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과 철학

번역글 2015. 1. 28. 02:24

『現代思想』2015년 1월호에 실린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필립 데스콜라의 글을 번역했다. 필립 데스콜라는 레비스트로스의 제자이며, 2014년 지구환경의 문제해결에 기여한 이에게 주는 '코스모스국제상'을 수상했다. 이 논문은 그가 지난 2014년 10월 일본에서 열린 <자연에 관한 인류학: 필립 데스콜라의 저작을 중심으로>라는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의 발표문이다.

※ 본 글은 불어의 일본어역의 한국어역이다. 일본어역자 야타베 카즈히코(矢田部和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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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철학(Anthropologie et philosophie)

필립 데스콜라(Philippe Descola)

 

  "아마존과 구조주의는 '잘' 맞는다. 왜냐하면 현지인들이 일상에서 구조주의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라고 수년전에 쓴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썼을 때 제가 생각한 것은--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사물의 구체적인 성질에서 추상적인 관계를 끌어내는 경향이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의 사상, 특히 사상(事象)의 표면에서 이차적 특징을 추출하여 틀지움으로써 관계의 복잡한 구성도를 그려내는 그들의 능력은 구조분석의 특질과 겹치지 않는가? 그래서 이러한 사유 경향을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의 민족지학적 체험을 통해 구조인류학의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는 가설을 세워보았습니다. 구조론적 방법의 성질이 그 방법의 적응대상 자체의 성질과 합치한다는 나의 아이디어에 레비스트로스는 "자네, 이번엔 조금 지나친 것 같은데"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이 응답에서 시작된 사유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지적이 상기하는 물음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원주민의 사상을 인류학자가 분석하여 보고할 때, 수집한 정보(이것은 다양한 언표와 행위이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찰대상의 발화·행위의 스타일과 인류학자 자신에게 친숙한 개념화의 표식 사이에서 감지되거나 예감되는 친화성, 그리고 인류학자가 의거하는 다양한 명제의 재귀성의 정도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각각의 요소는 [민족지학에서]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할까요? '원주민의 사상'이라는 기묘한 용어에 담긴,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지금은 우선, 인류학의 언설이 개념화를 행할 때의 몇 가지 특질에 관해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인류학자의 상당수가 철학교사로서의 훈련을 받는 만큼 이 문제는 절실한 문제입니다. '철학어'로 말하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극히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인류학자의 길을 가려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대학에서 행해지는 철학--대학철학의 주요한 관심은 철학사의 주석이고, 이에 따라 스스로 용어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외부 세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질문에 무관심한 사고--에 환멸을 느껴 인류학자의 길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서도 그와 같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타문명이 가르쳐 주는 추상적인 사고의 형태와 비교해서 철학의 독자성은 다음에 있습니다. 철학의 오리지널리티는 철학이 선취한 대상에 있다기보다 (아마 신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형태로 조합되는 요소의 총체로서 특징지어집니다. 철학은 재귀적이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면서 보편을 표방합니다. 물론 인간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 시스템은 어느 모로 보나 독창적인 사고(idea)를 발명합니다. 그렇지만 자기자신을 사유 조사의 대상으로 삼는 사고시스템은 극히 적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설명해내는 절대적인 유효성을 감히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시스템은 철학뿐입니다. 그 주장이 역언법(逆言法 paraleipsis)을 활용한다 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당치않은 것으로 실제로 철학이 언급하는 여러 개념들은 그것들이 가리키는 여러 현실--자연, 주체, 존재, 초월, 역사--과 마찬가지로 타 존재론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론이 파악하려는 여러 현실을 소화할 수 없거나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 귀추는 명백합니다. 다른 사고형태를 끌어들여야 하는 철학이 자신의 전제사항을 철저하게 재검토하든지(철학사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일부의 마이너리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학의 대칭화의 작업을 수용하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작업에는 여러 부가적인 작업이 따라붙는데, 대략 1세기 전부터 인류학이 걸어왔던 길이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이야기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이 대칭화의 작업은 미완으로 남을 운명에 있습니다. 이 작업의 최종적인 형태는 수용자인 청중과 독자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의 전문가, 그리고 2500년간 유럽 철학이 배양한 재귀적 사고의 애호가들.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단어로 말해야 할 필요성이 어떻게 해도 생깁니다. 이 불완전한 대칭화는 로컬의 이데올로기에서 분석자의 이데올로기로의 이행의 타입 혹은 양태에 따라 매우 다른 형태를 취합니다. 크게 나누어 세 타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좀더 오래된 패턴으로는, 로컬(local)의 제도의 개념적 연계를 발전시켜 개념의 수비범위를, 제도의 원초적 형태와 제도에 의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지역의 여러 특성을 넘어서게 하는 방식입니다. 인류학 초기에는 이 일반화로의 움직임은 상호 관련 없는 잡다한 현상을 조합하여 원주민의 개념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개념이 상정하는 실천 영역에 관한 서구적 이해의 틀과 맞지 않는다는 점뿐입니다. '토템', '마나', '터부', '샤먼' 등이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좀더 가까운 시대를 살펴보면, 일반화는 오히려 제도, 프로세스, 관계의 존재양식 또는 민족지학적 관찰에 의해 추출되는 인식론적 경향 등의 개념적 귀결을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애매한 의미를 무제한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치밀하게 정의되던 의미를 파헤쳐보는 방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루이 뒤몽(Louis Dumont)의 계급적 포섭(englobement hierarchique), 메릴린 스트래선(Marylin Strathern)의 객관화 과정과 탈객관화 과정 간의 왕래,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de Castro)의 퍼스펙티비즘 등 어느 특정한 문화권이 처음부터 가진 특유의 성향의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이론의 구축이 그 전형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화하는 로컬 모델의 독자성과 모델의 구성원리 이 둘 모두는 처음에는 대비, 대조의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비란 로컬 모델이 분석하고자 하는 현상의 범위와, 그 범위에 대해 서구 자신이 인식과 개념화를 추진해왔던 방법과의 대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프레이저의 토테미즘은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사유방식과, 뒤몽의 위계(hierarchique)는 소유적 개인주의와, 모스의 하우는 상업의 원리와 각각 대조를 이룹니다. 이것은 상대의 일반화가 일반원리를 상대화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의 대칭화의 패턴을 살펴봅시다. 이 형태에서는 철학이론과의 유사성(적어도 논술 차원에서의 유사성)을 염두에 둘 만큼의 체계화된 코퍼스(corpus 集成)로 현지의 사고를 변환하는 작업이 행해집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비교적 오래전부터 나타난 첫번째 패턴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우선은 선교[傳道] 인류학의 특징에서 이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최초의 예로는 베르나디노 데 사하긴(Bernadino de Sahaguin)이 나와틀어(nahuatl語)[각주:1]로 편찬한 『새로운 스페인의 사정에 대한 통사(Historia general de las cosas de la Nueva Espania)』를 들 수 있습니다. 라이프니츠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중국 예수회의 『예수회Ⅰ 중국서간집(Les letters edifiantes et curieuses)』은 가장 유명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이 형태의 보다 근대적인 표현으로는 중앙아메리카 출신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된 프라시도 템페르(Placide Tempels) 교부에 의한 예의 '반투의 철학'(Philosophie bantoue)이 있습니다. 

