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인류학 지형도

레비-스트로스에서 ‘존재론의 인류학’까지

 

1. 계승되는 구조주의

인류학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는 주체가 자신의 존재와 활동을 이해하기 위한 재귀적인 지(知)의 실천법이다. 인류학자는 시간축을 통해 자신의 기원인 생명사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한편, 공간축을 통해 미지의 ‘타자’를 발견해낸다. 이 방법은 인간성의 이해를 목표로 하는 인문과학으로서 실로 모순과 긴장을 내재하는 질문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인류학은 총체로서의 인류를 전(前)인류학적인 생물의 역사와 연결 지음과 동시에, ‘문화’라는 활동영역을 획정함으로써 인류를 생물계로부터 떼어놓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류학은 항상 연속성과 비연속성이라는 이중의 기준을 자연사 속에서 표명해왔다. 요컨대 인류학의 학지(學知)는 자연계에서 태어난 생물의 일부이면서 그것으로부터 분리된 것이기도 한 인간의 모순적인 조건을 드러낸다.

이때 문화는 자연의 일부로 세계에 내재하면서도 스스로 차이를 만들어내어 인간집단의 독자성을 산출하려는 실천과 결부된다. 문화는 연속성의 계열에서 자연계에 숨겨진 미발견의 정보를 추출하고 스스로를 다른 사회와 차이화하는 조작자로 활동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 문화는 자연계에 발생한 생명의 연속성을 부정하고 ‘문명’이라 부르는 집약화된 환경의 얼개를 드러내는 원리와 관계한다. 후자는 자신의 세력을 공간적으로 확장할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자신과 자연의 연속성을 은폐한다. 이 은폐작용에는 타자를 문명권으로부터 배제하려는 모든 지적 조작이 포함되며, 문명인은 바로 이 조작에 의해 자신의 존재기반과 다른 조건을 살아가는 타자를 배제하거나 정치경제적으로 이용해왔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인류학은 문명의 고질병인 이러한 은폐작용에 저항하는 지혜의 계보학을 계승하는 학문이자, ‘문명과 야만의 대립’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최초로 받아들인 학문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에 은폐된 생명과정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이라는 문제는 특히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연구에서 주요하게 다뤄진다. 1955년에 발표한 『신화의 구조』를 시작으로 그의 신화연구는 보아스(Franz Boas, 1858~1942, 미국의 인류학자)류의 정밀한 신화연구의 기본자세를 계승하는 한편, 이 문제와 씨름하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예를 들어 레비-스트로스가 1967년에 발표한 논문 「아스디왈 이야기」(Claude Levi-Strauss. 1967. "The Story of Asdiwal", in Leach, ed., The Structural Study of Myth and Totemism, London: Tavistock, pp. 4-7) (Claude Levi-Strauss. 1973. "La geste d'Asdiwal", Anthropology structurale deux, Paris: Plon)에는 태평양 연안의 캐나다 선주민인 치므시 족(Tsimshian)에서 계승되는 다양한 세계인지의 틀을 ‘도식’(schema)으로 추출해내고 여러 지역의 전승과 비교함으로써 신화의 교환구조를 해명하고자 했다. 이 연구는 지리적, 사회학적, 우주론적, 기술ㆍ경제학적이라는 네 개의 도식에 따라 선주민의 생활 속에서 경험되는 무의식의 논리를 검토하고 개인과 사회와 언어집단을 넘어서는 인지공간의 양상을 지도화했다. 신화는 집단 간에 공유되는 신화소의 관계에 기반하여, 자연계의 일부로 존재하는 제 사회의 의미론적인 공통성과 차이를 반복하며 치환, 병치, 역전의 신화소의 교환조작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을 관통하는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의미하는 것’ 안으로 직조해넣는다. 이 섬세한 기술에 의해, 이를테면 영웅 아스디왈, 소녀로 변신한 흰곰, 스키나 강 계곡, 나스 강, 천상계와 지상계, 여름과 겨울 등 표면적으로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상(事象)이 신화로 편입된다.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배치를 둘러싼 레비-스트로스의 관심은 그 후 토테미즘이라는 인류학적 개념을 재고하는 두 연구(『오늘날의 토테미즘』과 『야생의 사고』)(※이 두 저작은 1962년에 출간되었으므로, 실제로는 「아스디왈 이야기」보다 앞선다.)를 거쳐 보다 진일보한 단계로 나아간다. 이 저작들에서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의 민족지를 두루 참조하면서, 인간을 다른 생물ㆍ무생물과 동일시하는 것을 이론적 오류로 보았던 옛 토테미즘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는 이제까지 민족학자[인류학자]가 종교적 환상으로 간주해왔던 ‘토테미즘’이라는 사고방식에서 자신의 분류체계에 기초하여 인간과 비인간의 기호적 관계를 재구축하는 역동적인 지적 실천을 발견해낸다. 즉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각지의 선주민은 ‘토템’이라는 살아있는 기호를 조작매체로 하여 종과 개체, 기호와 신체를 연결하는 가치환원을 현실화해왔고, 이를 통해 ‘다수성의 통일체[동식물의 다양한 종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체계]’에서 ‘통일체의 다양성[인간이라는 하나의 종 내부의 다양성]’을 이끌어내어 자연과 문화라는 서로 다른 인식론적인 위상을 전환할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을 문명권의 ‘길들여진 사고’에 대치하여 ‘야생상태의 사고’로 규정한다. 토테미즘이란 바로 이 ‘코드’들을 횡단하여 인간(문화)과 비인간(자연)이라는 두 개의 차이체계 간의 상동성(相同性)을 추출하는 종(種)의 철학이다, 라고 레비-스트로스는 생각했다.

『야생의 사고』가 이끌어낸 ‘철학자 없는 철학’ 혹은 ‘인류최고의 철학’의 탐구는 그 후 인류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지성에 충격을 주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그 후 십수년에 걸쳐 아메리카선주민의 신화연구를 이어갔고, 그 성과로서 자연과 문화를 관통하는 포괄적이고 다원적인 생명기호론의 맹아가 촉진되었다. 구조주의는 이를테면 세계각지의 무수한 선주민 사상을 상호 연관 짓는 다원론의 필드로서, 그 이후에 오는 존재론적 인류학의 요람을 예비한다. 구조주의는 살아있는 문화를 죽어있는 상징성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과 문화를 종횡으로 관통하는 역동적인 기호변환의 사고로서 계승되고 있다.

 

2. 『신화학』에서 ‘퍼스펙티브주의’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문화적 활동의 다양한 측면을 세분화하고 그로부터 인간상을 재구축하는 문화인류학의 전통 속에 뚜렷한 특이성을 던져놓는다. 그것은 『슬픈 열대』의 마지막에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으며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라는 불가사의한 문장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는 다음 세기의 사변적 실재론의 선구자로서 인류발생 이전의 세계 또는 인류멸망 이후의 세계에 지식활동의 근거를 위치 지었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인문과학의 사명이란 인간상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해체하여 말하자면 ‘인류이전’과 ‘인류이후’에 연속하는 물(物)의 세계로 용해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물(物)이란 관념의 세계와 대척하는 균질적인 질량의 세계가 아니라, 이를테면 재규어, 들고양이, 금붕어, 요괴, 개미, 제비꽃, 바람, 카누, 금성 등이 북적거리는 세계이다. 요컨대 뇌와 물질, 생물과 무생물, 기호와 환경의 차이를 넘나드는 드넓은 실재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프레데릭 켁(Frédéric Keck)이 지적한 것처럼, 레비-스트로스의 두 권의 토테미즘 연구에 나타나는 ‘주체의 용해(분해)’라는 과제는 그 후의 신화연구에서 철저한 애니미즘 연구로서 실행된다. 『신화학』에서는 다수의 신화텍스트가 ‘변환’(transformation)이라는 관점에서 분석되는데, 거기에는 다양한 신화소를 통해 주체의 개념을 변형하여 ‘분자적인’ 차원에까지 용해시키는 조작을 포함한다. 이 조작은 초기 신화연구의 ‘도식’(schema) 개념에서 좀 더 복잡한 가치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코드’라는 개념으로 변천된다. 이 변천은 특히 『야생의 사고』에서 전개된 신체와 종의 관계를 추적하는 다원론적인 이해의 성과이며, 이 이론의 풍요성은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성물(聖物)인 츄링가를 둘러싼 우주론적인 해석에서 남김없이 발휘된다. 그 후 집필한 『신화이론』에서는 신화분석의 대상이 남북아메리카대륙의 선주민 사회라는 영역으로 옮겨간다. 이 속에서 그는 ‘사회학적 코드’, ‘계절의 코드’, ‘천문학적 코드’, ‘동물학적 코드’, ‘청각적 코드’, ‘후각적 코드’, ‘경제=기술적 코드’ 등의 다양한 코드를 구사하며 자연과 사회를 횡단하는 선주민사회의 사상을 탐구한다.

