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읽었던 세 권의 책에 관한 짧은 감상문을 쓴다. 코 앞에 닥친 일을 마무리하고 느긋하게 쓰려고 마음 먹었지만, 일은 조기 두름 엮이듯이 끊이지 않아 이러다 읽은 기억마저 잊을까 싶어 써두려고 한다. 

 

  『갱부(坑夫)』는 나츠메 소세키가 전업작가로 명성을 얻은 후 도쿄의 일명 "소세키산방"(漱石山屋)이라고 불린 집으로 이사한 그 이듬해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소세키의 여느 소설이 그러하듯이 줄거리는 단순하다. 도쿄의 평범한 서생이었던 어느 젊은 청년이 어느날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번민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며 집을 나온다. 그 가출길에 우연히 갱부를 모집하는 브로커를 만나 함께 광산으로 떠난다. 기차를 타고 강을 건너 산을 넘는 내용이 전반부. 후반부는 광산의 "함바"(飯場)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단 한번의 갱의 체험담으로 채워진다. 서생은 결국 갱부는 되지 못하고 경리로 5개월간 일하다 도쿄의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나는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에 몰입할 수가 없다. 가령 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노라면 소설의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감각을 느낀다. 이와 반대로 소세키는 마치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주문하는 것 같다. 소설의 어느 등장인물에게도 감정이입을 허하지 않는 그만의 독특한 서술기법은 참으로 묘하다. 언제나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가 서로를 다르게 이해한다. 그러나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웃긴 것이고, 서로에게 웃긴 서로가 지나고 나면 스스로에게 웃긴 것이다. 이렇듯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특유의 웃음은 삶이 갖는 진지함 그 자체의 웃음이다. 바보 이반만큼 진지한 이가 또 있겠는가. 

  이 소설은 나츠메 소세키의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소세키가 도쿄제일고의 교사 시절 그의 제자였던 후지무라 마사오가 자살한 사건이 있다. 후지무라 마사오의 자살은 메이지 시기 일본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으로, 게곤폭포에서 투신하기 직전 남긴 그의 유서는 지금도 유명하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고 번민에 번민을 거듭한 끝에 죽음을 결정했다고 하는 내용. "커다란 비관과 커다란 낙관이 서로 같다는 것"이라는 유서의 마지막 문장. 

 『갱부』는 나츠메 소세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젊은 제자 후지무라 마사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또 다른 후지무라 마사오에 보내는 편지이다.  소세키는 자살을 결심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던 『갱부』의 젊은 서생에게 번민과 고독과 무상의 틈새를 비집는 바보이반의 웃음을 선사한다.  

  이 책은 현암사에서 출간 중인 나츠메 소세키의 전집을 얻은 후 읽었다. 아니었으면 평생 읽지 못했을 것이다.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중에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책이 아니고 그의 소설을 모조리 섭렵할 만큼 그의 소설세계에 빠진 것도 아니니까. 돌이켜보면 책이란 우연을 가장한 인연인 것 같다.

 

  인연으로 읽은 두번째 책은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이다. 저자의 친필싸인이 담긴 이 책 역시 저자와의 인연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읽을 일은 없었을 책이다. 내게 "문학소년"으로 기억되는 저자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지만 그의 책에서는 여전히 "철학소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편, 그의 책에서 그를 기억해낼만큼의 인연은 책의 주인공과의 대면을 가로막는다. 나는 라이프니츠를 읽은 것인가, 박제철을 읽은 것인가. 내가 알게 된 라이프니츠는 라이프니츠인가 박제철인가.

  책은 너무 좋다. 철학이 이렇게 쉽고 재밌는 줄은 처음 알았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어렵고 지루하지 않다. 시간, 공간, 물질은 서로가 서로에 의해 존재하고 의식된다. 그러면서도 시간, 공간, 물질은 개체적 실체의 직관에 의해 서로를 지속시킨다. 이 책은 친절하게 수학의 가장 쉬운 도식으로 하나하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들과 진리론과 시간론을 풀어놓는다. (이 책에 관해서는 프로젝트 일이 마무리되면, 라이프니츠 특집으로 다루련다!)