  대체철학에 대한 논의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격렬하게 진행되었는데, 이와 같은 문제제기가 민족학 연구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는가 라고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보통 연구대상이 되는 사회의 도덕적·인식론적 양태를 민족학자가 묘사할 때 채용하는 철학으로서 철학적 색채를 띠는 형태로 뚜렷이 나타납니다. 프랑스의 경우,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예가 있습니다. 필드워크를 행했던 민족학자의 제1세대의 철학이, 특히 후설의 현상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 영향은 모리스 리나르도(Maurice Leenhardt)의 경우와 같이 직접적이기도 했고, 마르셀 그리오르(Marcel Griaule)의 경우와 같이 간접적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족지학자는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지(知)의 형태·존재형태를 관통하는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지배적인 인지적 리얼리즘에 저항하는 형태로 제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얼터너티브한 형이상학을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철학작법에의 파괴적 영향의 추산을 행하는 시도는 아직까지 드뭅니다. 이러한 시도에 도전한 이들은 서구철학을 배운 현지 저술가들 혹은 철학서의 논술규범에 따라 원주민의 사상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서구의 인류학자들이었는데, 이들 모두는 원주민 사상의 원천으로 기능하는 다양한 제언(題言)을 실제로 사용·언표할 때 프래그머틱한 환경을 마구 휘젓는 주해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는 난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폴랭 웅통지(Paulin Hountondji)가 아프리카의 민족철학에 대해 '유럽인의 지적이고 세밀한 유희의 단순한 구실'이라고 말한 것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이때의 대칭화가 아직 불완전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칭화의 세 번째 패턴은 로컬의 원리의 일반화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주민의 사상으로부터 철학적인 반-모델(counter-model)의 제시를 꾀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 의도는 여러 요소를 대립시키는 시스템 상의 차이를 조망함으로써 어떤 현상군에 있는 모든 상태(etats)를 파악할 수 있는 조합적 틀의 구축에 있습니다. 구조분석의 기초적 원리에도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방법을 대칭화라고 불러야 하는가? 구조주의의 원리에서 보면, 전체화(totalisation)는 이미 준비된 여건이 결코 아닙니다. 인류학자가 자신의 절대적인 시선에서 세계를 구조화하여 얻을 수 있는 시야에는 [전체화가] 기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체화는 어떤 문화의 다양한 특징, 규범, 제도, 신분 등을 상호의 바리에이션·변이형(變異形)으로 만들어가자는, 끝나지 않는 작업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으로 보충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것들의 변형은 집합체(ensemble)에 속하는데, 그 집합체 자체는 다른 요소가 끼어들면 별도의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으며 나아가 다양한 변형이 반복확장하는 무대로서 변형을 포섭하는 것 외에는 그 존재 의의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와 같은 대칭화의 패턴은, 사람들이 이곳 저곳의 제 현상에서 찾아내는 다양한 특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하며 타 퍼스펙티브에 관해서는 관심 가는 대상의 다양성에 대한 다소의 지식을 요구하는 데에 머물고 맙니다. (지적 작업에 임할 때 최소한 이 정도는 하지요.)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Par-dela nature et culture)』에서 제시한 실존적 전환(transformation ontologique)의 형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식별모드를 쌍으로 대립시키는, 대조작업을 기본으로 하는 매트릭스입니다. 식별모드란 인간이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환기하는 유사성과 대조(형상, 질량 혹은 태도에서의 대조)에 기초하여 인간과 그 주변의 사물과의 연속성·비연속성을 인식하는 감지(感知) 방식을 말합니다. 어떤 사물에 직면했을 때 그 사물이 나와 동일한 물질성과 내면성을 띠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상정하고 나아가 그것들의 요소가 다른 인간과 다른 비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요소와는 다른 것이라고 파악한다면, 이때의 식별모드를 토테미즘이라고 합니다. 물질성과 내면성은 나와 다르지만, 관계성은 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차이가 미미하다면, 아날로지즘(analogism). 내면성은 공통적인 반면 물질성은 다른 경우는 애니미즘. 반대로 내면성은 비교불가능한 반면 물질성이 비슷하다고 감지되는 경우는 내츄럴리즘. 이 존재론의 도표는 레비스트로스가 '질서의 질서'라고 부른 것--사회활동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스템의 한 단계 위의 차원에 있는 구조적 조립물--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질서의 질서는 분석적으로 새롭게 상정하는 몇 개의 차원의 통합을 토대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물을 체험할 때에 제일의적으로 감지되는 것에 대한 가설(우리들을 에워싼 사물의 제 특성을 식별하고 그러한 특성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를 그 특성으로부터 추론하는 작업), 그 가설의 결과로 떠오르는 질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식별의 매트릭스에서 철학이 제일동자(第一動者)로서의 역할을 떠맡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매트릭스는 일종의 실험장치이며 사상(事象)을 캐치하고(일으키고) 골라내어(조합하여) 차이의 통사법(統辭法)을 밝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이 장치를 채용한 것은 무엇보다도 구조분석의 기본원칙에 충실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본원칙에 준하면, 변이형은 다른 변이형에 대한 변형이며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은 특정의 변이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확실히 존재론적 관계의 매트릭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매트릭스가 매트릭스의 차원에서 두드러지는 변이형(애니미즘, 내츄럴리즘, 토테미즘, 아날로지즘), 그리고 다른 시스템(사회학, 인식론, 신화론, 공간론의 차원)으로의 이행형으로서 단리(單離) 가능한 변이형, 그야 어떻든 다른 변이형의 상위에 서는 우위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은 사회적 문화적 사상(事象)을 이해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함에 있어서 우리의 존재론의 전제사항에 대해 가능한한 중립적이고자 하는, 처음부터 자기자신에 부여한 조건입니다. 우리 서구인의 존재론, 즉 내츄럴리즘은 세계를 객체화하는 네 개의 변이형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 해도 구조적 조합은 다른 두 개의 대칭화의 패턴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것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불완전한 이유는 각기 다른데, 이 패턴의 불완전함은 이 패턴이 타자의 제도나 관습에 관한 일반적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이러한 지식이 서구만이 생산해왔던 부류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서구 특유의 지(知)의 생산기획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서구에 특유한 것은 보편을 목적으로 하는 그 의도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는 지(知)의 시스템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서구의 경우에 특징적인 것은 지(知)의 생산이 근거하는 경험적인 데이터에 전 세계를 망라하는 성격을 요구하는 데에 있습니다. 