1950년대의 ‘도식’에서 ‘코드’로의 분석적 방법론의 전환은, 근린의 부족 간의 생태문화를 비교하는 한정적인 연구에서 나아가 보다 광역적인 집단 간의 생태와 그 생산물인 신화 텍스트 간의 비교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신화학』에서는 데스콜라의 ‘토테미즘 사회’ 연구에서 다뤄진 다양체 구조의 분석방법이 전면화해서, ‘애니미즘 사회’라는 보다 큰 문제계가 등장한다. 켁이 말한 것처럼, 여기에는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논한 주체화의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즉, 토템적인 주체에서는 미분차이적으로 배분되는 질(質) 전체를 통해 개체를 집합적인 주체에 귀속시키는 것이 문제인 것에 비해, 애니미즘적 주체에서는 신체의 불연속성을 통해 혼의 연속성을 지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와 같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배치는 반드시 자연/문화의 이항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다양한 대립항과 ‘코드의 변환작용’에 의해 미끄러지듯 횡단하는 기호 활동의 특징을 나타낸다.

레비-스트로스의 세대를 제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인류학의 제1세대로 한다면, 1968년 이후 소위 ‘포스트구조주의사상’의 대두에 직면하여 그에 동참했던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모리스 고들리에는 이른바 ‘제2세대’의 인류학자에 해당한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라캉파 정신분석학의 세례를 받았고 파라과이와 뉴기니아에서 민족지조사를 수행했으며 이 성과를 바탕으로 구조주의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고자 했다. 이 세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상징적 교환의 우위를 설파하는 구조주의에 대해 미개사회의 폭력의 메커니즘 혹은 전제국가적인 정치네트워크를 내세우거나(클라스트르), 증여와 교환을 지지하는 사회의 상상적 차원의 균열에 착목함으로써 교환불가능한 ‘성스러운 것’의 기원에 도달하는(고들리에) 것과 같이, 구조주의에 대항하는 접근에 있었다.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출간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자본주의와 분열증’ 시리즈에 클라스트가 깊은 영감을 주었고, 고들리에는 더 나아가 1990년까지 ‘상상적인 것’에 관한 이론화를 진행하여 경제인류학에 큰 전환을 기도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젊은 세대가 학문영역을 넘나들며 ‘구조주의’에 대치했던 그 당시에 정작 레비-스트로스는 작자미상의 음악을 뽑아내는 악인(樂人)처럼 무수하게 생성되는 신화의 해석에 몰두한다. 1971년 네 권의 대작 『신화이론』을 쓴 후에 그는 『소신화이론』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대륙의 선주민 신화연구에 착수한다. 그러나 그의 고독한 산책길은 착종하는 길목에서 후속세대의 착상과 교착하게 된다. 

19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필리페 데스콜라와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de Castro) 등의 ‘전후에 태어난 세대’의 인류학자들이 맹활약을 펼치게 되는데, 그들은 오히려 레비-스트로스의 광범위한 연구에서 미발견된 철학적/인류학적 발상의 맹아를 추출하려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다. ‘전후 제3세대’에 속하는 이들은 언어학과 인류학을 석권했던 ‘구조주의’에 대해 ‘포스트구조주의’의 다양한 신사상을 대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양자를 적극적으로 매개하여 독자적인 방식으로 종합하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은 구조주의 이후의 인류학의 주요 관심사였던 주체화의 이론과 인지인류학의 성과를 경유하여, 나아가 영미계의 인류학자를 중핵으로 하여 1980년대의 민족지학을 석권했던 ‘포스트모던 인류학’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당시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여겨졌던 구조주의의 성과를 재검토하여 차세대의 문제계를 장악해간다.

예를 들어 데스콜라는 1976년부터 2년 반에 걸쳐 에콰도르의 아추아르(Achuar) 사회에서 현지조사를 행한다. 그는 그때까지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자연’이라고 여겨졌던 아마존 밀림이, 실은 선주민이 동식물을 비롯한 생태환경에 손을 가해서 구축해온 것임을 발견해낸다. 아추아르족은 수렵대상의 특정 동물과 화전대상의 재배식물과의 관계를 친족관계의 네트워크에 비유하여 다양한 생물종 사이에 사회적인 아날로지를 형성해왔다. 이 상징적인 실천의 그물코를 통해, 그들은 야생영역과 인간의 거주공간을 매개하는 광대한 인터페이스로서 삼림생태계를 구축ㆍ유지해왔던 것이다(『길들여진 자연』<La Nature domestique: symbolism et praxis dans l'écologie des Achuar> 1986년). 데스콜라는 나아가 레비-스트로스류의 시적문체를 이어받아 『황혼의 창(槍)』(<Les de crépuscule. Relations jivaros, haute Amazonie> 1993년)을 저술하고, 문학적 표현ㆍ철학적 모색ㆍ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연결하는 유니크한 서술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리고 2005년(영어판은 2013년)에 발표한 『자연과 문화의 저 너머』(<Par-delà nature et culture>)에서 그는 자신의 조사를 포함하여 전세계의 민족지를 검토하는 분석개념으로서 ‘내부성’(intériorité)과 ‘신체성’(physicalité)이라는 두 개의 분석항을 설정하고, 각각의 계열을 연속성/비연속성에 따라 네 개의 변환가능한 유형(‘자연주의’, ‘유추주의’, ‘토테미즘’, ‘애니미즘’)을 추출해낸다. 데스콜라는 이 모델을 통해 이를테면 미셸 푸코류의 지(知)의 계보학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론을 융합시키는 밀도 높은 논의를 전개한다. 이리하여 연속성/비연속성의 위상에 숨겨있는 존재론적인 조건을 밝히는 변환의 학문으로서 인류학은 세계각지에 전승된 예지를 총합하여 새로운 출발지점에 서게 된다.

