누군가와의, 어떤 종과의, 어떤 방식과 관련해서, 무엇이 ‘같은 사상(事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화적 상대주의와 다문화주의는 주체적이고 부분적인 다양한 표상과 유일하게 전체적이며 표상과 무관한 외적 자연에 관한 사건을 상정한다. 그런데 아메리카 선주민은 그 반대를 전제한다. 그곳에서는 한편으로 순수하게 대명사적인 표상적 통일성이 있다. 우주론적인 주체의 포지션을 점령하는 모든 존재는 인간적인 것이며, 모든 실재자는 사고하는 것으로서 사고된다(그것이 실재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고한다). 즉 하나의 관점에서 ‘활성화시킨’ 혹은 ‘짜여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실재적이고 객체적인 근원적인 다수성이 있다. 퍼스펙티브주의는 다자연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퍼스펙티브는 하나의 표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퍼스펙티브는 하나의 표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표상이란 정신의 특성이며 그에 대해 관점은 신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을 취하는 것은 혼의 힘에 의해 가능해지며, 비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은 그것들이 정신을 가진(정신인) 것에 부응한 결과이다. 그러나 관점 간의 차이는—관점이란 차이 이외의 무엇도 아니다—혼 속에 있지 않다. 혼이란 형식적으로는 모든 종에서 동일한데, 모든 곳에서 동일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차이란 신체의 특수성에 의해 주어질 수밖에 없다.

 

동물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사상(事象)을, 우리와 동일한 방식으로 본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신체는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생리학적인 차이를 참조하자는 것이 아니고—그에 대해서는 아메리카 선주민은 신체의 기본적인 제일성(齊一性)[자연은 동일한 사태 하에서는 동일한 현상을 일으키도록 하는 통일적인 질서를 견지하고 있다는 원리]을 인식하고 있다—, 각각의 종의 신체를 그 강함과 약함을 특이화시키는 정동을 참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 그들을 움직이는 방식, 의사소통하는 방식, 어디서 사는가? 군생하는가, 고립한가? 얌전한가, 떠벌이는가? … 신체적인 형질학은 차이의 강력한 기호이다. 그것은 속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인간의 형상은 재규어의 정동을 숨길 수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신체’라고 부른 것은 그렇게 때문에 판명성을 갖춘 생리학도 아니라면 특징을 이루는 해부학도 아니다. 그것은 아비투스, 에토스, 에스노그라피를 구성하는 방식과 양태의 집합이다. 혼의 형식적인 주체성과 유기체의 실질적인 물리성 사이에는 정동과 능력의 다발처럼 신체라는 중심적인 평면이 있다. 그것이 바로 퍼스펙티브의 기원이다. 상대주의가 정신적인 본질주의라면, 퍼스펙티브주의는 신체적인 애니미즘이다.

 

 

다자연주의는 각각의 종에 고유한 오성의 범주에 의해 부분적으로 파악되는 물 자체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선주민이 ‘X라는 무엇’, 예를 들어 인간이 피로 마시는 무엇, 재규어가 술로 마시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상상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자연 속에 실재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지각되는 자기동일적인 실체가 아니라 피/술이라는 타입의 관계론적이고 직접적인 다양체이다. 피와 술 간에는 경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이 둘의 ‘근접한’ 실체를 의사소통시키고, 각각을 분기시키기도 하는 언저리뿐이다. 결국 어떤 종에게 피이며, 다른 종이게 술인 X는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피/술 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인간/재규어라는 다양성의 특징적인 특이성 혹은 정동성인 것이다. 인간과 재규어 간에 상정되는 유사성은 결국 양자가 함께 술을 마신다는 것인데, 인간과 재규어 간의 차이를 이루는 것을 지각시킬 수밖에 없다. “사람은 언어 속에 있거나, 다른 것에 있다. 세계의 이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이면은 없다”(Jullien 2008: 135).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은 피 속에 있거나 술 속에 있다. 누구도 음료수[라는 언어] 자체를 마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술은 피라는 이면의 맛을 갖추고 있으며 그 역 또한 참이다.

 

이제 우리는 아메리카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에 대한 번역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제기할 것인가, 그리하여 서양적인 인류학의 존재-기호론적인 술어에서 퍼스펙티브주의의 번역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제기할 것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유사한 혼의 소유란 모든 존재자 측의 아날로지적인 개념의 소유를 포함한다. 고로 어떤 존재하는 종으로부터 다른 종을 이해할 때에 변하는 것은 그 혼의 신체이며, 그 개념에 대한 참조이다. 즉 신체란 각각의 종의 ‘담론’ 간의, 참조적인 이접의 장소이며, 또 도구이다. 그러므로 아메리카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의 문제란 다른 두 표상(‘새벽의 샛별’과 ‘초저녁의 샛별’)에서 공통의 참조항(이른바 금성이라는 혹성)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다의성 주변을 순회하는 것이며, 그러한 다의성이야말로 재규어가 ‘카사바의 술’이라고 할 때에 우리와 ‘같은 것’을 참조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단적으로 우리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퍼스펙티브주의는 항상적인 인식론과 가변적인 인식론을 전제로 한다. 즉 같은 표상과 다른 객체로서 유일한 의미와 다양한 참조를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퍼스펙티브주의적인 번역의 목적은—그것은 샤먼의 기본적인 방식의 하나인데—다른 종이 거기에 있는 같은 것을 말할 때에 이용하는 표상으로서 이형동의어(異型同義語 synonym)를 인간적인 개념인 우리의 언어 안에서 찾아낸다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은 그와 반대로 우리의 언어를 다른 종의 언어와 결부하면서 분리하는, 흩어진 동형이의어(同型異義語 homonym)의 내부에 숨겨진 차이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서양의 인류학은 해석에 기반한 선의의 원리(사고하는 것의 양심, 타자의 조야한 인간성에 대한 관용의 원리)에 기초 지어진 것이며, 그것은 인간의 문화 간의, 자연적인 이형동의어[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 선주민의 대항인류학은 이것과는 정반대로 기피하기 어려운 모든 종류의 다의성의 기원이 되는, 살아있는 종의 담론 간의, 반자연적인 동음이의어[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메리카 선주민의 예방원칙이다. 왜냐하면 지향성을 갖춘 생명체들의 집합으로 이뤄진 세계가 상당한 악의로 넘쳐나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다자연주의라는 개념은 인류학적인 다문화주의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것의 결합에 대해 분명히 다른 두 방식과 관련된다. 따라서 다의성 있는 타입의 복수성을 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문화의 다양성처럼. 즉 좋은 문화의 다수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반대로 다의성을 문화에서 포착하여 다양성으로서 문화를 포착할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두 번째 방향이다. 다자연주의의 관념은 여기에서 그 패러독스적인 성격으로부터 유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자연’에 대한 우리의 마이크로적인 개념은 참된 복수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복수의) 자연’이라는 발상을 포함하는 존재론적인 오용을 의식시킨다. 고로 그 잘못을 바로잡도록 위치이동을 실현시켜주어야 한다. 상대주의에 관한 들뢰즈의 정식(1988: 30)을 차용하면, 아마존의 다자연주의는 자연의 다종적인 존재방식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라면 다종성으로서의 자연성 혹은 자연으로서의 다종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자연주의적인 서양적 정식화의 역전은 기능(통일성과 다양성)에 의해 상호적으로 규정되는 말(자연과 문화)뿐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말’과 ‘기능’의 동일한 가치와 관련된다. 인류학자인 독자는 여기서 물론 이것이 레비-스트로스에 의한 신화의 기본정식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1958/1955: 252-53). 퍼스펙티브주의자의 다자연주의는 서양적인 다문화주의의 변용이지만, 그것은 이중으로 중첩된다. 즉 그것은 번역가능성과 다의성과의 문턱인 기호-역사적인 문턱을 어떻게 넘어서는지를 보여주며, 나아가 퍼스펙티브적인 변용의 문턱을 지시한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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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술술 읽힐 글이 아니다. 각 잡고 필기하면서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다.

우선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의 대략(http://sarantoya12.tistory.com/86)을 이해한 후에 최근 이 사상이 어떤 이론적 맥락에서 재평가되는지를 알고 나면, 적어도 왜 서구의 근대적 사고체계가 문제인지를 학문적으로 정리해낼 수 있다.

다만 이 글에서 퍼스의 재평가가 철학(수학의 철학 Philosophies of Mathematics)과 논리학에 한정되어 있지만, 실은 기호학, 지식사회학, 정치철학, 인류학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있다. 예를 들어 ‘공생과 연대’로 나아가는 퍼스의 공동체주의는 존 듀이에게 계승되어 최근에는 걸출한 여성정치철학자들(현대의 프래그머티즘을 이끄는 학자들 중에는 여성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을 중심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또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호학이 핵심적인데 이 글에서는 다만 간략하게만 언급되어 있어 글의 내용이 충분히 이해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퍼스의 기호학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를 다룬 책은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두아르도 콘, 사월의 책, 2016년 9월 예정). 그 책이라면 퍼스의 기호학의 현재적인 학문적 의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근대적 사고체계의 핵심에 있는 데카르트주의, 그리고 데카르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플라토니즘. 퍼스의 사상과 그 사상을 복원한 현대의 사상가들이 이 데카르트주의와 플라토니즘을 어떻게 넘어서고 있는지를 잘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이제 서구중심의 근대세계는 끝을 향해 가고 있고, 우리는 다음 세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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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프래그머티즘

맥베스(Danielle Macbeth)와 띠에르슬랭(Claudine Thiercelin)

 

 

퍼스 재평가의 조류

2014년은 퍼스 사후 백년이 되는 해였다. 또 퍼스보다 세 살 연하인 제임스는 1910년에 사망했다. 2010년대에 사는 우리는 따라서 고전적 프래그머티스트의 사후 1세기가 지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프래그머티즘은 이 사상의 원류로부터 1세기가 지난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2014년에는 미국의 퍼스협회를 필두로 여러 학회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퍼스 사후 백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고, 그보다 25년 전인 1989년에는 <퍼스생애 150주년 국제학술대회>가 미국에서 개최되었다.