  타자의 지를 대칭화하는 세 가지 패턴은 민족지학자가 보고 들은 이야기와 행위를 출발점으로 하여 각기 다른 타입의 갈림길을 상정합니다. 이른바 채권(債權)과 같이, 유무의 언급 없는 주해(注解)의 채굴, 개념의 일반화, 이행시스템으로의 통합 등 세 방향 중 어느 쪽으로든 나아갑니다. 여기서 저는 이 세 패턴의 길과 각각의 길이 유발하는 자립화 법칙을 언급하기 전에, 분기의 계기가 되는 데이터에 대해 말해두고자 합니다. 대개의 철학이 이미 부분적으로는 재귀적인 언설의 집합체를 다루면서도 인류학이 이미 체계화해놓은 '원주민 사상'과는 좀처럼 대면하지 않습니다. 토착의 철학이라 불릴만한 것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수는 매우 적으며(민족지학의 연구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모든 민족학자가 알고 있는 수준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우리들이 브리콜라쥬에 의지하여 수립하고자 하는 지식, 그 지식의 출발점이 되는 정보는 맥락 없는 단편적인 언표로서 우리와 우리의 대화상대와의 소통을 어떻게든 의미있게 유지하려는, 유의미한 시퀀스로 즉좌적으로 변환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평소 집에서 이야기할 때와 똑같습니다. 좀더 정리된 언표라 해도 종종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섞이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마존에서 아추아르(Achuar) 족의 남성이 저에게 다음과 같은 꿈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꿈 속에서 그는 나무 속에 있는 어느 남자로부터 '누이들을 소개시켜줄테니 내일 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남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양털원숭이고, 내일 아내를 몇 명 주겠다고 한 것은 사냥하러 오면 사냥감을 주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이와 같은 언표에 맞닥뜨리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갈림길은 (이 길은 현지에 조금 익숙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조금 옛 표현을 빌어 말하면, 이해적(comprehensive)인 성격을 가집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또 있습니다. 견문의 흐름을 모으는 시퀀스와 행위 모델을 구축하려는 민족지학자의 시도는 사변적 의도를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신의 행동에 지침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해에는 우선 프래티컬한 역할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족지학적 작업은 학자 스스로 수용한 사회화 프로세스, 즉 학습의 프로세스이며, 이와 같은 프로세스는 실천공동체에 몰입한 관찰자의 신체, 행동, 비판을 끊임없이 도야[陶治]하도록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이치에 맞는 행위모델를 부여함으로써 관찰자[손님]는 그들과의 관계를 지도하는 입문서를 작성하고, 자신은 목격자임과 동시에 당사자의 위치에 서서 어떤 행위와 자신이 만들어내는 해석 간의 일치(많든 적든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를 아무때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해란 자신을 위한 이해에 머물지 않습니다. 민족지학자는 타자, 즉 자신의 출신공동체에 이해방식을 제공해왔습니다. 이해가 퍼블릭해짐으로써, 이해의 해석이 별도의 프로세스를 밟음으로써, 결론적으로는 그 성격이 변하게 됩니다. 여기서 제2의 분기점이 발생하는데, 앞서 말했던 대칭화의 패턴에 따른 형태로 길이 갈립니다. 개념의 심화--로컬의 서사에서 보이는 개념이나 문화적 특성의 이론적 조작--와 주해의 체계화--현지 사상의 철학적 언어로의 번역--는 우선 하나의 길에서 작용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귀납적인 성격을 띱니다. 현상의 집합체는 민족지학자에 의해 어떤 완결된 세계의 내부로 해석되지만, 뒤이어 곧바로 같은 문화권의 인접한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유사하며 보다 광범위한 현상의 집합체 내의 이형체로서 파악됩니다. 그러한 현상은 '로컬 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양상을 노정하면서도, 집합체의 독자성과 맨 처음의 생각을 점차 잃게 합니다.