데스콜라와 동시대에 지적형성기를 거쳐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전반까지 브라질에서 인류학적 필드워크를 행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또한 현대의 ‘존재론의 인류학’을 대표한다. 그는 야왈라피티(Yawalapiti)라는 브라질의 선주민 사회에서 민족지조사를 수행하였고,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의 구상을 계승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의 잠재적인 우주론을 재구축하고자 했다. 이 지적작업을 수행하면서 그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참조한다. 특히 그는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개의 고원』에서 인용한 20세기 인류학의 축적을 인류학의 필드로 되가져와 검토한다. 비베이로스 드 카스트로는 이때 구조주의적인 분석의 틀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의 성과인 다원적인 존재생성론을 인류학의 영역에 도입함으로써 세계 인류학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의 자세는 ‘세계는 관점의 다양성에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 아마존의 선주민 사상을 급진화해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 사상을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라고 부르고 다른 아메리카사회에까지 확장하여 주체와 객체를 소여의 전제로서 시작하는 일체의 철학과 대치시킨다(Cosmological Deixis and Amerindian Perspectivism in The Journal of the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Vol. 4(3), 1998).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 의하면,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우주론적 사상에서는 관점의 다양성이 주체의 다원적인 존재방식을 결정하며, 그 반대가 아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먹는 자(포식자)’와 ‘먹히는 자(피포식자)’의 관계는 생태계에 새겨지는 비대칭의 존재론적인 긴장을 낳는데, 이 비대칭성은 고정적인 것도 절대적인 것도 아닌 복수의 그물코의 결절점에서 구현된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에게 포식자가 다른 동물에게는 피포식자이기 때문에 포식관계에 따라 주체와 객체의 위치가 항상 변전된다. 나아가 초자연의 정령이라는 제3자의 관점을 우주론에 편입시킴으로써 주체 간에 교착하는 관점의 그물코는 선조와 동물혼령 등의 영역에까지 확장된다. 모든 존재는 각각 별개의 신체를 가짐으로써 그 특이성을 세계에 표출하는데, 그와 동시에 그 개체의 주체성(정신성)을 맡는 것은 신화시대의 모든 존재로 분유되는 초기조건으로서의 ‘인간성’이며, 인간은 단지 이 인간성을 지금까지 갖고 있는 것만으로 다른 동물들 일반과 차이화된다. 즉 일찍이 모든 생물이 공통문화로서 ‘인간성’을 가졌던 것인데, 시간의 경과와 함께 복수의 경로에 따라 그것을 잃거나 몰래 감춘 우주론적 사상이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에게 공유되어왔다고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말한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사상으로 추출한 ‘퍼스펙티브주의’는 그 후 덴마크의 모르텐 페데르센(Morten Axel Pedersen)과 레인 윌러슬레브(Rane Willerslev)에게 계승되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베링거 해협을 넘어 축치(Chukchi, 시베리아 동북부 축치반도의 소수민족), 유카기르(Yukaghir, 시베리아 동북부 지역의 소수민족), 몽골에 이르는 시베리아와 북아시아 사회에까지 적용된다. 신체를 구체적인 관점의 거처로 삼으면서 ‘퍼스펙티브가 주체를 결정한다’라는 ‘퍼스텍티브주의’의 이론은, 결코 범세계적인 보편사상도 애니미즘적 사고의 필요조건도 아니지만, 그 후의 전개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잠재적인 사상의 거처를 비추며 인간과 동물, 정령적 존재의 상호관계를 재고하는 새로운 인류학 연구를 촉진해왔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말을 빌리면, 이러한 사상연구는 “《세계성》가운데 인간을 위치 짓는 새로운 과학”의 일환으로서 미래의 인류학을 개척하는 가능성을 간직한 것이 아닐까?

 

3. ‘대단절’을 넘어서는 과학인류학

데스콜라는 레비-스트로스의 ‘자연과 문화의 이항대립’이라는 도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발생조건을 발굴해내는 ‘자연의 인류학’으로 향했다고 한다면,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자연과 문화의 이항’에 잠재되어 있는 역학에 착목하여 그 근본적인 전제로서 자연의 단일성과 절대성을 전복한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민족지에서 재구성된 사상(思想)으로서, ‘유일의 문화와 다수의 자연’을 조합하여 성립하는 ‘다자연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유일의 자연과 다수의 문화’로 조합하는 서양의 일반적인 상식(다문화주의 내지는 단일자연주의)에 대치한다. 이 이론적인 틀의 배경에는 레비-스트로스의 아메리카 선주민의 우주론 연구, 라이프니츠에서 니체를 거쳐 들뢰즈에 이르는 철학적인 다원론이 있는데, 무엇보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가 개척한 ‘과학인류학’의 성과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라투르는 데스콜라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와 마찬가지로 철학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경험적인 필드워크를 거쳐 보편적인 문제계를 묘사하는 철학적 인류학으로 회귀한다. 흥미로운 것은 데스콜라가 아마존의 민족지 연구에 몰두한 1970년대 후반, 라투르는 스티븐 울가(Steven Woolga)와 함께 과학자의 실험실 생활에 대한 미시사회학적인 조사를 실시했다는 점이다. 라투르는 실험실에서 연구자에 의해 다양한 작용이 가해지는 연구대상과 더불어 그 연구가 어떻게 행해지는지의 상호행위와 합리적 설명과정에 착목함으로써 ‘재귀적 민족지’(reflective ethnography)라 칭하는 과학실험을 둘러싼 연구실천의 수법을 확립한다(『실험실의 생활―과학적 사실의 사회적 구성』<Laboratory life: The Social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1979년). 이 초기의 민족지적 연구는 일상적인 사회상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미시적인 코드를 탐구하는 에스노그라피의 방법론으로 실시되었는데, 관찰자와 피관찰자를 둘러싼 권력관계뿐만 아니라 쌍방이 관여하는 물(物)(비인간)의 세계에 착목함으로써, 후년의 과학인류학을 개척하게 된다.  

그 후 라투르는 모국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19세기의 세균학자인 루이 파스퇴르의 실험실 연구를 둘러싸고 ‘과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다층적인 현실영역을 오가며 물(物)의 세계와 말의 세계를 매개해왔는가’ 라는 문제를 정밀하게 그려낸다. 또 1970년대 파리에서 계획된 그러나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고 실패로 끝난 ‘컴퓨터로 제어하는 지하철 계획’(“아라미스 계획”)을 주제로 삼아 고도의 과학기술에 기반한 현대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인 세계의 너머에 있는 물(物)을 동원하여 산업화된 공간에 가치를 실현하려 하는가라는 문제의 분석을 시도한다. 이러한 실천을 바탕으로 라투르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행위주체의 네트워크로서 사회들을 파악하는 이른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를 창안한다. 그것은 산업사회의 수많은 기술적 매개를 일종의 비언어적인 해석과정으로 간주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된 실험실과 기술시험장을 상호행위로 넘쳐나는 인간적인 의미의 공간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시도이며, 나아가서는 근대주의가 전제로 하는 ‘자연과 문화의 대단절’을 넘어 물(物)의 민주화와 공공화에 기반한 새로운 공통세계를 구상하려는 시도이다.