 

  마지막으로 『일본전후정치사』를 짧게 언급하련다. 이 책과의 인연이라고 한다면, 어거지로 붙이는 것으로다, 위의 저자와의 약속장소가 이 책의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다방이었다는 것이다. 2006년에 초판이 나왔을 당시, 일본인의 인명 표기가 상당부분 잘못되어서 초판 1쇄를 회수하고 다시 찍었다는 이야기를 그 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이 번역을 했다는데 왜 그런 실수가 나왔을까 의아해했더랬다. 그런데 책을 보니 한 줄 건너 인명이 나온다. 그럴만한다. 전후 일본의 웬만한 정치인들은 다 거론된 것 같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하면 정치부 기자가 정리한 선거와 정당에 관한 '통계적 기록'이다. 사실관계를 위해 참조하기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 하나는 정당이 있고 선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선거가 있고 정당이 있다는 것. 보통선거의 실시 이후 인류의 정치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역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느낀 점 또 하나는 대권-지도자는 정말 우연히 탄생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누가 대권의 정치인이 될지를 모른다. 시대만이 안다. 

 

  일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은데 지난주는 이렇게 읽어버렸다, 인연에 따라. 이제 나는 죽었다..ㅠ.ㅠ 

 

Posted by Sarant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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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마루야마 특집호(2014년 8월)에 실린 김항(金杭)의 논문.

<현대사상>에는 필자의 연구분야와 이름만을 기재하기 때문에 재일코리안인가 했다. 문장이 수려하고 어렵다. 김항의 글을 처음 접했고 이 글만으로는 김항의 마루야마에 대한 사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칼 슈미트와 마루야마 마사오의 관계를 해명한 글인데, 칼 슈미트의 글도 읽어본 것이 없어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단 번역했으니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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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市民の哀悼劇:丸山真男と決断の帰趨」[근대시민의 애도극: 마루야마와 결단의 귀추]

김항(金杭)

 

  1.

  나치즘과의 불운한 동거가 파탄난 후 곧 수인(囚人)의 몸이 된 카를 슈미트는 스스로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노예선을 뺏긴 가련한 선장, 베니토 세레노의 부단한 세월에 자신을 빗대며 한때 유럽의 공법(公法)을 짊어진 위대한 법학자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주권국가의 기사(騎士)로서의 상호승인의 질서를 미소 양국이 보편적인 패권전쟁을 통해 나눠가지는 시대의 추세 속에서 단지 침묵하는 것만이 법학자의 유일하게 정해진 길임을 감수했던 것이다. 15세기 젠틸레(Gentile, 1370~1427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가 ‘신학자여 타인의 노동 앞에서 침묵하시오’라는 일침으로 유럽의 공법의 시작을 알려주었다면, 그로부터 500여년이 지난 20세기에 ‘법학자여 침묵하시오’라는 형벌로써 슈미트는 동족의 계보에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물론 슈미트는 『대지의 노모스』라는 대작에서 후예를 버리다 못해 지구규모의 새로운 법질서의 출현을 예감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 전망은 점차 희미해질 뿐으로 ‘취득 Nahme’을 근원으로 하는 노모스의 질서가 미소 양국의 보편주의로부터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다하게 되었다. 대륙의 정주(定住)와 장소확정과 경계설정의 패러다임은 지구 규모에서 보편적 이념의 레짐(regime)을 목표로 하는 보편주의에 의해 소멸의 길을 독촉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슈미트는 이미 법 질서의 내력(來歷)과 존립을 내세우는 법학자로서의 사명을 방기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어느 정도 설명하다 끝내지 못한 유럽 공법의 핵심적인 개념인 주권으로의 회의에 눈을 돌렸다.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권자란 실은 근원적으로 존립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고.

  슈미트가 그러한 의심을 ‘권력의 대기실 Vorraum’이라는 표상을 통해 제시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슈미트에 의하면, 권력을 일신에 집중시키는 주권자의 방 앞에는 겹겹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기실이 있고 주권자의 모든 결정은 대기실을 점유하는 관료와 막료와 측근들에 의해서 행해진다. 이는 주권자의 권력이 결정해야 하는 사정이 매우 많고 주권자 한 사람만으로 그 일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필연적으로 주권자로 통하는 대기실에서 그 결정을 대행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권력이 결국 간신들과 침식하는 것이라는 범용한 교훈을 가리키지 않는다. 궁정에서 오가는 농담과 감언이 현실과 주권자 사이를 가로막아 견명한 결정을 흐린다는 식의 분노가 슈미트의 진의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의심이 품은 무거움은 주권자의 결정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진짜 권력상황을 은폐해버린다는 사실을 회한에 가득 차 인정한다는 데에 있다. 주권자의 결정이라는 법 개념은 슈미트에게서 자신의 법학적인 영위의 근저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법뿐만 아니라 국가와 정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공적인 질서와 행위의 모든 것은 이 개념이 아니고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와 같은 스스로의 근본개념을 슈미트는 방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본 글에서는 우선 슈미트의 이와 같은 자기회의를 확인하고 논의를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이것은 결정이나 결단을 입 밖에 내는 사상적인 영위는 대체적으로 모두 슈미트의 자기회의의 근변으로 회귀하는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2.