1989년은, 로티가 『프래그머티즘의 귀결』이라는 책에서 퍼스의 의의를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명칭을 고안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폄하한 때부터 10년 가까이 흐른 뒤였다. 이 국제학술대회는 프래그머티즘의 본향인 하버드대학의 수학과 철학의 연구동, 대학의 중심부에 위치한 강당인 ‘메모리얼 홀’을 주회의장으로 삼아 일주일간 진행되었다. 수백 개의 개인발표를 포함하여 엄청난 규모로 진행된 이 대회는 퍼스에 대한 국제적인 철학 대회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로티가 퍼스의 의의를 축소하자고 제창한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35년이 흘렀다. 그 동안 이 철학에 대한 위상은 크게 변모했다. 그리고 이 사상의 역사를 단순화해서 말하면, 그 최초의 징조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나타났으며, 프래그머티즘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지금의 흐름으로 귀결되었다. 

25년 전 국제학술대회 논문집에 서술된 퍼스에 대한 평가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의 특징을 갖는다.

① 유럽계의 철학자들에 의한 퍼스 평가의 고양

② 미국에서 퍼스 논리학의 평가

③ 수학의 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

이제 이 순서대로 살펴보겠다.

 

유럽계의 철학자들에 의한 퍼스 평가의 고양

1989년의 이 대회에서 미국계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유럽계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다수 기조강연을 행했는데, 그중에는 토마스 세벅(Thomas A. Sebeok 1920~2001, 헝가리 출신 미국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생명기호학’을 제안했다), 움베르트 에코, 위르겐 하버마스, 칼-오토 아펠(Karl-Otto Apel 1922~, ‘언어론적 전회’를 주장하는 독일철학자), 야코 힌티카(Jaakko Hintikka 1929~, 핀란드의 철학자) 등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각각의 사상적 원류로서 퍼스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했다는 것은 그때까지 미국철학 내부의 사상가로 여겨왔던 퍼스가 ‘유럽계의 현대철학에서도 원조의 한사람으로 간주된다’는 평가가 정착되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퍼스가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함께 ‘기호학’의 창시자라는 것은 20세기 후반 유럽철학의 주류였던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에서 기호, 의미, 언어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미 충분히 인식되었던 바이다. 예를 들어 데리다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독자적인 퍼스해석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호론적 문제의식이 소쉬르 계통의 프랑스 사상을 넘어서 보편적ㆍ초월론적인 프래그머틱한 관점으로 나아가고, 그러한 관점을 채용하는 하버마스, 아펠 등의 철학에까지 미친 결과, 퍼스의 언어철학이 영미권과 대륙철학의 양쪽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 학술대회를 통해 확실해졌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리차드 로티는 분석철학과 유럽철학의 불필요한 이분법을 강하게 비판하고 데리다와 푸코의 사상의 프래그머티즘적 성격에 강한 관심을 표해왔다. 그러나 그 자신은 20세기 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듀이,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의 3인의 사상가를 꼽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듀이의 사상적 우위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이 학회에 참가한 유럽철학자들이 보여준 ‘언어철학적 전환’의 이미지는 로티의 해석과 반드시 겹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퍼스 논리학의 평가

한편 유럽계의 퍼스평가와는 반대로, 미국 내부에서 퍼스평가는 기묘하게도 로티의 소극적 판정에 호응하는 듯한 어떤 부정적인 색채를 띠었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학 철학과의 상징적 대표이며 앞장에서 살펴본 네오프래그머티즘의 위대한 보스라고 말할 수 있는 콰인이 평한 퍼스의 논리학이 그러하다.

콰인은 1989년의 이 대회에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행한 프레게-러셀 유래의 논리학을 통한 퍼스 평가와 그에 대한 수정의견ㆍ비판적 의견을 검토했다. 퍼스에 대한 콰인의 예전 평가는 하츠혼(Charles Hartshorne, 1897∼2000)과 와이스(Paul Weiss, 1901~2002)가 편집한 『퍼스 저작집』(전6권, 1931-35)의 논리학에 관한 서평(1935년)에 담겨있다. 하츠혼과 와이스는 콰인과 마찬가지로 C. I. 루이스와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의 제자이며, 당시 하버드대학 철학과의 조수로 근무했다. 그들은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화이트의 권유로 그때까지 간행된 퍼스의 논문과 미간행 원고를 총합하여 퍼스의 체계적인 사상의 전모를 공적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후 『저작집』 편집자의 한 사람인 하츠혼이 103세라는 나이에 미국의 현역철학자 최장수자로서 등장하여 퍼스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을 비교 검토했다. 그리고 그보다도 열 살 이상 젊은 콰인—그럼에도 90세에 가까웠다—은 예전의 서평에서 행한 자신의 분석에서 그 일부를 수정할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기본적인 골격은 그대로라고 표명했다.

콰인의 맨 처음 평가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퍼스가 창시한 형식논리학은 ‘존재그래프’라는 이름의 기하학적 수단에 따른 기호법을 채용하여 지나치게 복잡했다. 그래서 논리학으로서는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복잡한 방법과는 별도로, 프레게와 마찬가지로 표준적인 기호논리학에서는 한정사의 도입 등에 관한 연구성과가 확실히 돋보인다. 그러나 프레게-러셀 유래의 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명제개수(命題開數)’ 개념의 파악이 불충분하며, 그 때문에 이 형식을 사용한 논리연산은 실질적으로 러셀이 비판한 조지 불(George Boole 1815~1864)의 대수적(代數的)인 집합산(集合算)의 구식단계에서 그다지 진전되지 않았다. 콰인은 이 대회에서 이러한 자신의 예전 평가를 변경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수(代數)는 수 대신에 문자를 사용하여 수의 성질이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하며, 집합산(集合算)은 합집합, 교집합, 차집합과 같은 집한연산을 가리킨다. )

그런데 이 강연을 둘러싸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 콰인의 논리학사 이해가 일면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들에 따르면,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이뤄진 논리학의 다원적인 발전을 더 강하게 의식해야 했고 그 속에서 퍼스의 역할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이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이 대회의 논문집을 참조할 수 있다.

 

수학의 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

한편 콰인과 젊은 세대 간의 의견의 차이는 이 대회의 주최측에 의해서도 표명된다. 그 점에서 이 대회는 하버드대학의 신구 철학자의 교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로티는 콰인의 입장에 가까웠고, 그것은 네오프래그머티즘을 콰인과 쿤의 연장선상에서 구상했던 로티로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콰인에서 로티, 퍼트넘으로 넘어간 네오프래그머티즘 운동은 이 대회를 전후해서 그 주역을 퍼트넘으로 삼았고, 이후 로티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퍼트넘과 그 일파는 이 대회에서 퍼스가 1898년에 하버드대학 주변에서 행한 ‘추론과 사물의 논리’라는 표제의 연속강연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설파했다. 그들은 이 연속강연을 한권의 저작집으로 하버드대학 출판국에서 근간할 예정임을 공표했다. 그리고 그들은 퍼스의 논리관이 프레게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콰인에게 결함이 있다기보다, 오히려 이 차이로부터 수학의 철학에게 결정적으로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퍼스가 제창한 ‘연속주의’라는 이름의 특이한 형이상학적 입장과 그로부터 귀결되는 다양한 지식관ㆍ인식론의 통찰을 중시할 필요를 제기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추론과 사물의 논리』에 첨부된 해설을 참조할 수 있다. (필자 자신이 편집ㆍ번역한 『연속성의 철학』(이와나미 문고, 2001년)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논문집의 간행

지금까지 25년 전의 퍼스 평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즉 로티류의 네오프래그머티즘에 대한 프래그머티즘의 비판적 계승과 대결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퍼트넘의 새로운 프래그머티즘 해석으로 나타나는 한편, 맥베스 등 로티측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언어철학을 기반으로 내부적 비판이 행해진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앞서와 같이 퍼트넘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퍼스의 수학사상은 이후 더 넓은 맥락에서 진리의 객관성이라는 기본적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이러한 퍼스의 논리사상ㆍ수학사상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지난 20년 간 (앞에서 언급한 하츠혼이 편집한 1930년대의 저작집을) 면밀하게 교정한 저술연대순의 퍼스저작집의 재출간과 그 부산물로서 『퍼스 주요논문집』(전2권)이라는 매우 완결적인 논문집의 간행으로 이어진다. 이것들은 폭넓은 독자층에게 다시금 현대의 관점에서 그의 철학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

나아가 그의 수학논문 수십 편이 수록된 논문집이 출판되었다. 그리하여 수학의 철학 분야에 관련된 문헌을 더욱 쉽게 독해할 수 있게 되었고, ‘현대철학의 선구자로서의 퍼스’라는 이미지를 재구축할 수 있었다. 이 논문집은 기하학의 연속성, 무한소, 칸토어의 연속성가설 등 다양한 테마를 다루었고, 이 논문집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텍스트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퍼스의 수학논문집도 앞서의 저작집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이미 전집에 실린 것들이지만 그에 접근할 수 있는 독자는 한정적이었다.) 이 논문집의 간행에 의해 25년 전 퍼트넘과 그 일파가 제기한 퍼스의 독자적인 수학사상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고조되었다.

 

퍼스의 수학ㆍ논리학의 이해

여기서는 이 분야의 최근 연구에서 퍼스에 대한 관심문제로서 다음의 두 논점을 지적해둔다.