라투르에 따르면, 인류학적인 연구를 행하는 사람들의 사회도, 그 대상이 되는 ‘미개’와 ‘전근대적’이라고 불리는 사회도, 본질적으로는 그 무엇도 다르지 않다. 존재하는 것은 인간적인 것의 영역(사회)과 비인간적인 것의 영역(자연)을 나누려는 ‘순수화’의 힘과 양자를 연결하는 ‘매개’의 힘이며, 이 양극 사이에는 언제나 인격과 물(物)의 영역을 오가는 하이브리드한 존재가 꿈틀거린다. 다른 점은 매개의 방법일 뿐이며, 그것은 분석자에 따라 다른 형태를 취할 뿐이다. 사람들은 물(物)의 ‘상징적 차원’과 사회의 ‘자연적 차원’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실재론자로 불리고 때로는 구성론자로 불린다. 여하간 우리들은 이 양극으로부터 구성되는 인식론의 세계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존재론적 차원’이란 인식론에서 떨어져나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의 영역과 비인간적인 것의 영역의 힘의 조정이며, 본질에 앞서 주어지는 수직적인 현실성에 있다. 우리들은 이 양극 사이에 살고 있으면서 각각의 차원에 둘러싸여 ‘자연’, ‘언어’, ‘사회’, ‘존재’라는 항목의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또 이것을 풀어냄으로써 그 다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실천에 참여한다. 이것이 라투르가 말하는 ‘가동적인 존재론’이다. 그는 이러한 네트워크를 성실하게 추적함으로써 사회와 자연을 연결하는 현실성의 심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논한 것처럼, 이 절차를 통해 이를테면 레비-스트로스가 『신화이론』에서 그려낸 아메리카 선주민 신화의 변주관계를, 과학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와 이미지를 연결해가는 ‘참조=기준의 순환’의 네트워크와 비교가능하다. 이때 전근대적인 지식체계로서의 신화는 근대적인 지식체계로서의 과학 및 철학에 대치되지 않는다. 그것이 아니라, 신화에도, 과학과 철학에도 코드에서 다른 코드로 교환되는 ‘존재론’의 척도가 동일하게 존재하며 번역과 매개의 과정에 따라 이것들을 상호 관련짓는 현실성의 기준의 위치가 정해진다. 인류학자가 조사지에서 만나는 신화와 의례의 맥락에도, 자신의 출신지인 선진국의 과학과 산업기술의 맥락에도 동일하게 ‘비근대’의 차원이 존재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하이브리드한 현실 바로 거기에서 증식된다. 그리하여 인류학자는 사회와 자연 사이에 증식하는 하이브리드를 물(物)(미셀 세르가 말하는 ‘준-객체’)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에게 친숙한 사회와 현지사회 사이에 축척을 달리하는 동형의 문제군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재귀적인 지적 실천을 라투르는 ‘인류학의 대칭화’로 명명한다.

 

4. 포스트다원주의와 ‘존재론적 전회’

라투르, 데스콜라,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등의 인류학자가 필드워크에 기반한 구체적인 고찰에서 일반화된 비교인류학적 고찰로 향했던 1980년대에는 일반적으로 민족지적 기술의 정당성(실재성)을 둘러싸고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이 전개되어 ‘표상의 위기’가 표출되었다. 『문화를 쓴다』를 저술한 제임스 클리포드와 존 마커스 등의 인류학자는 조사자와 피조사자 간의 비대칭적 관계를 자명한 전제로 삼았던 인류학의 현실성을 의심하고 전통적인 민족지적 기술의 권위를 비판적으로 넘어서려는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한다. 이 시대는 근대주의적인 인류학의 민족지적 현실성이 뒤흔들리는 수난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시대는 기존의 포맷에서 탈출하는 전위적인 민족지의 실험이 행해진 시대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에서 정치적인 반성이나 이론적인 자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보다도 과감하게 조사대상사회와 관찰자의 대칭화라는 과제를 받아 안은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메릴린 스트래선(Marilyn Strathern), 알프레드 젤(Alfred Gell), 로이 와그너 등의 멜라네시아(특히 뉴기니아)와 폴리네시아를 현지조사한 인류학자들이다. 데스콜라와 비베이로스 드 카스트로의 초기 모노그라프가 아마존이라는 필드를 모태로 하여 성립했고 그 성과가 일반적인 문제계로 확장된 것처럼, 스트래선을 비롯한 영미의 인류학자들은 태평양제도에서 자신이 수행한 조사를 다른 인류학자의 민족지 및 역사적 기록과 대조하면서 하나의 사회에 내재하는 복수의 현실의 기준을 정립했다. 나아가 그들은 이것을 타 지역의 다양한 기준과 비교함으로써 오늘날의 ‘포스트다원주의’라 불리는 논의의 토양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스트래선은 멜라네시아 사회의 젠더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성과인 『증여의 젠더』<The Gender of the Gift: Problems with Women and Problems with Society in Melanesia>(1988년)에서 성인남자가 결사체에 가입할 때 필요한 입사식 의례에 관한 기존의 인류학적인 논의를 재검토한다. 그녀는 '전사회적인 자연의 영역을 여성성으로서 배제하고 남성적인 사회성의 영역에 가입한다'는 서양 인류학자의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와 같은 자연/사회의 분할이 용해되는 지평에서 가입자들이 자기의 신체를 발견하고 성장력을 인식하는 기회로서 의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스트래선은 이 절차를 통해, 각각의 부족사회에 숨겨진 문화의 고유한 역사적 맥락과 가입자 개개의 신체에 숨겨진 성장력을 다원적으로 매개하는 ‘멜라네시아적 사회성’을 상정하고, 이것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현상들을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나아가 스트래선은 이후에 저술한 『부분적인 연결』에서 멜라네시아 연구의 민족지를 종횡으로 참조하면서 각각의 사회에서 인공물이 어떠한 방식으로 멜라네시아 일대의 우주론에 접속되는가라는 문제를 탐구한다. 이를테면 ‘완토아트(Wantoat, 파푸아뉴기니의 지역) 의례의 피규어(인형조형물)가 바다를 건너 카누로 변환하고 나아가 파푸아뉴기니 고지대에서 널리 관측되는 남성비밀결사의 피리로 이어진다’는 횡단적인 이론이 실연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사회에 내재하는 인공물의 현실성의 기준을 전근대적이고 특수한 인류학적 용어의 범주로 남겨두는 대신, 도나 해러웨이(Donna Jeanne Haraway)가 기계와 생물의 혼합체로 그려낸 ‘사이보그’라는 아날로지를 통해 설명한다. 스트래선은 말하자면 사이보그 개념을 멜라네시아 사회의 분석에 적용함으로써 비교민족지학이 직면한 ‘통문화적인 막다른 골목’을 돌파하고 유기체와 인공물의 접속에 의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차원을 새롭게 조명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가치환원적인 ‘비교가능성’을 넘어 신체라는 개념을 갱신하는 이론적인 실험을 감행한다.

인격과 사물과 자연을 현대의 서구사회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척도로 측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존재의 계층들을 멜라네시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경계를 넘나들고 횡단하고 부분적 연결의 연쇄로서 파악할 수 있을까? 스트래선이 묘사하는 ‘멜라네시아적 사회성’은 한편에서는 은유와 환유를 통한 또 다른 현실이해에 의해 지지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로 다른 역사적 단계에 구축된 인공물과 자연물의 상호작용의 맥락에 의해 지지된다. ‘구조인류학’의 제창자인 레비-스트로스가 평생을 걸쳐 보편성과 다양성의 공존을 모색한 것처럼, 스트래선 역시 인류학적 실천 속에서 인류의 지적ㆍ심적 능력의 보편성과 민족지적 기술에 나타나는 문화의 다원적인 양태를 조정하고자 한다. 『부분적인 연결』에서는 말하자면 ‘이질성을 통문화적으로 환원하지 않은 채 타자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1980년대 후반의 시대정신이 카오스이론과 프랙탈기하학이라는 복잡계 과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깊게 침투되어 있다. 스트래선은 그 후에도 출신지인 영국사회를 비롯한 서구사회의 인격, 소유, 젠더 등의 개념을 민족지에 기반하여 멜라네시아 사회의 다양한 현실구축의 기준과 예리하게 대치시키면서 부분으로도 전체로도 환원할 수 없는 무수한 절편으로서의 현실을 계속해서 가교한다.

스트래선을 위시한 연구자들은 흥미롭게도 데스콜라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와는 별개의 계통에서 ‘자연과 문화의 대단절’을 넘어섰는데, 1990년대 이후가 되면 이러한 조류를 횡단하는 논의가 활성화되어 비교인류학의 르네상스라고도 말하는 상황이 국제적으로 펼쳐진다. 이 흐름은 2000년대 이후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라 불리는데, 그 배경에서 프랑스와 남미를 연결하는 긴밀한 인류학 성과의 축척이 영미와 멜라네시아를 연결하는 별도의 정보망과 대담하게 접속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양자를 오가는 인류학자도 소수이지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흐름은 팀 잉골드(Tim Ingold, 1948~ 영국의 인류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삶으로 향하는 인류학’의 연구조류를 수반하며, 상호 본질적인 논의를 교류하면서 인류학의 논의와 표현양식을 풍성화해왔다. 특히 21세기에 진행되는 일련의 논의에서 중요한 매개의 역할을 맡은 인류학자들 중에서 덴마크에 거점을 두고 있는 북유럽의 연구자들의 활약이 눈에 띤다.