  그렇다면 자부심 높은 유럽 공법의 최후의 적자, 슈미트를 그와 같은 모멸적인 자기회의로 이끌었던 진짜 권력상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권력행사에 내재하는 근원적인 정당화의 불가능성이다. 즉 모든 권력상황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매번 창출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결단할 수 없는 군주, 아감벤이 그려낸 오이코노미아 신학, 아렌트가 본 근대의 권위 상실, 그리고 푸코의 주권을 결여한 통치의 테크놀로지 등 이 모든 것은 슈미트의 자기회의와 공명하는 사유임은 이미 지적되었다. 나는 이 리스트에 한 사람의 이름을 덧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마루야마 마사오이다.

  마루야마는 슈미트의 지대한 영향 하에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동경일고(東京一高)에 입학한 해에 만주사변(1931년)이 발발했다는 사실이 상징하는 것처럼, 그의 학창시절은 후에 초국가주의로 이름 붙인 천황제 파시즘과 나치즘을 포함한 광의의 ‘파시즘’이 기존의 정치질서를 붕괴시킨 시대였다. 명민하고 다감한 마루야마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 호흡했고 동대법학부 조수 시절이었던 1938년 ‘영미 및 독일 정치학계’라는 리뷰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발했다.

  “현대는 정치화의 시대라고 한다. 여러 문화체계는 이미 자립성을 잃었다. ‘과학을 위한 과학’의 깃발은 퇴색하고 이제 과학은 머리 위로 권력을 바라보며 발밑에 대중을 두기에 이르렀다. 이데(관념)로부터 이데올로기로 — 취향은 다름 아닌 정치학에 있어서 가장 현저하다. 영미의 정치학계가 이데올로기의 다채로운 갈등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하는 것에 반해, 독일의 그것은 다만 일색뿐이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철학적 기초에까지 침하되어 그곳에서 학문적 논술을 구하고자 했다. 그런데 왜 그곳이야말로 정치적 색채가 강렬한 것일까. 이러한 시대에서 과학적 정신의 존망은 어느새 이미 학자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적 광란의 소용돌이에 침몰될 것인가 아닌가는 대중의 자각에 더 크게 의존한다.”

  마루야마가 1939년 나치즘의 사상적 지주로 통용되었던 슈미트의 「국가, 운동, 민족」의 초역(抄譯)을 소개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는 이 초역이 나치즘 법학의 ‘고전’을 소개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단언했지만, 실은 그의 속마음은 슈미트의 사상 그 자체의 실체를 시대의 추세와 겹쳐 맞춰보면서 추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슈미트의 사상에는 위기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라는 것이 마루야마의 슈미트 독해인데, 그것은 슈미트가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는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진정한 섬광을 녹여버리는 마물 같은 힘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슈미트에 현혹된 마루야마의 심정은 그 직후 일본사상사연구에 있어서 획기적인 국면을 열어놓은 소라이론(徂徠論)[荻生徂徠 오규소라이, 1666년~1728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정을 이른바 ‘마루야마 키즈’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두 가지의 소라이론을 포함한 전집 제1권의 해제에서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우에테 미치아리(植手通有, 1931~)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사고구조와 사회질서관념에서 자연 대 작위의 대립(이에 대해서는 누구의 영향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앞의 문장에서 만하임의 영향을 중점적으로 지적했던 것을 보면, 이를 악다문 이 거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그렇다, 명백한 이 거부는 마루야마에 대한 슈미트의 영향을 투박하게 은폐하는 것이다. 그 증거를 일일이 열거할 여유가 없다. 위에서 다루었던 영미 혹은 독일 정치학계의 리뷰에 있어서 마루야마가 자꾸만 슈미트를 다루고 있다는 것, 1930년대 초반 로우야마 마사미치(蝋山政道, 1895.11.21~1980.5.15 일본의 정치학자)의 세미나에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강독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소라이론에서 결정적인 여러 곳에 슈미트의 『정치신학』으로부터 홉스가 인용되며 소라이에서 노리나가로 이어지는 논리를 슈미트의 『리바이어던』의 논리를 차용하고 논증하고 있다는 것. 조금 길게 인용해보자.