  이 시점에서 별도의 분기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개념강화로 나아가는 길이며, 또 하나는 얼터너티브한 철학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어느 쪽도 실제로는 수단인 것이고, 귀납적 일반화와 언표의 파라미터(parameter 모집단)의 재편성을 이용합니다. 목적은 이제까지 분명하게 언어화되지 않는 관행을 개념으로 집약하고 그 개념을 표면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편으로는 제가 재정의한 애니미즘,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ceiros de Castro)가 정의한 퍼스펙티비즘, 뒤몽의 계급적 포섭 등이 출현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템페르 신부의 반투족의 동태적 존재론(ontologie dynamique bantoue), 로이 와그너(Roy Wagner)의 주체의 홀로그래픽(holographic) 이론이 있습니다. 양자의 차이는 방법보다는 그 영역[射程]에 있습니다. 개념강화의 경우, 그 의도는 순수하게 인문학적(anthropologique)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고유 상황의 연구를 기초로 획득한 새로운 분석도구를 제시함으로써 인간공동체 전반의 특징에 대한 이해에 공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얼터너티브한 철학의 언설은 또 다릅니다. 이것은 존재와 세계를 사고하는 데에서 별개의 도(道)가 존재함을 보여줌으로써 전통적 형이상학을 뒤엎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귀납을 연역적 수단의 부하로 둔다는 의미에서, 편성의 차이적 특징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은 이제까지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잘 다듬은 인척의 기본적인 수지상(樹枝狀) 도식이나 제가 제안한 식별모드의 표에서 보이는 개념적 오브젝트는 귀납적 일반화의 직접적 귀결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모델입니다. 즉, 이것은 때마다 영감을 받아 잡다하게 만들어놓은(브리콜라쥬에 의한) 머티리얼한 장치--그래프, 도식, 표 등--입니다. 모델은 규칙성을 인정받는 현상의 그룹의 구조를 공간상으로 표시함과 더불어 현상 간에 가로놓은 관계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형태적 특질을 고안할 수 있게 합니다. 여기에서는 수단이 목적과 합치한다는 것을 지적해두겠습니다. 여기에서의 의도는 로컬의 요소를 분석개념에 변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학이 비교법학에서 이어져온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실천·제도·이데올로기의 몇몇 타입의 구조적 친화성·부적합성의 문제. 답을 찾아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브리콜라쥬에 의지하면서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실천의 관리체계를 뒷받침하며 공동체에 특유의 스타일을 주입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존재론적 제 전제를 찾아내어 전개시키는 모델을.