① 전문적인 수학자로서 퍼스의 구체적인 업적을 19세기 이후의 수학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위치지을 것인가의 문제—이에 관해서는 특히 ⑴ 퍼스가 고안한 특이한 토폴로지의 의의를 19세기의 수학사를 조망하는 가운데 재평가한다. ⑵ 그의 무한소 이론을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러시아의 수학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독일의 수학자)의 무한소 개념과 비교 검토한다. ⑶ 그의 기하학적 연속성의 관점을 아브라함 로빈슨의 초준해석(超準解析 nonstandard analysis: 비표준해석이라고도 한다)과의 비교를 통해 퍼트넘의 해석을 넘어 보다 근대적인 ‘범주론(category theory)’과의 유사성의 지적으로 나아가는 등 극히 전문적인 논의가 필요한 테마로서 최근 흥미로운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② 퍼스의 수학론을 프래그머티즘의 진리론이라는 테마와 어떻게 연결지을 것인가의 과제—이미 이 책의 앞부분에서 살펴본 것처럼 논리학의 역사의 시야에서 보면, 그가 19세기 후반에 한정사를 포함하여 형식논리학을 체계화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성과를 통해 그는 프레게와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거한 논리학을 타파하고 현대논리학의 시조가 되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콰인의 퍼스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논리학상의 성과를 프레게-러셀류의 논리학의 사상과 등가로 놓기에는 얼마간의 보류를 요한다. 그 큰 문제 중 하나가 (예를 들어 논리실증주의의 설명에서) 이제까지 프레게-러셀의 ‘논리주의’로 불러왔던 사고에 퍼스가 기여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프레게-러셀의 논리주의는 수학적 명제와 진리를 이미 논리학의 개념과 진리로 바꿔 써왔다는 것, 즉 수학은 논리로 환원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퍼스는 수학과 논리학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가 이해한 바로는, 형식적인 사고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수학적 사고와 진리이며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오로지 형식적으로 순수한 수학에서 파생한, 한계가 분명한 분야에 관한 적용례라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서는 수학이야말로 논리적인 가능성이라는 통상의 개념을 넘어서 모든 의미의 가능성을 가장 일반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참된 가능성의 학문이다.

 

수학론에서 본 진리의 객관성

퍼스는 이렇듯 가장 넒은 의미에서 수학을 가능성의 학문으로서 ‘사물의 가설적 상태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수학은 모든 대상의 영역에 적용 가능한 가설-귀결 관계에 관한 일반이다. 그렇다고 그가 수학적 추론이 가진 확실성, 보편성, 필연성을 방기한 것은 아니다. 즉 그는 수학적 추론으로부터 내재적ㆍ가설적ㆍ추론적이며 게다가 ‘객관적인 요소’를 건져내면서 그 형식적 필요성을 용인했다.

이 독특한 주장은 당연하지만 어떤 인식론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의 ‘탐구의 이론’과 ‘기호학적 인식론’과의 교차점에서 수학적 명제의 진리와 추론의 타당성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그러나 문제는 인식론적인 테마에 한정되지 않는다. 퍼스가 채용한 수학관은 20세기 이래 수학의 존재론에 관한 다양한 철학적 입장과의 관계에서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 라는 존재론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20세기에 활발하게 논의된 수학의 철학 분야에서 중심적인 테마 중 하나는 이른바 ‘실재론 대 유명론’의 대립이다. 퍼스는 이 주제에 대해 수학의 철학 분야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 걸쳐 매우 풍부한 논의를 전개했다. 그의 논의는 실재론과 유명론이라는, 어떤 의미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스콜라적 논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수학론에 대한 그의 관심의 초점은, 이 테마와 얽힌 그의 수학론을 논함으로써 프래그머티즘과 진리의 객관성이라는 문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지점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테마인 ‘프래그머티즘과 진리의 객관성’과 가장 밀착된 문제로서 특히 이 존재론적 주제와 엮여있는 최근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수학적 진리를 둘러싼 실재론ㆍ비실재론 논쟁과 퍼스의 관점에서 본 해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1970년대에 폴 베나세라프(Paul Benacerraf 1931~, 미국의 철학자, 현대의 수학의 철학을 대표하는 연구자 중 한사람)가 제기한 모든 수학적 진리의 ‘플라토니즘의 딜레마’라는 것을 다룰 필요가 있다.

 

수학의 철학에서 ‘플라토니즘’

플라토니즘이라는 말은 이 책에서 논한 듀이의 철학사론의 맥락에서 등장한다. 이 명칭은 여하간 플라톤의 사상과 긴밀하게 연결된 철학적 발상을 가리키기 때문에 수학의 철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듀이의 『철학의 개조』(1920년)까지 갈 것 없이 19세기 이후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 등 유럽계의 철학사상에서 플라토니즘은 나쁜 의미에서 형이상학적인 사상의 편향을 가리는 말로 사용되어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수학의 철학에서 플라토니즘이라는 명칭은 조금 더 한정된 의미로 사용된다.

실은 이 말은 베나세라프보다 한 세대 먼저인 파울 베르나이스(Paul Isaak Bernays 1888~1977)라는 독일의 논리학자ㆍ수리철학자(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보다도 조금 연장)에 의해 1935년을 전후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막스 프랑크와 함께 수학했고 그 후 다비트 힐베르의 조수로 일했으며 1921년 괴팅겐대학의 조교수로 취임했다. 베르나이스야말로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수학의 철학의 중심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르나이스는 나치를 피해 1934년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했고 거기서 행한 ‘수학적 진리’라는 국제적인 강연에서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강연의 테마는 ‘수학의 기초의 새로운 위기’였는데, 이 위기는 아렌드 하이팅(Arend Heyting 1898~1980), 안드레이 콜모고로프(Andrey Nikolaevich Kolmogorov 1903~1987, 러시아의 수학자) 등이 품었던 문제의식, 즉 직관주의와 유한주의의 가능성, 혹은 형식체계의 불안전성을 둘러싼 새로운 탐구의 필요성이라는 의식을 가리킨다.

베르나이스는 이 강연에서 플라토니즘에는 온건한 타입과 강한 타입의 두 종류가 있으며, 세부적인 차이는 별도로 하고 이것들 모두가 수학적 대상의 집합 전체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연수 전체라는 집합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전체’를 우리의 사유작용과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해도 좋을까? 베르나이스가 말하는 플라토니즘은, 어떤 수학적 대상의 집합이 만드는 전체는 그 전체를 사고하는 인식주체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명쾌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해석하는 입장에 있다. 즉 무엇인가의 수학적 대상의 전체가 그것을 파악하는 인식주체와는 독립적으로 스스로 존재한다는 사고를 그는 플라토니즘이라고 불렀다.

 

플라토니즘의 딜레마

여기서 플라토니즘의 가능성을 논하는 베르나이스 자신의 문제의식이 인식주체와 그 대상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된다는 점에 주의해보자. 이것은 그와 그 주변의 철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신칸트학파나 현상학이라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미국류의 프래그머티즘과는 완전히 다른 철학사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은 당시 ‘새로운 위기’라는 문제의식을 넘어서 수학의 철학의 영역에서 계속해서 확장된다. 그런데 신칸트학파가 아닌 분석철학의 버팀목인 경험주의적 인식론을 기초로 하여 다시금 플라토니즘의 문제를 제기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미국의 베나세라프이다.

베나세라프는 베르나이스와 함께 편집한 『수학의 철학』에서 20세기의 수학의 철학의 기본적 맥락을 널리 알림으로써 유명해졌다. 그는 이 대표적 논문집 2쇄에 자신의 1937년 논문인 「수학적 진리」를 한편 수록했는데, 이 논문이야말로 그 후 수학의 철학에서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결정짓는다.

그 논문에서 베나세라프가 말하는 플라토니즘의 딜레마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수학적 대상의 독립자존을 주장하는 플라토니즘에 준하여 수학적 대상이라는 추상적 존재의 실재성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 대상의 인식에 관한 직접적인 앎, 즉 직관적 파악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의 의미에서의 경험주의적인 인식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수학에 관한 진리는 진정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을 조금 다듬으면 다음과 같다.

① 수학적 대상은 일반적으로 개개의 언어와 공간적 특성 혹은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독립한 추상적 존재이다.

② 한편 우리의 지식이란 일반적으로 인식된 대상과의 인과적 접촉에 기초한 정당화된 인식이다, 라고 보통 이해된다. 따라서 추상적 대상인 수학적 대상은 통상의 의미에서 지식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없다.

③ 고로 수학적 대상에 관한 인식은 보통의 의미에서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뉴욕보다 오래된 대도시가 적어도 세 개 존재한다’는 문장과 ‘17보다 큰 완전수는 적어도 세 개 존재한다’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전자는 구체적인 대상인 뉴욕에 ‘더 오래된’이라는 경험적 성질을 연결시킨 문장이다. 후자는 추상적인 대상인 17에 ‘더 큰’이라는 경험적 성질을 연결시킨 문장이다(완전수란 그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그 자신과 같은 수, 예를 들어 6이나 8과 같은 자연수를 말한다).

이 두 문장은 닮아있다. 그러나 전자는 경험주의적인 인식론에서 충분히 처리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자연수와 그 부분집합이 가령 존재한다 해도 그 진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특수한 인식을 필요로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애당초 진리라고 할 수 없거나, 이 둘 중 어느 하나여야 한다.

형식적 사물이나 추상적 대상의 승인과 경험주의적인 인식론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할까? 퍼스의 수학론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의 특이한 수학관이 수학적 대상에 관한 진리를 둘러싼 이 논쟁에서 이제까지 고려되지 않았던 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띠에르슬랭의 해석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수학의 철학에서 베나세라프가 말하는 플라토니즘의 딜레마의 문제를 다뤘던 사상가는 적지 않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콰인의 대응인데, 이 입장에서 수학적 대상의 실재성은 그것을 결여하고서는 과학의 현실에의 응용이 불가능하다는 프래그머틱한 요청에 기초한 것만이 인정된다. 또 콰인과는 대조적으로, ‘과학적 대상인식에서 직관적 파악을 인정한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마디(Penelope Maddy)의 답변도 잘 알려져 있다. 이것들은 유명론에 가까운 실재론과 그 반대로 매우 강고한 실재론의 각각의 사례인데, 여기서는 이 논의를 염두에 두고 퍼스의 이론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논고를 소개한다. 그것은 맥베스와 띠에르슬랭이라는 두 여성철학자의 해석이다.