  “소라이에 이르러 처음으로 도(道) 그 자체의 궁극성이 부정되고 성인(聖人)이라는 인격에 의거하게 되었다. 소라이에 있어서 이 인격이 피안적인 것으로 고양됨으로써 도(道)는 매우 절대적인 보편타당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유교의 도(道)에 이르는 길은 때때로 위험신호를 울린다. 생각하건데 이제 도(道)의 가치가 천연자연의 진리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 자체의 궁극적인 이데(관념)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성인(聖人)이 만들어가는 것과 관련된다. 도(道)를 행함으로써 도(道)를 만드는 것은 이치가 아니고 권위이다(Auctoritas, non vertasu, facit legem! [진리가 아닌 권위가 법을 만든다] 홉스). 그러면서도 권위는 권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만 권위다워진다. 소라이학에서 성인(聖人)의 권위는 믿지 않는 자를 도(道)의 진리성으로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심대한 소라이학의 체계는 따져 들어가면 ‘우로(愚老)는 부처를 믿지 않으며 성인을 믿는다’라는 한 지점에 의거하고 있다. 위험하다랄까, 이 거점으로 해서 처리해버린다 랄까, 성인(聖人)의 도(道)는 그 전체 구성과 함께 홀연히 대지로 스며든다.

  ‘진리가 아닌 권위가 법을 만든다’는 홉스의 언명은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결단주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된 바이다. 마루야마가 작위의 논리, 즉 자연의 흐름이 아닌 주체의 의지적 작위에 의해 인간계의 질서가 창설된다는 논리를 구축할 때에 이 언명을 인용한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홉스-슈미트로 이어지는 결단주의가 위기의 정치논리를 전제하고 있으며, 마루야마는 소라이를 그와 같은 위기상황에 있는 사상가로 위치 짓고 있다. 그런데 마루야마의 슈미트 참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권위는 권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만 권위’이며 그것을 믿지 않는 자를 설득할 수 없다 라는 마루야마의 날카로운 해석은 실은 슈미트의 홉스독해를 채용한 것이다.

  슈미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침식했던 것이 다름 아닌 스피노자로부터 멘델스존에 이르는 유대의 사상가들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는 슈미트의 반유대주의가 가감 없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 글에서는 그 주변 정황을 탐색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슈미트가 절대주의 국가의 붕괴를 초래한 것에 대해 격론을 펼친 것인데, 이는 홉스가 ‘내면의 보류’라고 했던 것이다. 외면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만으로 주권이 기초 지어지는 까닭에 홉스의 국가는 개개인의 내면신앙의 자유에 의해, 바꾸어 말해 ‘주권을 믿지 않는 자유’에 의해 붕괴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마루야마가 권위를 믿는가 아닌가의 자유가 성인의 도(道)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슈미트의 논리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30년대의 마루야마에게 슈미트는 정치가 최종심급으로서 세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위기의 시대에 명석함으로 그 깊은 곳의 비밀을 체계적으로 보여준 도표였다.

  그러나 그의 지적인 영위가 슈미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해도, 마루야마는 슈미트의 단순한 추종자로 머물지 않았다.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슈미트와의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첨예화했으며 정치의 우위라는 슈미트의 테제에 가담하기 않기 위해 애썼다. 이때 슈미트와의 비판적인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마루야마가 정치적인 고려와 실천의 기초로 삼았던 것은 다름 아닌 ‘결단’이라는 계기였다. 그는 슈미트의 결단을 되받아치는 것으로 정치에 있어서 정치의 우위를 비판하며 파시즘에의 대항논리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논리는 앞서 말했던 슈미트의 자기구축으로 빠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3.

  혼돈의 자연으로부터 질서를 형성하는 부단한 실천, 이것이 마루야마의 민주주의라는 것에는 덧붙일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의 초국가주의론은 이와 같은 질서형성의 계기를 결여한 패전 전 체제에 대한 비판이었다. 초국가주의를 지탱한 천황제는 이와 같은 체제를 유지하는 독특한 혼합물이었는데, 통치의 억압 제도가 제도로서 인식되지 않고 자연적인 것으로 인지된다는 것도, 통치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운동이 제도와 질서의 창출로 이어지는 합리적인 사고를 결여한 혼돈의 에너지에 머무른 것도, 모두 천황제라고 하는 ‘자연의 제도 혹은 제도의 자연화’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이 마루야마의 분석이다.