  얼핏 보면, 민족지학적 경험에서 분기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영역의 완전한 변환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대상에 있어서도 방법에 있어서도 확실히 구분되는 민족학과 인류학의 전통적인 대립을 조망할 경우에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지금 다루는 연역적인 사고는 실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의 선행 절차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 발표에서는 언급할 수 없지만 이러한 절차는 결국 드러나지 않고 끝나버렸습니다.) 실제로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의 전환모델은 (저와 다른 세력의 연구자의) 민족지학을 출발점으로 삼는 몇몇 귀납적 일반화를 통해 조금씩 형태를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저로서는 물론 극히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인류학자들은 끊임없이 풍부히 보완해야 하는 민족지학적 모노그래피 속에서 학문의 길을 선택하는 방법적 요소를 바로 짜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출의 노우하우는 또 다른 노우하우, 즉 공유된 필드워크의 노우하우를 근거로 하는 만큼 상당히 언어화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인류학자가 민족지학적 데이터를 채취하여 취사선택하고 보고하는, 객체화과정의 제 절차는 좀처럼 명시되기는 어렵지만 노우하우를 공유함으로써 우리에게 [낯선 타문명을] 즉시 친숙하고 자명한 것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추상화와 묘사, 귀납과 연역, 직접적인 지와 매개되는 지, 로컬의 개념과 일반화를 겨냥한 개념, 이들 사이를 부단하게 오고가는 인류학은 발견의 기술(art)로서 특별한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거기서 표류하는 모험의 향기는 우리들이 조우하는 사람들에게만 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1. 멕시코 남부와 중미 일부 지방의 원주민의 언어 [본문으로]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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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설은 『문예』 2010년 봄호부터 2012년 여름호까지 연재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카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라는 출판사에서 2012년 7월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2014년 7월 문고판으로 재출간했다. 