21세기의 여명을 알리는 최근 20년간 인터넷서비스의 확장과 영어사용의 글로벌화를 수반한 인류학의 온라인저널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 시대는 에너지 문제와 지구온난화, 투기적인 경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 등 근대인의 존재를 뒤흔드는 리스크가 부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속에서 인류학은 과학인류학의 비근대적 차원의 발견과 포스트모던 인류학의 ‘재귀성의 질문’을 지나 큰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환은 결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닐 뿐더러, 과거와 미래를 단절시키는 변화도 아니다. 라투르가 말한 것처럼, 인류학자 또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혁신을 통해 타자성과 생명의 연속성/비연송성을 질문하고 스스로의 전통에 귀속해가고 있다.

일찍이 헤나레(Amiria Henare), 홀브라드(Martin Holbraad), 와스텔(Sari Wastell) 등의 3인은 ‘존재론’을 둘러싼 질문이 인류학의 폐쇄성을 돌파하는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선언했다(『사물을 통해 사고하기』<Thinking Through Things: Theorizing Artefacts Ethnographically>(2007년). 그 후 ‘조용한 혁명’의 당사자인 비베이로스 드 카스트로 자신은 소음으로 넘쳐나는 논의에서 재빨리 빠져나가면서도, 문제의 중심에 있는 ‘존재론’이 동심원을 그리듯 타자성의 근원적인 질문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여하간 인류학 연구 영역이 지난 20년간 크게 확장하여 ‘문화적 표상’에서 사상(事象)이 직조하는 현실의 깊은 곳까지,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키를 돌린 것은 확실하다. 이 변화는 문화를 모종의 해석 가능한 텍스트와 자연에서 독립한 의미론의 체계로서 사고하는 관습에서, 자연과 인공물과 인간신체를 하나의 가역적인 생성체의 네트워크(혹은 생명=사회적 실천의 편물)로 파악하는 큰 조류와 연결된다. 물론 일련의 ‘전회’의 배경을 보면,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와 라투르에게서는 베르그송, 베이트슨, 깁슨의 계승이, 라투르와 피에르 레비에게서는 미셸 세르의 철학의 계승이라는 복수의 철학적 계보의 착종이 있다. 나아가 후술할 콘에 의한 퍼스의 기호론의 급진적인 다시 읽기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을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의 세계로 확장하는 인류학의 새로운 흐름의 특징이 나타난다. 

 

5. 복수의 전회와 ‘도래할 인류학’

‘존재론적 전회’ 이후의 인류학의 전개 속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에도아르도 콘의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인류학’처럼, 자연계를 채우는 생물차원의 기호과정에까지 확장된 사고작용과, 그것을 전제로 성립하는 인간집단의 현실인식과의 관계에 대한 탐구이다. ‘인간 이상의 것’(more than human)을 파악하려는 새로운 인류학은 에콰도르 아마존에서의 숲과 동식물의 사고작용(에두아르도 콘, 『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2013)에서 글로벌자본주의에 의해 개조된 후 자연을 구축하는 송이버섯과 인간의 관계(A. 칭, 『세계 끝의 버섯』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2015), '유정-의식을 가진 존재들(setient beings)'로서의 양식 연어에 대한 연구(M. E. 린, 『연어가 되다』Becoming Salmon, 201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 나아가 생명과학자와 사회인류학의 협동을 모색하는 잉골드와 바르송의 『생명-사회적 생성』<Biological Becoming: Integrating biological and social anthropology>(2013년) 같은 흥미로운 시도와 상호작용하면서 ‘존재론의 인류학’과 함께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종의 창발적인 만남을 탐구했던 도나 해러웨이의 영향을 받은 인류학자들은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서는 민족지적인 기술의 적용범주를 인간이라는 종 너머에까지 적용하는 ‘복수종의 민족지학’(multispecies ethnography)를 만들어내었다. 예를 들어, 에벤 커크시(Eben Kirksey)와 스테판 헬름라이크(Stefan Helmreich)는 ‘인류세(anthropocene)(※일본번역어는 “人新世”)에 문화를 쓴다’는 종-횡단적인 주제를 인류학에 제기할 뿐만 아니라 해러웨이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오스트렐리아의 현대미술가 파트리시아 피체니니 등과 연대하여 『복수종의 살롱』<The Multispecies Salon>이라는 제목의 바이오아트 전람회를 2000년대부터 미국 각지에서 개최하여 그 성과를 2014년에 서적화했다. 이러한 이종협동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인간이외의 생물종을 인류학에 가져오는 ‘종적전회’(種的轉回 species turn), 혹은 인간 이외의 동물을 정치적, 윤리적인 타자로 간주하는 ‘동물적 전회(animal turn)’라고 불리는 복수의 ‘전회’가 포스트인문과학의 주변에서 생겨나고 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인류학 연구에 눈을 돌리면, 행위주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미술작품과 인공물 사이를 연결하는 상호작용론을 쇄신한  젤의 『예술과 에이전시』<Art and Agency: An Anthropological Theory>(1998년)를 필두로, 바르부르크를 계승해 문자전승에 구애되지 않는 이미지의 계승술을 ‘기억의 인류학’으로 파악하는 카를로 세베리(Carlo Severi)의 연구가 있고, 그와 마찬가지로 미술사ㆍ인류학ㆍ표상이론의 제 연구를 연결하는 조르주 디디-위베르망(George Didi-Huberman), 한스 베르팅거(Hans Wertinger)의 『이미지 인류학』 등이 있다. 이들의 연구는 시각예술과의 관련영역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또 잉골드의 ‘그래픽인류학’, 오토와 간을 위시한 덴마크 인류학자들의 ‘디자인 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등 예술과 인류학의 실천이 근접하고 있다. 과학인류학에 가까운 관심영역에서는 캐스퍼 브루노 옌센(Casper Bruun Jensen)과 모리타 아츠로우(森田敦郎)의 사회적인 인프라스트럭쳐의 존재론적 연구, 네델란드의 대학병원에서 이뤄지는 진단과 치료의 상호행위의 ‘실천적 존재론’의 가능성을 보여준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의 연구(『다(多)로서의 신체』<The Body Multiple: Ontology in Method Practice>(2003년))가 있다.

인류학에서 ‘존재론적 전회’를 말하기 위해서는 북유럽과 남미와 더불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일본은 송이버섯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글로벌한 네트워크와 ‘자본주의 이후의 자연’을 탐구하는 안나 칭, 근대문명에 의해 해로운 짐승으로 간주된 야생동물의 민속생태학적 문헌을 탐구하는 존 나이트 등의 인류학자들에게 중요한 필드로 자리한다. 또 라투르와 스트라샌 이후의 현대인류학의 동향은 일본에서는 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 이시이 미호(石井美保), 모리타 아츠로우(森田敦郎), 오오무라 케이이치(大村敬一) 등의 인류학자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되었고, 또 반대로 그들의 논고는 일본 인류학의 성과로서 해외에 소개되고 있다. 2012년에는 국제적인 인류학 잡지인 『HAU』에 카스가 나오키를 비롯한 일본의 인류학자들을 소개하는 「일본의 존재론적 전회」<Anthropology as critique of reality: A Japanese turn>의 특집이 꾸며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동향 속에서 오쿠노 카츠미(奥野克己) 등이 서술한 다섯 권의 <올 수밖에 없는 인류학> 시리즈(2009년~2013년)는 인근학문의 연구자들과 함께 ‘인류학의 재구축’의 기치를 내걸었다. 또 스가와라 카즈코(菅原和子)(『狩り狩られる経験の現象学: ブッシュマンの感応と変身』[잡고 잡히는 경험의 현상학: 부시맨의 감응과 변신], 2015년), 야마구치 아키라(山口顯)(『レヴィ=ストロース まなざしの構造人類学』[레비-스트로스 시선의 구조주의], 2012년)와 같이, 현상학과 구조주의의 내부에서 ‘존재론적 전회’의 이론적 전제를 재검토하고 이것을 비판적으로 넘어서고자 하는 제 연구가 나타나고 있다.