  이러한 ‘일본적인 맥락’ 속에서는 비판이나 저항의 근거를 외부 혹은 상부로부터 강요된 제도와 대립하는 소여의 아이덴티티나 전통 등에서 찾을 수 없다. 이것은 천황제라고 하는 전통적인 아이덴티티가 외부ㆍ상부로부터 강제된 제도와 식별불가능하게 착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공산당 지도자의 전향이든 급진적 우익의 혁명이든 그 모두는 천황으로 귀의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무정형인 그대로 역사 속에서 유령과 같이 떠도는 수밖에 없다. 마루야마가 ‘결단’을 하나의 논리적 태도인 동시에 정치적 태도로서 제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도와 자연이 분별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되고 있다는 특수한 일본적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혼돈(자연)으로부터 질서(제도)를 창출하는 시원의 순간(바꿔 말하면 자연과 제도를 나누는 방법적인 의식으로서의) ‘결단’에 일본적인 정신과 신체의 수용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루야마는 이 도박을 내셔널리즘론으로부터 시작한다.

  패전 후 1949년, 마루야마에 의한 일본정치사상사의 논의는 내셔널리즘과 국민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마루야마는 국민을 ‘국민이란 결국은 국민이 되고자 하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라고 하면서 내셔널리즘을 ‘국민의 국가로의 집결’이며 ‘하나의 결단적인 행위’로서 정의한다. 개인이 국가로 집결하여 국민이 되고자 하는 내셔널리즘의 운동이 결단인 이유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즉 무자각적으로) 공유해왔던 여러 관습이나 전통을 의식적인 것으로 공유했다는 자각을 하기 때문이다. 즉 결단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이란 관습이나 전통의 부정이 아니라 그것들을 관습이나 전통‘으로서 의식’하는 것, 그것이 자연이 아니고 제도적인 것임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공유하는 질서가 제도인 한에서 이것으로부터 ‘창출되는’ 실천을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단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은 언제나 곤란이 뒤따른다.

  “인식함으로써 실패 혹은 좌절에서 배워가기 때문에 인간의 진보, 이에 따른 역사의 진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의 과정에서는 어떤 인간도 실패하거나 좌절한다. 그것은 인식이 완전한 인식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 인식이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현재로의 인식인 것에 대해 그 행동은 언제나 알지 못하는 미래로 뛰어든다는 도박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밀한 이론에서도 행동하는 입장에 서는 순간 그 다음에 오는 상황을 구석구석에까지 규정할 수 없다. 최후의 순간은 언제나 자신의 결단의 순간이다.”

  마루야마는 본래 결단이 내셔널리즘으로 귀착하는 이유에 대해 ‘근대’라는 역사적인 상황에서의 결단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 설명 자체는 상황의 추종과는 다르다. 결단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을 통해 마루야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내셔널리즘을 결단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셔널리즘을 자연적인 것에 귀속시키지 않고, 위로부터의 지배이데올로기로 파악하는 사고양식에서 탈피하여 폐허 속에서 국가를 재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역사의식과 미래로의 투기를 만족하기 위한 언설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근대시민이란 위기의 순간 과거의 인식에 기초한 미래로의 행동을 일으키는 ‘결단’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 근대시민의 결단이 순순히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단이 ‘실패나 좌절’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마루야마의 결단에 내재하는 균열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어떤 제도(내셔널리즘)를 창출하는 결단이 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미래로의 도박의 미지의 결단이 있다. 전자는 현재에 있는 제도를 과거에 소급해서 인식하는 원리이며, 후자는 미래로 나서는 행동의 원리이다. 마루야마의 결단은 이 두 가지의 계기를 통합하는 것에 의해 완전한 의미를 획득하는데, 여기에서 마루야마의 결단은 슈미트의 자기 회의로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그 통합은 어디까지나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결단불능의 시간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4.

  마루야마는 결단을 설명할 때에 자주 살인의 예를 든다. 인간이 사람을 죽이겠다고 결단할 때에는 무로부터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온 증오이며 순간적인 행동이다. 살인이라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그 근거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마루야마의 논의이다. 그는 행동원리로서의 결단을 그와 같이 살인에 빗대어 이해한다.