앞서 베나세르프가 말한 ‘플라토니즘의 딜레마’의 3단 논법에서 결론[③]을 피해 수학적 대상에 관한 진리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두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수학적 대상이 어떤 추상적인 것일지라도 경험적인 지각의 차원과 연결된다는 입장이다. 즉 ①에서 ②로의 추리를 부정하는 입장을 채용하는 방향이다. 다른 하나는 대상에 대한 경험적ㆍ인과적 연결을 거부할지라도 그 진리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 즉 ②에서 ③으로의 추리를 부정하는 입장의 방향이다. 띠에르슬랭은 퍼스의 수학 사상을 전자의 방향으로 해석하는 반면, 맥베스는 퍼스가 후자의 방향을 채용했다고 해석한다.

우선 띠에르슬랭의 약력을 소개하면, 그녀는 소르본을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학위를 취득한 프랑스인 철학자로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형이상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프래그머티즘에 비교적 냉담했던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형이상학자로서 퍼스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1970년대 이후 유럽 철학자들의 퍼스 평가의 귀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녀의 퍼스 해석에 따르면, 퍼스의 입장은 유명론과 가까운 콰인의 입장과 수학적 인식의 직관적 파악을 인정하는 (예를 들어 괴델과 같은) 플라토니즘 사이에 위치한다. 그녀의 이해에 의하면, 퍼스는 수학적 대상을 단지 추상적ㆍ자존적 존재가 아닌 가설적ㆍ추론적ㆍ귀결적으로 확장적인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수학적 대상에 대한 이 이해는 반데카르트주의에 서는 것이며 인식의 직접성, 비매개성, 내관성을 부정하는 그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퍼스는 수학적 대상에 관해, 강한 의미에서의 플라톤주의, 즉 ‘대상이 인식주체에서 완전하게 초월한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입장을 애당초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강한 플라토니즘이 거부된다고 해서 수학적 대상의 가설성을 강조하는 이론이 수학적 대상의 실재성을 방기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대상의 일반성과 경험적 실재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수학적 대상=가설적인 대상의 파악이라는 인식적 사태를 가능하게 하는 가설형성적 추론의 역할에 있다.

 

가설형성적 추론이란 무엇인가?

가설형성적 추론(abduction)이란 우리가 보통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태에 직면했을 때 그 합리적인 설명을 도출하고자 하는 일종의 추측적인 추론이며, 연역적 추론(deduction)과도 귀납적 추론(induction)과도 다른 독자의 추론형식을 갖는다. 

연역이란 진리를 확보하기 위해 전제에 포함되는 내용을 분석적으로 석출하는 추론이다. 귀납이란 유한한 데이터를 기초로 하여 보다 일반적인 명제를 형성하는 추론이다. 이에 비해 가설형성은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가능케 하는 어떤 가설을 제언하는 추론이다. 이를테면 ‘이제까지의 경험이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사상(事象) C가 눈앞에 있다. 그런데 만약 H가 있다면 C의 성립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고로 어쩌면 H인 것은 아닐까?’라는 추론의 형식이다.

이 추론에 나오는 H는 하나의 가설이면서도 C로 이어지는 전제이기 때문에 하나의 일반자 내지는 보편자이다. 따라서 수학적 대상이 가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일반자이자 보편자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경험적인 대상과 단절된 존재자라는 의미에서의 추상적 존재는 아니다. 가설형성이라는 추론에는 불가사의한 현상 속에서 합리적인 설명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지각’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가설을 찾아내는 것은 데카르트적 직관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순수하게 수동적인 감각경험도 아니며, 단정적인 인과적 상호작용도 아니다. 그것은 시사적(示唆的)인 인식이며 능동과 수동의 중간에 위치한 인식이며 경험내재적 및 경험초월적인 인식이다.

퍼스는 직관과 감각의 중간에 위치한 이 미묘한 인식의 형태를 기호학의 용어를 사용해서 ‘아이콘적 표상’이라고 불렀다. 전제로부터 귀결을 분석해서 산출하는 연역적 작업은 기호에 포함된 개념내용을 분석적으로 해석하는 작업과 다르다. 연역적 작업을 허용하는 기호는 의미내용을 확정한 상징이다. 반면 어떤 불가해한 사상(事象) 속에서 이해 가능한 개념을 읽어 들임으로써 이 형태를 부각하는 가설형성적 작업은 이 사상(事象)을 아이콘으로 보고 그 속에서 어떤 시사적(示唆的)인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아이콘적인 표상은 시사적인 의미를 대상으로 가지는 한에서, 경험적인 현실이나 객관적인 세계와의 연결을 확보한다. 그것은 가설적인 것이라 해도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사상(捨象)하는 추상적 대상은 결코 아니다. 나아가 이 아이콘 내의 형상을 파악하는 움직임은 바로 대상 속에서 어떤 모습을 발견한다는 도상적(圖像的)인 사유의 움직임이라는 의미에서 기하학적인 추론을 그 본성으로 한다. 즉 가설형성적 추론으로서 수학적 추론은 그 대상에 관해 준-경험적인 차원을 가짐과 동시에 그 인식의 스타일로서 도상적인 사고를 본질로 한다.

콰인은 퍼스의 논리학이 도상적인 방향으로 편향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띠에르슬랭의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콰인이 가설형성적 추론의 대상으로서의 수학적 개념이라는 발상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퍼스에게는 수학이 논리학에 선행한다. 이것은 상징으로서의 기호에 순화되어 형식화된 논리학 체계가 상징에 본질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상징은 결코 아이콘이나 인덱스적 성격을 완전하게 사상(捨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퍼스의 사고에서는 상징의 차원만으로 추론하는 논리학은 기호의 복합적인 차원을 추상화한 것만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수학적 추론에 비해 파생적이며 이차적이다.

이상의 해석을 정리하면, 수학적 대상의 지각이라는 인식에는 가설형성적인 요소가 본질적으로 관여한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인 앎이라는 의미에서의 직관이 아니고, 그보다 추론적이고 가설형성적ㆍ확장적인 지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포리오리한 인식이 아닌 지각경험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험적인 인식이라는 본성은 결여되지 않는다. 퍼스의 입장은 ‘수학적 대상의 인식’을 이와 같이 성격짓기 때문에 베나세르프가 말하는 ‘플라토니즘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맥베스의 해석

한편 띠에르슬랭과는 또 다른 논의로 ‘플라토니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고자 한 맥베스의 사상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캐나다대학 출신으로 피츠버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피츠버그학파에 속하는 철학자이다. 현재 펜실베니아주의 하바포드 콜리지(Haverford College)의 교수이며 대표작으로 『프레게의 논리학』이 있다.)

띠에르슬랭에서 확인했듯이 퍼스의 인식론에서는 수학적 인식이든 감각적 인식이든 어떤 인식작용도 기본적으로는 기호적이며 비직관적이기 때문에 수학적 대상에 관해서도 직관적인 접근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퍼스의 입장에서는 수학적 대상인 수와 기하학적인 도형은 당연하게도 그 자체로서 독립 자존하는 플라톤적 대상일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또 다른 의미에서 수학적 대상을 추상적인 존재로 승인가능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수학적 대상 내지는 수학적 개념의 ‘의미’를 퍼스의 의미 이론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개념의 유래를 경험이나 지식의 역사적 발전의 차원에서 되돌아보도록 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의 초반부에 서술했던 ‘프래그머틱한 격률’에서 알 수 있듯이, 개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외부세계의 대상도 아니고 내관(內觀)에 부여되는 직관적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실험적인 상황 하에서 상정되는, 가정과 귀결의 관계를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추이적(推移的)ㆍ추론적ㆍ조건법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퍼스의 이 사상에 관해 종종 간과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개념의 의미의 비인과적ㆍ추이적ㆍ귀결적ㆍ조건법적 성격을 적용하는 것이 실은 보통의 의미에서의 경험적 개념 일반이라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수학적 개념이나 논리적 개념에 대한 것이라는 매우 독특한 사실이다.

확실히 퍼스 자신이 의미의 격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예는 ‘다이아몬드의 단단함’에 대한 명제인데, 그로부터 그의 개념의 의미에 관한 분석이 외적세계에서 경험적 성질의 인식을 전형으로 한다는 이해가 자연스레 도출된다. 그러나 그의 의미의 격률의 최초의 정식화는 (『월간 파퓰러 사이언스』에 실은 과학의 이론의 해명에 앞서) 전문적인 철학 잡지에 게재된 영국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전개된다.

퍼스는 보통의 의미에서의 경험적 개념보다도 오히려 수학적 개념의 의미 분석이 중요한 문제이며, 이 점을 이해한 버클리의 사상의 의의와 그 분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버클리는 영국경험론 철학자로 세계는 물질이 아니라 관념에 의해 가능하다는 관념론의 주장으로 유명한데, 수학의 철학 분야에서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무한소 개념을 비판하며 당시 역학이 전제로 삼은 뉴튼적인 물질 개념을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가능성에 열린 수학적 진실

퍼스는 이 버클리론에서, 제곱근과 허수 등 그 자체로는 경험적인 이미지와 감각적 지각에 대응하지 않는 개념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 유의미한 개념인지를 문제로 삼는다. 이 개념은 얼핏 보면 참으로 기묘한데, 수학적 대상에 대한 분석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러한 복잡한 수가 아닌 단순하게 마이너스를 표시하는 숫자를 생각해도 된다. 마이너스는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다양한 계산과 표시를 가능케 하는 매우 유효하고 생산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이 개념들은 의미에 관해 귀결적ㆍ추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때 귀결적 의미란 그것들이 어떠한 계산적 실천과 증명적 실천과 작도적(作圖的) 실천 속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맥베스에 따르면, 퍼스뿐만 아니라 프레게에서도 실은, 일반적으로 논리주의의 철학으로 이해되는 그의 플라토니즘에는 결코 단순한 직관적 인식으로 수용되지 않는, 귀결주의적ㆍ조건법적 의미의 이론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에게 수학이나 논리학의 이른바 아포리오리한 개념이야말로 조건법적인 의미내용의 전형을 드러낸다는 사고는 이제까지 수다한 프래그머티즘의 진리론에서 상대주의와 비실재론적 경향에 대해 매우 선명한 반론의 가능성의 효과를 갖는다.