협의의 문화인류학의 아카데미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1990년대부터 라투르, 세르, 데스콜라와 학술적인 교류를 이어온 나카자와 신이치가 있다. 그는 레비-스트로스가 일찍이 ‘야생의 사고’라고 한 마음의 메카니즘을 다원적으로 파고들었고, 이제 새로운 인류학에 응답하는 몇가지 작업을 남겨두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스트래선과 거의 동시기에 프랙탈기하학과 스케일링의 문제을 인류학의 이론적 차원에 도입했고(『설편곡선론』, 1985), 미나카타 구마구스의 사상에서 인간과 자연의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내었으며(『숲의 바로크』, 1992), 일본철학에서 레비-스트로스, 들뢰즈, 라투르를 통해 비근대적인 가능성을 찾아내는 등(『필로소피카 야포니카』, 2001)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류학의 주요한 관심에 호응하는 다양한 사상을 논해왔다. 그는 『대칭성인류학』(2004년)을 이론적인 중핵으로 전개된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전5권)에서는, 정신과 의사 이그나시오 블랑코가 주장한 ‘대칭성 이론’에 의한 ‘복논리’(bi-logic)의 구조로서 인류의 마음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신화학, 고고학, 정신분석학, 예술이론, 자연철학, 인지과학 등을 총합하여 ‘도래할 인류학’의 궤적을 그려내었다.

‘존재론적 전회’는 이론적 유행의 하나로 소비될 것인가, 아니면 본질적인 전환의 계기로서 수용될 것인가? 혹은 철학과 인류학의 경계에서 고전적인 문제를 해명하는 중요한 활로를 찾아낼 것인가? 현대인류학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선택해야 할 시기에 직면해있다. 표면적으로는 큰 혁신으로 다가오는 이 조류는 어쩌면 인간상의 변신에 수반하는 ‘인간이상의 인류학’을 실현가능케 하는 과도적 상황에 불과한 것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변화에 직면하여 ‘조용한 태동’이 계속된다면, 인류학은 신시대를 위한 지(知)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진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류학은 논의를 심화하고 예상조차 할 수 없는 타성(他性)을 발견하며 타 분야와 연대하는 인문학 영역의 재편성을 필요로 한다. 이 조류는 더 큰 필드로 확장되어 복수의 실천과 실험에 접속되어야 한다. 올 수 밖에 없는 이종생성의 인류학은 그곳에서 도래할 것이다.

 

 

石倉敏明「今日の人類学地図:レヴィ=ストロースから「存在論の人類学」まで」『現代思想』2016年3月臨時増刊号。

 

※'존재론적 전회'의 정치학에 관해서는 다음 블로그의 번역글을 참조할 수 있다.

 http://minamjah.tistory.com/107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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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에 빠져 들었다. 아니, 이렇게 느긋하게 책을 읽은 게 얼마만인가 싶다. 대학원 과정을 밟은 이후로 책은 늘 내 논문을 위한 인용문 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논문을 많이 쓴 것도 아니다. 석박사 학위논문과 소논문 두어편, 잡다한 보고서들이 내가 공식적으로 써낸 글들의 전부이다.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오히려 그때 책이 즐거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느낀 독서의 즐거움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독서가 주는 흡족함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Don't sleep, there abe snakes)는 어느 인류학자가 아마존의 '피다한'이라는 부족의 언어세계를 30년 넘게 관찰한 민족지(ethnography)이다. 아마존의 '원시부족'(primitive society)은 인류학의 오랜 단골손님이다. 그것은 유럽의 근대적 인간관의 반증으로서 20세기 인류학의 가장 훌륭한 보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자도 없고 국가도 없으며 수렵채집의 소집단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문명인'보다 행복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1977년 피다한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한' 그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내가 석사논문을 위해 고비사막에 갔을 때 유목민의 첫인상도 그랬다. 그들은 정말 웃음이 많았다. 피다한 사람들처럼 아무 때나 웃었다. 내가 자라온 사회에서는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그들은 웃었다. 반면에 말은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다. '고맙다' '미안하다' '안녕' 등의 친교적인 소통어 없이 바로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저자가 그 맥락을 궁금해했던 것처럼, 나도 궁금했다. 

피다한 마을, 아마존의 깊은 숲속에 '고립된' 이곳에서 저자는 '근대인'과 완전히 다른 삶을 본다. 우선 피다한 마을에는 밤낮이 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 자지 않는다. 그들은 낮이든 밤이든 쪽잠을 자고, 그 쪽잠은 두시간을 넘지 않는다. 늘 밤새 이야기하고 새벽 3시에도 물고기를 잡으로 강가로 나간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아마존의 자연을 누리는 대가로 외부의 적들을 경계해야 하는 그들의 자구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들의 밤인사는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이다.