  이렇게 말할 때 마루야마는 법 규범과 법 실천에 내재하는 어떤 공백을 포착한다. 근대법은 일어난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인간의 행위에 판단을 내리는 처벌을 선고한다. 최소한의 법 규정의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죽이고자 생각할 때에 그 사람을 법적으로 판가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법 실천의 영역에 들어오면 사정은 바뀐다. 재판에 회부된 살인범은 살인이라는 행위 그 자체보다 살인에 이르는 동기를 찾아 그에 의해 처벌된다. 즉 행위가 행해져 법 실천의 영역에 파고들어가자마자 법 규범이 관여하지 않았던 내면의 동기가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마루야마의 결단도 이와 동일한 처지에 놓여있다. 마루야마는 결단에 이르는 인식과 결단을 근거지우는 행동을 시계열적으로 순열시켰는데, 실제의 시계열은 그 역순이 된다. 즉 사람은 결단의 결과에 의해 과거의 인식이나 내면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단을 구성하는 두 가지의 통합은 부득이하게 모순을 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과거에의 인식에 기초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 후에 그것을 재촉하는 인식을 추궁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슈미트가 말한 진짜 권력상황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결단을 구성하는 인식과 행동이 결국 역순이 된다면, 그때 결단은 미리 항상 누군가에게 판가름되는 운명 하에 있으며 그 때 결단은 결코 결단으로서 무언가를 창출할 수 없다. 즉 마루야마의 결단은 슈미트의 군주적인 독재의 결단을 민주주의의 기초로 하는 근대시민의 결단과 역립시킨 것인데, 결국 결단 그 자체에 내재하는 근원적인 불가능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벤야민은 재빠르게 슈미트의 주권론에 내재하는 이와 같은 불능을 캐치하여 그것을 독일 애도극이라는 역사적 형식으로 그 사례를 형상화했다. 아마도 마루야마가 ‘결단하는 근대시민’에 대해 제기된 벤야민적인 애도극은 패전 후의 일본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을 둘러싸고 자주(自主)가 억압적인 것인가를 논쟁한 끝에(결단일까 아닐까), 가련한 군주놀이를 하는 한 사람의 참주(僭主)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식과 행동을 독점하는(결단을 심판하는 권력의) 현재 상황은, 마루야마의 결단의 오마주적인 애도극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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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권용선, 역사비평사, 2014년)은 학생들에게 기말과제로 읽힐만한 책인지 알기 위해 먼저 읽어본 것이다. 이 책은 벤야민의 몇 가지 이론적 테마를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고찰한 일종의 전기문이다. 쉽게 쓰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벤야민의 사유 자체가 쉽지가 않아서, 아무리 풀어쓴 책이라 해도 과연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또 책 중간중간에 맥락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데리다니 들뢰즈니 가라티니 고진 등의 이야기는 저자 자신의 수유-너머의 고유한 경험들에서 비롯된 것이라 오히려 벤야민의 사유에 대한 접근을 흩트려놓는다. 결정적으로 벤야민의 공부법이라고 소개한 '수집', '인용', '배치' 등의 탈역사적 역사화의 글쓰기 부분이 쉽게 이해되기는 하는데,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오히려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 의심스럽다. 벤야민의 역사철학은 아도르노가 "인간학적 유물론"이라고 규정한 것과 같이, 산업자본주의 이후 출현한 인위적인 '자연'으로서의 산업기술로부터의 공동체적 지양에 있다. 그것은 아카이브 구축의 방법론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이 책에서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벤야민을 단순화한 책의 내용보다는 그 내용이라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니까. 

 

 또 하나 오늘 읽은 것은 『朝鮮総督府官吏: 最後の証言』[조선총독부 관리: 최후의 증언](2014)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15년생으로 1933년 조선으로 건너가 1946년 일본으로 귀환할 때까지 강원도의 관리직을 역임했던 어느 일본인의 생애구술록이다. 이 분은 현재 살아있고 사진으로 봤을 때는 10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 정정하다. 새로운 내용이 있을까 했는데, 내가 한 조사인터뷰에서 귀에 딱정이 앉을 정도로 들었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담론적 분석은 박사논문에서 이미 다 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일본의 극우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점 때문이다. 조선 출신의 '히키아게샤'(引揚者 귀환자)의 경험담이 현재 일본사회 내의 정치적 지형의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읽은 것이다. 나는 "조선인과 잘 지냈다"고 하는 그들의 강변이 일본의 국민적 동일성 내의 내적 구획화에 대한 저항으로 분석했는데, 이 책에서는 '서구(戰後는 미국)중심주의에 대항하는 아시아의 맹주로서 일본'이라는 서사로 구축되고 있다. 토 나올 것 같았지만, 연구를 위해서 끝까지 참고 읽었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첨예한 주제와 영역을 다루면서도 탈정치적인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은 허위의식의 우익적 이데올로기에 안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좌파적으로 전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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