1964년생인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소설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戰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역사화할 수 있는가를 과거와 현재의 소통의 장으로서 신화의 세계를 빌어 풀어보고자 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1980년의 16세의 마리와 2009년의 45세의 마리가 전화로 연결된다. 16세의 마리는 영문도 모른채 미국 북동부로 보내져 고등학교 9학년에 재학중이며 이방인으로서 힘겹게 살고 있다. 45세의 마리는 자식도 없고 세금 내는 법도 몇년째 잊을 정도로 수입도 변변찮은 그저 그런 소설을 쓰며 지낸다. 16세의 마리는 45세의 마리가 엄마인 줄 알고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45세의 마리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여전히 모른다. 45세의 마리는 '엄마'라고 부르는 16세의 마리를 도와주고 싶다. 자신을 돕기 위해. 

이렇게 45세의 마리는 16세의 마리를 "말하기" 시작한다. 

1980년, 미국의 고등학교로 보내져 한 학년이 유급된 마리에게 학교측은 본래의 나이에 맞는 11학년으로 올려주는 대신 '공개모의토론'을 제의한다. 그것은 1946년 1월 도쿄에서 치뤄진 극동국제군사재판, 이른바 A,B,C급 전범을 국제사법처리한 '도쿄재판'을 재현하는 것이다. 마리는 도쿄의 자신의 집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도쿄재판'에 대해 물어보는 중에 자신의 엄마가 도쿄재판에서 통역을 맡았음을 할머니로부터 알게 된다. 그러나 마리의 엄마는 '아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것은 마리에게 '부인'이 아니라 '거절'로 받아들여진다. 즉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전쟁에 대한 '침묵'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완고한 '거절'과 같다. "우리집에는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침묵이라는 거절. 그 대가로 16세의 마리는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선생과 학생들이 '미국과의 전쟁으로 다수가 희생한 일본인들이 미국을 증오할 것이다'라는 말의 역사적 감각을 느낄 수 없다.   

45세의 마리는 패전 이후 30년동안 일본은 전쟁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급속한 경제발전은 '군국주의'라는 간판을 내리고 평화의 미명 하에 경제전쟁에 집중했던 "시대극"에 다름 아니다. '괜찮다, 괜찮다'라는 거짓투성이의 "시대극"은 버블경제로 막을 내린다. 그래서 45세의 마리가 보기에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버블경제 후의 10년이 아니라 그 이전이다. "시대극"이 걷힌 후에 비로소 말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16세의 마리는 "천황의 전쟁책임'을 주제로 '공개모의토론'을 준비하면서, 전후 일본에서의 천황의 논리를 간파해간다. 일본 정치의 정통성과 결정권의 분리 구조, 그래서 어떤 결정권도 가지지 않았다는 '상징으로서의 천황'이라는 '면죄부'로 천황은 전범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천황이 모든 통수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정(GHQ)과의 공모로 천황에 내려진 면죄부는 전후일본사회를 은폐의 나라로 내몰리게 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전후 일본의 '상징천황'과 도쿄재판의 논리만을 따져들었다면 그 반대의 논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저 소설을 가장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도쿄재판에서 재판 자체를 무효로 선언한 판사가 있었다고 한다. 인도인인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제정된 법으로 전쟁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법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오히려 소설에서는 '상징천황이므로 도쿄재판에서 제외되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천황은 "평화에 대한 죄"를 범한 A급 전범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평화에 대한 죄"는 16세의 마리가 미국의 친구들과 '사슴사냥'을 하면서 비유적으로 설명된다. 어린 사슴을 포획한 친구들은 포획이 금지된 어린 사슴을 사냥에 참가한 사람수만큼 나누어 각자의 집에 묻기로 한다. 사냥이 끝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리는 17세의 미국인 남자에게 성교를 '당한다'. 16세의 마리는 배를 위로 향하고 사지를 사방으로 벌려 죽은 어린 사슴과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는 자신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비로소 어린 사슴에 대한 자신의 "죄"를 묻는다. 