제임스, 콰인, 로티를 따라 점차적으로 더욱 강하게 비실재론적 논조가 만들어지는 인식의 전체론적 성격의 발생과정을 생각해보자. 제임스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은 ‘담화의 우주’라는 전체론적 시스템을 형성하고 그 속에는 중심도 주변도 없지만 모든 신념과 진리는 이 영역의 불확정적인 발전에 조응하여 그 진리치를 바꿀 수 있다. 마찬가지로 콰인은 이제까지의 아포리오리 내지는 분석적인 수학의 진리는 신념의 거미줄의 중심부분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건강하며 이 외측에 있는 신념은 경험을 이루는 매우 가변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로티는 신념 전체가 자문화의 관심의 견지라는 조건 속에서 의미를 가지거나 가지지 않은 것, 바꿔 말하면 진리의 후보를 결정한다.

그런데 맥베스의 퍼스론은 인식의 전체론적 이미지에 관한 이러한 이해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새로운 도식을 제안한다. 그녀가 보기에, 퍼스의 신념의 거미줄에서 가장 외측에 있고 그에 따라 항상 개정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콰인에게는 가장 중심에 있는 논리와 수학의 명제이다. 반대로 퍼스의 신념의 거미줄에서 가장 내측에 있고 그에 따라 보다 건강한 진리요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보통의 일상적 경험에서의 감각적 인식의 명제와 신념이다. 퍼스의 수학론에서 수학적 진리는 아포리오리도 아니고 분석적인 것도 아니고 영원진리도 아니다. 그것은 항상 새로운 개념구성의 가능성으로 열려져 있으며 그 결과로서 항상 새로운 진리의 발견에 열려져 있다. 그것은 인식의 전체적인 영역의 중심이 아니라 외측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적 신념의 궁극의 기반

그러나 그렇다면 왜 단순한 감각적 경험이 건강하고 수학적 진리는 그보다 가변적인 것일까? 그것은 후자가 전자를 기반으로 하는 인식의 역사적 발전의 성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적 신념은 동물이 가진 신념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것은 신체의 생리적 조건에 제약되는 신념이며 무엇보다도 견고한 핵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이 동물적 신념에 이러저러한 정신적 개입을 행함으로써 세계를 더 넓게 볼 수 있는 조감도적인 인식과 표상을 가질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이 조감도적인 표상을 철저하게 추상화함으로써 데카르트 좌표와 토폴로지적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수학적 신념의 세계이다. 그것으로 도달하는 이 과정은 역사적 진화의 과정이며 그 궁극의 기반이 되는 것은 감각적ㆍ일상적인 경험이다.

퍼스가 강조했듯이 신념의 가장 깊은 루트는 동물적인 본능에 있다. 그러나 그 본능에서 정신적 진화의 결과로서 수학적인 추상적 사고가 성장한다. 따라서 수학적 진리의 세계가 세계와의 인과적 상호작용을 결여한다고 해서 그에 관한 실재론을 방기하는 것은 아니다. 

맥베스가 보기에, 베나세라프가 말하는 플라토니즘의 딜레마는 우리의 수학적 인식이 ‘직관인가, 직접적 외계와의 인과관계인가’라는 잘못된 이분법 하에서 제기된 것이다. 수학적 진리가 직관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다면, 외부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플라톤도 주목했다시피, 역사적인 발전 과정 속에 있는 개념적 성과로서 그 의미는 항상 개정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또한 인과적인 연결을 결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험적 기반을 가지지 않는 비ㆍ진리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상적ㆍ감각적 경험이라는 기반으로부터 역사적으로 파생된다는 의미에서 외적인 경험세계와의 연결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또한 20세기에 활발했던 네오프래그머티즘의 상대주의적 경향에도 이러한 잘못된 이분법이 사용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로티와 그 일파의 다원적 진리론에서는 ‘직관인가, 직접적 외부세계와의 인과관계인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직접적 외부세계와의 인과관계인가, 세계관 및 가치관의 관여인가’라는 이분법을 사용하는데, 이때에도 ‘직접적 외부세계와의 인과관계 없이는 실재론적인 의미에서의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실재성 및 객관성과 외계와의 인과관계는 별개의 문제이다. 맥베스에 따르면, 이미 로버트 브랜덤(Robert Boyce Brandom)도 강조했던 이 발상을 퍼스의 수학론에 의한 딜레마의 해결이라는 방향에서 더욱 확실한 모습으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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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출간된 프래그머티즘에 관한 또 다른 입문서(大賀裕樹『希望の思想─プラグマティズム入門』、筑摩選書、2015年)에 따르면, 퍼스의 생애가 평탄치는 않았다. ‘만성적인 안면신경증에 시달린 탓에 모르핀과 코카인을 항시 복용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1859년부터 30년간 미합중국의 해안측량부에서 일했지만 기괴한 행동으로 쫓겨나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 후 퍼스는 유산으로 펜실베니아의 거대한 토지를 사들였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어 빈한하게 살았고 심지어 하인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체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체포를 피해 뉴욕에서 2년 가까이 노숙생활을 했다고 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퍼스를 위해 제임스가 퍼스의 연속강연을 기획하고 그 강연료를 미리 건네주었지만 강연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고, 또 친구들이 퍼스의 집필 작업을 위해 기금을 모아주었지만 단 한권의 저술도 남기지 못한 채 1914년 자택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21-22). 그가 살아생전 자신의 사상이 100년을 뛰어넘어 21세기의 ‘미래의 철학’으로 부활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그의 사상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다음의 글을 통해 대략을 이해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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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류의 프래그머티즘―퍼스

 

 

격동하는 신세계의 사상

프래그머티즘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탄생 사이에 놓인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는 엄청난 변모를 경험했다.

찰스 퍼스(1839~1914)가 이 사상의 이름을 처음으로 고안한 1870년 무렵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에서는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에 의한 경제적 팽창이 최고조에 이른 한편 파리코뮌과 같은 혁명적 기운도 높아갔지만, 미국은 아직 남북전쟁을 일으킨 분단과 상호불신, 전투와 사상자로 넘쳐나던 극히 비참한 세계에서 겨우 몇 년 지났을 뿐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윌리엄 제임스(1842~1910)가 이 사상을 국내외의 사상계로 발신했던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때에 미국은 그때까지 ‘팍스 브리태니커’를 구가해왔던 영국제국의 국력을 따라잡으며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세계의 패자(覇者)로서 도약해갔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부호의 대명사이기도 한 록펠러 가문의 최초의 성공자인 존 록펠러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오하이오주에 작은 석유회사를 설립하고 석유자본의 선구적인 활동을 개시한 것이 1865년이며, 또 미국중서부와 서부해안을 잇는 대륙횡단철도를 개설한 것이 1869년이다. 이 시기는 프래그머티즘의 첫 번째 탄생시기와 완전히 겹친다.

이러한 사업을 시발로 석유산업의 경이적 성장과 서부개척운동의 활발화에 의해 19세기 말 뉴욕의 주식시장은 매매규모에서 런던의 주식시장을 앞서갔을 뿐만 아니라 세계최대의 시장으로 발돋음 한다.

미합중국은 내부적으로 분단되고 혼란스러운 신세계에서 세계를 석권한 경제대국으로 급속하게 변모해갔다. 프래그머티즘은 무엇보다 이 격동하는 신세계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청년들의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사상운동

퍼스와 제임스는 동시대를 살았으며 하버드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친구사이였다. 하버드대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철학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언급한 신세계의 경제적인 급 발전과는 별도로 당시 하버드대학을 둘러싼 문화적, 사상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우선 그들이 젊은 연구자였던 시절 남북전쟁 후의 신생미국은 당시 구세계인 유럽의 과학적 진전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미국 독자의 과학연구의 발전이 요구되었다. 당시 링컨대통령 등 국가의 핵심적 리더들은 이를 강하게 의식했고, 실제로 퍼스의 아버지 세대는 그러한 과학적 발전을 경주하게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미국의 주요대학에서 그때까지 200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청교도(Puritan) 개척민의 신학적 전통에 반발하는 별종의 철학적ㆍ사상적 운동을 예비하는 정신적 기운이 생겨난 것이다. 그 중심적 역할은 하버드대학이 위치한 보스턴 주변 지역에 널러 퍼져있던 ‘초월론주의(transcendentalism)’라는 독자적인 사상에게 주어졌는데, 그 사상으로부터 문예와 종교에 관한 새로운 발상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등의 문학가들이 모여들었고, ‘아메리카 르네상스’라고도 불리는 미국 독자의 사상운동이 형성되었다.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같은 특이한 문학가의 세계도 이 운동의 기풍을 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는지 모른다.

이 에머슨의 지적인 그룹에는 하버드의 유력한 수학교수였던 퍼스의 아버지와 스웨덴보르그(Emanuel Swedenborg 1688~1772, 자연과학자ㆍ신학자ㆍ철학자)주의의 종교가인 제임스의 아버지가 있었다. 프래그머티즘의 ‘원류’에 위치하는 퍼스와 제임스는 이 아버지들 세대의 친교를 통해 하버드의 학창시절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과학적 지식의 고도의 발전에 대한 희망을 키워감과 동시에 정신적인 사상운동에도 공명해나가는 것—이것이 고전적인 프래그머티스트들을 길러낸, 당시의 뉴잉글랜드(미국 북동부의 매사추세츠ㆍ뉴햄프셔ㆍ버몬트ㆍ메인ㆍ로드아일랜드ㆍ코네티컷 등 6개 주의 총칭) 특유의 지식환경이었다.