3세대의 친족관계를 기본으로 집단을 구성하는 피다한 사람들에게 '리더'는 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공동체는 평화롭다. 물론 이 '평화'는 '근대인'의 '박애정신'을 뜻하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 질서의 냉혹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과 함께 피다한 마을에 들어간 아내와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맨 경험을 예로 든다. 아내와 아이가 설사와 구토와 환각에 시달릴 때 저자는 처음에 그것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피다한 사람들은 그 병이 말라리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수수방관한다. 저자는 후에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한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날 저자는 병에 걸려 거의 죽기 직전의 엄마 없는 피다한의 아이를 보살핀다. 그런데 잠깐 저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친부와 와서 그 아이에게 술을 먹여 안락사시킨다. 어차피 죽을 아이는 죽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삶의 원칙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죽음의 어떠한 의례도 없다. 그들에게 사후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있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들의 세계관은 언어에 그대로 반영된다. 저자가 '경험의 직접성 원칙'(the Immediacy of Experience principle)으로 설명한 그들의 언어에서 복문이나 중문과 같은 간접구문은 존재하지 않으며 완료시제 또한 없다. 그들은 직접 경험한 것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 "피다한 문화에서는 원칙적으로 직접 보고 설명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432쪽).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외부로부터 폐쇄적으로 살아온 탓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웃'간 남다른 친밀감을 갖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친밀감은 거의 모든 이웃과 섹스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녀간의 결혼 혹은 이혼의 의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혼의 남녀가 섹스를 하고 서로 마음에 들면 2~3일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함께 살 뿐이다. 기혼의 남녀가 섹스를 하고 서로 마음에 들면 마찬가지로 2~3일 마을을 떠났다가 기존의 '배우자'와 살던 집을 버리고 다시 집을 지으면 된다. 물론 섹스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래의 '배우자'와 살던 집으로 돌아오면 그뿐이다. 연령도 중요하지 않다. 초경 혹은 첫몽정 이후면 된다. 실질적으로 파다한 마을에서 젖을 뗀 3살 이후로는 공동체의 동등한 성원이다. '아이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는 귀기울일 대상일 뿐이지 돌볼 대상이 아니다.  피다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가족'이다. 친족용어는 다섯 개뿐인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를 구분하지 않고 '마이히'로 부르며 때로 '마이히'는 윗사람을 부를 때도 사용된다. 그 외에 형제자매를 부르는 '하하이기'와 아들을 가리키는 '호아기/호이아시', 딸을 가리키는 '까이', 한부모 아이나 고아를 가리키는 '삐이히'가 있다. 이러한 '가족'-집단 속에서 추상적인 언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말로 무엇을 설명할 상황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추상적인 언어가 부재한, 이를테면 숫자 개념이 없는 피다한 사람들에게서 언어는 의사소통의 기능에 충실하다. 3개의 모음과 8개의 자음뿐인 그들의 음성언어는 복잡한 담화구조를 기피하는 대신에 다양한 채널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담화채널'이라고 명명한 속에는 콧노래, 휘파람, 외침, 노래 등이 있다. 아마존 밀림에서 사냥을 할 때, 비가 쏟아지는 우기일 때, 일반적인 음성언어보다 그외의 '담화채널'이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피다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임무를 띠고 피다한 마을에 들어왔다가 숫자, 색깔 등의 추상적 언어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8개월간 피다한 사람들에게 숫자를 가르쳐보지만 어떠한 진전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언어문법의 구조가 촘스키로 대표되는 '보편문법'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촘스키의 '보편문법'은 간단하게 말해 인간의 언어는 인간이 말을 습득하기 전에 이미 추상적인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문법구조는 세계의 어떤 언어에든지 동일하게 적용되며 다만 각각의 사회적, 문화적, 자연적 환경에 따라서 '변형'될 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피다한의 언어에서 추상적 구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또 피다한 사람들은 사진이나 그림처럼 이차원적 대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추상적인 인식을 발전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낚는 즉시 많든 적든 저장하지 않으며 모두 먹어버리고 먹을 거리가 없으면 굶는다. 배고픔은 그들에게 인간의 존재조건 중 하나이다. 그들에게 앎이란 삶의 조건에 다름 아니다. 아마존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야생동물들의 종속과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길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 선교를 하기 위해 아마존에 들어갔다가 결국은 피단한 사람들의 삶에 흔들리어 기독교 신자이기를 그만둔다. 종교와 진리가 망상임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신이 없는 유쾌한 세상'에 눈을 뜬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기억이 있다. 고비사막에서 현지연구를 끝내갈 즈음에 '진리 또한 문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얻은 듯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고비사막에 더 머물렀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3개월간 묵으면서 사막의 일교차와 밤마다 설치는 쥐들과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벌레들을 못견뎌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때에 혹한의 날씨의 실외에서 대소변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만 스케치를 하고 돌아간 후에 더 자료조사로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역사인류학'으로 관심을 돌린 것인데.. '현장에서 연구를 행한다'라는 기본적인 자세와 인식을 갖추지 못했고, 그래서 하다 만 연구가 되어버렸다.

인류학자에게 연구실은 현장인데, 지금의 나는 연구실을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다.  

 

다니엘 에버렛 저(윤영삼 번역),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2009년[2008년], 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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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명한 평론가인 카사이 키요시(笠井清) 그리고 『永続敗戦論』[영속패전론]이라는 책 한권으로 일본지성계를 강타한 시라이 사토시(白井聡), 이 둘의 대담집인 『日本劣化論』[일본열화론]은 기존의 세계사 인식의 틀을 검토하며 일본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한다. 이로써 그들은 제국일본의 군국주의와 패전, 전후일본의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일본 내 자국의 역사인식의 틀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 논의는 순전히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에서 촉발된 것이다. 『永続敗戦論』[영속패전론]은 2013년 3월 초판발행한 이래 2015년 현재 20쇄를 넘겨 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1977년생으로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사유할 수 있는 시라이 사토시의 천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사와 마사치, 사카이 나오키 등이 논했던 내셔널리즘에 관한 논의를 이렇게 간단하게 넓은 지평으로 펼쳐보이다니.. 본 글은 『日本劣化論』[일본열화론](筑摩書房, 2014년)의 4장과 5장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 필자의 관점에서 독해하여 오사와 마사치와 사카이 나오키의 논의를 가져와 재구성한 것이므로 오해의 여지가 있음을 일러둔다. * 카사이 키요시와 시라이 사토시 각각의 논의를 구별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내용을 개략했다.)

 

  4장. 좌우 모두 점차 약화되는 이유

  아마도 20세기의 세계정세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즘 국가와 그들의 침략전쟁을 저지하여 세계평화를 지키려는 연합국 간의 충돌로 설명될 것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의 종결은 연합국의 승리, 곧 파시즘 국가의 패배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20세기의 세계전쟁이란 '선과 악의 대결'에 다름 아닌가? 칼 슈미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절멸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음을 역설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결성된 국제연맹과 파리부전조약(不戰條約, 1928.8.27)은 전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의 인식을 바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전쟁은 "정당한 적"과의 절도 있는 싸움이 아니라, "악한 적" 즉 범죄국가의 절멸이라는 무제한적인 폭력을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악을 절멸시키는 선의 실현'이라는 구도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5년 이윽고 파시즘 국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미소 냉전체제라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구축되었다.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는 제국일본이 패망하고 패전국일본이 냉전체제로 편입되면서 미국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수용한 결과이다. 그런데 왜 일본은 전후민주주의의 "55년체제"를 거치고서도 우경화 혹은 보수화되고 있는가? "헌법 9조"로 상징되는 이른바 평화헌법의 개헌논의가 갈수록 힘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베정권은 파시스트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호시탐탐 침략전쟁을 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문제는 기존의 세계사적 인식의 틀로는 이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카이 나오키는 유럽의 내셔널리즘이란 국민국가 구축의 조건을 빌미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했다. 다시 말해, 비서구에서 '서구화'란 국민국가(nation-state)를 구축하지 않으면 서구의 식민지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비서구의 '근대화'란 서구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1930년대 유럽과 아시아에서 등장한 파시즘은 유럽의 내셔널리즘의 공법질서에 의한 식민지 획득 과정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심지어 제국일본의 파시즘은 유럽을 넘어서려는 "근대의 초극"에 의해 지지되었다.    

  그래서 카사이 키요시는 근대 세계를 1930년대를 전후하여 '구세계'와 '신세계'로 나눈다. '구세계'는 '열강'이라 불리는 주권국가가 '비서구사회'를 분할하여 식민지를 건설한 근대국가의 세계를 가리키고, '신세계'는 이러한 세계질서를 돌파해서 새로운 '세계국가'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대중적 혁명운동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국가'를 석출하기 위한 이념/운동/국가 간의 전쟁이 된다.  '세계국가'를 목표로 하는 이념/운동/국가는 세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볼셰비즘이며 또 하나는 파시즘이고 마지막 하나는 아메리카니즘이다. 요컨대 제2차 세계대전은 이들 간의 각축전에 다름 아니다. 제국일본이 태평양전쟁에 돌입하면서 '동아신질서'라는 슬로건을 주창한 것은 자신이 바로 이 이념/운동/국가의 한 부류라는 것을 웅변한다. 

  역사적 가정으로서, 기타 잇키(北一輝)의 사상으로 대변되는 육군황도파의 쇼와(昭和) 유신세력이 2.26 사건(1936년 2월 26일 일본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일으킨 반란사건)으로 권력을 잡았더라면, '동아신질서'는 육군통제파가 주도했던 '전시천황제 국가'와는 다른 모습으로 출현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일본에서 실현되지 못한 기타 잇키의 국가개조플랜은 패전 후 GHQ의 미군정기에 의해 실현된다. 기타 잇키의 '사회주의적' 정책은 GHQ에 의한 전후 일본의 개혁정책의 7할과 겹친다. 냉전체제의 한 축인 아메리카니즘이 패전국 일본과의 '공모'로 성립되었다고 한다면, 기타 잇키의 사상은 냉전체제에 질서적 기초를 상당부분 제공한 것과 같다.   