또 '상징천황'이기에 천황은 이미 개인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인민의 상징으로서 천황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인민이 일본이라는 바람과 땅과 하늘의 소산인 것처럼 일본이라는 나라와 인민의 소산이다. 따라서 일본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전쟁의 참상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죄"이며 일본을 상징하는 천황의 "죄"이며 일본이라는 인민의 "죄"이다. 16세의 마리는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I"의 천황을 재현하면서, "전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역사는 물론 과거의 사실이 아니다. 아니,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사실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역사라고 부를 이유도 없거니와 역사를 논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역사라고 한다면, 우리가 우리에게서 전달되는 생물학적 유전자로 환원되지 않는 삶과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죽은 자에게서 삶을 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죽은 자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죽은 자가 살고 있는 신화의 세계에 역사는 빚을 지고 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내가 먹은 것을 감추면서 남에게 먹히는 것을 가려낼 수 있을까. 45세의 마리는 번역불가능한 "천황"의 신화로부터 전후 일본의 '상징천황'이라는 은폐와 기만의 역사를 들추어낸다. 그것은 신[천황]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먹고 먹히는 인간의 연약함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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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상』2015년 1월 증간호 <総特集=柄谷行人の思想>[총특집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에 실린 두 개의 대담록을 요약정리했다. 하나는 일본의 사회평론가인 사토우 마사루(佐藤優)와 가라타니 고진이 제국의 구조국가론과 칼 바르트의 신학을 중심으로 코뮌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논한 것이고, 또 하나는 동아시아의 문명론을 주제로 가라타니 고진과 김우창이 한국과 일본 각각의 문명소에 관한 의견을 나눈 것이다. 특히 전자의 대담은 『트랜스크리틱』과 『제국의 구조』에서 제기된 몇 가지의 논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두 대담록은 최근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지적 토양을 신학적 실천론과 동아시아의 문명론의 관점에서 검토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의 사상의 행적이 『트랜스크리틱』(2003)을 전후로 구분된다고 명확히 말한다. 『현대사상』의 이번 특집호는 그 이후의 사상에 관해서만 집중 조명했다. 가라타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대상에 대해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태도를 가집니다. 하나는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 또 하나는 그것을 선악으로 보는 도덕적인 태도, 마지막 하나는 그것을 미적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흔히들 '진선미'라고 하지요. 이 세 가지 태도가 진선미에 대응한다는 것이지요. 지적, 윤리적, 감정적 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됩니다. 누구라도 이 세 가지의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 세 가지는 동격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적인 것, 윤리적인 것과 비교해서 '미' 즉 대상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낮게 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마찬가지입니다. 서양도 그러했고 중국이나 인도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헤이안문학 등을 보면 미적 태도가 처음부터 상위에 위치합니다. 거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식적, 윤리적인 것을 낮게 보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 감정이나 상상력을 중시하게 된 것은 낭만주의 이후입니다. 낭만주의 바로 전에 칸트가 있습니다. 칸트는 진과 선에 대해 미를 동격으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바꿔말하면, 그때까지 하등한 능력으로 간주되었던 상상력을 오히려 진과 선을 매개하는 것으로 다루고자 했던 것이지요. 칸트의 『비판은 세 능력을 음미하고자 했습니다. 그 후에 낭만파가 나타난 것입니다. 낭만파는 오히려 감정이나 상상력을 우위에 놓고자 했습니다. 그 후, 인식적인 요소가 강조되면 리얼리즘문학이 되고, 도덕적인 요소가 강조되면 사회주의적인 문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세 요소는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고 서로 대항하며 보족해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역사적으로 문학의 지위가 서양과는 달리 낮았지만, 19세기 말부터는 서양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들과 같은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이례로 근대문학은 인식적 및 도덕적인 것이 우위에 있는 시대에 대항해왔습니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19세기 이전에는 종교적인 것으로 다뤄졌으며 오늘날에는 정치적인 것으로 다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것이 강할 때 그에 비판적으로 대항하는 것이 문학이었습니다. 이 의미에서 문학은 매우 중요하며 힘을 가집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이 사라지면 문학은 단지 오락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나는 일본에서 문학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문학이 끝났다라기보다 오히려 정치적인 것, 도덕적인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정치화가 진행된 결과 문학의 의미도 그 지위가 저하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문학이 정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학이 정치로부터 해방되면 오히려 문학은 무력해집니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러했습니다. 일본의 문학에서는 본래부터 지적, 윤리적인 요소를 낮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이상 그러한 것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39쪽)