 

형식논리학에서의 혁명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의 최초의 주창자인 퍼스는 링컨대통령의 과학아카데미 설립계획에도 참여한 유력수학자인 아버지 벤자민 퍼스의 차남으로 유년시절부터 과학자, 수학자, 논리학자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전도유망한 학생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아버지 벤자민 퍼스는, 19세기 중반 서양의 수학세계에서 일어난 이제까지의 상식을 깨는 대대적인 혁명뿐만 아니라 수론에서 기하학까지 수학 일반을 토폴로지 등을 응용하여 추상성 높은 일반이론으로서 체계화하고자 하는 야심적인 기획을 목표로 삼았다. 19세기 중반의 수학세계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혁명이란 유클리트 기학학의 공리와는 다른 공리체계에 따른 비유클리트기하학—니콜라이 로바쳅스키(Nikolai Lobachevsky 1792~1856, 러시아의 수학자)와 게오르크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 독일의 수학자)—과 무한의 요소를 가진 집합에 대한 연구—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러시아의 수학자)—등의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수학세계에서 일어난 이러한 혁명은 바로 철학에서 근대를 개척한 데카르트가 고대 이후의 기하학과 아라비아 유래의 해석학을 총합하여 해석기학학의 창출이라는 혁신을 이룩한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세계에서 엄청난 혁명이었다.

퍼스 자신은 부친의 이러한 수학적 기획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연구방향을 세우고 그것을 형식논리학의 분야에서의 혁명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구체화하는 한편,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의 사상적 전제와 문제설정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작업을 통해 서양근대철학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고하는자 했다. 우리가 이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프래그머티즘의 사상은 바로 이 후자의 반데카르트주의 철학관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는 논리학의 분야에서의 퍼스의 업적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할 것인데, 그것은 이 테마가 철학사의 언저리에서 그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형식논리학에서 퍼스가 일으킨 혁명은 철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고대그리스 이래 19세기 후반까지 철학의 세계에서는 암묵적으로 논리학이라는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완성했고 그 이후 논리학에는 어떤 발전도 변화도 없다고 이해해왔고, 퍼스와 고틀롭 프레게(Friedrich Ludwig Gottlob Frege 1848~1925, 독일의 논리학자ㆍ수학자ㆍ철학자)에 의한 이 한계의 돌파는 이 논리학에 대한 그간의 암묵적인 이해에 대한 결정적인 파산선고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퍼스는 칸트의 범주론 등의 연구와 아버지의 토폴로지 등의 공간구조의 연구를 병행함으로써 도상적인 ‘관계의 논리학’의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그것은 내용적으로 완전히 독자적인 방식으로 한정사(quantifier)[명제함수를 정의하는 데 사용하는 기호를 말하며 양화사(量化詞)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모든 ~에 대하여’를 나타내는 전칭양화사는 ∀이고, ‘어떤 ~에 대하여’를 나타내는 존재양화사는 ∃이다]를 포함한 함수적인 형식논리학을 독일에서 구축했던 프레게의 업적과 거의 맞먹는 것이다. 게다가 퍼스와 프레게는 전혀 교류하지 않았는데도 거의 동시기(1880년을 전후)에 각각의 체계를 공공화했다. 퍼스의 논리기호의 시스템은 그 후 에른스트 슈뢰더(Ernst Schroder 1841~1902, 독일의 수학자ㆍ논리학자)와 앨프리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영국의 수학자ㆍ철학자)에 의해 채용되고, 프레게 체계는 화이트헤드의 제자이며 공저자이기도 한 러셀에 의해 발전된다. 우리가 이 책의 후반부에서 보게 될 콰인의 계승자들은 화이트헤드와 러셀 등의 논리 사상을 자신의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그 초석을 닦은 한 사람이 퍼스라고 말할 수 있다.

 

반데카르트주의 철학

이제까지 논리학자로서 퍼스의 업적을 극히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는 논리학과 수학 등의 형식적인 학문뿐만 아니라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등 실질적인 과학의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그의 업적과 경력은 그의 생애를 통해 여러 분야로 제각각 흩어져 있고, 그 속에서 가장 길게 이어간 것은 미합중국 연안측량부에서 지리학ㆍ물리학의 연구자로서의 위치와 하버드대학의 천문대 연구원이라는 자리였다.

수학자이면서 과학자이기도 하고 철학자였던 퍼스는 자신의 사명이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등 과거의 위대한 과학자ㆍ철학자를 비판적으로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철학의 최대 과제를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를 비판한다는 테마로 설정했다. 그의 반데카르트주의의 철학은 대체로 다음의 단계를 밝아가며 전개되었다.

① 데카르트의 인식론적 출발점을 이루는 ‘보편적 회의ㆍ방법적 회의’라는 발상은 애당초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기획임을 보인다.

② 데카르트는 ‘회의’ 끝에 ‘명석ㆍ판명한 관념이야말로 진리이다’라는 원리를 세웠다. 그러나 ‘회의’가 무의미하다면 ‘관념의 명석성’의 다른 기준ㆍ격률(格率)이 세워져야한다. 우리가 가진 신념이나 관념은 어떻게 명석화 될 수 있을까? 그 ‘방법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한다.

③ 이 기준 하에서 관념이 명석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진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정의해야 한다.

퍼스는 1876년경 『월간 파퓰러 사이언스』라는 과학 잡지에 ‘과학의 논리를 해명한다’라는 표제로 연속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시리즈에서 과학적 탐구에 관한 다양한 테마—예를 들어 귀납법의 문제라든지 가설 형성의 방식 등—을 순차적으로 논했는데, 그가 자신의 ‘방법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을 공적으로 논한 텍스트의 중심에 이 논문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이 논문을 통해 퍼스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위의 ①의 논점에 대해서는 ‘과학의 논리를 해명한다’라는 논문 시리즈보다 8년 전, 그가 30세 무렵 『사변철학잡지』라는 또 다른 잡지에 낸 두 편의 논문을 참조한다. 먼저 이 후자의 논문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데카르트적 회의는 무의미하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데카르트 철학의 출발점은 ‘방법적 회의’라는 신선한 발상이다. 『방법서설』 등에서 전개된 데카르트 철학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과학을 근본적으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일체의 일상적 신념과 과학적 지식을 백지로 돌려놓고 전면적인 회의를 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면적인 회의 후에 어떤 관념이 아직 정신 속에 남아있는가를 검토해보면, 그것들은 모두 ‘명석하고 분명한 관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을 출발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선 전면적인 회의를 행한 다음 무엇이 명석하고 분명한 관념인가를 주의 깊게 탐구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생각하고 회의로부터 ‘코기토 에르고 솜’으로 향하며 근대적인 자아를 확립했다.

그러나 퍼스는 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의 주제에 대해 과감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사상을 전개한다. 그는 이 테마를 『사변철학잡지』에 발표한 「인간이라면 갖춰야 한다고 주장되어온 몇몇 종류의 능력에 대한 질문」과 「네 능력의 부정의 귀결」이라는 두 논문에서 주장한다.

데카르트적 탐구의 논리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면적인 회의를 행한 후 자신의 정신을 들여다본다 해도 우리의 정신에는 그러한 ‘내면’이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그러한 내면이 있다고 해도 회의라는 방법으로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신념과 지식을 모두 완전히 백지로 철회하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며 가능하다 해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퍼스가 이 논문들에서 말한 ‘인간이라면 갖춰야 한다고 주장되어온 몇몇 종류의 능력’이란 데카르트 이후 서양근대철학의 세계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의 구별을 넘어서 공통으로 확인되어온,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이미지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의 인식작용이란 인식주체인 내가 자신 안에 있는 관념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고 직관 혹은 지각하는 것’라는 도식, 즉 ‘사고란 내적인 관념의 지각’이라는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퍼스는 서양의 근대철학에 공통하는 이 도식에서 암암리에 인정되는 능력을 크게 네 종류로 나눈다. ‘관념’, ‘확실한 자기인식’, ‘기호 없는 사고’, ‘물 자체의 인식’으로서, 이 인식능력들에 대해서는 심리학의 실험결과를 보아도, 개념 그 자체의 정합성을 보아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데카르트적 관념설이 전제하는 ‘네 가지 능력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인식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코기토로서의 나는 없다

인간의 인식능력 혹은 인식작용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견해란 우리가 ‘기호 없이는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식주체로서의 자아란 바로 그것이 산출하는 기호의 연쇄 그 자체이며 인식 혹은 사고란 결국 기호적인 표현 혹은 언어를 연쇄적으로 만들어내며 종결 없는 추론의 과정에 참가하는 것에 다름 아닌 사고이다. 인간이란 기호 내지는 언어이며, 기호와 인간은 서로를 배우며 서로에게 가르친다. 기호체계가 변화하고 발전하듯이, 인간의 사고도 변화하고 발전하고 과정적으로 이행한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이 최종적으로는 ‘내관(內觀)’에서 종결하며 나아가 ‘직관’이라는 단적인 모습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고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에는 ‘내관’에 의해 투시되는 것과 같은 투명한 의식의 내면이 없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우리의 의식과 사고가 기호에 매개되어 물질적인 측면을 소거할 수 없으며 외계에 대한 지시적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바꿔 말해 외부세계와 단절된 코기토로서의 ‘나’는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코기토로서의 ‘나’가 없다는 것은 단지 정신이라는 실체가 마음속에서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데카르트가 공부한 ‘보편적 회의’라는 철학적 탐구방법이 사실은 실행불가능하며 무효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한 회의에서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출발점은, 철학연구에 착수하고자 할 때에 우리가 실제로 취하는 모든 선입견이다. 이러한 선입견을 하나의 격률에 의해 불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입견은 본래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서에서 회의론은 단순한 자기기만이며 실제의 의심이 없다는 것이 된다. 데카르트적 방법의 추종자이든 다른 누구든 우선 형식적으로 방기한 모든 신념을 다시금 형식적으로 발견하기까지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퍼스는 이처럼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와 보편적 회의는 실제로는 일종의 자기기만이며 우리의 지적활동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실제의 의심(real doubts)’, ‘진짜 회의’라고 한다. 퍼스가 생각하는 진짜 회의란 우리가 견지하는 다양한 신념의 기존의 네트워크에서 어떤 의심들이 생겨나고 그 의심들을 버려두면 우리의 삶의 활동이 지장을 받게 될 때 그러한 장면에서 행해지는 문제제기이다. 우리는 신념의 네트워크에 기초하여 개개의 욕구와 희망을 만족시키며 무수한 행동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행동에서 실패와 좌절이 연속된다면 우리는 어떤 신념이라도 의심하며 그 신뢰성을 다시금 음미할 것이다.