  냉전체제를 고찰하기에 앞서 유럽의 내셔널리즘의 현재를 진단하자면 한마디로 배외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다. 배외주의적 내셔널리즘은 국민국가의 고질병이다. 국민국가는 태생적으로 배외주의를 품고 있다. 유럽에서 이민자를 둘러싼 인종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면 일본에서 배외주의적 내셔널리즘은 2000년대 이후에 출현한다. 유럽과 달리 일본은 배외주의의 경제적 근거가 희박하고, 전후 "55년체제"의 정치적 차원에서 민간우익집단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일본에서 배외주의는, 197,8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쳐 1990년대 그 거품이 사라진 후 2000년대 신자유주의적인 격차사회화와 복지소멸과 함께 출현했다. 일본에서 "네토우요"(ネトウヨ)[넷우익]와 재특회로 대변되는 민간우익집단은 비정규직, 불완전 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자이니치'에 대한 적의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민자가 전체 인구규모의 상당수에 이르고 본토인과 이민자와의 위계질서가 고착화된 유럽과 달리, 일본에서 극우인종주의는 1990년대 이후 '중류사회'가 급속히 붕괴되면서 '중류'로부터 탈락될 수 있다 혹은 탈락되었다는 공포감에서 비롯되었다.   

  나아가 "네토우요"의 니힐리즘, 달리 말해 정체성의 불안정화와 승인처의 부재는 냉전체제의 종언과 연관된다. 전후 일본에서 냉전체제는 국내의 정치지형을 떠받쳐왔다. 전후 일본에서 '보수(자민당)와 혁신(사회당)의 대립'이라는 구도는 미소 냉전체제에 의해 규정되었다. 자민당은 아메리카의, 사회당은 소련의 아젠다를 그대로 가져왔을 따름이며, 냉전체제에서 태평양의 최선전에 위치한 일본은 1952년 미군정기의 종결 이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시라이 사토시는 자민당이 아메리카의 괴뢰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사회당과 공산당 또한 애초부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실현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패전 직후 사람들은 "제국일본에 속았다"고 했다. "속았다"는 감정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기만적이다. 시라이 사토시에 의하면, 이 감정은 대미종속구조로 패전국 일본이 재편되었음을 은폐한다. "헌법 9조"는 바로 이러한 대미종속구조에 대한 아메리카와 일본의 '합작품'이다. '국가 간의 전쟁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국가는 범죄국가로서 처벌한다'는 국제규범은 사실상 그 집행의 주체로서 아메리카라는 세계국가를 전제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시대에서 아메리카와 소련은 반(半)세계국가로서 세계를 분할지배했다. 아메리카의 속국이었던 일본은 아메리카라는 (반)세계국가 하에서 전쟁을 포기해야했다. 이 속에서 "헌법 9조"는 미일안보조약을 상호보완한다. 

  이 은폐된 대미종속의 구조 하에서 냉전 그 자체를 "대타자"로 연명해온 일본의 정치구조는 냉전의 붕괴와 함께 그 실체 없음을 드러내었다. 

  냉전체제의 종언 이후 일본에서는 사회당, 공산당, 신좌익 할 것 없이 모든 좌익이 퇴조했다. 1960년대의 신좌익 운동을 원류로 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유럽과 비교하면, 일본의 좌익은 파멸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한 유럽에서 여전히 좌익운동이 여전히 강력한 것을 볼 때, 일본의 좌익운동의 소멸은 마르크스주의의 쇠퇴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카사이 키요시는 일본의 좌익운동의 소멸의 이유로 우선 6,70년대의 경제호황의 "주어진 20년'과 그 이후의 "잃어버린 20년"에서 드러나는 경제구조와 고용구조의 단절적 변화를 지적한다. "주어진 20년"의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의 포디즘 자본주의의 황금기에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노사의 적대성을 완화하는 가운데 근대주의자의 이상이 실현되는 듯이 보였다. 그외 지역 커뮤니티, 조합, 종교단체 등은 재분배와 상호부조의 조직으로서 승인욕구의 기능을 담당해왔다. 

  한편, 20세기 마르크스주의로서 일본에 유입된 "볼셰비즘"은 후쿠모토 카즈오(福本和夫 1894~1983,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를 통해 "후쿠모토이즘"(福本イズム)으로 번안되어 사회운동의 기초사상으로 유통되어 '메이지국가의 근대성'을 속성재배했다. 메이지 국가의 근대성은 지식인들에게는 입신출세주의와 동일한 정신구조를 양산했는데, "후쿠모토이즘"은 바로 그 정신구조를 좌익업계에서 재생산한다. 루카치주의(과학적 사회주의)를 최고의 철학적 테제로 삼은 "후쿠모토이즘"은 일본의 초기사회주의운동의 흐름과 '결별'하고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로 교리화했으며 사회변혁의 이론에 도착적인 윤리주의를 이식했다. 그 결과 일본의 좌익은 19세기 사회주의가 갖는 이상사회에 대한 탐구로서의 종교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서 전시체제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오히려 누구보다도 먼저 천황제로 전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후쿠모토이즘"은 일본 좌익에 코민테른의 극좌 섹트주의 노선을 도입하여 도착적 윤리주의에 대한 저항조차도 봉쇄했다. 이를테면 유럽의 신좌익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정신분석과 프로이드 좌파조차 일본의 학생운동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상 유럽에서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 즉 '문명'이라는 근대정신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붕괴되었으며, 러시아의 볼셰비즘으로 이양되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을 "강건너 불구경"으로 보았던 일본의 지식세계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에 무자각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회주의 운동을 형애화된 당내투쟁(폭력이 수반된 당파투쟁)으로 구현할 수밖에 없었다. 1972년 아사마 산장 사건은 그 당연한 역사적 결과이다.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 동안 고용구조가 비정규직화하고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경제불황의 '불이익'이 세대 간 격차로 표출되었다. "잃어버린 세대"의 '하류사회화'는 좌로든 우로든 그들의 내발적인 동기를 약화시켰다. 결국 냉전 이후 상징적인 차원에서 좌우익의 정치적 판도는 해체되고 말았던 것이다.  

 

  5장. 반지성주의의 원류

  1989년 사회주의 붕괴를 기점으로 좌익과 우익이라는 정치적 이분법은 최종적으로 그 실체를 잃었다. 그러나 정치적 경향으로서 좌와 우의 대립구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일본의 좌와 우의 정치적 스탠스는 반지성주의와 계몽주의(교양주의)의 대립으로 도식화될 수 있다. 

  반지성주의는 지성의 부재가 아니라 지성에 대한 증오이다. 반지성주의는 교양이나 지성의 대립물이 아니라 그 전복이다. 전후 일본에서 "교양"(敎養)은 "수양"(修養)과 대치되는 개념이었다. 패전 직후 대중일반의 학력 상승과 교양에의 욕구는 "시민적 주체"를 양산했다면, "잃어버린 20년" 동안 중류사회의 하류사회로의 몰락은 반지성주의의 계급적 기반을 재생산해왔다. 이제 대학의 세계에서 대학교수조차 생활상의 실리만을 취할 뿐 학문의 정점을 향해 자기형성을 계속해간다는 "교양"이라는 신념을 급속히 상실했다. 푸코와 데리다의 이론은 대학원생의 페이퍼의 활자장치로 전락되었고, 학계에서는 계량수법이 급속이 확산되는 가운데 개별적 삶과 그 내면에 대한 관심보다는 집단적 경향에 대한 분석만을 추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학사회에서 학문은 교양주의의 몰락과 함께 기술학으로 대체되었다. 교양주의 내지는 인문주의는 역사성에 의거하여 인간관을 상대화하는 존재의식이다. 그런데 일본의 대학은 점차 체계적인 지의 건축물을 세우기보다 유아적인 자기긍정에 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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