  문학비평가로서 자신의 시대적 소임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지적이고 윤리적(정치적) 인 것을 지향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새롭게 모색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행보는 사토우 마사루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을 중도포기하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을 웅변한다. 사토우 마사루는 일본의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년에 '일본'으로 회귀하여 천황주의에 포섭되거나 미래를 선취하는 목적론으로서 공산주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고 말한다. 세상을 '뜻'에 따라 변혁하기 위해서는 그 '뜻'을 옮길만한 힘에 대한 주도면밀한 고찰이 요구됨에도, 이제까지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에 대한 재검토와 재이론화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국가를 넘어서는 '코뮌'의 가능성을 논하고자 한다면 '국가'를 정면에서 다뤄야 하고, 18세기 이후 유럽의 내셔널리즘이 전 세계를 재편하기 전에는 '제국'이 '국가'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그리고 가라타니는 이러한 '제국'에서 코뮌의 가능성을 추출하고자 했다. 여기서 가라타니는 '제국'과 제국주의를 구별할 것을 주장한다. 인류역사상 '제국'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 몽골제국 등이고, 로마제국이 제국일 수 있었더 것은 그리스(닫힌 도시국가)를 계승해서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제도들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중심주의의 사고(마르크스주의자도 벗어나지 못하는)가 로마제국을 그리스와 합치해버렸다. 또 이슬람제국은 몽골제국 내에서 중동지역의 이슬람 엘리트계층의 제국적 훈육의 결과 성립가능했으면서도, 그 종교적 편향(혹은 불관용)으로 인해 몽골제국의 보편성을 담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라타니의 '제국'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보편성을 지향하는 세계공동체를 핵으로 하는 개념이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제국들은 이러한 보편성을 담지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제국을 표방한 국가들은 제국주의적 내셔널리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신 19세기 이후 '제국'은 세계의 보편종교 운동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이어나갔다. 이를테면 중국에서 일어난 '천년왕국운동'과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종교사회주의운동이 그것이다. 19세기의 일군의 공산주의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사회주의운동에 종교성을 제거하려했지만, 인류의 코뮌적 공동체 운동은 언제나 종교성을 띠었으며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사제'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면 다음으로 이러한 세계보편을 지향하는 운동이 왜 일어나며, 그것이 어떻게 인류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가라타니는 '교환양식론'을 통해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가라타니가 『세계사의 구조』와 『제국의 구조』에서 정초했다시피, 그의 '교환양식론'은 호수성[씨족사회 내의 의무로 강제된 상호호혜성]의 교환양식 A, 국가에 의한 폭력적 재분배라는 교환양식 B,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교환양식 C, 그리고 교환양식 A의 강박적 회귀로 도래하는 교환양식 D로 요약된다. 교환양식 D는 더 자세히 말하면, 정주민(유목민은 역사적으로 정주민과 동반출현한다는 점에서 유목민은 정주민의 파트너이다)이 출현하기 이전 인류의 原유동성의 강박적 회귀로 도래하는 것이다. 이 각각의 교환양식은 인류의 문명사를 시대적으로 분절하면서 사회의 주요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아마도 『트랜스크리틱』 이후, 더 가깝게는 『세계사의 구조』 이후, 문학비평가로서의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력과 통찰력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그의 교환양식론에 적잖이 실망했을 것도 같다. 이제까지 원시공산제로는 구분되지 못한 씨족사회의 호수제와 인류의 原유동성 밴드의 자유로운 상태를 구분하기 위해서 가라타니는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을 분석적 도구로 개념화했고, '제국'의 문명사를 통해 보편성의 공동체가 이미 인류의 문명사에 존재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교환양식론과 제국론은 곳곳에 지뢰같은 난제가 존재한다. 태곳적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의 전체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은 현 인류의 지적 능력으로는 아직 이루기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한 것과 같이, 인류의 미래사회는 현실을 지양하는 운동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것은 인류의 흔적을 남김없이 개어낸다. 우리가 그것을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해도 그 이념이 현실의 운동 속에서 발생되는 것이라면, 미래로의 지향은 인류사의 총체적인 조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문명론을 주제로 한 가라타니 고진과 김우창의 대담은 주로 한일간 문화 및 정치구조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조선)의 경우 중국으로부터 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중앙관료제에 기반한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민의(민심: 天命)라는 관념을 통해 정치권력을 통제했다면, 일본의 경우 '중국화'는 표층적이었으며 지방분권의 무사도에 의한 공론 없는 정치체제를 구축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공개적인 논의를 꺼려하고 "네마와시"(

  『현대사상』 가라타니 특집호에는 그 외 외국의 학자들로부터 가라타니의 이론에 대한 각가지 논점을 다룬 글들이 다수 실려 있다. 강한 시차를 두고 늘 나타나는 초월적 타자 X에 대한 논의도 지젝을 비롯해서 몇몇 학자가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내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아 나중에 여유가 되면 정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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