 

신념과 회의의 연쇄

우리는 본래 다양한 활동으로 나아가려는 본능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지적능력을 활용하고 무언가를 인식한다거나 신념체계를 형성한다거나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누구라도 활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유쾌하며 실패나 좌절이 불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동, 행위, 실천은 그리스어로 ‘프라그마(pragma)’라고 한다. 따라서 데카르트적인 회의의 길을 부정하고,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역할을 음미하고자 하는 그의 인식론은 행위를 축으로 사고하는 한에서 프래그머티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이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사상에서 우선 주목되어야 할 ‘프라그마’라는 말의 의미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자연스레” 이해하는 속에서 무수한 활동을 행한다. 이 추론은 신념이 욕구가 조합됨으로써, 외부세계로 향해가는 행위를 위한 디딤판을 제공한다(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나는 저녁식사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가짐과 동시에 오믈렛이 맛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오믈렛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를 떠올려보고 그 재료를 얻기 위한 필요한 수단을 정리하여 그 수단과 관련된 다양한 조건을 고려한다 … 이 경우에 다양한 신념을 엮어내어 하나의 추론의 연쇄가 생긴다).

이 행위의 버팀목으로서 각각의 신념은 그러나 항상 신뢰가능하며 확실한 기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몇몇 신념은 다양한 행위의 맥락을 통해 신뢰성이 상당히 희박한 것, 혹은 극히 의심되는 것으로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우리에게 그 전까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신념이 다양한 새로운 상황 하에서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극히 의심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지적탐구에서 회의란 퍼스에 따르면, 이러한 실제 행위의 맥락 속에서 의심되는 것으로 간주된 낡은 신념을 진지하게 음미해보는 것이다. 회의란 이 맥락에서 처음으로 의미 있고 실질적으로 살아있는 회의가 된다.

따라서 우리의 지적탐구에서 신념과 회의는 항상 역동적으로 교체되는 연쇄를 이룬다. 다양한 신념의 네트워크 없이는 구체적인 회의는 없다. 그리고 구체적인 회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탐구의 수행을 거쳐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신념은 다른 내용으로 개정된다. 우리가 신념에 기초한 회의로 나아가고 이 회의로부터 탐구로 향함으로써 새로운 신념에 도달한다는 【신념—회의—개정된 신념】의 사이클에서 모든 신념은 상호 관여함과 동시에 잠재적으로는 오류일 가능성을 가진다. 모든 신념은 연계되어 있음과 동시에 개정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류적(可謬的)’이다[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우리의 탐구에 의해 달성되는 지식이란 이처럼 데카르트가 꿈꾸었던 것처럼 절대적인 확실성의 기초(코기토 에르고 솜)의 기저로부터 파고들어가 명석판명성(明晳判明性)이라는 기준으로 선별된 지식의 층이 순차적으로 쌓아간다는, 수목과 같은 형식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는 신념의 네트워크가 몇 겹으로 조합되는 시스템으로서의 지식이다.

 

프래그머틱한 격률

그러나 모든 것이 신념의 네트워크이며 그 모든 부분이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개정가능하다고 한다면, 이 신념체계에 ‘진리’라는 개념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모든 신념이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확실성을 부정당하고 어떤 신념도 지식체계의 기초라는 지위를 얻을 수 없다면 애당초 신념에 대한 진위를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근저에서 부정하는 것은 실제로는 그 자체로 지식의 단념, 진리의 방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그 때문에 퍼스는 앞서 반데카르트주의의 철학으로 ②와 ③의 논점을 제기하고 이것을 1877년의 『월간 파퓰러 사이언스』에서의 연속논문 시리즈로 논했다.

그는 우선 ②의 테마를 생각하기 위해 이러한 행위와 연계된 신념이라는 발상 하에서 ‘사고와 판명, 신념과 명제를 명석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논한다. 그가 여기서 ‘명석ㆍ판명한 관념은 진리’라는 ‘데카르트의 격률’에 대체하여 ‘프래그머틱한 격률’을 도입한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등에서 그 자신의 방법론ㆍ인식론으로서 우리가 자신의 정신을 반성적으로 이끌고자 할 때에 필요한 지침으로서 ‘격률’을 제기한다. 격률이란 근본적인 원리는 아니지만 행위지침으로서 충분히 기능하도록 하는 유의미한 규칙을 말한다.

퍼스에 따르면, 데카르트의 보편적 회의가 무의미한 것처럼, 데카르트의 격률, 즉 ‘명석ㆍ판명한 관념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무효하다. 왜냐하면 데카르트가 말하는 의미에서 ‘명석ㆍ판명’이란 어디까지나 정신의 내면에서 출현한 관념의 특징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주관적인 현상이며 대개 개인이 품는 ‘느낌’과 같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관념이 개인에게 명석하게 느껴지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명석하고 활용 가능한 의의를 가진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사고는 내면에서가 아니라 공적인 장면, 기호 등의 공공적인 것을 매체로 함과 동시에 그것이 행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확실하게 드러나야 한다.

회의를 포함하여 지적노력의 의의가 안정된 행위의 지침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한다면, 사고의 명석ㆍ판명은 어떤 행위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귀착되어야 한다. 그래서 퍼스는 다음과 같은 ‘프래그머틱한 격률’을 사용해서 관념 혹은 신념에 관한 ‘고쳐 쓰기의 도식’을 제안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과 데카르트와의 대비를 부각시키기 위해 자신의 논문에 ‘어떻게 하면 우리의 관념을 명석하게 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여기서 관념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내관(內觀 introspection)에 의해 지각되는 마음속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신념’ 혹은 ‘글’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단단하다’는 관념ㆍ신념ㆍ글‘다이아몬드를 사용해서 긁으면 모든 물질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관념ㆍ신념ㆍ글

이것은 얼핏 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문장의 교정인데, 문법적으로는 큰 변환이 숨겨져 있다. 처음의 문장은 ‘주어+술어’의 보통의 평서문이며 단문이다. 한편 그 다음 문장은 두 개의 문장을 포함하는 복문이며 그 형식은 ‘앞서 행하면 그 다음으로 귀결한다’는 전제ㆍ귀결을 표하는 조건문이다. 즉 보통의 평서문은 이 ‘명석화’의 방법에 따르면 조건문으로 고쳐 쓸 수 있다.

고쳐 쓴 전제ㆍ귀결의 조건문은 행위의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무엇인가에 흠집을 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때, ‘다이아몬드를 사용해서 긁으면 모든 물질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신념’이 이 욕구표현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명석함의 제3단계

서장에서 잠시 살펴본 제임스의 ‘프래그머티즘의 의미’에서 제임스는 프래그머티즘이 우선 퍼스에 의해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고 하면서 퍼스가 만든 ‘격률’을 언급했다. 제임스는 퍼스의 격률을 그 나름의 사고 변형을 가해 설명했는데, 그것은 퍼스가 『월간 파퓰러 사이언스』에 실은 첫 번째 논문, 「우리의 관념을 어떻게 명석하게 할 것인가?」에 서술된 격률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격률을 보면, 퍼스의 원래 문장과 제임스의 인용문과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변화는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사상의 엄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는 결코 무시될 수 없지만, 대략을 소개하는 본 글에서는 큰 문제로 삼을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해의 명석함의 제3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가진 개념의 대상이 무엇인가의 효과를 발휘하게 되면, 우리가 생각한다고 해도 만약 그 효과가 행동에 대해서도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상정된다면 그것이 어떤 효과라고 생각되는지를 꼭 음미해보아야 한다. 이 음미에 의해 파악되는 효과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관념이야말로 그 대상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모든 개념을 이룬다.

퍼스는 여기서 이해의 명석함에 관한 제3단계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가 의미하는 제1단계란 사회적인 통념의 수준에서의 명석함 혹은 우리가 상식 하에서 ‘자명’하다는 명석함을 뜻한다. 그리고 그 다음의 제2단계는 데카르트적 회의 하의 내관의 수준에서의 명석함이다. 이에 반해 그 자신이 말하는 명석함의 제2단계란 어느 대상에 대한 사고와 관념을 그 대상이 ‘효과가 행동에 대해서도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상정된다면 그것이 어떤 효과라고 생각되는가’ 라는 모습으로 분석되는 것이다.

퍼스는 이 격률을 ‘프래그머틱한 격률’로 부르는데, 그것은 우리의 사고내용을 실천과 행동에 임하는 자기 자신에 의한 유의미함의 관점에서 확실한 것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행동에 임할 때의 유의미함의 관점이란 대상이 행동에 대해 어떠한 실제의 영향, 효과를 갖는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격률을 중심으로 구상되는 우리의 인식 혹은 지혜의 본성과 의의를 생각하는 철학전체에 대해 ‘프래그머티즘’이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신념의 진리화로의 길

조금 더 이 의미의 격률에 대해 부가하면, 이 의미의 격률은 통상 평서문에서 표현되는 신념(‘S는 P이다’)을 행위와 효과의 연결을 나타내는 조건문(‘만약 행위a를 실행한다면 효과e가 얻어질 것이다’)의 모습으로 고쳐 쓰시오 라고 명한다.

평서문에서 조건문으로 고쳐 쓰기를 언어철학과 논리학의 문제로서 조금 더 언급하면, 앞서 살펴본 것처럼 퍼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논리학에서 평서문의 이해를 함수와 변항(變項 variable)의 형식으로 이해함으로써 프레게와 나란히 현대논리학의 선조가 되었다. 이때 ‘다이아몬드는 단단하다’의 형식논리적인 표기는 거칠게 정리하면 ‘함수ㆍ단단하다(x) 그리고 x=다이아몬드’이며, 그것은 명제 간의 진리보존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는 연역적 추론에서 큰 위세를 발휘한다.

그러나 집합론적 의미론에 대응하는 이 함수표기적 분석과 실천적 신념의 활용이라는 입장에서 사유되는 평서문의 조건법적 변환이라는 발상은 완전히 동일한 아이디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반드시 서로 잘 들어 맞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퍼스의 의미의 격률을 엄밀하게 생각하고자 한다면 논리학적으로는 다양한 기술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2부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조금 더 다룰 것이며 나아가 3부에서 살펴볼 퍼스의 수학론의 재평가라는 테마와 관련해서도 한 번 더 검토하기로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우선 고전적인 프래그머티즘의 기본적인 발상을 다룬다는 맥락에서 이 의미 분석의 골격을 대략적으로 이해해보았다.

여하간 우리의 신념은 이 격률을 활용함으로써 행위에서 충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유의미한 신념인가 아닌가를 판정하는 기준을 갖게 된다. 다이아몬드의 단단함을 예로 간단하게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평서문의 형식의 주장은 가설적인 조건문으로 변환됨으로써 행위의 맥락에서 이용 가능한 유의미한 문장으로 명석화된다. 그러나 문장이 명석하다는 것은 그것이 진리임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명석화하기에 앞서 그 진리화의 길을 탐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신념 확정의 스타일

앞서 언급했다시피,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에서 진리라는 것을 해명하는 단계 ③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행하는 지적활동에서 탐구는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다. 그에 주목하여 사고의 명석화에 더욱 적합한 탐구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면, 그 스타일이 채용할 수밖에 없는 진리관을 진리의 새로운 정의로 채용하게 된다. 이것이 단계 ③이다.

우리의 지적탐구는 어디까지나 다양한 의심의 상태에서 벗어나 신념을 확정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려는 기획이다. 탐구에 대한 이 정의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일정한 신념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는 것이 된다. 즉 ‘어떤 방법도 무방하기 때문에 신념만 얻을 수 있다면 좋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퍼스는 말한다.

신념을 ‘확정하는 힘’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그것들을 그룹으로 분류하면, 각각의 스타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그러나 그것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신념이 그 후의 의심에 대해 더욱 강고하게 저항하여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신념의 획득법인가 라는 의미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신념의 확정스타일로 ‘전통에 맹목적으로 따른다’, ‘사회적 귄위에 따른다’, ‘이성이 이끄는 대로 따른다’, ‘과학적 탐구의 공동체가 이끄는 대로 따른다’라는 네 종류가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확정하기 위해 이것들 중 어떤 방법에 따른다고 할 때에 어떤 신념의 확정스타일이 유의미한 스타일일까?

우리는 무언가를 믿기 위해 충분한 탐구 과정을 밟을 수도 있으며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믿는다고 할 수도 있다. ‘전통에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다양한 환경의 변동이나 위기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일체의 의심을 품지 않고 어떤 신념을 “그냥” 계속해서 믿는 것이며, 종종 ‘타조정책(ostrich policy)’이라는 경멸적인 어구로 표현되기도 한다(타조는 적이 나타나면 모래 속으로 머리를 박고 ‘보지 않으려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또 ‘사회적 권위에 따른다’는 방법은 자신의 신념체계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기 위해 현실직시를 거부한다는 자세는 아니지만 무엇인가 의문이 생기는 경우, 예를 들어 국가지도자가 주입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상의 절대적 지도자의 교시를 절대시하는 것으로서 맹신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이것들은 신념을 확정하는 힘으로서는 완전히 어리석은 것이며 무가치한 정책인 것일까? 물론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념을 개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극히 에너지를 요하는 작업이며, 대가가 따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와 대가라는 것을 최대한 중시한다면, 신념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지적노력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신속하게 신념을 확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둘이 극히 유력한 스타일이다.

 

과학적 탐구의 방법

그러나 이 두 스타일은 사회의 변화와 환경의 격변에 대응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분명 건강함을 결여하고 있다. 신념체계에 어떤 의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을 때에 종래의 신념을 고집하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체계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극히 폐쇄적인 사회에서만 유효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경의 격변 등을 경험한다면 매우 큰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성을 중시하는 방법과 과학적 탐구를 중시한다는 후자의 두 방침은 맹종도 아니며 지적인 의미에서 큰 가치를 가진다. 다만 그것들은 지적노력을 필요로 하는 이상 어느 쪽에서 지적노력이 유효한 것일까 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 점에 대해 퍼스는 데카르트적인 이성에 기초한 탐구는 단지 방법적 회의라는 자기기만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성’이라는 모호한 개인적 자질에 의거하고 있는 한에서 그 결론은 결국 개인적 선호의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위험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떠한 추론이 이성에 맞을까? 그것이 개인의 수준에서 판단되는 한, 그것은 개인적 선호의 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개인적 선호의 판정이 무의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념의 실패나 좌절에 동기 지어지는 회의와 탐구가 개인적 선호의 판정으로 귀착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중간하다.

신념이 개정된다면, 그것이 대가를 수반하는 작업인 이상, 신념이 고정 후에는 가능한 한 장기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즉 가능한 한 건강한 것이어야 한다. 그 때문에 개인적 선호에 의거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신뢰성이 낮다. 따라서 개인적 판정의 단계를 벗어나는 방법을 구하는 것인데, 그것은 복수의 탐구자의 의견과 신념을 상호 비판적으로 대조하여 그 합의에 따라 더 나은 탐구를 기도한다는 과학적 탐구로 나아간다. 바꿔 말하면, 탐구를 개인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탐구자의 공동체의 결착에서 판정을 구하는 스타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신념개정의 가장 우월한 스타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즉 과학적 탐구방법이야말로 우리의 신념의 확정방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탐구방법은 그것이 복수의 탐구자의 공동 작업에 의해 성립된다는 의미에서 단독의 이성적 반성자의 인식보다도 더 건강하며 유효성이 높다. 그러나 과학의 강함은 탐구자의 복수성이라는 것만으로 산출되지 않는다. 과학적 탐구는 가설의 경험적 실험이라는 의미에서의 귀납적 추론과 가설의 착상이라는 의미에서의 가설 형성적 추론과 법칙이나 가설로부터의 예측의 도출이라는 의미에서의 연역적 추론이라는 세 종류의 추론의 패턴이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는 모습으로 잘 맞추어서 실행된다. 즉 과학적 탐구는 복수의 서로 다른 추론 스타일이 그물망처럼 서로가 서로의 추론의 강함을 보강한다.

퍼스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가 공동체적이라는 것과 다수의 추론스타일의 상호보증이라는 것은 사태의 표리이다. 과학은 형이상학을 근간으로 하여 그곳으로부터 성장하는 줄기와 같은, 데카르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탐구자와 많은 가설적 추론이 하나의 그물망처럼 얽혀감으로써 그 강함을 발휘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미래’와 진리

즉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진리’의 의미는 탐구방법에서 가장 신뢰성 높은 스타일이 있을 때에 그 스타일 속에서 전제되는 진리개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한에서 과학적 탐구방법이야말로 그러한 신뢰성 높은 탐구방법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산출되는 진리의 의미란 과학적 지식의 추구에서 상정되는 진리개념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의 공동체가 상정하는 진리개념이란 결국 어떤 것인가? 퍼스에 따르면, 그것은 ‘탐구의 공동체라는 이념적인 조직을 사고하고, 그 속에서 탐구의 무제한적인 지속을 통해 무한의 과정의 수렴점으로서 생각되는 최종적 신념’이다. 진리란 눈앞에서 바로 찾아지는, 이미 손에 넣은 신념이 아니다. 모든 신념은 가류적인 이상, 최종적 신념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종적 신념’으로서의 ‘진리’가 불가능하며 무의미한 개념이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무제한의 탐구의 지속이라는 이념적인 모델과 상관하는, 이념적인 존재로서 무수한 탐구를 이끄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란 공동체와 결속되며, 나아가 공동체의 미래의 모습과 결속되는 개념이다. ‘언젠가’ 모든 신념이 총합적으로 체계화되어 최고도의 조화를 체현하는 것이라면, 그때 진리란 현현(顯現)하는 무엇인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수학과 논리학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선구적인 과학적 발견을 해낸 퍼스는 이러한 ‘공동체의 미래’에서 의견일치라는 비전을 자신의 진리개념으로 삼았다. 그는 때로 다양한 신념의 네트워크가 최종적으로 하나의 수렴점으로 결정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강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탐구과정이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이론적 조화로 ‘수렴’하는 것. 이것은 여러 과학적 분야에서 활약하며 수학과 논리학에서 결정적인 발자취를 남겼던 퍼스가 품은 ‘진리’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 후에 나온 프래그머티스트들의 상다수(콰인, 로티 등)는 이 개념에 강한 의문을 표명한다. 그리고 그 의문을 최초로 표명하고 진리에 대해 다른 견해를 제시한 사람이 바로 다음에서 살펴볼 퍼스의 절친, 제임스이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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